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리가 말을 하며 몸을 돌렸다.“또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기란군을 데리고 병원에 가 보세요. 그럼 먼저 가 볼게요.”“기란군은 제 유일한 아이가 아니에요.”?그녀의 뒤에서 기모진은 이상한 해명을 했고, 이 말은 그가 오후에도 했었던 말이었다.소만리는 걸음을 멈추고, 기모진이 가까워지는 걸 느꼈다.“전 딸이 하나 더 있어요.”“......”소만리의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며, 그녀의 아름다운 눈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오후에 한 말들이 그를 의심하게 만든 건가? 아니면 이 반나절 동안 그가 무엇을 알아낸 것인가? 소만리가 이런 걱정스러운 생각들을 할 때, 기모진의 목소리가 귓가에 스쳤다.“제 전 부인이 낳은 딸이에요.”“......”그의 말을 들은 소만리의 눈이 커지며 가슴이 저려왔다.“그래요?”그녀가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치며 반문했다.“그럼 그 아이는요?”기모진이 소만리의 눈을 바라보며 종잡을 수 없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죽었어요.”“......”“이 냉혈한 아버지의 손에 죽었죠.”“......”소만리는 주체할 수 없이 주먹을 불끈 쥐고는 담담하게 웃었다. “모진 씨는 농담도 잘하네요. 이 세상에 어떤 아버지가 자신의 친자식을 죽일 수 있겠어요.”그녀는 손목시계를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말했다.“전 묵비 씨가 걱정해서 이젠 정말로 가야겠어요.”소만리는 말을 끝내자마자 몸을 황급히 돌렸고, 그녀의 얼굴에 있던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지며 헤아릴 수 없는 아픔이 그녀의 마음속에 찾아왔다.소만리는 입술을 꽉 깨물고 울지 않으려 노력했다.그러나 기모진에 의해 처참히 당한 아이를 떠올리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기모진은 2층에 서 있었고, 소만리가 황급히 나가는 것을 보자 휴대폰을 꺼내 육경에게 전화를 걸었다.“천미랍의 자료를 다시 구체적으로 조사해봐. 기묵비의 3년 동안의 행적도 빠지지 말고 조사하고.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바로 보고해.”육경은 지시를 받자마자 즉시 실
육경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기묵비는 경도에서 쭉 자신의 회사와 사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3년 전에 돌연 회사를 내놓았고 F국으로 갔습니다.”“이 3년 동안, 기묵비는 F국에 주로 머물렀고 거의 그곳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와 천미랍은 비행기 안에서 서로 첫눈에 반했다고 들었는데 말이죠.”F국.기모진은 천미랍 또한 F국 국적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외형상으로는 절대로 순수한 F국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전화를 끊고 기모진은 다시 한번 자세히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았다.천미랍에 관한 자료는 여전히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기묵비의 자료를 보자 그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건을 발견했다.3년 전 그날, 소만리의 차가운 몸은 그의 품에 안겨 숨이 끊겼고, 영원히 그의 세상에서 떠나 버렸다.그러나 똑같은 날에, 기묵비가 경도를 떠나 F국으로 향한 행적이 그의 출입국 자료에 나타나 있었다.그날 소만리는 죽었고, 기묵비는 아무런 조짐도 없이 경도를 떠났다.우연의 일치인 것일까?그는 궁금증을 안고 기란군을 깨워 씻긴 후 유치원으로 향했다.기모진은 차를 몰면서 백미러를 통해 도통 말을 하지 않는 기란군을 쳐다보며 어젯밤에 소만리가 기란군을 병원에 데리고 가라고 한 말을 떠올렸다.“기란군, 어디 불편한 데 있니?”기모진이 물었다.그러자 고개를 숙이며 책가방을 안고 있던 기란군이 까만 눈동자를 굴리며 천천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기모진이 눈살을 찌푸렸다.그가 알던 기란군은 이렇게 답답한 성격이 아니었다. 기란군은 그 당시에 매일 아빠를 부르며 활발하고 천진난만한 아이였는데 말이다.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아이는 아빠를 부르는 일이 없었고, 아이와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기모진은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실은 그는 이에 대한 답변을 이미 알고 있었다.그는 자신이 사실 얼마나 소만리를 좋아하는지 알아차린 그날부터, 많은 사람과 일들이 그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기모진은 기란군을 유치원에 내
기여온이 소만리와 판박이인 눈썹을 들썩이며 그에게 인사했다.그러자 기모진이 허리를 구부리고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염염아 안녕, 나는 기란군의 아빠야.”“염염이는 기억하고 있어요.”아이는 반짝이는 눈동자를 깜빡이며 물었다.“저랑 놀아주려고 오신 거예요?”기모진이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주머니에서 작은 인형을 꺼냈다.“난 란군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려고 왔다가 염염이도 보려고 왔어. 자, 이거 가지렴.””와, 귀여운 토끼다.”염염은 완전히 이 작고 귀여운 인형에 정신이 팔렸다.기모진은 이때를 틈타 염염의 머리에서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냈다.눈앞에 있는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의 마음속은 너무나 큰 기대와 열망으로 가득 찼다.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심정으로 기모진은 어느 검정기관을 찾았고, 그의 관계를 이용해 절차를 빨리 밟을 수 있었다.직원은 그에게 빠르면 8시간 안에 DNA 검사 결과가 나온다고 말해 주었다.DNA 감정 기관을 나선 후, 기모진은 차를 몰고 기묵비의 회사 로비로 향했다.그는 잠시 주저한 뒤, 결국엔 차를 타고 떠났다.만약 기묵비가 정말 소만리를 숨기는 것을 돕고 있다면 그는 기묵비에게 무엇을 물어도 원하는 답변을 받지 못할 것이다.그는 이 8시간이 몹시 견디기 힘들었다.소만리는 회사 이메일을 받자 회사의 2주년 파티 계획을 세우느라 바쁘게 종일을 보낸 뒤, 염염을 데리러 가려고 나오자 기모진의 차가 입구에서 멈춰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어제 기모진과의 대화를 생각하자, 소만리는 몇 초 동안 재빨리 자신의 감정을 추슬렀다.“모진 씨? 또 시간이 남아서 절 찾아오신 건가요?”소만리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고, 기모진이 조금 다른 시선으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을 느끼자 그녀는 침착하게 그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모진 씨, 왜 그렇게 절 보고 있어요?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그러자 기모진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와 종잡을 수 없는 기운을 내뿜으며 대답했다.
휴대폰 너머로 그 말이 들리자, 휴대폰을 쥐고 있던 기모진의 손이 떨려왔다.전화를 끊은 뒤, 그는 재빨리 휴대폰으로 메일에 접속했고, 제일 최근에 온 이메일을 바라보았다.그는 눈동자를 굴리며 손을 휴대폰 액정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누르지 않았다.“빵빵——”뒤차가 재촉하는 경적소리를 내었고, 신호등은 녹색불로 바뀐 지 오래였다.“모진 씨, 괜찮으세요?”소만리가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기모진은 잠금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아무렇게나 놔둔 뒤 대답했다.“괜찮아요.”그가 엑셀을 다시 밟기 시작했고, 그윽한 눈으로 소만리를 한 번 쳐다 보고는 다시 전방을 주시하며 달렸다.소만리는 원래 기란군에 대해 더 알려고 차를 탔지만 그가 전화를 받고 난 뒤부터 차 안의 분위기가 싸해졌다.차가 유치원 대문 앞에 도착하자, 소만리는 염염을 데리고 왔지만 기란군은 보지 못했고, 선생님은 이미 기란군을 누군가 데려갔다고 말했다.기란군을 보지 못하자 소만리는 왠지 모를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소만영이 기란군을 데려가서 아이에게 허튼짓을 하지 않을까 걱정했다.기모진은 한편에 서서 해질녘의 두 모녀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들이 스쳐 지나갔고, 그가 메일을 보지 못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은 결과를 보게 될까 두려워서였다.3년 전에 어떤 생각지 못한 일이 있었대도 그는 납득할 수 있었다. 그는 단지 이 순간, 눈앞에 있는 그녀가 한 때 그가 알던 그녀이기를 바랄 뿐이다......기모진이 소만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중에, 차 한 대가 멈춰 섰다.기묵비는 차에서 내려 소만리의 앞으로 가 자연스럽게 그녀 곁에 있는 염염을 안아 들며 서로 몇 마디를 주고받고는 기모진의 앞으로 와 온화하게 웃어 보였다.“모진아, 미랍이를 데려다줘서 고마워.”그러자 기모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고마워할 거 없어, 그냥 미랍 씨랑 가까워지려고 한 것뿐이니까.”그의 대답은 매우 솔직하면서도 다소 제멋대로였다.기묵비는 다시
고통밖에 없는 사랑을 하고 나니, 만약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녀는 사랑받는 것을 선택하고 싶었다.......기모진은 별장으로 돌아와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있었고, 거기에는 그가 궁금해하는 답이 있었다.그러나 그가 방에 들어서자 소만영이 주방에서 직원의 도움을 받으며 밥을 하고 있었다.이 장면은 기모진으로 하여금 소만리를 떠올리게 했다.그녀는 매일 밤 그를 위해 항상 저녁밥을 차려 주었지만 그는 전혀 무관심했고, 차라리 외박을 하면서라도 나쁜 여자라고 생각했던 그녀를 마주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인기척을 느낀 소만영이 고개를 돌려 기모진을 발견하자, 잽싸게 그의 곁으로 뛰어와 말을 건넸다.“모진아, 돌아왔구나. 군이는 내가 데리고 왔어. 오늘 내가 특별히 와서 저녁밥을 만들고 있었어. 나 처음으로 밥 해보는 거야, 네가 좋아했으면 좋겠다.”그녀가 열정 가득한 눈빛을 하며 기모진을 쳐다보았다.“모진아, 오늘 우리 엄마가 Miss l.ady 1주년 파티 초대장을 받았는데 나랑 같이 가주면 안 돼?”그러자 기모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시간 없어.”“모진아.”소만영의 웃음기가 점차 사라지마 말을 이어갔다.“아직도 날 용서해 줄 마음이 없는 거야? 그 일이 일어난 지가 언젠데, 그리고 나도 만리한테 당한 건데 왜 이런 사소한 일로 나한테 그러는 거야?”“사소한 일?”이 말을 듣자 기모진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목소리가 냉담해졌다.“하루빨리 시간을 내서 너랑 내가 파혼한 걸 발표해야겠어.”“......”소만영은 기모진의 뒤돌아선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황급히 그를 잡아당겼다.“모진아, 제발 그러지 마. 나한테 날 평생 돌봐 주겠다고 약속했잖아!”기모진은 그 해 해변가에서 했던 약속을 떠올리자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만약 그때의 정을 떠올리지 않았다면 그는 벌써 짜증이 났을 것이다.몇 초가 흐른 뒤 그는 냉담하게 입을 열었다.“너를 돌봐주겠지만 다시는 결혼 같은 건 안 해.”“......”소만영의 얼굴이 창백
기모진은 곧 매우 전문적인 분석 데이터를 볼 수 있었고, 대충 훑어보고는 곧바로 맨 마지막 페이지로 넘겼다.결과를 본 그는 1초간 온몸이 굳어졌다.마음속에 있었던 의심과 기대, 그리고 한 줄기 어이없는 희망까지도 모두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감정서에 염염과 그는 친자 관계가 아닌 것으로 명기돼 있었다.하지만 이 둘의 염색체는 같은 점이 있었고, 같은 이유는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염염은 정말로 기묵비의 아이였고, 그래서 그의 DNA와 염염의 DNA가 친척 관계로 나온 것이다.기모진의 손가락 사이로 휴대폰이 떨어졌지만,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해 질 녘의 노을빛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얼굴을 고즈넉하게 비추었고, 한참 후에야 기모진은 입술을 깨물며 나지막이 웃었다.역시, 그저 얼굴만 닮은 거였구나. 그녀는 이미 떠나고 없구나.그는 3년 전 일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했고, 영원히 지울 수도, 빈자리를 채울 수도 없다는 사실에 그는 평생 잠을 이룰 수 없을 것이었다........기모진이 자신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한 소만리는 이틀 뒤에 있을 파티에 전념을 다했다.가장 호화로운 외관을 가진 호텔은 기 씨 그룹 계열의 6성급 호텔이었고, 소만리가 미리 장소 예약을 하고 계약을 위해 출발하려 문을 나서자, 소만영이 문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녀는 정신이 피폐해 보였고, 항상 가냘프고 우울한 얼굴을 하며 공격적인 성격으로 위선적인 면모를 보인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소만리를 발견한 그녀는 재빨리 그녀 앞으로 다가가 말을 건넸다.“천미랍 씨, 시간 좀 내줄 수 있나요,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요.”소만리는 평정심을 유지하며 눈앞에 있는 가식적인 여자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저와 만영 씨 사이에 이야기할 거리가 있나요.”이 말을 하며 떠나려고 하자 소만영이 다시 그녀를 부르며 말했다.“천미랍, 내가 이렇게 빌잖아.”소만영이 그녀를 향해 애원하듯 말했다.“시간 많이 뺏지 않을게요.”소만리가 걸음을 멈추고
소만영은 그녀의 대답을 듣자 얼굴이 굳어지며 여전히 안쓰러운 얼굴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말투를 하며 말했다.“미랍 씨 말은, 굳이 제 약혼자를 꼬시고 정부가 되겠다는 말이죠?”소만리는 여유롭게 말을 받아쳤다.“왜 그쪽 생일날 제가 거울을 선물한 줄 아세요?”“......”소만영의 낯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소만영 씨는 아직도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분간을 못한 것 같네요. 기모진 씨가 몇 년 동안 당신과 결혼을 안 한 사실도 이해가 가고요.”소만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마치고 일어나 가려고 했다.그러자 소만영이 벌떡 일어나 애써 숨겨왔던 친절함을 잃으며 말했다.“천미랍! 내가 네 낯짝을 생각해 줬는데도 넌 주제도 모르는구나.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딱 기다려. 날 건드린 대가가 어떤 건지 톡톡히 알게 해 줄테니까.하지만 소만리는 차분하게 발길을 돌렸고, 소만영의 분개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그럼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려야겠네요. 너무 기대되는 걸요.”그녀는말하며 손에 있던 휴대폰을 더욱 꽉 쥐었다.그렇다. 그녀는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소만영, 어서 와, 난 받아 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소만리가 나가는 것을 보고 소만영은 옆에 있는 별실로 들어갔다.“어때? 다 찍었어?”그녀는 화난 말투로 추궁했다.그 사람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대답했다.“다 촬영했습니다.”소만영은 그제야 편안해진 듯 독한 눈을 가늘게 떴다.“흥, 천미랍, 내가 널 제대로 망쳐줄게! 그 당시의 소만리와 같은 비극을 맛보게 될 거야!”소만리는 커피숍에서 나온 뒤 곧바로 호텔로 들어섰고, 뜻밖에도 그녀를 접대하는 사람은 기모진이었다.소만리는 기모진이 그녀를 쳐다보는 눈빛이 이전과 다르게 한결 정상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느꼈고, 그것은 곧 기묵비의 전략이 대충 통했다는 것이었다.소만리는 당연히 소만영이 자신을 찾아온 일을 언급하지 않았고, 그저 일처리만 열심히 해냈다.다 끝나고 기모진이 그녀에게 물었다.“천미랍 씨
기모진의 술에 취한 얼굴에 근심이 보이며 말했다.“그 사람 때문에.”오랜 침묵 끝에 소만리는 그의 대답을 들었다.그녀.그가 줄곧 사랑하는 사람은 그녀, 소만영이었다.소만리는 술잔을 쥔 손가락을 움츠렸다.그녀의 마음속에 있던 증오의 불길이 사그라들었지만, 씁쓸함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다.“리야, 난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 내 신부로 맞이해서 널 영원히 지켜줄게......”그해 소년의 약속이 귓가를 스쳤고, 창밖의 스치는 가을바람처럼 멀리 날아가 버렸다.소만리는 잔을 들고 술을 쭉 들이켰다.그녀의 마음은 바늘에 찔린 듯 쑤셔왔다.그녀는 그 당시의 자신을 안타까워했고, 그렇게 순진하게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며 바보같이 그를 기다린 결과는 냉혹하고 무자비한 괴롭힘이었다.소만리의 눈빛이 싸늘해지며 원한으로 가득 찬 눈으로 앞에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기모진, 나는 네가 단지 우유부단하고 매정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넌 그냥 나에게 마음을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거구나.그해 네가 불렀던 리는 모두 허구일 뿐이었구나.소만영, 그 여자를 사랑한다고?좋아, 내가 마음껏 사랑하도록 해줄게!.......기모진은 자신이 언제 소파에서 잠들었는지도 모른 채 눈이 떠졌고, 소만리도 언제 떠났는지 특실에는 기모진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그는 이마를 짚으며 술에 취하기 전 소만리와 한 대화를 생각했다.그는 곧장 주머니에서 조개껍질을 꺼내 손바닥에 조개껍질을 올려 바라보자 그의 생각이 점점 깊어지며 마치 그 해로 돌아간 것 같았다.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해변으로 휴가를 떠났지만, 그는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그는 또래와 다르게 엄청난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즐거움이라고는 없었다.이때, 그의 앞에 한 여자아이가 나타났고, 그녀가 자신을 ‘리’라고 불렀다.얼마나 간단한지 절대로 까먹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그는 웃을 때 눈썹이 휘어지는 것과 보조개가 깊숙이 들어가며 눈이 유리처럼 맑고 투명한 그 여자아이의 얼굴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