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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전생에 전연우가 송시아와 결혼한 이유도 송시아의 생김새가 백윤서랑 조금 닮아있어 백윤서 대용품으로 곁에 두고 있었다.

장소월은 집안을 제외하고 성적이든 외모든 어릴 때부터 쭉 백윤서에게 밀렸었다.

백윤서와 전연우 사이의 감정은 철근으로 만든 성벽처럼 단단했고 그 누구도 무너트릴 순 없었다.

전연우가 백윤서에 대한 사랑은 뼈에 새길 만큼 깊었다.

장소월은 전연우에게 그저 원수의 딸일 뿐이었고 일말의 감정도 없었다.

노크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장소월은 입술을 깨물었다. 전연우는 그녀에게 인내심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었다.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전연우는 오늘 저 문을 부시고도 남을 것이다.

장소월은 불을 켰다. 이불을 거두고 신발을 챙겨 신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물을 열고는 잠에서 덜 깬 듯 눈을 비비며 말했다.

“오빠? 왜 온 거야? 미안해. 내가 너무 깊게 잠들어서 못 들었나 봐. 무슨 일이야?”

전연우의 진한 눈썹이 구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진짜 졸음을 무릅쓰고 일어나 문을 열어준 걸 보고는 미간이 살짝 풀렸다. 눈빛이 부드러워지는 듯하더니 그녀의 이마 쪽으로 손을 갖다 댔다.

장소월이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몸을 돌려 테이블로 걸어가 컵에 물을 따랐다. 그러면서 감정을 잘 숨기려고 애썼다.

전연우의 눈빛이 다시 차가워지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손을 거두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다.

장소월은 마음이 불안해졌지만 지금의 전연우는 자신을 싫어하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내 불안했던 마음이 다시 진정되었다.

전연우가 핑크로 도배된 소녀의 방을 훑어보았다. 방안에는 잔잔하게 달콤한 냄새가 깔려있었다. 그의 차에서 나는 냄새와 같았다. 예전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컨디션은 괜찮아졌어?”

전연우가 아무런 기복이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장소월은 컵을 내려놓고 책상 앞에 놓인 걸상을 빼서 앉았다. 그러면서 그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관심 고마워요 오빠. 많이 좋아졌어.”

전연우가 다가선다. 그의 몸에서는 담배와 술이 섞인 냄새가 났다. 좋은 향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쁜 향기도 아니었다.

지금의 전연우는 또래에 비하면 이미 아주 성공한 비즈니스 엘리트다. 아마도 비즈니스를 오래 하면서 성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몸에서는 도도하면서도 진중하고 흐트러지지 않는 강인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잘빠진 피지컬에 까만 슈트까지 맞춰 입은 전연우는 몹시 매혹적이고 섹시했다.

이렇게 잘난 남자가 이목구비까지 훤하니 여자들이 더 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준수한 껍데기 아래 지옥에서 온 악마가 살고 있다는 것을.

가만히 기회를 엿보다가 때가 되면 그녀를 찢어버리고 장가를 찢어버릴 것이다.

장소월은 전연우의 접근을 막기 위해 일부러 코앞에 삿대질을 하면서 싫은 척했다.

“오빠, 오늘 또 담배 폈어? 술 냄새도 좀 나는 것 같고. 나 이 냄새 싫은데.”

아니나 다를까 그는 한 세 걸음쯤 밖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미안, 요새 좀 바빳어, 약속도 있고. 다음엔 조심할게.”

전연우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장소월이 먼저 백윤서의 일을 꺼냈다.

“오빠, 내일 윤서 돌아오지? 나도 못 본 지 몇 년은 되는 거 같은데 보고싶네. 아줌마한테 윤서 방 깨끗하게 청소해 달라고 했어. 내일 윤서 돌아오면 바로 쉴 수 있게.”

전연우의 눈빛이 조금 어두워진다. 눈가에 차가움이 빠르게 스쳐 지난다.

“괜찮아, 윤이 오면 바로 내가 사는 곳으로 옮길 생길 생각이야.”

“그래?”

장소월이 손목에 감긴 붕대를 만지작거렸다. 마음이 알게 모르게 살짝 아파왔다.

“그것도 좋네...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전생에 전연우는 백윤서를 데리고 이 집에서 나가겠다고 했지만 장소월이 거절했었다.

백윤서가 가면 더 괴롭힐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장소월이 전연우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 둘에게 같이 살 기회를 줄 리가 없었다.

백윤서가 남아서 그녀의 친구가 되어줘야 한다는 이유로 둘을 장가에 남겼다.

“내일 나 휴가 냈어. 공항 가서 윤서 픽업하고 집으로 올 거야. 식사하고 정리 좀 하고 바로 나갈 거야. 저녁에 나가서 같이 쇼핑도 할 겸.”

장소월이 고개를 들어 전연우를 쳐다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녀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오빠, 난 안 갈래. 내일 그냥 집에서 쉬고 싶어. 시험 기간도 얼마 안 남아서 시험 준비도 해야 되고.”

전연우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녀는 멍해졌다.

그들 사이의 전쟁에 끼고 싶지 않았다.

그냥 말 잘 듣고 착한 동생으로 몇 년만 더 버텨서 돈이 모이면 바로 멀리 떠날 생각이었다.

의심이 많은 전연우를 속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전연우가 담담하게 장소월을 쳐다본다. 그녀는 머리를 약간 숙인 채 조용하고 갸냘픈 모습이었다. 예전에 오만하기 그지없던 장소월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이렇게 오래 연기하려니 그녀도 힘들겠지.

남자의 얇은 입술은 무슨 생각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너랑 윤서랑 다 내 동생이야. 누구든 편애하지 않아. 저녁에 집에 도착하면 같이 저녁 먹고 네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 케이크 먹자, 어때?”

장소월은 마음을 단단히 부여잡고 예쁜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응 고마워 오빠.”

“얼른 쉬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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