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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Author: 차라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0-29 19:42:56
강만옥은 하이힐을 밟고 긴 곱슬머리를 어깨 뒤로 늘어뜨린 채 요염하게 걸어왔다.

“소월아, 뭐해? 선생님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줄 수 있어?”

그녀가 손을 내밀자 장소월은 눈살을 찌푸리며 뒤로 몇 발짝 물러섰다. 그리고 바닥에 있던 도시락통을 줍고 아무 말 없이 교실을 나갔다,

복도를 걷는 장소월은 평온한 얼굴이었지만 가슴은 전혀 느껴보지 못한 숨 막힘을 느껴졌다.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목적을 가지고 그녀를 접근했고 그 누구도 그녀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다!

첫 번째는 전연우다. 그녀의 사랑을 이용해 달콤한 속삭임으로 유언장을 훔쳐 갔고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그녀는 바로 버려졌다.

두 번째는 강만옥이다. 학교에서 항상 따뜻하게 챙겨주고 속마음도 들어주며고 심리상담까지 해주며 갖은 수단과 방법을 이용해 그녀에게 접근했다. 그 이유는 장해진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였고, 장가로 들어가자 전연우와 연합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장해진을 살해했다.

세 번째는 송시아다. 한때는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

거짓이었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장소월은 다른 강의실 건물로 가서 도시락통을 꺼내 깨끗이 닦았다. 쇳내에 비린내까지 섞인 그 냄새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흘러나오고 있었고 손목에 있는 상처를 적셔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장소월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얼어붙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한 듯 도시락통을 깨끗이 씻어내니 상처 부위는 하얗게 변했고 핏자국이 은은하게 퍼져 보기 흉하고 끔찍했다.

모든 것을 마치고 떠나려던 중,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누군가가 검은 봉지로 그녀의 머리에 뒤집어씌우고 거대한 힘으로 그녀를 밀쳤다. 머리가 벽에 부딪혀 심한 통증이 전해왔다.

누군가 발로 그녀의 등을 찼고 주먹으로 얼굴을 내리치기도 했다. 주먹이 한대, 또 한대 날아왔고, 발길이 한 번 또 한번 내리쳤다. 통증이 온몸에 퍼졌고 그녀는 아프다는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녀는 제대로 보지 못했고 도대체 몇 사람이 움직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들의 분풀이가 끝나가자 그녀는 반쯤 죽은 상태로 화장실로 끌려갔고 머리에 씌워진 봉지가 사라졌다. 그녀는 의식이 혼미한 상태였고 영혼도 탈탈 털린 듯했다.

귓가에서는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손목에 있던 상처는 조금 전 반항으로 다시 벌어져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는데 흥건히 젖은 바닥이 보기만 해도 몸서리칠 지경이었다.

그녀는 살고 싶은 마음에 마지막 희망의 끈을 잡고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에 전화를 걸었다. 전연우였다.

...

「뚜뚜뚜~」

핸드폰 진동 소리에 전연우는 발걸음을 멈췄다. 핸드폰 화면에 뜬 이름을 보자 길게 째진 눈을 불쾌한 듯 살짝 찌푸렸다. 그러고는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백윤서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조심스레 물었다.

“오빠, 누구예요? 바쁘시면 저한테 신경 안 써도 돼요. 저 진짜 혼자도 괜찮아요!”

전연우는 아무 일도 없는 듯 가볍게 말했다.

“스팸이야, 신경 안 써도 돼!”

장소월이 결국은 참지 못하고 또다시 귀찮게 하는 줄 알았다.

“네.”

백윤서는 밝게 웃으면서 양손에 방금 산 아이스크림을 들고 그중 하나를 전연우에게 건넸다.

“오빠, 제가 사 온 거예요! 한번 먹어봐요!”

전연우는 디저트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건네받았다.

백윤서가는 한입 먹자 부드럽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은 바로 녹았다.

“몸도 안 좋은데 찬 거 많이 먹으면 안 돼. 배 아플 수도 있어.”

전연우는 걱정된 듯 눈썹을 찌푸리며 따뜻한 말투로 혼내듯 말했다.

백윤서는 장난스럽게 혀를 빼꼼 내밀었다.

“오빠, 같이 영화 보러 와줘서 진짜 고마워요. 그런데 진짜 일에 방해되는 거 아니에요? 사실 매일 같이 있어 주지 않아도 돼요. 저 혼자서도 괜찮아요.”

백윤서는 일하느라 바쁜 전연우가 하교 때 학교 앞에서 기다려 주고 영화까지 같이 봐줄 거라 상상도 못 했다.

전연우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입을 열었다.

“요즘 회사가 안 바빠. 너랑 같이 있는 게 더 중요해. 가자, 영화 시작하겠다!”

백윤서는 전연우 손에 들고 있는 영화표 두 장을 보더니 입술을 앙다물며 말했다.

“오빠, 소월이는 안 와요?”

“소월이는 학교 끝나고 또 수업이 있어서 우리랑 같이 안 봐.”

“그래요 그럼! 우리끼리 봐요!”

백윤서는 자연스럽게 전연우의 팔짱을 꼈다.

둘이 함께 본 영화는 멜로였지만 결말은 새드엔딩이었다. 영화 속 남자주인공은 죽었고 여자주인공 혼자만 남아서 쓸쓸하게 늙어갔다.

전연우는 백윤서가 아직 영화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수심에 찬 듯한 모습을 보고 같이 쇼핑하기로 했다. 백윤서에게 올해 신상으로 옷을 많이 사줬는데 너무 많이 사 양손 가득 들고 나머지는 직원이 택배로 보내 주기로 했다.

쇼핑을 끝내고나니 이미 저녁 8시였다.

날은 벌써 어두워졌고 불빛이 모두 켜졌다. 번화한 거리와 차들이 오가는 광경이 참 예뻤다.

백윤서는 기분 좋게 조수석에 앉았다.

“오빠, 오락실 진짜 재밌었어요. 다음에 또 가요!”

전연우는 거절하지 않았고 온화한 미소로 답했다.

“좋아, 오고 싶을 때 얘기해. 최대한 시간 맞춰 볼게.”

전연우는 백윤서에게 다가가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금세 가까워졌고 그는 소녀의 특유한 냄새를 맡았다.

이 냄새는 장소월의 냄새와 달랐는데 유난히 더 달콤했다. 순간 그날 장소월의 가늘고 섹시한 몸매가 전연우의 뇌리를 스쳤다.

백윤서는 어렸을 때부터 전연우와 함께 자랐지만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모습을 보니 자기도 모르게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백윤서는 숨을 죽이고 잔뜩 긴장했다.

전연우는 눈을 내리깔고 몸을 돌려 핸드폰을 확인했다.

장소월이 걸어온 전화와 장가네 별장에서 걸어온 전화까지 수십 통의 전화가 걸려왔었는데 핸드폰을 음소거한 바람에 전화를 한통도 받지 못했다.

전연우가 눈썹을 찌푸리며 콜백을 하려던 찰나, 전화가 다시 걸어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아줌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연우 도련님, 아가씨와 함께 계십니까?”

“아니요. 무슨 일 있으세요?”

전연우는 차분하게 말했다.

“네? 아가씨와 함께 있지 않으십니까? 그럼 어디로 가셨을까요?”

“네? 소월이 사라졌습니까?”

전연우의 얼굴빛은 순식간에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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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에 입원한 지 보름 만에 퇴원했다. 이 시간 동안, 장소월은 마냥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몸을 회복하는 동시에 시험지도 잊지 않고 몇 세트 풀었다.그 사이 전연우는 아무리 바빠도 꼭꼭 와서 장소월이 풀었던 시험지를 봐주곤 하였는데 틀린 곳을 발견하면 제때 알려줬고 차근차근 설명도 해주었다.쉬는 시간, 전연우는 평소에 장소월이 시간을 느긋하게 보낼 수 있게 하려고 그녀의 핸드폰에 몇몇 자신의 회사에서 새로 개발한 심심풀이용 게임을 다운로드해주었다.하지만 장소월은 게임을 거의 하지 않았고 대부분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였는데 몇 개월 남지 않은 중간고사가 장소월이 장가네를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에 열심히 해야만 했었다.‘전연우와 장해진의 싸움에서 멀어져야 해...'전연우는 장소월의 퇴원 절차를 도와주었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통증은 가시지 않았지만, 전보다 많이 좋아졌고 몸의 상처도 겉의 딱지가 거의 모두 벗겨지고 그 위에 새로운 피부가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가려운 건 어쩔 수 없었다.이번에 전연우가 장소월한테 그나마 시간을 투자한 것은 단지 장해진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밖에서 모두가 말하기를 전연우는 그저 장해진이 옆에서 키운 개에 불과하다고 한다.하지만 장소월만이 알고 있었다. 사실 전연우는 한 마리의 호시탐탐 목표물을 노리고 있는, 어둠 속에서 배회하고 있는 야생 늑대라는 것을.언제든지 사람을 눈 깜빡 안 하고 죽일 수 있는 짐승이라는 것을 말이다.그는 무엇을 하든지, 그가 하는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다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다.그의 친절은 여태껏 헛되이 준 적이 없다.장소월은 전연우의 뒤를 따라 아우디 차 앞으로 갔다.이미 조수석 뒷좌석에 앉아 있는 백윤서를 보자마자 장소월은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백윤서에게서 흘러나오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차 앞으로 돌아 운전석 문 앞에 서서 장소월을 바라보던 전연우는 무엇을 발견했는지 대뜸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늘 네가 퇴원했잖아. 마침 윤이도 같이 데리고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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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월아.”장소월은 비몽사몽 해서 눈을 떴다. 그녀의 눈에 전연우의 예리하고도 어딘가 음침한 눈동자가 들어왔다. 장소월은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반응이 다소 과하게 몸을 뒤로 젖혔다. “오빠... 왜... 왜 그래요?”전연우는 그녀를 차갑게 보면서 말했다. “집에 도착했어. 어서 내려.”“아... 네...” 전연우는 곧바로 차에서 나왔고 장소월이 안전벨트를 풀려던 찰나, 차 위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보고는 곧바로 뜯어버렸다.그리고 차 위에 놓인 물건들, 냄새를 제거하는 향수까지 모조리 깨끗이 치웠다.장소월이 차에서 내리자, 전연우는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물건을 보았지만 모두 각자의 침묵을 지키며 서로 입을 열지 않았다.괜히 어떤 말을 꺼냈다가 자칫하면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더 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였다.장소월이 현관문에 들어서자, 아줌마가 반겨주셨다. “오늘 집에 손님이 오셨어요. 일단 먼저 손부터 씻고 나서 밥 드세요.”장소월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손님? 누구요?”“아가씨 담임 선생님이라던데요.”‘강만옥?’장소월은 순간 가슴이 꽉 막힌 것만 같았다. ‘강만옥이 어떻게 여기에 왔지?’‘일부러 장해진인데 접근하려고 왔나?’‘아니면 전연우와의 계획이 앞당겨졌나?’장소월은 손이 덜덜 떨렸고 눈 밑에 어두운 빛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지만 너무나도 빨라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였다.“그럼 강 선생님은요?”그녀는 지금 서재에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듣자니 네가 학교에 있었던 그 일 때문이라고 한다.전생에 장소월에게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가 다시 태어나면서 원래의 운명이 흘러가야 하는 방향을 바꾸었기 때문에 지금의 어떤 일도 함께 바뀐 것 같았다.전연우는 그녀를 지나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백윤서의 곁으로 갔다.그때 위층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님,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소월에 관한 일은, 이후에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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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65화

    간호사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남자친구분 잘 지켜보셨어야죠. 링거액이 다 떨어졌잖아요. 지금 병원이 너무 바빠서 저희 간호사들도 병실 하나하나 다 신경 쓸 수는 없어요.”소민아가 미안함에 말했다.“서류를 가지러 회사에 다녀왔어요. 그런데... 저 이분 여자친구 아니고 비서예요.”간호사가 말했다.“환자분이 의식을 잃은 상태로 계속 가족분의 이름을 부르고 계세요. 얼른 가보세요. 환자분을 혼자 오래 두면 안 돼요.”소민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소민아가 병실에 들어가 보니 신이랑은 눈을 뜨고 누워있었다. 그녀가 다급히 들고 있던 물건을 내려놓고 다가갔다.“이랑 씨, 깼어요? 몸은 좀 괜찮아졌어요?”신이랑은 흐릿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손을 뻗자 소민아는 얼른 그의 손을 잡아 이불 속에 넣어주었다.“푹 쉬어요. 제가 옆에 있으니까 불편한 게 있으면 부르고요.”“가, 가지 말아요.”그는 꽉 잡은 손을 좀처럼 놓지 않았다.“이랑 씨, 저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어요. 내일 보내줘야 해요.”신이랑이 머물고 있는 곳은 VIP 병실이라 주방에 모든 시설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녀는 전화로 죽 두 그릇을 주문한 뒤...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다.저녁 10시, 신이랑의 체온은 많이 안정되었다. 본래 몸이 좋지 않긴 했지만, 이렇게 하룻밤 사이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까지 하다니.소민아는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배고픔이 느껴지고 나서야 자신이 아직 죽을 받아오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지금 시간엔 병원에도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VIP 병동은 무서울 정도로 으스스하고 고요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보니 프런트에 놓은 음식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음식을 들고 다시 위로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던 중, 왼쪽 코너 쪽 병실에서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기성은이 왜 여기에?소민아는 다시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병원에 왔으면서 왜 그녀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64화

    신이랑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녀의 몸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소민아는 몸을 뒤로 젖히며 그를 껴안았다. 그의 정상적이지 않은 체온을 느낀 그녀가 다급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신이랑 씨!”그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소민아는 잠시 그를 부축해 소파에 눕힐 수밖에 없었다.“열이 왜 이렇게 나는 거예요?”소민아가 핸드폰을 켜고 구급차를 부르려 한 순간, 그 뜨거운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생명줄이라도 되는 듯 힘껏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소민아는 통화를 마친 뒤 손을 뻗어 그의 이마에 가져갔다.“구급차가 곧 올 거예요. 조금만 참아요.”소민아는 착잡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금방 들어왔을 때 그가 했던 말을 그녀는 모두 똑똑히 들었었다.자신을 좋아해 달라던 그 말까지도...소민아는 신이랑이 자신과 같은 사람을 좋아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신이랑처럼 좋은 사람은 응당 예쁘고 부드럽고 현숙한 주가은 같은 부잣집 아가씨와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기성은에게 들은 바로는 신이랑의 신분도 실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그의 가족들 또한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신이랑은 구급차에 앉아 함께 병원으로 들어갔다.신이랑은 열이 39도, 아니 40도까지 치솟아 올랐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결과가 어땠을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신이랑은 해열제 주사를 맞은 뒤 이어 링거를 꽂고 침대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옆에서 노트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소민아는 그렇게 하루종일 병원에서 그를 보살폈다. 저녁 여섯 시가 되니 배가 고파와 병원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그때, 여자보다 더 여자같이 생긴 하얀색 옷차림의 남자가 마스크를 하고 그녀의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소민아는 의아함에 천천히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어디에선가 본 것처럼 익숙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하지만 지금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그녀는 내려갔던 김에 서류를 가지러 다시 회사에 돌아갔다. 신이랑이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63화

    소민아는 기성은의 팔짱을 끼고 친밀하게 손을 잡고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오늘 어디에 가는 거예요? 언제 돌아와요? 퇴근할 때 저 픽업할 수 있어요?”기성은이 대답했다.“상황 봐서요. 매일 오늘처럼 한가한 건 아니거든요.”소민아가 불만이 가득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기성은 씨 이젠 회사에도 안 나가잖아요. 대체 뭐 하느라 그렇게 바쁜 거예요? 어제 저랑 사귀어보겠다고 했잖아요. 그럼 절 첫 순위에 올려놓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면 솔직히 말해봐요. 뭘 하러 가는 건지!”그가 하는 일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알려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여 당연히 그녀에게 알려줄 수 없었다.대표님이 의식불명으로 누워계시니 그 또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송시아는 회사를 통째로 집어삼키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때문에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눈앞의 일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것이다.그에게 있어 소민아는 부담이고 약점일 뿐이다. 어떤 말은 솔직히 말할 수 없으니 그저 그녀의 열정이 자연적으로 꺼져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민아 씨 앞가림이나 잘해요.”기성은이 결국 뱉어낸 말은 그 한 마디였다.지금은 출근 시간이라 차가 꽤 막혔다. 소민아는 선명히 뾰로통해진 얼굴로 손에 요구르트를 들고 앉아있었다.이번 생에 기성은이 그녀를 달래주는 날이 오긴 할까.그들은 출근 시간 10분을 남겨두고 성세 그룹 맞은편에 도착했다. 회사에 뛰어 들어간다면 3분이면 충분히 출근 도장을 찍을 수 있다.“아직도 뭘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기성은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소민아가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그의 입가에 키스했다.“일 끝나면 전화해요. 성은 씨가 절 데리러 오든, 제가 성은 씨한테 가든 같이 있어요, 우리.”기성은은 그 키스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굳어버렸다.소민아는 안전벨트를 풀고 바람을 맞받아 몸을 움츠리고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시간 맞춰 도착해 지각은 하지 않았다.소민아가 뒤돌아보니 기성은은 아직 그 자리에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62화

    침대에서 뒹구는 법이라곤 없는 기성은은 그녀가 계속 잠을 청하려 하자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소민아가 단번에 그를 끌어당겨 침대에 눕혔다.“아직 여섯 시밖에 안 됐단 말이에요. 출근 시간까지 한 시간이 넘게 남았어요. 조금 더 자요.”“소민아 씨!”기성은은 이렇게까지 머리 아프게 만드는 사람은 종래로 만나본 적이 없다. 소민아가 강제로 기성은의 팔을 끌어당겨 팔베개를 시켰다.기성은의 차가운 목소리가 내려앉았다.“남녀가 유별하다는 말 몰라요? 소민아 씨, 선 지켜요.”소민아는 눈을 감고 태연하게 그의 말을 받아쳤다.“이봐요, 아저씨. 지금이 조선 시대인 줄 알아요? 어떻게 그렇게 보수적일 수가 있어요? 여자친구 사겨본 적 있기는 해요?”기성은은 도저히 팔을 빼낼 수가 없었다.“내가 못해본 것 같아요?”소민아가 몸을 돌려 그와 눈을 맞추었다.“그 주가은 씨랑은 어떤 사이에요? 정장은 왜 벗어준 거예요? 추워 보여서 그랬어요?”소민아가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그의 이마에 가져갔다.“얼른 솔직히 말해봐요. 주가은 씨랑 대체 무슨 관계인 거예요? 어젯밤... 기성은 씨 만나러 집에 왔었어요. 제가 우리 두 사람이 사귀기로 했다니까 얼굴이 확 어두워져서 돌아갔고요.”소민아는 자세히 그의 얼굴 표정을 살폈다. 더 캐묻지도, 화를 내지도 않는 것이 별다른 느낌이 없는 듯했다.그가 말하려 하지 않자 소민아가 말을 이어갔다.“연애할 줄 모르겠으면 제가 가르쳐줄게요. 가장 중요한 건 성실해야 한다는 거예요. 빨리 얘기해요.”기성은이 은하수를 담은 듯 반짝거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피하며 말했다.“주가은은 서울시 시장 딸이에요. 얼마 전 주지웅이 주가은을 대표님에게 소개해주려고 저녁 식사 자리를 만들었는데 대표님이 못 가게 되셔서 내가 대신 갔었어요.”“그날 엘리베이터에서 주가은의 뇌전증이 발작했고, 내가 마침 거기에 있어서 도와줬었죠.”너무 조용하다는 생각에 내려다보니 소민아는 어느새 또다시 잠들어 있었다.기성은이 천천히 팔을 빼내고 침대에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61화

    “제 아빠는 데릴사위였어요. 부모님 두 분 모두 과학자여서 매일 연구원에서만 지냈어요. 그래서 전 태어나자마자 고모 댁에 보내졌죠. 엄마아빠의 유전자를 이어받아서인지 별로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서울대에 입학했어요...”소민아의 말이 채 끝나지 않았을 때 옆에 놓아두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신이랑이 걸어온 전화였다.“이랑 씨도 오겠다고 했던 걸 깜빡했어요. 잠깐만 기다려요. 전화 받고 올게요.”기성은이 깊은 눈동자로 아직 그녀의 온기가 남아있는 의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과거는...암흑 그 자체이다.그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그가 살았던 곳은 음산하고 차디찬 지하실이었다. 그곳에선... 명령에 따라 앞뒤 가리지 않고 손에 칼을 들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그야말로 나라의 관리가 손닿지 않는 혼란의 세상이었다.누군가 그랬다. 어머니는 기생이고, 아버지는... 마약범이라고. 하여 그는 태어난 뒤 바로 버려졌고, 그래서 이름도 없는 거라고...그의 머릿속 첫 기억은 음습하기 그지없는 시궁창이었다.그때의 참담한 경험이 지금 그의 모습을 만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아무 감정 없는 기계 같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다.그의 인생을 바꿔준 한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바로 전연우다!당시 기성은은 변경에서 마약 거래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연우를 만났고, 그가 다치고 베이고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기성은을 변경 시궁창에서 빼냈다.전연우가 말했다.“나한테 목숨 빚졌으니까 앞으로 나 따라다녀.”“네.”“지금 이름은 너한테 어울리지 않아. 앞으로는 기성은이라고 바꿔.”“네.”...소민아는 신이랑과 함께 설영우를 만나 일정을 조율하고 계약서까지 작성했다.일을 끝내고 나니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소민아가 신이랑을 아파트 아래까지 배웅한 뒤 걸음을 멈추었다.“왜요?”신이랑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소민아는 숨기지 않고 말했다.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60화

    “현실에 부합되지도 않는 쓸데없는 상상하지 말아요. 소민아 씨한테 어울리는 사람은 신이랑이에요. 가서 일이나 열심히 해요, 내 체면 떨어뜨리지 말고.”결과야 어찌 됐든 소민아는 기성은이 키워온 사람이다.소민아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정말 저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요?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정말 없어요?”“저에 대한 이랑 씨 마음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난...”“기성은 씨를 좋아한단 말이에요!”문밖에 서 있던 설영우가 호기심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들어왔다.“어머나, 형한테도 드디어 봄이 왔네요. 여자한테 고백을 다 받다니요!”소민아는 얼마나 어렵게 용기를 내어 그 말을 내뱉었는지 모른다. 한 달 내내 찾아다녔던 소설 작가가 지금 이 순간 기성은에게 형이라고 부르며 나타날 줄이야.“꺼져.”설영우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소민아 씨, 전 이만 갈게요. 형과 얘기 끝나면 문자 주세요. 바로 올라올게요.”소민아는 솔직하고 좋고 싫음이 분명한 사람이다. 실은 그녀 또한 알지 못했다. 대체 왜 하필이면 성격도 나쁜 그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는지 말이다.얼굴이 조금 반반한 것 외엔 별다른 장점도 없다.“제가 방금 했던 말 들었어요?”기성은이 말했다.“소민아 씨 같은 귀찮은 사람이랑 사귀어서 나한테 좋은 게 뭔데요? 아까 내가 했던 말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네요.”기성은이 와인 냉장고로 걸어가 와인을 한 병 꺼냈다. 그를 따라 소민아의 시선도 옮겨졌다.소민아가 그의 뒤를 쫓아가며 말했다.“하지만 좋아하는 사람한테 진심을 고백해야 맞는 거 아닌가요? 저도 제가 충동적이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저에게도 눈이 있고 생각이라는 게 있어요. 나더러 신이랑에게 붙어있으라는 거 날 보호하기 위해 한 말이라는 게 느껴진다고요. 기성은 씨도 날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왜 자꾸 절 밀어내려고만 해요? 정말 이해가 안 돼요.”기성은이 말했다.“정말 황당한 생각이네요. 이용가치가 떨어진 물건을 더 남겨서 뭘 하겠어요?”기성은이 고개를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59화

    기성은이 다급히 셔츠를 몸에 걸쳤다.“누가 마음대로 들어오라고 했어요! 나가요!”소민아는 순간 하려던 말까지 잊어버렸다.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문밖으로 나와 손으로 가슴을 짓누르며 크게 심호흡했다. 머릿속에 기성은의 몸에 덕지덕지 새겨진 흉터들이 떠올랐다.기성은은 대표님의 비서가 아니었던가?비서에게 어떻게 저렇게 많은 상처가 생길 수가 있지?또한 모두 칼에 찔린 자상이었다. 지금 이 시대에 누가 칼을 휘두르고 다닌단 말인가.대체... 그는 무슨 일을 겪었던 걸까.기성은은 욕실에서 거울로 자신을 비추어 보았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눈 깜빡할 사이에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어떤 일은 뇌 속에 박혀버린 것처럼 한번 또 한 번 반복적으로 재생되어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떠올리게 만들었다.기성은이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입고 욕실에서 나왔다. 아직 집에 남아있는 소민아를 향해 그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언제까지 있을 생각이에요?”소민아가 주방에서 젓가락 두 쌍을 가져오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식자재는 기성은 씨가 사긴 했지만 음식을 만든 건 저예요. 기성은 씨를 기다리느라 저도 한 입도 못 먹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손님한테 밥은 먹이고 보내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기성은 씨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 일 때문에 이곳에 온 거예요. 마침 같은 아파트에 제가 맡은 소설 작가님이 살고 계시거든요. 그분이 집에 돌아오시면 드라마 제작 세부 사항에 관해 상의해야 해요.”“가서 침대 옆에 있는 핸드폰 가져와요.”소민아는 말없이 그의 말대로 핸드폰을 가져다주었다. 그녀의 시선이 기성은의 헐렁한 옷소매 안으로 드러난 상처에 닿았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왜 지금까지 한 번도 그의 손목에 이토록 깊은 흉터가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단 말인가.“...지금 이쪽으로 와.”그 한마디 말을 끝으로 기성은은 전화를 끊었다.“설영우 곧 올 거예요.”소민아의 눈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58화

    송시아가 이토록 반쯤 미치광이 같은 모습으로 변할 줄은 기성은도 예상하지 못했다.“거추장스러운 것!”송시아는 전연우의 무명지에서 은색 반지를 빼내 바닥에 던져버렸다.“이건 대표님의 물건입니다. 송시아 씨, 대표님이 깨어나셔서 찾으면 어쩌려고 그래요?”송시아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장소월은 한번 또 한 번 전연우를 해쳤어요. 전연우 성격에 어떻게 장소월 그 나쁜 년을 가만 놔둘 수가 있겠어요. 그리고... 기 비서가 연우 씨 옆에서 일한 오랜 세월을 생각해 이곳에 오는 걸 허락할게요. 하지만... 기 비서를 제외한 다른 쓸데없는 사람은 절대 들어오게 하면 안 돼요.”“장소월은 연우 씨를 죽이려 했어요. 난 절대 쉽게 장소월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 곧 경찰에 신고해 평생 감옥에서 썩게 만들어야죠. 그리고 나와 전연우가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 똑똑히 보여줄 거예요. 평생 땅을 치며 후회하겠죠.”기성은의 이마가 살짝 찌푸려졌다.“송 부대표님이 실망하실 텐데 이걸 어쩌죠. 실은 대표님께선... 처음부터 이런 일이 생길 거라는 걸 예상하고 계셨어요. 결혼식을 치르기 전 이미 법무팀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사모님을 다치게 하면 안 된다고 일러두셨거든요.”“뭐라고요?”송시아의 얼굴이 못마땅하게 일그러졌다. 그녀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기성은을 쳐다보았다.“연우 씨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요?”“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연우 씨... 대체 뭘 하려는 거예요? 말해봐요! 대체 그 이유가 뭐냐고요!”송시아는 미쳐버렸다. 완전히 미쳐버렸다!기성은은 눈을 내리뜨리고 눈앞의 여자를 쳐다보았다.“대표님이 뭘 하시려는 지는 저와 송 부대표님 모두 잘 알고 있잖아요.”기성은은 병실에서 전해져 오는 우당탕탕 시끄러운 소리를 뒤로하고 자리를 떴다.기성은 역시 대표님이 왜 이러시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자신의 목숨으로 도박을 하다니...기성은이 집에 돌아왔을 땐 저녁 8시 반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안에서 비쳐나오는 밝은 조명을 보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57화

    소민아는 멀어져가는 그의 곧게 뻗은 건장한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기성은이 조금 변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게 다른지는 당장 생각나지 않았다. 얼마 후, 돌연 머릿속에 무언가 떠오른 그녀가 중얼거렸다.“오늘... 나한테 시끄럽다며 짜증 내지 않았어. 평소 같았으면 욕 된통 먹었을 텐데.”소민아는 기분이 좋아져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기성은이 없으니 그녀는 마음 놓고 그의 집을 둘러보았다. 기성은은 예전 그녀가 신었던 슬리퍼를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해 두고 있었다. 그 슬리퍼는 기성은이 그녀에게 처음으로 사준 물건이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자체 제작한 것이었는데 가격은 몇십만 원이 넘었다.소민아는 보통 집에서 몇천 원짜리 저가의 슬리퍼를 신곤 한다. 그녀는 바로 기성은이 준 그 슬리퍼로 갈아신었다.그가 나간 지 30분이 지났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인덕션을 끄고 조심스레 구멍으로 내다보았다. 불청객 주가은이었다.주가은이 여기엔 왜 왔단 말인가?소민아는 현관에 있는 거울로 자신을 비춰보고는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입고 있던 외투까지 벗어 던지고 야한 하얀색 민소매 끈을 드러낸 채 문을 열었다.“자기야, 이렇게나 빨리 돌아온 거야?”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주가은의 눈앞에 소민아가 나타났다. 그럼에도 주가은의 얼굴엔 여전히 담담한 미소가 걸려있었다.“소민아 씨?”소민아는 팔짱을 끼고 나른하게 문에 기대어 섰다.“주가은 씨였네요! 여긴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들어와서 앉아요! 마침 밥을 하고 있던 참이었어요. 성은 씨는 한 시간 뒤에 돌아올 거예요. 괜찮으면 같이 저녁 먹어요.”“아니에요. 오늘은 물건을 돌려주려고 온 거예요.”주가은이 들고 있던 쇼핑백을 가리켰다.“이건 기성은 씨가 저번에 제 차에 두고 내렸던 옷이에요. 이미 다 세탁했어요. 돌려줄게요.”소민아가 말했다.“우리 성은 씬 정말 너무 덤벙거려서 문제예요. 어떻게 옷을 두고 내릴 수가 있어요. 주가은 씨한테 신세를 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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