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영은 크리스탈 가든이 위치한 건물에 도착했다. 건물은 겉모습부터 예술적인 분위기를 가득 풍기고 있었다.크리스탈 가든은 보석을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매우 명성이 높았다. 그런데 이곳이 로얄 글로벌 그룹 소유였다니, 그제야 이유영은 정국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했다.로비로 들어가자, 굉장히 정중한 분위기를 내뿜는 한 여직원이 그녀를 맞이했다."이유영 님, 맞으시죠?""네, 맞아요.""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이유영은 직원을 따라 엘리베이터로 향했다.이곳은 강이한의 회사와 비교해 봤을 때 굉장히 엄격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로비 직원조차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굉장히 절제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전용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서자, 여직원이 말했다."이유영 님, 위에 기다리시는 분이 계십니다.""알겠어요."이유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이때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문이 열렸다. 밖엔 정장을 입은 또 다른 직원이 공손한 태도로 그녀를 맞이해주고 있었다."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이유영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그렇게 영문도 모른채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회의실 문 앞까지 와 있었다.'왜 날 회의실로 안내했지? 난 삼촌 보러 온 건데.'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문이 열려버렸다."들어가시면 됩니다."직원이 회의실 문고리를 잡은 채 말했다.순식간에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로 집중되었다. 이유영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중심에 앉아 있던 정국진을 바라봤다.그러나 정국진은 엄숙한 표정을 유지할 뿐 답할 기색이 없었다. 이것이 그가 평소 일할 때의 모습이었다.“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이유영 대표이사입니다.”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커다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이유영은 이 상황이 너무 혼란스러웠다.대표이사라니!“축하드려요, 대표님!”옆에 있던 직원이 조용히 이 상황을 상기시켰다. 이유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정국진을 바라봤다. 정말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었다.‘어떻게 말 한마디도 없이! 아
강이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별일 없으면, 저 이만 회사로 돌아가 볼게요.”“거기 서!”진영숙이 노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강이한을 불러 세웠다. 자기가 낳은 아들이니, 그녀는 누구보다 강이한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이런 비뚤어진 태도를 보일 땐 항상 이유영과 연관되어 있었다.‘역시 아직 이유영을 잊지 못한 거야!’“경원이한테 날짜 잡으라고 말했어. 이제 슬슬 너희 둘 관계도 정리해야 하지 않겠니?”“….”“경원의 아빠가 이 청하시에서 얼마나 입김이 센지 너도 잘 알잖아! 다시 내년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따내려면 든든한 뒷백이 필요할 거야!”말을 이어갈수록 진영숙의 목소리는 격양되었다.하지만 강이한은 전혀 미동이 없어 보였다.“하! 여전하시네요, 어머니. 그딴 뒷백 필요 없어요!”강이한은 그 말과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 밖을 향해 걸어갔다.이때 뒤에서 진영숙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그래, 난 수단과 방법을 안 가려. 비겁해 보일 수 있겠지만, 이것보다 더 확실한 건 없어! 나랑 너의 할머니가 강씨 가문을 어떻게 지켜왔는데!”“….”강이한은 진영숙과 그의 할머니가 어떤 방식으로 강씨 가문을 지켜왔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하지만 그건 그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강이한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했다. 진영숙도 그의 변화를 눈치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경원이가 얼마나 널 오랫동안 좋아했는지, 너도 잘 알잖아. 널 사랑하지 않는 여자를 기다리는 것보단, 그래도 너만 바라보는 사람이 낫지 않겠니?”사랑하지 않는 여자, 이 말 한마디에 강이한은 큰 충격에 빠졌다.‘이유영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진영숙은 더 말을 이어나가려고 했지만, 강이한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아까보다 몇 배 더 어두워진 얼굴로 병실 밖을 나가버렸다.빠르게 병원을 빠져나온 강이한은 곧바로 회사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탔다.그는 거의 주머니를 뒤지며 담배를 꺼냈다.이때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는 지금 통화할 기분이 아니었지만,
”그게 무슨 말이야?”강이한이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안 믿어지지? 나도 처음엔 헛소문인 줄 알았어. 형도, 크리스탈 가든 알지?”강이한도 당연히 크리스탈 가든을 알고 있었다.청하시 상류사회에서 이 브랜드를 모르면 간첩이었다. 매년 새 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모두 예약이 찰 정도로 유명했다. 게다가 크리스탈 가든 모든 디자이너가 세계적으로 유명했는데, 만만치 않은 뒷배가 있을 것으로 보였다.또한 강이한도 직접 이유영에게 이 브랜드 목걸이를 선물해 준 적이 있었다. “뭔가 잘못 보도된 거 아니야?”“어허, 사람을 뭐로 보고, 사진까지 나왔다니까! 지금 보내줄게!”배준석이 확신이 찬 목소리로 말했다.크리스탈 가든이 어디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이유영이 대표가 되었다고 하니 강이한은 믿기 힘들었다. 이유영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해봤자 최근 청하시에 진행된 두 프로젝트뿐이었다. 겨우 그것만으로 크리스탈 가든의 대표 자리에 오른다고? 박연준과 서재욱이 아무리 힘을 써준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강이한은 사진을 확인하기 위해 통화를 종료하고 카톡으로 들어갔다. 채팅창을 열어보니 이유영이 한 회의장에서 사람들한테 축하받는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뒤에 크리스탈 가든, 새 대표 임명을 축하한다는 현수막이 보였다.그의 눈이 순식간에 날카롭게 번뜩였다.‘하, 참 대단하군!’그런데 이때 또다시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나서원한테서 온 전화였다.“여보세요.”“나야, 알아냈어.”전화 너머 나서원의 목소리가 들렸다.“빨리 말해.”강이한이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크리스탈 가든 대표 자리가 강이한에겐 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이유영이 그 자리에 앉은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사실 처음 이유영이 집을 나갈 때만 해도 그는 대수로이 생각하지 않았다. 이유영이 해봤자 뭘 할 수 있겠는가? 독립도 어려울 거라 여겼었다. 하지만 잠시 그와 떨어져 있는 사이 이유영은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올라가 버렸다. 그녀는
오늘 회의는 이유영의 순발력으로 무사히 마무리되었지만, 이유영은 기뻐할 수 없었다. 그녀는 화난 표정으로 정국진을 노려보았다.“삼촌!”정말 조금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말 한마디도 없이 자신을 이 상황에 던져놓은 정국진이 원망스러웠다. 살짝 언질이라도 줬더라면 준비라도 했을 텐데,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사람들 앞에 서서 얼마나 식은땀이 났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미안해, 나도 방법이 없었어.”“아니, 여기 원래 대표는 어디 가고요?”크리스탈 가든 같이 큰 브랜드에 대표가 없었을 리는 없었다. 정국진이 앞에 놓인 커피를 홀짝거리며 입을 열었다.“혼자 뒷주머니만 열심히 채우길래, 해고했어.”“….”크리스탈 가든같이 큰 브랜드의 대표를 해고했다는 말을 저토록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정국진밖에 없을 것이다. ‘“전 못해요!”이유영이 반사적으로 답했다. 거의 사고를 거치지 않고 본능적으로 나온 거였다. 이토록 큰 지점을 무슨 수로 그녀가 맡겠는가? 하지만 정국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괜찮아, 지현우를 보내줄게.”지현우는 조민정과 맞먹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갖춘 비서였다. 이유영은 조민정이 얼마나 대단한 업무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겪어본 사람이었다.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라도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는 그 능력, 누구나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조민정과 맞먹을 정도로 능력자라니 믿음은 갖지만, 이유영은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저 요즘 정말 바빠요.”이유영이 투덜거리듯 말했다.비록 강이한의 방해로 많은 프로젝트가 어그러졌지만, 이번 동교 프로젝트 등 성공 사례들이 있어 새로운 기업들이 그녀에게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하지만 이것은 그녀의 사정이었고, 정국진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코웃음치며 말했다.“겨우 그거 가지고 되겠니? 조민정 연봉도 안 나오겠다!”“네?”“조민정이 회사 경력이 짧아서 그렇지, 얼마나 뛰어난지 너도 알 거 아니야?”
이유영은 속으로 놀랐다. 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러는 거지? 태양이 서쪽에서 떴나? 정국진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는 강이한이 낯설었다. 어쩌면 이 남자, 좀 변한 걸까? 이유영은 생각했다.“여긴 무슨 일이야?”이유영이 침착하게 강이한에게 물었다.다행히 리셉션 직원들 모두 교육을 잘 받았는지 그들이 있는 쪽으로 대놓고 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가끔 힐끔거리기는 했던지라, 살짝 불편함을 느낀 이유영이 강이한을 향해 고갯짓했다. 웬일인지 강이한은 순순히 그녀의 의사에 따라 함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시작은 이유영이었지만,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강이한이 앞장서고 있었다. 강이한은 자신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눈치챈 이유영, 하지만 방향을 바꾸긴 이미 늦어버린 상황이었다.“무슨 일인데? 나도 차 가져왔으니까 일단 할 말 있으면 빨리 해.”“이유영!”이름 단 한마디였으나, 그 속에 담긴 폭풍우 같은 감정이 느껴졌다. 강이한의 눈은 어느새 불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유영은 자기도 모르게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차 타!”그 말과 함께 강이한은 거칠게 운전석에 올라탔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이유영은 잠시 주변을 살핀 뒤 함께 차에 올랐다. 그리고 곧바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아!”이유영의 비명이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너 미쳤어? 멈춰! 멈추라고!”그녀가 차에 올라타자마자 강이한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그는 마치 레이싱 선수처럼 아주 난폭하게 이리저리 차들을 피하며 화풀이하듯 운전했다. “아악!”전방에 큰 트럭과 부딪히기 일보직전, 강이한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리며 머리를 감쌌다. 이유영은 긴장과 두려움에 심장이 벌렁벌렁 숨쉬기 힘들 정도로 빨리 뛰었다. 다행히 큰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안전벨트만 아니었다면 크게 다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친놈처럼 왜 이러지? 설마 나 죽이려고? 내가 뭐 어쩄다고!’그녀는 도무지 이 상황이 이해되지
”이게 무슨 짓이야!”이유영이 짜증스레 물었다.“날 가지고 노니까 재밌었어?”“….”‘가지고 놀다니?’“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하!”강이한은 차갑게 웃으면서 차에서 내렸다. 그런 뒤, 차 보닛에 기댄 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정적이 흘렀고, 매캐한 담배 연기만이 뿌옇게 둘 사이를 채웠다. 강이한은 폭풍우처럼 휘몰아치고 있는 감정들을 잠재우기 위해 담배를 한 대, 또 한 대 이어서 피웠다. 이유영의 다리가 저려오고 강이한의 발밑에 담배꽁초가 서서히 쌓여갈 때쯤, 그가 입을 열었다.“내가 오냐오냐 봐주니까, 분수를 모르네. 네가 누구 것인지 잊은 거야?”“무슨 소리 하는 거야!”이유영은 강이한의 이런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강이한은 좀 전에 배준석과 나서원한테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정국진이 이유영의 삼촌이라고? 그는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멋대로 둘의 관계를 추측하며 지낸 나날들을 생각하자, 그는 당장이라도 이유영을 목 졸라 죽여버리고 싶었다. “즐거웠어?”강이한이 위험한 미소와 함께 물었다.이유영은 자기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즐거웠냐니?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뭘 잘못 했는데?”“….”그녀의 말을 듣자, 강이한은 겨우 가라앉혔던 분노가 다시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강이한은 이유영이 반응할 새도 없이 빠르게 손목을 낚아채 그녀를 차 보닛 위로 제압해 버렸다. 주변은 고요했고 인기척도 없었다. 지금 강이한이 무슨 짓을 해도 아무도 와서 말려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유영은 대립하고 있던 것도 잊은 채 겁에 질려 버렸다.“너, 너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떨리는 목소리로 이유영이 소리쳤다.이유영의 얼굴에서 공포를 읽은 강이한은 웃음이 나왔다.“왜? 무서워?”“….”“이런 외진 곳에, 뭔 일이 나도 이상할 거 없지.”강이한이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며 말했다.이유영은 이 상황이 너무나도 공포스러웠다. 그녀는 궁지에 몰린 기분으로 끊임없이 속으로
강이한도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걸 이성으론 알고 있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강이한, 이 개새끼!”이유영이 욕하며 힘껏 저항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강이한은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위험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그녀를 몰아붙였다.그리고 한참, 한차례 폭풍우가 지나갔다. 강이한은 고개를 들어 이유영을 바라봤다. 그녀의 입술은 곧 터질 것처럼 빨갛게 부어 있었다. 기다랗고 하얀 강이한의 손가락이 그녀의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이유영은 그의 손가락에 분풀이하듯 꽉 깨물었다.찰칵, 이때 핸드폰 카메라 소리가 울렸다. 이유영은 당황한 표정으로 강이한의 반대편 손을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재빨리 핸드폰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소용없었다.“뭐 하는 거야!”“뭐 하는 거라고 생각해?”“강이한!”이유영이 소리쳤다.“내가 너 때문에 본 손해가 얼마인데, 너도 이 정돈 감수해야지?”이유영과 달리 강이한은 매우 즐거워 보였다.진작에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는 이유영이 이토록 사람을 잘 속이고 교활할 줄은 몰랐다. 한지음도 결국 이유영 때문에 지금 병원 신세를 지고 있지 않은가? 그의 표정을 본 이유영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좀 전에 느꼈던 두려움 따위는 잊은 듯, 분노가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결국 참다못한 그녀가 강이한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채 뺨에 닿기도 전에 손목이 잡히고 말았다. 그는 도리어 이것을 기회로 삼아 그녀를 희롱하듯 손등에 입맞춤했다. 이유영은 뻔뻔한 그의 행동에 치를 떨었다. 그녀는 도무지 오늘 강이한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이때 강이한이 입을 열었다.“왜 진작 해명하지 않았어?”“뭘?”“너와 정국진의 관계!”“….”그 말을 들은 이유영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그제야 상황이 이해되었다.“하, 내가 왜 해명해야 해?”해명이라, 정말 웃기지 않는가? 해명했다고 한들, 뭐가 달라졌을까? 강이한은 그래도 그녀를 의심했을 것이다. 이유영은 몸을 일으키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옷을 정리했다.
”나랑 한지음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야!”강이한은 지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둘의 결혼 생활은 한지음만 문제였던 것이 아니었다. 과거 그녀가 고아라는 이유로 얼마나 강씨 집안에서 무시를 당했던가? 이런 작고 큰 문제들이 모여 결국에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인데, 그는 여전히 자각이 없어 보였다.이유영은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하늘을 바라봤다.“우린 그것 말고도 많은 문제가 있었지.”“….”‘전생을 포함해서!’회귀 전과 후, 그들 사이엔 수많은 걸림돌이 있었다. 이유영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쓰라렸지만,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그녀의 말에 강이한의 동공이 커졌다. 그제야 무수히 많은 순간과 엇갈림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그는 답을 찾기 위해 헤맸다.그러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려던 순간 이유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 화면에 환하게 뜬 삼촌이라는 글자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왜 진작에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가 알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알 수 있었던 사실이었다. 지금 그녀의 핸드폰 화면처럼!“네, 삼촌.”이유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디를 보아도 이성적인 감정이 한 줌도 섞이지 않은, 가족을 대하는 따뜻한 말투였다. “네, 위치 보낼게요.”정국진이 차를 보내겠다고 했는지, 이유영이 답했다. 그리고 나서 둘은 잠시 몇 마디 더 주고받은 후 전화를 끊었다.강이한은 이런 이유영을 그저 옆에서 바라보았다. 통화를 마친 이유영이 담배를 던지며 발로 비벼껐다.“더 할 말 있어?”“뭐?”“없으면 먼저 가. 삼촌이 차 보내주신대.”이렇게 된 마당에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었다. 그녀는 당당히 강이한 앞에서 삼촌이라는 호칭을 썼다.정신없는 하루였지만, 결국 이유영은 평정심을 잡았다. 이때 머뭇거리던 강이한이 입을 열었다.“부탁 하나 해도 돼?”“뭘?”“화풀이는 지음한테 말고, 나한테만 해.”한지음의 이름이 언급되자 이유영은 기분이 급속도로 나빠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