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화는 능연이의 심복으로 조검처럼 능연이를 위해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다.그러니 봉구안이 그녀를 풀어줄 리 만무했다.잘못을 하였으면 벌을 받는 게 마땅했다.그렇게 춘화는 형자사에 갇히게 되었다.“황후가 날 속였어! 황후가 날 속였다고!”그녀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영화궁.봉구안은 봉장미가 납치된 수림에 다시 가보기로 했다.밤이 찾아오자 그녀는 몰래 궁을 빠져나갔다.그녀는 오백을 남겨 봉장미를 돌보게 하고 채월과 함께 그 수림을 찾았다.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채월뿐이었다.채월은 그날 있었던 일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그녀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곳입니다, 마마! 그때 저희의 마차가 산적들의 공격을 받고 호위들이 싸우고 있을 때, 소인과 요랑은 아가씨와 함께 마차에서 뛰어내려 저쪽으로 들어갔습니다.”밝은 달빛이 채월이 하얗게 질린 얼굴을 쓸쓸히 비추었다.수림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채월이었기에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려니 두려움이 앞섰다.봉구안은 횃불을 들고 앞장서서 걸었다.채월은 곧추 그녀의 뒤를 따랐다.음산한 바람이 그들의 옷깃을 스치고 지나갔다.채월은 설명을 계속했다.“그때 얼마 못 가서 여기쯤에서 소인이 넘어졌던 것 같아요. 요랑은 아가씨와 함께 저 방향으로 뛰었고요.”“나중에 아가씨께서 소인을 구하러 돌아오셨는데 소인은 이미 걸을 수 없는 상태였고 요랑이 아가씨를 끌고 다시 도망쳤어요.”봉구안은 횃불을 들고 수림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산적들의 자백을 회상했다.그들의 자백과 채월의 진술은 거의 흡사했다.마차가 가는 길을 가로막고 호위와 싸움을 벌였고 나중에 마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도망가니 그들도 쫓아서 수림으로 들어갔다.아마 기껏해야 일각 정도 시간이 지체되었을 것이다.곧이어 그들은 순조롭게 이미 쓰러진 봉장미를 발견했을 것이다.봉구안은 보통 여인의 보폭을 모방하여 채월이 가리킨 방향으로 달려가며 말했다.“넌 그 자리에서
묘원 주변은 스산한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다.오백은 연장을 들고 묘한 표정으로 봉구안에게 물었다.“장군, 여기가 확실한가요?”이곳은 봉가의 조상님들이 잠든 곳이기도 했다.오백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봉구안은 말없이 앞으로 걸었다.요랑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 앞에 도착하자 그녀가 명을 내렸다.“여기야. 시작해.”요랑과 같이 잠든 호위들도 근처에 묻혀 있어서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오백은 봉구안의 지시에 따라 무덤을 팠다.한 시진 후.바닥에는 심각하게 부패된 시체가 드러났다.아무리 전장을 누비고 다닌 오백이지만 참을 수 없는 악취에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였다.봉구안은 옷섶을 찢어 코를 막았다.그리고 지니고 다니던 비수를 꺼내 시체를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시신은 부패단계에 들어갔지만 어디에 치명상을 입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산적들은 훈련된 병사가 아니었기에 두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체 제작한 도끼를 사용했다고 한다.호위들 몸에서는 도끼에 맞은 흔적들이 발견되었다.하지만 요랑은 그들과 달랐다.그녀의 치명상은 가슴에 있었는데 상처가 이미 부패되었지만 주변의 피부 절단면으로부터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장군, 이건 비수에 찔린 상처 같네요.”가까이 다가온 오백이 말했다.봉구안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산적들이 비수를 들고 살인을 했을 리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자백에서 시녀를 살해했다는 진술은 듣지 못했다.부검을 통해 봉구안은 요랑은 산적들에게 살해된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였다.하지만 그녀가 누구에게 살해당하였으며 장미를 기절시킨 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장군, 저기 뭔가 있어요!”눈썰미 좋은 오백이 횃불로 요랑의 시체를 밝히며 말했다.부패된 복부 근처로 딱딱한 무언가가 보였다.“옥패입니다!”오백이 놀라며 말했다.시체에 왜 옥패가 숨겨져 있었던 걸까?봉구안은 침착하게 그것을 손수건으로 감싸서 집어들었다.크기가 크지 않고 나뭇잎처럼 얇은 모양의 옥패였다.겉에 묻은 이물질을 거두어내니 위에 새겨진 글
소욱이 이 늦은 시간에 그녀의 처소를 찾은 것은 예상밖이었다.예민한 소욱과 그의 시위들은 강력한 내력을 가진 무림고수들이고 그 어떤 소리나 움직임도 그들의 눈을 피해갈 수 없었다.봉구안은 신속히 밀서를 감추고 비둘기가 날아간 방향을 바라보았다.지금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소욱의 주의를 돌리는 게 우선이었다.봉구안은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자객이다!연상도 그녀의 의도를 눈치채고 같이 소리쳤다.“여봐라! 당장 와서 마마를 호위하라!”곧이어 소욱과 그의 시위들이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소욱은 곧장 내전으로 걸어들어왔다.물론 황후인 봉구안의 안위가 걱정돼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자객은 어디 있느냐!”그는 자객이란 소리를 듣는 순간 여자객이 또 무슨 짓을 꾸민다고 생각했다.봉구안은 열린 창가를 가리키며 말했다.“창문을 통해 도망쳤습니다.”“어떻게 발견했지? 자객은 남자였어? 아니면 여자였어?”“제대로 보진 못하고 검은 그림자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봉구안은 애매모호하게 답했다.소욱은 미간을 찌푸리며 진길을 호령했다.“가서 살펴보거라.”“예, 폐하!”봉구안은 공손히 예를 취했다.“폐하께서 납신 줄도 모르고 마중도 못 나갔으니 송구합니다.”소욱은 자객의 출현에도 전혀 놀라지 않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황후는 원래부터 이 정도로 대담한 사람이었나?”봉구안은 침착하게 답했다.“아니요. 다만 무서운 일을 겪고 난 후로는 두려운 감정이 사라졌습니다.”소욱이 의자에 앉자 연상은 조심스럽게 차를 대령했다.그는 찻잔은 쳐다보지도 않고 싸늘하게 말했다.“짐은 폐후를 고민했었다.”봉구안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희비가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얼굴은 담담하고 고요히 그의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너를 내치고 새로운 황후를 들이기에는 시간이 필요하지.”“하필이면 변방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후궁을 다스릴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잠시는 너를 폐하지 않기로 하였다.”그는 황후에게서 기쁨의 표정을 기대했지만 그녀는 여전
연상은 봉장미 납치 사건의 진실을 알고 한참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마마, 정말 무섭네요. 범인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거잖아요.”“요랑으로 변장하고 장미 아가씨의 신변에 숨어 있었다니. 너무 무서운 자예요! 어떻게 하면 놈을 잡을 수 있을까요? 하물며 마마는 황성을 떠나 북경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잖아요?”연상은 황후가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봉구안이 담담히 말했다.“가지 않기로 했어.”배후에서 이 판을 짠 자를 무조건 찾아낼 것이다.어차피 봉장미는 지금 여정을 떠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 급할 건 없었다. 걱정되는 점이라면 북경의 안녕이었다.황후는 한가한 비빈들과는 달리 할 일이 무척 많았다.이어지는 며칠동안 봉구안은 영소전에서 받은 뇌물을 일일이 기록하고 국고로 보냈다.영소전 소속 궁인들 중 죄질이 심각한 자들은 춘화처럼 행자사에 보내졌고 좀 덜한 자들은 신행사에 노역을 보냈다.나머지 무고한 궁인들은 각 궁에 충원을 보냈다.대대적인 정돈을 통해 영소전은 예전의 부패함을 씻어버리고 광명을 되찾았다.그러나 후궁의 비빈들은 영소전을 지나갈 때마다 한마디씩 불만을 터뜨리고는 했다.“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네. 과거에 감히 쳐다도 볼 수 없었던 곳인데 지금은 아무도 없는 냉궁이 되어버리다니. 어휴, 재수없어.”“돌 들어 제 발등을 깐 거지! 능연이는 폐하의 총애를 등에 업고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질렀는데! 황후께서 후궁을 정돈하려고 나섰으면 능연이부터 처치하는 게 당연하지.”비빈들은 능소전 앞에서 한바탕 불만을 토로한 뒤에 영화궁에 문안을 올리러 갔다.처음에 황후를 그토록 무시하던 그들이었지만 지금은 정반대로 바뀌었다.아무리 이 사건이 비밀에 부쳐졌다고 해도 능연이의 죄증을 지목한 사람이 황후라는 사실은 궁 안에서 조용히 퍼져나갔다.황후는 보기에 아무런 욕심이 없어 보이지만 절대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태후는 요즘 갈수록 봉구안이 마음에 들었다.태후
모용선이 하루가 멀다하게 태후궁에 드나들 수 있다는 건 태후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것을 뜻이고 이는 모용선이 다른 수녀들과는 완전히 다른 입지에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조카딸인 녕비마저도 요즘 태후에게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녕비는 불만을 가득 가지고 자녕궁으로 향했다.계 상궁이 대문 앞에서 그녀에게 말했다.“마마, 지금은 모용가의 아가씨께서 태후마마를 위해 불경을 읽어드리고 있어서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후쯤에 다시 오시지요.”녕비는 불만을 참으며 억지미소를 지었다.“고모가 모용가의 아가씨를 무척 마음에 두셨나 보군. 그럼 이만 물러가겠다.”계 상궁은 실망감이 가득한 녕비의 얼굴을 보고는 다가가서 작은 소리로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마마, 태후께서 하는 모든 것은 마마와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태후마마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마마밖에 없습니다.”녕비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그건 나도 알아. 고모께 건강 잘 챙기라고 전해드리거라.”밖으로 나온 후, 녕비의 시종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모용가의 셋째 아가씨가 수완이 좋나 봐요. 한번 만나본 사람은 다 마음에 들어한다는데 태후마저도 그 아가씨에게 이리도 잘해주시니 나중에 입궁하면 폐하의 총애를 독차지할까 봐 두렵습니다.”녕비가 하찮다는 듯이 코웃음쳤다.“그래서 우리가 뭘 할 수 있지? 그년의 입궁을 막을 수도 없지 않느냐.”그녀는 영비를 닮지 않은 자신의 얼굴을 탓했다.하지만 그녀가 아는 태후라면 진심으로 모용선을 좋아할 것 같지는 않았다.영화궁.연상은 봉구안의 필묵 시중을 들며 걱정스러운 어투로 말했다.“마마, 모용선 아가씨는 좋은 인품에 영비를 똑 닮은 얼굴을 갖고 있다고 다른 비빈마마들이 긴장하고 계신 건 이해하겠는데 마마도 그 아가씨를 신경 쓰고 계신 건가요?”봉구안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내가 모용선을 왜 신경 쓰지?”“아닌가요? 그런데 아침부터 마마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보이셔서….”봉구안은 붓대를 내려놓고 싸늘한 표정으로
자진궁.목욕을 마친 소욱은 흑발을 길게 늘어뜨리고 천천히 걸어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그의 싸늘한 시선이 책상 위에 놓인 채찍에 향했다.날짜를 계산해 보니 어제가 몽화독이 발작할 날이었다.예상대로라면 그녀는 해독약을 구하러 와야 했다.그는 약속대로 진길을 시켜 장신궁에 약을 가져가게 했다.하지만 오래도록 기다렸지만 그녀는 약을 가지러 오지 않았고 오늘 아침에 가서 확인했을 때도 약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소욱이 생각에 잠긴 사이, 외출했던 진길이 돌아와서 아뢰었다.“폐하, 장신궁에 다녀왔는데 해독약은 그대로 있었습니다.”진길 역시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몽화독이 발작했다면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릴 것인데 그녀는 무슨 수로 참았을까?소욱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알겠다.”어차피 그녀가 필요하다면 가지러 갔을 것이다.굳이 필요 없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갖다바치고 싶지는 않았다.한편, 봉구안은 봉장미 사건의 배후를 찾는데 심혈을 기울였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상대는 아주 치밀한 사람이라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봉구안이 걱정되는 건 동생 봉장미였다.그녀는 최근 마음대로 출궁할 수 없었다. 최근 며칠 사이 영화궁에 그녀를 지켜보는 눈동자가 많아진 느낌이었다. 어쩌면 소욱이 감시하라고 보낸 사람들일 수도 있었다.그리하여 그녀는 오백과의 밀서를 통해서만 봉장미의 상황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송려의 치료를 받고 봉장미는 나날이 좋아지고 있었다. 더 이상 자해를 하지 않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제정신인 상태도 아니었다.송려는 지금 상황에서 봉장미를 데리고 낯선 곳으로 간다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봉안진은 참장의 관직을 회복한 후에 곧 혼사가 정해졌다.이날 봉 부인이 직접 입궁하여 봉구안에게 희소식을 전했다.“고명부인 자리를 보고 온 거겠지만 주 상서댁 따님은 어여쁘고 현명한 아이이니 안진이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봉구안이 담담히 물었다.“혼례식은 언제로 잡았나
몇 차례의 수녀들이 입장을 하였지만 봉구안이 남긴 수녀는 많지 않았다.뭇 비빈들은 황후가 질투심에 일부러 그런다고 생각했다.“모용 시랑 댁 모용선 입장!”소리를 들은 비빈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문쪽을 바라보았다.가녀린 몸매에 화려한 비단 예복을 입고 청순한 얼굴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 입장했다.“소인 모용선, 황후마마를 뵈옵니다.”녕비는 저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그녀의 얼굴이 죽은 영비와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능연이가 영비와 흡사한 외모를 가졌다면 모용선은 영비와 쌍둥이자매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똑같게 생겼다.비빈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사촌지간이라고 해도 너무 닮은 거 아니야?”“그러니까. 일거수일투족 말투까지 너무 닮았어. 죽은 영비가 살아 돌아온 줄 알았다니까?”그들은 아무리 닮았다고 해도 가빈처럼 폐하의 총애를 받기는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다.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모용선이 얼굴을 드러낸 순간, 모두는 그녀가 능연이보다 더 총애를 받을 거라고 확신했다.사람들의 시선이 봉구안에게로 쏠렸다. 질투 많은 황후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었다.오늘의 후궁 간택은 황후의 말 한 마디에 모든 게 결정되기 때문이었다.봉구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히 물었다.“북대영에 있던 모용 장군이 나중에 남부로 발령이 났다고 들었는데 아는 사람이더냐?”모용선이 공손히 답했다.“예, 마마. 소인의 오라버니옵니다.”비빈들 중 한 명이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북대영이라고? 몇 달 전에 양나라 사신의 초대연에서 북대영에 맹 장군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모용 장군은 대체 누구지?”옆에서 듣고 있던 녕비가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모용 장군도 몰라? 모용걸은 맹성주보다 더 일찍 유명해진 분이야. 맹성주가 장군이 되기 전부터 이름을 날린 대장군이었다고.”“실력으로 따지면 맹성주 장군의 우위에 있는 분이지!”듣고 있던 다른 사람들은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모용선에게 그렇게 대단한 오라버니가 있었다니!봉
모용가 저택.모용선은 오라버지의 서신을 받고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시종인 유서가 웃으며 물었다.“아가씨, 무슨 일인데 이리 기뻐하시나요?”모용선은 은방울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오라버니께서 승전고를 올리셨다는구나.”유서 역시 환하게 웃으며 환호했다.“너무 잘됐네요!”하지만 곧이어 모용선의 표정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왕야께서는 아직도 답신이 없어?”유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아가씨, 괜히 걱정하지 마세요. 아마 공무가 다망하시어….”모용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거짓말할 필요 없어. 나도 알아. 상의도 없이 간택에 참여한 일로 왕야께서는 화가 나 계신 거야. 그래서 처음부터 숨기려고 했던 거고.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그래도 후회는 없어.”유서가 말했다.“아가씨는 높이 올라가실 운명이고 사당에만 계시기에는 너무 아까운 분인걸요.”모용선은 거울을 통해 사촌언니와 흡사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결연한 말투로 말했다.“왕야께서는 늘 나한테 사당에 머무르며 평온한 삶을 살라고 당부하셨지. 대체 뭐가 두려워서 그러시는 건지 난 지금도 모르겠어.”“그분과 언니, 그리고 폐하께서는 같은 스승 밑에서 배움을 받고 같이 자라며 우애가 깊다는 거 알아. 그래서 언니와 흡사한 얼굴을 가진 나한테도 그리 잘해주신 거지. 그런 분이니 나쁜 마음으로 내 앞길을 막지는 않았을 거야.”“하지만 나도 내가 가야 할 길이 있어. 오라버니가 남부로 발령난 것은 명백한 좌천이야. 폐하께서는 모든 걸 알고 계신 거라고. 난 모용가의 자식이고 가문의 이름을 빛낼 의무가 있어.”그리고 언니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었다.며칠 후, 간택을 받은 수녀들이 입궁하였다.모용선은 수녀들 중에서 가장 높은 품계를 받고 방비전에 살게 되었다.그날 밤, 황제가 그녀를 서재로 불렀다.같이 입궁한 수녀들은 물론이고 비빈들에게마저 없던 대우였다.황제를 처음 알현하는 자리었기에 모용선은 정성 들여 자신을 꾸몄다.황제는 그녀가 생각했던 것처럼
양연삭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게 친딸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거짓말이야.”그는 고개를 저었다.같은 반응을 보이는 이는 염추도 마찬가지였다.“어머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염추는 어머니가 자신을 구하려고 이런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양연삭이 다시 살의를 드러내자, 염 부인은 체면을 잃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과거의 진실을 폭로하기로 했다.“양연삭!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것입니까… 그때 막 만간성법을 수련하기 시작했을 무렵, 심마에 빠져 정신을 잃은 채 저를… 저를 능용하지 않았습니까! 염추는 그날 밤 생긴 당신 딸입니다!”양연삭은 분노에 차 소리쳤다.“천한 계집! 심마에 빠진 건 너였겠지!”염추는 어머니가 피를 쏟으며 쓰러지는 것을 보고 온몸이 얼어붙었다.그녀는 급히 염 부인을 부축했다.“어머니, 그만 말씀하세요. 오지 말았어야 했습니다!”양연삭은 체내에서 진기가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것을 억누르며 불쾌감을 삼켰다.“천한 계집! 입 닥쳐라! 내 딸이 아니다! 아니야! 내게는 아들 하나밖에 없다! 혹시 소환이 너를 시켜 나를 속이라고 한 것이냐? 내가 너를 죽여버리겠다!”그는 이 말을 끝으로 순식간에 달려들어 염 부인을 정확히 붙잡아 염추와 떼어놓았다.“안 돼!”염추는 놀라 외쳤다.동방세와 범진이 양쪽에서 양연삭의 주의를 끌며 염 부인을 구하려 했지만, 양연삭은 반응이 빨랐다.염 부인을 붙잡은 채 뒤로 물러섰다.염추는 이를 악물며 일어났다.피가 입가에 맺혀 있었지만, 그녀는 상관없었다.어머니가 양연삭의 손에 죽어가는 모습을 보자, 분노가 극에 달했다.“양연삭! 어머니를 놔줘라!”그러나 양연삭은 염 부인을 놓지 않고 집요하게 따져 물었다.“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다! 내 딸이 아니다! 말해라, 내 딸이 넌 아니라고!”염 부인은 처량한 눈빛으로 염추를 바라보았다.“내 딸아… 네 몸에는 네 아버지의 더러운 피가 흐르고 있어. 하지만… 부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라. 그만둬라,
염추는 만간성법을 수련하며 양연삭의 내력을 흡수했다. 그녀의 공력이 크게 증가한 덕에 두 사람은 땅에서 산으로 옮겨가며 치열하게 싸웠다. 그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먼지가 날리고 바위가 사방으로 흩어졌다.멀리서는 제군과 북연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북연군의 부장이 전장에서 희미하게 양연삭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근심에 빠졌다.‘분명 쉽게 제황을 죽일 수 있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 소식도 없다니. 이쪽은 더 버틸 수 없단 말이다!’제군은 곳곳에 매복병을 숨겨두었다.그들은 북연군이 포위망을 뚫어냈다고 생각하는 순간마다 다시 새로운 병력을 내세워 공격을 개시했다.북연군 부장은 이를 갈았다.“제군 놈들, 정말 비열하기 그지없구나!”북연군 병사들의 사기는 점점 흩어졌다.그때, 제군의 주장인 관 장군이 말을 타고 나와 크게 외쳤다.“북연군이여 들어라! 우리 장군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다면, 북연군이 안전하게 조유관을 떠날 수 있도록 허락하시겠다고 하셨다!”북연군 부장은 분노하며 외쳤다.“북연군은 절대로 항복하지 않는다!”관 장군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응수했다.“항복해라!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겠느냐! 어차피 북연군은 지난 전투에서 이미 남제에 졌지 않은가. 폐하께서 친필로 쓰신 항복문서를 우리도 읽어봤다!”지난 전투는 연태자가 이끌었으나, 30만 대군을 잃고 말았다.그 후 겨우 모집한 신병들도 전장에서 패배해 대부분 폭사했다.북연군 부장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남제인 놈들, 감히 우리를 모욕하다니!’얼마 지나지 않아 북연군은 포위망을 뚫고 다시 진영을 정비했다.두 군은 서로의 진영을 뚜렷이 구분하며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제군의 장수들이 권고했다.“우리 폐하께서 말씀하시기를, 더는 장병들이 헛되이 죽어나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고 하셨소. 아마 귀군도 같은 마음일 테지요?”또 다른 장수가 거들었다.“맞습니다! 여기서 물러나는 게 낫소. 병사들마저 폭사했다던데, 북연군이 공격할 용기가
“너희들이 날 또 속이려 드는구나! 소환, 네 놈은 죽어야 마땅하다!”양연삭은 더 이상 그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그는 아무것도 듣지 않고, 동방세의 내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봉구은 즉시 검을 뽑아 몸을 솟구치며, 마치 날렵한 제비처럼 양연삭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양연삭은 귀를 살짝 움직이며 날카로운 검기가 다가오는 것을 감지하더니 몸을 비틀며 공법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덕분에 동방세는 바닥에 떨어져 거친 돌 위에 등을 세게 부딪혔고, 머리카락은 흩날렸다.양연삭은 즉각 대응하며 봉구안을 향해 반격을 개시했다.그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올랐고, 반드시 봉구안을 죽여야겠다는 살의를 품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정면으로 치지 않고, 순간이동하듯 그녀의 등 뒤로 이동했다.그리고 갑작스러운 손바닥 공격으로 그녀의 등을 내리쳤다.“소환! 조심하시오!”동방세가 경고하자, 봉구안이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미 늦었다.퍽!소욱이 그녀의 뒤를 막아 서서 그 공격을 대신 받아냈다!봉구안은 즉시 눈이 커지며 소욱을 부축했다.“폐하!”진한길이 즉시 달려와 호위하려 했으나, 양연삭의 옷자락 휘두름 한 번에 허공으로 튕겨나갔다.뒤에서 다가오던 오백이 간신히 진한길을 받아냈다.동시에, 봉구안은 소욱을 보호하며 후퇴했다.범진과 다른 호위병들이 연달아 도착하여 도움을 주려 했지만, 양연삭의 마공은 너무 강력했다.그는 혼자서도 열 명이 넘는 병사들의 공격을 막아냈으며, 마치 거대한 저항의 벽처럼 그들을 튕겨내며 봉구안을 향해 다가갔다.봉구안은 그의 살기를 읽어내며, 소욱을 안전한 곳으로 밀어냈다.“구안아!”소욱은 즉시 그녀를 향해 달려가 그녀를 보호하려 했지만, 이미 양연삭의 손바닥 공격과 맞닥뜨렸다.손바닥과 손바닥이 맞붙는 순간, 소욱은 강렬한 흡수력을 느꼈다.마치 그의 몸속 깊이 갈고리가 박혀 내력을 강제로 끌어내는 듯했다.그는 벗어날 수 없었다.양연삭의 얼굴은 기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그는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강력한 내력이군!”
“양연삭,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군!”상방산 위에 동방세가 강호의 벗들과 함께 진을 치고 있었다.봉구안은 이미 이들과 연락을 주고받았으며, 이 감주에서의 매복은 단순히 북연군을 막기 위함만이 아니라 양연삭을 체포하려는 목적도 있었다.익히 알고 있듯이, 양연삭이 듣는 감각으로 싸움을 이어가려면 시간을 들여 적응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감주는 그에게 낯선 곳이었다.양연삭은 헝클어진 머리칼과 검은 천으로 가린 눈을 한 채, 귀를 곤두세워 소리를 가늠했다.“소욱! 소환! 너희 둘, 당장 나와라!”그의 분노는 깊었다. 복국과 복수를 위해, 반드시 이 둘을 죽여야 했다.아들마저 죽음에 이르게 한 두 사람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봉구안은 높은 곳에서 이를 싸늘히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곁에는 소욱이 자리하고 있었다.그 외 장수들은 병사들을 이끌고 북연군과 싸우고 있었고, 이 상방산에는 오천의 정예병력만 배치되어 있었다.이 오천이 바로 오늘, 양연삭의 무덤을 파낼 병력이었다.…북연군은 진영이 어지럽혀지면서 전투력이 급감했다.관 장군은 먼저 기습으로 혼란을 일으킨 뒤 포위 공격으로 말머리를 돌렸다.기병들은 북연군 주위를 돌며 기세를 꺾었고, 말발굽 소리와 흙먼지, 그리고 치열한 함성은 북연군을 더욱 당황하게 했다.그들은 마치 산적에게 길을 막힌 규중 여인들처럼 갈팡질팡했다.부장은 목청껏 외쳤다.“흩어지지 마라! 반격하라! 우리가 북연군의 실력을 보여주자!”병사들은 방패를 들어 올리며 진을 짜기 시작했다. 이는 기병의 돌격을 막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이었다.동시에 북연군의 기병들은 다른 쪽에서 포위를 뚫으려 고군분투하고 있었다.부장은 속으로 양연삭이 빨리 소욱을 죽이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렇다면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을 것이며, 그는 대공을 세운 영웅으로 남을 것이었다.양연삭은 비록 눈이 멀었지만 그의 마공은 전성기 못지않게 강력했다.완부옥이 몸에 지니고 있던 독물조차 그의 ‘만간성법’에 의해 모두 파괴되었고, 그녀는 내력을 상당히 잃은 채 동
북연군이 철수하려 하자, 양연석은 곧장 진 장군을 찾아갔다.“장군, 이것은 남제의 간계일 뿐입니다...”대군이 이미 진영을 떠나고 있었기에, 진 장군은 그의 헛소리를 들을 마음이 없었다.“양연석, 원래 네가 확신을 준 덕분에 황제께서 출병을 결심하신 것이다! 우리 북연은 남제와 제대로 싸울 계획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어찌된 것이냐? 네 일이 실패로 끝나 우리 군대가 반이나 손실되고 말았다.“나는 지금 너와 소욱이 한통속이 되어 우리 북연을 멸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비켜라! 감히 누구를 위해 싸우라고 하는 것이냐?”양연석의 얼굴이 싸늘해졌다.그는 손을 휘저으며 곧바로 진 장군의 목을 움켜쥐었다.진 장군은 놀라움과 분노로 크게 외쳤다.“양연석... 네가...”순간, 진 장군은 자신의 체내 진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양연석은 그의 내력을 흡수하면서 섬뜩한 목소리로 물었다.“장군께선 '만간성법'이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진 장군은 눈을 크게 뜨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그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으나 양연석에게 대적할 수 없었다.잠시 후, 양연석은 그의 내력을 모두 흡수한 뒤, 그의 목을 꺾어버렸다.북연의 명장이었던 진 장군은 그렇게 양연석의 손에 생을 마감했다.곁에 있던 부장은 이 광경을 보고 공포에 질려 식은땀을 흘렸다.그는 양연석이 보지 못하고 오직 귀로만 위치를 파악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입과 코를 손으로 막고 자신의 존재를 숨겼다.그러나 그는 움직여 천막 입구에 이르러 막 도망치려던 순간, 앞에서 한 팔이 가로막았다.부장은 등골이 오싹해졌다.그는 양연석의 사술을 이미 목격했기에 겁에 질려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다.“제발 저를 죽이지 말아 주십시오!”양연석은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주군이 죽었으니, 네가 이제부터 주군이다. 곧바로 명령을 내려 조유관을 공격하고 남제의 황제를 죽이도록 해라!”부장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안 됩니다!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그는 죽는 것이 두려
새해가 밝자마자, 남제 대군은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섰다.이번 반격은 본격적인 전투가 아니라 도발 수준에 그쳤다.겉보기엔 큰 피해를 주지 않는 듯했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반복된 도발은 북연군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안겼다.그렇게 보름 정도가 지난 어느 밤, 북연군 대영에서 치명적인 사건이 터졌다.“장군! 장군! 영내 폭동이 일어났습니다!”영내 폭동은 군영 내에서 발생한 대규모 소요 사태를 말한다.이것은 극히 드문 일이지만, 군대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진 장군은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어서 장군을 호위하라!”이 폭동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한 병사가 무심코 “적이다!”라고 외친 것이 발단이 되어 전군이 서로를 적으로 착각하며 싸우는 대참사로 번진 것이다.북연군 대영은 한순간에 혼돈에 휩싸였다.병사들은 허둥지둥 일어나 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는 무작정 외쳤다.캄캄한 밤중이라 서로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기에, 적이 이미 진영 안으로 침입했다고 믿은 병사들은 무기를 휘둘렀다.그들 모두는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싸웠고, 자신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진영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었다.특히 전쟁에 처음 나서는 신병들은 상황을 이해할 새도 없이 무조건 무기를 휘두르며 서로를 공격했다.순식간에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군영 안에는 시신이 가득했다.조유관 내, 남제 대군 본영.남제 대군 본영의 장막 안, 한 병사가 황급히 달려와 기쁜 얼굴로 외쳤다.“폐하! 북연군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관 장군은 주먹을 꽉 쥐며 외쳤다.“잘됐다!”그는 곧장 봉구안을 바라보며 말했다.“맹 소장군, 과연 그대의 예상대로 되었습니다!”다른 장군들 역시 봉구안에게 경의를 표하는 눈길을 보냈다.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지만, 단순한 계략으로 북연군 내부를 서로 물고 뜯게 만들다니, 그야말로 천재적인 발상이었다.영내 폭동은 양군이 정면으로 맞붙는 전투보다 훨씬 참혹하다.병사들은 히스테릭 상태에 빠져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서로 죽였다.
남제에서 내놓은 화룡은 북북연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북연군은 그동안 남제의 죽화총을 모방해 제작한 무기를 통해 천하무적이라 자부했건만, 남제가 이를 역으로 배워 화룡까지 만들어낼 줄 누가 알았겠는가!북연군의 주군인 진 장군은 이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남제군이 허세를 부리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그는 화룡을 가까이에서 확인하고는 기가 찼다. 남제군의 화룡은 북연의 것과 똑같이 생겼던 것이다!남제군은 소규모 병력을 내보내 화룡을 북연군 쪽으로 밀어 보이며 여유롭게 시위를 벌였다. 두 나라의 화룡이 서로 스쳐 지나가는 광경은 보는 이들을 적잖이 당황하게 했다.그러자 남제군 쪽에서 도발을 이어갔다.“우리 폐하께서 말씀하셨소! 북연이 선물한 화룡탄에 깊이 감사드린다고!”진 장군은 그 말을 듣자 손발이 떨리기 시작했다.그 화룡탄은 그가 천룡회 반역자들에게 넘겨줘 혼란을 일으키고 군왕을 죽이는 데 사용하라 한 것이었다.그런데 그 화룡탄이 여기 나타나다니!만약 남제군이 화룡을 진짜로 가지고 있다면 그의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이 된다.북연군뿐만 아니라 조유관에 있는 남제군 병사들까지도 그 광경에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관 장군 역시 멍하니 입을 벌린 채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옆에 있던 부장이 기쁨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참 통쾌하군요!”이 느낌은 마치 거지였던 자신이 갑자기 재산을 상속받아 거리에서 어깨를 펴고 다니게 된 듯했다.남제군 병사들은 하나같이 당당한 자세로 북연군을 향해 외쳤다.“와보시지! 누가 겁내는지 보자고!”북연군은 이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즉각 철수를 명령하며 화룡을 회수하기 시작했다.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신할 수 없었으나, 그럴수록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진 장군이 소리를 질렀다.“뭣들 하는 게냐! 빨리 움직이지 못하고!”한편, 후방.양연삭은 찻잔을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남제가 화룡을 만들어냈다고? 이건 분명히 거짓말이다!”…남제군 내부에서도 화룡의 진위에
봉구안은 갑옷을 입고 나타났다. 소욱은 그녀를 보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이게 무슨 짓이냐? 내가 너한테 상처부터 회복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던 거 기억 못 하느냐.”봉구안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제 상처는 별일 아닙니다. 계속 여기 안에만 있으면 오히려 몸이 더 불편합니다.”“적군을 몰아내는 게 급선무입니다. 게다가 양연삭도 그들 편에 있으니, 그들을 빨리 처치하는 것이 우선입니다.”소욱은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가로막았다. 그의 눈빛은 결연했다.“안 된다. 네 상처가 아직 다 낫지 않았으니 또 다치게 할 수는 없다.”봉구안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제 몸을 잘 지킬 수 있습니다.”“구안아, 너…”소욱은 그녀를 더 설득하려 했지만, 그 순간 밖에서 보고가 들어왔다.“폐하, 적군이 소환을 내놓지 않으면 당장 전쟁을 시작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습니다!”동부 변경조유관 성벽 바깥. 적군이 검은 물결처럼 밀려들었다. 붉은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며 전장을 압도했다.양측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북연군의 진 장군은 기세등등했다.그의 뒤에는 ‘화룡’과 새롭게 개발된 죽화총이 줄지어 있었다.남제에 있는 것은 북연에도 있었고, 남제에 없는 것조차 북연은 가지고 있었다.전력 차는 명확했다.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공격하는 데 이유가 필요 없었다. 그러나 큰 나라끼리의 전쟁이라면 명분이 필요했다.북연군은 소환이라는 대마두를 내놓지 않으면 ‘화룡’을 발사해 강공하겠다고 협박했다.오랜 기다림에도 남제 측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점차 북연군은 참을성이 바닥났다.많은 병사가 소리쳤다.“공격하라!”“공격하라!”그들에게는 장거리용 화룡과 근접전을 위한 죽화총이 있었다.남제 따위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반면, 남제군은 화룡을 보자 심장이 내려앉았다.그 위력을 익히 들어온 터였다.그러나 소환은 맹 소장군이란 신분이자 미래에 황후가 될 자였다.그런 그녀를 적군에게 넘길 수는 없었다.장군들은 성벽 위에 서서 북연의 대군을
소욱은 품 안에 있는 사람을 껴안고 자신의 통제되지 않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젠장!”남자는 눈물을 쉽게 흘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자기가 이렇게 울고 있다니! 정말 체면이 없었다. 하지만... 매우 만족스러웠다.봉구안이 드디어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했으니까 말이다.소욱의 마음은 수없이 흔들리며 설레었고, 그는 그녀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뭐라 했느냐? 듣지 못했다.”봉구안은 진지하게 말했다.“안 들리셨다면, 그냥 넘어가시지요.”소욱은 즉시 그녀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며 말했다.“구안아, 일부러 그러는 것이냐? 난 그저 다시 한 번 듣고 싶은 건데, 그것도 안 되겠느냐?”봉구안은 그의 손을 떼어내고는 고개를 들고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예, 제가 폐하를 좋아합니다...”소욱의 머릿속에서는 불꽃놀이 터지듯 화려하고 찬란하게 빛났다. 그는 봉구안을 꼭 껴안고 마치 꿀을 들이킨 듯 달달한 마음에 젖었다.“구안아, 정말 기쁘구나. 네가 이렇게 말해 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그녀가 겪은 이야기를 들으니 그의 마음은 아프고도 놀라웠다.눈사태가 닥쳤을 때, 상식적으로라면 측면으로 달려야 한다. 하지만 당시 눈사태는 너무 빠르고, 그녀는 부상당해 경공을 펼치기 어려웠다. 눈사태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그 곳에는 봉구안을 죽이기 위해 달려온 살수들도 있었다.그녀는 달아나는 척하며 결사적으로 싸웠다. 실상은 눈사태가 발 밑에 닥치기 직전, 한 산돌을 찾아 몸을 숨겼다. 그녀는 몸에 있던 채찍으로 몸을 돌과 묶어 눈사태의 충격을 피했다.그 돌은 그녀가 눈사태에 휩쓸리지 않고 묻히지 않도록 막아줬다.눈사태가 중반부에 이르렀을 때 속도가 느려졌고, 그녀는 최대한 수영하듯 몸을 떠올려 눈 위로 나오려 애썼다. 머리를 밖으로 내밀어 구조대가 그녀를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하지만 그녀는 체력을 모두 소진하여 결국 기절하고 말았다.눈을 떴을 때는 늙은 의원이 그녀를 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