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여국의 문무 대신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모신 상궁은 황제 곁에서 오래 머물렀고, 황제로부터 깊은 신임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녀가 한 말이라면 틀릴 리가 없었다.그러나 이 숙연이라 불리는 인물은 황제의 친동생이 아닌가…잠시 동안, 사람들은 어느 쪽을 믿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모신 상궁은 숙연의 신분이 가짜라고 주장했지만, 숙연은 모신 상궁을 역모로 몰아세웠다. 양쪽 모두 서로의 말을 부정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때, 봉구안이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어째서 황제께 직접 여쭙지 않는가?” 이 말이 떨어지자, 유영의 눈에 살기가 서렸다. “내 언니를 해치지 못하게 할 거야! 너희 같은 역적들이 황제를 볼 생각은 꿈도 꾸지 마!”“여봐라! 저들을 당장 체포하지 못하겠느냐!” “누구든 함부로 움직이면 상대하겠소!” 대장군 호원아가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봉구안과 모신 상궁을 감쌌다. 유영은 호원아를 꾸짖었다. “호 장군, 너마저 역모를 꾸미려는 건가!”“너희가 진상을 몰라 속은 것을 생각해 이번 한 번만 용서하겠다. 즉시 내 편에 서서 역적을 체포하라!” 그러나 호원아는 단호히 말했다. “그 누구를 벌하든지 황제의 결정에 따라야 마땅하다. 숙연, 황제는 어디에 있는가?” 유영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고, 끝까지 황제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자, 눈가에 억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좋다, 내가 말해주겠다! 황제 폐하는… 어젯밤에 이미 승하하셨다!” 그 말에 모든 대신들이 충격과 비탄에 빠졌다. “황제 폐하…!” 모신 상궁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그럴 리 없어, 황제께서 어찌…” 그녀는 황망한 눈빛으로 봉구안을 바라보며 물었다. “마마, 황제께서 정말… 정말로 돌아가신 걸까요?” 봉구안은 살기를 띤 냉정한 눈빛으로 손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그 순간, 유영은 성급히 높은 단상에 올라가 용좌에 앉았다. 그녀는 군중을 내려다보며 교만
용좌에 앉은 유영은 봉구안의 발언으로 상황이 불리해지자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오해가 있었나 보구나.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서여국의 내정 문제다. 남제는…”봉구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황제 폐하를 만나야겠습니다.”유영은 어딘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이미 말했지 않느냐? 황제께서는 이미 승하하셨다. 발상하지 않은 것은 나라가 혼란스러워질까 우려해서 외부에 알리지 않은 것 뿐. 못 믿겠다면 침전에 가 보거라. 황제께서는 이미 관에 들어가 계시니...”“뭐라고요!” 모신 상궁이 크게 외치며 흥분했다.유영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는 척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여봐라, 나는 사실을 숨기려고 한 것이 아니다. 일이 너무 급작스럽고 내우외환이 해결되지 않아 쉽게 말할 수 없었다.”“이제 모신이라는 반역자가 스스로 드러났으니, 황제께서도 하늘에서야 비로소 눈을 감으실 수 있을 것이다.”“흐윽… 언니…”유영은 눈물을 흘리자 대신들도 울음을 터트렸다.“황제 폐하!”모신 상궁은 황제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믿을 수 없어 온몸이 떨렸고, 분노와 절망에 휩싸였다.“마마! 유영의 뜻대로 되게 놔두어선 안 됩니다!”서여국의 왕좌를 그 가짜 숙연에게 넘길 수는 없었다.유영은 손을 휘저으며 봉구안을 향해 말했다.“오늘은 내 즉위식이다. 모신이 사람을 데리고 와 소란을 피우는 것은 분명히 왕좌를 노리는 행위다. 남제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 아니더냐?”그녀는 곧 모신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리려 했지만, 봉구안이 먼저 호원아에게 말했다.“호 장군, 더 말할 필요 없는 듯합니다. 저 가짜 숙연을 체포하고 황제 폐하를 구하십시오!”호원아는 성격이 단호한 인물이었다.“유영은 가짜 숙연이다. 여봐라! 지금 당장 체포하라!”호원아는 서여국의 네 대장군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장군이었고, 금군을 통솔하고 있었다.그녀의 명령이 떨어지자 금군은 바로 용좌로 돌격했다.유영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손가락으로
서여국 황궁.유영은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놓으라고! 난 황제의 친동생이야! 언니를 만나야 해! 너희, 언니를 해치려는 거지?!”“대신들이여, 어서 저들을 막아라!”“이들은 절대 선한 의도가 아니다!”하지만 조정 대신들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설령 도와주고 싶어도, 힘이 있어야 도울 수 있는 법.사대 장군이 군권을 틀어쥔 데다가, 남제의 황후까지 이곳에 있다.이들과 맞선다는 건 무모한 짓이었다.더군다나, 이 새 황제가 정말 정통성이 있는지도 미지수였다.만약 그녀가 진짜 숙연이 아니라면?그렇다면 그들은 도리어 역적을 돕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유영의 고함이 대전 안을 가득 메웠지만, 봉구안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침착하게 명령을 내렸다.“호 장군, 대전을 지켜라.”“나머지 세 장군은 각각 궁문을 지키고, 누구도 들고날 수 없게 하라.”“타국 첩자가 혼란을 틈타 침입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대비할 것이다.”“모 상궁은 몇몇 중신들을 데리고 나와 함께 폐하를 뵈러 가야겠다.”“명 받들겠습니다!”호원아와 모신이 즉시 응답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문무백관들은 더욱 혼란에 빠졌다.여기는 서여국인데, 어째서 남제의 황후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명령을 내리는 것인가?더군다나, 호원아와 모신은 어쩌면 저리도 봉구안의 말을 따르는 것인가?봉구안이 걸음을 옮기자 유영은 필사적으로 외쳤다.“나도 갈 거야! 언니를 만나야 해!”“난 서여국의 공주란 말이야!”그녀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어떻게든 이 속박에서 벗어나 먼저 황제를 죽여야 했다.어디서 잘못된 걸까?어젯밤, 분명 숙천설의 숨결을 확인했을 때, 한 점의 기척도 없었다.태의 또한 맥을 짚어보았고, 완전히 죽었다고 단언했다.그런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유영은 이를 갈며 후회했다.어젯밤, 황제의 시신에 몇 번 더 칼을 꽂았어야 했다고.호원아는 냉정한 눈빛으로 봉구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리고 곧바로 유영을 내려
서여국 황궁.“폐하! 소주와 정국이 서여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어찌 우리를 두고 떠나려 하십니까!”“폐하, 부디 기운을 내십시오! 서여국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쾌차하셔야 합니다!”“폐하, 신이 무능하여 구원하고자 하였으나 너무 늦었습니다! 제발, 저희에게 마지막으로 알려주십시오. 저 유영이 정말 숙연 대인이십니까?”침상 위, 황제의 두 눈은 깊게 패이고, 입술은 핏기 없이 창백했다.하얀 옷자락은 마치 수의처럼 느껴졌고, 그녀의 몸에서는 서서히 죽음의 기운이 감돌았다.하지만 그녀는 마지막 힘을 다해 입을 열었다.“유영… 저 자는 숙연이 아니다. 저 자가… 서여국을 어지럽히지 못하게 하라…”황제는 마지막 말을 내뱉자마자 온 힘이 빠진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고, 가느다란 목이 휘청이며 들썩였다.마치 몸속의 혼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몸짓이었다.대신들은 분노로 이를 갈았다.“폐하, 안심하십시오! 저희가 결코 그 가짜 숙연을 용납하지 않겠습니다!”“그래! 그 자를 당장 처단해야 합니다! 폐하를 속이고, 이 지경까지 몰아넣다니! 그 죄는 만 번을 죽어도 모자랍니다!”하지만 황제의 숨은 점점 희미해졌다.생기가 사라져 가는 눈동자가 신하들을 훑었고, 끝내 봉구안에게 닿았다.침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 조용히 서 있던 봉구안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그녀의 눈동자는 깊은 심연과도 같아,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없을 만큼 차갑고도 깊었다.그러나 황제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두 사람 사이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오갔다.말 한마디 없어도, 서로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전해지는 듯했다.그때, 모신 상궁이 나섰다.“대신들께서는 이미 진실을 아셨으니, 어서 대전으로 가셔서 그 가짜 숙연을 단죄해 주십시오!”“하지만 폐하께서…”모신 상궁의 목소리가 더욱 다급해졌다.“남제 황후께서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서여국까지 오신 것은 중요한 국사를 논하기 위함입니다.”“부디 잠시라도 황제 폐하와
유영은 궁 안이 혼란에 휩싸이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정희에게 달려갔다.“너희 이모는 어떻게 됐느냐!”정희는 황급히 대답했다.“어머니, 폐하께서… 승하하셨어요.”그녀는 어머니가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그 여자, 분명 어젯밤에 이미 죽지 않았던가.지금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정희는 급히 본론을 꺼냈다.“어머니! 침궁에 누군가 침입했어요! 그들이 저를 기절시켰어요! 빨리 금군을 보내서 그들을 잡아야 해요!”정희는 전각에서 깨어났을 때, 많은 병사들의 발소리와 내전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란만을 감지했다.누가 그녀를 쓰러뜨렸는지, 내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그저 본능적으로 도망쳐 도움을 요청하려 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유영은 그 말을 듣고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황제가 어젯밤 죽었고, 되살아난 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속은 것이 아니었다!그렇다면 황제가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은 거짓이었던 것이다.그녀를 속여 방심하게 만들려는 계략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하였다.“흥! 감히 날 속이려 들어?”황제가 완전히 죽었다면, 이제 누가 그녀가 ‘숙연’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한편, 봉 부인이 서여국 황궁에 도착했을 때, 그녀가 마주한 것은 차가운 시신뿐이었다.봉구안은 이미 대신들을 다른 전각으로 보냈고, 침궁에는 모신 상궁만이 남아 있었다.모신 상궁은 봉 부인의 곁을 조용히 지키며, 쓰러질 듯 흔들리는 그녀를 부축했다.“대인… 적어도 황제 폐하께서는 마지막 순간에 대인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폐하께서는 후회 없이 떠나셨을 것입니다.”봉 부인은 떨리는 손으로 입을 가렸지만,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그녀는 말없이 흐느꼈다.비록 늦게서야 자매의 인연을 되찾았지만, 가족 간의 정은 타고난 것이며, 피 속에 새겨진 유대였다.피붙이의 죽음은, 그녀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강인한 가면을 무너뜨렸다.쿵!그녀는 힘없이 침상 곁에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얼어붙은
남제 황궁.소욱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평소 같았으면 무심히 지나쳤을 감정이었지만, 지금은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그는 억지로 상서문을 끝까지 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는 발걸음을 영화궁으로 옮겼다.유사양이 곧바로 그 뒤를 따랐다.그는 황제의 얼굴을 살피며 황제가 국사로 인해 걱정하는 줄 알았고, 눈치껏 내전의 궁녀들을 물렸다.소욱은 의자에 앉아 오랫동안 침묵했다.만약 자신이 황제가 아니었다면, 지금 당장 서여국으로 가서 그녀를 데려왔을 터였다…서여국 황궁.봉구안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한쪽은 남제 황후로서의 신분. 그리고 다른 한쪽은 황실이 무너질 위기에 놓인 서여국.그녀는 알고 있었다.자신은 남제 황후였다.그런 그녀가 서여국에 남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하지만, 서여국은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적국이 눈앞에 닥친 이 시점에서, 그녀가 어머니를 데리고 떠난다면…서여국은 버텨낼 수 있을까?그녀의 마음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이유였다.편전 안, 오양련과 호원아가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전각 밖에서도 수많은 대신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그들은 한 목소리로 외쳤다.“새 황제 폐하를 모십니다!”봉구안은 깊은 눈빛으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일단 모두 일어나거라.”“이런 식으로 나에게 황제의 자리를 강요하지 말거라.”그러나 호원아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서여국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폐하께서 직접 지목하신 황위 계승자는 마마이십니다! 만약 마마께서 떠나신다면, 서여국은 그야말로 풍전등화가 될 것입니다!”봉구안은 단호하게 말했다.“서여국이 지금까지 강성할 수 있었던 것은 황제 한 사람의 공이 아니다. 백성들이, 그리고 신하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나라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전쟁 역시 자네들이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호원아는 굴하지 않았다.“폐하께서 돌아가시고, 군심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 적국은 확실한 준비를 하고
봉구안에게 서여국은 결코 남제만큼 가까운 나라가 아니었다.그녀는 남제에서 태어나 자랐고, 남제의 군인이었다.그녀의 가족, 친구, 그리고 모든 삶이 남제에 있었다.지금 그녀는 남제의 황후였다.만약 그녀가 혼자라면, 서여국에 남을 수도 있었다.그러나 남제에는 그녀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다.그녀의 남편, 그녀의 스승과 사모님, 그리고 봉장미…하지만 서여국을 완전히 외면할 수도 없었다.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외가가 이 나라에서 피를 이어왔고, 공적으로는 서여국 같은 나라가 필요했다.지금의 세상에서, 서여국은 여성들에게 더 나은 삶을 보장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였다.그 나라가 사라진다면, 앞으로 어떤 희망도 없을 것이다.더욱이, 소국인 소주와 정국이 북연과 손잡고 서여국을 나눠 가지게 된다면, 남제의 서경에도 위협이 될 것이 분명했다.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서여국을 위해 싸울 것이다. 하지만 황위는 절대 맡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하루속히 서여국에서 새로운 군주가 될 자를 찾거라.”오양련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였다.“아가… 네가 어찌…”옆에 있던 호원아는 서둘러 오양련의 팔을 붙잡았다.그런 뒤,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봉구안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오양련의 예상대로 황제가 승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서여국 곳곳에서 야심가들이 움직였다.누구도 이 혼란을 그냥 넘길 생각이 없었다.권력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세력이 물밑에서 충돌하고 있었다.상인들은 이미 정국과 소주가 서여국을 침공할 것이라 예상하며 전쟁 준비로 분주했고, 백성들은 황제가 떠난 혼란 속에서 불안에 떨고 있었다.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가장 두려워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바로 정희였다.서여국 황궁 대전 앞.정희와 그녀의 어머니, 유영은 손과 발이 묶인 채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그녀는 두려웠다.죽고 싶지 않았다.독을 마셨을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어머니가 황제가 될 것이고, 그 후에는 해독제를 받아 건강
서여국 황궁.봉구안이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동안, 정희는 그녀를 향해 마지막 발악을 쏟아냈다.“봉구안! 너 같은 년은 평생 아이도 못 낳을 거야!”그러나 봉구안의 발걸음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그리고…슥… 쾅!칼이 내려치며 단칼에 머리가 날아갔다.유영의 머리는 바닥을 굴러 대전의 문 앞에서 멈췄다.죽은 그녀의 눈은 여전히 황좌를 바라보고 있었다.끝까지 손에 넣지 못한 권좌를 원망하며.정희는 그 광경을 보고 몸이 얼어붙었다.“아니야…! 어머니!!”그녀는 울부짖으며 몸부림쳤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똑같은 운명이었다.“나는 잘못한 게 없어! 제발…! 모두 내 어머니 혼자서 저지른 일이란 말이야!”다급한 애원에도, 칼은 흔들림 없이 내려졌다.슥…붉은 피가 차가운 바닥을 적셨다.그녀의 눈은 끝내 감기지 않았다. 아니, 그녀는 차마 눈을 감을 수 없었다.그렇게… 두 개의 머리가 황궁 앞에 나란히 놓였다.……서여국 국경.서여국 국경에서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소주와 정국의 대군은 이미 출병 준비를 마친 후였다.늦은 밤, 정찰병이 급히 보고를 올렸다.“장군님! 서여국 황제가 승하했습니다!”“하지만 우리가 심어둔 가짜 숙연이 탄로 나서 처형을 당했습니다!”“게다가, 우리 내통자들도 모두 발각되어 처형되었습니다!”소주와 정국의 장군들은 당혹스러웠다.“가짜 숙연이 죽었다고?!”황제가 죽었다면 혼란을 틈타 쉽게 서여국을 점령할 수 있어야 했다.그러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태가 흘러가고 있었다.“하지만 상관없다.“어차피 황제가 죽었다면, 서여국을 공격할 최적의 기회다!”소주의 장군이 결정을 내리려던 찰나… 또 다른 정찰병이 급히 달려왔다.“장군님! 서여국 군을 이끄는 자는… 남제 황후인 맹 소장군이라고 합니다!”순간, 장막 안이 조용해졌다.“뭐?!”장군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그 여자가 왜 서여국에 있지?!”“말도 안 돼! 남제 황후가 어떻게 서여국 군을 지휘한단 말이냐!”정찰병이 숨을
소욱은 한참을 고민한 끝에 신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남제가 북연과 다른 나라들을 정복할 수 있다면, 서여국만큼은 내가 지키도록 하마.”“하지만 내가 막는다고 해서, 후대 황제들이 이를 탐내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서여국이 남제와 대등할 만큼 강해지지 않는다면, 결국 남제에 종속될 수밖에 없겠지.”“십 년 내에 스스로 강해지지 않는다면, 서여국의 멸망은 시간문제일 것이다.”“그 원인이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겠지.”그의 말은 완곡했지만, 본질적으로는 분명한 경고였다.그녀를 사랑하는 한, 서여국을 위해 힘을 쏟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남제와 서여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는 서여국을 포기할 생각이었다.허나 오직 서여국이 강해져야만 남제의 야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소욱은 말을 마치고, 혹여나 그녀가 화를 낼까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가락에 깍지를 끼웠다.“구안아, 미안하다.”“내가 남제의 힘을 서여국을 위해 기꺼이 소모하겠다고는 약속할 수 없겠구나.”봉구안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알고 있습니다.”“애초에 제가 원한 것도 그런 약속은 아니었어요.”“다만, 저와 서여국의 관계를 떠나서 지금 남제와 서여국이 맞서 싸우는 것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닙니다.”“첫째, 북연과 동산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저희는 협력해야 합니다.”“둘째, 서여국은 여성 중심 사회입니다. 남제가 정복한다 해도, 제대로 다스리긴 어려울 겁니다.”소욱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걱정 마라.”“지금 당장은 서여국을 공격할 생각이 없다.”“하지만 네가 서여국을 지키고 싶다면, 반드시 강한 나라로 만들도록 해라.”봉구안은 가볍게 웃었다.‘이게 바로 내가 아는 소욱이지.’그가 '황부' 운운하며 장난을 치던 모습과는 달리, 지금의 그는 본래의 날카로운 본능을 드러내고 있었다.……오랜만에 재회한 두 사람은 서로를 더욱 갈망하고 있었다.봉구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먼 길을 오셨는데, 배고프지 않
봉구안은 방금 들은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소욱이… 자신의 황부가 되겠다고?“지금 진심으로 말씀하시는 겁니까?”예상치 못한 말에 그녀는 얼떨떨했다.그러나 소욱의 표정은 농담이 아니었다.“널 찾으러 오기 전에,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다.”“남제와 서여국은 결국 하나가 될 것이다.”“그렇다면, 나는 단지 너를 따라 처가에 몇 년 머무는 것뿐이지 않겠느냐.”“소주와 정국을 완전히 복속시키고 나면…”“처가요?”봉구안은 어이가 없어 그의 말을 끊었다.“그걸 혼인 후 친정에 가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겁니까?”소욱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이쯤 되면, 황제가 바쁜 정무에 치여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었다.그러나 소욱은 변함없이 단호했다.“내 말은 전부 진심이다. 결국, 네 선택은 두 가지뿐이다. 이제 결정하거라.”봉구안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듣자 하니, 폐하께서는 저를 몰아세워 선택을 강요하고 계시는군요.”“그리고 황부라니… 설마 제가 그걸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소욱은 곧장 미간을 좁혔다.“그럼, 네 계획은 무엇이냐?”“설마 서여국에서 다른 사내를 황부로 세울 생각인 것이냐?”같은 주제를 두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대화였다.봉구안은 이마를 짚으며 피곤한 기색을 드러냈다.“소욱… 아니 폐하 그만하세요.”그녀는 화가 나서 그의 이름을 그대로 불렀다.이미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소욱이 터무니없는 논리로 몰아붙이니 더 이상 감정을 다스릴 힘조차 없었다.그러나 소욱은 그녀의 손을 단단히 잡으며, 진심이 담긴 눈빛을 보냈다.“구안아, 너는 내게 미안해할 필요 없어.”“남제는 이미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당분간 큰 위기는 없을 것이다.”“오히려, 서여국이 소주와 정국을 평정하고 남제와 연합하여 북연을 견제한다면, 우리는 더욱 강력한 동맹이 될 수 있다.”“그렇다면, 내가 너를 따라 서여국으로 가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너는 황제
문이 열리자, 예상대로 소욱이 서 있었다.봉구안은 손에 쥐고 있던 단도를 내려놓고, 흔들림 없는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소욱 역시 단 한순간도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마치, 조금이라도 눈을 돌리면 그녀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원래대로라면 그는 곧장 서여국으로 향해야 했다.하지만 은위로부터 그녀가 남제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 없이 이곳으로 발길을 돌렸다.다행히도, 눈보라가 그녀를 붙잡아 두었다.“부인…”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다.그래서 호칭을 바꿨지만, 담긴 감정만큼은 그대로였다.봉구안은 방 안에 외부인이 있는 만큼, 소욱을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그리고 오백에게 계속 감시를 맡긴 뒤, 객잔 주인에게 은화 한 덩이를 건넸다.주인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오늘 밤, 자신이 본 것도, 들은 것도… 그 무엇도 기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방 안으로 들어서고 문이 닫히자마자, 소욱이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그의 외투는 눈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축축한 모피 깃이 목덜미에 닿자 싸늘한 감촉이 전해졌다.봉구안은 그를 가볍게 밀어내고, 손수건을 꺼내 눈을 닦아주었다.“어찌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눈보라가 심한데, 몸은 괜찮으십니까?”소욱은 심한 눈 공포증을 앓고 있었다.그런데도 이 험한 날씨를 뚫고 직접 찾아오다니… 그녀는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소욱이 그녀의 손목을 조용히 잡았다.그의 눈빛에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서려 있었다.“나는 괜찮다.”“그보다… 서여국의 일은 어떻게 된 것이냐? 너 정말…”그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하지만 봉구안이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답이 되지 않을까.그녀가 선택한 것은 서여국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었다.그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소욱은 다시 한 번 그녀를 끌어안으며 낮게 속삭였다.“구안아, 너는 언제까지나 내 황후다.”봉구안은 그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음을 직감했다.“서여국의 이야기는 차근차근 말씀드리겠습니다
약 거래.봉구안이 오랫동안 추적해 온 사건이었다.하지만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 채, 막다른 길에 부딪히고 있었다.그런데 이런 작은 객잔에서 뜻밖의 단서를 발견하게 될 줄이야.봉구안의 시선이 날카롭게 번뜩였다.장사꾼은 그들의 반응을 살폈다.이제야 상자 속의 물건이 무엇인지 알게 된 듯한 모습이었다.그럼 됐다.어떤 말은 해야 하고, 어떤 말은 삼켜야 하는지… 이제야 감이 잡혔다.“당신들, 대체 누구야! 약쟁이이라니, 무슨 헛소리야! 나는 표사야! 저건 내가 다른 도시에 옮겨 치료받게 할 환자일 뿐이라고!”“크읏!”갑자기 목이 조여왔다.숨이 턱 막히는 순간,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살기가 서린 차가운 눈빛.그 순간, 장사꾼은 확신했다.이 여인은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존재였다.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 한마디 없이 말이다.……밤이 길었다.동이 틀 무렵, 객잔 주인이 따뜻한 물을 들고 객잔의 각 방을 돌았다.그러다 한 방 앞에 섰을 때, 문이 열렸다.그런데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문틈으로 보이는 차가운 입술.객잔 주인은 순간적으로 피비린내를 맡았다.착각인가?하지만 곧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이곳은 외진 곳에 있는 객잔. 별의별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었다.굳이 나설 필요는 없었다.객잔 주인은 재빨리 몸을 돌려 떠났다.방 안에는 두 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그리고, 침대 위. 한 명의 장사꾼이 손발이 묶인 채 웅크리고 있었다.봉구안은 책상에 앉아, 피가 묻은 단도를 천천히 닦고 있었다.창문 너머로 희미하게 새어드는 새벽빛. 하지만 그녀의 분위기는 여전히 어둡고 깊었다.장사꾼은 겁에 질려 눈을 질끈 감았다.입에 재갈이 물려 있어, 흐느끼는 듯한 소리만 새어 나왔다.오백은 침대 옆에 서서 검을 안은 채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그의 발밑에는 나무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그 안에는 약쟁이가 들어있었다.위험한 존재였다.당장 풀어둘 수도 없었다.봉구안은
”마마, 며칠째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길을 나설 수가 없습니다. 백 리 안에서는 이 객잔 하나밖에 찾지 못했습니다.”오백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고, 봉구안은 말의 고삐를 쥐고 뒤따랐다.눈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한 손으로 고삐를 잡고, 다른 손으로 얼굴을 가려도 소용없었다. 눈발이 매섭게 얼굴을 후려치고,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얼렸다.객잔에 들어서자마자 싸늘하게 식었던 몸이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어서 오십시오!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끼니만 드실 건가요, 아니면 방을 잡으시겠습니까?”객잔 주인이 따뜻한 차를 들고 다가와 물었다.“방을 잡지. 두 개. 그리고 술 두 병에 소고기 네 근을 내오도록 하거라.”봉구안은 털썩 자리에 앉으며 머리카락에 묻은 눈을 털어냈다.“알겠습니다, 나리!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객잔 주인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이곳에는 봉구안 일행뿐만 아니라 몇몇 장사꾼들도 폭설에 발이 묶여 있었다.그들은 마차 가득 물건을 싣고 길을 떠나야 했기에, 봉구안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장사꾼들은 둥글게 둘러앉아 술을 마시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대체 이 눈이 언제 멈출까? 이번 물건을 제때 배달하지 못하면 큰 손해를 보게 생겼어.”“그러게 말이야. 올겨울 교역이 활발해 한몫 잡으려 했는데, 이런 날씨라니. 하늘도 참 야속하군.”봉구안도 이 눈이 빨리 그치길 바랐다.서여국의 문제를 하루라도 빨리 소욱과 상의해야 했다.오백은 마구간으로 가서 직접 말에게 먹이를 주고 난 뒤, 본능적으로 뒤뜰을 한 바퀴 돌았다. 돌아와서는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마마, 저 장사꾼들이 가져온 짐에는 별다른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봉구안은 무심히 장사꾼들을 흘겨보고는 오백에게 말했다.“이만 너도 앉아서 쉬거라. 음식도 좀 먹고…”밖에서는 여전히 거센 눈보라가 창문을 때렸다.밤이 깊었지만, 봉구안은 마음이 복잡해 쉽게 잠들지 못했다.추운 날씨 때문인지 몸도 으슬으슬 떨렸다.그때, 문득 소욱의 모습이 떠올랐다.그가 자신의 차가운
자녕궁.태후는 황제를 바라보았다.그의 눈빛에서 묘한 불안과 결연함을 읽었다.그녀는 그가 자신을 찾은 이유는 단순한 문안 인사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하였다.소욱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본론을 꺼냈다.“어마마마를 뵙습니다. 곧 출궁할 예정이니 귀환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후궁의 일은 녕비 한 사람에게 맡길 수 없으니, 당분간 어마마께서 주관해 주십시오.”소욱이 조용히 눈빛을 보내자, 유사양이 즉시 앞으로 나와 금인을 내놓았다.탁.금인이 단단한 목제 탁자 위에 올려졌다.금인은 후궁을 총괄할 수 있는 권한의 상징이었다.이것을 손에 쥐면, 황궁 내 크고 작은 모든 일을 결정할 수 있었다.태후는 잠시 금인을 내려다보았다.그녀가 마지막으로 금인을 손에 쥐었던 것이 언제였던가?오랜 세월이 흐른 뒤, 이제 다시 그녀의 앞에 놓여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들며 황제를 바라보았다.태후는 더 혼란스러워졌다.“또 출궁한단 말이냐?”그녀는 황제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얼마 전 돌아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번에는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이냐?”그러다 문득 떠올랐다.황후… 분명 황후와 관련된 일일 터였다.태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조용히 물었다.“전에 황후와 함께 변복하고 순행했다 하였지? 하지만 돌아온 것은 너뿐이었다. 황후는 어디에 있느냐?”소욱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아주 태연하게 거짓을 입에 담았다.“궁정의 급한 사정으로 인해 제가 먼저 복귀해야 했습니다. 황후는 아직도 절 대신하여 각지를 순찰하고 있습니다. 이번 출궁도 황후를 찾기 위함입니다.”태후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그러나 직접 따져 묻지도 않았다.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무엇을 하러 가든, 몸조심하여 무사히 돌아오너라.”소욱의 발걸음이 멈칫했다.한순간 떠오른 기억.어린 시절, 태후는 그를 한없이 아꼈다.그녀는 아들을 갖지 못했지만, 그에게만큼은 모성애를 아낌없이 쏟았다.소욱은 잠시 침묵하다
남제, 자녕궁.소욱은 기다렸다.그러나 돌아온 것은 봉구안이 서여국의 황좌에 올랐다는 소문이었다.그는 믿을 수 없었다.그러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의심과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서여국을 위해 임시로 황위를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컸다.그러나 단순한 일시적인 선택이라 하더라도, 그녀가 남제의 황후라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소욱은 칼날 같은 시선을 번뜩이며 명했다.“진한길, 즉시 확인해라. 사실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와야 한다.”“예, 폐하!”진한길 역시 믿고 싶지 않았다.황후가 황제를 등지고 다른 나라를 택했다니?이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자녕궁은 묘한 적막감에 휩싸여 있었다.태후는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녀의 몸에선 점점 기력이 빠져나갔다.그날 새벽, 어의가 도착해 진맥을 하며 차분히 말했다.“태후마마, 기혈이 약해지고, 신장의 기운이 쇠약해졌습니다. 천계가 다하고, 지혈이 끊어졌습니다. 즉, 태후마마의 월경이 완전히 끊어진 것입니다.”그 순간, 태후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이것은 모든 여인이 맞닥뜨리는 운명이었다.그러나, 그녀는 이 순간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옆에서 지켜보던 녕비는 태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태후가 이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직감했다.녕비는 조용히 어의에게 눈짓을 보냈다.“물러가거라.”어의가 물러나자, 녕비는 조심스럽게 태후에게 다가갔다.“고모님…”그러나 그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태후는 녕비의 손을 붙잡았다.그 눈빛은 한없이 다정하면서도, 어딘가 깊은 슬픔이 서려 있었다.“녕비, 나는 이미 늙었단다. 하지만 너는 아직 젊구나.”녕비는 순간 당혹스러웠다.“고모님,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자녕궁에는 계 상궁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태후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는 운이 좋았단다. 나는 선제 폐하의 후궁이었지만 아들을 낳지 못했지. 그러나 현황 덕분에 태후의
서여국 국경.정국의 장군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 여자의 말이 틀리지 않다. 지금 퇴각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다.”소주의 장군은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주먹을 불끈 쥐었다.“하늘도 우리를 돕지 않는군! 서여국과 남제, 이제는 완전히 하나가 되어 버렸어!”그들은 알고 있었다.한 번이라도 출병하면, 남제의 서경군이 즉시 움직일 터였다.그렇게 되면 그들은 서여국뿐만 아니라 남제의 대군과도 맞서야 했다.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현재의 남제는 욕망을 삼키는 탐욕스러운 맹수와 같았다.그들에게 잡아먹히는 순간, 소국인 그들은 더 이상 회생할 기회조차 갖지 못할 터였다.“지금 남아 있는 국력을 유지하려면, 퇴각해야 한다.”……서여국 국경.봉구안은 아직 국경을 떠나지 않았다.밤이 깊어가자, 바람이 점점 거세졌다.호원아가 조용히 다가와 외투를 걸쳐 주었다.그러나 그녀는 멀리 어둠이 내려앉은 땅을 응시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호 장군, 솔직히 말해 주십시오. 유영 모녀가 서여국으로 돌아온 것을, 이모님께서 알고 계셨습니까?"호원아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그러나 이내 태연하게 대답했다.“폐하께서는 병환으로 인해 교외에서 요양 중이셨습니다. 무엇을 알고 계셨는지, 무엇을 모르셨는지,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그러나 봉구안의 눈빛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는 듯, 날카로운 검처럼 그를 꿰뚫었다.“호 장군, 당신은 이모의 최측근이었습니다. 이모님께서 아무것도 모르셨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호원아는 대답하지 않았다.침묵. 그것이 무엇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봉구안은 시선을 거두며 낮게 말했다.“서여국의 위기는 일단락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남제로 돌아가야 합니다.”그 말에 호원아의 눈이 커졌다.“지금 떠나신다고요?! 그러면 서여국은 다시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소주와 정국이 언제든 다시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봉구안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이 일은 남제에 계신 황제 폐하와 상의한 후 결정할 일입
서여국 황궁.봉구안이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동안, 정희는 그녀를 향해 마지막 발악을 쏟아냈다.“봉구안! 너 같은 년은 평생 아이도 못 낳을 거야!”그러나 봉구안의 발걸음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그리고…슥… 쾅!칼이 내려치며 단칼에 머리가 날아갔다.유영의 머리는 바닥을 굴러 대전의 문 앞에서 멈췄다.죽은 그녀의 눈은 여전히 황좌를 바라보고 있었다.끝까지 손에 넣지 못한 권좌를 원망하며.정희는 그 광경을 보고 몸이 얼어붙었다.“아니야…! 어머니!!”그녀는 울부짖으며 몸부림쳤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똑같은 운명이었다.“나는 잘못한 게 없어! 제발…! 모두 내 어머니 혼자서 저지른 일이란 말이야!”다급한 애원에도, 칼은 흔들림 없이 내려졌다.슥…붉은 피가 차가운 바닥을 적셨다.그녀의 눈은 끝내 감기지 않았다. 아니, 그녀는 차마 눈을 감을 수 없었다.그렇게… 두 개의 머리가 황궁 앞에 나란히 놓였다.……서여국 국경.서여국 국경에서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소주와 정국의 대군은 이미 출병 준비를 마친 후였다.늦은 밤, 정찰병이 급히 보고를 올렸다.“장군님! 서여국 황제가 승하했습니다!”“하지만 우리가 심어둔 가짜 숙연이 탄로 나서 처형을 당했습니다!”“게다가, 우리 내통자들도 모두 발각되어 처형되었습니다!”소주와 정국의 장군들은 당혹스러웠다.“가짜 숙연이 죽었다고?!”황제가 죽었다면 혼란을 틈타 쉽게 서여국을 점령할 수 있어야 했다.그러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태가 흘러가고 있었다.“하지만 상관없다.“어차피 황제가 죽었다면, 서여국을 공격할 최적의 기회다!”소주의 장군이 결정을 내리려던 찰나… 또 다른 정찰병이 급히 달려왔다.“장군님! 서여국 군을 이끄는 자는… 남제 황후인 맹 소장군이라고 합니다!”순간, 장막 안이 조용해졌다.“뭐?!”장군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그 여자가 왜 서여국에 있지?!”“말도 안 돼! 남제 황후가 어떻게 서여국 군을 지휘한단 말이냐!”정찰병이 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