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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Penulis: 차라
last update Terakhir Diperbarui: 2024-10-29 19:42:56
전생에 전연우가 송시아와 결혼한 이유도 송시아의 생김새가 백윤서랑 조금 닮아있어 백윤서 대용품으로 곁에 두고 있었다.

장소월은 집안을 제외하고 성적이든 외모든 어릴 때부터 쭉 백윤서에게 밀렸었다.

백윤서와 전연우 사이의 감정은 철근으로 만든 성벽처럼 단단했고 그 누구도 무너트릴 순 없었다.

전연우가 백윤서에 대한 사랑은 뼈에 새길 만큼 깊었다.

장소월은 전연우에게 그저 원수의 딸일 뿐이었고 일말의 감정도 없었다.

노크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장소월은 입술을 깨물었다. 전연우는 그녀에게 인내심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었다.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전연우는 오늘 저 문을 부시고도 남을 것이다.

장소월은 불을 켰다. 이불을 거두고 신발을 챙겨 신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물을 열고는 잠에서 덜 깬 듯 눈을 비비며 말했다.

“오빠? 왜 온 거야? 미안해. 내가 너무 깊게 잠들어서 못 들었나 봐. 무슨 일이야?”

전연우의 진한 눈썹이 구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진짜 졸음을 무릅쓰고 일어나 문을 열어준 걸 보고는 미간이 살짝 풀렸다. 눈빛이 부드러워지는 듯하더니 그녀의 이마 쪽으로 손을 갖다 댔다.

장소월이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몸을 돌려 테이블로 걸어가 컵에 물을 따랐다. 그러면서 감정을 잘 숨기려고 애썼다.

전연우의 눈빛이 다시 차가워지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손을 거두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다.

장소월은 마음이 불안해졌지만 지금의 전연우는 자신을 싫어하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내 불안했던 마음이 다시 진정되었다.

전연우가 핑크로 도배된 소녀의 방을 훑어보았다. 방안에는 잔잔하게 달콤한 냄새가 깔려있었다. 그의 차에서 나는 냄새와 같았다. 예전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컨디션은 괜찮아졌어?”

전연우가 아무런 기복이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장소월은 컵을 내려놓고 책상 앞에 놓인 걸상을 빼서 앉았다. 그러면서 그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관심 고마워요 오빠. 많이 좋아졌어.”

전연우가 다가선다. 그의 몸에서는 담배와 술이 섞인 냄새가 났다. 좋은 향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쁜 향기도 아니었다.

지금의 전연우는 또래에 비하면 이미 아주 성공한 비즈니스 엘리트다. 아마도 비즈니스를 오래 하면서 성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몸에서는 도도하면서도 진중하고 흐트러지지 않는 강인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잘빠진 피지컬에 까만 슈트까지 맞춰 입은 전연우는 몹시 매혹적이고 섹시했다.

이렇게 잘난 남자가 이목구비까지 훤하니 여자들이 더 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준수한 껍데기 아래 지옥에서 온 악마가 살고 있다는 것을.

가만히 기회를 엿보다가 때가 되면 그녀를 찢어버리고 장가를 찢어버릴 것이다.

장소월은 전연우의 접근을 막기 위해 일부러 코앞에 삿대질을 하면서 싫은 척했다.

“오빠, 오늘 또 담배 폈어? 술 냄새도 좀 나는 것 같고. 나 이 냄새 싫은데.”

아니나 다를까 그는 한 세 걸음쯤 밖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미안, 요새 좀 바빳어, 약속도 있고. 다음엔 조심할게.”

전연우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장소월이 먼저 백윤서의 일을 꺼냈다.

“오빠, 내일 윤서 돌아오지? 나도 못 본 지 몇 년은 되는 거 같은데 보고싶네. 아줌마한테 윤서 방 깨끗하게 청소해 달라고 했어. 내일 윤서 돌아오면 바로 쉴 수 있게.”

전연우의 눈빛이 조금 어두워진다. 눈가에 차가움이 빠르게 스쳐 지난다.

“괜찮아, 윤이 오면 바로 내가 사는 곳으로 옮길 생길 생각이야.”

“그래?”

장소월이 손목에 감긴 붕대를 만지작거렸다. 마음이 알게 모르게 살짝 아파왔다.

“그것도 좋네...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전생에 전연우는 백윤서를 데리고 이 집에서 나가겠다고 했지만 장소월이 거절했었다.

백윤서가 가면 더 괴롭힐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장소월이 전연우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 둘에게 같이 살 기회를 줄 리가 없었다.

백윤서가 남아서 그녀의 친구가 되어줘야 한다는 이유로 둘을 장가에 남겼다.

“내일 나 휴가 냈어. 공항 가서 윤서 픽업하고 집으로 올 거야. 식사하고 정리 좀 하고 바로 나갈 거야. 저녁에 나가서 같이 쇼핑도 할 겸.”

장소월이 고개를 들어 전연우를 쳐다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녀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오빠, 난 안 갈래. 내일 그냥 집에서 쉬고 싶어. 시험 기간도 얼마 안 남아서 시험 준비도 해야 되고.”

전연우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녀는 멍해졌다.

그들 사이의 전쟁에 끼고 싶지 않았다.

그냥 말 잘 듣고 착한 동생으로 몇 년만 더 버텨서 돈이 모이면 바로 멀리 떠날 생각이었다.

의심이 많은 전연우를 속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전연우가 담담하게 장소월을 쳐다본다. 그녀는 머리를 약간 숙인 채 조용하고 갸냘픈 모습이었다. 예전에 오만하기 그지없던 장소월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이렇게 오래 연기하려니 그녀도 힘들겠지.

남자의 얇은 입술은 무슨 생각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너랑 윤서랑 다 내 동생이야. 누구든 편애하지 않아. 저녁에 집에 도착하면 같이 저녁 먹고 네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 케이크 먹자, 어때?”

장소월은 마음을 단단히 부여잡고 예쁜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응 고마워 오빠.”

“얼른 쉬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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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월은 의자에 앉아 책상에 놓여 있는 백윤서가 준 선물을 뜯지 않은 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뜯어 보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머리핀일 것이다. 2000년, 평균 월급이 고작 몇만 원이던 시대에서는 귀한 물건이었다. 그녀는 액세서리를 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액세서리를 하면 꼭 목줄에 얽매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심리작용이겠지만 그녀를 불편하게 했다.별로 펼쳐보지 않아 새 책 같아 보이는 고등학교 삼 학년 문제집을 펼쳐 보니 그녀가 풀기에 어려운 문제는 없었다. 예전에 장소월의 성적은 반에서 거의 꼴찌였다. 대학에 가기 위해 그녀는 전연우가 퇴근하고 나면 그에게서 과외받았다.전연우는 중졸이지만 5개 외국어에 능통했고 다양한 지식을 오직 자기 힘으로 공부했다. 그의 학습 능력으로 그녀의 학교에 있었다면 아마 전교 일 등은 물론이고 수능 만점도 가능했을 것이다. 전연우처럼 똑똑하면서도 노력하는 사람은 언제나 기적을 만든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장해진의 눈에 들 수 있었을까.장해진은 그녀의 성적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학업보다 장해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녀가 흥미를 느끼는 것들이었다. 장해진은 그녀를 명문가의 규수처럼 키우려고 무용, 피아노, 골프, 요리 그리고 자수 등 다양한 것들을 배우게 했고 더 엄격하게 개인레슨을 받도록 했다. 그는 이미 다 계획하고 있었다. 그녀가 20살이 되면 비슷한 조건의 집안과 정략결혼으로 가장 가치 있는 사업 파트너를 얻어 두 집안의 기업을 더욱 강대하게 하는 것이다. 장해진는 여자가 재능이 없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여자는 결국 결혼해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공연히 밖에 나돌지 않고 집안일에 신경 쓰고 남편을 잘 섬기며 자녀를 양육하는 현모양처면 충분할 뿐이었다.장소월은 창밖으로 검은색 차량이 대문을 나서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떠났나 보다.장해진은 아마도 한 삼 일 뒤에 돌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어렵게 얻은 짧은 자유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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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월은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보통 학교처럼 넓고 촌스러운 것이 아닌영국식 스타일의 블랙으로 돼 있어 매우 격식이 있어 보였다. 신발도 통일된 구두였고 가방도 학교에서 특수 재료로 특별 제작한 것이다.제운고등학교의 맞은편에는 공립 중학교인 서울 제2중학교가 있었는데 공립 학교 중에서는 명문 학교였다. 여기서 공부할 수 있는 학생들은 모두 지능이 뛰어나고 똑똑하며 미래의 나랏일에 도움이 되는 엘리트들이다.제운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가족의 배경과 재력이 상당하다.서울 제2중학교의 학생들은 가난한 집안의 자제였는데 모두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 낸 것이다.신분 계층의 다름이 달라 두 학교의 학생들은 수년간 서로 무시하며 적대감을 느끼고 있었다.장소월이 잘못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수많은 검은색 승용차 중에서 그녀는 전연우의 아우디를 보았다. 그녀는 차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지만 의외로 차는 맞은 켠 학교에 멈춰 섰다.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전연우와 백윤서가 차에서 내렸다.‘설마 전연우가 백윤서를 서울 제2중학교에 보내는 것은 아니겠지?’등 뒤의 시선을 느낀 전연우가 뒤돌아보니 검은 교복에 짧은 치마를 입은 채 얌전하게 서 있는 장소월과 눈이 마주쳤다.그녀는 머리를 질끈 묶고 있었는데 키가 커서 사람 중에서 매우 눈에 띄었다.그가 뒤돌아볼 줄 몰랐던 장소월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눈인사를 건넸다.“소월아—”장소월은 눈길을 돌려, 양 갈래 머리에 검은 스타킹을 신고 통통한 안경을 쓴 통통한 여학생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오는 것을 보았다.서문정은 거센 숨을 내쉬며 손에 책을 든 채 물었다.“소월아, 드디어 돌아왔구나. 아프다고 휴가를 냈다고 들었는데 이젠 괜찮은 거야?”서문정은 교육청 청장의 딸이고 소월이와 같은 반이다.제운고를 다니는 학생들의 신원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응, 많이 좋아졌어.”“어라? 오늘 화장 안 했어? 오늘 되게 차분해 보여. 평소에는 항상 화가 난 표정이었는데 사람이 확 바뀐 것 같다?”예전에 장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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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65화

    간호사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남자친구분 잘 지켜보셨어야죠. 링거액이 다 떨어졌잖아요. 지금 병원이 너무 바빠서 저희 간호사들도 병실 하나하나 다 신경 쓸 수는 없어요.”소민아가 미안함에 말했다.“서류를 가지러 회사에 다녀왔어요. 그런데... 저 이분 여자친구 아니고 비서예요.”간호사가 말했다.“환자분이 의식을 잃은 상태로 계속 가족분의 이름을 부르고 계세요. 얼른 가보세요. 환자분을 혼자 오래 두면 안 돼요.”소민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소민아가 병실에 들어가 보니 신이랑은 눈을 뜨고 누워있었다. 그녀가 다급히 들고 있던 물건을 내려놓고 다가갔다.“이랑 씨, 깼어요? 몸은 좀 괜찮아졌어요?”신이랑은 흐릿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손을 뻗자 소민아는 얼른 그의 손을 잡아 이불 속에 넣어주었다.“푹 쉬어요. 제가 옆에 있으니까 불편한 게 있으면 부르고요.”“가, 가지 말아요.”그는 꽉 잡은 손을 좀처럼 놓지 않았다.“이랑 씨, 저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어요. 내일 보내줘야 해요.”신이랑이 머물고 있는 곳은 VIP 병실이라 주방에 모든 시설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녀는 전화로 죽 두 그릇을 주문한 뒤...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다.저녁 10시, 신이랑의 체온은 많이 안정되었다. 본래 몸이 좋지 않긴 했지만, 이렇게 하룻밤 사이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까지 하다니.소민아는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배고픔이 느껴지고 나서야 자신이 아직 죽을 받아오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지금 시간엔 병원에도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VIP 병동은 무서울 정도로 으스스하고 고요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보니 프런트에 놓은 음식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음식을 들고 다시 위로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던 중, 왼쪽 코너 쪽 병실에서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기성은이 왜 여기에?소민아는 다시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병원에 왔으면서 왜 그녀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64화

    신이랑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녀의 몸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소민아는 몸을 뒤로 젖히며 그를 껴안았다. 그의 정상적이지 않은 체온을 느낀 그녀가 다급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신이랑 씨!”그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소민아는 잠시 그를 부축해 소파에 눕힐 수밖에 없었다.“열이 왜 이렇게 나는 거예요?”소민아가 핸드폰을 켜고 구급차를 부르려 한 순간, 그 뜨거운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생명줄이라도 되는 듯 힘껏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소민아는 통화를 마친 뒤 손을 뻗어 그의 이마에 가져갔다.“구급차가 곧 올 거예요. 조금만 참아요.”소민아는 착잡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금방 들어왔을 때 그가 했던 말을 그녀는 모두 똑똑히 들었었다.자신을 좋아해 달라던 그 말까지도...소민아는 신이랑이 자신과 같은 사람을 좋아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신이랑처럼 좋은 사람은 응당 예쁘고 부드럽고 현숙한 주가은 같은 부잣집 아가씨와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기성은에게 들은 바로는 신이랑의 신분도 실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그의 가족들 또한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신이랑은 구급차에 앉아 함께 병원으로 들어갔다.신이랑은 열이 39도, 아니 40도까지 치솟아 올랐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결과가 어땠을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신이랑은 해열제 주사를 맞은 뒤 이어 링거를 꽂고 침대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옆에서 노트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소민아는 그렇게 하루종일 병원에서 그를 보살폈다. 저녁 여섯 시가 되니 배가 고파와 병원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그때, 여자보다 더 여자같이 생긴 하얀색 옷차림의 남자가 마스크를 하고 그녀의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소민아는 의아함에 천천히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어디에선가 본 것처럼 익숙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하지만 지금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그녀는 내려갔던 김에 서류를 가지러 다시 회사에 돌아갔다. 신이랑이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63화

    소민아는 기성은의 팔짱을 끼고 친밀하게 손을 잡고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오늘 어디에 가는 거예요? 언제 돌아와요? 퇴근할 때 저 픽업할 수 있어요?”기성은이 대답했다.“상황 봐서요. 매일 오늘처럼 한가한 건 아니거든요.”소민아가 불만이 가득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기성은 씨 이젠 회사에도 안 나가잖아요. 대체 뭐 하느라 그렇게 바쁜 거예요? 어제 저랑 사귀어보겠다고 했잖아요. 그럼 절 첫 순위에 올려놓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면 솔직히 말해봐요. 뭘 하러 가는 건지!”그가 하는 일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알려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여 당연히 그녀에게 알려줄 수 없었다.대표님이 의식불명으로 누워계시니 그 또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송시아는 회사를 통째로 집어삼키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때문에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눈앞의 일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것이다.그에게 있어 소민아는 부담이고 약점일 뿐이다. 어떤 말은 솔직히 말할 수 없으니 그저 그녀의 열정이 자연적으로 꺼져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민아 씨 앞가림이나 잘해요.”기성은이 결국 뱉어낸 말은 그 한 마디였다.지금은 출근 시간이라 차가 꽤 막혔다. 소민아는 선명히 뾰로통해진 얼굴로 손에 요구르트를 들고 앉아있었다.이번 생에 기성은이 그녀를 달래주는 날이 오긴 할까.그들은 출근 시간 10분을 남겨두고 성세 그룹 맞은편에 도착했다. 회사에 뛰어 들어간다면 3분이면 충분히 출근 도장을 찍을 수 있다.“아직도 뭘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기성은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소민아가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그의 입가에 키스했다.“일 끝나면 전화해요. 성은 씨가 절 데리러 오든, 제가 성은 씨한테 가든 같이 있어요, 우리.”기성은은 그 키스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굳어버렸다.소민아는 안전벨트를 풀고 바람을 맞받아 몸을 움츠리고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시간 맞춰 도착해 지각은 하지 않았다.소민아가 뒤돌아보니 기성은은 아직 그 자리에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62화

    침대에서 뒹구는 법이라곤 없는 기성은은 그녀가 계속 잠을 청하려 하자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소민아가 단번에 그를 끌어당겨 침대에 눕혔다.“아직 여섯 시밖에 안 됐단 말이에요. 출근 시간까지 한 시간이 넘게 남았어요. 조금 더 자요.”“소민아 씨!”기성은은 이렇게까지 머리 아프게 만드는 사람은 종래로 만나본 적이 없다. 소민아가 강제로 기성은의 팔을 끌어당겨 팔베개를 시켰다.기성은의 차가운 목소리가 내려앉았다.“남녀가 유별하다는 말 몰라요? 소민아 씨, 선 지켜요.”소민아는 눈을 감고 태연하게 그의 말을 받아쳤다.“이봐요, 아저씨. 지금이 조선 시대인 줄 알아요? 어떻게 그렇게 보수적일 수가 있어요? 여자친구 사겨본 적 있기는 해요?”기성은은 도저히 팔을 빼낼 수가 없었다.“내가 못해본 것 같아요?”소민아가 몸을 돌려 그와 눈을 맞추었다.“그 주가은 씨랑은 어떤 사이에요? 정장은 왜 벗어준 거예요? 추워 보여서 그랬어요?”소민아가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그의 이마에 가져갔다.“얼른 솔직히 말해봐요. 주가은 씨랑 대체 무슨 관계인 거예요? 어젯밤... 기성은 씨 만나러 집에 왔었어요. 제가 우리 두 사람이 사귀기로 했다니까 얼굴이 확 어두워져서 돌아갔고요.”소민아는 자세히 그의 얼굴 표정을 살폈다. 더 캐묻지도, 화를 내지도 않는 것이 별다른 느낌이 없는 듯했다.그가 말하려 하지 않자 소민아가 말을 이어갔다.“연애할 줄 모르겠으면 제가 가르쳐줄게요. 가장 중요한 건 성실해야 한다는 거예요. 빨리 얘기해요.”기성은이 은하수를 담은 듯 반짝거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피하며 말했다.“주가은은 서울시 시장 딸이에요. 얼마 전 주지웅이 주가은을 대표님에게 소개해주려고 저녁 식사 자리를 만들었는데 대표님이 못 가게 되셔서 내가 대신 갔었어요.”“그날 엘리베이터에서 주가은의 뇌전증이 발작했고, 내가 마침 거기에 있어서 도와줬었죠.”너무 조용하다는 생각에 내려다보니 소민아는 어느새 또다시 잠들어 있었다.기성은이 천천히 팔을 빼내고 침대에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61화

    “제 아빠는 데릴사위였어요. 부모님 두 분 모두 과학자여서 매일 연구원에서만 지냈어요. 그래서 전 태어나자마자 고모 댁에 보내졌죠. 엄마아빠의 유전자를 이어받아서인지 별로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서울대에 입학했어요...”소민아의 말이 채 끝나지 않았을 때 옆에 놓아두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신이랑이 걸어온 전화였다.“이랑 씨도 오겠다고 했던 걸 깜빡했어요. 잠깐만 기다려요. 전화 받고 올게요.”기성은이 깊은 눈동자로 아직 그녀의 온기가 남아있는 의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과거는...암흑 그 자체이다.그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그가 살았던 곳은 음산하고 차디찬 지하실이었다. 그곳에선... 명령에 따라 앞뒤 가리지 않고 손에 칼을 들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그야말로 나라의 관리가 손닿지 않는 혼란의 세상이었다.누군가 그랬다. 어머니는 기생이고, 아버지는... 마약범이라고. 하여 그는 태어난 뒤 바로 버려졌고, 그래서 이름도 없는 거라고...그의 머릿속 첫 기억은 음습하기 그지없는 시궁창이었다.그때의 참담한 경험이 지금 그의 모습을 만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아무 감정 없는 기계 같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다.그의 인생을 바꿔준 한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바로 전연우다!당시 기성은은 변경에서 마약 거래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연우를 만났고, 그가 다치고 베이고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기성은을 변경 시궁창에서 빼냈다.전연우가 말했다.“나한테 목숨 빚졌으니까 앞으로 나 따라다녀.”“네.”“지금 이름은 너한테 어울리지 않아. 앞으로는 기성은이라고 바꿔.”“네.”...소민아는 신이랑과 함께 설영우를 만나 일정을 조율하고 계약서까지 작성했다.일을 끝내고 나니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소민아가 신이랑을 아파트 아래까지 배웅한 뒤 걸음을 멈추었다.“왜요?”신이랑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소민아는 숨기지 않고 말했다.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60화

    “현실에 부합되지도 않는 쓸데없는 상상하지 말아요. 소민아 씨한테 어울리는 사람은 신이랑이에요. 가서 일이나 열심히 해요, 내 체면 떨어뜨리지 말고.”결과야 어찌 됐든 소민아는 기성은이 키워온 사람이다.소민아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정말 저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요?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정말 없어요?”“저에 대한 이랑 씨 마음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난...”“기성은 씨를 좋아한단 말이에요!”문밖에 서 있던 설영우가 호기심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들어왔다.“어머나, 형한테도 드디어 봄이 왔네요. 여자한테 고백을 다 받다니요!”소민아는 얼마나 어렵게 용기를 내어 그 말을 내뱉었는지 모른다. 한 달 내내 찾아다녔던 소설 작가가 지금 이 순간 기성은에게 형이라고 부르며 나타날 줄이야.“꺼져.”설영우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소민아 씨, 전 이만 갈게요. 형과 얘기 끝나면 문자 주세요. 바로 올라올게요.”소민아는 솔직하고 좋고 싫음이 분명한 사람이다. 실은 그녀 또한 알지 못했다. 대체 왜 하필이면 성격도 나쁜 그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는지 말이다.얼굴이 조금 반반한 것 외엔 별다른 장점도 없다.“제가 방금 했던 말 들었어요?”기성은이 말했다.“소민아 씨 같은 귀찮은 사람이랑 사귀어서 나한테 좋은 게 뭔데요? 아까 내가 했던 말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네요.”기성은이 와인 냉장고로 걸어가 와인을 한 병 꺼냈다. 그를 따라 소민아의 시선도 옮겨졌다.소민아가 그의 뒤를 쫓아가며 말했다.“하지만 좋아하는 사람한테 진심을 고백해야 맞는 거 아닌가요? 저도 제가 충동적이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저에게도 눈이 있고 생각이라는 게 있어요. 나더러 신이랑에게 붙어있으라는 거 날 보호하기 위해 한 말이라는 게 느껴진다고요. 기성은 씨도 날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왜 자꾸 절 밀어내려고만 해요? 정말 이해가 안 돼요.”기성은이 말했다.“정말 황당한 생각이네요. 이용가치가 떨어진 물건을 더 남겨서 뭘 하겠어요?”기성은이 고개를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59화

    기성은이 다급히 셔츠를 몸에 걸쳤다.“누가 마음대로 들어오라고 했어요! 나가요!”소민아는 순간 하려던 말까지 잊어버렸다.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문밖으로 나와 손으로 가슴을 짓누르며 크게 심호흡했다. 머릿속에 기성은의 몸에 덕지덕지 새겨진 흉터들이 떠올랐다.기성은은 대표님의 비서가 아니었던가?비서에게 어떻게 저렇게 많은 상처가 생길 수가 있지?또한 모두 칼에 찔린 자상이었다. 지금 이 시대에 누가 칼을 휘두르고 다닌단 말인가.대체... 그는 무슨 일을 겪었던 걸까.기성은은 욕실에서 거울로 자신을 비추어 보았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눈 깜빡할 사이에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어떤 일은 뇌 속에 박혀버린 것처럼 한번 또 한 번 반복적으로 재생되어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떠올리게 만들었다.기성은이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입고 욕실에서 나왔다. 아직 집에 남아있는 소민아를 향해 그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언제까지 있을 생각이에요?”소민아가 주방에서 젓가락 두 쌍을 가져오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식자재는 기성은 씨가 사긴 했지만 음식을 만든 건 저예요. 기성은 씨를 기다리느라 저도 한 입도 못 먹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손님한테 밥은 먹이고 보내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기성은 씨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 일 때문에 이곳에 온 거예요. 마침 같은 아파트에 제가 맡은 소설 작가님이 살고 계시거든요. 그분이 집에 돌아오시면 드라마 제작 세부 사항에 관해 상의해야 해요.”“가서 침대 옆에 있는 핸드폰 가져와요.”소민아는 말없이 그의 말대로 핸드폰을 가져다주었다. 그녀의 시선이 기성은의 헐렁한 옷소매 안으로 드러난 상처에 닿았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왜 지금까지 한 번도 그의 손목에 이토록 깊은 흉터가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단 말인가.“...지금 이쪽으로 와.”그 한마디 말을 끝으로 기성은은 전화를 끊었다.“설영우 곧 올 거예요.”소민아의 눈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58화

    송시아가 이토록 반쯤 미치광이 같은 모습으로 변할 줄은 기성은도 예상하지 못했다.“거추장스러운 것!”송시아는 전연우의 무명지에서 은색 반지를 빼내 바닥에 던져버렸다.“이건 대표님의 물건입니다. 송시아 씨, 대표님이 깨어나셔서 찾으면 어쩌려고 그래요?”송시아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장소월은 한번 또 한 번 전연우를 해쳤어요. 전연우 성격에 어떻게 장소월 그 나쁜 년을 가만 놔둘 수가 있겠어요. 그리고... 기 비서가 연우 씨 옆에서 일한 오랜 세월을 생각해 이곳에 오는 걸 허락할게요. 하지만... 기 비서를 제외한 다른 쓸데없는 사람은 절대 들어오게 하면 안 돼요.”“장소월은 연우 씨를 죽이려 했어요. 난 절대 쉽게 장소월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 곧 경찰에 신고해 평생 감옥에서 썩게 만들어야죠. 그리고 나와 전연우가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 똑똑히 보여줄 거예요. 평생 땅을 치며 후회하겠죠.”기성은의 이마가 살짝 찌푸려졌다.“송 부대표님이 실망하실 텐데 이걸 어쩌죠. 실은 대표님께선... 처음부터 이런 일이 생길 거라는 걸 예상하고 계셨어요. 결혼식을 치르기 전 이미 법무팀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사모님을 다치게 하면 안 된다고 일러두셨거든요.”“뭐라고요?”송시아의 얼굴이 못마땅하게 일그러졌다. 그녀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기성은을 쳐다보았다.“연우 씨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요?”“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연우 씨... 대체 뭘 하려는 거예요? 말해봐요! 대체 그 이유가 뭐냐고요!”송시아는 미쳐버렸다. 완전히 미쳐버렸다!기성은은 눈을 내리뜨리고 눈앞의 여자를 쳐다보았다.“대표님이 뭘 하시려는 지는 저와 송 부대표님 모두 잘 알고 있잖아요.”기성은은 병실에서 전해져 오는 우당탕탕 시끄러운 소리를 뒤로하고 자리를 떴다.기성은 역시 대표님이 왜 이러시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자신의 목숨으로 도박을 하다니...기성은이 집에 돌아왔을 땐 저녁 8시 반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안에서 비쳐나오는 밝은 조명을 보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57화

    소민아는 멀어져가는 그의 곧게 뻗은 건장한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기성은이 조금 변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게 다른지는 당장 생각나지 않았다. 얼마 후, 돌연 머릿속에 무언가 떠오른 그녀가 중얼거렸다.“오늘... 나한테 시끄럽다며 짜증 내지 않았어. 평소 같았으면 욕 된통 먹었을 텐데.”소민아는 기분이 좋아져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기성은이 없으니 그녀는 마음 놓고 그의 집을 둘러보았다. 기성은은 예전 그녀가 신었던 슬리퍼를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해 두고 있었다. 그 슬리퍼는 기성은이 그녀에게 처음으로 사준 물건이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자체 제작한 것이었는데 가격은 몇십만 원이 넘었다.소민아는 보통 집에서 몇천 원짜리 저가의 슬리퍼를 신곤 한다. 그녀는 바로 기성은이 준 그 슬리퍼로 갈아신었다.그가 나간 지 30분이 지났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인덕션을 끄고 조심스레 구멍으로 내다보았다. 불청객 주가은이었다.주가은이 여기엔 왜 왔단 말인가?소민아는 현관에 있는 거울로 자신을 비춰보고는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입고 있던 외투까지 벗어 던지고 야한 하얀색 민소매 끈을 드러낸 채 문을 열었다.“자기야, 이렇게나 빨리 돌아온 거야?”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주가은의 눈앞에 소민아가 나타났다. 그럼에도 주가은의 얼굴엔 여전히 담담한 미소가 걸려있었다.“소민아 씨?”소민아는 팔짱을 끼고 나른하게 문에 기대어 섰다.“주가은 씨였네요! 여긴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들어와서 앉아요! 마침 밥을 하고 있던 참이었어요. 성은 씨는 한 시간 뒤에 돌아올 거예요. 괜찮으면 같이 저녁 먹어요.”“아니에요. 오늘은 물건을 돌려주려고 온 거예요.”주가은이 들고 있던 쇼핑백을 가리켰다.“이건 기성은 씨가 저번에 제 차에 두고 내렸던 옷이에요. 이미 다 세탁했어요. 돌려줄게요.”소민아가 말했다.“우리 성은 씬 정말 너무 덤벙거려서 문제예요. 어떻게 옷을 두고 내릴 수가 있어요. 주가은 씨한테 신세를 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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