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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8화

Author: 일설연우
봉구안은 황성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숙연과 관련된 진실을 밝혀야 했기 때문이다.

소욱 역시 국사를 돌봐야 했기에,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갈라섰다.

황성

그날, 유영 모녀는 사신 자격으로 황성에 도착했다.

객잔에 머물며 휴식을 취하던 그들은 다음 날, 뜻밖의 사건을 맞닥뜨렸다.

이른 아침, 정희가 황급히 뛰어와 다급하게 외쳤다.

“어머니! 어머니! 사람들이 다 사라졌어요!”

유영은 눈을 크게 떴다.

그들과 함께 온 사신단에는 남제의 대신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한순간에 모두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유영은 급히 숙소 곳곳을 살폈다.

그러나 방문을 열어볼 때마다 마주하는 건 텅 빈 방뿐이었다.

정희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어머니, 혹시 우리가 간첩으로 몰려 잡혀간 건 아닐까요?”

유영은 숨을 고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럴 리 없다.”

서여국과 남제는 동맹을 맺은 나라였다.

남제가 사신단을 함부로 대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

“관청에 가야겠다. 당장 신고하러 가자.”

관청

관청의 아전은 유영 모녀를 이당으로 안내했다.

이당은 심문을 벌이는 대당과 달리, 관리가 일반적인 업무를 보거나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었다.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사적인 곳이기에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합했다.

관원들은 유영이 서여국의 특사라고 하자, 급히 응대하면서도 속으로 의아해했다.

‘서여국에서 사신이 온다고 한 적이 없는데…?’

관청 측은 그녀에게 국서와 통관 문서를 제출해 신분을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유영은 답답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제게 그런 것이 있었다면, 애초에 이곳까지 오지 않았겠죠! 국서와 문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서여국에서 출발할 때, 대신들이 국서를 잃어버릴까 염려해 그녀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보관했던 것이다.

이 순간, 유영의 머릿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그들이 서여국을 위협하려는 간첩이었던 건 아닐까?’

관청 측은 그녀가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자 즉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 일은 상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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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09화

    유영은 서여국 사신 자격으로 입궁해 황제를 알현하고자 했다.그러나 황제와 황후는 외출 중이었고, 아직 궁으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궁인들은 즉시 이를 상부에 보고했다.궁 안.황후가 부재한 궁에서는 녕비가 후궁의 대소사를 총괄하고 있었다.“서여국 사신이 찾아왔다고?”소식을 들은 그녀의 표정이 단숨에 굳어졌다.그녀는 후궁의 일만 맡을 뿐, 국사에는 개입한 적이 없었다.‘이런 큰 상황을 내가 처리할 수는 없어.’ “당장 서왕 전화를 모셔오거라!”그녀는 최근 며칠간 겨우 여유를 찾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사신이 찾아오다니.또다시 궁중 연회를 준비하고 사신을 접대해야 한단 말인가?생각할수록 짜증이 치밀었다.이럴 때 황후가 없다는 게 원망스러웠다.‘이 궁궐이란 곳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구나!’서왕 역시 서여국에서 사신이 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그는 직접 나서서 유영을 접견했다.유영은 초조한 얼굴로 자신이 겪은 일을 설명했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어디까지나 일방적인 주장일 뿐,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그럼에도 서왕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즉시 사람을 보내 실종된 사신단을 찾도록 명령했다.그제야 유영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그녀가 애타게 찾고 있는 사신들은 이미 이른 새벽에 성을 빠져나갔으며, 빠르게 말을 달려 이제는 황성에서 이백 리나 떨어진 곳까지 달아났다는 사실을 말이다.……밤이 깊어가고 있었다.서왕부완부옥은 대문 앞에 서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서왕이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 걸음을 멈추며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그 단아하고 정숙하던 여인이 정말 완부옥이 맞단 말인가?"전하~”완부옥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마치 사람의 혼을 빼앗을 듯한 요녀와도 같았다.방심한 순간, 그녀에게 푹 빠져 모든 걸 잃어버릴 것만 같은 기이한 매력이 있었다.서왕은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품었다.더군다나 그는 정충에 걸려 있었기에 그녀와 거리를 유지해야만 했다.하지만 완부옥은 더욱 매혹적인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10화

    “콱!”완부옥의 바늘이 서왕의 몸을 찌르는 순간, 그의 몸속에 있던 정충이 폭발하였다. 곧바로 서왕의 몸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서왕은 순간적으로 극심한 고통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마치 몇 달 동안 짓눌려 있던 무거운 짐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한 해방감이 밀려왔다.정충이… 드디어 사라졌다.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던 독이 이렇게 쉽게…그러나 바로 그때, 눈앞에서 완부옥이 마른 낙엽처럼 휘청이더니 앞으로 쓰러졌다.서왕은 즉시 그녀를 부축하며 눈살을 찌푸렸다.“무슨 일이냐?”방금 전까지 멀쩡하지 않았던가?그녀를 내려다보니 얼굴이 창백했고, 입술 사이로 아픈 신음이 새어 나왔다.그제야 서왕은 깨달았다. 부작용이었다.정충을 심으려면 반드시 자신의 몸에도 ‘모충’을 함께 심어야 한다.그런데 이제 그의 몸속에 있던 ‘자충’이 사라졌으니, 그녀가 무사할 리가 없었다.하지만 서왕은 정충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녀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목숨에 지장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그는 주저 없이 명을 내렸다.“유화! 어의를 불러...”“그럴 필요 없어요.”서왕이 의사를 부르려 하자, 완부옥이 힘겹게 그를 저지했다.여전히 그의 품에 기대어,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한 고통을 애써 참으며 말했다.“그냥… 저를 눕혀 주세요. 잠깐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서왕은 마지못해 그녀의 뜻을 따랐다.완부옥은 자리에 눕자, 겨우 숨을 고를 수 있었다.그녀는 서왕을 올려다보더니,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아직도 옷 안 입으셨어요? 저를 유혹하려고 그러시는 건 아니죠?”“…!”순간, 그의 몸이 굳었다.그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빠르게 장막 밖으로 나가, 옆에 걸려 있던 옷을 주워들었다. 한 겹 한 겹 옷을 입는 손길이 빠르면서도 능숙했지만, 귓불이 살짝 붉게 물들어져 있었다.그가 옷을 정리하는 동안, 완부옥은 아픈 감각을 잊으려는 듯 흐릿한 눈빛으로 과거를 떠올렸다.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어머니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11화

    서왕은 곧장 완부옥이 원하는 여자를 불러들였다. 그녀는 서왕부에서 일하는 여종이었다.그는 방 밖에서 한참 동안 떠나지 못했다.한 시진 후.안에서 물을 가져오라는 소리가 들렸다.이내 문이 열리고, 여종이 조심스레 나왔다.서왕은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들고 나온 것은 커다란 대야, 그 안에는 새빨간 핏물이 가득했다.서왕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부인은 괜찮느냐?”정충을 해독하려면 사람과 동침하는 것이 전부일 터.그런데, 이 많은 피는 대체…?여종은 겁에 질린 듯 몸을 떨며 대답했다.“부인께서… 너무 많은 피를 흘리셨습니다. 소첩은 부인의 옷을 갈아입히고, 목욕을 도와드렸을 뿐입니다…”서왕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이 여종은… 어디까지가 진실을 말하는 것인가.“정말로 목욕만 시킨 것이냐?”여종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렇습니다.”서왕의 미간이 깊이 찌푸려졌다.완부옥이 ‘여자를 데려오라’고 했던 말이… 해독과는 다른 의미였던 것인가?그 순간,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방 안에는 강렬한 피비린내가 가득했다.그리고 욕조 안, 젖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앉아 있는 완부옥이 있었다.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그러나 서왕의 발소리가 들리자마자,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촉촉한 눈동자가 가볍게 일렁였다.“무슨 일이세요? 제가 죽었는지 확인하러 오신 건가요?”그녀의 창백한 얼굴과 힘없는 목소리는, 살아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오히려 유령처럼 보였다.서왕은 차갑게 말했다.“대체 여종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완부옥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그저… 저를 도와 몸 속 독들을 빼달라고 했을 뿐이예요.”서왕의 미간이 더욱 깊이 찌푸려졌다.정충의 모충이 죽으면, 즉시 독이 온몸으로 퍼진다.이를 막으려면, 온몸의 혈을 돌려 독을 모두 빼내야만 했다.하지만 이 과정은 극심한 고통을 동반하며,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그게 전부냐?”완부옥은 피식 웃었다.“아니면 뭐가 더 있어야 하죠?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12화

    관아의 지하 감옥.임 대인은 벽에 기대어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지긋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태연한 척했으나, 그를 뒤덮은 식은땀과 흔들리는 눈빛은 그의 불안을 여실히 드러냈다.그는 필사적으로 관아의 포졸들을 노려보며 외쳤다.“너희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나를 잡아가는 것이냐! 나는 결백하다!”그러나 그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포졸들이 일제히 양옆으로 길을 내주었다.그 길 너머에서, 봉구안이 들어왔다.높게 묶은 머리카락, 날카로운 눈빛, 강렬한 기세가 단숨에 대옥 안을 장악했다.“모두 물러가라.”단 한 마디. 그 한마디에 모든 포졸들이 지체 없이 대옥 밖으로 나갔다.오백만이 문을 닫고 바깥에서 경계를 섰다.어둠이 깔린 감옥 안.남은 사람은 봉구안과 임 대인뿐이었다.임 대인은 봉구안을 처음 보는 듯했다.그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너는 누구냐?”처음엔 관리인 줄 알았으나, 목소리를 듣고 보니 여자였다.관청에 여자가 올 리 없는데… 봉구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리고 무심하게 옆에 놓인 형구를 집어 들었다.그녀의 손끝이 가볍게 그것을 매만지는 것만으로도, 임 대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목이 타들어가는 듯한 건조함, 커진 눈동자, 땀에 젖은 손.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나, 나는 아무 죄도 짓지 않았소! 너희 관아에서도 멋대로 형벌을 가할 순 없는 것이오! 내가 말해 두겠소! 내 조카딸은 현 황제의 장모요! 나는 황실과 연줄이 있는 사람이오!”그의 목소리는 떨렸으나, 어떻게든 자신의 지위를 내세워 위협하고자 했다.그러나 봉구안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그녀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입술은 냉혹한 곡선을 그렸다.“그럼, 나에 대해선 알고 있느냐?”임 대인은 당황한 듯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도무지 그녀가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았다.하지만, 황제보다 높은 사람은 없을 터.그는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내가 왜 네 정체까지 알아야 하느냐! 어서 나를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13화

    임 대인은 봉구안의 정체를 알게 되자 본능적으로 그녀와 친척 관계를 강조하려 했다.그러나 그녀가 던진 단 한마디에,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진짜 가족이 아니라고?”누가 가족이 아니라는 것이냐?임 대인의 시선이 흔들렸다.그녀의 차가운 목소리가 감옥에 울려 퍼졌다.“유 씨 가문의 둘째 딸, 태어나자마자 너희가 데려가 키운 것이 맞느냐?”임 대인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설마 그녀가 묻는 것이 그때의 일일 줄이야…그는 태연한 척하며 고개를 숙였다.“그렇습니다! 제 누이가 둘째 딸을 낳은 후, 저희에게 맡겼습니다!”그녀가 자신의 표정을 읽지 못하도록.그는 필사적으로 침착한 척하며 말을 이었다.“황후마마, 이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하지만 봉구안은 여전히 형구를 손에 쥔 채, 냉정한 시선으로 그를 꿰뚫어보았다.“확실하느냐? 너희가 데려갔을 때, 그 아이가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았다는 것이?”임 대인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당연합니다! 아이는 태어나고 며칠 지나지도 않아 저희 손에 맡겨졌습니다!”그러자 봉구안이 단호하게 쏘아붙였다.“거짓말이다.”임 대인의 어깨가 움찔했다.봉구안의 눈빛이 더욱 날카롭게 번뜩였다.“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너희가 데려간 그 아이는 태어난 지 이미 세 살이었을 것이다. 내 말이 맞느냐?”그 순간, 임 대인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일그러졌다.애써 웃음을 지으며 그는 반박했다.“황후마마, 이건 말이 안 됩니다. 태어난 아이가 갑자기 세 살이 된다니, 그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그러나 봉구안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너에게 한 번의 기회만 줄 것이다.”“한 촉의 시간이 지나면, 너는 형장으로 끌려갈 것이다.”그녀는 단호하게 말한 후, 감옥을 나갔다.임 대인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형장?”그녀가 정말로 자신에게 형벌을 가하겠다고?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어떻게 그녀가 이 일을 알게 된 것이지?무사히 넘긴 지 사십 년이 넘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14화

    남제, 황성.유영은 여전히 사라진 사신들의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점점 초조함에 휩싸였다.그녀는 며칠째 서왕부를 드나들며 사신들의 행방을 묻고 있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아직 찾고 있습니다.”그녀는 처음엔 서왕이 정말로 사신들을 찾아줄 것이라 믿었다.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단순히 자신을 적당히 무마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역관.유영이 피곤한 얼굴로 돌아오자, 딸 정희가 기다렸다는 듯 다그쳤다.“어머니, 황제 폐하께서 이미 환궁하셨다고 합니다. 저흰 언제 입궁할 수 있습니까?”그러나 유영은 피곤한 얼굴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사신들의 행방뿐이었다.정희는 초조한 듯 다시 물었다.“이모님께서는 아직도 회신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새로운 국서를 보내주셨다는 소식은 없나요? 어머니?”그제야 정신을 차린 유영은, 갑자기 딸의 손을 세게 움켜잡았다.“너의 이모께서 우리를 내버려 두실 리 없다! 나는 서여국 황제의 친여동생이란 말이다!”그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지금 당장 입궁하여 직접 황제를 알현할 것이다!”이제 직접 황제를 만나 황제의 마음을 움직일 때였다.황궁에서의 냉대.그날, 황제 소욱은 갓 환궁하여 어전에서 상소문을 검토하고 있었다.그때, 한 호위가 조용히 다가와 보고했다.“폐하, 서여국의 사신을 자처하는 유영이 알현을 요청하고 있습니다.”순간, 소욱의 손이 멈칫했다.그는 이미 봉구안으로부터 서여국에서의 모든 상황을 보고받은 상태였다.유영이 서여국 황제에게 철저히 농락당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아직도 자신이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착각하며 황궁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이 가관이었다.더욱 우스운 것은, 그녀가 자신의 딸을 후궁으로 들이려 한다는 점이었다.소욱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그는 피곤한 듯 이마를 문지르더니,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돌려보내거라.”목소리는 냉랭했다.봉구안이 없는 지금, 그는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15화

    정희가 태연하게 말하는 동안, 유영의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다.뭔가 이상했다.특히, 갑자기 사라진 사신들이 계속 신경 쓰였다.그때…쾅!시녀가 차를 올리던 순간, 정희가 팔을 과하게 휘두르는 바람에 찻잔이 기울었고, 뜨거운 차가 그녀의 손등을 덮쳤다.정희는 서여국 궁에서 늘 귀하게 자라며 극진한 대접을 받아왔다.조금이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절대 참지 않는 성격이었다.이번에도 그녀는 거의 본능적으로 시녀의 뺨을 후려쳤다.“짝!”순식간에 시녀의 뺨에는 붉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시녀는 겁에 질려 고개를 깊이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사죄했다.“소첩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그러나 정희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차가운 시선으로 시녀를 노려보았다.“이게 시중 드는 태도냐? 감히 본 귀인을 데이게 하다니! 어서 약을 가져오지 못할까!”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영은 짜증스럽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나직이 말했다.“그만해라. 고작 이런 일로 소란 피울 필요 없다.”이곳은 장공주의 저택이었다.불필요한 소란이 화를 부를 수도 있었다.하지만 정희는 억울하다는 듯 어머니에게 손을 내밀며 볼멘소리를 했다.“어머니, 이게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요? 손이 이렇게 망가졌잖아요! 곧 황제 폐하를 뵈어야 하는데, 이대로라면 폐하께서 날 탐탁지 않게 여기시면 어쩌죠?”손은 여자의 두 번째 얼굴이라 하지 않던가.시녀는 더욱 당황하여 그대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소첩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그러나 정희의 눈빛은 더욱 매서워졌다.“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기는 하느냐? 당장 약을 가져오지 않고 뭐 하고 있느냐!”“예! 예! 소첩이 바로 다녀오겠습니다!”시녀는 몸을 떨며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그러나 정희는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눈을 굴리며 불만을 토로했다.“어머니, 공주부의 하인들은 정말 형편없어요. 이렇게 어설프게 일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어떻게 생활하는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16화

    의문의 남자는 정희를 풀어주기 전, 그녀의 입에 알약 하나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정희는 본능적으로 뱉어내려 했으나, 남자가 거칠게 턱을 움켜쥐었다.“삼켜라.”그녀가 반항할 틈도 없이, 약은 그대로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크윽!”정희는 사레가 든 듯 격하게 기침을 했다.유영은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이 창백해졌다.“네놈! 내 딸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남자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대답했다.“독이다. 이제 네 딸의 목숨은 우리 손에 있다.”정희의 몸이 덜덜 떨렸다.“어머니… 살려 주세요…!”그녀는 두려움에 질린 채 유영에게 매달렸다.유영은 분노와 불안이 뒤섞인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며 외쳤다.“이미 네놈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는데, 왜 굳이 내 딸에게까지 독을 먹인 것이냐! 해독제를 내놓거라!”남자는 비웃음을 터뜨렸다.“해독제? 네가 우리 뜻대로 행동하면 자연히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얌전히 있어라.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네 딸은 가장 먼저 죽게될 것이다.”그의 눈빛은 잔혹하기 짝이 없었다.유영은 치를 떨며 주먹을 꽉 쥐었다.그러나, 지금 그녀는 철저히 상대의 손아귀에 있었다.울분을 삼킨 채, 결국 그녀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네놈들이 원하는 대로 하겠다.”……서여국.그동안 서여국에서는 황제의 병세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어의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나, 병은 더 이상 호전되지 않았다.그녀는 국정을 몇몇 신뢰할 만한 대신들에게 위임하고, 요양을 핑계로 궁을 떠나 교외에서 머물고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중요한 상소문을 직접 검토하며, 마지막까지 나라를 다스리려 했다.그녀의 곁을 지키는 것은 단 한 사람…봉구안의 어머니, 즉 그녀의 친동생으로 의심되는 ‘봉부인’이었다.황제는 마음 깊이 확신하고 있었다.봉부인은 바로 그녀의 동생 숙연일 것이라고…그러나 아직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머물러 있었다.황제는 병든 몸을 지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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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11화

    모용가에 대한 조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소욱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모용가를 은밀히 조사하라고 했을 때,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들었느냐.”“갑자기 왜 그 얘길 꺼낸 것이냐? 혹시…”그는 말을 끝맺지 않았지만, 봉구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그녀는 모용가가 약쟁이 사건과 얽혀 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었다.봉구안은 단정한 목소리로 답했다.“사형이 약쟁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 시점은 폐하께서 즉위하신 이후입니다.”“그 말은 곧 선황제께서 돌아가시기 전부터 이미 약쟁이들이 활동하고 있었다는 뜻이지요.”“그 시점을 고려하면, 선황제께서 무언가 눈치채셨을 가능성도 있습니다.”“소첩은 그래서 모용가가 이 사건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다만 어디까지나 제 추측일 뿐, 아직 뚜렷한 증거는 없습니다.”그녀의 말에 담긴 확신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소욱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렇다면 지금 네 말은… 모용가를 억지로 몰아세우겠다는 것이냐.”농담조였지만, 소욱 역시 마음속으로 봉구안의 의심을 부정하지 못하고 있었다.선황제의 유언은 분명 모용가를 경계하고 있었다.하지만 지금껏 감찰을 맡은 자들이 어떤 흔적도 찾지 못했다는 건, 그들이 그만큼 은밀하게 움직였다는 뜻이었다.그런 점에서 모용가의 행적은 약쟁이들의 수법과 닮아 있었다.그 생각에 이르자 소욱의 눈빛에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사람을 더 붙이도록 하마. 이번엔 제대로 조사하게 하자.”그날 밤 소욱은 평소처럼 자유각에 머물렀다.궁 안의 일은 이미 손을 놓아도 될 만큼 정돈되어 있었고, 후궁의 일은 태후가 맡아 관리하고 있었다.빈들 또한 조용한 편이었으나, 단 하나. 약쟁이 사건만큼은 태후의 골칫거리였다.태후는 후궁들에게 자중할 것을 명하며, 그 본보기로 현비를 들었다.그날 밤 현비의 시녀 동하가 태후를 찾아와 다급히 울부짖었다.“태후마마, 제발 저희 마마를 살려주십시오!”이미 잠자리에 들었던 태후는 몸을 일으키며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10화

    봉구안은 자신이 직접 그려둔 지도를 꺼내어 소욱에게 펼쳐 보였다.“황성을 총타로 삼아 사방에 명령을 내리는 것. 이것이 바로 그들의 지령 경로입니다.”“그들의 평소 수법을 보면, 지금처럼 조정과 무림이 손잡고 그들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모든 연락선을 끊고 총타부터 지키는 것이겠지요.”“그러기 위해서는 내부 인물들을 정리하는 게 먼저입니다.”소욱이 그녀의 말을 받아 이었다.“그렇다면 우리가 그 틈을 노려 분타부터 하나씩 무너뜨릴 수 있다는 뜻이로군.”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녀는 지도 위 몇 군데를 손가락으로 짚었다.“여기 표시된 곳들이 현재 저희가 확인한 그들의 은신처입니다.”“대부분 외진 산골이나 황량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요. 죽산진 근처 산속 동굴처럼 말이지요.”“폐하께서도 기억하시겠지요. 예전에 황성 도관 아래에서 많은 약쟁이들을 발견했을 때를요.”소욱은 그 일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봉구안은 약쟁이에게 상처를 입었고, 그가 그녀를 등에 업고 간신히 빠져나왔었다.봉구안의 눈빛이 차갑게 식어갔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도관 자체가 약쟁이의 은신처였을지도 몰라요.”“그리고 기억하시겠지요. 천룡회가 황성을 공격했을 때 약쟁이 대군을 풀었는데, 그 시각이 바로 늦은 밤이었어요.”소욱은 그녀가 전하려는 의미를 곧장 알아차렸다.그는 지도 위에 찍힌 지점들을 살펴보았다.“은신처의 위치와 약쟁이들의 활동 시각을 보면, 그 자들은 어둠 속 환경에 익숙한 존재들이겠구나.”봉구안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어둡고 외진 곳이야말로 약쟁이들의 은신처로는 가장 알맞은 곳일 거예요.”“저희가 죽산진에서 약쟁이 소굴을 조사했을 때도, 산속 동굴 안은 손을 뻗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했지요.”“강주에서 발견한 은신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연이라고 보기엔 너무 겹치는 것들이 많아요.”소욱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그렇다면… 이 사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겠느냐?”봉구안은 냉정한 눈빛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9화

    봉구안은 놀란 듯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황성에도 홍련초가 자란다고요?"소욱은 곧바로 진지하게 대답했다."누가 심었는지,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모른다. 서쪽 교외에 사람을 보냈으니 곧 소식이 올 거야."봉구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소욱은 그녀의 그릇에 반찬을 더 담으며 말했다."일단 밥부터 먹으렴. 요즘 부쩍 더욱 말라 보이는구나. 아이를 품은 몸이라면 더 잘 챙겨야 하지."하지만 봉구안의 눈빛은 여전히 다른 데 머물러 있었다."혹시… 열무신의 소식은 아직도 없는거죠?"소욱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서둘러 그녀가 더 걱정하지 않도록 화제를 돌렸다.소탁을 황성으로 데려온 뒤 그는 곧장 태의원을 불러 진찰을 받게 했다. 하지만 상처가 눈에 있는 탓에 회복이 쉽지 않았고 지금은 사실상 눈이 먼 사람처럼 지내고 있었다. 혼자 사는 데 어려움이 컸지만, 하녀를 붙여 주겠다는 제안도 번번이 거절했다.봉구안은 차분하게 물었다."폐태자께서는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나요?""마땅한 집을 하나 찾아 그곳에 머물게 하였다. 혹시나 있을 위험을 대비해 그림자 호위도 붙여 두었다."그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단순한 걱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소욱이 다시 입을 열었다."예전에 널 시중들던 연상을 혹시 기억하느냐?"봉구안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되물었다."연상… 기억하죠.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여쭤 보시는 거죠?"소욱은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요 며칠 사이 그 아이가 소탁을 여러 번 찾아갔다는구나. 꽤 신경을 쓰는 듯했다."봉구안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그게 그렇게 문제될 일인가요?""그 아이는 아직 시집을 안 가지 않았느냐."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봉구안은 곧장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론 연상은 궁을 떠난 뒤 곧장 진가 저택으로 돌아갔습니다. 혼자서 글씨와 그림으로 생계를 꾸려 왔고요. 살림은 넉넉지 않지만 나름대로 삶의 방향은 확실합니다. 진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뜻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8화

    녕비는 자기가 무슨 심각한 말을 했는지도 모른 채 해맑게 웃으며 현비를 바라보았다.“언니, 우리 자매처럼 지냈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남한테 덜미 잡히기 전에 차라리 폐하께 먼저 말씀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어차피 결백한 사람은 당당해도 되는 법이지 않겠어요?”“홍련초는 그 자체로는 죄가 없는 약초예요. 죄가 있는 건 그걸로 독을 만든 자들이죠.”“언니처럼 착한 분이 약쟁이랑 엮일 리가 없잖아요, 그쵸?”그녀의 웃음은 현비의 눈에 유난히 싸늘하고 따갑게 느껴졌다.현비는 얼굴이 희미하게 질려가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녕비, 네가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맹세컨대 내가 마시는 약은 약쟁이 사건과는 정말 아무 관련도 없어.”녕비는 굳이 대꾸하지 않은 채 조용히 말을 이었다.“제가 언니를 믿느냐 마느냐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폐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느냐죠.”현비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깊은 숨을 고르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맞는 말이야.”“자, 할 말은 다 했으니까 전 이만 자녕궁으로 가볼게요. 태후마마께 기도드릴 시간이네요. 굳이 배웅하지 않으셔도 돼요.”녕비가 자리를 뜬 뒤, 곁에 있던 시녀 동하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마마, 녕비 마마 말씀이 틀린 것도 아니에요. 폐하께서 약쟁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고 계시다 하니, 홍련초가 얽히는 일은 아무래도 너무 커요.”현비의 눈빛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그녀는 그저 이 궁 안에서 살아남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녀는 그 어떤 죄도 짓지 않았다. 정말로 아무 잘못도 없었다.“…종이랑 붓을 준비하거라. 폐하를 뵙기 전에 아버지께 먼저 편지를 써야겠다.”“예, 마마.”……그날 밤.자유각.소욱은 이날 밤도 자유각에 머물며 봉구안과 시간을 보내려 했다.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은 상소문을 검토하는 데 쓰였고 그녀 곁에 있어도 여유를 누릴 틈은 많지 않았다.그는 문서를 펼쳐든 채 농담처럼 말했다.“황제가 된 건, 아마 전생의 업보였던 모양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7화

    그해 봉구안은 스스로 천지설산에 올라 자욱화를 채취하려다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그때 그녀를 구해준 이가 바로 염 신의였다.그 후 인연이 닿아 둘은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 무렵 염 신의는 약쟁이 독의 해독제를 연구하고 있었다.이에 봉구안은 그를 황성으로 데려왔다.그는 예전에도 한 차례 해독제를 만들어낸 바 있었으나, 중독자들에게 써보았을 때 뚜렷한 효과는 없었다.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진정한 해독제가 완성된 것이다.분명 기쁜 소식이었다.“염 신의 말로는, 홍련초 덕분에 그동안 풀지 못했던 원리를 비로소 깨달았다고 합니다.”“이미 중독자들에게 해독제를 복용시켰고 모두 회복되었습니다. 장순의 어머니까지도요.”장순은 아직 어린 유생이었으나, 과거 제후국들이 남제를 포위했을 당시 봉구안이 특별히 데려갔던 소년이었다.그는 적국을 향한 설전에서 통쾌한 활약을 펼친 바 있었다.그의 어머니는 오래전 약쟁이 독에 중독되어, 살아 있으되 정신이 나간 채 살아온 사람이었다.해독제가 생겼다는 건 의심할 여지 없이 경사였다.허나 좋은 일과 화는 언제나 함께 오는 법. 봉구안이 눈짓 하나만 보내도 소욱은 그녀의 속마음을 단박에 알아차렸다.그녀가 입을 떼기도 전, 소욱은 그녀의 팔을 가볍게 두드리며 오백에게 명을 내렸다.“사람을 붙여 염 신의를 철저히 보호하라. 해독제 이야기는 절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라.”오백은 곧장 명을 따랐다.밖에서 듣고 있던 진한길은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폐하께서는 왜 이렇게 오백을 쓰시는 걸까?’오백이 물러난 뒤, 소욱은 봉구안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해독제가 완성되었으니 약쟁이 독이 아무리 퍼져도 더는 위협이 되지 못할 것이다.”봉구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해독제는 결정적인 열쇠예요. 폐하, 문득 떠올랐는데… 담대연도 약쟁이 독에 중독된 사람이었죠?”소욱은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그 자에게도 해독제를 줄 것이다. 이제는 마음 놓고 쉴 수 있겠지?”“네.”봉구안도 지쳐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6화

    황제는 용좌에 앉아 날카로운 눈빛으로 문무백관을 훑었다.“과인이 황성을 비운 지 몇 달이 되었다. 그 사이 그대들은 더욱 해이해졌구나.”문무백관들은 몸을 낮추고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었다.소욱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조정에서 명하여 각지에서 약쟁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라 했거늘. 과인이 묻겠다. 너희는 이 사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대부분의 신하들은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사건 수사는 지방 관아의 일 아닌가.그들은 각자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면 되는 줄 알았다.그중 몇몇 관료만이 그나마 성의를 보이며 대답했다.“폐하, 신이 아는 바에 따르면 이 약쟁이 사건은 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독에 중독되면 사람은 이성을 잃고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예전에 천용회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약쟁이로 구성된 군단이 실제로 나타난 바 있습니다. 반드시 철저히 조사해야 할 사안입니다.”“폐하, 신이 들은 바에 따르면 동산국이 비밀리에 약쟁이를 양성하고 있으며, 병력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약쟁이 독도 동산국에서 흘러들어온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소욱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향해 눈빛을 더욱 날카롭게 세웠다.“약쟁이 사건은 백성의 생사뿐 아니라 나라의 존망에도 관련된 일이다. 너희 가문의 안위와도 맞닿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어찌 이리 무감각할 수 있느냐.”꾸짖음을 들은 관료들은 줄줄이 엎드려 스스로 죄를 청했다.“부끄럽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소서.”소욱은 그들을 곧장 벌하지는 않았다.대신 명을 내렸다.“과인이 너희들에게 직접 수사하라 명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것이다. 오늘부터 약쟁이 사건에 연루된 자가 있다면 스스로 고하라. 훗날 과인이 직접 밝혀낸다면 그 자는 반역죄로 다스릴 것이며 구족이 멸문당하게 될 것이다.”이것이 그가 내릴 수 있는 마지막 자비였다.신하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고, 감정은 드러내지 않았다.그중 몇몇은 속삭였다.“폐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5화

    봉구안이 약쟁이의 본거지가 황성에 있을 것이라 단언한 것은 근거 없는 말이 아니었다.그녀는 남제 전역의 지도를 꺼내어 소욱에게 설명했다.“정말 막다른 길에 몰려야 그들도 허점을 보입니다.”“이번에 문제가 생긴 도시들. 그 위치와 거리로 계산해 보면, 명령이 어디에서 내려졌는지 역산할 수 있어요.”지도 위에는 이미 여러 곳의 약쟁이 거점이 붉게 표시되어 있었다.최근 발생한 약쟁이의 운송 경로와 이동 시간, 중간에서 방향을 바꾼 흔적까지 더하면 본거지가 어느 지역인지 대략 짚어낼 수 있었다.이런 판단력은 전장을 누비는 장수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었다.봉구안은 시간과 거리의 계산만으로도 적의 주둔지가 어디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그래야 곧장 본진을 겨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소욱은 그녀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황성이라니… 정말 그곳인가.”역시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었다.……그들은 황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죽산진을 들렸다.황성으로 돌아가기 전 소탁을 보기 위함이었다.보아하니 소탁은 눈에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의원의 치료에도 차도가 없어 실명에 위험까지 있었다.소욱은 그를 데리고 황성으로 돌아가 태의에게 맡기기로 했다.이 작은 죽산진에서는 명의라 할 만한 자를 구하기도 어려웠다.자객의 습격을 떠올린 소탁은 마음이 무거웠다.그는 형인 소욱을 걱정하며 말했다.“약쟁이 때문에 미쳐 돌아가는 자들이 많아졌습니다. 폐하께선 이번 여정 내내 각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결국 피를 나눈 형제였기에 자신의 상처보다 제왕의 안위가 더 걱정되었다.봉구안은 하얀 천으로 눈을 가린 소탁을 바라보았다.그 모습이 유난히 연약해 보였다.그녀가 물었다.“열무신은 아직 소식이 없습니까?”소탁은 고개를 저었다.“그 자객을 쫓아 한참을 달아났습니다. 호위들도 따라잡지 못했지요. 혼자서 움직였으니, 살아있다면 다행이고… 혹시 도중에 남긴 흔적이라도 있다면 좋겠습니다.”봉구안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리 무공이 뛰어난 자라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4화

    그 닭장수들은 고문을 당해 사람 꼴이 아니었다.그들은 결국 사실대로 털어놓았다.“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저희는 정말 모릅니다. 그 닭들을 거래한 뒤, 그걸 어디에 쓰는지도 몰랐습니다.”“누가 높은 값을 제시하길래,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열무신은 무고한 이를 죽이지 않았다.그들이 실토한 이상 그는 더는 손을 대지 않았다.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마침 소탁과 마주쳤다.소탁은 내내 문밖에 서서 안에서 들려오는 말들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소탁은 성품이 부드럽고 인자했다.이런 고문이나 심문 같은 일은 애초에 잘하지 못했다.황제가 곁에 붙여준 암위들도 제법 실력은 있었지만, 닭장수들을 떨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하지만 열무신은 달랐다.그는 그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지옥불에서 기어나온 귀신 같았다.맑은 날임에도 사람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 만큼, 존재감 하나로 공포를 자아냈다.소탁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보아하니 저들은 그저 도구일 뿐이군요.”열무신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손에 묻은 피를 닦고, 수건을 바닥에 던지듯 놓으며 말했다.“잔챙이들이지. 아무리 캐물어도 쓸만한 정보는 없었습니다.”배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닭장수 몇 명을 잡아봤자 소용없었다.열무신의 마음엔 짙은 짜증이 피어올랐다.약쟁이의 수법은 치밀하고 조심스러웠다.겹겹이 함정을 깔아놓은 듯, 쉽게 뿌리를 드러내지 않았다.그는 입술을 꾹 다물고 어둡게 눈을 떴다.속이 타들어갔고, 분노를 쏟아낼 데도 없었다.소탁은 그의 좌절과 혼란을 읽고 조심스레 말했다.“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 집에서 따뜻한 밥이라도 드시고 길을 나서시지요.”그의 말 뜻은, 강주로 돌아가 황제와 황후에게 상황을 전하라는 뜻이었다.하지만 어쩐지 그 말은 사형수에게 마지막 식사를 권하는 것처럼 들렸다.열무신은 입꼬리를 비뚤게 올렸다.“이런 와중에도 밥이 넘어간단 말입니까.”소탁은 전혀 언짢은 기색 없이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제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3화

    봉구안은 자신의 친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그녀는 몰랐다.그가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기억력을 지녔고, 내용을 명확히 꿰뚫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그의 말에 따르면, 어릴 적부터 그런 재능이 있었다고 했다.하지만 점쟁이는 이렇게 말했었다.지나치게 총명하면 오래 못 간다.그래서 그는 일부러 자신의 능력을 억눌렀고, 남 앞에서는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다만 집중만 한다면, 단 한 번 본 것도 전부 기억할 수 있었다.“이 십수 년간 강성에 들어온 외지인들의 성씨, 이름, 무슨 일로 들어왔는지, 머문 날짜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우선 가족을 동반하거나, 노약자와 함께 들어온 이들은 제외했습니다. 대부분은 친척을 만나거나 생계를 위해 온 이들이니까요.”“그리고 또 걸러냈습니다. 강주에 지인이 있는 사람들 말이예요. 그런 이들은 약쟁이와 같은 은밀한 조직과는 어울리지 않지요. 저들은 언제나 혼자 움직이니까요.”봉 대인의 말은 모두 일리가 있었다.결국 그의 탁월한 기억력이 있었기에, 수많은 인원을 기억하고 하나하나 대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최근 2년간 입성한 외지인에 대해서는 여관마다 숙박 기록이 남아 있어, 그것도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었다.물론 개인적인 판단이 섞이긴 했지만, 봉구안은 이 명부가 충분히 쓸 만하다고 보았다.봉 대인은 말을 덧붙였다.“폐하, 특히 수상하다 여겨지는 인물들은 모두 붉게 표시해 두었습니다.”소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럽게 말했다.“알겠다. 만약 이 명부에서 약쟁이의 흔적을 찾아낸다면, 자네는 큰 공을 세운 셈이니라.”그러자 봉구안이 단호하게 나섰다.“설령 단서가 나온다 해도, 그건 시작일 뿐입니다.”“이전에 잡은 자들도 그랬지만, 약쟁이는 각자 다른 방식과 규율을 따르고 있어, 흔적을 따라간다 해도 본거지에 닿기는 어렵습니다.”소욱 역시 같은 생각이었지만, 장인어른에게는 현재 채찍보다는 당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하지만 봉구안의 태도는 여전히 차가웠다.봉 대인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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