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 안.독방에 갇혀 있던 설지는 봉안진을 보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안진, 나 좀 꺼내줘. 부탁할게. 내가 정말 잘못했어. 우리 오랜 인연을 봐서라도 날 좀 봐줄래?”“너... 나를 구하지 못하더라도 통쾌하게 보내 줘. 능지처참은 너무 무서워.”자신을 모욕했던 사람이 지금이 무릎을 꿇고 빌고 있으니 봉안진은 속이 시원하고 화가 풀려야 하는데 왠지 슬프기만 했다.“능지처참당하고 싶지 않고 죽고 싶지 않다라… 재군이 그들은 죽고 싶었겠어? 매우 억울했을 텐데 널 놔주면 내가 어떻게 망령들에게 떳떳할 수 있겠어!”“설지, 너 혼자 올라가기 위해 너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까지 죽인 것이 정말 가치가 있어? 우린 친했잖아. 난 우리가 서로 아끼는 줄 알았어. 그런데 왜 그랬어? 왜!”봉안진은 옥문을 붙잡고 눈시울을 붉혔다.그 많은 형제가 설지에게 죽임을 당했으니 그는 정말 답을 원했다.설지는 어리둥절해 있다가 봉안진이 자신을 도울 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포자기한 듯 크게 웃기 시작했다.“하하... 왜? 왜냐고 묻다니! 넌 명문가 출신의 도련님이고 난 가난한 집 출신일 뿐이야. 내가 온 힘을 다해 뛰어올라야 얻는 것을 넌 허리를 조금만 굽혀도 얻을 수 있잖아. 우리가 서로 아끼는 줄 알았다고? 웃기지 마!”“나는 너의 그 선비 꼴이 제일 싫어! 처음으로 봉가 저택에 갔을 때 너의 서재에 들어갔었지. 너의 벼루 하나면 우리 가족의 반 년 치 식량을 살 수 있었어! 왜? 왜 너는 이 모든 것을 쉽게 가질 수 있고 나는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건데?”봉안진은 그 이유가 이렇게 간단한 줄은 몰랐다.질투는 사람을 미치게 한다.설지가 기억을 더듬었다.“이번 생에는 네 발밑에서만 살 줄 알았는데 누군가가 내가 너를 대신할 수 있다고 했어. 참장이 되어 너를 발밑에 밟을 수 있다고 말이야...”“황 대인이야?”봉안진이 물었다.“맞아! 그 사람이야! 봉안진, 봐봐. 나만 너를 싫어하는 게 아니야. 나와 황 대인이야말로 정말 서로를 아끼는 사이야!
황실 서재에 있는 소욱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두 눈에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 앞에 놓인 책상 위에 설지의 자백서가 놓여 있었다.그는 봉구안을 살피더니 곧 시위 진한길에게 분부했다.“설지를 부르거라. 짐이 직접 물어보겠다.”얼마 지나지 않아 설지가 끌려오다 성안을 보자마자 황급히 무릎을 꿇고 몸을 떨었다.“죄신... 죄신 설지, 폐하, 황후마마를 뵙니다!”옆에 서 있는 봉구안의 눈빛은 덤덤했다.소욱이 따져 물었다.“자백을 직접 서명한 것이냐?”자백서에는 그가 2년 전 봉안진을 모함하고 황 대인께 뇌물을 바치는 등 각종 죄를 자백했을 뿐만 아니라 귀비 마마도 언급했다.지난 2년 동안 설지는 참장을 한 후 많은 돈을 모아 얻은 재물의 절반은 황 대인에게 뇌물을 주고 나머지 절반은 영소전으로 보냈는데 구체적인 금액은 그의 집에 있는 비밀 장부에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이 외에도 그는 귀비 마마의 명을 받아 접풍연을 열기 전에 봉안진의 팔을 부러뜨린게 그가 시합에서 괴두에게 지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설지는 머리를 푹 숙인 채 떨리는 목소리로 아뢰었다.“네, 죄신이 자백했습니다.”소욱은 눈을 가늘게 떴는데 눈빛이 매우 위험하게 느껴졌다.“장부가 어디 있느냐?”“죄신의 서재 암거 안에 있습니다.”설지가 대뜸 대답했다.소욱은 차갑게 흘겨보며 말했다.“진한길, 네가 직접 찾으러 가거라.”“명을 받들겠습니다.”소욱은 설지에게 질문을 이어갔다.“귀비가 어떻게 봉안진을 다치게 했느냐? 다음날 시합이 있을지 어떻게 알 게 된 것이냐?”“설지, 네가 감히 한 마디라도 허언한다면 짐이 너를 능지처참보다 백 배나 더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다!”봉구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폐하를 바라보며 정말 귀비를 아낀다고 생각했다.설지가 자신의 애비를 모함할까 봐 이런 질문까지 하니 말이다.설지는 몸을 조금 떨며 엎드려 있었다.“죄신은 귀비마마께서 이튿날 겨루는 시합을 어찌 미리 아셨는지 모르겠으나 단지 마마의 분부대로 했을 뿐입니다.”“폐
소욱은 땅에 엎드려 있는 설지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귀비가 너에게 어떻게 시켰는지 똑똑히 말하거라.”설지는 황급히 아뢰었다.“폐하께 아뢰옵니다. 죄신은 내궁에 출입할 수 없습니다. 귀비 마마께서 무슨 계획이든 모두 궁중의 내시에게 말씀을 전하도록 했습니다. 그 내시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죄신은 그의 생김새를 기억하고 있으니 본다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소욱이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영소전의 내시들을 모두 부르도록 하거라.”“네!”귀비의 총애가 각별하여 영소전에는 내시가 50명이나 있었다.그들은 열 명씩 황실 서재에 들어가 설지의 지목을 받아야 했다세 번째 내시들이 들어오자 설지는 갑자기 두 눈을 반짝이며 그중 한 명을 가리켰다.“저 사람입니다!”지목된 내시는 가슴이 뜨끔했다.소욱은 미간을 찌푸렸다.“심문하라!”단 한 마디로 사람을 몹시 놀라게 하고 부들부들 떨게 하였다.내시가 끌려가는 것을 본 봉구안의 눈에 어두운 빛이 스쳤다.차 두 잔 정도 마시자 진한길이 안으로 들어와 아뢰었다.“폐하, 심문해냈습니다. 그 내시가 귀비마마의 명을 받들었다고 자백했습니다.”폐하를 오랫동안 시중을 든 진한길은 주인을 따라 정색을 하고 차갑고 매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봉구안은 손가락을 모아 살며시 주먹을 쥔 채 소욱을 바라보았다.“폐하...”그녀가 입을 열자 소욱이 얼굴에 한기를 머금고 말을 끊었다.“설지를 옥으로 돌려보내거라.”설지는 끌려갈 때도 용서를 빌었다.“폐하, 죄신이 잠시 귀신에게 홀려 그런 거니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폐하,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그러자 소욱은 봉구안을 바라보며 미간이 싸늘해졌다.“설지의 자백서가 어떻게 황후 손에 먼저 들어간 것이냐?”봉구안 공손히 회답합니다.“오라버니께서 팔을 다친 시간이 공교롭다고 생각하여 사사로이 옥졸을 시켜 설지를 심문하자 뜻밖에 귀비가 연루되었습니다.”“폐하께서 귀비를 총애한다는 것을 알기에 전옥장도 감히 자백서를 직접 올리지 못했습니다. 죄증이 부족하
봉구안은 입술을 깨문 채 침착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이것이 바로 귀비의 대단한 부분이다.봉명헌이 육심에게 뇌물을 주고 벼슬을 구한 것은 맞다.그렇게 일이 들통나도 육심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일부 죄를 봉명헌과 황후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었다.그녀가 진작에 밝혀내지 않았더라면 이 주범인 귀비마마가 봉명헌이 벼슬을 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이용하여 이 판을 짰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지금 봉구안에게는 변명거리가 없게 되었다.“어쩌면 정말 신첩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 서제가 이렇게 함부로 행동하게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신첩 죄를 인정하고 폐하의 처벌을 달갑게 받겠습니다.”그녀가 이렇게 흔쾌히 잘못을 인정하니 소욱은 오히려 좀 의외였다.하지만 ‘어쩌면'이라는 단어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듯하기도 했다.소욱은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먼저 영화궁으로 돌아가 반성하거라. 짐은 황후가 금인장을 계속 지킬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겠으니!”봉구안은 그 결과를 받아들인 듯 몸을 일으켜 인사를 올렸다.“예, 폐하.”그녀가 떠나자 봉명헌은 당황한 기색으로 두려워하며 원망했다.‘이렇게 가버리다니? 사정 좀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같은 아버지의 자식인데 나의 생사를 아랑곳하지 않다니.’소욱은 결단력 있게 행동했지만 황후의 체면을 고려하여 봉명헌을 용서하는 것 따위는 없었다.그는 즉시 명령을 내렸다.“육심의 직무를 정지하고 조사 처리하며 육심이 처리한 모든 임명을 철저히 조사한 후 처리한다.”“봉명헌, 파직. 뇌물로 받은 돈은 국고에 충원하고 옥에 가서 1년 반성을 하고, 3년 동안 과거 시험을 볼 수 없으며 5년 동안 관직에 들어갈 수 없다!”육심은 별 반응이 없었지만 봉명헌이 먼저 울부짖었다.“안 됩니다! 아니 되옵니다! 폐하! 매형!”“이번만은 용서해 주십시오.”옥에 가고 시험도 금지되고 벼슬도 금지당하면 그에게 무슨 앞날이 있겠는가!황제도 너무 잔인했다. 그는 이 일을 겨우 며칠 했는데 몇
귀비는 상처의 아픔을 참으며 황실 서재에 사죄하러 왔다.소욱은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부상이 낫지 않았으면 영소전으로 돌아가 누워 있거라.”귀비는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다.“신첩이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정말 안심할 수 없을 것 같아 찾아왔습니다. 설지가 신첩에게 많은 것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신첩은 받지 않으려 했는데...”소욱의 냉엄한 미간에 은근한 인내가 떠올랐다.“됐다. 이건 중요하지 않으니 지금 짐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우선 영소전에 가서 쉬면서 상처를 치료하고 보거라.”그 말을 들은 귀비는 폐하가 설지의 사건을 다시 조사하지 않고 자신의 몸도 걱정해준다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보아하니 폐하는 여전히 나를 매우 신경 쓰는 것 같군. 하긴, 총애비가 돈을 좀 받는 게 무엇이 문제란 말이지? 예전에 그 비빈의 가족들이 선물을 준 것을 폐하가 알고도 눈감아 주지 않았던가? 그자들이 합쳐서 보내는 것에 비하면 설지는 많이 보낸 편도 아니야.’‘마침 양국 평화 회담 기간이라 폐하께서 매일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어찌 이런 작은 일에 신경을 쓰시겠어?’귀비는 눈알을 살짝 굴리더니 낮은 소리로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그러나 돌아서서 몇 발자국 걷자 남자의 차디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연아, 짐과 몇 년 동안 함께 있었지?”귀비는 발걸음을 멈칫하더니 몸을 돌려 대답했다.“폐하, 신첩이 입궁한 지 4년이 되었습니다.”폐하의 의미심장한 눈빛을 마주한 귀비의 마음이 갑자기 불안해졌다.‘폐하께서 왜 갑자기 이걸 물으시지?’“가 보거라.”소욱은 더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시선을 거두어 다시 손에 든 상소문을 들여다보았다.귀비는 안절부절못한 채 미간을 찡그리며 손바닥 마저 조금씩 차갑게 느껴졌다.영소전.춘하는 귀비의 시중을 드는 중에 귀비의 마음이 딴 데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마마, 왜 그러십니까? 황실 서재에서 돌아오신 뒤로 걱정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설마 폐하께서 설지가 연루된 모든 일을 추궁하는 것
봉명헌은 감옥에 갇혔고 과거 금지와 관직에 임할 수 없다고 하자 첩실 임씨의 목숨을 반쯤 빼앗긴 셈이었다.그녀는 울고불고하며 봉 부인 앞에 무릎을 꿇었는데 예전의 교만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명헌이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도무지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궁에 들어가 황후마마께 간청해 주십시오. 폐하께서 황후마마의 체면을 보아 가볍게 처벌할지도 모릅니다... 마님, 소첩이 부탁드립니다!”봉 부인은 마음이 여리지만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이 사건은 전조의 관리와 관련되어 있어서 황후가 피해야 하는 판국인데 어떻게 스스로 화를 불러올 수 있겠는가?“일어나서 말하거라. 이번 일은 확실히 명헌이가 잘못인데 황후마마가 어찌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법을 어길 수 있겠느냐? 지금은 사람을 먼저 감옥에 보내서 명헌이 덜 고생하게 하는 것이다.”임 이랑은 이 말을 듣고 자기 아들이 아니라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자기 친자식이 아니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아들이 복직하고 황금 만 냥을 받았는데 명헌을 신경 쓸 리가 있겠는가?아마 명헌이가 감옥에서 죽기를 간절히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임 이랑은 이청원으로 돌아와 눈물을 지었다.“아들, 너도 참 고생이 많구나... 어머니가 무능해서 널 도와줄 수 없어...”봉 부인은 인자한 마음으로 봉명헌의 앞날이 망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황후를 만나려고 하자 봉 대인이 알고 노했다.“아녀자의 마음이 그렇지! 지금 무슨 소란을 피우러 가는 것이오! 황후께서도 금족 중이신데 명헌은 지킬 수 없는 것이 분명해. 아무도 구할 수 없어! 안진이와 황후만 잘 있으면 봉씨 가문은 여전히 일가의 영광이오!”봉명헌이 벼슬을 살 줄 알았다면 제지했을 것이다. 이 불효자는 여태껏 마음을 놓을 수 없었는데 이젠 이 아들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봉 부인은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황후께서 어찌 금족을 당하셨는지요? 명헌이 저지른 잘못을 황후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봉 대인은 이 일을 말하면 화가 났
그날 밤, 폐하께서 영소전에 임하셨다.귀비는 얼굴에 화사한 미소를 지은 채 어여쁜 자태를 뽐냈다. 얼굴의 흉터는 지분으로 가려 흠잡을 데가 없어 그녀는 다시 자신만만해졌다.“폐하, 국무가 바쁘시니 많이 쉬셔야 합니다. 폐하께서 피곤하시면 신첩 마음이 아픕니다.”소욱은 그녀가 집은 요리를 받아들고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런 일은 네가 직접 할 필요 없다. 가만히 앉아서 짐과 함께 식사하거라.”이 말은 모두 귀비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는 것으로, 냉랭하고 경박한 황제에게는 매우 드문 부드러운 감정이었다.귀비의 마음은 꿀을 마신 것처럼 숨결마저 달콤해졌다.“신첩 폐하를 모시겠습니다.”환영 연회를 마친 후 폐하가 처음으로 여기에 돌아왔다.저녁 식사를 마친 소욱이 분부했다.“짐은 오늘 밤 영소전에서 묵는다.”귀비는 미간에 기쁨이 가득 차서 즉시 춘하에게 잠자리를 펴라고 했다.그 후 이틀 동안 황제는 여전히 일찍 영소전에 와서 귀비와 함께 식사한 후 그곳에 남았다.귀비가 3일 동안 계속 시침하니 다른 비빈들의 처량함이 더욱 두드러졌다.그녀들은 질투와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귀비처럼 용모를 망쳐도 폐하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재주가 없는 것을 한탄했다.황후가 금족을 당하는 바람에 가빈은 영화궁에 갈 수 없어 요즘 자녕궁에 자주 갔다.연상은 이 일을 봉구안에게 말했다.“가빈께서 태후마마의 환심을 샀고, 태후마마께서 가빈마마에게 많은 상을 내렸습니다. 마마, 태후마마께서 왜 갑자기 가빈을 좋아하시는지요?”봉구안은 끓인 물을 마시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모두가 이익적인 왕래인 거지.”같은 시각.최 상궁과 궁인들은 연일 총애를 받는 영소전 쪽을 매우 부러워했다.자신들의 주인은 총애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황제로부터 버림 받았으니 정말 하늘과 땅 차이였다....승마장.소욱이 연속 쏜 화살은 모두 과녁 정중앙에 명중했다.그러나 그는 조금도 만족한 표정 없이 도리어 점점 더 화가 난 듯했다.장내에서 서왕이 낮은 목소리로 진한
오후에 광풍이 크게 일고 검은 구름이 영소전 상공에 모여 사람들은 답답함에 숨을 쉴 수 없었다.귀비는 두통이 심하지만 이 통증을 멈출 약이 없어 침대에 누워서 쉴 새 없이 끙끙댔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두통이 사라졌지만 이번에는 명치끝이 답답해 견딜 수 없었다.광대들의 공연을 그녀는 볼 마음이 없었지만 궁인들은 아주 재미있게 봤다.주인이 총애를 받아야 하인이 편안히 지낸다.영화궁, 최 상궁이 또 불평하기 시작했다.“영소전 사람들은 광대 공연을 보고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풀을 뽑으며 막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황후마마의 궁에서 시중든다고 누가 믿겠습니까?”영화궁뿐만 아니라 각 궁은 주인부터 하인까지 모두 영소전을 부러워했다.녕비는 현비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현비 언니, 타고난 운명이 다르니 저는 그렇다 칩시다. 언니는 귀비와 마찬가지로 모두 영비와 비슷한데 어째서 폐하께서는 언니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까?”현비는 개의치 않았다.“폐하가 누구를 총애할지는 폐하께 달려 있다.”녕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하긴, 황후마마도 폐하가 좋아하지 않으니 한 번만 총애받고 폐하께서 그 뒤로 눈길 한번 안 줍니다. 선제를 생각해서가 아니라면 진작부터 냉궁에 던져두고 싶었을 것입니다.”현비는 말을 잇지 못했고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저녁에 유사양이 영소전에 와서 전갈했다.“귀비마마, 폐하께서 황실 서재로 부르십니다.”춘하가 웃으며 말했다.“마마, 폐하께서 마마가 보고 싶으신가 봅니다. 마마를 직접 부르시는 걸 보면 말입니다.”귀비는 기뻐서 백옥에 금을 상감한 비녀를 꽂고 연지와 분을 두껍게 발라 얼굴의 흉터를 가렸다.한껏 단장한 귀비는 가마를 타고 황실 서재로 갔다.하지만 안에 들어서니 황후가 있을 줄은 생각지 못한 귀비는 순간 매우 불쾌해졌다.황제가 그녀와 함께 가자고 불러놓고 황후를 왜 불렀는지 알 수 없었다.황제의 총애를 등에 업은 귀비는 황후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책
양연삭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게 친딸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거짓말이야.”그는 고개를 저었다.같은 반응을 보이는 이는 염추도 마찬가지였다.“어머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염추는 어머니가 자신을 구하려고 이런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양연삭이 다시 살의를 드러내자, 염 부인은 체면을 잃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과거의 진실을 폭로하기로 했다.“양연삭!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것입니까… 그때 막 만간성법을 수련하기 시작했을 무렵, 심마에 빠져 정신을 잃은 채 저를… 저를 능용하지 않았습니까! 염추는 그날 밤 생긴 당신 딸입니다!”양연삭은 분노에 차 소리쳤다.“천한 계집! 심마에 빠진 건 너였겠지!”염추는 어머니가 피를 쏟으며 쓰러지는 것을 보고 온몸이 얼어붙었다.그녀는 급히 염 부인을 부축했다.“어머니, 그만 말씀하세요. 오지 말았어야 했습니다!”양연삭은 체내에서 진기가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것을 억누르며 불쾌감을 삼켰다.“천한 계집! 입 닥쳐라! 내 딸이 아니다! 아니야! 내게는 아들 하나밖에 없다! 혹시 소환이 너를 시켜 나를 속이라고 한 것이냐? 내가 너를 죽여버리겠다!”그는 이 말을 끝으로 순식간에 달려들어 염 부인을 정확히 붙잡아 염추와 떼어놓았다.“안 돼!”염추는 놀라 외쳤다.동방세와 범진이 양쪽에서 양연삭의 주의를 끌며 염 부인을 구하려 했지만, 양연삭은 반응이 빨랐다.염 부인을 붙잡은 채 뒤로 물러섰다.염추는 이를 악물며 일어났다.피가 입가에 맺혀 있었지만, 그녀는 상관없었다.어머니가 양연삭의 손에 죽어가는 모습을 보자, 분노가 극에 달했다.“양연삭! 어머니를 놔줘라!”그러나 양연삭은 염 부인을 놓지 않고 집요하게 따져 물었다.“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다! 내 딸이 아니다! 말해라, 내 딸이 넌 아니라고!”염 부인은 처량한 눈빛으로 염추를 바라보았다.“내 딸아… 네 몸에는 네 아버지의 더러운 피가 흐르고 있어. 하지만… 부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라. 그만둬라,
염추는 만간성법을 수련하며 양연삭의 내력을 흡수했다. 그녀의 공력이 크게 증가한 덕에 두 사람은 땅에서 산으로 옮겨가며 치열하게 싸웠다. 그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먼지가 날리고 바위가 사방으로 흩어졌다.멀리서는 제군과 북연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북연군의 부장이 전장에서 희미하게 양연삭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근심에 빠졌다.‘분명 쉽게 제황을 죽일 수 있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 소식도 없다니. 이쪽은 더 버틸 수 없단 말이다!’제군은 곳곳에 매복병을 숨겨두었다.그들은 북연군이 포위망을 뚫어냈다고 생각하는 순간마다 다시 새로운 병력을 내세워 공격을 개시했다.북연군 부장은 이를 갈았다.“제군 놈들, 정말 비열하기 그지없구나!”북연군 병사들의 사기는 점점 흩어졌다.그때, 제군의 주장인 관 장군이 말을 타고 나와 크게 외쳤다.“북연군이여 들어라! 우리 장군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다면, 북연군이 안전하게 조유관을 떠날 수 있도록 허락하시겠다고 하셨다!”북연군 부장은 분노하며 외쳤다.“북연군은 절대로 항복하지 않는다!”관 장군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응수했다.“항복해라!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겠느냐! 어차피 북연군은 지난 전투에서 이미 남제에 졌지 않은가. 폐하께서 친필로 쓰신 항복문서를 우리도 읽어봤다!”지난 전투는 연태자가 이끌었으나, 30만 대군을 잃고 말았다.그 후 겨우 모집한 신병들도 전장에서 패배해 대부분 폭사했다.북연군 부장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남제인 놈들, 감히 우리를 모욕하다니!’얼마 지나지 않아 북연군은 포위망을 뚫고 다시 진영을 정비했다.두 군은 서로의 진영을 뚜렷이 구분하며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제군의 장수들이 권고했다.“우리 폐하께서 말씀하시기를, 더는 장병들이 헛되이 죽어나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고 하셨소. 아마 귀군도 같은 마음일 테지요?”또 다른 장수가 거들었다.“맞습니다! 여기서 물러나는 게 낫소. 병사들마저 폭사했다던데, 북연군이 공격할 용기가
“너희들이 날 또 속이려 드는구나! 소환, 네 놈은 죽어야 마땅하다!”양연삭은 더 이상 그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그는 아무것도 듣지 않고, 동방세의 내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봉구은 즉시 검을 뽑아 몸을 솟구치며, 마치 날렵한 제비처럼 양연삭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양연삭은 귀를 살짝 움직이며 날카로운 검기가 다가오는 것을 감지하더니 몸을 비틀며 공법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덕분에 동방세는 바닥에 떨어져 거친 돌 위에 등을 세게 부딪혔고, 머리카락은 흩날렸다.양연삭은 즉각 대응하며 봉구안을 향해 반격을 개시했다.그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올랐고, 반드시 봉구안을 죽여야겠다는 살의를 품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정면으로 치지 않고, 순간이동하듯 그녀의 등 뒤로 이동했다.그리고 갑작스러운 손바닥 공격으로 그녀의 등을 내리쳤다.“소환! 조심하시오!”동방세가 경고하자, 봉구안이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미 늦었다.퍽!소욱이 그녀의 뒤를 막아 서서 그 공격을 대신 받아냈다!봉구안은 즉시 눈이 커지며 소욱을 부축했다.“폐하!”진한길이 즉시 달려와 호위하려 했으나, 양연삭의 옷자락 휘두름 한 번에 허공으로 튕겨나갔다.뒤에서 다가오던 오백이 간신히 진한길을 받아냈다.동시에, 봉구안은 소욱을 보호하며 후퇴했다.범진과 다른 호위병들이 연달아 도착하여 도움을 주려 했지만, 양연삭의 마공은 너무 강력했다.그는 혼자서도 열 명이 넘는 병사들의 공격을 막아냈으며, 마치 거대한 저항의 벽처럼 그들을 튕겨내며 봉구안을 향해 다가갔다.봉구안은 그의 살기를 읽어내며, 소욱을 안전한 곳으로 밀어냈다.“구안아!”소욱은 즉시 그녀를 향해 달려가 그녀를 보호하려 했지만, 이미 양연삭의 손바닥 공격과 맞닥뜨렸다.손바닥과 손바닥이 맞붙는 순간, 소욱은 강렬한 흡수력을 느꼈다.마치 그의 몸속 깊이 갈고리가 박혀 내력을 강제로 끌어내는 듯했다.그는 벗어날 수 없었다.양연삭의 얼굴은 기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그는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강력한 내력이군!”
“양연삭,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군!”상방산 위에 동방세가 강호의 벗들과 함께 진을 치고 있었다.봉구안은 이미 이들과 연락을 주고받았으며, 이 감주에서의 매복은 단순히 북연군을 막기 위함만이 아니라 양연삭을 체포하려는 목적도 있었다.익히 알고 있듯이, 양연삭이 듣는 감각으로 싸움을 이어가려면 시간을 들여 적응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감주는 그에게 낯선 곳이었다.양연삭은 헝클어진 머리칼과 검은 천으로 가린 눈을 한 채, 귀를 곤두세워 소리를 가늠했다.“소욱! 소환! 너희 둘, 당장 나와라!”그의 분노는 깊었다. 복국과 복수를 위해, 반드시 이 둘을 죽여야 했다.아들마저 죽음에 이르게 한 두 사람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봉구안은 높은 곳에서 이를 싸늘히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곁에는 소욱이 자리하고 있었다.그 외 장수들은 병사들을 이끌고 북연군과 싸우고 있었고, 이 상방산에는 오천의 정예병력만 배치되어 있었다.이 오천이 바로 오늘, 양연삭의 무덤을 파낼 병력이었다.…북연군은 진영이 어지럽혀지면서 전투력이 급감했다.관 장군은 먼저 기습으로 혼란을 일으킨 뒤 포위 공격으로 말머리를 돌렸다.기병들은 북연군 주위를 돌며 기세를 꺾었고, 말발굽 소리와 흙먼지, 그리고 치열한 함성은 북연군을 더욱 당황하게 했다.그들은 마치 산적에게 길을 막힌 규중 여인들처럼 갈팡질팡했다.부장은 목청껏 외쳤다.“흩어지지 마라! 반격하라! 우리가 북연군의 실력을 보여주자!”병사들은 방패를 들어 올리며 진을 짜기 시작했다. 이는 기병의 돌격을 막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이었다.동시에 북연군의 기병들은 다른 쪽에서 포위를 뚫으려 고군분투하고 있었다.부장은 속으로 양연삭이 빨리 소욱을 죽이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렇다면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을 것이며, 그는 대공을 세운 영웅으로 남을 것이었다.양연삭은 비록 눈이 멀었지만 그의 마공은 전성기 못지않게 강력했다.완부옥이 몸에 지니고 있던 독물조차 그의 ‘만간성법’에 의해 모두 파괴되었고, 그녀는 내력을 상당히 잃은 채 동
북연군이 철수하려 하자, 양연석은 곧장 진 장군을 찾아갔다.“장군, 이것은 남제의 간계일 뿐입니다...”대군이 이미 진영을 떠나고 있었기에, 진 장군은 그의 헛소리를 들을 마음이 없었다.“양연석, 원래 네가 확신을 준 덕분에 황제께서 출병을 결심하신 것이다! 우리 북연은 남제와 제대로 싸울 계획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어찌된 것이냐? 네 일이 실패로 끝나 우리 군대가 반이나 손실되고 말았다.“나는 지금 너와 소욱이 한통속이 되어 우리 북연을 멸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비켜라! 감히 누구를 위해 싸우라고 하는 것이냐?”양연석의 얼굴이 싸늘해졌다.그는 손을 휘저으며 곧바로 진 장군의 목을 움켜쥐었다.진 장군은 놀라움과 분노로 크게 외쳤다.“양연석... 네가...”순간, 진 장군은 자신의 체내 진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양연석은 그의 내력을 흡수하면서 섬뜩한 목소리로 물었다.“장군께선 '만간성법'이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진 장군은 눈을 크게 뜨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그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으나 양연석에게 대적할 수 없었다.잠시 후, 양연석은 그의 내력을 모두 흡수한 뒤, 그의 목을 꺾어버렸다.북연의 명장이었던 진 장군은 그렇게 양연석의 손에 생을 마감했다.곁에 있던 부장은 이 광경을 보고 공포에 질려 식은땀을 흘렸다.그는 양연석이 보지 못하고 오직 귀로만 위치를 파악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입과 코를 손으로 막고 자신의 존재를 숨겼다.그러나 그는 움직여 천막 입구에 이르러 막 도망치려던 순간, 앞에서 한 팔이 가로막았다.부장은 등골이 오싹해졌다.그는 양연석의 사술을 이미 목격했기에 겁에 질려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다.“제발 저를 죽이지 말아 주십시오!”양연석은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주군이 죽었으니, 네가 이제부터 주군이다. 곧바로 명령을 내려 조유관을 공격하고 남제의 황제를 죽이도록 해라!”부장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안 됩니다!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그는 죽는 것이 두려
새해가 밝자마자, 남제 대군은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섰다.이번 반격은 본격적인 전투가 아니라 도발 수준에 그쳤다.겉보기엔 큰 피해를 주지 않는 듯했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반복된 도발은 북연군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안겼다.그렇게 보름 정도가 지난 어느 밤, 북연군 대영에서 치명적인 사건이 터졌다.“장군! 장군! 영내 폭동이 일어났습니다!”영내 폭동은 군영 내에서 발생한 대규모 소요 사태를 말한다.이것은 극히 드문 일이지만, 군대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진 장군은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어서 장군을 호위하라!”이 폭동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한 병사가 무심코 “적이다!”라고 외친 것이 발단이 되어 전군이 서로를 적으로 착각하며 싸우는 대참사로 번진 것이다.북연군 대영은 한순간에 혼돈에 휩싸였다.병사들은 허둥지둥 일어나 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는 무작정 외쳤다.캄캄한 밤중이라 서로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기에, 적이 이미 진영 안으로 침입했다고 믿은 병사들은 무기를 휘둘렀다.그들 모두는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싸웠고, 자신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진영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었다.특히 전쟁에 처음 나서는 신병들은 상황을 이해할 새도 없이 무조건 무기를 휘두르며 서로를 공격했다.순식간에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군영 안에는 시신이 가득했다.조유관 내, 남제 대군 본영.남제 대군 본영의 장막 안, 한 병사가 황급히 달려와 기쁜 얼굴로 외쳤다.“폐하! 북연군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관 장군은 주먹을 꽉 쥐며 외쳤다.“잘됐다!”그는 곧장 봉구안을 바라보며 말했다.“맹 소장군, 과연 그대의 예상대로 되었습니다!”다른 장군들 역시 봉구안에게 경의를 표하는 눈길을 보냈다.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지만, 단순한 계략으로 북연군 내부를 서로 물고 뜯게 만들다니, 그야말로 천재적인 발상이었다.영내 폭동은 양군이 정면으로 맞붙는 전투보다 훨씬 참혹하다.병사들은 히스테릭 상태에 빠져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서로 죽였다.
남제에서 내놓은 화룡은 북북연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북연군은 그동안 남제의 죽화총을 모방해 제작한 무기를 통해 천하무적이라 자부했건만, 남제가 이를 역으로 배워 화룡까지 만들어낼 줄 누가 알았겠는가!북연군의 주군인 진 장군은 이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남제군이 허세를 부리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그는 화룡을 가까이에서 확인하고는 기가 찼다. 남제군의 화룡은 북연의 것과 똑같이 생겼던 것이다!남제군은 소규모 병력을 내보내 화룡을 북연군 쪽으로 밀어 보이며 여유롭게 시위를 벌였다. 두 나라의 화룡이 서로 스쳐 지나가는 광경은 보는 이들을 적잖이 당황하게 했다.그러자 남제군 쪽에서 도발을 이어갔다.“우리 폐하께서 말씀하셨소! 북연이 선물한 화룡탄에 깊이 감사드린다고!”진 장군은 그 말을 듣자 손발이 떨리기 시작했다.그 화룡탄은 그가 천룡회 반역자들에게 넘겨줘 혼란을 일으키고 군왕을 죽이는 데 사용하라 한 것이었다.그런데 그 화룡탄이 여기 나타나다니!만약 남제군이 화룡을 진짜로 가지고 있다면 그의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이 된다.북연군뿐만 아니라 조유관에 있는 남제군 병사들까지도 그 광경에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관 장군 역시 멍하니 입을 벌린 채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옆에 있던 부장이 기쁨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참 통쾌하군요!”이 느낌은 마치 거지였던 자신이 갑자기 재산을 상속받아 거리에서 어깨를 펴고 다니게 된 듯했다.남제군 병사들은 하나같이 당당한 자세로 북연군을 향해 외쳤다.“와보시지! 누가 겁내는지 보자고!”북연군은 이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즉각 철수를 명령하며 화룡을 회수하기 시작했다.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신할 수 없었으나, 그럴수록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진 장군이 소리를 질렀다.“뭣들 하는 게냐! 빨리 움직이지 못하고!”한편, 후방.양연삭은 찻잔을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남제가 화룡을 만들어냈다고? 이건 분명히 거짓말이다!”…남제군 내부에서도 화룡의 진위에
봉구안은 갑옷을 입고 나타났다. 소욱은 그녀를 보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이게 무슨 짓이냐? 내가 너한테 상처부터 회복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던 거 기억 못 하느냐.”봉구안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제 상처는 별일 아닙니다. 계속 여기 안에만 있으면 오히려 몸이 더 불편합니다.”“적군을 몰아내는 게 급선무입니다. 게다가 양연삭도 그들 편에 있으니, 그들을 빨리 처치하는 것이 우선입니다.”소욱은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가로막았다. 그의 눈빛은 결연했다.“안 된다. 네 상처가 아직 다 낫지 않았으니 또 다치게 할 수는 없다.”봉구안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제 몸을 잘 지킬 수 있습니다.”“구안아, 너…”소욱은 그녀를 더 설득하려 했지만, 그 순간 밖에서 보고가 들어왔다.“폐하, 적군이 소환을 내놓지 않으면 당장 전쟁을 시작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습니다!”동부 변경조유관 성벽 바깥. 적군이 검은 물결처럼 밀려들었다. 붉은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며 전장을 압도했다.양측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북연군의 진 장군은 기세등등했다.그의 뒤에는 ‘화룡’과 새롭게 개발된 죽화총이 줄지어 있었다.남제에 있는 것은 북연에도 있었고, 남제에 없는 것조차 북연은 가지고 있었다.전력 차는 명확했다.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공격하는 데 이유가 필요 없었다. 그러나 큰 나라끼리의 전쟁이라면 명분이 필요했다.북연군은 소환이라는 대마두를 내놓지 않으면 ‘화룡’을 발사해 강공하겠다고 협박했다.오랜 기다림에도 남제 측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점차 북연군은 참을성이 바닥났다.많은 병사가 소리쳤다.“공격하라!”“공격하라!”그들에게는 장거리용 화룡과 근접전을 위한 죽화총이 있었다.남제 따위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반면, 남제군은 화룡을 보자 심장이 내려앉았다.그 위력을 익히 들어온 터였다.그러나 소환은 맹 소장군이란 신분이자 미래에 황후가 될 자였다.그런 그녀를 적군에게 넘길 수는 없었다.장군들은 성벽 위에 서서 북연의 대군을
소욱은 품 안에 있는 사람을 껴안고 자신의 통제되지 않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젠장!”남자는 눈물을 쉽게 흘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자기가 이렇게 울고 있다니! 정말 체면이 없었다. 하지만... 매우 만족스러웠다.봉구안이 드디어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했으니까 말이다.소욱의 마음은 수없이 흔들리며 설레었고, 그는 그녀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뭐라 했느냐? 듣지 못했다.”봉구안은 진지하게 말했다.“안 들리셨다면, 그냥 넘어가시지요.”소욱은 즉시 그녀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며 말했다.“구안아, 일부러 그러는 것이냐? 난 그저 다시 한 번 듣고 싶은 건데, 그것도 안 되겠느냐?”봉구안은 그의 손을 떼어내고는 고개를 들고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예, 제가 폐하를 좋아합니다...”소욱의 머릿속에서는 불꽃놀이 터지듯 화려하고 찬란하게 빛났다. 그는 봉구안을 꼭 껴안고 마치 꿀을 들이킨 듯 달달한 마음에 젖었다.“구안아, 정말 기쁘구나. 네가 이렇게 말해 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그녀가 겪은 이야기를 들으니 그의 마음은 아프고도 놀라웠다.눈사태가 닥쳤을 때, 상식적으로라면 측면으로 달려야 한다. 하지만 당시 눈사태는 너무 빠르고, 그녀는 부상당해 경공을 펼치기 어려웠다. 눈사태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그 곳에는 봉구안을 죽이기 위해 달려온 살수들도 있었다.그녀는 달아나는 척하며 결사적으로 싸웠다. 실상은 눈사태가 발 밑에 닥치기 직전, 한 산돌을 찾아 몸을 숨겼다. 그녀는 몸에 있던 채찍으로 몸을 돌과 묶어 눈사태의 충격을 피했다.그 돌은 그녀가 눈사태에 휩쓸리지 않고 묻히지 않도록 막아줬다.눈사태가 중반부에 이르렀을 때 속도가 느려졌고, 그녀는 최대한 수영하듯 몸을 떠올려 눈 위로 나오려 애썼다. 머리를 밖으로 내밀어 구조대가 그녀를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하지만 그녀는 체력을 모두 소진하여 결국 기절하고 말았다.눈을 떴을 때는 늙은 의원이 그녀를 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