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모습이었다. 아이는 작은 손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안아 달라는 듯 계속 칭얼거렸다. 하여 은경애가 서둘러 아이를 다시 끌어안았다. “대표님, 그럼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작은 도련님은 옆방에 데려갈게요.”은경애는 서둘러 아이를 안고 옆 병실로 향했다.어떻게 이런 참담한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그토록 젊은 나이에 암이라니!아직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못했건만.너무나도 착한 사람이 말이다.전연우는 그녀의 손을 잡고 얼굴에 가져가 온기를 느꼈다. “너무 오래 자지 말고, 빨리 일어나.”전연우가 기대했던 것은 역시나 허황한 꿈이었다.그는 당시 장소월이 강영수를 위해 했던 것처럼 매일 9,990개의 계단을 오르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또한 남천 그룹과 성세 그룹의 이름으로 어린이 재단을 설립해 빈곤한 산악 지역에 방치된 아이들을 위한 캠퍼스를 설립하고 수십억의 물자를 기부했다.더 나아가 전국의 복지 기구에도 상당한 금액을 기부했다...이 소식이 신문에 보도되자 수많은 방송국 기자들이 성세 그룹 회장과의 인터뷰를 원했다.그러나... 그는 모든 인터뷰를 거절했다...모든 정부 기관들은 당황해 어찌할 줄을 몰랐고, 성세 그룹과 남천 그룹의 주가는 하룻밤 사이에 급등했다.전연우는 그런 것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늘 평소처럼 출근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처리했다.매일 그의 동선은 단 세 곳뿐이었다. 청연사, 병원, 그리고 사무실... 전연우를 인터뷰하기 위해 한 기자가 몰래 그를 따라갔고, 다음날 청연사 불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전연우의 사진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이에 서울시 전체가 들썩였다. 사람들은 성세 그룹 회장이 바람이 불든 비가 오든 매일 산에 올라가 부처님께 참배한다는 사실에 크나큰 호기심을 가졌다.전연우는 이미 서울시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대체 무슨 이유로 부처님을 섬긴단 말인가.길을 수리해 놓으니 산에서 내려오
전연우는 은경애가 가져온 만둣국을 모두 비웠다. 예전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 바로 오 아주머니가 만든 만두였다.그녀의 손맛은 여전했다.창밖 한동안 멈췄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거위 깃털 같은 눈송이가 바닥에 두껍게 덮여 은백색 빛을 반짝였다.“나 암 의학 연구소에 투자했어. 서철용도 갔으니 너도 곧 깨어날 거야.”“보름쯤 지나면 별이가 말을 할 수 있대. 널 엄마라고 부를 수 있을 거야...”“별이가 자라는 모습 보고 싶지 않아?”“소월아, 날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머리에 남아 있던 수술 상처는 이미 아물었지만, 그녀는 아직 의식을 찾지 못했다. 전연우는 그녀 옆에 누워 눈을 감고 그녀의 체취를 맡았다. 어쩌면 이것만이 그를 평온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른다.전연우는 이렇게까지 견디기 힘든 적이 없었다. 그녀가 서울을 떠난 4년의 시간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유독 지난 3개월은 목숨 절반이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너무나도 괴로웠다...머지않은 곳의 병실에선 배은란이 공허한 눈동자로 초점 없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녀 얼굴에 더는 괴로움이 보이지 않았고, 배가 살짝 불룩해져 있었다.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배은란의 무표정했던 얼굴에 마침내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껴안았다.“...엄청 오래 기다렸단 말이야. 왜 이제야 돌아왔어?”“민용 씨, 보고 싶었어. 우리 아기도 보고 싶었대...”서철용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잠시 망설이다가 손을 들어 그녀의 긴 머리를 쓰다듬었다.“밥은 먹었어?”“먹었어.” 배은란은 그의 품에서 몸을 떼고 그를 끌어당겼다.“바빠서 밥 못 먹었을 줄 알고 조금 남겼어. 민용 씨가 좋아하는 거야.”서철용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녀와 함께 주방으로 향했다. 병원 VIP 병동에는 기본적인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다. 간병인과 가족들의 편의를 위해 주방과 거실, 그리고 식탁까지도 마련되어 있었다.“임신 중에는 이런 거 하면 안
“오늘 밤 떠나는 거야?” 배은란은 풀이 죽은 얼굴로 그릇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이틀 뒤.”“안 가면 안 돼? 난 민용 씨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배은란은 그를 붙잡고 싶었다.서철용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엔 중요한 일이라 내가 가서 해야 해.”“그래, 응원할게. 우리 남편은 최고야. 꼭 더 강력한 항암제를 연구해내. 우리 아기와 난 민용 씨가 자랑스러워.”서철용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내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알았지? 네가 혼자 집에 있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래. 병원이 연구소와 가까우니까 시간 나면 자주 올게."“알았어, 민용 씨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게.”서철용은 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까지 끝내고 나서야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휴식을 취했다. 그가 침대 옆 조명만 켜두고 잠을 청하려던 그때, 방문이 열리고 임산부 잠옷을 입은 배은란이 베개를 들고 들어왔다.“민용 씨... 나 여기서 같이 자도 돼? “서철용이 입을 열기도 전에 배은란은 이미 침대에 누워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서철용의 손이 자연스럽게 그녀를 감싸 안았다. 은은한 향기가 코끝에 스며들었다.밤 열한 시가 되어도 배은란은 원래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조용한 방 안엔 남자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다.“민용 씨, 잠들었어?”“아니.” 서철용이 대답했다.“내가 옆에 있어서 잠이 안 오는 거야?”“아니,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자.” 서철용은 손을 뻗어 침대 옆 조명을 껐다. 방 안에 어둠이 내려앉았다.그가 이렇게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그리고 이 아이는...서민용... 이게 정말 네가 원했던 거야?서철용의 마음은 너무나도 복잡했다. 그는 배은란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나 병동 밖으로 걸어 나갔다.15층 옥상에도 잠 못 이루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서철용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계속 이렇게 서 있다간 망부석이 되겠어.”전연우
“지난 3개월 동안... 배은란은 줄곧 나를 형으로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난 그 어떤 쾌감도 느껴지지 않더라고. 이제야 어떤 것은 강요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서철용은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지 않는 사람이다. 심지어 전연우까지도 처음에는 장씨 일가를 상대하는 도구로만 사용했었다. 이제 장해진이 죽고 장씨 가문에는 전연우만 홀로 남았다. 하지만 장해진에 대한 전연우의 증오는 서철용 못지않게 깊다.전연우는 자신의 친아버지를 제 손으로 직접 제거했다. 누구에게나 자비하나 없이 무자비한 냉혈한이었던 전연우는 유독 장소월에게만큼은 한없이 나약해지고 있다.전연우가 물었다.“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서철용이 대답했다.“천천히 한 걸음씩 해봐야지. 기억 속 고통에 갇혀 사는 것보다는 지금이 낫지 않겠어?”서철용은 서씨 집안 저택에서 서민용에게 무릎을 꿇고 있던 그녀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사실 서민용은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4년 전 우리 내기 아직 기억해?” 서철용은 의사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그를 쳐다보았다. 찬바람이 짧은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자 가느스름한 그의 두 눈이 드러났다. 방탕하고 거칠었던 눈동자에 지금은 무언가 사라진 것만 같았다.인상을 찌푸리는 걸 보니 분명 기억하고 있다. “그 내기, 우리 둘 다 졌어. 넌 장소월을 사랑하게 됐고, 난...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전연우가 차갑게 말했다. “진 건 너야. 만약 나였다면, 그 둘을 시작하지도 못하게 했을 거야.”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날이 밝아오는 창밖을 본 서철용이 말했다. “난 이만 돌아갈게. 시간이 늦었어. 쉬어.”전연우의 깊은 눈동자는 여전히 창문 밖에 머무르고 있었다...어두운 하늘의 구름이 갈라지며 밝은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은빛이 점차 가라앉으며 눈도 서서히 그치고 있었다...크리스마스가 지나고 2주 뒤, 전연우는 화국 내 자선가 순위 1위에 올랐다. 그의 가치는 1
서문정은 흠칫 놀라더니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저를요? 무슨 일이죠?"“곧 알게 될 겁니다.”휴게실에 들어간 지 불과 20분 만에 누군가 서문정의 모든 정보를 그에게 보냈다.서문정이 들어서자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매력적인 아우라를 풍기며 소파에 앉아 서류를 넘겨보고 있었다.서문정은 눈동자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저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하며 귀에 걸친 긴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선생님, 저 찾으셨다고 들었는데요?”전연우가 서류에서 사진을 꺼내 그녀 앞에 내던졌다. “얼굴 성형 잘했네요.”서문정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웃음기가 사라지고 돌처럼 굳어버렸다.“당... 당신이 어떻게 내 예전 사진을 갖고 있어요?”분명히 그녀는 아버지에게 모두 없애 달라고 부탁했었다.서문정은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니 머릿속에 폭탄이 터진 것처럼 아찔해졌다. “무슨 짓을 해도 당신은 소월이가 될 수 없어요.”“3일 시간을 줄게요. 언론에 모든 것을 밝히고 바로잡아요. 만약 3일 후에도 내가 원하는 것이 보이지 않으면, 그땐 내가 직접 움직일 거예요.” 전연우는 손에 들고 있던 정보 파일을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서 그녀의 곁으로 걸어갔다. 그가 음산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다.“이 얼굴 두 번 다시 보이지 말아요...”전연우가 휴게실 문을 나서는 순간 서문정이 눌러두었던 분노를 터뜨리며 돌연 소리쳤다. “당신이 뭔데 내 일에 참견해요? 내가 장소월 얼굴로 성형했어도 그건 내 자유예요. 지금 그 자리에 앉아있다고 자신이 그렇게 대단한 것 같아요?”“여자 덕분에 어부지리로 얻은 자리잖아요. 인씨 가문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장씨 집안 개에 지나지 않았을 사람이.”“우리 아버지는 국회의원이에요. 사업가는 정치인과 맞서지 못하는 법이죠. 당시 강씨 가문도 우리 아버지에겐 함부로 하지 못했는데, 고작... 뒷배경 하나 없는 불량배 같은 사람이 지금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기성은은 전연우가 미친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장소월이 쓰러진 이후로, 그는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두 시간 후, 기성은이 서류 가방을 손에 들고 병실로 들어왔다. “대표님, 지시하신 건 다 준비됐습니다.”전연우는 조심스레 그녀의 손등을 닦은 뒤 다시 이불 속에 넣었다.“앞으로 중요한 서류에 사인하는 것 말고는 나 찾아올 필요 없이 네가 알아서 처리해. 나와 오랜 세월을 함께 했으니 회사 경영에 대해 가르쳐 줄 필요 없을 거야.”“정말 회사에 손 떼실 생각이십니까? 대표님께서 피땀으로 일군 회사입니다.” 기성은이 의식을 잃은 채 침대에 누워 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종래로 오늘처럼 불안했던 적이 없다. “아가씨는 괜찮을 겁니다. 끝까지 안 깨어나면 평생 이러고 사실 생각이십니까?”전연우는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이건 내가 소월이한테 진 빚이야.”“됐어. 귀찮게 하지 말고 나가.”기성은은 몇 초 동안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회사는 내팽개치고 그녀만 바라보고 있다...그야말로 미친 짓이다!전연우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회사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장소월을 돌보는 데에만 몰두했다. 지난번 누군가 장소월의 링거 관에 독을 주입한 일이 있은 이후로 전연우는 더더욱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녀의 곁을 지켰다.장소월은 식물인간이 됐지만, 서철용은 그녀의 뇌가 아직 활동 중이라, 외부 자극이 있어야만 깨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다음 날 아침, 전연우는 장소월의 침대 옆에 잔잔한 피아노 음악을 틀어주었다. 모두 장소월의 예전 침실에서 가져온 카세트테이프였다.전연우가 침대 옆에서 사과 껍질을 깎고 있을 때, 경호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표님, 밖에 소현아라는 분이 아가씨를 만나고 싶다며 찾아왔습니다.”“안 돼.”“네, 대표님.”“참.” 전연우가 그를 불렀다.“대표님, 지시 사항 있으면 말씀하십시오.”전연우의 음산한 눈빛 아래 얼음장 같은 냉기가 번뜩였다.“지금부터 15층
소현아는 줄곧 자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녀가 장소월에게 그 쪽지를 전해주지 않았다면, 장소월은 아무 일 없지 않았을까?허이준의 부축을 받으며 병원 밖으로 나온 소현아는 눈물을 닦으며 허이준을 밀쳐냈다. “다 네 탓이야. 네가 소월이한테 몰래 쪽지를 전해달라고 나한테 부탁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거야.”“흑흑... 소월이 돌려내.”허이준은 미안함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말했다.“미안해,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그녀는 분명 메일을 읽었을 것이다.허이준도 자신이 정말 잘못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몰랐다고? 소월이가 아프다는 걸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 왜 또 자극한 건데? 강영수는 이미 죽었잖아. 되돌릴 수도 없어. 왜 소월이가 나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하지 않았어? 나 조금 전 의사한테 물어봤어. 소월이가 깨어나는 건 불가능하대. 정말 못 깨어나면 어떡해? 나한테 친구는 소월이밖에 없단 말이야.”“다 네 잘못이야, 다신 너랑 말 안 할 거야.”두 사람의 말다툼을 듣고 있던 간호사가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병원에서 소란 피우지 마세요.”허이준은 도망가는 소현아의 뒷모습을 보며 간호사에게 미안함을 전했다.허이준이 병원을 나설 때쯤 소현아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소현아는 엉엉 울며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소현아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검은 유니폼에 검은 장화를 신은 남자가 다리 사이에 검은 속옷만 입은 나체의 여자를 무릎 꿇려놓고 있었던 것이다.“재밌어요?” 강지훈이 위험한 눈동자를 굴리며 눈앞에 멍하니 얼어붙은 여자를 쳐다보았다.소현아는 잠시 울음도 잊은 채 너무 무서워 차 문을 쾅 닫고 곧장 돌아서 달려갔다.그녀의 차 아니었나?그때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아가씨, 여기요.”소현아는 운전기사 아저씨를 보자마자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을 머금고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차에 올라탔다. “아저씨, 차 위치 왜 바뀐 거예요?”“경비 아저씨가 와서 그 자리엔 주차할 수
진실이라는 건 늘 이런 법이다. 아무리 잔인한 것이라 해도, 어쩔 수 없이 직면해야만 한다.“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상관없으니 살려내.”“지금은 깨어나지 않으려 치료를 거부하고 있어. 이대로라면 신도 치료할 수 없을 거야.”전연우는 단 한순간도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다.“서울에서 못 고치면 외국으로 데려갈 거야. 세상에 병원이 이렇게나 많은데 해결책을 찾아줄 사람이 한 명은 있겠지.”서철용의 생각이 맞았다. 그는 정말 미쳐버렸다.“마지막 방법이 하나 있을지도 몰라.”서철용은 전연우가 장소월의 출생의 비밀과 한씨 집안의 존재를 알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가 한의준을 찾아갔다.“...아저씨, 지금 상황이 이러합니다. 예진 이모에 대한 얘기 많이 해 주세요. 그럼 소월 씨가 깨어날지도 모르잖아요.”수술 후 병원에서 회복 중이던 한의준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다 듣고 난 뒤 낙담한 얼굴로 말했다.“철용아, 넌 너무 성급했어. 명확하게 조사하지도 않고 약을 먹이다니.”“난 저승에 가서 아가씨를 뵐 얼굴이 없구나.”서철용은 죄책감에 휩싸인 한의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모든 게 제 잘못이에요. 제가 예진 이모 딸을 해쳤어요. 삼촌, 제발 도와주세요.”한의준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등을 돌리고는 통유리창 밖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렇게 해서 소월 씨가 깨어날 수 있다면 한 번 해볼게.”“이제 장해진이 죽고 복수도 모두 마쳤으니 난 여한이 없어.”한의준이 장소월의 병실에 들어서자 서철용은 전연우를 뒤로 끌어당기며 고개를 저었다.“한 번 해보자.”한의준의 말투엔 불쾌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누구든 들어올 수 있지만 넌 안 돼.”“장해진이 낳은 씨앗은 다 쓰레기야.”한의준은 한바탕 저주를 퍼부은 뒤 병실 문을 닫았다.전연우는 그를 향해 위험한 눈동자를 번뜩였다.“날 실망시키지 않는 게 좋을 거야.”그의 괴팍한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서철용은 곧바로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전연우는 한의준의 정체와 관련해서는 자세히 캐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