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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1화

“우리 가게에는 유아용 교재가 없어서요. 다른 문구 방에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하예정의 서점은 중학교 앞에 위치해 주 고객층이 중학생이었고 유치원용 책은 들여놓지 않았다.“아, 그렇군요. 그럼 잠시 후 다른 문구 방에 가봐야겠어요.”젊은 여자는 책값을 지불하고 책을 들고 나가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가게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하예정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아마도 전태윤과 함께 행사에 참석했을 때 스치듯 본 적이 있을지 몰랐지만 깊이 알지는 못해 기억나지 않는 것이라 여겼다.‘잠시 후 태윤 씨한테 물어봐야겠다. 어떤 가문일까? 장남은 결혼했고 작은아들은 중학생이고 막내딸은 유치원이라니...’젊은 여자는 스물한두 살쯤으로 보였고 남편도 젊을 가능성이 컸다. 하예정은 임신 전 상류층 모임에 자주 참석했지만 어느 집안 자제가 그렇게 일찍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그녀가 아는 젊은 여자들은 대체로 그보다 나이가 많았기에 방금 본 여자가 속한 가문은 아직 명문으로 자리 잡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여자의 차는 근처에 주차된 흰색 BMW7 시리즈였다. 차 앞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가 가까이 다가가자 두 남자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했다. 그녀의 경호원과 운전기사인 듯했다.“출발하죠.”여자는 차에 올라 운전사에게 지시했다. 차가 멀리 떠난 후, 그녀는 가게 쪽을 돌아보았다. 하예정이 더 이상 자신을 보지 못할 거리라고 판단한 순간, 여자는 얼굴을 만지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그 젊은 여자는 바로 여씨 가문의 둘째 딸, 여운별이었다. 그녀는 현재 용태호의 스폰녀로 지내고 있었지만 사교계에서는 용씨 가문 사모님을 사칭하며 활동 중이었다. 이는 용태호가 모든 의심을 피하기 위해 마련한 조치였다.여운별은 용태호가 준 인피가면 덕분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녀의 임무는 하예정에게 접근해 친구가 된 후 용정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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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2화

“사장님께서는 아가씨에게 더 많이 배우고 자신의 능력을 키우라고 하셨습니다. 성격도 고치고 온화하며 품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귀부인의 태도를 갖추라고 하셨죠. 예전처럼 오만하고 거칠게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류층 귀부인들 사이로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경호원의 말에 여운별은 입을 삐죽이며 불만을 드러냈다.“당신들은 그 귀부인들이 오만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사실 그 여자들도 꽤 오만한 점이 있어요. 당신들이 직접 만나보지 못했을 뿐이죠.”“우리 여씨 가문도 명문가라고요. 나는 단지 나이가 어리고 성격이 좀 강해서 그렇지 품위가 없는 건 아니에요. 나도 품위를 지킬 줄 알아요. 예전 내 사교계에도 다 명문가의 딸들과 부잣집 아가씨들뿐이었죠.”비록 여운별의 어머니가 형부와 재혼하며 사교계에서 좋은 평판을 받지 못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가문의 둘째 딸로서 그녀가 관성의 상류층에서 차지한 지위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여운별은 자신이 성소현 같은 이들과는 비교될 수 없더라도, 많은 부잣집 딸들보다 훨씬 낫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그녀는 여전히 자신감이 넘쳤고 자신의 기품과 교양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고, 지금은 스무 살로 한창 꽃다운 시기였다. 조금 오만하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큰 문제냐는 태도를 유지했다.“아가씨, 지금은 관성에 있으니 더 이상 여씨 가문의 부잣집 아가씨 행실을 하면 안 됩니다. 이를 꼭 명심하세요. 만약 사장님께서 지시하신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정체가 드러난다면 매우 끔찍한 결과를 맞게 될 것입니다. 사장님은 성격이 별로 좋지 않으시거든요.”경호원의 경고는 이어졌다.“게다가 사모님의 수완도 뛰어나십니다. 사장님이 직접 나서지 않고 사모님께 아가씨를 넘기시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생길 겁니다. 사모님은 당신이 어느 명문의 딸인지 개의치 않으십니다. 당신의 목숨은 사모님의 한마디에 달려 있죠.”이 말을 들은 여운별의 얼굴이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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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3화

전태윤의 차량 행렬이 지나가자 여운별은 급히 좌석에 몸을 낮추어 바깥에서 그녀를 볼 수 없도록 했다.사실 전태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가능성이 컸지만 여운별은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상대방이 자신을 알아볼까, 자신이 저지른 일이 들통날까 걱정했다.하예정이 그녀를 감옥에 보낸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방심해 하예정의 무술 실력을 몰랐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하예정 뒤에 전태윤이라는 강력한 후원자가 있었기 때문이다.지금은 여운별 역시 용 사장을 등에 업었지만 전태윤의 전용 차량을 보기만 하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숨고 싶어 했다.전태윤의 차량이 지나가자 조수석에 앉아 있던 경호원이 고개를 돌려 의자에 몸을 움츠리고 있는 여운별을 발견했다. 바깥에서 보면 마치 뒷좌석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지금 뭐 하는 겁니까?”경호원이 불만 가득한 어조로 물었다.여운별은 고개를 들어 차창 밖을 몰래 살폈다. 전태윤의 차량이 보이지 않자 그녀는 안도하며 자세를 바로 세우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급히 몸을 숨기느라 옷이 약간 구겨졌는데 모두 명품 옷이라 그녀는 저절로 조심스럽게 다뤘다.“방금 지나간 차들, 누구 차인지 아세요? 그 롤스로이스는 전태윤이 자주 사용하는 차량이에요. 뒤따라온 차량들은 그의 경호팀 차량이고요. 그의 경호팀은 항상 그를 따라다녀요.”여운별은 긴장한 얼굴로 설명했다.전태윤이 경호팀을 대동하는 이유는 과거 그의 열렬한 팬들이 과도하게 따라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결혼 후에도 그는 경호팀을 유지했는데 이는 젊은 여성들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아내의 오해를 사는 일을 막기 위함이었다.특히 과거 도차연 사건은 전태윤과 하예정에게 깊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전태윤과 도 대표가 사업을 논의하면서 도차연에게 접근할 기회를 줬고 하예정의 자리를 넘보고 있던 도차연은 전태윤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남자를 찾아 애정 행각이 담긴 사진을 찍어 하예정에게 보냈다.경호원은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가씨, 자신의 얼굴을 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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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4화

용태호는 여운별에게 약속했다.만약 예씨 가문 사모님의 양자가 자신들이 찾고 있는 사람임이 확인되어 그 아이를 데려오게 되면 여씨 가문의 모든 재산을 여운별에게 넘기겠다고 했다.뿐만 아니라 전씨 가문의 큰 며느리도 여운별에게 맡기겠으니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그러나 용태호는 자신이 뱉은 약속을 지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이 끝난 후 여운별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지만 그녀는 용태호가 자신을 위해 전씨 가문과 소씨 가문을 적으로 돌릴 것이라고 허황한 꿈을 꾸고 있었다.경호원들 또한 용태호의 진짜 속내를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여운별을 감시하고 돕는 역할만 맡고 있었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그녀가 꿈을 꿀 수 있도록 놔두는 것이 그들한테는 최선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여운별은 용 사장을 위해 일할 동기를 잃을 게 뻔했다.여운별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알겠어요. 하지만 왜 저한테 이렇게 냉정하고 무정하게 대하는 거죠? 사람들 앞에서는 저를 ‘사모님’이라고 불러야 할 거 아니에요.”경호원들은 사람들 앞에서는 그녀에게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마치 관리인처럼 그녀를 철저히 통제했다. 그들은 싸움에도 능했고 여운별은 그들과의 대결에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한 번은 그녀가 용태호에게 그들에 대해 고자질했지만 용태호는 그녀에게 경호원들을 화나게 하지 말라고만 조언했다.“그들은 무식하고 자비를 모르는 자들이야. 손에 피를 묻혀본 경험도 많지.”이 말에 겁이 난 여운별은 다시는 그들을 건드리지 않았다.경호원 중 한 명이 냉정하게 말했다.“오늘 당신은 새로운 얼굴로 하예정 씨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제 여운별의 신분으로 돌아가 언니를 다시 한번 도발하세요. 그들이 여운별의 소식을 놓치면 곧바로 사장님의 부인 신분을 의심할 겁니다.”여운별이 실종된 상태에서 낯선 용씨 가문의 사모님이 갑작스레 나타난다면 두 사람을 연결 지으려는 의심이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여운별은 경호원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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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5화

“그놈이 후회할 날이 올 거야! 분명 내가 친누나인데 이복누나인 여운초를 믿다니!”여운별은 속으로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한편, 하예정은 방금 서점에서 책을 구매한 젊은 주부가 정교한 인피 가면을 쓴 여운별이라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사실 하예정은 여운별과 개인적으로 잘 알지도 못했다. 변장한 여운별의 체형이 어딘가 낯익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끝내 떠올리지 못했다. 하예정의 친한 지인 범위에는 여운별이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익숙하고도 차분한 발소리가 들리자 하예정은 서점 밖으로 나갔다.“태윤 씨!”하예정은 환한 미소를 띠며 남편을 향해 걸어갔다. 전태윤은 눈웃음을 지으며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여보, 보고 싶었어.”그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나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하예정이 작게 말했다.“다들 보고 있잖아요. 매일 보는데 뭐가 그렇게 보고 싶다고 그래요.”전태윤과 함께 온 경호원 한 명이 봉투 두 개를 들고 서 있었다. 봉투 안에는 포장된 음식이 들어 있었고 그는 그것을 서점 입구에 있는 직원에게 건넸다.전태윤이 직접 아내를 데리러 왔기 때문에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서점에 남아 가게를 봐주기로 했고 음식을 준비한 것도 직원들이 서점에서 식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전태윤은 아내의 손을 잡고 차로 향하며 물었다.“피곤하지 않아?”“안 피곤해요. 저 그렇게 약하고 여리지 않아요.”하예정은 어려운 시절을 겪었던 사람답게 단호히 말했다.전태윤은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웃었다.“그럼, 우리 아내가 얼마나 강하고 대단한데.”“말만 번지르르하네요.”전태윤은 그녀를 차에 태웠다. 하예정이 올라타자 그도 따라 탔고 문을 닫은 뒤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그는 아내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장난스레 말했다.“그럼 벌로 뽀뽀 한 번 해줘야겠네.”하예정이 그를 살짝 밀어내며 작게 말했다.“사람들이 웃어요.”“아참. 방금 당신 오기 10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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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6화

전태윤은 큰 손으로 그녀의 손등을 덮으며 말했다.“얼굴만 비추고 대략 30분 정도 머물렀다가 바로 자리를 뜨자. 당신은 술 마시지 말고 그 여자들과도 멀리 떨어져 있어. 가장 좋은 건 내 옆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는 거야.”“그럼 태윤 씨 말대로 30분만 머물러요. 하지만 당신 옆에 딱 붙어 있을 필요는 없어요. 내가 있는 곳엔 사람들이 알아서 몇 미터씩 떨어지니까요.”모두가 그녀가 전태윤이 애지중지하는 아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겨우 임신에 성공한 그녀의 아이는 매우 귀한 존재였다. 그래서 누구도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녀가 실수로 넘어지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들이 연루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하예정은 이 상황이 과도하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관성 상류층 사람들은 그녀와 거리를 유지하며 아기를 낳고 나서야 모임에 나오라고 권했다.전태윤이 그녀를 달래듯 말했다.“그 사람들이 현명한 거야. 거리를 유지하는 게 나아. 그들 중 많은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데 간접흡연을 많이 하면 좋을 게 없잖아.”하예정이 임신한 후, 전태윤은 그녀를 사교 모임에 데려가지 않았다. 간접흡연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서였다.“그럼 그냥 안 갈게요. 아기를 낳고 나서 당신이랑 모임에 나가죠 뭐. 사실 그 여자가 누군지 저랑은 아무 관계도 없잖아요. 낯익다고 느끼긴 했지만 어디서 봤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만난 적이 있어도 제대로 알지 못해서 누군지 떠오르지 않는 거겠죠.”전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직도 서로 모르는 걸 보면 전에도 잘 안 맞았을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친구가 되었겠지.”하예정은 많은 귀부인들과 잘 맞지 않았고 그들과는 가볍게 인사만 나누는 정도였다. 그녀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아예 관심도 없었고 그들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다.사실 전태윤도 아내가 사교 모임에 가지 않는 것을 더 바랐다. 만약 그녀가 참석하면 그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며 시간을 보낼 동안 옆에서 지켜야 했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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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7화

전태윤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같이 가줄까?”“아니요, 혼자 갈게요. 당신 일이 더 중요해요.”하예정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전태윤도 굳이 그녀를 따라가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녀가 성씨 가문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안심했다.호텔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하예정은 뜻밖에도 다시 여운별과 마주쳤다.여운별은 원래 별장으로 돌아가 식사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인피 가면을 벗고 집에 돌아가 원래 신분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가는 도중 그녀는 마음을 바꿔 경호원들에게 관성 호텔로 데려다 달라고 요청했다.전태윤 부부가 자주 드나드는 호텔에서 한 번 담력을 키워보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혹시라도 그 다정한 부부와 마주치더라도 자신이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으면 자신감과 담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운별은 생각했다.두 명의 경호원들은 별다른 말 없이 그녀의 요청에 응했다.그리하여 전태윤 부부가 관성 호텔에 도착했을 때 하예정은 또다시 변장한 여운별을 마주하게 되었다.“태윤 씨, 바로 저 젊은 여자분이에요. 저분이 서점에 왔었어요. 아무리 봐도 정말 낯익어요. 당신도 아는 사람인지 한번 봐줄래요?”하예정은 전태윤의 팔을 툭 건드리며 말했다.전태윤은 여운별 쪽을 흘낏 보고는 바로 시선을 돌렸다.“잘 모르겠어. 젊은 여자든 유부녀든 나는 아는 사람이 없어.”그는 담담하게 말했다.전태윤은 젊은 사모님들조차도 항상 멀리하며 거리를 유지했다. 남의 남편들과 비교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하예정은 무언가 말하려다 남편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여운별은 이미 호텔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하예정과 전태윤을 보지 못했다. 게다가 부부는 VIP 통로를 통해 이동했으므로 여운별이 그들을 볼 기회는 더욱 없었다.식사 후, 부부는 호텔에서 휴식을 취했다. 오후 2시가 되자 전태윤은 경호원을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하예정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고 그는 아내를 깨우고 싶지 않아 두 명의 경호원을 남겨두었다. 그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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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8화

여운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두 시간 후.자신의 원래 신분으로 돌아간 여운별은 헉헉대며 계단을 올라 겨우 그녀의 집 문 앞에 도착했다.열쇠를 꺼내 문을 열려고 했지만, 문이 저절로 열렸다. 아니, 정확히는 안쪽에서 누군가가 문을 연 것이었다.여운별의 첫 반응은 도둑이 들었다는 생각이었다.‘젠장, 나 같은 가난뱅이 집에 도둑이 들다니.’그러나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이 그녀의 큰고모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그녀는 소리쳤다.“큰고모, 어떻게 제 집 열쇠를 가지고 계셨어요?”여운별은 자신이 고모들에게 집 열쇠를 준 적이 없다고 기억했다.여미란은 놀란 얼굴로 돌아보며 말했다.“운별아, 깜짝 놀랐잖니. 소리도 안 내고. 네가 집을 새로 빌렸을 때 나한테 청소 좀 해달라고 열쇠를 준 적 있잖아. 그때 돌려주는 걸 깜빡했단다.”여미란이 말을 이어갔다.“그런데 너 요즘 어디 갔었니? 며칠 동안 집에 안 들어오더라. 우리 집은 사람도 많고 비좁아서 여기에 와서 지내려 했어. 안 그랬으면 네가 집에 없었다는 걸 몰랐을 거야.”그녀는 태연히 문을 열어 여운별을 집 안으로 들이며 마치 자신이 집주인인 것처럼 행동했다.여운별은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온 집안을 훑어보고는 얼굴을 찡그렸다.집안 곳곳에 종이 상자, 빈 병, 고철이 쌓여 있었다. 불쾌한 표정으로 여운별이 말했다.“큰고모, 이게 다 뭐예요? 왜 제 집에 이런 쓰레기를 쌓아두신 거죠? 이거 당장 치우세요! 제가 며칠 집에 없었다고 해서 이 집이 고모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여긴 제가 월세를 내고 있는 제 집이에요.”여미란은 여운별의 불만을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히 말했다.“운별아, 그렇게 흥분할 필요는 없단다. 네 부모님이 재산을 전부 천우한테 넘긴다고 하니 네가 다시 네 몫을 찾기는 힘들 것 같고, 너도 힘들게 사는데 큰고모를 무슨 수로 도와주겠니? 그런데 나도 먹고 살아야 하잖니.”여미란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우리 집은 식구도 많고 먹고 마시는 데 돈이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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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9화

여미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들과 싸우는 건 괜찮지만 극단적인 일을 저지르지는 말아야 해. 네가 또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 나왔을 때는 여씨 가문의 재산이 전부 그 애들 손에 넘어갈 거야. 그땐 네가 아무리 싸워도 소용없어.”여운초는 친척들에게 호감이 없었고 고모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반면 여천우는 고모들이 가장 아끼는 조카였다.여천우만이 친정을 지탱할 사람으로 여겨졌으며 친정이 강해질수록 고모들은 시댁에서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하지만 여천우는 여운초와 한마음이었다.현재 최씨 가문과 김씨 가문은 몰락해 가진 돈이 없었다.두 집안은 여운별이 여운초와 싸워 재산의 일부를 가져오기를 기대하고 있었고 그녀를 통해 집안을 다시 일으키려 했다.여운별은 나이가 어려 패기가 넘쳤고 부모의 지나친 사랑 속에서 세상 물정을 몰랐다.그녀는 속이기 쉬운 사람이었다.그러나 한편으로 여미란은 여운별이 또 충동적으로 극단적인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두려워했다.그녀가 감옥에 다시 들어가면 두 집안이 다시 일어설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큰고모, 이 쓰레기들 빨리 치워요. 너무 냄새나요.”여운별이 쓰레기를 가리키며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알았어, 알았어. 지금 바로 전화해서 수거하러 오라고 할게.”여미란은 서둘러 휴대전화를 꺼내 폐품 수거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녀는 종이 상자와 빈 병을 늘 같은 사람에게 팔았기에 연락처를 저장해 두고 있었다.전화를 끊은 후, 여미란이 웃으며 물었다.“운별아, 네 손에 여유가 좀 있니? 큰고모는 아직 월급을 못 받아서 식구들 반찬 살 돈도 없네. 혹시 좀 도와줄 수 있어?”여운별은 대꾸했다.“여천우 그 녀석이 한 달에 겨우 100만 원만 주겠다고 했어요. 부모님은 200만 원을 주라고 했는데도요. 저도 돈이 부족해서 큰고모를 도울 수 없어요.”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결국 지갑을 열어 현금을 꺼내 큰고모에게 건넸다.“지금은 이것밖에 없어요. 부족하면 알아서 해결하세요. 저도 아직 일을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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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0화

여운별의 두 눈이 반짝였다.새로운 얼굴과 신분으로 하예정에게 접근하려는 동안 항상 불안했고 정체가 드러날까 걱정스러웠다.다시 자신의 신분으로 돌아가 여운초를 찾아가 소란을 피우며 일부러 모습을 드러낼 생각에 웃음이 지어졌다.그래야 사람들이 그녀가 여전히 관성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얼굴을 바꾸지 않았다는 사실도 드러날 테니까.“큰고모, 그 방법 괜찮네요. 지금 바로 서원 리조트에 가서 사돈어른들한테 생활비 좀 받아 와야겠어요.”여미란은 그녀를 재촉하며 말했다.“그럼 빨리 갔다 와라. 돈을 많이 받아와서 나랑 네 작은고모도 좀 도와줘. 우린 지금 정말 가난해 죽을 지경이야. 그리고 사돈어른께 일자리 하나 마련해달라고도 해봐. 사돈어른이 너한테 일자리 하나 만들어 주는 건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하지만 여운별은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단지 손을 벌리면 누군가가 다 해주고 돈이 넘쳐나는 생활을 하고 싶었다.용 사장은 그녀에게 몇억의 용돈을 보내줬지만 그녀는 명품을 사는 핑계로 경호원을 통해 더 많은 돈을 요구했다.용 사장은 돈이 많았고,보통 그녀의 요구를 들어줬다.여운별은 용 사장의 진짜 정체를 몰랐지만 그가 돈을 잘 쓰고 용씨 가문이 매우 부유하다는 이야기를 경호원들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그녀는 이미 그의 첩이었기에 오로지 돈에만 집중하고 있었다.여운별의 표정을 보고 여미란은 그녀가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러자 한마디 거들었다.“네가 일을 하고 싶지 않다면 사돈어른께 네 사촌 형제들을 전씨 가문 자회사에 넣어달라고 해봐. 사촌들이 좋은 직장을 얻고 안정된 수입을 가지면 너를 도울 수 있을 거 아니니.”여운별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큰고모,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사돈어른이 그렇게 쉽게 설득될 것 같나요? 저한테 돈을 조금이라도 주면 다행이죠.”“사촌들 일자리까지 마련해 달라니, 물론 그분은 말 한마디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겠죠. 하지만 그분이 우리 말을 들어줄 가능성은 없어요.”비록 여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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