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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1화

Author: 일설연우
하늘을 찌를 듯한 무림의 성지, 무애산 수무대.

그곳, 깊은 고요 속에서 한 명의 백발 노인이 좌선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무애산의 주인이자 소욱의 스승인 현릉풍이었다.

수무대 입구.

한 제자가 조심스레 다가와 공손히 예를 올렸다.

“스승님, 황제 폐하와 황후마마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지금 바로 뵙기를 원하시는데, 어찌 하시겠습니까?”

세속의 규율대로라면, 황제가 직접 찾아왔다면 마땅히 문 앞까지 나가 맞이해야 했다.

그러나 현릉풍은 속세를 초월한 은둔 고수였다.

황제라 해도, 그에게는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손님을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잠시 후, 그는 조용히 눈을 떴다.

그리고 평온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들을 들여보내거라.”

“예, 스승님.”

수무대 밖.

봉구안은 높은 곳에서 끝없이 펼쳐진 산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봉우리 위로 구름이 바람에 흩날리며 마치 신선의 거처 같은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소욱이 조용히 다가와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아름다우냐?”

봉구안은 시선을 멀리 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말로 인간계의 신선경이라 할 만하군요.”

소욱은 가만히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는 버려진 아이였다.

아버지에게 미움받고, 황궁에서 내쳐진 채 이 산에 던져졌다.

그에게 무애산은 절망과 고립의 상징이었다.

그는 무애산을 증오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이곳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서 있었다.

“너와 함께 이곳에 서 있다니… 감회가 새롭구나.”

그는 조용히 손을 더욱 꽉 쥐었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구안아, 스승님은 인자한 분이지만, 규율을 철저히 지키시는 분이야.”

“정말로 그분을 설득할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봉구안은 그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언제 이 곳에 치료를 받으러 왔다고 했습니까?”

소욱의 이마가 순간적으로 찌푸려졌다.

“무슨 뜻이냐?”

그때, 제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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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 대인은 소욱의 속마음을 알지 못했다.황제가 죄를 묻지 않으니 그저 안도의 한숨이 나왔을 뿐이다.다만 의외였던 건, 황후를 향한 황제의 애정이었다.이런 황당한 일도 아무렇지 않게 눈 감아주는 걸 보면, 딸을 얼마나 아끼는지 짐작이 갔다.자신 같았으면?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터였다. 아내가 제멋대로 나랏일에 얽혀드는 일이라니, 그에게 있어서는 절대 상상도 못 하는 일이었다.“폐하의 너그러운 아량에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이번 일은 전적으로 저희 봉가에서 비롯된 것이온데… 신이… 신이 어찌 면목이 있겠습니까…”하지만 소욱은 봉 대인 앞에서도 봉구안을 향한 깊은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황후는 내게 더 많은 것을 참아주었다.”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꿀이라도 묻어 있는 듯, 다정함이 묻어났다.봉구안은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돌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봉 대인에게 말했다.“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다면 돌아가시지요.”“폐하와 저는 정사로 논의할 것이 있어 바쁩니다.”지금은 강주의 약쟁이 사건을 샅샅이 조사해야 할 시기였다.사마 신분으로 이토록 한가하게 돌아다니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봉구안은 봉 대인을 마주할 때조차 한 점의 온기도 비치지 않았다.친부녀 사이라기보다는 낯선 이와 응대하는 듯했다.봉 대인은 이제 그런 태도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했다.그는 뭔가 떠오른 듯 무심히 물었다.“서여국 일 말이다… 맹건은 알고 있느냐?”봉구안은 특별히 숨길 이유도 없다는 듯 덤덤히 답했다.“사부님은 북방에 계십니다. 아직 편지를 드리진 않았습니다.”그러나 그녀는 걱정하지 않았다.사부와 사모의 사람 보는 눈이라면, 이미 상황을 짐작하고도 남을 터였다.그 말을 들은 봉 대인은 눈에 띄게 입꼬리를 올렸다.하지만 곧 들키지 않으려 애써 눌렀다.‘허허, 결국 그 늙은 맹가 장군보다 내가 먼저 알았다는 거지. 역시 구안이는 나를 더 가깝게 여기는 게야.’‘말은 저래도, 속은 참 여린 아이라니까.’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흡족한 듯 대청을 나섰다.그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93화

    강주, 관아 내부.관아의 관리들은 끼니도 거른 채, 수년간의 실종자 명단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실종자 관련 신고도 줄줄이 접수되고 있었다.황후가 강주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오직 봉 대인뿐이었다.나머지 관리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고, 몇몇은 봉 대인을 슬쩍 떠보았다.“봉 대인, 황후마마께서 서여국으로 가셨다던데요.”“그쪽에서 황제가 되셨다… 그런 이야기가 돌던데, 사실입니까?”봉 대인의 표정은 단호했다.“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소!”그러자 한 관리가 더 나섰다.“봉 대인, 이쯤 되면 숨기실 것도 없지 않습니까?”“다들 아는 얘기예요. 들은 바로는, 대인의 전부인 되시는 분께서 서여국 선황의 친동생이라던데요.”그 말에 봉 대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그 역시 그런 소문을 들은 적 있었다.예전 봉구안에게 직접 물어본 적도 있지만, 당시 그녀의 반응만 보면 다 헛소문이라 여겼다.하지만 이렇게 또 다시 거론되자, 어쩌면 단순한 유언비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그럼에도 ‘유씨’가 서여국 황실의 혈통이라는 건,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봉 대인은 발걸음을 곧장 봉구안에게로 옮겼다.유씨와 서여국의 관계… 이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했다.대청에는 부녀 둘만이 남았다.봉구안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층 낮고 무거웠다.“말씀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소문은 사실이에요.”이미 온 세상이 다 알아버린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도 없었다.봉 대인은 두 눈을 부릅뜬 채 멍하니 서 있었다.“뭐라고…? 네, 네 어미가… 정말 서여국 전 황제의 여동생이었다는 말이냐?”“그럼, 유씨 댁 두 어른은… 너희 외가 말이다. 그분들이 친부모가 아니었던 것이냐?”봉구안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봉 대인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자신이 외면했던 그 여인이… 황실 혈통이라니.그제야 떠올랐다.과거 유씨 댁 두 어른들은 유독 봉 부인에게 박했다.지금 생각해보니, 그녀가 친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봉 대인은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92화

    봉 대인은 딸을 핑계 삼아, 강주의 특산 복숭아 누름과자를 들고 궁으로 들어왔다.하지만 봉구안은 소욱보다도 냉담했다. 얼굴엔 미소 하나 없었고, 목소리는 싸늘했다.“왜 오셨어요?”어젯밤 분명히 경고했다.요즘 강주는 어수선하니 조용히 사마부에 머물라고.그런데도 기어코 선물까지 들고 얼굴을 비추다니.봉 대인은 기가 죽은 듯 두 손을 꼭 움켜쥔 채,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황제와 황후 앞에 섰다.“저… 아니, 신이… 혹시 무슨 도움이 될까 하여 들렀습니다.”“그래도 한때 강주 사마였으니, 백성들 얼굴쯤은 익숙합니다.”봉구안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말투엔 그늘 하나 없이 냉정했다.“쓸데없는 짓 안 하시는 게 제일 큰 도움이에요.”그 말에 봉 대인은 더욱 풀이 죽었다.소욱조차 이번만큼은 봉구안이 지나치게 매정한 것 같았다.“좋은 마음에서 온 게 아니겠느냐. 그만 화 풀어라, 구안아.”소욱이 본인의 편을 들어주자, 봉 대인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그러나 소욱은 곧 공적인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요즘 실종자 수색이 한창이네.”“관아에서도 이 일에 집중하고 있지.”봉 대인은 그제야 눈빛이 살아났다. 곧장 예를 올리며 말했다.“신이 바로 나가 보겠습니다!”돌아서기 전, 그는 봉구안에게 조심스레 덧붙였다.“누름과자는 따뜻할 때 드셔야 제맛이지. 좀 먹어보거라.”봉 대인이 떠나자, 소욱이 조심스레 봉구안을 달랬다.“그래도 부친이지 않느냐. 걱정돼서 온 게 느껴졌다.”봉구안은 냉소를 머금은 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그게 느껴지셨어요?”소욱은 탁자 위의 누름과자를 집어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이게 그 누름과자 아니냐.”소욱은 상자를 열며 중얼거리다가, 손을 멈췄다.“근데 이 과자…”봉구안이 고개를 들었다.“왜 그러십니까?”소욱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차갑지 않느냐. 이걸 어떻게 따뜻할 때 먹으라는 거지?”“게다가 다 부서졌지 않느냐. 대인은 말은 번지르르하게 해도, 속으로는 공 훈장이나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하구나.”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91화

    화살이 운산파 장문이 머무는 주실을 향해 날아들었다.문 앞을 지키던 대제자는 익숙한 듯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화살촉에는 짧은 서찰이 매달려 있었다.아직 잠들지 않았던 ‘구학’은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직접 화살을 걷어냈다. 서찰에는 역시나 약쟁이 수거 장소가 적혀 있었다.통상대로라면, 이 시점부터 바로 인원을 파견해 약쟁이를 인수하면 되었다.어둠 속, 나무 위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열무신이 문득 눈을 떴다. 방금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림자는 몸을 숨기며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동작은 날렵했고, 무엇보다 운산파의 지형을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는 듯했다.열무신이 뒤쫓았지만, 검은 그림자는 여러 갈래로 갈라진 길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며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눈빛에는 차가운 전의가 서려 있었다.머릿속을 스친 건 오래전 실종된 친구, 맹성주의 얼굴이었다.복수하겠다는 그 의지가 지금껏 그를 버티게 한 힘이었다. 반드시 그들을 잡아내 맹성주를 대신해 복수를 하리라 다짐하였다.스윽! 스윽!어둠 속에서 연달아 화살이 날아들었다. 열무신은 몸을 틀어 회피했지만,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그림자는 사라진 뒤였다.그가 아쉬움에 이를 악물던 순간, 옆을 스쳐 지나가는 또 다른 그림자가 있었다. 봉구안이었다.그녀의 몸놀림은 열무신보다도 날쎄고, 판단력은 번개처럼 빨랐다. 폭풍처럼 망설임 없이 숲을 가로질렀다.두 시진 후, 숲 한가운데. 봉구안은 마침내 그림자를 따라잡았다.상대는 나무를 이용해 시야를 가리려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오산이었다. 그의 속도는 둔해졌고, 그 틈을 봉구안이 놓칠 리 없었다.그녀는 그의 앞을 막아서며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려쳤다.쿵!그림자는 허공에서 떨어지는 낙엽처럼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봉구안은 몸을 틀며 허리춤에서 암기를 꺼내 날렸다. 화살은 정확히 그의 다리를 꿰뚫었다. 다친 다리로는 경공을 펼칠 수 없었고,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그녀는 정확히 착지하자마자 혈도를 찔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90화

    강주 관아는 황제의 명을 받자마자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조용히 무림 인사들에 대한 체포에 착수했다.봉 대인 역시 수행을 이끌고 나섰으나, 도리어 무림인들에게 제압당해 부상을 입고 말았다.때마침 그 길을 지나던 봉구안이 나서서 사태를 정리했다.그녀와 황제를 마주친 봉 대인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폐하, 황후마마… 신하로서 면목이 없습니다.”“강주에 이토록 많은 일이 벌어졌건만, 모두 신의 직무유기 탓입니다…”하지만 봉구안은 차갑게 그를 바라보다 말을 잘랐다.“이제 그만하시죠.”“지금은 관아의 일부터 처리해야 할 때입니다. 수행들을 데리고 어서 돌아가십시오.”“괜히 발만 더 묶지 말고.”목소리는 냉정했고, 눈길은 무심했다.딸이 무정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매몰찰 줄은 몰랐다.그래도 자신은 그녀의 아버지였다.진심으로 돕고 싶었고, 노력도 했건만… 왜 그 마음은 전혀 닿지 않는 걸까.그때, 소욱이 낮게 한마디를 던졌다.“황후가 돌아가라 했다.”“어서 돌아가는 게 좋겠구나.”“예, 폐하… 다만, 두 분께서 강주까지 오셨으니, 외진 객잔보다 사마부에 머무르시는 게…”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은 말을 돌려 떠나버렸다.그 자리에 남겨진 봉 대인은 이를 악물고 속으로 분을 삭였다.‘이런 딸을 낳아봤자 무슨 소용이람…’‘도움을 바라진 않았지만,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할 거 아니냐!’그날 밤, 조정은 대대적인 체포에 나섰다.속아서 끌려온 자도 있었고 정체가 들켜 도망치다 잡힌 자도 있었으며 전진파처럼 자진해서 관아로 향한 경우도 있었다.관아는 이들의 신원을 하나하나 철저히 확인했다.조사 과정은 평소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고 날카로웠다.강주 관아 내부.소욱은 상좌에 앉아 있었고, 대신들은 한 줄로 선 채 땀을 흘리며 바닥에 무릎 꿇고 있었다.“폐하, 신들 또한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강주에서 약쟁이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반드시 조속히 수습하여 폐하와 백성들 앞에 죄를 씻겠습니다!”소욱의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89화

    열무신은 자리에 앉아 물을 한 모금 들이켠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운산파에 잠입했을 당시엔, 별다른 수상한 움직임이 없었습니다.”“하지만 오늘, 구 장문으로 가장하고 있던 엄 장로가 정체불명의 밀서를 받았죠.”“그가 저에게 밀서를 맡기며, 이 일을 어찌할지 논의해 달라 전하더군요.”봉구안의 계획은 명확했다.밀서에 응해 약인 운송을 허락하는 척하며, 약쟁이들을 끌어들이는 것.가능하다면 사람과 물증을 함께 잡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다.하지만 약쟁이들은 극도로 조심스러운 집단이었다.물건을 가로채는 건 몰라도 실체를 붙잡는 건 쉽지 않다.더구나, 봉구안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비무대회가 끝나자마자 전진파가 조정과 협력해 약쟁이들을 토벌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그런데 곧바로 운산파에 밀서가 도착했다는 건, 약쟁이들이 소식을 아주 빠르게 파악했다는 뜻이죠.”동방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 정도 속도라면, 이미 강주 안에 내통자가 있다고 봐야 하오.”“아니면…”그는 말을 흐리며 봉구안을 바라봤고, 그녀는 곧장 받아 말했다.“아니면 이번 비무대회에 참가했던 자들 중, 이미 약쟁이들 인물이 끼어 있었을 수도 있겠죠.”순간, 주위의 공기가 묵직해졌다.섬뜩한 예감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봉구안은 소욱을 돌아보았다.그는 즉시 명을 내렸다.“진한길, 인원을 모두 소집해라.”“이번 대회 참가자 전원의 신원을 철저히 조사할 것이다.”“예, 폐하!”열무신도 자리에서 일어섰다.“저도 동행하겠습니다.”동방세 역시 발을 내디뎠다.“나도 빠질 수 없지.”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자, 봉구안은 강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객잔은 자네에게 맡기겠소.”강림은 물을 들이켜다 혀끝을 쿡 찌르는 짠맛에 찡그렸다가, 이내 익숙한 웃음을 지었다.“여긴 내 집이오. 걱정 말고 다녀오시오.”적극적으로 나설 마음은 없는 듯, 그는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이번 수사는 백성의 불안과 혼란을 피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진행됐다.소욱은 관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88화

    비무대회가 끝난 뒤, 각 문파는 남아 약쟁이 토벌 방안을 의논했다.한편, 봉구안과 소욱은 조용히 객잔으로 돌아왔다.가는 길에 소욱은 다시 본래 본인의 옷으로 갈아입었다.이번 비무대회를 위해 그가 감수한 고생이 적지 않았다.봉구안은 그의 수고를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어깨를 주물러주었다.“오늘 정말 대단하셨어요.”그 한마디에 소욱은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그는 팔을 뻗어 봉구안을 품 안으로 끌어안고, 그녀를 무릎 위에 앉혔다.“널 위해 애쓴 보람이 있구나. 자, 어떻게 보답해줄 것이냐?”봉구안은 그의 목을 감싸 안고, 살며시 얼굴을 가까이했다.입술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고개를 살짝 돌려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오늘은 제가 직접 요리할게요. 맛있는 걸로 보답해드리죠.”소욱은 한 번도 그녀의 요리를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다.하지만, 그녀의 요리 실력이 어떤지는… 동방세가 누구보다 잘 알 터였다.갑자기 소욱은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굳이 그럴 필요 없다. 너도 잘 알지 않느냐, 지금 나한테 필요한 게 무엇인지…”그의 눈빛은 뜨겁고, 의미는 명확했다.마침 강림의 객잔에는 아무도 없었고, 이 둘만의 시간이 허락된 상황이었다.봉구안이 대꾸할 틈도 없이, 소욱은 그녀를 안은 채 내실로 향했다.장막은 그의 발끝에 걷혀지고, 몇 벌의 옷가지가 문밖으로 던져졌다.방 안에서는 봉구안의 작고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열다섯 판이나 싸우고도 또 힘이 남아도십니까? 일단 뭐라도 먹고…”그러나 그녀의 말은, 이내 그의 입맞춤에 막혔다.그 뒤로는, 오직 달뜬 숨결만이 조용한 방 안을 채웠다.……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두 사람은 마침내 전투를 멈췄다.봉구안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소욱은 깜짝 놀라 그녀의 손을 잡았다.“어디 가려는 것이냐?”어디선가 불안한 예감이 스멀스멀 밀려왔다.봉구안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말했잖아요. 오늘은 제가 요리하겠다고요.”그 말에 소욱은 그 자리에 망연히 서 있었다.아직도 요리할 기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87화

    “운산파, 풍고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소욱은 눈앞의 상대를 바라보며,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흉살한 기운을 느꼈다. 풍고는 술에 취한 듯 흐릿한 눈으로 소욱을 노려보았다.“여자군…”그 음흉한 말투에는 분명한 경멸이 담겨 있었다.풍고의 악명은 이미 다른 문파에도 퍼져 있었다. 수법이 음험하고 독해, 전진파의 제자조차도 그를 상대하기 어렵다는 평이 자자했다. 하물며 이번은 그의 첫 시합이기도 했기에 체력 면에서도 절정이었다.그 모습을 본 벽력당 측 인사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이건 너무하잖소! 애초에 싸움이 되겠습니까!”운산파 부장문은 그저 태연하게 웃었다.“풍고도 우리 운산파의 정식 제자입니다. 어찌 출전하지 못하겠습니까?”벽력당 인사가 다시 차선아를 부추겼다.“차 부장문, 이걸 그냥 넘기시려는 것입니까? 운산파, 이건 명백한 갑질이 아닙니까?”다른 문파 사람들도 거들었다.“풍고가 손을 쓰면 죽든 다치든 뻔한 일입니다! 차 부장문, 정말 제자를 아끼신다면 지금이라도 막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무술 대회 하나로 또 사람이 죽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풍고는 혀로 입술을 훔치며, 소욱을 노려보았다.“몸에서 좋은 냄새가 나는군요… 마음에 듭니다.”소름이 끼치는 말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미 겁먹고 물러섰을 상황이었다.하지만, 소욱이 누구인가? 어린 나이에 황제로 등극해 수차례 친정했고, 봉구안과 함께 강호를 누비며 구중탑의 흉인, 천룡회 교주, 지하 투기장의 악인들까지 직접 상대해왔다.그런 자들에 비하면 풍고는 그야말로 하찮은 졸개에 불과했다.시합대 아래서 차선아가 걱정스레 소욱을 바라보다가 봉구안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지금이라도 멈출지 묻는 신호였다.봉구안은 소욱의 눈빛을 마주하고, 그 안에 담긴 의지를 읽어냈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차선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전진파는 시합을 계속하겠습니다.”운산파 부장문이 비웃듯 중얼였다.“정말, 승부에 제자들의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여자군.”시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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