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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장소월은 저녁을 먹고 일찍 잠에 들었다. 자기 전 그녀는 따듯한 우유 한 잔을 마시곤 했는데 오랫동안 고치지 못한 습관이었다.

얇은 커튼 밖 어둠은 유난히 짙었다. 한줄기 라이트가 창문으로 비쳐들었다.

타이어가 땅에 마찰되면서 나는 소리가 시끄럽게 귀청을 때렸다.

전연우의 아우디 A6은 장해진이 회사에서 그에게 상으로 준 새 차였다.

차에서 내려 현관으로 들어왔고 손에 든 차 키를 내려놓았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번 훑었지만 익숙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전에는 항상 가냘픈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무미건조한 드라마를 보는 누군가가 있었건만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테이블도 평소처럼 간식이 널브러져 있지 않고 깨끗했다.

전연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아줌마가 주방에서 나왔다.

“연우 도련님, 저녁 식사하셨나요?”

“소월이는?”

전연우가 묻는다.

“아가씨는 몸이 불편하시다면서 일찍 잠에 드셨어요.”

“올라가서 한번 볼게.”

전연우가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어려있었다. 계단을 세 개쯤 올라가더니 발걸음을 멈추고는 말했다.

“내일 점심에 윤이 돌아오니까 윤이 좋아하는 음식 몇 개 더 하고.”

“네, 알겠습니다, 연우 도련님.”

아줌마가 답한다.

3층에 도착한 전연우, 손잡이를 돌렸지만 전처럼 열리지 않았다.

안에서 잠군 것이다.

전연우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와 장소월의 방은 모두 3층에 있었고 장해진의 방은 2층이었다. 2층은 평소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고 4층은 윤이가 단독으로 쓰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는 장소월의 방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고 안에서 잠근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의 예상을 벗어났다. 장소월이 진짜 그에게서 마음을 거둔 것일까?

전연우는 문을 두드렸다.

“소월아, 자?”

악마의 노크 소리에 정소월은 이불 속에 몸을 감추고 귀를 틀어막았다. 대꾸하기가 싫었다.

사실 아까 전연우가 차를 끌고 돌아올 때부터 그녀는 소리를 듣고 깨어있었다.

전연우는 밖에 집을 하나 샀다. 방 2개에 거실 2개, 화장실 2개에 주방 하나가 달린 집이었다.

전연우는 거의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있어서였다.

그가 이 집에서 도망친 것도 장소월의 집착이 역겨워서였다.

지금 그가 집에 돌아온 것도 백윤서 때문일 것이다. 내일은 백윤서가 해외에서 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다.

백윤서는 어릴 때부터 선천적 천식을 앓고 있었다. 전연우는 국내의 의료수준이 딸린다고 생각했고 외국으로 보내 치료를 받게 했다.

전연우가 늦은 시간에 그녀를 찾아온 건 백윤서를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경고하기 위해서다.

백윤서는 전연우의 소꿉친구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보육원에서 같이 지냈다. 듣기로는 밖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길거리를 떠돌며 들개들과 음식을 뺏으면서 겨우겨우 의지하면서 살아왔다고 했다.

백윤서는 전연우가 장가에 온 이듬해에 전연우가 직접 데려왔다.

사람 한 명 더 데려와도 장해진은 뭐라 하지 않았다. 한사람 더 키워주는 것 뿐 장가의 재력으로는 충분했다.

장소월은 백윤서와 나이가 비슷했다. 하지만 백윤서는 어릴 때부터 생김새가 이쁘장했고 청순했다. 소년기의 모든 남학생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었다.

백윤서는 하얀 치마를 좋아했고 긴 생머리가 허리까지 길러져 있었다. 눈빛은 순수하면서도 보호 욕구가 들게 했다. 장소월 자신도 그녀보다는 미모가 딸린다고 생각할 정도니 남자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백윤서가 전연우랑 특별하다는 이유로 장소월은 늘 질투로 가득 차 있었다. 뒤에서 백윤서를 괴롭히기 일쑤였고 가느다란 바늘로 그녀의 허리, 팔, 허벅지 등을 찔렀다.

하지만 백윤서는 감히 일러바치지 못했다. 백윤서에겐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었고 그 비밀이 있었기에 장소월은 백윤서를 더 막무가내로 괴롭힐 수 있었다.

그런데 결국... 백윤서는 죽어버렸다.

그때 백윤서는 고작 12살이었다...

손목을 그어서 자살했다...

장소월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던 그날, 전연우가 손에 피를 가득 묻힌 채로 그녀의 방에 쳐들어왔다. 손전등으로 비춰진 그의 얼굴은 음침했고 살기가 가득했다. 마치 목숨을 앗아가려고 저승에서 넘어온 저승사자 같았다. 전연우가 그녀의 목을 졸랐다.

“왜? 왜... 왜 그렇게 애를 못살게 구는 거야?”

“장소월... 네가 죽었어야지!”

“장가 모두 다 죽일 놈들이야!”

그제야 장소월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전연우가 진짜 그녀를 죽이고 싶어 한다는 걸 말이다.

백윤서의 죽음은 그녀의 끝나지 않는 악몽이었다...

그녀 또한 백윤서를 죽게 만든 간접적인 범인이었다.

백윤서가 죽은 뒤 몇 년 간, 장소월은 단 하루도 단잠을 이룬 적이 없었다...

백윤서에게 빚진 건 이번 생에 잘 갚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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