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열심히 변명을 늘어 놓았지만 기모진의 눈빛은 실망과 의심으로 가득 했다."모진아...”"넌 정말 어렸을 때 내가 알던 아리와 완전히 달라졌어." 기모진은 차갑게 웃었다. "내가 어디까지 생각한 줄 알아? 심지어 내가 어렸을 때 만난 그 애가 아닐 거라는 생각까지 했어.”이 말을 들은 소만영은 더욱 당황했다."그럴 리가! 모진아, 내가 바로 네가 알던 그 아리라고!""아리…."기모진은 소만영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팔을 그녀의 손아귀에서 빼냈다."이 일은 내가 알아 볼 테니, 너와는 아무 관련 없어야 할거야."“…….”소만영은 그의 말을 듣고는 당황한 채 제자리에 서서 기모진이 떠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이 일이 그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결코 기모진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이틀 후 소만리는 퇴원 수속을 마치고 곧장 소만영이 있다는 병실로 갔다.그녀가 문 앞에 도착하자 사화정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소만영을 위로하는 소리를 들었다. 사 화정의 말투는 모성애가 가득했다. 소만리는 조용히 듣고 있었지만 마음 한 켠이 쿡쿡 쑤신 듯 아파왔다.저 추악한 악마를 지키고 계시다니….소만리는 갑자기 사화정이 일이 있다고 말하는 소리를 듣자 잠시 비켜섰다. 그녀는 몸을 돌려서는 복도 모퉁이에 서서 사화정이 멀찍이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소만리는 그제서야 천천히 소만영의 병실로 들어갔다.소만영은 사화정이 다시 돌아온 줄 알고 고개를 들자 소만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얼굴이 그 순간 일그러졌다."천미랍!""그래. 나야.” 소만리는 무심코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문 앞으로 다가갔다."왜..? 혼자에요? 전 모진씨가 여기 같이 있을 줄 알고 일부러 찾아왔는데.”“…….”소만영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천미랍씨. 말조심하세요. 당신이 이렇게 모진이의 이름을 부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당신이 방금 한 말은 또
소만리는 보조개가 핀 얼굴로 기모진을 바라보았고, 그녀가 한 말을 들은 소만영은 열이 올라 이마에 있던 핏줄들이 모두 터져버렸다."천미랍. 나와 모진이의 관계를 건드리려고 하지마. 모진이가 너에게 그런 말을 절대 하지 않을 걸.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는 나야. 그런데 어떻게 너와 결혼할 수 있겠어?"소만영은 흥분한 채로 침대에서 내려와 기모진 앞으로 달려간 뒤 눈물을 흘렸다."모진아.. 이 여자가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야. 그렇지?""다 진짜야." 기모진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고, 소만영을 어이없게 만들었다.소만리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모진아.. 이번에 날 구해준 덕분에 어려움을 피할 수 있었어. 정말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 혹시 시간 있어?""시간 있어."소만리를 바라보는 그가 따뜻한 목소리로 속삭였다."이제 완전히 다 나은 거야?""응! 난 괜찮아." 소만리는 빙그레 웃으며 소만영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이번 일로 위험에 처했었지. 정말 만영씨 덕분에 모진이가 저를 정말 많이 아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네요.”소만영의 얼굴빛이 변했다. 기모진이 갑자기 눈썹을 치켜 올리자 그녀는 황급히 울면서 화제를 돌렸다."왜? 왜 다들 이렇게 날 해치려고 하는 거야? 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데? 정말 내가 죽어야만 만족할 거야?"그녀는 울면서 호소하더니 손을 뻗어 소만리를 힘껏 밀어내고 병실 밖으로 뛰어나갔다.소만리가 휘청하는 것을 보고 기모진은 과감하게 팔을 내밀어 허리를 감싸 안았다.소만리가 무심코 기모진의 품에 안기자 그의 몸에서 나는 시원한 향기가 코끝을 맴돌며 그녀의 심장박동과 호흡을 어지럽혔다.그녀는 재빨리 기모진의 품에서 나와 바로 선 후 소만영이 달려간 방향을 바라보았다."쫓아가지 않으세요? 만약 그녀가 지난번처럼 건물에서 뛰어내린다면…….”소만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모진은 낮은 목소리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만약 그녀가 정말 죽고 싶었다면 지난 번에 건
소만리는 기모진의 깊고 가늠하기 어려운 눈동자를 응시하며, 그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낸 후 당당하게 차에서 내렸다.그녀의 등뒤로 기모진의 시선을 느낀 소만리는 거침없이 미소를 지었다.‘기모진.. 이제서야 소만영의 추악한 정체를 보기 시작하다니.그런데 어쩌지.. 안타깝게도 이미 늦어버린 걸.여태껏 내 몸과 마음이 받은 상처들이 아직 다 아물지도 않았어.. 지금의 천미랍을 통해 네 마음속의 죄책감을 달래려고 하지 마. 지금의 난 그저 너를 한 걸음 한 걸음 나락으로 빠뜨려 줄 뿐이니까.’......기모진은 소만리의 뒷모습이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다 보고 나서야 핸들을 돌렸다.그는 또 88송이의 붉은 장미를 사서 묘지로 갔다.소만리의 묘비를 향해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마음 속으로 삼키는 그였다.한참이 지나서 그가 중얼거렸다."기회가 되면 내가 그녀를 데리고 널 만나러 올게 만리야. 넌 아마 깜짝 놀랄 거야. 이 세상에 정말 너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을 테니까.."그는 묘비에 적힌 이름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초가을의 따스한 햇빛이 쏟아졌지만, 그의 마음 속에 드리워진 뿌연 안개를 걷어내진 못했다. 집으로 돌아간 후 기모진은 천미랍이 납치된 사건에 대한 조사가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보고받았다.그 네 명의 양아치들은 모두 빠짐없이 소만영을 이 사건의 주동자로 지목했다.그들은 번갈아 가면서 소만영과 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소만영이 그것을 원했다고 자백했다.기모진은 이 진술을 듣고 다시 한 번 거부감과 메스꺼움을 느꼈다.그녀가 이렇게 당하기를 분명히 원했다고?그는 이 조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도, 믿을 수 조차도 없었다.소만영은 그의 인생에서 그를 설레게 한 첫 번째 여자이자, 10여 년 동안 자신의 마음속에 깊이 품고 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그러나 이제 하나의 진실이 밝혀지면서, 그 모든 일들이 소만영의 악랄한 성격을 드러냈기에 그는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더욱 더 이 사
화장실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와 진지하게 소만영을 옹호했다.기모진의 눈빛에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스쳐 지나갔다.“어머니께서 만영이를 여기에서 지내라고 하셨다구요?""만영이가 여기 와서 사는 게 어때서? 원래 너의 약혼녀지 않느냐? 란군이까지 더해 너희는 이미 한 집안 사람이야. 이왕 한 집안 사람이 된 바에는 같이 사는 거지!"기씨 부인의 말은 확고하여 기모진의 표정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오히려 더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만영이가 이번에 이런 일을 당했으면, 너는 약혼자로서 이 아이를 위로하고 토닥여 줄 책임이 있잖니! 하루 종일 그 여우 같은 년과 히히덕 댈 것이 아니라!"기씨 부인은 소만영의 어깨를 다정하게 톡톡 두드리더니 정색을 하면서 기모진을 바라보았다."모진아. 이 어미는 네가 줄곧 자신의 주관이 또렷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반드시 내 말을 좀 들어야겠다. 당장 그 천미랍과 연락을 끊길 바란다. 그 계집애는 딱 봐도 좋은 애가 아니야. 만영이가 이번에 당한 일은 그년이랑 관계가 없을 수가 없어!""사진은 네가 뗐어?"갑자기 기모진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소만영과 기씨 부인은 동시에 멍해졌다. 기씨 부인은 겁 없이 입을 열었다."내가 떼라고 한 거다. 그 천한 것이 죽은 지 얼마나 되었는데, 아직도 사진을 가지고 뭐 하는 거야? 나는 보기만해도 치가 떨린다! 앞으로 사진을 걸려면 너와 만영이의 웨딩 사진을 걸어라!"기씨 부인은 팔짱을 꼈는데, 온몸으로 냉기가 느껴지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이방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내가 치우라고 했다. 그 천한 년과 관련된 물건들만 골라 다 갖다 버리라고 했으니까 그리 알아라!"말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기모진은 몸을 휙 돌려 옷장 앞으로 다가갔다.그가 옷장 문을 열자 소만리가 생전에 입었던 옷들은 남김 없이 정리되었고 대신에 소만영의 비싼 치마들이 잔뜩 걸려있었다.옷장 손잡이를 잡고 있던 그의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그의 하얀
기모진은 천미랍을 데리고 사월산까지 차를 몰았다.저녁 안개가 짙은 가을 황혼에,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것은 추억의 맛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녹나무는 그 때 그 시절처럼 여전했지만, 사람의 얼굴만 달라졌을 뿐이다.지난 번 기모진이 소만영을 여기에 데려온 것을 목격한 후로 소만리는 이곳을 싫어했다.그녀는 소만영이 기모진에게 했던 말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용을 들어보니 소만영과 기모진이 어렸을 때 만났던 일은, 마치 기모진을 처음 만났던 자신의 경험과 매우 흡사했다. 이것은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소만영이 날 가지고 노는 것일까?그녀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고개를 돌리자, 기모진이 와인 한 병의 마개를 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 때문에 갑자기 기분이 안 좋은 거죠?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기분 전환을 하다니, 여기 뭐 특별한 게 있나요?"소만리는 그에게 다가가 의문스러운 듯 묻기 시작했다."설마 여기.. 소만영씨와의 추억이 깃든 곳인가요?"‘퐁’소만리의 질문이 끝나자 마개가 열렸다.소만리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바라보는 기모진의 섹시한 입가가 꿈틀댔다. 그의 엷은 웃음은 황혼의 주황색 노을에 비쳐 요염하고 매혹적으로 보였다."만약, 당신이 가장 아끼는 것을 버린다면, 기분이 좋을까?""가장 중요한 것이요?"소만리는 기모진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그게 뭔데요?"그녀는 따져 물었지만 기모진은 신비로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신의 차에서 와인 잔 두 개를 꺼내 술을 따르고 한 잔을 소만리의 앞으로 건네 주었다."같이 술 마셔줘."그의 낮은 목소리와 말투는 다소 위압적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오히려 사람을 애매하게 만들었다.소만리는 술잔을 받아 시원하게 마셨다.예전에는 절대 하지 못하던 것들을, 지금의 천미랍은 거의 다 할 줄 알게 되었다.술을 마시는 것은 더욱이 말할 것도 없이….기모진은 소만리를 바라보며 감상에 젖었다. 그녀 뒤의 저녁노을은 매우 아름다
차갑게 웃고 있는 소만리의 눈에는 빈정거림이 가득했다. 기모진.. 아직도 이런 말을 할 수 있다고?그래서 예전의 소만리든 지금의 천미랍이든 모두 소만영에게 모함을 당해도 싸다는 건가?너의 눈에는 소만영이 무엇을 잘못하든 모두 옳은 것으로 보이는 거지? 그런 거지?소만리는 하이볼을 손가락으로 조용히 쥐었고 기모진은 무언가를 중얼대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 서야 그는 밤처럼 깊은 검은 눈을 천천히 들고서는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그녀에게 빚을 졌어요."그는 이와 같은 아리송한 답안을 내놓았다.소만리는 왠지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그녀에게 무엇을 빚졌는데요?"기모진은 소만리의 맑고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눈앞에 펼쳐진 끝없는 바다를 바라보았다."제가 그녀에게 약속했던 것을 해주지 못해서, 그냥 다른 방법으로 보상해주려고 합니다."그의 대답을 듣고 소만리는 나지막이 비웃었다.소만영에 대한 약속을 못 지켜서 보상을 하겠다고?그런데 기모진.. 당신은 나와 한 약속을 지킨 적이 있던가? 나에게 어떤 보상을 해줬지?내가 어렸을 때 당신을 알았던 과거를 이야기했을 때 당신은 나를 완전히 부정하고 그 때의 약속도 부정 했었어."미안해요. 더 이상 못 있을 것 같은데요."소만리는 가볍게 웃으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모든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져야 하죠.""그 날 제가 당신을 구했으니 저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죠. 그럼.. 당신이 이 일을 계속 따져 묻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나에 대한 감사의 표시입니다."기모진은 그렇게 간단명료하게 소만리의 말을 이어받았다. 그녀는 의아한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살짝 취기가 올라있는 조각 같은 얼굴의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천리야.. 모천리..지난 십여 년 동안 어찌해서 뭐가 옳고 그른지 분간도 제대로 못하는 그런 남자를 그리워하고 사랑했니?"그렇다면 제가 도와 드릴게요."소만리는 하이볼
"사실, 나 좋아하지?"그의 매혹적이고 섹시한 목소리가 따스한 숨결과 함께 그녀의 귓가를 스쳤다. "느껴지는데 그게.."그의 말투는 확신에 찬 듯했다. 술기운이 도는 요염한 기모진의 눈에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듯한 자신감이 차 있었다.갑작스럽게 다가온 기모진이 이런 말을 하자 소만리는 내심 당황스러웠다."술에 취하신 것 같네요."소만리는 담담하게 말하며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진짜 취한 거야? 아니면 취한 척하고 있는 거야?"취하니까 진짜 좋은데, 술에 취하면 다시 그녀를 볼 수 있는데… 하핫..”그가 살짝 웃으며 말하자, 마지막에 말한 “그녀”라는 단어는 잘 들리지 않았다.저녁 바람이 불어와 그의 이마 위로 내려온 잔머리를 살짝 흐트러뜨렸지만, 그의 눈빛은 한 순간 부드러워졌다. 어슴푸레한 밤 그의 가늘고 긴 눈동자에는 소만리가 지금까지 본 적 없었던 깊은 애정으로 물들었다.그는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며 또 다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숨결에서 느껴진 와인 향이 그녀의 얼굴에도 스며드는 듯했다."정말 보고 싶었다고…"갑자기 그는 소만리에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소만리의 심장이 갑자기 떨려왔다. 그를 밀어내려고 하자 기모진은 손을 뻗어 그녀의 볼을 어루만졌다.서로의 살이 닿자 그녀는 기모진의 두 눈을 놀란 눈으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마치 미묘하게 흔들리는 촛불 같았다. 그녀의 뺨이 갑자기 따뜻하게 데워지기 시작했다."기모진씨! 먼저 저 좀 놔 주실래요?""아니.. 다신 널 놓지 않을 게…”그리고 그는 손끝으로 그녀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눈썹을 건드렸다. 그의 손길은 마치 자신이 매 순간 소중이 여기는 보물들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소만리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한 순간 마음이 어수선했다.그녀는 기모진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눈에서 출렁이는 부드러운 물결을 볼 수 있었다. 만약 다시 한 번 그런 눈빛을
기모진의 동공이 움찔했다."그러니까.. 어젯밤에 우리가..."그가 말을 하는 동안 천미랍은 고개를 끄덕였다.순간 기모진의 얼굴에 괴로운 기색이 가득했다.그는 눈앞에 있는 이 여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이 호감은 모두 소만리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가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말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소만리를 잃은 후에 그는 그녀 외의 여자와 어떠한 스킨십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그가 천미랍에게 접근한 것은 사실 사심 때문이었다. 바로 소만리와 똑같은 얼굴을 보면서 구차함과 아쉬움을 달래고 싶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은...그는 갑자기 자신이 쓰레기 같다고 느꼈다.그녀에 대한 애정이 깊은 줄 알았는데, 결국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자 결과적으로 당황하고 심란해 하는 걸 보니.."당신의 모습을 보니 고민이 많은 것 같은데요? 당신이 그렇게 치를 떨며 혐오하던 전처를 떠올리게 해서 징그럽고 더러워요?"천미랍의 냉소적인 말에 그의 이성이 돌아왔다.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새벽빛 아래 수수하고 맑았다. 예전의 소만리의 그 얼굴 그대로였다. 이렇게나 아름답고 맑은 사람에게 ‘더럽다’는 단어가 관련되어 있을리가?비록 어젯밤 일들이 세세하게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그는 어젯밤, 소만리와 관련된 따스하고 기분 좋은 꿈을 꾸었다는 것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기모진의 복잡한 눈빛을 보며 소만리는 조용히 한쪽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쌀쌀맞게 말했다."알겠어요. 그럼 기모진씨 다시는 절 찾아오지 마세요. 우리는 여기 까지니까."그녀는 차갑게 말하고는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기모진은 그제서야 충격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렸다."천미랍씨."그는 그녀를 쫓아가,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 그녀를 끌어당겼다.그러나 소만리는 필사적으로 그의 손을 벗어나 앞을 향해 걷기만 했다. 어느 순간 발 밑에 무언가 밟힌 듯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