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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5화

Author: 일설연우
봉 대인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널 속일 것 같으냐?”

“유영, 넌 아직 우리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소동을 일으키고 있구나. 앞으로는 어쩌려고 그러는 것이냐?”

“오늘 참장부에 가서 사과하지 않는다면, 혼사는 없던 걸로 하겠다!”

유영은 손이 떨리고 얼굴이 어두워졌다.

“알았어요! 사과하면 되잖아요.”

“하지만 제 뜻으로 하는 거지, 대인에게 위협받아서가 아니에요.”

“전 대인을 아끼니까, 봉가의 명성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서 하는 겁니다.”

봉 대인은 그녀의 속내를 꿰뚫고 냉소를 머금었다.

“진짜 날 생각했다면, 나를 몰아붙여 널 맞이하게 만들진 않았겠지.”

유영은 이 말에 마음이 찔리는 듯했지만,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제가 대인에게 혼인을 강요했다고 생각하시나요?”

“혼인은 서로의 필요에 따라 이루어진 거 아닌가요?”

유영은 권력과 재산을 원했다.

여러 나라의 교역로를 열기 위해 황후의 이모라는 신분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녀는 딸을 더 높은 자리로 올려야 했다.

봉 대인 또한, 말 잘 듣는 아내와 봉가의 황자를 낳아줄 여인을 원했다.

봉 대인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유영을 뒤로한 채 옷자락을 휘날리며 나가버렸다.

……

건물 밖.

시녀가 임씨에게 말했다.

“마님, 대인께서 나오셨어요.”

임씨는 전당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여인은?”

시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아마 대인께 야단을 맞고 울고 있는 중일 겁니다.”

임씨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럴 만도 했다. 평소라면 저 여인이 대인에게 들러붙어 틈만 나면 함께 다녔을 텐데 말이다.

“마님, 저기 보세요. 저 여인이 나오네요!”

……

황궁.

소욱은 상소문을 읽고 영화궁으로 갔다. 그러나 봉구안은 없었다.

“황후는 어디 있느냐?”

그는 분명 황후가 궁으로 돌아왔다고 들었는데.

만추가 공손히 대답했다.

“폐하, 황후마마께서는 자진궁에서 목욕 중이십니다. 저희에게 따로 시중들지 말라 하셨습니다.”

만추는 약간 억울한 듯했다.

황후는 목욕이나 옷을 갈아입는 일도 그녀를 곁에 두지 않는 경우가 많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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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춘자
재미있게 잘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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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는 용좌에 앉아 날카로운 눈빛으로 문무백관을 훑었다.“과인이 황성을 비운 지 몇 달이 되었다. 그 사이 그대들은 더욱 해이해졌구나.”문무백관들은 몸을 낮추고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었다.소욱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조정에서 명하여 각지에서 약쟁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라 했거늘. 과인이 묻겠다. 너희는 이 사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대부분의 신하들은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사건 수사는 지방 관아의 일 아닌가.그들은 각자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면 되는 줄 알았다.그중 몇몇 관료만이 그나마 성의를 보이며 대답했다.“폐하, 신이 아는 바에 따르면 이 약쟁이 사건은 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독에 중독되면 사람은 이성을 잃고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예전에 천용회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약쟁이로 구성된 군단이 실제로 나타난 바 있습니다. 반드시 철저히 조사해야 할 사안입니다.”“폐하, 신이 들은 바에 따르면 동산국이 비밀리에 약쟁이를 양성하고 있으며, 병력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약쟁이 독도 동산국에서 흘러들어온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소욱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향해 눈빛을 더욱 날카롭게 세웠다.“약쟁이 사건은 백성의 생사뿐 아니라 나라의 존망에도 관련된 일이다. 너희 가문의 안위와도 맞닿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어찌 이리 무감각할 수 있느냐.”꾸짖음을 들은 관료들은 줄줄이 엎드려 스스로 죄를 청했다.“부끄럽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소서.”소욱은 그들을 곧장 벌하지는 않았다.대신 명을 내렸다.“과인이 너희들에게 직접 수사하라 명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것이다. 오늘부터 약쟁이 사건에 연루된 자가 있다면 스스로 고하라. 훗날 과인이 직접 밝혀낸다면 그 자는 반역죄로 다스릴 것이며 구족이 멸문당하게 될 것이다.”이것이 그가 내릴 수 있는 마지막 자비였다.신하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고, 감정은 드러내지 않았다.그중 몇몇은 속삭였다.“폐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5화

    봉구안이 약쟁이의 본거지가 황성에 있을 것이라 단언한 것은 근거 없는 말이 아니었다.그녀는 남제 전역의 지도를 꺼내어 소욱에게 설명했다.“정말 막다른 길에 몰려야 그들도 허점을 보입니다.”“이번에 문제가 생긴 도시들. 그 위치와 거리로 계산해 보면, 명령이 어디에서 내려졌는지 역산할 수 있어요.”지도 위에는 이미 여러 곳의 약쟁이 거점이 붉게 표시되어 있었다.최근 발생한 약쟁이의 운송 경로와 이동 시간, 중간에서 방향을 바꾼 흔적까지 더하면 본거지가 어느 지역인지 대략 짚어낼 수 있었다.이런 판단력은 전장을 누비는 장수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었다.봉구안은 시간과 거리의 계산만으로도 적의 주둔지가 어디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그래야 곧장 본진을 겨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소욱은 그녀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황성이라니… 정말 그곳인가.”역시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었다.……그들은 황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죽산진을 들렸다.황성으로 돌아가기 전 소탁을 보기 위함이었다.보아하니 소탁은 눈에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의원의 치료에도 차도가 없어 실명에 위험까지 있었다.소욱은 그를 데리고 황성으로 돌아가 태의에게 맡기기로 했다.이 작은 죽산진에서는 명의라 할 만한 자를 구하기도 어려웠다.자객의 습격을 떠올린 소탁은 마음이 무거웠다.그는 형인 소욱을 걱정하며 말했다.“약쟁이 때문에 미쳐 돌아가는 자들이 많아졌습니다. 폐하께선 이번 여정 내내 각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결국 피를 나눈 형제였기에 자신의 상처보다 제왕의 안위가 더 걱정되었다.봉구안은 하얀 천으로 눈을 가린 소탁을 바라보았다.그 모습이 유난히 연약해 보였다.그녀가 물었다.“열무신은 아직 소식이 없습니까?”소탁은 고개를 저었다.“그 자객을 쫓아 한참을 달아났습니다. 호위들도 따라잡지 못했지요. 혼자서 움직였으니, 살아있다면 다행이고… 혹시 도중에 남긴 흔적이라도 있다면 좋겠습니다.”봉구안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리 무공이 뛰어난 자라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4화

    그 닭장수들은 고문을 당해 사람 꼴이 아니었다.그들은 결국 사실대로 털어놓았다.“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저희는 정말 모릅니다. 그 닭들을 거래한 뒤, 그걸 어디에 쓰는지도 몰랐습니다.”“누가 높은 값을 제시하길래,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열무신은 무고한 이를 죽이지 않았다.그들이 실토한 이상 그는 더는 손을 대지 않았다.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마침 소탁과 마주쳤다.소탁은 내내 문밖에 서서 안에서 들려오는 말들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소탁은 성품이 부드럽고 인자했다.이런 고문이나 심문 같은 일은 애초에 잘하지 못했다.황제가 곁에 붙여준 암위들도 제법 실력은 있었지만, 닭장수들을 떨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하지만 열무신은 달랐다.그는 그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지옥불에서 기어나온 귀신 같았다.맑은 날임에도 사람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 만큼, 존재감 하나로 공포를 자아냈다.소탁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보아하니 저들은 그저 도구일 뿐이군요.”열무신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손에 묻은 피를 닦고, 수건을 바닥에 던지듯 놓으며 말했다.“잔챙이들이지. 아무리 캐물어도 쓸만한 정보는 없었습니다.”배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닭장수 몇 명을 잡아봤자 소용없었다.열무신의 마음엔 짙은 짜증이 피어올랐다.약쟁이의 수법은 치밀하고 조심스러웠다.겹겹이 함정을 깔아놓은 듯, 쉽게 뿌리를 드러내지 않았다.그는 입술을 꾹 다물고 어둡게 눈을 떴다.속이 타들어갔고, 분노를 쏟아낼 데도 없었다.소탁은 그의 좌절과 혼란을 읽고 조심스레 말했다.“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 집에서 따뜻한 밥이라도 드시고 길을 나서시지요.”그의 말 뜻은, 강주로 돌아가 황제와 황후에게 상황을 전하라는 뜻이었다.하지만 어쩐지 그 말은 사형수에게 마지막 식사를 권하는 것처럼 들렸다.열무신은 입꼬리를 비뚤게 올렸다.“이런 와중에도 밥이 넘어간단 말입니까.”소탁은 전혀 언짢은 기색 없이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제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3화

    봉구안은 자신의 친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그녀는 몰랐다.그가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기억력을 지녔고, 내용을 명확히 꿰뚫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그의 말에 따르면, 어릴 적부터 그런 재능이 있었다고 했다.하지만 점쟁이는 이렇게 말했었다.지나치게 총명하면 오래 못 간다.그래서 그는 일부러 자신의 능력을 억눌렀고, 남 앞에서는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다만 집중만 한다면, 단 한 번 본 것도 전부 기억할 수 있었다.“이 십수 년간 강성에 들어온 외지인들의 성씨, 이름, 무슨 일로 들어왔는지, 머문 날짜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우선 가족을 동반하거나, 노약자와 함께 들어온 이들은 제외했습니다. 대부분은 친척을 만나거나 생계를 위해 온 이들이니까요.”“그리고 또 걸러냈습니다. 강주에 지인이 있는 사람들 말이예요. 그런 이들은 약쟁이와 같은 은밀한 조직과는 어울리지 않지요. 저들은 언제나 혼자 움직이니까요.”봉 대인의 말은 모두 일리가 있었다.결국 그의 탁월한 기억력이 있었기에, 수많은 인원을 기억하고 하나하나 대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최근 2년간 입성한 외지인에 대해서는 여관마다 숙박 기록이 남아 있어, 그것도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었다.물론 개인적인 판단이 섞이긴 했지만, 봉구안은 이 명부가 충분히 쓸 만하다고 보았다.봉 대인은 말을 덧붙였다.“폐하, 특히 수상하다 여겨지는 인물들은 모두 붉게 표시해 두었습니다.”소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럽게 말했다.“알겠다. 만약 이 명부에서 약쟁이의 흔적을 찾아낸다면, 자네는 큰 공을 세운 셈이니라.”그러자 봉구안이 단호하게 나섰다.“설령 단서가 나온다 해도, 그건 시작일 뿐입니다.”“이전에 잡은 자들도 그랬지만, 약쟁이는 각자 다른 방식과 규율을 따르고 있어, 흔적을 따라간다 해도 본거지에 닿기는 어렵습니다.”소욱 역시 같은 생각이었지만, 장인어른에게는 현재 채찍보다는 당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하지만 봉구안의 태도는 여전히 차가웠다.봉 대인의 얼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2화

    맹건은 갑작스레 봉 대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단서라도 잡으셨습니까?”봉 대인은 옷깃을 한 번 여미더니, 진지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며칠 전부터 실종자 명단을 정리하라는 명을 받았어.”“근데 그 일은 다른 동료들이 거의 다 끝내버렸더라고. 그래서 난 좀 색다른 방법을 생각해봤지.”맹건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다그쳤다.“요점만 말씀해 주십시오. 뭘 찾으신 겁니까?”봉 대인은 그의 다급한 말투에 살짝 통쾌함을 느꼈다.하지만 지금은 공과 사를 구분해야 될 때였다. 감정에 휘말려 일을 그르칠 수는 없을 노릇이었다.특히 맹건의 아들 맹성주는 훌륭한 장군이었다. 그런 식으로 목숨을 잃다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그는 곧 말을 이었다.“외지인 명단을 전부 뒤져봤지. 대조를 거듭해서, 수상한 인물들을 걸러냈어. 강주의 실종 사건은 바로 그 사람들이 오간 이후부터 부쩍 많아졌거든. 그들 중에 분명 뭔가 수상한 놈이 있어.”맹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하지만 곧 의문을 품은 듯 봉 대인을 바라보았다.“이렇게 중대한 일인데, 어째서 폐하께 보고하지 않으셨습니까?”봉 대인의 이마가 일그러졌다.“그걸 자네가 왜 캐묻는 거야?”사실 그는 오늘 황제 폐하께 생신 예물을 드리며 이 이야기를 꺼내 큰 공을 세우고자 했다.하지만 그 꼴을 당하고 나니, 더는 얼굴을 들고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차라리 이 늙은 맹건에게 전부 넘겨주고, 알아서 하게 시키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황제와 황후 앞에서 또 체면 깎을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그는 이내 품속에서 장부 한 권을 꺼내 맹건에게 건넸다.맹건은 몇 장을 넘겨보더니 감탄한 듯 봉 대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형님 정말 잘하셨습니다.”수년 많게는 십수 년간의 외지인 유입 기록을 추려낸 이 장부는 보통 정성으로는 해내기 어려운 작업이었다.기억력이 나쁘거나 끈기가 없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이 사람… 제법인데? 역시 명문가 출신은 다르군.’맹건은 그 길로 장부를 들고 황제와 황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1화

    방 안.봉 대인은 몸을 돌려 맹건에게 등을 보인 채 옆으로 누웠다.더는 이 늙은 영감과 말 섞기 싫었다.지금 그는 고집불통 아이 같았다.무슨 말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맹건은 애써 인내심을 눌렀다. 한숨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형님, 이 나이에 싸우고 삐칠 일이 뭐가 있습니까.”“두 딸 일로 사이가 틀어진 거 저도 잘 압니다.”“인정할 건 합니다. 구안인 저랑 아내가 십수 년을 키웠습니다.”“친딸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여겨왔지요. 그때 형님께선 그 애를…”“우린 버린 게 아니야!”봉 대인이 벌떡 소리쳤다.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맹건이 되물었다.“그렇다 해도 구안이를 저희 맹가에 맡긴 건 사실 아닙니까.”“저희가 키웠고, 저흴 부모라 불렀습니다. 그 아인 그렇게 저희 딸이 된 거죠.”봉 대인은 말이 막혔다.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맹건은 자리에 앉아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이젠 우리 곁에 남은 건, 구안이 하나뿐입니다.”“장미는 어쩔 수 없이 저희 성을 따랐지만, 마음은 여전히 친부인 형님께 있죠.”“하지만 구안은 달라요. 성주가 죽고, 그 애가 아니었으면… 제 아내도 아들을 따라갔을 겁니다.”“그러니 형님이 불편하다고 해서, 저희가 구안이와 정을 끊을 순 없습니다.”“우리 마음속에서, 구안이는 진짜 딸이나 마찬가지입니다.”“이 일은 형님이 잘못하셨습니다.”“지금 형님께서는 저희 아이를 뺏으려 하시는 겁니다.”봉 대인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곧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그건 불만의 표시였고, 동시에 나가라는 뜻이었다.맹건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을 이었다.“형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형님이 부럽습니다.”“딸 둘에 아들 하나.”“누굴 더 아끼고 덜 아끼고를 떠나,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복이지요.”“성주를 다시 살릴 수 있다면, 그 아이가 누구를 아버지라 부르든 기꺼이 받아들였을 겁니다.”남자라면 통하는 감정이었다.맹건의 진심이 전해졌는지, 봉 대인의 숨소리가 잦아들었다.이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0화

    봉 대인은 오늘 봉구안의 탄신일을 맞아 직접 발걸음을 옮겼다.비록 궁에 몸을 두진 못하지만, 아비 된 도리로 성의는 보이고 싶었다.며칠을 두고 장터를 돌며 고르고 또 골라, 마침내 고운 비취 하나를 준비했다.객잔에 도착하자, 마당에서 강림이 그를 맞이했다.“폐하와 황후마마께선 지금 배 타고 나가셨습니다. 금세 돌아오진 않을 듯하니, 대인께서 맡겨주신다면 선물을 대신 전달해드리겠습니다.”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봉 대인은 품 안의 비단 상자를 바짝 끌어안았다.눈빛에는 노골적인 경계심이 배어 있었다.강림은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내 꼴이 무슨 도둑이라도 된단 말인가?’“나중에 직접 다시 오지.”봉 대인은 짧게 대꾸한 뒤 등을 돌렸다.그의 눈에 강림 같은 자들은 그저 싸돌아다니는 무림객일 뿐이었다.딸의 성정이 저리도 제멋대로가 된 이유 중 절반은 맹건 같은 무사놈 때문이고, 나머지 절반은 저런 하류들과 어울려서라고 여겼다.그는 강림이 어떤 인물인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직접 찾는 편이 빠르리라 생각하였다.황제와 황후가 함께 나갔다면, 배를 띄운 곳은 정해져 있었다.강주에 그런 호수는 딱 하나뿐이었다.강주, 천자호.호숫가에 도착한 봉 대인의 발걸음이 멈췄다.그가 마주한 광경은, 생각보다 훨씬 쓰라렸다.화려한 화선이 고요히 물가에 정박해 있었고, 그 위에서 몇몇 인물들이 막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그중 한 명, 황제를 그는 단박에 알아보았다.봉구안이 강주에 내려온 사실을 감추고자 했고, 출입 시엔 분장을 하거나 신분을 감췄다는 것도 알고 있던 터라, 그녀를 곧장 알아보지 못한 건 납득할 만했다.그러나,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얼굴을 보게 되었다.맹건.그 자가, 여기에 있다니.쾅.봉 대인의 가슴이 요동쳤다.심장을 그대로 움켜쥐는 듯한 통증이 번졌다.그가 이 자리에 있다는 건, 황제가 부른 것이겠지.황제가 그 무사 하나를 위해 이토록 정성을 들인 건, 결국 봉구안 때문이지 않겠는가.황제는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99화

    “북방으로 가겠다고?”소욱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곧장 봉구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그 말이 진심인지, 그녀의 눈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그는 여러 가능성을 떠올려봤지만, 봉구안이 아이를 위해 북방으로 간다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선택이었다.그렇게 되면, 두 사람은 당분간 떨어져 있어야 한다.황제와 황후… 부부가 멀리 떨어져 지내는 일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맹 부인 또한 그 점이 걱정스러웠다.봉구안의 지아비는 그저 그런 사내가 아니었다.한 나라의 군주였고, 궁궐엔 이미 수많은 후궁이 있었다.그가 과연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을까?세상일은 알 수 없고, 사람의 마음은 더더욱 그렇다.지금은 아무리 다정해도, 시간이 지나고 자리가 비면 변할 수도 있는 일.그녀는 봉구안이 훗날 후회하는 상황만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남자의 마음은 바람에 날리는 연 같아서, 한 번 놓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르지 않은가.맹 부인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마마께서 북방으로 태교를 가신다면, 저희 부부가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기꺼이 도와드릴 일이긴 하나… 결국은 임시방편일 뿐입니다.”“한 번쯤 폐하와 다시 상의해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그녀는 느꼈다.황제의 반응만 봐도 이건 미리 상의된 결정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그러자 봉구안은 잔잔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사모님, 오해십니다.”“실제로 북방에 갈 생각은 없습니다.”그녀의 말투는 조용했지만 안에는 단단한 결심이 담겨 있었다.굳이 떨어져 있을 이유는 없었다. 그녀도 외로웠고, 두려웠다.봉구안은 또렷하게 덧붙였다.“그저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게 하려는 것입니다.”“서여국이든 남제든, 지금은 그 어느 쪽도 방심할 수 없는 때입니다.”“그래서 양쪽 모두를 잠시 속이는 수밖에요. 지금은 그게 가장 안전합니다.”“속인다는… 말씀입니까?”맹건은 미간을 찌푸리며 되뇌었다.하지만 소욱은 가장 먼저 그 뜻을 깨달았다.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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