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대인은 봉구안의 정체를 알게 되자 본능적으로 그녀와 친척 관계를 강조하려 했다.그러나 그녀가 던진 단 한마디에,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진짜 가족이 아니라고?”누가 가족이 아니라는 것이냐?임 대인의 시선이 흔들렸다.그녀의 차가운 목소리가 감옥에 울려 퍼졌다.“유 씨 가문의 둘째 딸, 태어나자마자 너희가 데려가 키운 것이 맞느냐?”임 대인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설마 그녀가 묻는 것이 그때의 일일 줄이야…그는 태연한 척하며 고개를 숙였다.“그렇습니다! 제 누이가 둘째 딸을 낳은 후, 저희에게 맡겼습니다!”그녀가 자신의 표정을 읽지 못하도록.그는 필사적으로 침착한 척하며 말을 이었다.“황후마마, 이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하지만 봉구안은 여전히 형구를 손에 쥔 채, 냉정한 시선으로 그를 꿰뚫어보았다.“확실하느냐? 너희가 데려갔을 때, 그 아이가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았다는 것이?”임 대인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당연합니다! 아이는 태어나고 며칠 지나지도 않아 저희 손에 맡겨졌습니다!”그러자 봉구안이 단호하게 쏘아붙였다.“거짓말이다.”임 대인의 어깨가 움찔했다.봉구안의 눈빛이 더욱 날카롭게 번뜩였다.“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너희가 데려간 그 아이는 태어난 지 이미 세 살이었을 것이다. 내 말이 맞느냐?”그 순간, 임 대인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일그러졌다.애써 웃음을 지으며 그는 반박했다.“황후마마, 이건 말이 안 됩니다. 태어난 아이가 갑자기 세 살이 된다니, 그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그러나 봉구안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너에게 한 번의 기회만 줄 것이다.”“한 촉의 시간이 지나면, 너는 형장으로 끌려갈 것이다.”그녀는 단호하게 말한 후, 감옥을 나갔다.임 대인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형장?”그녀가 정말로 자신에게 형벌을 가하겠다고?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어떻게 그녀가 이 일을 알게 된 것이지?무사히 넘긴 지 사십 년이 넘
남제, 황성.유영은 여전히 사라진 사신들의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점점 초조함에 휩싸였다.그녀는 며칠째 서왕부를 드나들며 사신들의 행방을 묻고 있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아직 찾고 있습니다.”그녀는 처음엔 서왕이 정말로 사신들을 찾아줄 것이라 믿었다.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단순히 자신을 적당히 무마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역관.유영이 피곤한 얼굴로 돌아오자, 딸 정희가 기다렸다는 듯 다그쳤다.“어머니, 황제 폐하께서 이미 환궁하셨다고 합니다. 저흰 언제 입궁할 수 있습니까?”그러나 유영은 피곤한 얼굴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사신들의 행방뿐이었다.정희는 초조한 듯 다시 물었다.“이모님께서는 아직도 회신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새로운 국서를 보내주셨다는 소식은 없나요? 어머니?”그제야 정신을 차린 유영은, 갑자기 딸의 손을 세게 움켜잡았다.“너의 이모께서 우리를 내버려 두실 리 없다! 나는 서여국 황제의 친여동생이란 말이다!”그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지금 당장 입궁하여 직접 황제를 알현할 것이다!”이제 직접 황제를 만나 황제의 마음을 움직일 때였다.황궁에서의 냉대.그날, 황제 소욱은 갓 환궁하여 어전에서 상소문을 검토하고 있었다.그때, 한 호위가 조용히 다가와 보고했다.“폐하, 서여국의 사신을 자처하는 유영이 알현을 요청하고 있습니다.”순간, 소욱의 손이 멈칫했다.그는 이미 봉구안으로부터 서여국에서의 모든 상황을 보고받은 상태였다.유영이 서여국 황제에게 철저히 농락당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아직도 자신이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착각하며 황궁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이 가관이었다.더욱 우스운 것은, 그녀가 자신의 딸을 후궁으로 들이려 한다는 점이었다.소욱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그는 피곤한 듯 이마를 문지르더니,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돌려보내거라.”목소리는 냉랭했다.봉구안이 없는 지금, 그는
정희가 태연하게 말하는 동안, 유영의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다.뭔가 이상했다.특히, 갑자기 사라진 사신들이 계속 신경 쓰였다.그때…쾅!시녀가 차를 올리던 순간, 정희가 팔을 과하게 휘두르는 바람에 찻잔이 기울었고, 뜨거운 차가 그녀의 손등을 덮쳤다.정희는 서여국 궁에서 늘 귀하게 자라며 극진한 대접을 받아왔다.조금이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절대 참지 않는 성격이었다.이번에도 그녀는 거의 본능적으로 시녀의 뺨을 후려쳤다.“짝!”순식간에 시녀의 뺨에는 붉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시녀는 겁에 질려 고개를 깊이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사죄했다.“소첩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그러나 정희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차가운 시선으로 시녀를 노려보았다.“이게 시중 드는 태도냐? 감히 본 귀인을 데이게 하다니! 어서 약을 가져오지 못할까!”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영은 짜증스럽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나직이 말했다.“그만해라. 고작 이런 일로 소란 피울 필요 없다.”이곳은 장공주의 저택이었다.불필요한 소란이 화를 부를 수도 있었다.하지만 정희는 억울하다는 듯 어머니에게 손을 내밀며 볼멘소리를 했다.“어머니, 이게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요? 손이 이렇게 망가졌잖아요! 곧 황제 폐하를 뵈어야 하는데, 이대로라면 폐하께서 날 탐탁지 않게 여기시면 어쩌죠?”손은 여자의 두 번째 얼굴이라 하지 않던가.시녀는 더욱 당황하여 그대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소첩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그러나 정희의 눈빛은 더욱 매서워졌다.“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기는 하느냐? 당장 약을 가져오지 않고 뭐 하고 있느냐!”“예! 예! 소첩이 바로 다녀오겠습니다!”시녀는 몸을 떨며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그러나 정희는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눈을 굴리며 불만을 토로했다.“어머니, 공주부의 하인들은 정말 형편없어요. 이렇게 어설프게 일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어떻게 생활하는
의문의 남자는 정희를 풀어주기 전, 그녀의 입에 알약 하나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정희는 본능적으로 뱉어내려 했으나, 남자가 거칠게 턱을 움켜쥐었다.“삼켜라.”그녀가 반항할 틈도 없이, 약은 그대로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크윽!”정희는 사레가 든 듯 격하게 기침을 했다.유영은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이 창백해졌다.“네놈! 내 딸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남자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대답했다.“독이다. 이제 네 딸의 목숨은 우리 손에 있다.”정희의 몸이 덜덜 떨렸다.“어머니… 살려 주세요…!”그녀는 두려움에 질린 채 유영에게 매달렸다.유영은 분노와 불안이 뒤섞인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며 외쳤다.“이미 네놈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는데, 왜 굳이 내 딸에게까지 독을 먹인 것이냐! 해독제를 내놓거라!”남자는 비웃음을 터뜨렸다.“해독제? 네가 우리 뜻대로 행동하면 자연히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얌전히 있어라.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네 딸은 가장 먼저 죽게될 것이다.”그의 눈빛은 잔혹하기 짝이 없었다.유영은 치를 떨며 주먹을 꽉 쥐었다.그러나, 지금 그녀는 철저히 상대의 손아귀에 있었다.울분을 삼킨 채, 결국 그녀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네놈들이 원하는 대로 하겠다.”……서여국.그동안 서여국에서는 황제의 병세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어의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나, 병은 더 이상 호전되지 않았다.그녀는 국정을 몇몇 신뢰할 만한 대신들에게 위임하고, 요양을 핑계로 궁을 떠나 교외에서 머물고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중요한 상소문을 직접 검토하며, 마지막까지 나라를 다스리려 했다.그녀의 곁을 지키는 것은 단 한 사람…봉구안의 어머니, 즉 그녀의 친동생으로 의심되는 ‘봉부인’이었다.황제는 마음 깊이 확신하고 있었다.봉부인은 바로 그녀의 동생 숙연일 것이라고…그러나 아직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머물러 있었다.황제는 병든 몸을 지탱하며,
서여국 황제의 감정은 크게 요동쳤다.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져 진짜 여동생을 찾았다는 사실이 그녀를 극도로 긴장시켰다.마치 팽팽하게 당겨졌던 활줄이 순간적으로 끊어진 것처럼, 그녀의 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황제를 모시고 있던 어의가 급히 병상 옆에 붙어 긴급히 치료를 시작했다.방 밖에서는 봉구안이 어머니를 모시고 기다리고 있었다.봉 부인은 불안한 목소리로 계속 물었다.“구안아, 내가 정말 숙연이 맞니? 이번엔 정말 틀림없니?”봉구안은 인내심을 가지고, 진실을 한 번 또 한 번 차분히 설명해주었다.비록 봉 부인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는 하나, 이 갑작스러운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힘겨웠다.남제의 사람이었던 그녀가 서여국 사람으로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황제의 동생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게다가 그녀의 자식들은 모두 남제에 있었다.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더구나 이제 막 찾아낸 친언니는 지금 죽음의 문턱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봉 부인은 그 모든 것을 견딜 힘을 잃고, 마치 뿌리가 뽑힌 듯 불안정한 상태에 빠졌다.봉구안은 그녀의 손을 단단히 잡아주며 말없이 위로했다.그 따뜻한 손길에 봉 부인은 조금이나마 안정감을 되찾았다.“구안아, 황제 폐하가 걱정 되는구나… 괜찮아지시겠지?”봉구안은 확신을 가지고 대답할 수 없었다.솔직히 말해, 황제가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시간이 흘러, 거의 보름 동안 치료를 받은 끝에 황제가 겨우 의식을 되찾았다.하지만 어의가 방 밖으로 나와 가족들에게 말했다.“아마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황제를 궁으로 모시는 게 나을 것입니다.”그 말은 황제의 가족들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만약 황제가 궁 밖에서 세상을 떠난다면, 궁궐 내부는 혼란에 휩싸일 것이 뻔했다.봉 부인은 그 말을 듣자마자 휘청이며 뒤로 물러섰다.발밑이 흔들리는 듯하고, 몸 전체가 힘을 잃은 느낌이었다.어쩌다가 이렇게 된
서여국 황제가 봉구안에게 내린 성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네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서여국의 왕이 될 수 있다.]봉구안은 성지를 쥔 채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줄곧 자신을 남제의 사람이라 여겼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장에서 죽는 것도 한 점 후회가 없다고 생각해왔다.황제는 그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봉구안이 서여국으로 돌아와 정권을 잡으려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아이야, 이 성지는 너를 위한 이모의 보증이다. 훗날 네가 의지할 수 있는 피난처를 마련해두고자 하는 마음일 뿐이다.”이 세상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오직 서여국만이 여성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낙원이었다.사적인 욕심으로 말하자면, 황제는 봉구안이 자신의 뿌리를 인정하고 서여국의 일원이 되기를 바랐다.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망일 뿐이었다.봉구안은 지금 남제 황제와 금슬이 좋았으며, 떨어질 수 없는 사이였기 때문이다.봉 부인은 성지의 내용을 짐작하고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언니, 설마…”황제는 그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숙연, 아이가 직접 결정하도록 두자.”그런 뒤 모신에게 명했다.“나는 좀 쉬고 싶구나. 너는 그들을 데리고 조묘를 구경시켜라.”“알겠습니다.”조묘는 서여국 역대 황제들을 모시는 사당으로, 왕족의 용맹한 업적들이 기록되어 있었다.오직 황족의 피를 이은 자만이 조묘에 들어가 제사를 올릴 수 있었다.이는 일종의 뿌리 찾기와도 같았다.그들이 떠난 후, 황제는 천천히 눈을 감고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반 시진이 지나, 봉구안 일행은 조묘에 도착했다.모신 상궁은 황제의 친필 명령서를 가지고 있었고, 수비병들은 공손히 길을 열었다.정전 안으로 들어가니, 거기엔 많은 황제의 위패들이 모셔져 있었다.모신 상궁은 향을 꺼내며 말했다.“숙연 대인, 소장군, 향을 올려주세요.”그러면서 두 사람에게 안내했다.“숙연 대인, 여기가 바로 어머님 황후의 위패가 모셔진 곳입니다.
서여국 황궁.유영은 태연히 황제를 궁으로 데리고 돌아왔다.궁녀들은 그녀에게 깍듯이 예를 갖추었고, 누구도 의심하는 자는 없었다.황제가 입을 열어 도움을 요청할 여지를 없애기 위해, 유영은 황제에게 혼수약을 먹여 혼미한 상태로 만들었다.유영은 태연했지만, 정희는 그와 달리 몹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시선을 고정하지 못했다.황제를 침전으로 모신 뒤, 모든 궁인을 물러가게 한 후 정희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머니, 이렇게 해도 정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까요?”유영은 침상 위 황제를 내려다보며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을 드러냈다.“곧 죽게 될 황제의 자리는 이제 내 것이야. 내가 서여국 전체를 장악하면, 아무도 나를 대적할 수 없을 것이다.”정희는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얼마 전, 암살자들이 교외 저택에 침입해 황제의 호위를 죽이고 신분을 위장한 뒤 황제와 함께 궁으로 들어온 일이 떠올랐다.지금 그 암살자들은 이미 궁궐 안으로 들어와 그녀들의 곁에서 감시를 하고 있었다.어머니가 황제가 된다 하더라도 과연 자리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까?“어머니, 정말 너무 큰일이에요… 저는 무서워요.”정희의 목소리가 떨렸다.유영은 딸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말했다.“겁먹지 마라. 우리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길에 들어섰다. 만약 그들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너의 목숨조차 보장할 수 없다.”정희는 입술을 깨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머니,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죠?”유영은 침상 위 황제를 천천히 바라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그를 세상에서 없애야 한다.”그리고 그녀는 번거로운 모신 상궁에 대해서도 덧붙였다.“전하거라. 모신 상궁이 황제를 궁 밖에 가둬 반역을 꾀했다고... 즉시 그 자를 잡아 처단하라!”궁 밖.모신 상궁의 수배령이 곳곳에 나붙었다.봉구안은 모신 상궁과 봉부인을 데리고 잠시 몸을 숨겼다.한 객잔 안에서, 모신 상궁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마마, 황제가 유영의 손에 넘어갔으니,
서여국의 문무 대신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모신 상궁은 황제 곁에서 오래 머물렀고, 황제로부터 깊은 신임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녀가 한 말이라면 틀릴 리가 없었다.그러나 이 숙연이라 불리는 인물은 황제의 친동생이 아닌가…잠시 동안, 사람들은 어느 쪽을 믿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모신 상궁은 숙연의 신분이 가짜라고 주장했지만, 숙연은 모신 상궁을 역모로 몰아세웠다. 양쪽 모두 서로의 말을 부정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때, 봉구안이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어째서 황제께 직접 여쭙지 않는가?” 이 말이 떨어지자, 유영의 눈에 살기가 서렸다. “내 언니를 해치지 못하게 할 거야! 너희 같은 역적들이 황제를 볼 생각은 꿈도 꾸지 마!”“여봐라! 저들을 당장 체포하지 못하겠느냐!” “누구든 함부로 움직이면 상대하겠소!” 대장군 호원아가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봉구안과 모신 상궁을 감쌌다. 유영은 호원아를 꾸짖었다. “호 장군, 너마저 역모를 꾸미려는 건가!”“너희가 진상을 몰라 속은 것을 생각해 이번 한 번만 용서하겠다. 즉시 내 편에 서서 역적을 체포하라!” 그러나 호원아는 단호히 말했다. “그 누구를 벌하든지 황제의 결정에 따라야 마땅하다. 숙연, 황제는 어디에 있는가?” 유영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고, 끝까지 황제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자, 눈가에 억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좋다, 내가 말해주겠다! 황제 폐하는… 어젯밤에 이미 승하하셨다!” 그 말에 모든 대신들이 충격과 비탄에 빠졌다. “황제 폐하…!” 모신 상궁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그럴 리 없어, 황제께서 어찌…” 그녀는 황망한 눈빛으로 봉구안을 바라보며 물었다. “마마, 황제께서 정말… 정말로 돌아가신 걸까요?” 봉구안은 살기를 띤 냉정한 눈빛으로 손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그 순간, 유영은 성급히 높은 단상에 올라가 용좌에 앉았다. 그녀는 군중을 내려다보며 교만
소욱은 한참을 고민한 끝에 신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남제가 북연과 다른 나라들을 정복할 수 있다면, 서여국만큼은 내가 지키도록 하마.”“하지만 내가 막는다고 해서, 후대 황제들이 이를 탐내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서여국이 남제와 대등할 만큼 강해지지 않는다면, 결국 남제에 종속될 수밖에 없겠지.”“십 년 내에 스스로 강해지지 않는다면, 서여국의 멸망은 시간문제일 것이다.”“그 원인이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겠지.”그의 말은 완곡했지만, 본질적으로는 분명한 경고였다.그녀를 사랑하는 한, 서여국을 위해 힘을 쏟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남제와 서여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는 서여국을 포기할 생각이었다.허나 오직 서여국이 강해져야만 남제의 야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소욱은 말을 마치고, 혹여나 그녀가 화를 낼까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가락에 깍지를 끼웠다.“구안아, 미안하다.”“내가 남제의 힘을 서여국을 위해 기꺼이 소모하겠다고는 약속할 수 없겠구나.”봉구안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알고 있습니다.”“애초에 제가 원한 것도 그런 약속은 아니었어요.”“다만, 저와 서여국의 관계를 떠나서 지금 남제와 서여국이 맞서 싸우는 것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닙니다.”“첫째, 북연과 동산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저희는 협력해야 합니다.”“둘째, 서여국은 여성 중심 사회입니다. 남제가 정복한다 해도, 제대로 다스리긴 어려울 겁니다.”소욱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걱정 마라.”“지금 당장은 서여국을 공격할 생각이 없다.”“하지만 네가 서여국을 지키고 싶다면, 반드시 강한 나라로 만들도록 해라.”봉구안은 가볍게 웃었다.‘이게 바로 내가 아는 소욱이지.’그가 '황부' 운운하며 장난을 치던 모습과는 달리, 지금의 그는 본래의 날카로운 본능을 드러내고 있었다.……오랜만에 재회한 두 사람은 서로를 더욱 갈망하고 있었다.봉구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먼 길을 오셨는데, 배고프지 않
봉구안은 방금 들은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소욱이… 자신의 황부가 되겠다고?“지금 진심으로 말씀하시는 겁니까?”예상치 못한 말에 그녀는 얼떨떨했다.그러나 소욱의 표정은 농담이 아니었다.“널 찾으러 오기 전에,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다.”“남제와 서여국은 결국 하나가 될 것이다.”“그렇다면, 나는 단지 너를 따라 처가에 몇 년 머무는 것뿐이지 않겠느냐.”“소주와 정국을 완전히 복속시키고 나면…”“처가요?”봉구안은 어이가 없어 그의 말을 끊었다.“그걸 혼인 후 친정에 가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겁니까?”소욱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이쯤 되면, 황제가 바쁜 정무에 치여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었다.그러나 소욱은 변함없이 단호했다.“내 말은 전부 진심이다. 결국, 네 선택은 두 가지뿐이다. 이제 결정하거라.”봉구안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듣자 하니, 폐하께서는 저를 몰아세워 선택을 강요하고 계시는군요.”“그리고 황부라니… 설마 제가 그걸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소욱은 곧장 미간을 좁혔다.“그럼, 네 계획은 무엇이냐?”“설마 서여국에서 다른 사내를 황부로 세울 생각인 것이냐?”같은 주제를 두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대화였다.봉구안은 이마를 짚으며 피곤한 기색을 드러냈다.“소욱… 아니 폐하 그만하세요.”그녀는 화가 나서 그의 이름을 그대로 불렀다.이미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소욱이 터무니없는 논리로 몰아붙이니 더 이상 감정을 다스릴 힘조차 없었다.그러나 소욱은 그녀의 손을 단단히 잡으며, 진심이 담긴 눈빛을 보냈다.“구안아, 너는 내게 미안해할 필요 없어.”“남제는 이미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당분간 큰 위기는 없을 것이다.”“오히려, 서여국이 소주와 정국을 평정하고 남제와 연합하여 북연을 견제한다면, 우리는 더욱 강력한 동맹이 될 수 있다.”“그렇다면, 내가 너를 따라 서여국으로 가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너는 황제
문이 열리자, 예상대로 소욱이 서 있었다.봉구안은 손에 쥐고 있던 단도를 내려놓고, 흔들림 없는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소욱 역시 단 한순간도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마치, 조금이라도 눈을 돌리면 그녀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원래대로라면 그는 곧장 서여국으로 향해야 했다.하지만 은위로부터 그녀가 남제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 없이 이곳으로 발길을 돌렸다.다행히도, 눈보라가 그녀를 붙잡아 두었다.“부인…”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다.그래서 호칭을 바꿨지만, 담긴 감정만큼은 그대로였다.봉구안은 방 안에 외부인이 있는 만큼, 소욱을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그리고 오백에게 계속 감시를 맡긴 뒤, 객잔 주인에게 은화 한 덩이를 건넸다.주인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오늘 밤, 자신이 본 것도, 들은 것도… 그 무엇도 기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방 안으로 들어서고 문이 닫히자마자, 소욱이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그의 외투는 눈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축축한 모피 깃이 목덜미에 닿자 싸늘한 감촉이 전해졌다.봉구안은 그를 가볍게 밀어내고, 손수건을 꺼내 눈을 닦아주었다.“어찌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눈보라가 심한데, 몸은 괜찮으십니까?”소욱은 심한 눈 공포증을 앓고 있었다.그런데도 이 험한 날씨를 뚫고 직접 찾아오다니… 그녀는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소욱이 그녀의 손목을 조용히 잡았다.그의 눈빛에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서려 있었다.“나는 괜찮다.”“그보다… 서여국의 일은 어떻게 된 것이냐? 너 정말…”그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하지만 봉구안이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답이 되지 않을까.그녀가 선택한 것은 서여국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었다.그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소욱은 다시 한 번 그녀를 끌어안으며 낮게 속삭였다.“구안아, 너는 언제까지나 내 황후다.”봉구안은 그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음을 직감했다.“서여국의 이야기는 차근차근 말씀드리겠습니다
약 거래.봉구안이 오랫동안 추적해 온 사건이었다.하지만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 채, 막다른 길에 부딪히고 있었다.그런데 이런 작은 객잔에서 뜻밖의 단서를 발견하게 될 줄이야.봉구안의 시선이 날카롭게 번뜩였다.장사꾼은 그들의 반응을 살폈다.이제야 상자 속의 물건이 무엇인지 알게 된 듯한 모습이었다.그럼 됐다.어떤 말은 해야 하고, 어떤 말은 삼켜야 하는지… 이제야 감이 잡혔다.“당신들, 대체 누구야! 약쟁이이라니, 무슨 헛소리야! 나는 표사야! 저건 내가 다른 도시에 옮겨 치료받게 할 환자일 뿐이라고!”“크읏!”갑자기 목이 조여왔다.숨이 턱 막히는 순간,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살기가 서린 차가운 눈빛.그 순간, 장사꾼은 확신했다.이 여인은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존재였다.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 한마디 없이 말이다.……밤이 길었다.동이 틀 무렵, 객잔 주인이 따뜻한 물을 들고 객잔의 각 방을 돌았다.그러다 한 방 앞에 섰을 때, 문이 열렸다.그런데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문틈으로 보이는 차가운 입술.객잔 주인은 순간적으로 피비린내를 맡았다.착각인가?하지만 곧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이곳은 외진 곳에 있는 객잔. 별의별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었다.굳이 나설 필요는 없었다.객잔 주인은 재빨리 몸을 돌려 떠났다.방 안에는 두 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그리고, 침대 위. 한 명의 장사꾼이 손발이 묶인 채 웅크리고 있었다.봉구안은 책상에 앉아, 피가 묻은 단도를 천천히 닦고 있었다.창문 너머로 희미하게 새어드는 새벽빛. 하지만 그녀의 분위기는 여전히 어둡고 깊었다.장사꾼은 겁에 질려 눈을 질끈 감았다.입에 재갈이 물려 있어, 흐느끼는 듯한 소리만 새어 나왔다.오백은 침대 옆에 서서 검을 안은 채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그의 발밑에는 나무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그 안에는 약쟁이가 들어있었다.위험한 존재였다.당장 풀어둘 수도 없었다.봉구안은
”마마, 며칠째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길을 나설 수가 없습니다. 백 리 안에서는 이 객잔 하나밖에 찾지 못했습니다.”오백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고, 봉구안은 말의 고삐를 쥐고 뒤따랐다.눈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한 손으로 고삐를 잡고, 다른 손으로 얼굴을 가려도 소용없었다. 눈발이 매섭게 얼굴을 후려치고,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얼렸다.객잔에 들어서자마자 싸늘하게 식었던 몸이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어서 오십시오!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끼니만 드실 건가요, 아니면 방을 잡으시겠습니까?”객잔 주인이 따뜻한 차를 들고 다가와 물었다.“방을 잡지. 두 개. 그리고 술 두 병에 소고기 네 근을 내오도록 하거라.”봉구안은 털썩 자리에 앉으며 머리카락에 묻은 눈을 털어냈다.“알겠습니다, 나리!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객잔 주인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이곳에는 봉구안 일행뿐만 아니라 몇몇 장사꾼들도 폭설에 발이 묶여 있었다.그들은 마차 가득 물건을 싣고 길을 떠나야 했기에, 봉구안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장사꾼들은 둥글게 둘러앉아 술을 마시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대체 이 눈이 언제 멈출까? 이번 물건을 제때 배달하지 못하면 큰 손해를 보게 생겼어.”“그러게 말이야. 올겨울 교역이 활발해 한몫 잡으려 했는데, 이런 날씨라니. 하늘도 참 야속하군.”봉구안도 이 눈이 빨리 그치길 바랐다.서여국의 문제를 하루라도 빨리 소욱과 상의해야 했다.오백은 마구간으로 가서 직접 말에게 먹이를 주고 난 뒤, 본능적으로 뒤뜰을 한 바퀴 돌았다. 돌아와서는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마마, 저 장사꾼들이 가져온 짐에는 별다른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봉구안은 무심히 장사꾼들을 흘겨보고는 오백에게 말했다.“이만 너도 앉아서 쉬거라. 음식도 좀 먹고…”밖에서는 여전히 거센 눈보라가 창문을 때렸다.밤이 깊었지만, 봉구안은 마음이 복잡해 쉽게 잠들지 못했다.추운 날씨 때문인지 몸도 으슬으슬 떨렸다.그때, 문득 소욱의 모습이 떠올랐다.그가 자신의 차가운
자녕궁.태후는 황제를 바라보았다.그의 눈빛에서 묘한 불안과 결연함을 읽었다.그녀는 그가 자신을 찾은 이유는 단순한 문안 인사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하였다.소욱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본론을 꺼냈다.“어마마마를 뵙습니다. 곧 출궁할 예정이니 귀환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후궁의 일은 녕비 한 사람에게 맡길 수 없으니, 당분간 어마마께서 주관해 주십시오.”소욱이 조용히 눈빛을 보내자, 유사양이 즉시 앞으로 나와 금인을 내놓았다.탁.금인이 단단한 목제 탁자 위에 올려졌다.금인은 후궁을 총괄할 수 있는 권한의 상징이었다.이것을 손에 쥐면, 황궁 내 크고 작은 모든 일을 결정할 수 있었다.태후는 잠시 금인을 내려다보았다.그녀가 마지막으로 금인을 손에 쥐었던 것이 언제였던가?오랜 세월이 흐른 뒤, 이제 다시 그녀의 앞에 놓여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들며 황제를 바라보았다.태후는 더 혼란스러워졌다.“또 출궁한단 말이냐?”그녀는 황제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얼마 전 돌아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번에는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이냐?”그러다 문득 떠올랐다.황후… 분명 황후와 관련된 일일 터였다.태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조용히 물었다.“전에 황후와 함께 변복하고 순행했다 하였지? 하지만 돌아온 것은 너뿐이었다. 황후는 어디에 있느냐?”소욱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아주 태연하게 거짓을 입에 담았다.“궁정의 급한 사정으로 인해 제가 먼저 복귀해야 했습니다. 황후는 아직도 절 대신하여 각지를 순찰하고 있습니다. 이번 출궁도 황후를 찾기 위함입니다.”태후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그러나 직접 따져 묻지도 않았다.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무엇을 하러 가든, 몸조심하여 무사히 돌아오너라.”소욱의 발걸음이 멈칫했다.한순간 떠오른 기억.어린 시절, 태후는 그를 한없이 아꼈다.그녀는 아들을 갖지 못했지만, 그에게만큼은 모성애를 아낌없이 쏟았다.소욱은 잠시 침묵하다
남제, 자녕궁.소욱은 기다렸다.그러나 돌아온 것은 봉구안이 서여국의 황좌에 올랐다는 소문이었다.그는 믿을 수 없었다.그러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의심과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서여국을 위해 임시로 황위를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컸다.그러나 단순한 일시적인 선택이라 하더라도, 그녀가 남제의 황후라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소욱은 칼날 같은 시선을 번뜩이며 명했다.“진한길, 즉시 확인해라. 사실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와야 한다.”“예, 폐하!”진한길 역시 믿고 싶지 않았다.황후가 황제를 등지고 다른 나라를 택했다니?이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자녕궁은 묘한 적막감에 휩싸여 있었다.태후는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녀의 몸에선 점점 기력이 빠져나갔다.그날 새벽, 어의가 도착해 진맥을 하며 차분히 말했다.“태후마마, 기혈이 약해지고, 신장의 기운이 쇠약해졌습니다. 천계가 다하고, 지혈이 끊어졌습니다. 즉, 태후마마의 월경이 완전히 끊어진 것입니다.”그 순간, 태후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이것은 모든 여인이 맞닥뜨리는 운명이었다.그러나, 그녀는 이 순간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옆에서 지켜보던 녕비는 태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태후가 이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직감했다.녕비는 조용히 어의에게 눈짓을 보냈다.“물러가거라.”어의가 물러나자, 녕비는 조심스럽게 태후에게 다가갔다.“고모님…”그러나 그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태후는 녕비의 손을 붙잡았다.그 눈빛은 한없이 다정하면서도, 어딘가 깊은 슬픔이 서려 있었다.“녕비, 나는 이미 늙었단다. 하지만 너는 아직 젊구나.”녕비는 순간 당혹스러웠다.“고모님,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자녕궁에는 계 상궁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태후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는 운이 좋았단다. 나는 선제 폐하의 후궁이었지만 아들을 낳지 못했지. 그러나 현황 덕분에 태후의
서여국 국경.정국의 장군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 여자의 말이 틀리지 않다. 지금 퇴각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다.”소주의 장군은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주먹을 불끈 쥐었다.“하늘도 우리를 돕지 않는군! 서여국과 남제, 이제는 완전히 하나가 되어 버렸어!”그들은 알고 있었다.한 번이라도 출병하면, 남제의 서경군이 즉시 움직일 터였다.그렇게 되면 그들은 서여국뿐만 아니라 남제의 대군과도 맞서야 했다.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현재의 남제는 욕망을 삼키는 탐욕스러운 맹수와 같았다.그들에게 잡아먹히는 순간, 소국인 그들은 더 이상 회생할 기회조차 갖지 못할 터였다.“지금 남아 있는 국력을 유지하려면, 퇴각해야 한다.”……서여국 국경.봉구안은 아직 국경을 떠나지 않았다.밤이 깊어가자, 바람이 점점 거세졌다.호원아가 조용히 다가와 외투를 걸쳐 주었다.그러나 그녀는 멀리 어둠이 내려앉은 땅을 응시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호 장군, 솔직히 말해 주십시오. 유영 모녀가 서여국으로 돌아온 것을, 이모님께서 알고 계셨습니까?"호원아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그러나 이내 태연하게 대답했다.“폐하께서는 병환으로 인해 교외에서 요양 중이셨습니다. 무엇을 알고 계셨는지, 무엇을 모르셨는지,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그러나 봉구안의 눈빛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는 듯, 날카로운 검처럼 그를 꿰뚫었다.“호 장군, 당신은 이모의 최측근이었습니다. 이모님께서 아무것도 모르셨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호원아는 대답하지 않았다.침묵. 그것이 무엇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봉구안은 시선을 거두며 낮게 말했다.“서여국의 위기는 일단락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남제로 돌아가야 합니다.”그 말에 호원아의 눈이 커졌다.“지금 떠나신다고요?! 그러면 서여국은 다시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소주와 정국이 언제든 다시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봉구안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이 일은 남제에 계신 황제 폐하와 상의한 후 결정할 일입
서여국 황궁.봉구안이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동안, 정희는 그녀를 향해 마지막 발악을 쏟아냈다.“봉구안! 너 같은 년은 평생 아이도 못 낳을 거야!”그러나 봉구안의 발걸음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그리고…슥… 쾅!칼이 내려치며 단칼에 머리가 날아갔다.유영의 머리는 바닥을 굴러 대전의 문 앞에서 멈췄다.죽은 그녀의 눈은 여전히 황좌를 바라보고 있었다.끝까지 손에 넣지 못한 권좌를 원망하며.정희는 그 광경을 보고 몸이 얼어붙었다.“아니야…! 어머니!!”그녀는 울부짖으며 몸부림쳤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똑같은 운명이었다.“나는 잘못한 게 없어! 제발…! 모두 내 어머니 혼자서 저지른 일이란 말이야!”다급한 애원에도, 칼은 흔들림 없이 내려졌다.슥…붉은 피가 차가운 바닥을 적셨다.그녀의 눈은 끝내 감기지 않았다. 아니, 그녀는 차마 눈을 감을 수 없었다.그렇게… 두 개의 머리가 황궁 앞에 나란히 놓였다.……서여국 국경.서여국 국경에서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소주와 정국의 대군은 이미 출병 준비를 마친 후였다.늦은 밤, 정찰병이 급히 보고를 올렸다.“장군님! 서여국 황제가 승하했습니다!”“하지만 우리가 심어둔 가짜 숙연이 탄로 나서 처형을 당했습니다!”“게다가, 우리 내통자들도 모두 발각되어 처형되었습니다!”소주와 정국의 장군들은 당혹스러웠다.“가짜 숙연이 죽었다고?!”황제가 죽었다면 혼란을 틈타 쉽게 서여국을 점령할 수 있어야 했다.그러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태가 흘러가고 있었다.“하지만 상관없다.“어차피 황제가 죽었다면, 서여국을 공격할 최적의 기회다!”소주의 장군이 결정을 내리려던 찰나… 또 다른 정찰병이 급히 달려왔다.“장군님! 서여국 군을 이끄는 자는… 남제 황후인 맹 소장군이라고 합니다!”순간, 장막 안이 조용해졌다.“뭐?!”장군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그 여자가 왜 서여국에 있지?!”“말도 안 돼! 남제 황후가 어떻게 서여국 군을 지휘한단 말이냐!”정찰병이 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