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학교로 가보니 소은영이 흰색 원피스를 입은 채 강의실 앞에 서 있었다. 누구를 기다리는 듯해 보였다.어제 일로 더 이상 소은영과 엮이고 싶지 않았던 김하린은 그녀를 그대로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언니!”소은영이 그녀를 다급하게 불러세웠다.김하린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냉랭하게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죠?”소은영은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듯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어제 일은 정말 미안해요.”소은영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이었다.“가람이가 언니한테 갑자기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어요. 아무래도 언니를 조금 오해한 것 같아요.”“은영 씨도요?”김하린은 웃는 듯 마는듯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 모습이 꼭 소은영의 생각을 다 꿰뚫어 보는 듯했다.소은영은 서둘러 고개를 저으며 해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그런 오해를 해요. 어제도 제가 옆에서 그만하라고 했던 거 보셨잖아요... 저는 어떻게든 오해를 풀어주려고 했는데...”김하린은 잘도 연기하는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그녀가 뭐라고 또 얘기할지 궁금해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그러자 소은영이 갑자기 두 손을 잡아 오더니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언니, 혹시 화나신 건 아니죠...?”“화 안 났어요. 이만 수업 들어가요. 어제 일은 시언이한테 얘기 안 할 테니까.”그 말에 소은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김하린은 말을 마치고 강의실로 들어가려 몸을 돌렸다.그때 소은영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다 이쪽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안소이를 발견했다.안소이의 얼굴에는 의혹이 가득했다.그녀는 소은영이 수업에 들어오지 않은 것을 보고는 찾으러 나왔다가 이러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소은영은 그녀를 발견하더니 채 1초도 되지 않아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김하린의 다리를 꼭 붙잡으며 빌었다.“부탁이에요. 저와 제 친구들한테 손대지 말아 주세요!”이에 김하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강의실에 있던 학생들은 갑자기 들려온 애처로운
안소이의 의심에 소은영의 얼굴은 단번에 굳어버렸다가 곧바로 다시 억울한 얼굴로 돌아갔다.“소이야, 거짓말이라니. 난 너희한테 거짓말한 거 없어. 그렇게 물어보는 이유가 뭐야?”소은영은 어느새 눈가가 빨갛게 변해버렸다.“그냥 한번 물어본 것뿐이야. 신경 쓰지 않아도 돼.”안소이는 곧 있으면 울어버릴 듯한 소은영을 보더니 그녀의 두 손을 맞잡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셋은 베프니까 절대 서로한테 거짓말해서는 안 돼. 알겠지?”“당연하지. 절대 그럴 일 없어.”소은영은 아이처럼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이제 올라가자.”안소이는 소은영의 손을 꼭 잡고 계단을 올랐다.소은영은 안소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졸업하기 전까지 유가람과 안소이에게 거짓말했다는 사실을 들켜서는 안 된다. 거짓말이 들통나는 순간부터 대학 생활은 끝일 테니까.계단을 올라 강의실 쪽으로 가니 문 앞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유가람은 사람들 틈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듯 보였지만 키가 작아 좀처럼 들어가지 못했다.“무슨 일 났어?”안소이가 다가와 물었다.“학생회가 지금 강의실 안에 와 있어.”“학생회? 학생회가 여긴 왜?”안소이가 의문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반면 소은영은 뜨끔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제 게시판에 붙여진 사진 때문에 찾아왔다나 봐.”유가람은 흥미진진한 한 듯 한껏 들떠있었다.그녀는 소은영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가는 것도 모른 채 신나서 얘기했다.“학교 명예를 더럽힌 죄로 내쫓으려는 거 아닐까?”안소이는 미간을 찌푸렸다.“만약 그런 거라면 여기가 아니라 그 여자 찾으러 가야 하는 거 아니야?”그 말에 유가람도 이상함을 감지하고 동조했다.“그러게? 왜 여기로 왔지? 아래층으로 가야 하는데?”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두 사람의 시선은 동시에 소은영에게로 향했다.그러자 소은영은 두 사람이 의심하려 들기 전에 서둘러 입을 열었다.“혹, 혹시 우리가 어제 한태형을 건드려서 한태형이 학생회를 보낸
‘미치겠네 진짜. 여기 서서 뭐 한다고 계속 버티고 서 있어!’“마음대로 해. 난 먼저 갈 거야.”소은영은 결국 혼자 도망가기로 했다. 하지만 이제 막 한걸음 내디디려던 찰나 뒤에서 한 남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은영, 회장이 너 찾아!”그 말에 소은영은 그대로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강의실에서 학생회장이 걸어 나와 소은영을 불러세웠다.“너 잠깐 거기 서봐.”소은영은 잔뜩 뻣뻣한 몸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네? 저, 저요?”“그래, 너. 너 기숙사 방 번호 317맞지?”소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유가람은 네 룸메고?”“네, 네... 맞아요.”소은영은 옆에 있는 유가람에게로 시선을 주었다.그러자 학생회장의 시선 또한 그녀에게로 향했다.“네가 유가람이야?”유가람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학생회장은 손에 든 제보서를 들어 보여주며 얘기했다.“네가 허위사실을 유포해 교내 질서를 어지럽히고 여학생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말을 마친 그는 합성된 노출 포스터를 그녀에게 보여주며 물었다.“이거 네가 한 거 맞아?”그 말에 유가람은 처음에 멍하니 있다가 다급하게 해명했다.“아니에요! 전 이런 짓 한 적 없어요. 진짜예요!”“조사한 결과 얼굴은 합성이고 이 포스터에 적혀 있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 이 여학생에게 어떤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저급한 행동은 학교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위야, 알아?”유가람이 억울한 얼굴로 다시 한번 해명하려는데 옆에 있던 소은영이 갑자기 끼어들었다.“가람아, 어떻게 이런 짓을 해? 네가 나를 위해서 뭐라도 해주고 싶은 건 알겠어.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남의 얼굴을 막 합성하면 안 되지. 이건 범죄야.”유가람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은영을 바라보았다.이건 그녀가 한 짓이 아니었다.그때 옆에 있던 안소이가 입을 열었다.“이거 가람이가 한 거 아니에요. 계속 함께 있어서 아는데 가람이는 이런 거 게시판에 붙이려는 움직임도 없었고 그
“그럼 누구지?”김하린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졌다.만약 포스터를 만든 범인을 찾는 거였다면 소은영을 찾아가야 하는 게 맞지만 학생회는 그녀가 아닌 유가람을 지목했다. 그리고 크게 움직인 것 치고는 단순 경고에서 끝을 냈다.그때 김하린의 눈에 김밥 한 조각을 입에 물고 식판을 든 채 옆으로 지나가려는 배주원이 보였다.김하린은 그의 옷을 잡아당겨 그를 불러세웠다.“배주원.”배주원은 볼이 빵빵해져서 물었다.“애? (왜?)”“네가 한 거야?”배주원은 김밥을 빠르게 삼키고 제대로 된 발음으로 물었다.“뭘?”“학생회.”김하린의 말에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다시 그녀를 보며 말했다.“서도겸이겠지.”“서도겸이 이 일에 왜 관여하는데?”그녀는 문득 어제저녁 단지 입구에서 일어났던 일이 생각났다.그때 서도겸도 상황을 전부 다 지켜보고 있었으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김하린은 생각을 정리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에 다시 배주원을 바라보았다.“그런데 네가 여기는 왜 와? 돈 없어?”한태형도 그렇지만 배주원도 일반 식당에 올 사람이 아니었다.“아낄 수 있으면 아끼는 게 좋지 않겠어?”배주원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얘기했다.서도겸이 그녀에게 난데없이 1조 6천억이라는 돈을 지원해줬다가 또 집을 사주고 인테리어까지 해준 데다 고층 빌딩까지 지어주는 바람에 보름이라는 시간 동안 그의 카드는 불티나게 긁혀댔다.그러니 그라도 돈을 아껴야 했다.김하린은 배주원에게 옆자리를 내어준 다음 물었다.“그래서 서도겸은 학생회를 끌어들여서 뭐 하려고 했던 건데?”“그런 말이 있지. 한 사람을 철저하게 무너트리려면 그 사람이 기댈 곳부터 무너트리라고.”“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봐.”“그냥 이 얘기만 했어.”“...”김하린은 밥 먹다 말고 그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서도겸은 말하자면 한 마리의 늑대 같은 사람이라 하는 일이 절대 신사적이지 않다. 그리고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 유가람을 범인으로 지목한 데는 다 뜻이 있을 것이다.
김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영이 무릎 꿇고 바짓가랑이에 매달릴 때 확실히 그렇게 얘기했었다.“소은영이 남자친구가 있었어?”배주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나야 모르지.”“그럼 남자친구도 있는 애가 박시언한테 그렇게 들이댔던 거야? 와, 환장할 노릇이네.”배주원은 그녀의 행동에 치가 떨렸다.“무릎 꿇고 했던 말은 일부러 주위 애들한테 들려주려고 했던 걸 거야. 나는 걔가 박시언이 아닌 다른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다는 말, 안 믿어.”김하린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먼저 가볼게. 천천히 먹고 와.”그러자 한태형도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같이 가.”배주원은 마지막 김밥까지 야무지게 입에 넣고는 그 역시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나도 같이 가.”저녁.소은영은 기숙사 의자에 앉아 시험 성적을 확인하고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줄곧 안정적으로 상위권을 유지했던 그녀였지만 이번에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성적이 내려갔다.옆에서 힐끔 쳐다보던 룸메이트는 그걸 보더니 화들짝 놀라버렸다.“은영아, 너 이번에 9등으로 떨어졌어? 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계속 1등 유지하던 애가 어쩌다가...”소은영은 재빨리 성적 조회 화면을 끄고는 애써 웃었다.“시험 볼 때 몸이 좀 아파서 제대로 못 봤나 봐. 하지만 기말은 아니니까 딱히 큰 타격은 없어.”그 말에 룸메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거였어? 어쩐지 왜 그렇게 낮나 했네.”소은영은 내뱉은 말과는 달리 무척이나 초조해하고 있었다. 이런 엉망인 성적을 보게 된 박시언이 어떻게 나올지 겁이 났기 때문이다.그때 이도하가 전화를 걸어왔다.그는 평소와 똑같은 말투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냉랭한 분위기를 풍겼다.“은영 씨, 지금 바로 기숙사 아래로 내려와 주세요.”“혹시 대표님이 여기로 온 대요?”소은영은 오랜만에 받는 듯한 그의 연락에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이미 와 계십니다.”소은영은 들뜬 마음을 진정하고 답했다.“알겠어요. 금방 내려갈게요.”그녀는 문을 열고
소은영이 해명하려고 입을 열려는데 박시언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네가 머리가 좋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학업을 놔버리면 안 되지.”“죄송해요, 저는...”곧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그녀를 보면서도 박시언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A 대가 어떤 곳인지 네가 모를 거라 생각하지 않아. 만약 다음에도 성적이 안 좋거나 10등 밖으로 밀려나면 너는 지원금을 잃게 될 거고 등록금도 너 스스로 해결해야 할 거야.”소은영은 설마 이 말이 박시언의 입에서 나오게 될 줄은 몰랐다.그녀는 믿기 힘들다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박시언은 지금, 만약 이대로 성적이 계속 내려가면 모든 도움과 지원을 다 끊겠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죄송해요, 대표님. 다음번에는 절대 이럴 일 없게 할게요.”소은영은 다른 핑계를 대지 않고 고분고분 사과했다.박시언은 그녀의 등록금부터 시작해 매달 용돈까지 전부 다 지원해주고 있었다. 그 덕에 그녀는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됐고 오직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이 모든 걸 잃게 되면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야겠지만 A 대의 등록금은 비싸기로 유명하고 기숙사 비용도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더 비쌌다.그러니 고작 평범한 아르바이트로는 그런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게다가 박시언은 이제껏 그녀에게 지원해준 돈을 전부 세세하게 적고 있기에 그것마저 갚으라고 할지도 몰랐다.“그래, 알면 됐어.”박시언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이제 그만 들어가 봐. 그리고 방금 내가 한 말 허투루 듣지 마.”소은영은 잔뜩 풀이 죽은 채로 차에서 내렸다.그녀는 떠나는 차량을 보면서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 그러다 박시언이 없는 그녀의 인생을 한번 상상해보니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몸을 덜덜 떨었다.차량이 A 대 앞을 지나갈 때, 마침 맞은 편에 있는 고급 단지가 눈에 들어왔다.“차 세워주세요.”이도하는 곧바로 차를 갓길에 세우고 물었다.“사모님 보러 가실 겁니까?”그 말에 박시언이 차가운 눈빛을 보내
“너 바람피우는 건 아닌지 감시하려는 건가 보네. 쯧쯧, 이래서 속 좁은 남자와는 결혼하는 거 아니야.”강한나는 티슈로 입을 닦으며 혀를 찼다.“차라리 지금 남편 차버리고 새 남편으로 바꿔.”“누구로요?”“도겸이 어때? 둘이 잘 어울릴 것 같은데.”너무나도 바로 나오는 그 이름에 김하린은 하마터면 마시고 있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어울리기는 무슨, 됐어요.”“왜? 도겸이 어디가 어때서? 솔직히 박시언보다 훨씬 잘생겼거든?”“잘생기지 않았다고 한 적 없어요.”“걔 돈도 많고 권력도 있어. 네 남편에 비해서 꿀릴 거 하나 없다고.”“그런 거랑은 상관없어요.”김하린은 고개를 저었다.“감정이라는 게 억지로 이어 붙인다고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이런, 그럼 기회조차 없는 건가?”강한나는 아쉬운 얼굴로 재차 물었다.“너는 도겸이 어떻게 생각해? 좋아? 싫어?”“좋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싫지는 않아요. 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강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어쩌면 아직 기회가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강한나의 주머니 속 휴대폰은 현재 통화 중인 상태로 켜져 있었고 통화 상대는 [내 동생] 즉 서도겸이었다.전화를 끊은 서도겸의 얼굴은 심각하게 변했다.옆에서 식사하던 배주원은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왜 그래? 강한나가 뭐라는데?”“감정이라는 거 말이야. 어떻게 해야 생기지?”“뭐?”배주원이 젓가락을 멈추고 물었다.“그런 게 왜 궁금해?”“대답부터 해.”“지겹게 옆에서 따라다니면 되지 않을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잖아. 성공할 때까지 계속해보는 거지.”배주원은 대답을 마치더니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왜? 강한나가 또 연애한대?”“아니.”서도겸은 담담한 얼굴로 부인했다.“내 친구가 그러는데 좋아하는 여자애가 자기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했대.”“그 친구라는 거 혹시 너 아냐?”이에 서도겸이 그를 힐긋 바라보자 서주원은 의자에 등을 편히 기대고 두 손을 위로 들었다.“못 들은 거로 해.
큰 택배 상자 안에는 통 두리안 6개가 들어있었다.“아니, 대체 누가 두리안을 이렇게 많이 보냈어?”강한나는 두리안을 하나 집어 올리고 냄새를 맡더니 황홀한 얼굴로 감탄을 표했다.“냄새 장난 아니야.”그녀는 한껏 냄새를 맡다가 경비원에게 물었다.“이거 누가 보낸 거예요?”“어떤 남성분이 보내셨다고 합니다.”“남자?”강한나는 고개를 돌려 김하린을 바라보았다.“요즘 너한테 작업 거는 사람 또 있어?”김하린은 고개를 저었다.두리안 한 상자를 보낼 만한 사람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전생 때 친분이 있던 남자들도 박시언과 결혼한 뒤에는 전부 연락이 끊겨버렸으니 마땅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그리고 대체 왜 두리안인 거지?“쯧쯧, 대체 어떤 놈이길래 센스없이 두리안을 보내?”강한나는 혀를 차며 말했다.“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 우리 도겸이가 나아. 도겸이라면 이런 센스없는 선물은 보내지 않았을 테니까.”김하린이 뭐라 대답하려는 찰나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발신자가 서도겸인 걸 본 그녀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택배 받았어?”서도겸의 질문에 김하린은 옆에 있는 강한나를 한번 보다가 다시 손에 든 두리안을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 두리안 설마... 네가 보낸 거야?”“마음에 들어?”김하린은 입을 벙긋거리며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두리안이 마음에 드냐고 묻는다면 확실히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두리안을 좋아하니까.하지만 대체 왜 이걸 갑자기 보냈는지가 궁금했다.“언니는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네.”“너는?”“나도 뭐...”정한나는 방금의 대화로 두리안을 보낸 센스없는 남자가 바로 자기 동생인 서도겸이라는 것을 알아챘다.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김하린의 휴대폰을 빼앗아 들고 외쳤다.“서도겸, 너 어디 가서 내 동생이라 말하지 마, 알겠어?!”강한나는 씩씩대며 전화를 끊었다.그녀가 화를 내는 이유가 궁금해 김하린이 물으려는데 강한나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얘기했다.“아니, 얘 뭐 잘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