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왕은 홧김에 새장을 바닥에 패대기쳤다.안에 있던 새가 날개를 펄럭이며 밖으로 날아가다가 벽에 부딪혀 그대로 추락했다.진왕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 새를 짓밟고는 말했다.“죽화총이라면 소욱이 그리도 아끼던 물건 아니냐. 그게 적국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옆사람은 만지게도 못한다더니, 황후가 왜 그걸 갖고 있지?”“서왕과 군기감이 황제의 명을 어겼나 보군! 여봐라! 서왕부로 간다!”서왕부.진왕이 찾아와서 소란을 부릴 것을 미리 알고 있던 서왕은 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죽화총이요? 저도 모르는 일을 진왕 전하께선 어찌 아셨을까요?”서왕은 특유의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진왕에게 물었고 진왕은 홧김에 책상을 쾅쾅 두드렸다.“황후에게 죽화총을 줘서 보내다니! 그러다 적국의 손에 넘어가기라도 하면 그 책임을 네가 질 것이냐! 당장 죽화총을 되찾아와야 한다!”서왕은 담담히 차를 마시며 답했다.“알겠습니다. 이 일은 제가 책임지고 철저히 조사하지요. 만약에 사실이라면 죽화총은 되찾아와야 합니다.”진왕은 꾸물거리는 서왕의 태도를 보며 조바심이 났다.“당장 사람을 파견해야 한다!”서왕이 유유히 물었다.“지금이요? 때가 너무 늦었지 않습니까. 성문도 닫혔을 텐데...”서왕이 일부러 시간을 끈다고 인식한 진왕은 홧김에 책상을 엎어버리고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 말거라. 내가 널 대신해 죽화총을 되찾아오겠다.”떠나는 진왕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서왕의 두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시위 유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전하, 진왕은 대놓고 황후마마를 치겠다는 소리 아닙니까.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서왕이 그에게 되물었다.“넌 황후 일행이 어디까지 도착했는지 알고 있느냐?”순간 유화는 당황해서 입을 다물었다.식량 운반대가 순조롭게 남부에 도착하게 하기 위해 그는 며칠 전, 황후의 행적을 추적한 적 있었다.하지만 보낸 수하가 돌아와서 하는 말이 황후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서왕은 침착하게 찻잔을 내려놓고 부드러운
눈앞의 사람을 바라본 소욱의 표정은 예전의 냉철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칠흑같이 검은 눈동자가 휘둥그레 커지고 저도 모르게 입술이 떨렸다.“황후! 네가 어찌…”경악한 건 진한길도 마찬가지였다.황후가 왜 이런 곳에 나타난 것인가!눈앞에 무언가 그림자가 스치고 가더니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황후의 앞으로 달려간 황제가 보는 앞에서 황후를 품에 안았다.그 모습을 본 진한길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소욱은 그녀의 온기를 느끼려 더 으스러지게 끌어안았다.이 전쟁은 그가 치렀던 중에 가장 승부가 묘연한 전쟁이었다.북연의 태자는 병법대로 싸우는 게 아닌 잔인하고 음험한 수단만 취했다.봉구안이 그를 밀치자 그가 말했다.“조금만 안고 있게 해주렴. 너무… 춥구나.”때는 어느덧 9월, 황성은 날씨가 싸늘한 시간이지만 남부는 전혀 춥지 않았다.봉구안은 그를 밀치며 말했다.“일단 식사부터 하세요.”그는 괜찮을지 몰라도 그녀는 배가 고팠다.어제 밤새 수많은 적군을 처리하고 겨우 운수통로를 다시 장악한 그녀였다.오늘 낮에는 식량을 운반하고 오느라 한시도 쉬지 못했다.소욱은 그제야 이상함을 눈치채고 버럭 화를 냈다.“어찌하여 너에게 식량 운수 일을 맡긴 것이냐!”남제에 이리도 사람이 없단 말인가!일국의 황후를 전장에 내몰다니!봉구안은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말했다.“상황이 시급하여 어쩔 수 없었습니다.”소욱은 참지 못하고 다시 그녀를 안았다.이때, 덤벙대는 장수 한 명이 무턱대고 안으로 들어왔다.“폐하! 먹을 게 생겼습니다! 조정의 식량이 도착…”하지만 말을 끝맺기도 전에 황제의 싸늘한 시선이 날아왔다.다시 보니 황제와 황후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장수는 다급히 시선을 돌리며 짐짓 모르는 척 중얼거렸다.“폐하는 어디 계시지? 내가 막사를 잘못 찾았나? 주변이 어두워서 보이지를 않네.”소욱은 봉구안을 껴안은 그대로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넌 짐이 죽는 게 싫었던 것이다.”봉구안은 다시 그를 밀치고는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남제와 북연 양군이 대립하고 있는 사이에는 광활한 죽음의 계곡이 있었다.지세가 준엄하여 수풀도 자라지 않아 죽음의 계곡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결국 어느 한쪽이 계곡을 건너기만 한다면 승리할 수 있는 구도였다.남제는 방어를 위주로 하고 북연은 인해전술을 썼다.지금 형세로 보면 북연이 약간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봉구안과 소욱은 몸을 숨기고 죽음의 계곡으로 다가가는 북연군을 바라보고 있었다.계곡의 바람은 뜨거운 열풍을 지니고 얼굴을 간지럽혔다. 봉구안은 북연군 깃발을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적어도 한 달을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소욱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왜지?”봉구안이 말했다.“식량을 운반하기 전에 북연에 사람을 보냈었습니다. 이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북연 태자에게 있습니다.”“그를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북연 황제뿐이지요.”“북연 황제가 태자를 다시 불러들이길 바라는 것이냐?”소욱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북연 황제는 오랜 지병으로 앓아 누웠고 이미 목숨이 경각을 다투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태자도 30만이나 되는 대군을 데리고 이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을 테지.”봉구안은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병세는 북연 태자가 대외적으로 말한 핑계일 겁니다. 북연 태자는 이 일이 있기 전까지 동궁에 구금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대권을 장악한 것부터 이상합니다.”소욱은 뭔가 떠오른 듯, 동공이 확 흔들렸다.“태자가 친부를 시해하였다고 생각하느냐?”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예.”소욱은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고 흐뭇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전쟁 방면에서 짐은 너를 따라갈 수가 없구나.”봉구안은 멀리 보이는 횃불들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폐하, 북연의 애가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소욱이 묘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소장군은 적군을 흔들 수 있는 수단을 잘 알고 있군.”반 시진 후.남제의 대영에 북연의 애가가 울려퍼졌다.그 노래는 제사를 지낼 때 부르는 노래로 북연 사람이라면 다들
봉구안은 벌떡 몸을 일으키고 경계 어린 표정으로 소욱을 바라봤다.소욱은 전혀 잠기가 없는 얼굴로 담담히 그녀에게 물었다.“더 자지 않고 왜 깼느냐?”봉구안은 한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물었다.“왜 아직도 안 주무시고 계셨습니까?”“내일의 역공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봉구안은 속으로 투덜거렸다.‘이런 자세로 그런 말씀하지 마시라고요!’한편, 북연군 군영.북연 태자가 보낸 첩자가 돌아와 남제의 식량 운송대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렸다.그제야 그들은 왜 남제가 그렇게 힘차게 애가를 불렀는지 알 것 같았다.하지만 남제의 운송통로는 북연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대체 어떻게 빠져나간 것일까?한참 후, 한 첩자가 그 답을 내놓았다.“태자 전하,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남제가 이미 운송통로를 다시 장악하고 우리 병사들을 모조리 죽였다고 합니다!”침상에 앉아 있던 북연 태자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광기가 넘실대는 그의 얼굴에서는 진한 살기가 요동쳤다.“아군이 남제 군영과 대치하고 있는데 대체 무슨 수로 통로를 장악했단 말이냐!”그 첩자가 계속해서 아뢰었다.“현장에 잔여 독안개의 흔적이 보였습니다. 필히 남강인들이 몰래 돕고 있는 것입니다!”북연 태자는 냉소를 지었다.“남강이라. 하, 약소국 주제에 이리도 주제파악이 안 되다니!”“태자 전하, 남강은 이미 남제와 연맹을 맺었으니 아마 남제가 쓰러지면 자신들도 화를 면치 못할 것이 두려워서 나선 듯합니다. 남강이 이 전장에 끼어드는 게 싫으시다면 소신이 가서…”북연 태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고는 거만하게 말했다.“고작 남강 따위를 내 무서워할 것 같으냐? 남제를 소탕한 다음에 남강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것이다!”맹목적인 자신감은 아니었다. 현재 20만이나 되는 병력이 남아 있는 상황에 남제를 집중 공격하는 게 승산이 있었다.그는 남제가 보급 물자를 받지 못한다면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부하가 할 말 많은 표정으로 쳐다보자 태자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또 무슨 일이냐?”“
이게 바로 하늘의 뜻인 걸까?남강 왕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서서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단지 하루 늦었을 뿐이다.만약 어제 식량을 가져왔더라면 남제의 황제와 혼인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억울하고 분했다.조금 전까지 고고하고 교만하게 굴던 왕녀는 마치 서리 맞은 가지처럼 축 늘어져서 돌아갔다.진한길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훔쳤다.황후가 어제 늦지 않게 도착했으니 망정이지 고귀한 황제가 남강 왕의 사위가 될 뻔하지 않았는가.소욱의 얼굴에도 불쾌감이 가득했다.남강 핏줄이라 그런지 몰라도 참으로 당돌하고 주제 분별이 안 되는 여인이었다.“남강 왕녀요?”막사에서 소욱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봉구안은 약간 놀랍다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눈이 엄청 높다고 들었는데 왜 그랬을까요?”소욱이 발끈하며 반박했다.“짐이 어디가 못났다고!”일반인이었다면 모두가 남강 왕녀가 주제를 모른다고 욕했을 것이다.봉구안은 태연자약하게 해명했다.“폐하가 못났다는 얘기가 아니라 남강 왕녀는 보수파라서요. 일부일처제를 희망하고 절대 다른 여인과 부군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폐하처럼 수많은 후궁을 거느린 황제는 보수파의 눈에는 절대 좋은 선택지가 아니지요.”사실을 말한 것이지만 소욱이 듣기에는 무척이나 불편했다.그는 울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너 역시 남강 왕녀처럼 보수파였던 거군.”봉구안은 바로 화제를 돌렸다.“오늘은 어떤 식으로 역공을 진행하실 겁니까?”소욱의 표정도 사뭇 진지해졌다.“3천 병력을 파견해 죽음의 계곡을 정면 돌파할 것이고 양측에 각 1만 병력을 배치해 엄호할 계획이다.”봉구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사색에 잠겼다.“총 2만 3천 병력이로군요. 이 전역의 목표는요?”소욱이 단호하게 말했다.“북연군을 죽음의 계곡에서 몰아내는 것이다.”죽음의 계곡에 주둔 중인 북연군은 총 3만이었다.미치광이와 천재는 종이 한장 차이라고 했던가. 북연 태자는 겉보기에 그냥 인원수로 밀어붙이는 것 같아도 사실 상 대비
죽음의 계곡 높은 곳.전방에서 돌아온 진한길이 보고를 전했다.“폐하! 북연군이 화룡을 가동하고 있습니다!”소욱의 옆에 서 있던 손덕방 장군이 그 말을 듣고 바로 말했다.“폐하, 쌍방은 화기를 들지 않아야 서로 대등한 정도입니다.”“저희가 죽화총을 사용하니 북연 쪽에서 화룡을 내놓은 것이지요! 당장 죽화총을 철수해야 합니다!”소욱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계속 공격하거라!”손덕방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미친 북연 태자가 진짜로 화룡을 가동한다면 다 같이 죽자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다른 장군들도 같은 생각이었다.죽음이 두렵지 않는 사람은 없다.화룡이 가동된다면 반경 백리 안에 생존자가 없게 되는데 지금 사정거리는 고작 십리 정도이니 다 같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건 북연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아무리 기다려도 화룡이 정식 가동되었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네 시진 후, 전방에서 승전보가 들려와서야 장수들은 잠깐 숨을 돌릴 수 있었다.죽음의 계곡에 주둔 중이던 북연군은 절반의 사상자를 냈다. 사실 남제가 쳐들어올 때 곧바로 뒤로 철수할 수 있었지만 북연 태자는 계곡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철수했다면 살 수 있는 병사들이었다.하지만 눈앞에는 남제군이, 뒤에는 병기를 들고 자신들을 겨누고 있는 아군이 있었다.그들이 철수한다면 아군의 손에 죽게 되는 상황이었다.어쩔 수 없이 만여명의 북연군은 꼭두각시처럼 어거지로 전장에 임했다.반면 북연 태자는 진작에 후방의 본진으로 돌아간 후였다.“태자 전하, 3만 대군이 전군복멸 되었습니다!”쾅!북연 태자는 치미는 짜증에 책상을 두드렸다.“우리가 3만이고 저쪽이 2만인데 어찌 졌단 말이냐!”옆에 있던 장군이 조심스레 말했다.“태자 전하, 저희 북연군 모두가 용맹하고 굳센 의지를 지녔습니다. 하지만 비열한 남제군이 신형 죽화총을 사용하는 바람에… 저희가 화룡을 꺼내들어도 전혀 기죽지 않더군요.”“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건가.”북연 태자의 눈동자가 잔인
반 시진 후, 밀실 밖으로 나온 서왕의 표정은 음울했고 목덜미에 여인의 손톱자국이 나 있었다.유화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서왕은 구겨진 옷매무시를 정돈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입맛이 없다고 하니 이틀 정도 굶기거라.”“예.”남부.오백은 몰래 북연군 진영에 들어갔지만 화룡의 위치를 알아내지는 못했다.더 있다가는 들통날 수 있기에 그는 일단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봉구안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북연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태자가 아니라 화룡을 가진 태자였다.남제가 지금까지 그들의 압박을 참아주면서 소규모의 역공만 하고 있는 것도 정말 큰 전쟁을 치를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화룡 때문이었다.봉구안은 대담한 의견을 내놓았다.“안 된다!”그녀의 계획을 들은 소욱은 당장에서 반대했다.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네가 위험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건 허용할 수 없다!”봉구안은 여전히 침착한 표정으로 의견을 피력했다.“북연이 강대국으로 불리는 이유는 화룡 때문입니다. 전에는 줄곧 꽁꽁 숨기고 있어서 아무도 그 실체를 보지 못했지요. 만약 가능하다면 그게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제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소욱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내 화룡은 없지만 북연이 두렵지 않다!”봉구안은 단호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그 말이 진심이십니까? 멀리까진 아니더라도 현재 상황만 놓고 보아도 결국에 압박을 못이긴 북연 태자는 화룡을 사용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저희가 그것을 파괴해야 합니다.”비록 그녀가 북연에 사람을 보내 북연 황제가 이 전쟁에 간섭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성사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그러니 한곳에 모든 희망을 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소욱도 그녀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녀가 위험을 자처하는 걸 허용할 수는 없었다.봉구안은 결연한 표정으로 그에게 약속했다.“저를 믿어주십시오. 꼭 무사히 돌아오겠습니다.”그가 여전히 말이 없자, 그녀는 강조해서 말했다.“폐하, 전시는 지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폐
연나라 태자의 한마디에 호위들은 곧바로 봉구안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그러나 막 공격하려던 순간, 봉구안이 땅에 무언가를 던졌다. 곧이어 하얀 연기가 사방으로 퍼졌다.이 연기는 그들의 시야를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하였다.연기를 겨우 걷어내고 보니, 봉구안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멀리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태자 전하께서 화룡을 놓고 동맹할 뜻이 없으시니, 이 화룡은 저희도 사양치 않겠습니다."연나라 태자는 찬바람이 이는 듯한 음산한 눈빛으로 장막 밖으로 뛰쳐나갔다.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방 어둠 속을 헤집었으나, 남강 사신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그는 눈을 부릅뜨며 크게 외쳤다.“쫓아라! 그 자를 잡아 오라! 산 채로든, 아니면 시체로라도!”"예!"그는 곧바로 자신의 심복 호위를 붙잡고 낮은 목소리로 명했다."너는 직접 화룡을 살펴보고 오너라. 만약 화룡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네 가족들을 모두 멸할 것이다!"호위는 즉시 명을 받들어 떠났다.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그의 발이 떠나자마자 봉구안이 몰래 그의 뒤를 따랐다.사실 봉구안은 애초부터 떠나지 않았다. 어둠 속에 숨어 기다리고 있었다.이 봉구안의 계책은 지금까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조금 뒤, 봉구안은 그 호위를 따라 연나라 군대의 대진 후방에 있는 울창한 숲에 들어섰다.여러 차례 굽이돌아 마침내 거대한 바위 앞에 도착했다.그 바위는 사람 둘이 겨우 닿을 만한 높이였으며, 달빛 아래 이끼와 낙엽으로 덮인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봉구안은 암흑 속에 몸을 숨기고 그 바위 뒤에 무엇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추측했다.곧이어 바위 곁에 서 있는 연군 병사들을 보자마자 깨달았다.이 바위는 가짜군!그때 한 병사가 명령을 전했다."모두 듣거라! 태자 전하께서 명하시길, 며칠간 근무 인원을 늘려 이곳을 철저히 지키라 하셨다!""알겠습니다!"그 병사가 자리를 떠난 뒤, 봉구안은 소매에서 화살을 꺼내 그들을 향해 쏘았다.두 명의 병사가 소리 지를 틈도 없이
봉구안은 찌푸린 얼굴로 이른바 예물이라 불리는 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곁에 있던 맹부인이 말했다.“선물을 보낸 사람이 특별히 말했다구나. 이건 미래의 황후에게 주는 것이라고… 며칠만 지나면 3월이 되는구나. 보아하니 폐하께서는 네가 다시 궁으로 돌아올 것이라 확신하신 모양이야…”봉구안은 평온한 표정으로 맹건 장군 부부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스승님과 사모님께 폐를 끼쳐드려 정말 죄송합니다.”말이 끝나자 밖에서 사람이 알렸다.“부인, 누군가가 소공자를 찾으러 왔습니다.”봉구안의 마음이 흔들렸다. 마치 바람이 호수를 스치며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듯이……장군부.봉구안이 보니 방문객은 몸에 딱 맞는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린 남자였다.그는 그녀에게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저는 은육이라 합니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 물건을 전달하러 왔습니다.”그는 즉시 긴 모양의 비단 상자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하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비록 그가 스스로를 소욱의 사람이라고 칭했지만, 그녀는 본래 신중한 성격이라 그의 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남자는 그녀의 반응을 보고 상자를 한 손으로 열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었다. 기계 장치나 속임수는 없었다.비단 상자 안에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봉황 비녀가 들어 있었다. 매우 귀하고 아름다운 물건이었다.비녀를 본 순간, 봉구안의 동공이 살짝 커졌다.이 봉황 비녀는 과거 소욱이 그녀에게 선물했던 것이었다.그들이 이혼한 뒤, 그녀는 그것을 가져가지 않았다.남자는 상자를 닫고 다시 그녀에게 내밀었다.“한 치의 거짓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안심하고 받으셔도 됩니다.”봉구안은 비단 상자를 내려다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그날 밤.방 안에는 등불이 켜져 있었고, 한 남자가 책상에 앉아 있었다.그의 준수한 얼굴은 등불 빛에 비춰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그때 진한길이 문을 열고 들어와 공손히 말했다.“폐하, 북방으로 보낸 사람이 돌아왔습니다.”소욱의 시선이 손에 들고 있던 공문에서 문 밖으로
송가의 정원에서 송가와 봉가의 사람들은 함께 성지를 들었다.“황제 폐하의 성지가 내려졌습니다. ‘봉장미라는 여자가 있으며, 지혜롭고 아름다운 모습이 있다. 나는 그녀의 외로움을 안타까워하며, 이제 맹 소장군과 의논하여 그녀를 양녀로 삼고, ‘맹’ 성을 하사한다…’”이 조서를 들은 모든 사람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봉 대인은 분노하며 이해할 수 없었다.그는 이미 한 딸을 송가에 보냈는데, 또 다른 딸을 보낸다는 건 도대체 무엇인가!황제는 이전에 이혼을 명령하고 아내를 빼앗아 갔더니, 이제는 자식도 빼앗으려 하는 것인가!반면, 다른 사람들은 두려움과 충격을 느꼈다.황제는 정말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혹시 그가 뒤에서 사람을 보내 이곳의 일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일까?그 생각에 봉 대인은 식은땀이 흘렀다.봉 부인은 딸이 무엇이라 불리든 상관없었다. 이제 성지가 내려졌으니, 봉장미는 명분이 확실해졌다.송가 사람들도 안심하며 기뻐했다.그들은 이제 더 이상 걱정할 일이 없었다.그들이 잘 알고 있는 것은, 황제가 성지를 내려 이 혼인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황실의 보복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중요한 것은, 봉장미가 이제 ‘맹가의 딸’이 된 것과 같은 신분이 아니라, 황제의 조서를 통해 이 혼인에 대한 황제의 입장이 명확히 드러났다는 것이었다.객잔으로 돌아온 봉 대인은 봉구안을 한쪽으로 불러 조용히 말했다.“너와 이혼하기 전, 폐하께서는 이미 네 신분을 알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이를 폭로하지 않고, 장미를 보호하고 있었다.”“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폐하께서 이렇게 하는 이유는 모두 너를 위해서일 것이다.”“구안아, 내가 하나만 조언하겠다. 황궁으로 돌아가서 황제 폐하와 함께 있거라.”“네가 여기서 떠도, 황후로서의 생활이 더 편하지 않겠느냐?”봉구안의 얼굴은 차가웠다.“그것은 제가 결정할 일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더 이상 제 일에 걱정하지 마십시오.”봉 대인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송려는 사당을 나서며 여전히 꿈만 같다고 느꼈다. 봉가에서 사람들이 왔고, 부모님과 결혼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장인, 장모님을 만나기 전에, 송려는 하인들의 도움을 받아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는 뜰을 나서며, 문 밖에서 마치 오래 기다린 듯한 봉구안을 보았다.“소…” 그가 그녀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랐다.봉구안의 시선은 차갑고, 가벼운 듯이 그에게 내려앉았다. 마치 신경 쓰는 듯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다친 것이오?”송려는 조금 놀랐다. 그녀가 사람을 걱정하는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녀와 봉장미는 쌍둥이지만 성격이 매우 달랐다.봉장미는 이해심이 많고, 온화하고 세심했다.하지만 소환, 즉 봉구안은 약한 사람을 싫어하고, 뒤처지는 사람을 용납하지 않았다.그는 그때 그들이 공격을 받았을 때, 자신이 조금만 느려졌을 뿐인데 소환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송려! 빨리 빨리 움직이지 못하겠소?”그래서 그는 그녀가 동정심이 없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개의치 않을 사람이라고 의심하고 있었다.송려는 쓴웃음을 지었다.“혹시 내 집안에 해를 끼친 건 아니겠지?”봉구안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 일은 아직 벌어지지 않았소.”송려는 놀랐다.아직 그런 일은 아니지만, 그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그는 알지 못했다. 봉구안이 그의 혼인 문제를 위해 송 부인을 부추겨서, 송 대인이 밤새 여덟 명의 여자와 싸우게 만들었던 일을 말이다...곧 두 사람은 앞마당에 도착했다.양가 부모는 여전히 혼인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송가는 이 혼인을 승인했지만, 여전히 몇 가지 걱정했던 점들이 있었다.그들은 말했다.“대신, 이 혼인은 절대 외부에 알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왕실과 연관되므로, 혼인식 당일, 장미가 봉가를 떠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그리고 그녀는 더 이상 봉가의 딸로 간주하지 마십시오.”봉 대인과 봉 부인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묘하게 찡그렸다.이 말은 결국,
밤.송가의 의관.이 시간에는 병자가 찾아오는 일이 드물었다.송 대인은 약재를 만지며 몰두하고 있었다.그러다 보니 벽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를 알아채지 못했다.쾅!순간, 그는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고 앞으로 고꾸라졌다.머리가 약재 그릇 속에 처박힌 채로 정신을 잃었다.송 대인이 깨어났을 때, 자신이 침대에 묶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더구나, 그곳은 그의 방이었다.그는 몇 번 소리쳐 보았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이때 하인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내보내진 상태였다.끼익…문이 열렸다.드디어 누군가 들어왔다.송 대인은 목을 빳빳이 세우며 바라보았다.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였다.“부인,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요!”송 대인은 놀랐으나 동시에 안도했다.도둑이 아니라 다행이었다.그러나 송 부인은 싸늘한 표정이었다.남편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대신 그녀는 익숙하게 향을 피우기 시작했다.곧이어 그녀가 명령하자 몇몇 젊은 여자가 연이어 방 안으로 들어왔다.송 대인은 그제야 한숨 돌렸던 마음이 다시 조여 오는 것을 느꼈다.“부인! 당신…”송 부인은 갑자기 남편을 돌아보았다.그 눈빛에는 젊었을 때의 동경이나 애정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어머니로서의 고뇌와 결단만이 남아 있었다.“폐비 봉씨의 말이 맞았습니다. 자손 문제는 해결할 방법이 있죠.”송 부인은 싸늘하게 말했다.“남편, 아들을 위해서 당신이 좀 고생해 줘야겠어요.”그녀는 남편이 알던 모습과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송 대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부인, 설마… 아니, 안 돼!”송 부인은 서글픈 웃음을 터뜨렸다.마치 막다른 길로 몰린 사람이 모든 이성을 놓아버린 듯했다.향을 다 피운 그녀는 천천히 남편을 바라보았다.“아들을 보러 갔었습니다.”“그 몸에 난 수많은 상처… 다 당신이 그렇게 만든 것이죠…” “당신 아들이잖아요. 어떻게 그렇게 무정할 수 있나요.”송 부인은 말에 힘을 주었다.“당신이 원하는 자손 문제.
송 대인과 송 부인은 동시에 봉구안을 바라보았다. 이 폐비를 말이다.봉구안은 진지하게 말했다.“듣자 하니, 송 대인께서 보태 신약을 지어 태아를 안정시키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두 분께서는 틀림없이 아들을 하나 더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이 말이 떨어지자, 모두 침묵에 빠졌다.송 부인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다가 창백해졌다.봉 대인은 즉시 딸을 꾸짖었다.“어디 감히 남의 집 자손 문제에까지 참견하느냐! 당장 나가거라!”송 부인은 남편을 향해 말하려다 말았다.이 모든 것이 봉구안의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아무 준비 없이 이런 말을 할 인물이 아니었다.송가에 오기 전, 이미 오백에게 정보를 알아보게 했다.송 대인은 다른 취미도 없고, 오로지 의학 연구에 몰두하며 자신의 의관에서 밤낮을 보내는 사람이었다.그는 집에 거의 들르지 않았고, 아내를 방치했다.부부의 잠자리가 없으니, 자식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송 부인은 최근 몇 년간 얼굴에 기미가 짙어지고 월경도 불규칙하다는 소문이 있었다.봉구안은 확신했다. 송가에 자식이 한 명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송 대인이 남편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결과였다.좌중에서 송 대인의 표정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냉랭하고 딱딱했다.그는 한 마디로 단호했다.“봉 대인, 더 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이 말은 곧 손님을 내보내겠다는 뜻이었다.봉 대인 역시 더 이상 이 자리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봉구안은 송 부인을 바라보았다.“부인, 아까 말씀은 당신을 모욕할 뜻이 아니었습니다.”“결론적으로 자손 문제는 해결책이 없는 게 아닙니다.”“하지만 진정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억지로 떼어놓는다면, 공자께서는 평생 고통 속에 살게 될 것입니다.”“그건 부인께서 누구보다 잘 아실 겁니다.”“송 공자께서는 고집이 대단합니다. 한 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분이시죠.”송 부인의 마음 한 켠이 시큰거렸다.그녀는 아들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아들은 사당
봉구안이 전에 편지에서 대략적으로만 말했던 것을, 이번에는 모든 일을 세세히 설명하며 봉 부인과 이야기를 나눴다.그 후, 어머니와 두 딸은 송가와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할지 의논하기 시작했다.봉구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양가 부모님이 솔직히 대화를 나누는 것이 우선입니다. 어머니와 이견이 없으시다면, 제가 직접 가마를 준비하여 장주에 있는 송가를 방문하겠습니다. 성의를 보이는 것이 먼저니까요.”봉 부인은 연달아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맞다. 우리가 직접 송가에 가야지.”“그런데 아버지는…” 봉장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봉 부인의 얼굴에 불쾌함이 스쳤다.그가 저지른 일만 떠올려도 그녀는 그를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봉구안이 먼저 나서며 말했다.“아버지께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옆방.봉 대인은 기가 막히고 분통이 터진다는 듯 봉구안에게 따졌다.“왜 우리가 장주로 가야 하는데? 송가에서 와서 우리를 뵙는 것이 도리 아니냐? 나는 안 간다! 우리 딸이 시집을 못 가서 안달이라도 난 것 같구나! 송가 따위는 필요 없다, 딸을 데려가겠다는 놈은 줄을 섰으니 말이다!”봉구안의 태도는 냉랭했다.“아버지가 가고 싶지 않으시다면, 어머니 혼자 가셔도 됩니다.”“송가가 원하는 건 봉가의 성의입니다.”“가구원 중 한 명쯤은 빠져도 아무 상관없습니다.”봉 대인은 순간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이 망할 년아! 내가 가장인데, 딸이 시집가는 일은 내가 결정할 일이다!”“봉가에서는 내 말이 곧 법인 것을 네가 모른단 말이냐!”그날 밤.맹가 부부가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하지만 봉 대인은 삐쳐서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그들을 왜 만나야 한단 말이냐! 내 착한 딸을 그런 꼴로 만든 걸 감사히 여기라고? 천만의 말씀이다!”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은 홀에서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눴지만, 봉 대인은 홀로 방 안에서 모든 이들에게 고립된 채 시간을 보냈다.누군가 자신을 부르러 오겠지 싶었지만, 맹가 부부가 떠날 때까지도 아무도 그를 부르지
다음 날, 봉구안은 장군부로 가서 맹 부인을 찾아뵙고 안부를 물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장기양이 들어섰다.“사모님, 장군께서 물건을 가져오라 하셔서 왔습니다…”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맹 부인 곁에 앉아 있는 소환을 보았다.“스승님! 저를 보러 오신 것입니까!”장기양은 봉구안이 기억하던 그보다 훨씬 키가 커졌고, 체격도 커졌으며, 더 검게 그을린 모습이었다. 동방세보다도 더 까맣게 보였다.사제가 다시 만났으니 기쁘게 시간을 보내야 마땅했지만, 장기양은 임무를 받고 온 터라 오래 머물 수 없었다.“스승님, 꼭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좋은 술을 묻어두었는데, 내일 반드시 찾아뵙겠습니다! 스승님, 꼭 기다려 주세요!”장기양은 떠날 때 한 걸음에 세 번 뒤돌아보며 스승이 사라질까 봐 아쉬운 눈길을 보내며 나갔다.맹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저 아이는 너와 참 닮았어. 전쟁터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던 그 모습 말이야.”이내 그녀는 앞서 나눈 대화로 돌아가 봉구안에게 말했다.“세 달이란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것이다. 네가 남의 일에만 몰두하다 폐하와의 약속을 잊을까 염려되는구나…”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다음 날, 장기양은 약속을 지켜 술을 가지고 왔다.“장군께 하루 휴가를 받았습니다. 스승님, 이건 제 제자로서 드리는 작은 정성입니다!”봉구안은 오랜만에 술을 마셔보았다. 정말 맛있는 술이었다. 입안에서 풍미가 가득 퍼졌고, 목넘김은 강렬했으며, 뒤끝은 길게 이어지는 여운이 있었다.장기양은 더 이상 과거의 가난했던 소년이 아니었다. 그는 봉구안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스승님, 이 술은 제가 호룡부를 칠 때 그들의 주막에서 빼앗은 겁니다. 이 호룡부 사람들은 술을 잘 빚는 걸로 유명하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술은 단 한 병뿐입니다. 장군께서 달라고 하셨지만 제가 드리지 않고 스승님을 위해 남겨뒀습니다!”봉구안은 그를 보며 일찍 세상을 떠난 그의 부모를 떠올렸다.그들이 하늘에서 이 모습을
봉 대인은 그 뺨을 맞고 한동안 멍해 있었다. 눈앞의 이 여인이, 평소엔 늘 온화하고 말조차 부드럽게 하던 자신의 아내라니 믿을 수 없었다.“당신, 미쳤소?!” 밖에 하인들이 있는데 봉 대인은 몹시 화가 났다.하지만 오백은 흥미롭게 이 광경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봉 대인은 한 대로 부족해. 몇 대 더 쳐야 속이 시원할 텐데.’봉 부인은 분노와 슬픔이 한데 얽혀 거의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깊은 한숨만 내쉬며 머릿속에 오직 자기 딸,‘봉장미’밖에 떠오르지 않았다.‘하루라도 빨리 장미를 만나야겠어.’봉 대인은 손에 들린 편지를 흔들며 오백에게 물었다.“지금 이 아이들은 어디에 있느냐!”그녀들을 당장 잡아다가 다리를 부러뜨려 버리겠다고 마음먹었다.다음 날, 봉 대인은 병을 핑계로 관직에서 휴가를 내고 집을 떠날 준비를 했다.어차피 자신은 별 쓸모 없는 관직에 있었고, 자신이 빠져도 나라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하지만 그 두 아이들을 떠올릴 때마다 그의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그는 집안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병을 치료하러 가는 것이라며 핑계를 대었다. 집안일은 큰아들과 그의 부인에게 맡겼다.출발하는 날, 서자 봉명헌이 울며불며 그의 옷에 매달렸다.“아버지, 꼭 살아서 돌아오셔야 해요! 아버지 없으면 이 집은 망해요!”그러면서 콧물을 그의 옷에 문대는 모습에 봉 대인은 황급히 발길질하며 그를 날려버렸다.“이 놈아, 썩 꺼지지 못할까!”뒤이어 봉 대인의 첩, 임이랑이 그의 품에 안겨 흐느끼며 말했다.“서방님, 가신다면 저도 데려가 주세요. 제가 서방님을 보살필게요…”봉 대인은 이미 가마에 올라타 있었고, 차창을 열고는 차갑게 말했다.“언제 떠날 셈입니까? 서둘러 출발하십시오.”봉장미가 북방에서 고생하고 있을 걸 생각하면, 남편의 이런 작태가 기가 막혔다.봉 대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요즘 들어 이 여인이 정말 말버릇이 없어졌군!’그는 속으로 부글거렸지만 차마 말을 내뱉지
태황태후는 황제가 후궁의 수많은 미인을 두고 한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녀는 즉시 영비에게 물었다.“그 남자가 누구냐!”그러면서 눈에 살기를 띠기 시작했다.영비는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강호 출신으로, 이름은 ‘소환’이라 합니다. 폐하께서 그를 구하려 몇 차례나 위험을 무릅쓰셨습니다.”태황태후는 얼굴이 점점 더 분노로 물들었고, 영비는 더욱 견디기 힘든 사실을 전했다.“그 소환이 제법 능력이 있어 밤에 황궁에 잠입했고, 그날 밤 자진궁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들었습니다.”순간 태황태후는 너무 화가 나서 가슴이 터질 듯했다.“터무니없구나! 한 나라의 군주가… 어찌 이토록 방탕할 수 있단 말이냐!”이 일을 소씨 가문의 선조들에게 어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그녀는 죽고 싶을 만큼 비통했다.영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할마마마께서는 지금 당장 폐하께 이 일을 직접 묻지 마옵소서. 폐하께서는 절대 인정하지 않으실 것입니다.”태황태후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그 소환이라는 자, 내가 반드시 그 자를 죽일 것이다!”황제는 이전에는 정상적인 남자였다. 그러니 분명히 소환이 먼저 유혹했을 것이다.영비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이틀 후.궁에서 연회가 열렸다. 참석자는 황제와 후궁들뿐이었다.연회의 분위기는 무척 침울했으며, 마치 홍문연에 비견될 정도였다.소욱은 차가운 눈빛을 띠며, 서리 같은 표정으로 여느 때보다도 냉정한 목소리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성지가 이미 내려졌으니, 짐은 그대들을 억지로 내쫓지 않겠다. 그러나, 출궁할 기회는 이번 한 번뿐이다. 출궁하지 않으면, 조정이 그대들을 종신토록 부양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뿐이다.”후궁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황제의 뜻은 분명했다. 궁에 남는다 해도 더 이상 황제의 총애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순간, 그녀들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망설였다.이때, 모용선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낮추어 절하며 말했다.“신첩은 출궁을 원하옵니다.”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