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전연우가 송시아와 결혼한 이유도 송시아의 생김새가 백윤서랑 조금 닮아있어 백윤서 대용품으로 곁에 두고 있었다.장소월은 집안을 제외하고 성적이든 외모든 어릴 때부터 쭉 백윤서에게 밀렸었다.백윤서와 전연우 사이의 감정은 철근으로 만든 성벽처럼 단단했고 그 누구도 무너트릴 순 없었다.전연우가 백윤서에 대한 사랑은 뼈에 새길 만큼 깊었다.장소월은 전연우에게 그저 원수의 딸일 뿐이었고 일말의 감정도 없었다.노크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장소월은 입술을 깨물었다. 전연우는 그녀에게 인내심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었다.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전연우는 오늘 저 문을 부시고도 남을 것이다.장소월은 불을 켰다. 이불을 거두고 신발을 챙겨 신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물을 열고는 잠에서 덜 깬 듯 눈을 비비며 말했다.“오빠? 왜 온 거야? 미안해. 내가 너무 깊게 잠들어서 못 들었나 봐. 무슨 일이야?”전연우의 진한 눈썹이 구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진짜 졸음을 무릅쓰고 일어나 문을 열어준 걸 보고는 미간이 살짝 풀렸다. 눈빛이 부드러워지는 듯하더니 그녀의 이마 쪽으로 손을 갖다 댔다.장소월이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몸을 돌려 테이블로 걸어가 컵에 물을 따랐다. 그러면서 감정을 잘 숨기려고 애썼다.전연우의 눈빛이 다시 차가워지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손을 거두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다.장소월은 마음이 불안해졌지만 지금의 전연우는 자신을 싫어하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이내 불안했던 마음이 다시 진정되었다.전연우가 핑크로 도배된 소녀의 방을 훑어보았다. 방안에는 잔잔하게 달콤한 냄새가 깔려있었다. 그의 차에서 나는 냄새와 같았다. 예전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컨디션은 괜찮아졌어?”전연우가 아무런 기복이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장소월은 컵을 내려놓고 책상 앞에 놓인 걸상을 빼서 앉았다. 그러면서 그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관심 고마워요 오빠. 많이 좋아졌어.”전연우가 다가선다. 그의 몸에서는 담배와 술이 섞
전연우가 떠난 뒤, 장소월은 편하게 잠에 들었다.환생한 후 백윤서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더 이상 무서운 악몽에 시달리지 않았다.다음날, 장소월은 위층의 시끄러운 발소리에 뒤척이다 눈을 떴지만 별로 피곤하진 않았다.죽기 전 항암치료를 받는 몇 개월 동안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매일 밤 뼈가 끊어질 듯한 아픔에 시달렸고 머리카락이 수도 없이 빠졌다. 그녀도 항암치료 때문에 그렇게 많은 머리카락이 빠질 줄은 생각도 못 했다.전생에서 그녀는 늦잠을 자는 것을 좋아해서 아침에 시끄럽게 깨우면 짜증을 내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상하게도 시끄러워 잠에서 깨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그녀는 핸드폰을 보고 이제야 8시를 조금 넘긴 것을 확인했다.아줌마는 그녀의 늦잠 자는 습관을 알기에 일반적으로 위층에 올라오지 않았다. 장소월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잠에 들려고 눈을 감았다.전연우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그녀의 변화가 크다면 분명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다시 잠에서 깨니 11시쯤이었다. 장소월은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이를 닦았다.아줌마가 노크하고 말린 이불을 안고 들어왔다. “아가씨, 점심 준비가 끝났습니다. 연우 도련님께서 잠깐 돌아오셔서 아가씨와 함께 식사하시겠다고 하십니다.”장소월은 이를 닦으며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차가운 물로 세수하던 그녀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았다. 화장하지 않아도 우유처럼 희고 부드러운 피부에 양쪽 볼은 복숭앗빛이 돌며 젊고 생기 있는 모습이 죽기 전 야위어서 마른 나무껍질처럼 초췌하던 모습과는 비교가 되어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얼굴을 만져 보았다. 사실 그녀는 예쁘장하게 생겼다. 쌍꺼풀 짙은 눈에 맑게 빛나는 눈동자가 무표정일 때는 아련하면서도 괴롭혀 주고 싶을 만큼 순진무구해 보였다.전생에서 그녀의 성격은 지금 생각해도 미움받을 만큼 안하무인에 제멋대로인 재벌 집 아가씨였다.장해진의 외동딸이라는 신분으로 가지고 싶은 건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다. 전연우도 포함되었다.“알겠
장소월은 의자에 앉아 책상에 놓여 있는 백윤서가 준 선물을 뜯지 않은 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뜯어 보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머리핀일 것이다. 2000년, 평균 월급이 고작 몇만 원이던 시대에서는 귀한 물건이었다. 그녀는 액세서리를 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액세서리를 하면 꼭 목줄에 얽매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심리작용이겠지만 그녀를 불편하게 했다.별로 펼쳐보지 않아 새 책 같아 보이는 고등학교 삼 학년 문제집을 펼쳐 보니 그녀가 풀기에 어려운 문제는 없었다. 예전에 장소월의 성적은 반에서 거의 꼴찌였다. 대학에 가기 위해 그녀는 전연우가 퇴근하고 나면 그에게서 과외받았다.전연우는 중졸이지만 5개 외국어에 능통했고 다양한 지식을 오직 자기 힘으로 공부했다. 그의 학습 능력으로 그녀의 학교에 있었다면 아마 전교 일 등은 물론이고 수능 만점도 가능했을 것이다. 전연우처럼 똑똑하면서도 노력하는 사람은 언제나 기적을 만든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장해진의 눈에 들 수 있었을까.장해진은 그녀의 성적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학업보다 장해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녀가 흥미를 느끼는 것들이었다. 장해진은 그녀를 명문가의 규수처럼 키우려고 무용, 피아노, 골프, 요리 그리고 자수 등 다양한 것들을 배우게 했고 더 엄격하게 개인레슨을 받도록 했다. 그는 이미 다 계획하고 있었다. 그녀가 20살이 되면 비슷한 조건의 집안과 정략결혼으로 가장 가치 있는 사업 파트너를 얻어 두 집안의 기업을 더욱 강대하게 하는 것이다. 장해진는 여자가 재능이 없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여자는 결국 결혼해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공연히 밖에 나돌지 않고 집안일에 신경 쓰고 남편을 잘 섬기며 자녀를 양육하는 현모양처면 충분할 뿐이었다.장소월은 창밖으로 검은색 차량이 대문을 나서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떠났나 보다.장해진은 아마도 한 삼 일 뒤에 돌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어렵게 얻은 짧은 자유시간이
발 디딜 틈 없는 방안에서 소년은 휠체어에 앉아 오랫동안 자르지 않아 눈을 가리는 앞머리 아래로 바닥에 뿌려진 유리 조각들 사이 커터칼을 서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머릿속에서 괴로운 외침이 들리는 것 같았다.‘뭘 망설이는 거야. 한 번에 그어버려. 한 번의 아픔으로 모든 고통은 사라질 거야! 너희 아빠 엄마 이혼하고 각자 재혼하셔서 아이도 있잖아. 넌 버려졌어.”‘빨리 죽어버려! 죽으면 벗어날 수 있어!’‘당신들은 서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결혼 한 거야! 왜 나를 낳았어!’‘각자 가족이 생기면 나는 어떡하라고? 난 도대체 뭐냐고.’강영수의 눈빛이 점점 더 강렬해지고 결의에 차 있었다. 손으로 휠체어를 짚고 일어나자 두 다리로 설 수 없어 바닥에 넘어졌다. 손바닥은 유리 파편들이 박혀 피가 흘렀고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파편 속으로 손을 뻗어 커터칼을 잡고 천천히 위로 올려 날카로운 칼날을 빼냈다. 살짝 손목을 긋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그가 커터칼을 손목에 가져다 댄 바로 그 순간 창밖에서 대추 한 알이 날아 들어와 그의 옆에 떨어졌다.한 알, 또 한 알...대추 알들은 하나같이 크고 마치 바닥에 물든 피처럼 붉었다.강영수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부신 햇빛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뜰 수 없었다. 조금 있다가 대추 한 알이 그의 머리로 날라왔다.‘아파!’머리에 맞은 대추 알이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구석으로 굴러갔다.한 소녀의 차분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창밖에서 들려왔다.“그거 우리 집 대추야. 먹어봐. 하루 종일 방안에만 있지 말고 그러다 병나. 혹시 대추 더 먹고 싶으면 나 찾아와. 쑥스러워하지 말고. 너도 맛있는 거 있으면 나한테 던져 나눠 먹자. 맞다, 나는 장소월이라고 해. 내가 매일 찾아와서 놀아줄게, 좋지?”장소월의 목소리가 꽤 컸는지 별장에서 있던 가사도우미가 놀라서 달려 나왔다.“누구세요? 말소리가 정원에서 들린 것 같았는데?”장소월은 어깨를 움츠리고 조심조심 벽
장소월은 주머니 안에 대추를 다 꺼내 씻어 거실 테이블에 두고 티브이를 켰다. 대추가 담긴 그릇을 품에 안고 맛있게 먹었다.아줌마는 주방을 청소하고 나오면서 꼬질꼬질한 채로 소파에 누워있는 장소월을 보고 손을 들어 때리는 시늉을 했다.“이런 말썽꾸러기를 봤나. 오늘 금방 새로 바꾼 소파 시트를 더럽게 하면 어떡해요. 어서 방에 가서 옷을 바꿔 입으세요.”장소월은 맨발로 바닥을 딛고 일어섰다. 아줌마 마을 듣지 않고 소파 뒤로 가서 숨으며 웃었다.“아줌마 조금 있다가 또 바꿔요! 나 지금 힘들어서 누워있고 싶단 말이에요.”“장난치지 말고요. 이렇게 체통 없는 모습 주인님께서 아시면 어떡하시려고요. 돌아오시면 또 혼나시려고. 아가씨 어서 말 들으세요. 방에 가서 옷 바꿔입으세요.”“이것만 다 보고요. 몇 분 남지 않았어요.”장소월은 아줌마에게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안 돼요. 더 이상 협상은 없어요. 곧 시험인데 티브이만 보시면 어떡해요. 제가 끌 테니 올라가서 공부하세요.”마침 이때 장소월의 등 뒤에서 전연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명월아. 아줌마 심장 안 좋으쇼. 화나게 하지 마!”장소월은 멈칫하더니 새침하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백윤서하고 같이 나가더니 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지? 내가 같이 안 갔으니 바라던 대로 백윤서와 밖에서 지내는 거 아닌가? 그리고 이 집에서 나 혼자 즐겁게 살면 되는데.’아줌마는 전연우를 맞이했다.“도련님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전연우는 손에 들려 있던 키를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회사에 긴급회의 때문에 자료 가지러 왔어요. 저녁쯤에 데리러 올 테니 윤이 잠깐 여기서 기다리게 하려고요.”장소월은 티브이에 집중한 척하며 그들의 대화를 무시했다.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전연우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허리까지 오는 머릿결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말했다.“티브이 그만 보고 공부해. 곧 시험이잖아? 오늘 밤 돌아와서 검사할 거야!”장소월은 그가 바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루 24시간 밥
방으로 돌아온 장소월은 더러워진 옷을 벗어 놓고 옷장 앞에서 옷을 고르고 있었다. 옆방에서 전연우의 목소리가 들렸다.“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 마치고 금방 돌아올게!’백윤서는 사려 깊게 대답했다.“난 괜찮아요. 어서 가서 일 봐요. 난 여기서 오빠 기다릴게요.”“그래. 피곤하면 내 방에서 쉬어. 침대 시트 새 걸로 바꿨으니까.”“네, 알겠어요.”떠나가는 발소리를 듣고 장소월은 그가 나간 줄 알고 한숨을 돌리려던 찰나 벌컥 방문이 열렸다. 순간 장소월은 얼굴이 화르르 불타는 것 같았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에 들고 있던 옷으로 급하게 몸을 가렸다. 전연우는 그녀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뒷모습에 놀라 문고리를 잡았던 손은 얼어붙고 급하게 시선을 돌렸다.장소월은 18살밖에 안 됐지만 또래들보다 훨씬 몸매가 좋았다. 장소월의 눈동자가 떨렸다. 부부로 산 세월이 몇 년인데 그동안 잠자리도 수없이 가졌고 볼꼴 못 볼꼴 다 본 사이였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장소월은 마음이 복잡했다.처음 전연우를 만난 것처럼 무언가에 홀린 것 같았다. 그가 방금 어디까지 봤는지 모르겠다. 장소월은 돌아서지 못하고 빨리 원피스를 입고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오빠 무슨 일 있어요?”전연우는 주머니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책상에 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백화점 문화 상품권인데 옷이나 액세서리 필요하면 사. 윤서랑 너 각각 한 장씩이야.”“네, 고마워요. 오빠.”전연우는 급하게 문을 닫고 나갔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몸 안에 잠재되어 있던 욕망이 마치 짐승처럼 마구 요동쳤다. 그렇게 몇 초 후 전연우는 발걸음을 떼어 회의 자료를 갖고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핸들을 잡고 아까 소녀의 관능적인 허리선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장소월?’그가 미치지 않고서야!전연우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액셀을 밟아 장가네 대문을 신속하게 빠져나갔다.장소월은 방안에서 공부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머리를 식히려고 문을 열었는데 마침 위층으로 올라오
산산한 저녁 바람이 창밖에서 불어왔다. 복도에서 나는 다급한 발소리에 장소월은 잠에서 깼다. 앞이 뿌옇게 잘 보이지 않아 눈을 깜빡이며 창밖을 보니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순간 그녀는 더 자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백윤서가 끊임없이 사과하는 소리에 장소월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몰라 잠이 덜 깬 눈으로 바닥을 딛고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눈을 가늘게 뜬 장소월은 문 앞에 서 있는 뒷모습에 깜짝 놀랐다.“오빠, 회사 일 끝났어요?”장소월이 잠든 지 1시간쯤 전연우가 돌아와 백윤서를 데리고 쇼핑하러 갔었다. 두 사람이 돌아왔을 때 전연우는 방에 무언가 빈자리가 느껴져 살펴보니 장소월이 생일선물로 준 인형이 사라진 것이다.백윤서는 눈시울이 붉어져 불쌍하게 장소월을 쳐다보았다.“소월아...”전연우는 몸을 살짝 앞으로 해 백윤서를 막아섰다. 그의 표정은 애써 침착한 듯 보였지만 눈가에 희미하게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 “명월아, 미안해. 네가 선물해 준 인형 내가 조심하지 않아 조금 망가졌었는데 윤서가 모르고 안 쓰는 물건인 줄 알고 버린 거야!”아줌마도 나서서 말했다.“제 잘못이에요. 제때 윤서 아가씨한테 알려줬어야 했는데.”모두가 장소월이 불같이 화를 낼 것이라 예상하였다. 하지만 장소월은 그저 괜찮다는 듯이 웃었다.“그랬어요? 근데 좀 아깝다. 그거 한정판 인형인데.”이 세상에서는 우는 아이에게 사탕이 주어졌다. 그녀의 잘못도 아닌데 백윤서가 우니 용서하지 않은 그녀의 잘못 같았다. 전생에서 그녀가 싫어한 이유도 백윤서가 전연우의 마음을 차지한 것도 있었지만 이렇게 나약한 척 울고불고 연기하는 것이 제일 싫었다.이번 생에도 여전히 그런 모습이 싫었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전연우는 장소월의 싸늘한 표정을 지켜보고 입을 열려는데 장소월이 먼저 말했다.“오빠가 그렇게 좋아하면 올해 생일에도 하나 선물해 줄게요. 그러면 선물 고를 걱정도 덜고”백윤서가 나서서 말했다.“소월아 내가 진짜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장소월은 눈을 깜빡이
장소월은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보통 학교처럼 넓고 촌스러운 것이 아닌영국식 스타일의 블랙으로 돼 있어 매우 격식이 있어 보였다. 신발도 통일된 구두였고 가방도 학교에서 특수 재료로 특별 제작한 것이다.제운고등학교의 맞은편에는 공립 중학교인 서울 제2중학교가 있었는데 공립 학교 중에서는 명문 학교였다. 여기서 공부할 수 있는 학생들은 모두 지능이 뛰어나고 똑똑하며 미래의 나랏일에 도움이 되는 엘리트들이다.제운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가족의 배경과 재력이 상당하다.서울 제2중학교의 학생들은 가난한 집안의 자제였는데 모두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 낸 것이다.신분 계층의 다름이 달라 두 학교의 학생들은 수년간 서로 무시하며 적대감을 느끼고 있었다.장소월이 잘못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수많은 검은색 승용차 중에서 그녀는 전연우의 아우디를 보았다. 그녀는 차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지만 의외로 차는 맞은 켠 학교에 멈춰 섰다.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전연우와 백윤서가 차에서 내렸다.‘설마 전연우가 백윤서를 서울 제2중학교에 보내는 것은 아니겠지?’등 뒤의 시선을 느낀 전연우가 뒤돌아보니 검은 교복에 짧은 치마를 입은 채 얌전하게 서 있는 장소월과 눈이 마주쳤다.그녀는 머리를 질끈 묶고 있었는데 키가 커서 사람 중에서 매우 눈에 띄었다.그가 뒤돌아볼 줄 몰랐던 장소월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눈인사를 건넸다.“소월아—”장소월은 눈길을 돌려, 양 갈래 머리에 검은 스타킹을 신고 통통한 안경을 쓴 통통한 여학생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오는 것을 보았다.서문정은 거센 숨을 내쉬며 손에 책을 든 채 물었다.“소월아, 드디어 돌아왔구나. 아프다고 휴가를 냈다고 들었는데 이젠 괜찮은 거야?”서문정은 교육청 청장의 딸이고 소월이와 같은 반이다.제운고를 다니는 학생들의 신원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응, 많이 좋아졌어.”“어라? 오늘 화장 안 했어? 오늘 되게 차분해 보여. 평소에는 항상 화가 난 표정이었는데 사람이 확 바뀐 것 같다?”예전에 장소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