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아주머니는 한지음의 말을 듣고 얼굴의 웃음기를 전부 다 거두었다.그리고 한지음을 보며 얼굴색이 어두워졌다.“그 사람은 지금 주인님 곁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주인님이 아주 잘 대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만날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네?”“...”‘아주 잘 대해준다고? 허허!’이 말을 들은 한지음은 입가에 비웃음의 미소를 지었다.한지음이 입을 떼기도 전에 유 아주머니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아가씨가 말을 잘 듣기만 하면 그 사람도 아주 잘 지낼 거라고 주인님이 말씀하셨습니다.”유 아주머니는 ‘말을 잘 들기만 하면’이 네 단어에 중점을 두면서 말했다. 이건 분명 주인님이 한지음에게 주는 경고였다.원래 안색이 안 좋던 한지음의 얼굴색은 지금 더욱 하얘졌다.한지음은 목이 멘 소리로 입을 열었다.“저에게 기한 좀 줄 수 있어요?”그래, 기한! 한지음은 기한이 필요했다.이렇게 끝이 안 보이는 삶은 너무 힘들었다. 아무리 암흑 속에 있더라도 한지음은 지금 이런 처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암흑 속에서 한지음은 유 아주머니의 기운이 변한 것을 느꼈다.예전과 같이, 유 아주머니는 한지음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그저 한지음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는 옷을 갈아입혔다.“뭐 하는 거예요?”매번 유 아주머니가 옷을 갈아주려고 할 때면 한지음은 무의식적으로 반항했다.왜냐하면 매번 옷을 갈아입은 후면 외출을 해야 했다.“이유영 아가씨랑 저녁 식사하러 가셔야 합니다.”“...”‘뭐라고!?’한지음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유 아주머니는 계속해서 말했다.“아무래도 로열 글로벌의 대표님을 만나는 자리인 만큼 너무 초라하게 입어서도 안되지 않습니까?”한지음은 가슴이 벌렁벌렁했다.입고 있는 옷을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끝내는 두 손에 주먹을 꾹 쥐고 참았다.‘도대체 이런 공제 당한 삶은 언제 끝이 나는 거야?’분명한 건, 이유영이 구치소에서 큰 화재를 당한 이후에, 한지음은 이유영에 대한 원한을 이미 내려놓았다.아무리 큰 원한이 있었더라도 이
말이 끝나자, 한지음은 정확히 전화 반대편의 숨소리가 거칠어진 것을 느꼈다.그리고 한지음의 숨소리도 따라서 줄어들었다.‘강이한 뿐만이 아니고 이유영과도 모순이 있지 않고서는...’이 사람은 도대체 왜 강이한과 이유영이 같이 있을 때, 강이한에게만 손을 쓰는 건지 한지음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만약 정말 강이한만 증오하고 미워하는 거면.... 강이한이 감옥에 있던 그 2년 동안에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지 않았나?’“지음아, 너 정말 말을 안 듣네.”전화 반대편 남자의 말투는 극도로 매혹적이었다.그리고 한없는 위험함도 깃들어 있었다.”“...”한지음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전화 속 남자는 아주 사람을 달래는 목소리로 말했다.“들어 가봐. 날 실망하게 하지는 말고.”이건 사람을 달랜다기보다는 압박의 경고에 더 가까웠다.그리고 한지음의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그 사람은 비록 한지음의 물음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한지음에게 더 강렬한 느낌을 주었다.‘이 사람은 강이한과 이유영이랑 절대로 원한이 깊어!”...반산월의 불빛은 아주 어두웠다.저녁 식탁에, 집사는 다가와 한지음의 방문 소식을 이유영에게 전했다. 이 말을 들은 이유영은 숟가락을 들고 있던 손마저 멈칫했다...우지랑 우현도 한지음이 왔다는 것을 듣고 순간 얼굴빛이 어두워졌다.이로써 이유영을 돌보는 아랫사람들은 다 이유영 곁에 오기 전에 이미 한지음이 이유영의 세상에서 어떤 사람인지를 다 소개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아가씨, 그냥 쫓아내셔도 되십니다.”우지는 앞으로 다가와 이유영에게 아주 공손하게 말을 건넸다.이유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우지를 한눈 보았다.특히 아주 경계를 내세운 우지의 모습을 보고 외숙모가 우지한테 당부를 적지 않게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그리고 이유영은 전에 외삼촌이 한 말이 떠올랐다.이유영은 손에 들고 있던 숟가락을 탁- 접시에 내려놓고는 냅킨을 들어 입가를 닦았다.그러고는 냅킨을 내려놓으며 집사에게 말했다.“가서
지금 정말 강이한에게 단 일말의 감정이라도 남았더라면 이유영은 꼭 사람을 불러서 한지음을 집에서 내쫓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유영은 그러지 않았다!그저 한지음이 입고 있는 임부복이 좀 눈에 거슬렸을 뿐이었다. 필경... 두 사람도 전에는 사이가 그렇게 깊고 치열했는데 이제는 정말 과거밖에 안 남은 것 같았다.한지음은 오히려 사양하지 않았다. 하인은 그녀를 부축하여 식탁에 앉힌 후 그녀의 앞에다 몇 개의 음식을 갖다 놓았다. 한지음은 몇 모금 먹어보더니 입가에는 쓴 미소를 지었다.“넌 지금 정말 잘 지내고 있구나!”“...”이유영은 한지음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그저 손에 들고 있던 물컵을 내려놓았다.한지음은 가슴이 따끔거렸다.이유영은 두 눈을 가리고 있어도 한지음의 몸에서 자신과 조금 다른 기운을 느꼈다. 그건 마치 유감, 두려움 그리고... 외로움?예전에 한지음은 정말 히스테리 할 정도로 이유영을 미워했다. 하지만 지금 못 믿을 만큼, 한지음의 몸에서 전혀 이유영에 대한 미움을 느낄 수 없었다.“말해 봐. 무슨 일이야?”이유영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필경 이유영과 한지음 사이에는 서로 이야기 나눌 옛정도 없었다.특히 얼마 전, 사무실에서 두 사람 사이에 그런 불유쾌한 일도 있었으니 더욱 나눌 얘기가 없었다.하지만...예전에 이유영을 만나기만 하면, 한지음은 그저 쉴 새 없이 이유영더러 강이한 곁을 떠나라고 재잘재잘 얘기했었다. 아니면 이유영이 어떤 사람인지 비하하면서 그녀에게 모욕감을 주기도 했다.하지만 오늘 한지음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한지음은 온몸의 기운은 그렇게 무거운데 그저 이유영의 방향을 바라보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유영은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고의로 임부복을 입고 나한테 보여주는 거야?”전에 사무실에서 임신했다고 말한 지 얼마나 됐다고, 지금 배도 안 부어올랐는데 벌써 임부복을 입었다.특히 지금 한지음의 몸에서 뿜어나오는 기운은 전에 사무실에서 유 아주머니가 계실 때랑 완전히 달랐다...사무실에 있을 때
하지만 그 인내는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결국 한지음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을 이었다.“난 사실 이제 널 증오하지 않아..”“...”‘증오!?’그러니까 지금 한지음이 말하기를 처음에 이유영 옆에 나타난 건 확실히 증오 때문이라는 거였다. 그리고 지금 그 증오는 이미 사라졌다고 했다.“증오 안 한다고?”“그래. 난 이제 널 증오하지 않아!”이유영이 믿든 안 믿든 지금 이 시각, 한지음의 말은 다 사실이었다.처음엔 미워했다.한지음이 왜 이유영을 증오했더라? 그건 이유영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증오는 이유영이 그 불 속에 뛰어들었을 때, 이미 사라졌다.그리고 다시 이유영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도 한지음은 그저 이유영의 명줄이 참 길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하지만 지금...이유영의 말투는 더욱 날카롭게 변했다.“여기와 와서 고작 그거 알려주려고 왔어?”“강이한 곁에서 떠나!”“...”‘그래, 화제는 결국은 강이한을 떠나지 못하네.’“너 강이한을 사랑해?”“그래. 사랑해. 날 불쌍하게 생각해서라도 제발 오빠랑 함께 있지 마.”한지음은 아주 기원하듯 말했다.하지만, 이 기원에는 이전의 가련함과 겹쳤다.일이 오늘날 이렇게 된 이상 이유영도 대충 뒷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알았다.오늘 한지음이 여기에서 걸어 나가기만 한다면 강이한은 꼭 이유영을 찾아와 한바탕 그녀를 질의할 것이 분명했다.이유영은 정말 잠시 미쳐서 한지음의 배후에 사람이 있고 누군가가 계략을 짜고 조종했다고 생각했다.“우지.”“네.”“이 사람을 내보내세요.”여기까지 들은 이유영은 도무지 더 들어줄 수가 없었다.당연히 한지음이 강이한의 얘기만 꺼내면 이유영은 아주 결코 듣기 싫어했다.“이유영. 내가 이렇게 빌게.”우지가 한지음을 식탁 의자에서 잡아당기는 순간에도 그녀는 아주 간절한 눈빛으로 이유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이유영은 눈앞에 놓인 물컵을 들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우지는 강제적으로 한지음을 밖으로 데려 나
필경 외삼촌의 말대로 이유영은 지금 로열 글로벌의 대표라는 신분을 갖고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당연히 신중하게 처리해야 했다.그리고 분명한 건 이번 일은 이유영을 노린 것이었다.이유영의 머릿속에는 아까 한지음이 이상했던 점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이런 소식이 터졌다는 건...이유영은 눈을 감고 아파나는 미간을 어루만졌다.안민의 전화를 끊자마자 강이한의 전화가 걸려들어 왔다.이유영은 머리가 엄청나게 아팠지만 그래도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한지음이 반산월에 갔어?”강이한의 차가운 어투 속에는 심문하는 느낌이 진하게 깃들어 있었다.이유영은 입술을 세게 오므리며 눈 밑에는 날카롭고 차가운 기운이 흘렀다.이유영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전화 반대편의 강이한은 다시 입을 열고 말했다.“유영아, 너랑 한지음 사이의 일들은 다 지나갔어? 알지?”“강이한! 너랑 나 사이의 일도 다 지나갔어!”강이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유영은 날카롭게 대꾸했다.‘한지음이랑 있었던 일은 다 지나갔다고? 그게 무슨 뜻이지?’‘설마 강이한은 내가 사람을 보내서 한지음을 여기로 데려온 거로 생각하는 건가?’지금, 이 순간, 마치 바늘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두 사람은 그 누구도 먼저 기를 죽이지 않았다. 반대로 점점 더 세졌다. 한참 지나 이유영은 군말 없이 바로 전화를 끊었다.그녀의 얼굴은 정말 잿빛이 되도록 어두워졌다.가슴은 끊임없이 벌렁거렸다.“아가씨.”우지는 아주 걱정스럽게 이유영을 바라보았다.이유영은 눈을 날카롭게 뜨며 눈 밑에는 쌀쌀한 기운이 스쳐 지났다. 그리고 바로 루이스에게 전화를 걸었다.한 끼의 저녁 식사가 지금까지 한시도 조용할 틈이 없었다.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루이스가 전화를 받자, 이유영은 상대방이 말을 하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당장 가서 한 가지 일 좀 해주세요.”“네! 말씀하세요.”“한지음을 파리에서 꺼지게 해주세요.”이유영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말투로 말했다.생각해
우지의 말을 듣고 나니 이유영 눈 밑의 한기는 사라지고 대신 침착함이 감돌았다.‘설마 이것이 바로 한지음 배후의 사람이 원하던 건가? 배후의 사람...’오늘 저녁에 한지음을 만나고 나니 이유영은 착각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정국진이 전에 말했던 짐작들도 다 들어맞았다. 한지음의 배후에는 사람이 있었다.이런 생각들이 들자, 이유영은 핸드폰을 들어 또다시 루이스에게 전화를 걸었다.루이스는 전화를 아주 빠르게 받았다.“아가씨!”“강이한에게 내 뜻만 보여주면 돼요.”이 말인즉, 진짜로 일을 벌일 필요까지는 없지만 반드시 상대방에게 교훈을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네! 알겠습니다.”...쉽게 잠에 들지 못하는 밤이었다.이튿날 대 아침 정국진은 아침 식사 자리에서 이유영을 보고 깜짝 놀랐다.“난 네가 한동안은 여기 안 올 줄 알았어.”이유영은 정국진을 보며 말했다.“외삼촌이 전에 한지음이 저랑 강이한 곁에 나타난 건 다 의도를 하고 나타난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왜 뜬금없이 이 소리야?”“저도 그렇게 생각해요!”이유영이 말했다.“...”‘유영이도 알아챘다고?'이유영을 바라보는 정국진의 눈 밑에는 심오함이 반짝거렸다. 로열 글로벌에 있는 이 2년 동안 이유영도 정말 많은 경험치를 쌓았다.2년 동안에 이유영이 일을 하면서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는지 아무도 모른다.그리고 매번 사람을 만날 때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합작과 어울리는지를 정확히 알아내야 했다.이유영이 오늘날의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정말 쉽지만은 않았다.그래서 2년 전에는 안 보이던 일들이, 잘 모르겠다던 사실들이 이제는 지금은 조금씩 감이 잡히기도 했다.정국진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정국진의 탄식 소리에 이유영은 더 어안이 벙벙했다.“외삼촌.”“나도 아직은 강이한의 신분을 확인하고 있어. 강이한 배후자의 신분이 확인되면 그때는 한지음의 배후자가 누구인지도 알아낼 수 있어.”“강이한의 신분?”“너 설마
‘정리를 제대로 하라고? 나랑 강이한 사이?’하지만 분명한 건 그들 사이의 이것저것은 다 이미 정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그리고 이유영도... 싶지 않았다.“나도 네가 강이한이랑 다시 엮이는 걸 안 좋아한다는 거 알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중간의 자초지종은 반드시 정리를 잘해야 해.”“그것들이 그렇게 중요한가요?”이점에 대해 이유영은 아주 맘에 안 들었다.정국진이 답했다.“만약 너랑 강이한이 함께 있게 된 게 다 누군가의 계획이었다면?”이 말을 듣자, 이유영은 순간 안색이 확 변했다.‘한지음이 나랑 강이한 사이에 끼어든 것은 아마도 계획이었을 수 있지.’‘하지만 지금 외삼촌이 말한 나랑 강이한이 함께 있게 된 것조차도 계획이라니?’‘그거 어떻게 가능하지?’ “외삼촌...”이유영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만약 외삼촌의 이 추측마저 진짜라면 그럼 이유영과 강이한의 사이가 얼마나 무섭게 엮여있는지 아무도 모른다.정국진은 앞에 놓인 우유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내 추측이 틀렸기를.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봐서는 그래 보이지 않아!”만약 진짜 외삼촌의 추측대로라면 이 전체 일들의 배후자는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한지음의 배후에 사람이 있다는 건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하지만 배후의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는 정말 감이...그 사람의 목적이 도대체 뭐고 상대방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이것들이 바로 정국진이 이유영더러 정리를 하라고 한 이유였다....이유영은 어떻게 백산 별장에서 나왔는지도 모른 채 얼굴색이 정말 말이 아니었다.루이스의 차에 오르려고 했는데 바로 멀지 않은 곳의 차 옆에 강이한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강이한은 진귀하고 얇은 올 블랙 코트를 입고 있었다.이유영은 강이한을 딱 한눈 보았는데 그는 바로 성큼성큼 그녀에게 걸어왔다.이유영이 반을 채 하기도 전에 강이한은 확 그녀를 잡아 자기의 차 쪽으로 걸어갔다.“당신 뭐 하는 짓이야? 이거 놔!”강이한은 솜뭉치를 다루듯이 이유영을 차 안으
이유영은 자기가 어떻게 회사까지 왔는지도 모른다.임소미의 전화를 받고 전화 속에서 흘러나오는 임소미의 말들을 듣자, 이유영의 눈 밑에는 다정함이 가득했다.“외숙모 고마워요.”이유영의 말에는 온통 감격뿐만 아니라 감동도 들어있었다.“얘 봐라.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여기에 있어야 너도 마음이 좀 편하잖아.”“네.”틀린 말이 아니었다.임소미가 퀘벡에 있으니, 이유영도 이쪽에서 그나마 마음을 좀 놓을 수 있었다.외숙모는 아주 세심한 사람이었다....다른 한편 유 아주머니는 조용히 조식을 먹는 한지음을 보며 말했다.“주임님께서 이번의 효과가 아주 마음에 드신다고 하십니다.”“허!”한지음은 콧방귀를 뀌었다.유 아주머니가 말을 하기도 전에 한지음은 계속해서 말했다.“당연히 만족해야죠. 지금 파리에는 온통 다 이유영의 부정적인 기사들인데 로열 글로벌도 이것 때문에 흔들리겠죠?”“...”“그 사람의 목적이 이거였어요?”‘이유영의 뒤에 있는 로열 글로벌이 타깃이었어?’한지음의 말이 끝나자, 식당 안의 분위기는 조금 더 무거워졌다.유 아주머니의 기운도 한지음의 말에 더욱 싸늘해졌다.유 아주머니는 입을 열고 경고했다.“그건 우리가 물어볼 것이 아닙니다.”“그래서 나 도대체 언제 그 여자를 만날 수 있어요?”여전히 이 문제였다.원래 그 여자 때문에... 한지음은 이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 마땅했다. 하지만 매번 한지음은 성질을 참지 못했다.다른 사람한테 억제당해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자니 한지음은 정말 속이 말이 아니었다.예전에 한지음이 자발적으로 이유영을 상대할 때 주인님은 그녀에게 있어서 든든한 뒷받침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협박을 당하며 자기가 원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으니, 마음은 아무래도 말이 아니었다..유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주인님께서 아가씨더러 그만 물어보시라고 하십니다.”“이럴 거면 다음부터 일 시킬 거면 다른 사람 시키라고 하세요.”드물게 한지음은 태도가 더욱 세졌다.처음이었다. 이것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
이유영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그녀는 임소미의 품에 파고들며 가느다란 팔로 어머니의 허리를 꼭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녀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오래전 소은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강이한은 연애 상대론 괜찮지만 결혼은 다르다고.그때 변호사였던 소은지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맞지 않는 결혼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강이한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소은지는 그녀를 말렸었다. 소은지는 그녀의 결혼을 말렸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결국 소은지의 말은 모두 옳았음이 증명됐다.끝났다고 믿었던 그 관계는 여전히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때, 등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앞으로는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이유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눈가에 가득 차올랐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뺨을 따라 끝없이 흘러내렸다.예전에도 어머니는 그녀를 이렇게 품어주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모두 혼자 견뎌야만 했다.임소미가 감싸안아 주자 이유영의 마음은 다시금 따뜻함으로 물들어갔다.그리고 이 감정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앞으로는 아무도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녀가 말한 '아무도'는 명백히 진영숙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사람에게서 다시 이런 고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엄마가 널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임소미는 그 말을 반복하듯 속삭였다.오늘 밤, 임소미의 마음속에 일어난 파장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다.진영숙이 막말을 퍼붓고 손까지 쓰는 모습을 보며 이유영이 강씨 가문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임소미는 문득 깨달았다.사모님의 우아한 모습은 진영숙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다.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손부터 나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과 살아야
이유영이 돌아오고 그녀는 진영숙과 임소미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명의 도우미가 진영숙을 붙잡아 끌어내고 있었다.임소미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솟구쳤다.임소미는 이유영을 보자마자 재빨리 붙잡고 말했다.“너 먼저 위로 올라가.”“무슨 일이 있었어?”이유영이 물었다.정씨 가문에 돌아온 지 오래된 만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우아하고 온화한 사람인 만큼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임소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영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유영, 넌 누가 너한테 눈을 기증해 줬는지 모르지? 강이한이 네게 빚을 졌다고 하지만 사실은...”“입 다물어!”진영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소미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고 진영숙은 여전히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이유영을 노려보았고 그 눈빛엔 전례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예전에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도 진영숙은 이유영을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한 번도 따뜻한 시선을 준 적이 없었다.그리고 지금, 용성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증오가 더욱 깊어진 듯했다.“유영아, 너 먼저 위로 올라가.”“엄마.”“올라가!”임소미는 이유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격하게 소리쳤다.임소미가 이런 식으로 이유영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임소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이유영은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말문이 막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 안으로 들어갔다.그 순간, 진영숙은 자신을 붙잡고 있던 도우미들의 손을 뿌리치고 이유영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이유영, 강이한은 너에게 빚진 게 없어. 강이한은 오히려 너 때문에 모든 걸 잃었어. 너야말로 가장 잔인한 사람이야. 네 눈조차..
임소미는 혈압이 치솟았고 화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내 말이 틀렸나요?”“틀렸냐고? 제대로 된 일을 한 적은 있고? 당신만 제대로 된 선택을 했더라면 유영이와 강이한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임소미는 참았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격렬히 외쳤다.진영숙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임소미의 말이 맞았다. 진영숙은 두 사람 관계에서 많은 잘못을 했다.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강이한은 사라졌고 강서희도 여전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건 오직 월이 뿐이었다.오늘 이곳에 와서 월이를 보게 된 순간, 월이를 자신의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자리 잡았다.“사람 불러!”임소미가 크게 외치자 집사들과 도우미들이 급히 달려왔다.“이 여자를 당장 내쫓아!”“당신이 감히 그럴 수 있을까?”“뭐라고?”임소미는 잠시 귀를 의심했다.‘이 여자는 지금 도대체 뭐 하려는 걸까?’조금 전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아이에게 조금의 정이라도 남아 있는 줄 알았다.하지만 모든 것은 착각에 불과했다.결국 그녀는 후회라는 감정을 모르는 인간이었다.진영숙이 오늘 여기 온 것도, 월이에게 다정하게 굴었던 것도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한 마지막 발악이었다.그녀의 말은 그저 그럴싸한 포장일 뿐 사실은 월이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리고 뻔뻔하게도 무례하기까지 했다.진영숙은 임소미의 눈을 응시했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따뜻함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매서운 날카로움뿐이었다.그녀는 침착하게 말했다.“우리 아들이 왜 서주를 떠났는지 내가 정말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임소미, 당신들은 정말 단 한치의 양심 가책도 못 느꼈어?”왜 강이한이 서주를 떠났는지 시간대와 상황을 조합해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추측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특히 떠나기 전, 시윤이 건넨 말이 결정적이었다. 이유영이 용성시에서 수술을 받았던 그 시기에 강이한은 서주에
강이한은 그렇게 어둠 속에서 절망의 고통을 몸소 겪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수술을 받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한때 이유영이 어둠 속에서 얼마나 무섭고 무력했는지를 그는 이제서야 조금씩 체감하고 있었다....파리에서 진영숙은 다시 백산 별장을 찾았다. 여전히 강이한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시윤은 강이한이 이정과 신시욱을 데리고 떠났다고 말했다.그 두 사람의 능력을 생각하면 강이한이 스스로 나타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진영숙은 어머니로서 절망에 가까운 마음으로 그를 수소문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그리고 알면 알수록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정말이지, 당신은...”백산 별정까지 찾아온 진영숙의 뻔뻔함에 임소미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응수했다.진영숙은 한때 유능한 여성이었고 그런 그녀에게 감히 저런 얼굴을 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녀에겐 익숙하지 않은 대우였다.“저는 아무것도 없어요. 저 좀 봐주세요.”그녀의 목소리에는 전에는 없던 고통이 서려 있었다.그렇다. 지금의 진영숙에겐 주변에 기댈 친척도 함께할 가족도 없었다. 그녀의 앞에 있는 건 손녀인 월이 뿐이었다.오늘도 그녀는 월이를 위해 여러 장난감을 준비해 왔지만 임소미는 그 모든 행동이 불쾌하게만 느껴졌다.“당신도 어머니였잖아요. 제 마음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잖아요.”임소미는 차가운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봐준다고? 당신이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이유영이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 진영숙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심지어 뱃속의 아이조차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이토록 헌신적인 할머니 행세를 하니 임소미는 화가 났다.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극으로밖에 안 보였다.진영숙의 눈엔 고통이 어렸다.“저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어요.”임소미의 말에 그녀는 도무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무리 자존심 강한 진영숙이라 해도 진실을 알게 된 지금, 과거
그녀는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강이한을 떠난 뒤 어둠 속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었다.신시욱과 이정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침묵에 잠겼다. 그 질문은 그들 사이에서도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이 그때 얼마나 오랜 시간을 그렇게 보냈는지, 사실 그들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또렷하게 남아 있는 건 그녀가 깊은 괴로움 속에 잠겨 있었다는 사실뿐이었다.그리고 그녀가 괴로워할수록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의 고독이 얼마나 잔혹한 감정인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그녀는 깊은 절망 속에 빠져 있었다.그리고 지금의 강이한은 어쩌면 그때의 이유영보다 더한 심연 속에서 절망을 겪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벌하고 있었다. 그녀가 겪었던 고통을 똑같이 겪기 위해 같은 어둠 속에 몸을 던졌다.“선생님. 각막 이식 수술 관련 소식이 들어왔습니다.”신시욱은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천시에 머무는 동안, 신시욱과 이정은 한 번도 수술 신청을 멈춘 적이 없었다.그들은 강이한을 잘 알고 있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이유영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그도 절대 강행하지 않았다.이유영이 시력을 잃었을 때, 그녀는 가족들이 몰래 준비했던 이식 수술조차 그녀는 단호히 거절했었다.그리고 지금의 강이한도 마찬가지였다.오랫동안 기다려 온 기회 앞에서 강이한은 조용히 거절했다.“필요 없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두 사람은 말문이 막혔다.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두 사람은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필요 없다고? 그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선생님.”신시욱의 목소리는 긴장감에 더욱 떨려왔다.그 어떤 강인한 남자라고 해도 이 순간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떨림을 억누를 수 없었을 것이다.최근 며칠간 그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두 사람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강이한은 자신을 벌하며 살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정말 이미 충분했다.‘받아야 할 벌은 다 받았는데 왜 여전히 자신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어둠 속에서 지낸 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어둠 속에서 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새들의 지저귐이 더 또렷하게 들리고 사소한 바람 소리 하나에도 감각이 예민해졌다.강이한은 우천시에 있는 주택 마당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우천시에 오늘같이 이렇게 따스한 햇살이 비추던 때가 언제였던가?이정이 조심스레 다가와 담요를 덮어주며 말했다.“햇살은 있어도 아직은 쌀쌀하네요.”말은 없었지만 강이한은 이정의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로 그가 신시욱이 아님을 알아차렸다.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그때의 이유영도 지금처럼 감각이 예민했을까?“이정.”“네.”“유영이는 이 마당이 어떤 모습인지 전혀 보지 못했겠지?”“네.” 이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이유영은 이곳에서 몇 개월을 머물렀지만 실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이 마당은 끝내 그녀에게 낯선 곳으로 남게 되었다.지금 그녀를 우천시로 다시 데려온다 한들 스스로 길을 찾아올 수도 없을 것이다.강이한은 낮게 중얼거렸다.“하지만 유영이는 이 마당에 뭐가 있는지는 알고 있었어.”그렇다. 보지 못했어도 그녀는 감각으로 모든 것을 구분했다. 마치 지금의 강이한처럼.이정이 조심스레 물었다.“이럴 가치가 있었습니까?”그가 이곳에 온 이후, 누군가가 처음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그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가치가 있었는지는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야.”그것은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그리고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유영에게 진 빚은 결코 눈 한 쌍으로는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이건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다.예전에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던 이유영의 손짓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졌다. 지금 자신이 어둠 속에서 겪고 있는 공포는 당시 그녀가 느낀 감정에 닿을 수조차 없었다.점심 식사 시간.“쨍그랑.”강이한이 손을 뻗는 순간, 접시와 그릇이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공기는 순간 얼어붙었다
이유영은 자신의 몸에 강이한과 관련된 어떤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남은 인생에서도 강이한과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얽히는 일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월이의 일로 인해 그녀는 너무도 깊은 상처를 입었고 강이한을 평생 용서할 수 없었다.그런 사람의 눈을 자신이 기증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그리고 강이한 역시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수술 전에 모든 철수 준비를 마친 것이고 이유영에게는 아무것도 알리지 말라고 지시했다.이미 많은 상처를 준 이후, 아무리 많은 것을 베푼다 해도 이유영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자신과 이유영 사이에는 어떠한 선택지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과감하게 그녀의 손을 놓은 것이다.‘이렇게 되면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 빚진 것이 없게 되는 걸까?’하지만 단순히 눈을 기증했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유영아, 왜 강이한에 관해 묻는 거야? 혹시...”소은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결국 그녀는 언제나 이유영 편이었다.특히 수술 전, 마지막으로 강이한을 마주했을 때 그가 남긴 말을 들은 후로 그녀조차도 강이한을 용서할 수 없다고 느꼈다.“나랑 장난해?”소은지의 말에 이유영의 표정은 단숨에 싸늘해졌다.그 차가운 기색을 확인한 소은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래, 그렇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소은지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나는 그냥 권력에 그토록 집착했던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서주를 내려놓았는지 궁금했을 뿐이야.”“음모일지도 모르지.”소은지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화제를 서둘러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 했다.“...”‘음모’라는 단어에 이유영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소은지는 그녀의 웃음을 보고 또 한 번 안도했다.“ 월이 보러 왔을 때,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뭐라고 했는데?”“일어날 일은 언제든지 다시
강이한은 서주에서의 모든 일을 철수하고 사라졌다. 그와 함께하던 사람들도 함께 자취를 감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그저 강이한의 또 다른 속임수일 거라고 생각했다.강이한과 박연준, 두 사람은 누군가를 철저하게 속이는 데에 능숙한 사람들이었다.박연준은 진짜로 서주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고 진영숙은 파리에서 집요하게 강이한의 행방을 묻고 다녔다. 그걸 보며 이유영은 강이한이 정말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무슨 생각해?”반산월에서 소은지는 이유영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 조심스레 물었다.이유영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은지야.”“응?”“어떻게 된 거라고 생각해?”서주의 현 상황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이유영은 점점 확신에 가까워졌다.강이한은 정말 그의 사람들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그는 마치 세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듯했다.권력을 중시하던 인물이었기에 은둔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강이한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조용히 지낼 성격이 아니었다.“뭐라고?”소은지는 이유영의 갑작스러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 되물었다.이유영은 소은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강이한이... 정말 사라졌어.”“그래. 그 얘기 예전에도 했었잖아.”이유영이 이제서야 이 사실을 믿게 되었다는 것을 소은지는 알아챌 수 있었다.예전엔 믿지 않았던 이유영의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는 강이한의 실종을 인정하고 있었다.강이한과 박연준은 이유영의 마음속에서 그리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연서의 사건이 터진 이후, 그녀는 두 사람을 음모로 가득 찬 사람들로 생각했고 그래서 처음 강이한이 사라졌다고 했을 때도 이유영은 그것을 단순한 음모의 연장이라 여겼다.두 사람은 늘 서로 무관한 척 행동했지만 그 뒤에는 누구도 상상 못 할 거대한 연관성이 있었던 것이다.신지수는 여러 번 전화를 걸어왔다.강이한이 서주를 떠난 후, 신씨 가문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보았고 그녀는 그 일을 처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