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허궁을 떠난 봉구안은 바로 형자사로 갔다.형자사의 형실은 어둡고 습하여 쥐가 자주 들락거렸다.공기 중에는 썩은 냄새와 피비린내가 가득했다.춘하와 궁인들은 수감되어 있었지만 심문은 받지 않았다.형실로 끌려간 춘하는 아무도 그를 해치지 못한다고 확신하고 불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그런데 황후를 본 춘하의 안색은 변했다.“황후 마마를 뵙습니다.”춘하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태도는 영소전 대궁녀답게 의젓했다.형실 안에는 그들 둘뿐이었다.그늘의 어둠 속에 있는 봉구안의 표정은 알 수가 없었다.봉구안은 조검의 수찰 복각본을 춘하에게 던졌다.“이것 좀 봐!”춘하는 뭔지 모르지만 그래도 조심스럽게 열었다.수찰 내용을 본 춘하의 표정은 순식간에 변했다.‘조검이 언제 이런 것들을 기록했지?’‘왜?’‘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황후의 손에…’불안한 춘하는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들어 봉구안을 바라보았다.“황후마마, 이…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춘하는 모른 척하려고 했다.봉구안은 불타는 화롯가에 가서 부집게로 빨갛게 달아오른 숯을 휘저었다.한참 후, 부집게는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적막한 실내에는 나무가 불에 타는 소리가 들렸다.춘하는 본능적으로 몸을 떨고 있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려고 했다.봉구안은 부집게를 들어 무심코 춘하의 얼굴 옆으로 갖다 댔다.갑작스러운 열기에 춘하는 놀라서 심장이 마구 뛰었다.춘하는 눈을 감고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황후마마, 노비 정말 모르겠습니다…”칙!부집게가 춘하의 머리카락에 닿아 순간 탄내가 났다.춘하는 순간 숨이 턱 막히었다.‘황후가 뭘 하려는거지?’봉구안의 눈빛은 늠름하였다.“춘하, 너 올해 스물넷이라고 했지. 내년이면 궁을 나가 시집갈 거고…”“고향에 정인이 기다리고 있다고 들었는데…”“너도 너의 주인처럼 얼굴에 흉터가 생기면… 이 혼사 성사될까?”순간 춘하는 눈을 번쩍 떴다.춘하는 자신의 사적인 일을 귀비도 모르게 꽁꽁 숨겨두었다. ‘황후가 어떻게 아셨지?’궁은 사
황제의 서재.소욱은 대신들과 양국 평화 회담에 대해 상의하고 있었다.“폐하, 양나라가 백만 황금을 물어내라고 하는 것은 너무 과분합니다. 절대 동의해서는 안 됩니다.”“진 장군, 만약 그들의 이 조건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맹성주를 양나라 도성에 보내 사죄해야 합니다.”“그것도 안 됩니다. 맹성주는 남제의 공신입니다. 그런 수모를 당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멩성주가 지금 중상을 입었는데…”맹성주 얘기가 나오자 서왕의 표정이 엄숙해졌다.서왕은 공수하여 인사하며 간절하게 말했다.“폐하, 백만 황금을 지불할지언정 맹소장군을 희생시킬 수 없습니다.”“양나라의 속셈이 뻔한데, 만약 맹소장군을 양나라에 보내면 그가 살아서 돌아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다른 대신들도 이 말에 맞장구를 쳤다.“돈은 몸 밖의 물건일 뿐입니다. 백만 황금은 조만간에 다시 벌 수 있지만 맹소장군 같은 인재를 잃으면 남제의 북경이 위태로워집니다.”하지만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소신 다른 의견이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남제의 운수가 좋지 않아 세수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지요. 백만 황금이면 남제 백성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맹성주… 이제 전쟁도 끝났으니 싸울 일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그렇지요. 석고대죄로 백만 황금을 대신할 수 있다면 맹성주는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석고대죄하여 폐하의 근심을 덜어 드려야 하거늘… 그리고 맹성주의 무공이 정말 그렇게 뛰어나다면 양나라의 음모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폐하, 이 대인의 말에 일리가 있지요. 소신도 몇 마디 덧붙이겠습니다. 맹성주가 자신의 공로를 믿고 무척이나 자부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군권이 있어 위험성도 높고… 이번 기회에 맹성주의 충성심을 시험해 보고, 그의 오만함을 죽이는 것도…”두 진영의 사람들은 각자가 도리가 있다며 계속 다투었다.소욱의 차갑고 엄숙한 미간에 그늘이 졌다.소욱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백만 황금과 맹성주의 석고대죄 둘 다 양나
쳐들어온 호위대는 어각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어각에는 책장과 서책이 있었고 창이 열려 있었다. 벽에 걸린 그림은 바람에 날려 화족과 벽이 부딪치면서 소리를 냈다.봉구안은 이미 도망쳐 나온 지 오래다.영화궁.위장을 벗은 봉구안의 눈빛은 엄숙했다.봉구안은 소욱이 어떻게 몸속의 천수지독을 억제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청허궁.능연은 외출하지는 못하지만 마당에서 돌아다닐 수는 있었다.능연은 긴 복도를 지나면서 하녀 둘이 구석에서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귀인님 정말 총애를 잃은 것은 아니겠지?”“총애를 잃은게 분명해. 청허궁은 어디냐? 냉궁이나 다름이 없잖아. 귀인이 여기로 온 후 폐하께서 한번도 오시지 않았고…”“귀인은 얼굴이 망가졌으니 총애를 잃을 수밖에…”능연 옆에 있던 궁녀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궁녀는 앞으로 가서 그들에게 호통을 쳤다.“어디서 감히 주인을 논한다냐!”궁인들은 즉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귀인, 살려주십시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능연은 옷자락을 힘껏 움켜쥐었다. 손등의 혈관이 튀어나왔다.“이들의 손발을 자르고, 혀를 뽑아낸 후 장살하거라!”“살… 살려주십시오. 마마!”능연은 그들의 용서를 무시했다.‘멍청한 것들, 내가 총애를 잃었다고?’‘내가 총애를 잃을 리가 없지!’‘폐하가 날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능연은 차가운 얼굴로 옆에 있는 궁녀를 노려보았다.“너도 본궁이 총애를 잃었다고 생각하느냐?”겁에 질린 궁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마마의 풍채와 재능으로 무조건 다시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능연은 궁녀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내가 영원히 이 후궁에서 가장 총애를 받는 여인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알릴 거야.’‘내가 냉궁에 있더라도 폐하는 나를 가장 총애해…’능연은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능연의 눈에는 확신이 가득했다.‘폐하는 곧 오실 거야.’…능연이 강들된 후 많은 비빈들은 영소전 주인을 목표로
비록 털 빠진 봉황이 닭보다 못하다고는 하지만 능연은 후궁의 총애를 한 몸에 얻었던 여자였다. 얼굴이 망가져도 황제는 여전히 며칠 동안이나 연이어 그녀를 총애했었다. 여기서 능연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연상은 황후의 말대로 움직였지만 최 상궁은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최 상궁은 능 귀인이 훗날에 다시 총애를 얻어서 자신을 죽일까 봐 두려웠다.황후가 좋은 일을 하려고 그들을 데리고 나온 것은 아닌 줄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어려운 일을 시킬 줄은 몰랐다.최 상궁은 제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연상은 혼자서 능연을 꽉 잡을 수 없었다. 오히려 능연에게 밀렸다.“봉장미! 네가 감히 본궁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폐하는 결코 너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궁에는 폐하 외에 아무도 감히 본궁의 옷을 벗기지 못해! 네가 무슨 자격으로…”봉구안은 차가운 눈으로 최 상궁을 바라보았다.“벗겨라!”최 상궁은 봉구안의 눈빛에 겁을 먹고 힘들게 움직였다.“능 귀인, 실례하겠습니다.”내전에는 능연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악!”동시에 천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능연은 이런 굴욕을 당한 적이 없었다.능연은 봉구안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봉구안은 두려운 기색도 동정하는 기색도 없이 계속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작 이것도 못 견딘단 말이냐? 장미가 수모를 당하고 있을 때 왜 가만히만 있었니?’봉구안은 지금 당장 능연을 죽이고 싶었다.청허궁의 시녀는 귀인의 비명 소리를 듣자 얼른 몰래 곁문으로 나가서 황제를 찾았다.…내전.능연의 웃옷을 다 벗긴 후, 봉구안은 한곳을 눈여겨보았다. 그리고 눈빛이 식었다.봉구안은 손을 흔들었다.“그만, 너희들도 물러가라.”연상과 최 상궁은 바로 동작을 멈추고 물러갔다.이때 능연은 두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고 매서운 눈빛으로 봉구안을 노려보고 있었다.능연은 봉구안이 산적의 일로 자신에게 복수한다고 생각했다.“봉장미, 본궁은 오늘의 치욕을 똑똑히 기억할 거야! 지금까지
황제가 왔다는 말을 들은 능연은 바로 표정을 바꾸었다. 그는 재빨리 눈물 몇 방울을 짜내고 괴롭힘을 당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폐하…”소욱이 들어오자 능연은 단정하지 못한 옷차림으로 그의 품에 안겨 어깨를 떨며 흐느꼈다.“폐하, 황후 마마께서 사람을 시켜 신첩의 옷을 찢어 모욕했어요. 다행히 신첩이 필사적으로 저항하여 마지막 체면을 지켰지만… 폐하께서 조금만 늦게 왔으면, 신첩… 지키지 못했을 것입니다.”능연의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었다.지키지 못한 것은 자신의 존엄뿐만 아니라 가슴의 상처, 황제의 천수지독의 비밀도 있었다.소욱은 한 손으로 능연의 어깨를 감싸고 가볍게 몇 번 두드리며 소리 없이 위로했다.동시에 차갑고 매서운 눈빛으로 봉구안을 바라보았다.“영화궁으로 썩 물러가거라! 짐의 허락 없이는 청허궁에 한 걸음도 디디지 말거라!”봉구안은 아무 변명도 하지 않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예, 폐하.”능연은 소욱의 품에서 고개를 들어 봉구안에게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봉구안이 떠난 후, 소욱은 다른 사람들을 내보냈다.능연은 애처롭게 울었다.“폐하, 황후가 기세등등하게 와서 신첩의 옷을 벗기려고 했지요. 자칫하면 황후께 들킬 뻔… 폐하, 신첩 너무 무서워요.”“청허궁에는 신첩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없네요…”소욱은 능연을 가볍게 밀어내며 말했다.“옷부터 입거라.”능연은 다시 소욱의 품에 기대려 했다.“신첩 머리가 어지러운데… 폐하, 신첩을 침대까지 안고 가주실 수…”소욱은 미간이 찌푸렸다.“똑바로 서거라.”소욱은 여인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이 아니다.능연도 눈치껏 그만두고 애처롭게 소욱을 바라보았다.“폐하, 겉옷이 황후마마 때문에 찢어졌어요.”넓게 벌어진 목둘레 사이로 그녀의 몸매가 드러났다.소욱은 능연을 등지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여기에 호위들을 보낼게.”소욱이 가려고 하자 능연은 얼른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폐하, 신첩 너무 무서운데… 옆에 있어 주실 수…”소욱은 미간을 찌푸렸다.“짐의 말을
황제가 청허궁에 가서 능 귀인을 보호한 사실은 하루 만에 궁에서 퍼졌다.태후는 매우 초조했다.“황제가 아직도 능연을 포기하지 못했느냐?”계 상궁도 걱정하며 말했다.“황후가 청허궁에서 능 귀인을 괴롭혀서 폐하가 청허궁에 갔다고 합니다.”“폐하가 사람들 앞에서 황후를 호통치고 황후가 다시는 청허궁에 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마마, 능 귀인의 수단이 대단한데… 머지않아 다시 총애를 받을 수도…”태후가 말했다.“황후도 참, 왜 능연을 건드려서… 이건 능연에게 기회를 주는 거지…”원래 능연을 괴롭히려던 비빈들도 황제의 태도를 보고 모두 생각을 접었다.다들 계 상궁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들은 능 귀인이 조만간에 다시 총애를 받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적을 만들지 말자는 생각이었다.현흥궁.하녀 동하는 유난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마마, 능 귀인의 운이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바닥까지 추락했는데 다시 일어설 수 있다니요… 달기의 화신인 게 분명합니다. 폐하가 능 귀인에게 빠질 것 같습니다.”현비는 약을 마시다가 엄숙한 태도로 정정했다.“상나라 주왕은 망국의 군주이다. 어찌 그를 폐하와 비교를 해?”동하가 바로 잘못을 인정하다.“마마, 노비가 말실수를 했습니다.”동하는 질투가 났을 뿐이다. 다들 영비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왜 능 귀인만 이렇게 총애를 받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렇게 좋은 현비를 황제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해 질 녘의 경치는 아름다웠다.황제의 서재.제왕의 그림자가 병풍의 만리강산 위에 비치었는데 마치 거대한 용이 그 위에 누워있는 듯하였다.황제는 상주서를 보고 있었다. 표정은 차갑고 엄숙하여 아무도 감히 방해할 수 없었다.유사양이 아뢰었다.“폐하, 저녁식사를 해야 하는데 자진궁으로 돌아가셔서 드실 겁니까? 아니면…”소욱은 필을 내려놓고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얇은 입술을 오므리고 있었다. 소욱의 목에 은선이 조금씩 나타났다.소욱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영소전.”유사양이 난처해 했다.“폐하, 능 귀인은 이
소욱이 옷을 반쯤 벗었는데 여자가 기다리라고 했다.‘뭘 기다려?’봉구안이 말을 이었다.“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곳을 찾아 주시오. 이틀을 사용해서 한꺼번에 폐하의 독을 해결해 드리겠습니다.”소욱의 눈빛이 싸늘해졌다.“전에 한 번의 시침으로 독을 빼면 중독자의 몸에 해가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소욱은 그녀가 그를 죽이려 한다고 생각했다.봉구안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방법을 찾았습니다.”“걱정되신다면 사람을 시켜서 지키면 되잖습니까.”소욱은 그녀의 두 눈을 주시했다.그녀의 눈은 잔잔한 호수처럼 깊고 무정했다.하지만 교활한 기색은 없고 당당해 보였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몽화지독에 중독되어 그가 죽으면 해독제를 얻을 수 없어 그녀도 죽을 것이다.게다가, 소욱도 하루빨리 이 독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매번 독이 발작할 때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소욱은 도박꾼이 아니지만 도박꾼의 천성을 가지고 있었다.심사숙고한 끝에 소욱은 동의했다.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 그녀를 최대한 통제할 수 있는 곳은 화청궁의 지하 밀실이다.그들은 화청궁에 왔다. 진한길도 따라 내려가려 했지만 소욱에게 제지당하였다.“넌 밖에서 잘 지키거 있거라. 이틀 후에 짐이 나오지 않으면 궁궐의 모든 힘을 동원해서 이 자를 죽이거라.”진한길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폐하, 다시 한번만 생각하십시오.”소욱이 내린 결정은 변하지 않았다.소욱은 의연히 밀도로 들어갔다.봉구안은 소욱의 뒤를 따라가면서 진한길을 한번 돌아보았다.“잘 지키거라.”누군가가 쳐들어오면 봉구안과 소욱은 둘 다 죽을 것이다.진한길이 대답했다.“예.”‘내가 왜 자객의 말을 들어야 하지?’…밀실의 벽에 촛불이 있었지만 바깥보다는 훨씬 어두웠다.소욱은 백옥 침대에 앉아 가슴을 드러내고 봉구안에게 침을 놓게 하였다.첫날밤의 침술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봉구안은 침을 놓는데 집중하였다. 손놀림이 민첩했다.소욱의 이번에 발작한 시간은 봉구안이 예상한
봉구안은 극한 상황에 처한 경험이 많기 때문에 볼일 보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물을 적게 마시고 조금만 참으면 된다.하지만 곱게 자란 황제도 참을 수 일을 줄은 몰랐다.모래시계가 반쯤 흘렀을 때 백옥 침대에 앉아 있던 남자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봉구안의 시선을 마주했다.“뭘 그렇게 쳐다봐?”소욱은 봉구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봉구안이 직접 물었다.“뭔가 볼일을…?”‘볼일?’‘대담도 하지!’소욱은 대답이 없었다. 소욱의 안색은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깊은 눈동자에는 혹독함이 묻어났다.봉구안은 자신의 질문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봉구안은 자신이 매우 완곡하게 물었다고 생각했다.황제의 반응이 오히려 이상했다.먹고 싸는 것은 인간의 정상적인 생리 현상이다.‘어쩌면 제왕이라서 자신을 일반인으로 여기지 않을 수도…’봉구안의 시선은 소욱의 배와 다리 사이에 두었다.“오래 참으면 좋지 않습니다.”봉구안은 착해서가 아니라 소욱이 체면을 챙기느라 고생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만약 침으로 독을 빼고 있을 때 소욱이 참지 못한다면 그것도 큰일이었다.실내 온도가 갑자기 떨어졌다.소욱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눈빛으로 그녀를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괴롭히려는 것 같았다.봉구안은 소욱이 체면을 너무 중시한다고만 생각하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봉구안은 진한길이 가져다준 만두를 집어 입에 넣었다.소욱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몰래 짐에 대해 조사했느냐?”봉구안은 잠시 멍해졌다.‘무슨 조사?’소욱은 그녀의 표정 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소욱은 자신이 괜한 생각을 했다고 생각해 말머리를 돌렸다.“그럼 왜 입궁하였느냐?”봉구안이 진지하게 반문했다.“폐하는 현명한 군주이십니까?”소욱은 표정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입을 열어 말했다.“현명한 군주인지 아닌지는 세상 사람들의 평가다.”“짐이 만약 현명한 군주라고 하면 믿겠느냐?”봉구안의 눈빛에서 확신이 드러났다.“믿습니다.”‘
산 정상은 바람이 매섭게 불어와, 봉구안의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휘날렸다.그녀는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이 자들을 상대하기에 맨손이면 충분했다.다만, 맹 부인이 적의 손에 잡혀 있는 상황이었다.잠시 뒤, 유천은 바닥에 쓰러진 자신의 부하들을 바라보며 깨달았다.눈앞의 이 여인이 어째서 북대영의 전신이라 불리는지.그는 원래 조정의 장군들이란 대개 무능한 자들이며, 부하들에게 명령만 내리는 허수아비라 여겼다.그러나 이제야 깨달았다. 적어도 이 맹 소장군만큼은 진정한 실력을 가진 자라는 것을 말이다.유천은 자신의 부하들이 하나씩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급히 맹 부인 목에 칼을 겨누고는 봉구안을 향해 외쳤다.“멈춰라! 그렇지 않으면 이 여인을 죽이겠다!”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봉구안은 행동을 멈췄다.그 순간, 눈앞으로 영문 모를 하얀 가루가 뿌려졌다. 그 하얀 가루는 다름 아닌 독약이었다.그녀의 눈은 즉시 극심한 통증에 휩싸였다.유천은 이 틈을 타 다른 부하들에게 외쳤다.“모두 달려들거라! 저 년을 당장 죽여라!”하지만 눈이 다쳐도 봉구안은 여전히 소리를 통해 상대의 위치를 판별할 수 있었다.그녀는 상대의 공격을 민첩하게 피했다.유천은 그녀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빈틈을 찾으려 했지만, 이때 자신이 묶여 있던 기절한 맹 부인이 고개를 살짝 돌리며 몰래 손칼로 밧줄을 끊고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산 바람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유천은 싸움에 직접 뛰어들었다.그는 무공이 뛰어난 자로, 거대한 칼을 능숙히 다뤘다.시야가 흐릿한 터라, 봉구안은 주로 회피하며 맞섰다.갑자기 멀리서 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이 소리는 그녀의 감각을 흐트러뜨렸다.그 틈에 유천이 허점을 파고들어 칼을 휘둘렀다!아무리 봉구안의 반응이 빨라도 왼팔은 칼날에 베여 피가 흘렀다.붉은 피가 그녀의 옷을 물들였다.봉구안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나뭇가지 높은 곳에는 피리를 든 한 여인이 서 있었다.그녀는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며, 손에는 옥피리를 쥔 채 달
맹 부인이 납치되었다. 범인은 한 통의 서신을 남겼는데, 반드시 소장군 본인이 직접 열어볼 것을 요구하였다.봉구안이 장군부에 도착했을 때, 스승은 정청에 앉아 얼굴 가득한 걱정으로 애써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차분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대책을 고심하는 모습이었다.“스승님...”“이 편지, 네가 한 번 보거라.” 맹건은 그녀에게 서신을 건네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서신은 이미 뜯겨 있었다. 봉구안은 서둘러 편지를 펼쳐 그 내용을 확인했다.요지는 다름 아닌, 그녀가 단신으로 오양산에 와야만 맹 부인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제가 가겠습니다!” 봉구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맹건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막았다.“냉정해지렴! 부인이 납치당했으니, 나라고 더 걱정되지 않겠느냐. 그러나 네가 이렇게 무턱대고 가다간, 적들에게 너마저 넘어갈 뿐이다.”맹건은 전장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인물로, 이는 명백히 봉구안을 노린 덫임을 간파하고 있었다.봉구안은 서신을 꽉 움켜쥐며 말했다.“아마도 천룡회 잔당들의 짓일 것입니다.”맹건은 고개를 끄덕였다.“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 더욱 조급해할 필요 없다. 너도 이미 서신으로 알리지 않았더냐? 나와 부인 모두 준비가 되어 있었다. 북방에 충분한 인원을 배치해둔 것도 알고 있다만...”봉구안은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제 계획은 적을 유인해 섬멸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부인께서 이렇게 그들에게 잡혀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부인을 지키도록 보낸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겁니까!”그녀가 이렇게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며 화를 내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맹건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차가운 표정과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우리는 적을 맞을 준비를 충분히 했다. 하지만 적들 또한 바보는 아니지. 그들이 빈틈을 파고든 것은 불가피하다. 이미 벌어진 일이지 않느냐. 원망하고 탓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 지금은 적들을 어떻게 격파
봉구안은 평소 무예에 열중하느라 꽃과 나무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예전의 자유각은 온통 황량하고 쓸쓸한 모습뿐이었으나, 오늘 들어서니 화려한 꽃과 푸른 버들가지가 어우러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가지 끝에는 참새 떼가 지저귀며 앉아 있어 무척이나 활기찼다.마당에서 일하던 시녀 채월이 먼저 봉구안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환한 얼굴로 말했다.“소장군, 돌아오셨군요!”채월은 그녀가 면사와 남자 옷차림을 하고 있어도 금세 알아보았다.그녀는 급히 손에 든 비를 내려놓고 봉구안을 집 안으로 안내했다.봉구안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물었다.“장미는 어디에 있느냐?”채월은 차를 따르며 대답했다.“송 신의께서 아가씨를 데리고 뒷산으로 꽃을 채집하러 가셨습니다.”봉구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꽃을 채집한다고?”고독한 남녀가 함께하는 일이 마땅치 않다.비록 송려의 인품을 매우 신뢰하고 있더라도 말이다…말을 마치기도 전에 멀리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봉구안이 일어나 바라보니, 송려와 장미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어오고 있었다.장미의 머리 위에는 꽃으로 엮은 화관이 얹혀 있었고,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그 미소는 꽃보다도 더 아름다웠다.송려는 평범한 베옷을 입고 손에는 꽃을 담은 대나무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그의 시선은 온화하게 장미를 바라보고 있었다.봉구안은 금동옥녀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장면을 보며 미간을 더욱 깊게 찌푸렸다.그 순간, 송려가 우연히 고개를 들어 집 안에 서 있는 봉구안을 발견했다.순간적으로 그는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서 있었다.“소, 소장군?”송려는 손바닥에 땀이 나기 시작했고, 무의식적으로 장미와 거리를 두었다.…전당.송려는 머리를 숙이고 죄스러운 기색으로 말했다.“미안하오, 소장군. 나는… 나는…”그는 목이 막힌 듯 말을 잇지 못했다.한쪽은 오래된 친구요, 한쪽은 마음을 품은 여인.어느 누구도 잃고 싶지 않았다.봉구안은 자리에 앉아 아무 말 없이 그의 말을 들었다.송려는 마음
“맹성주? 북대영의 맹 소장군 말씀이십니까?”남자는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맹 소장군은 무공이 대단하다고 들은 바 있었다.면사를 쓴 여인의 눈에 살기가 스치더니, 이내 남자에게 차분히 말했다.“맹성주를 죽이기만 하면, 교주께서 반드시 숙부님을 용왕로 봉하실 것입니다.”“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남자는 공을 세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여인은 손에 낀 구슬 팔찌를 살짝 흔들었다.청아한 방울소리가 맑게 울리며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것은… 도련님의 개인적인 원한 때문입니다.”남자는 갑자기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혹시 공자의 부상이 맹성주 때문이란 말씀이십니까?”그는 교주의 유일한 아들이 다섯, 여섯 해 전에 큰 부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그동안 범인을 찾지 못했기에 누가 범인인지 늘 궁금했던 차였다.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달콤한 목소리로 유혹하듯 말했다.“그렇습니다. 그 자가 바로 맹성주입니다.”“이건 저희 둘 사이의 비밀로 하십시다.”“교주께서 출관하시기 전에 맹성주를 제거할 수만 있다면, 그때는 아무도 숙부님과 흑룡왕 자리를 다툴 수 없을 것입니다.”남자는 놀라고 감격하여 여인에게 공손히 절하며 말했다.“염 낭자는 실로 영리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직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교주께서 명을 내리신다면, 우리 모두 공자의 복수를 위해 맹성주를 처치하지 않겠습니까? 어찌하여 교주께서 직접 명하지 않으신 것인지…”여인은 방금까지의 부드러운 태도를 바꾸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교주께서는 교주의 뜻이 있으신 법!”남자는 급히 머리를 숙이며 사죄했다.곧바로 공을 세우고자 하는 마음에 불타올라, 밖에 있는 부하들을 불렀다.“가자, 반드시 내 뜻을 이루고 오리라!”여인은 자리에 남아 차 한 잔을 천천히 마셨다.이때, 병풍 뒤에서 한 부하가 나와 근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교주께서는 단회욱과 5년 약조를 맺으셨사온데, 염 낭자께서 이렇게 유천을
남제에서는 3년에 한 번씩 ‘안비’를 시행하였다. 이는 전국 인구를 철저히 조사하여 출생과 사망 인원뿐만 아니라 여섯 살부터 여든까지의 신체 조건, 용모 등을 상세히 기록하는 일이었다.한 달여 전, 사민관이 입궐하여 전년도 몇 달간의 안비 순찰 결과를 보고하였는데, 이로써 남제가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드러냈다.미혼 남녀 중, 여자의 수가 남자에 비해 현저히 적어, 열 명의 남자 중 겨우 한 명만이 혼인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더구나 일부 남자들은 첩을 들이는 일이 흔하여, 대다수의 남자는 아예 혼인 상대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국경을 지키는 병사들 중에서도 미혼자가 대다수를 차지하였다.이대로 가면, 앞으로 20년 안에 남제는 징집할 병사를 잃게 될지도 모를 터였다…이에 소욱 황제는 국고를 대대적으로 열어서라도 민간에서 이혼풍을 일으키려 하였다.더 많은 여성이 다시 혼례를 준비하게 함으로써 혼인 균형을 맞추려는 것이다.물론, 이는 합당한 이유였지만, 황제의 마음속에는 약간의 사적인 감정도 섞여 있었다.그는 막 황후를 잃은 터였고, 어찌 다른 이들의 행복을 그냥 두고 볼 수 있었겠는가?쉭!또 하나의 날카로운 화살이 발사되어 허수아비의 목을 꿰뚫었다.옆에 있던 서왕은 허수아비를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폐하, 폐하께서 폐비마마를 이토록 마음에 두셨다면, 이혼을 허락하지 않으셨어야 합니다.’…만수궁.태황태후는 민간에서 얻은 비방으로 만든 약을 영비에게 먹이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녀의 배를 바라보았다.“폐하께서 가장 아끼는 이는 너다. 이전에 네가 사고를 당한 틈에 저 황귀비와 봉장미가 끼어들었을 뿐, 이제 네가 돌아왔으니 폐하 마음엔 다른 이가 들어올 리 없다.그러니 네가 해야 할 일은 몸을 조리해 하루빨리 황자를 낳는 것이다.”영비는 약을 다 마시고, 온화하면서도 순종적인 미소를 지으며 약간의 부끄러움을 띤 채 고개를 숙였다.“예, 할마마마.”태황태후는 다시 입을 열었다.“요즘 폐하께서 바쁘셔서 비록 널 궁으로
봉구안은 타인의 일에 개의치 않고, 식사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렇게 봉구안과 오백은 북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며칠 후, 그녀와 오백은 관아 근처를 지나게 되었는데, 길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도무지 말을 타고 갈 수 없어 말에서 내려 말을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관아 앞을 가득 메운 것은 이혼을 청하러 온 사람들이었다.길가에는 구경꾼들과 장사치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들은 관아 앞에 모인 여인들을 손가락질하며 입방아를 찧었다.“쳇!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여자들! 감히 관아까지 와서 이혼을 청하다니!”“맞아!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지. 우리 같은 여자들까지 얼굴을 들 수 없게 만드는군.”“남자들이 집안을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는데, 어찌 저리도 분별없는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어!”“황제 폐하께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명령을 내리셨는지 원… 관아에서는 여자가 이혼을 청하면 반드시 접수를 받아들여야 한다네.”한 채소장수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이게 다 황후가 나쁜 본을 보여서 그런 거야! 여자가 이혼을 청하다니, 부부의 도리가 대체 어디로 간 거냐고!”그 말에 옆에 있던 여인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정상적인 여인이라면 이혼을 청하는 일이 있을 수 없지. 내게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어!”그러던 중, 한 사람이 지나가며 비밀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듣자하니, 이혼을 청하는 여인 중 남편의 과오가 확인되면, 여인은 혼인 때 가져온 혼수를 온전히 돌려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조정에서 삼십 냥의 은자까지 하사한다고 하더군.”그러나 그 말을 들은 여인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까짓 푼돈을 바라고 저런 짓을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구나!”그 말을 들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위정자의 행위는 언제나 큰 그림을 이루기 위한 것이지.”오백이 이를 듣고 호기심에 물었다.“소장군, 폐하께서 왜 이런 명을 내리셨는지 아십니까?”그러자, 봉구안은 맑은 눈빛으로
남제의 경내에 도착하자, 봉구안과 오백은 먼저 한 여관을 찾아 들러 음식을 주문하였다.두 사람은 가면을 쓴 채 길가 쪽 자리에 앉았다.여관의 하인은 이에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술과 음식을 올리고는 다른 손님들을 응대하러 갔다.오늘 이 여관은 몹시 떠들썩하여 옆자리의 몇몇 사람이 한담을 나누기 시작하였다.“작년 황성에서 있었던 그 일, 다들 들어보았소?”“무슨 일을 말하는 거요?”“모르시오? 작년에, 황제와 황후가 이혼을 한 일 말이오!”“오오, 생각났소. 그때 참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었지…”“내 말이, 그 황후라는 사람은 참으로 교만하고 사사로이 문제를 일으키는구려! 보통의 여인들이야 삼종사덕을 지켜야 하거늘, 하물며 일국의 황후가 되어 감히 황제를 공개적으로 나무랐다니! 그것도 무슨 ‘육고’라 하였던가? 자기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으니 황제가 벌을 내린 게 무엇이 그리 큰 죄란 말이오?”“그러게 말이오. 내 생각엔 그런 여자는 차라리 버리는 게 나았소! 황제 폐하께서 황후를 내치신 것은 참으로 옳은 일이오!”“맞소! 봉가네 여식들은 이제 혼인을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이오. 이런 꼴로 집안을 망신시켰으니, 결국 손해 보는 건 본인이 아니겠소. 내게 그런 딸이 있다면 차라리 때려죽였을 것이오. 집안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 말이오!”뚱뚱해 보이는 한 남자가 교만한 표정으로 말하였다.“그렇다면 이 시기에 내가 봉가에 가서 혼사를 제안한다면 어찌되겠소? 절호의 기회 아니겠소?”주변의 사람들이 서로 눈짓하며 이내 크게 웃으며 동조하였다.“이보시오, 그대라면 우리가 성심껏 지지할 것이오!”“봉가에서 틀림없이 막대한 사례금을 내걸 것이오. 하하, 그들의 딸이 이미 아무도 원하지 않는 처지가 되었으니 말이오.”그 남자는 이 말을 듣고 더욱 우쭐해졌다.“당연하지 않겠소! 나는 첫 혼사라오! 내가 봉가의 여식을 아내로 맞이하면 잘 길들여보겠소. 자네들도 곧 보게 될 것이오!”오백은 이 말들을 듣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그는 갑자기 자리에
흑포는 쓰러지는 순간까지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완부옥을 포함해 주변에 있는 사람들마저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봉구안이 이토록 단호하게 흑포를 제거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오백 역시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공을 들여 잡은 적인데 이대로 죽여버리다니!정녕 그의 입을 통해 진실을 듣고 싶지 않은 것일까?완부옥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봉구안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어색하게 말했다.“멋진 검술이었어!”소환은 가끔은 그녀보다도 잔인한 사람이었다.봉구안은 싸늘한 시선으로 흑포의 시신을 힐끗 보았다.그 먼 길을 달려 이곳에 온 이유가 놈을 죽이기 위함인데 놈의 꼬임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그녀의 복수에서 원수를 죽이는 게 진실보다 먼저였다.하물며 이렇게 입이 무거운 상대를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건 제한적이니 차라리 빨리 처단하는 게 시간을 아끼는 방법이었다.봉구안은 뒤돌아서 완부옥에게 말했다.“놈의 오장육부를 도려내고 시체는 남강의 성문에 걸어두어 모두에게 알리도록 해. 만약 놈의 시체를 거두러 오는 놈이 있으면 다 죽여!”완부옥은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나한테 맡겨.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거든.”봉구안은 마지막으로 흑포의 시신에 눈길을 돌렸다. 그가 감옥에서 말했던 죽음이 곧 생이고 영원히 지속된다는 말이 떠올랐다.그가 대체 어떻게 다시 살아나는지 두고볼 것이다!흑포를 죽였으니 완부옥은 저택에서 축하연을 열었다.제대로 된 식사는 정말 오랜만인 오백은 입안 가득 음식을 욱여넣었다.완부옥은 흑포를 죽인 후에도 소환의 표정이 좋아지지 않았음을 주목했다.그녀는 술을 들고 봉구안의 옆으로 가서 직접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왜 안 마셔? 오늘 그믐날이야.”“취할까 봐?”“취하면 내 친히 보살펴 줄 테니까 걱정 말고 마셔.”완부옥은 말하는 동시에 봉구안에게 추파를 던졌다.그 말을 들은 봉구안은 더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술잔을 밀어놓고 솔직히 말했다.“흑포가 죽었으니
밀집된 토용들을 보고 있자니 닭살이 돋을 지경이었다.그들은 위험을 감지했는지 봉구안을 향해 푸른 눈을 번뜩이며 헤엄쳐 오기 시작했다.한 마리가 공중에 몸을 솟구치더니 석벽을 타고 그녀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그것들은 이미 일반적인 토용이 아니라 표피가 울퉁불퉁하게 부어 있었는데 딱 봐도 강한 독성을 갖고 있었다.봉구안은 신속히 해독약을 먹고는 천천히 검을 빼들었다.두 시진 후, 동굴 밖.오백은 조바심에 속을 태우며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혹시라도 소장군이 위험에 처했을까,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했다.그가 주저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밖으로 나왔다.“소장군!”다급히 다가가던 그는 눈앞에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봉구안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후방을 경계했다.봉구안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안에 사람은 없었다.”오백이 물었다.“그럼 이 피는….”그는 그제야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설마 토용입니까? 소장군, 토용이 정말 안에 있어요?”“그래.”봉구안은 토용들을 모조리 죽였다.다행인 점은 그것들은 아직 천수와 같은 극독물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그게 아니었다면 아무리 그녀라도 살아서 나오긴 힘들 것이다.그녀는 얼굴에 묻은 피를 대충 닦고는 오백에게 분부했다.“여길 지키고 있거라. 내 어디 다녀와야겠다.”“예!”봉구안은 완부옥을 찾아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자초지종을 들은 완부옥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남강 백성을 살해한 놈들이 천용회 사람이라고?”“동굴 안에서 수많은 시신을 발견했어. 아마 천수를 제련하는데 쓰였겠지. 남강 여인들의 죽음은 충독 때문이었다. 아마 그것도 독성을 제련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거야.”봉구안이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그는 여전히 남방의 습한 추위에 적응하지 못했다.완부옥은 뜨거운 차를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일단 알겠으니까 목부터 축이고 남은 건 나한테 맡겨. 만약 천용회 잔당들이 일을 벌이고 있는 거라면 놈들이 살아서 남강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 것이야!”봉구안은 뜨끈한 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