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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화 그녀가 간 줄 알았어요

Author: 연의 수정
서원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민여진은 두 걸음쯤 걷다가 옆에 아무도 없는 것을 깨닫고 불렀다.

“서원 씨?”

“네.”

서원은 곧바로 민여진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테라스를 걸었다.

민여진이 물었다.

“왜 그래요? 갑자기 말도 없고... 무슨 일이에요?”

서원은 민여진의 밝은 미소와 다정한 모습을 보며 목이 메었다. 갑자기 박진성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거짓말이 계속 이어진다면 민여진에게는 좋은 일이 아닐까?’

“아니에요. 아까 길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걸 보고 차가 오는지 살펴봤을 뿐이에요.”

“아이들은 다 그렇죠.”

민여진의 미소가 잠시 사라졌다 금세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저택은 가까이에 있었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정원에 도착했다.

서원이 현관에 거의 다 왔을 때, 저 멀리 큰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박진성은 슬리퍼를 신고 두꺼운 외투 안에는 얇은 셔츠 한 장만 입은 채 매서운 바람 속에 서 있었다.

그는 민여진을 보자 잔뜩 긴장했던 얼굴이 풀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성큼성큼 걸어와 민여진을 품에 안았다.

“왜 갑자기 나갔어?”

박진성은 차갑게 물으며 서원을 노려보았다.

“말도 없이 나가면 어머니가 걱정하시는 거 몰라?”

“엄마?”

민여진은 그의 품에서 벗어나 고개를 들었다.

“엄마 깨셨어? 미안해. 일찍 일어나서 빨리 다녀오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다들 깨어 있을 줄은 몰랐어.”

“어머니는 안 깨셨어. 내가 깬 거지.”

박진성은 눈을 가늘게 뜨고 긴장한 채 민여진의 팔을 더 세게 잡았다.

그는 1층 현관문이 열려 있고 민여진의 신발 한 켤레가 없어진 걸 발견하고서야 민여진이 나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순간, 그의 가슴은 끓어올랐고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민여진은 왜 나갔을까? 왜 아무 말도 없이 나갔을까? 도망친 걸까? 정수향의 정체를 알아채고 꾹 참고 있다가 내가 방심한 틈을 타 떠난 걸까?’

그런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정말 그렇다면 평생 민여진을 다시는 못 볼지도 몰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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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안엔 아무도 없었다박진성이 정신을 차렸을 때 목이 타들어 갈 듯 아팠고 몸은 불덩이처럼 뜨겁다가도 금세 차갑게 가라앉았다.몸이 이렇게 고장 난 건 분명 병 때문이었다.마지막으로 아팠던 게 거의 1년 전이었을까. 그는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침대 머리맡 서랍을 열었다.민여진이 약상자를 거기에 뒀던 게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기침을 하며 상자를 꺼내보자 하나하나 약봉지마다 작은 메모지들이 붙어 있었다.‘언제까지 복용’, ‘이 약은 공복에’, ‘열이 나면 복용’, 세세한 설명이 다 적혀 있었다.그 여자는 항상 그랬다. 작은 것 하나까지 철저히 빠뜨리는 법이 없었다.박진성은 메모지를 떼어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가슴 한구석이 묵직하게 아팠다.며칠이 지나도 병은 쉽게 낫지 않았지만 그는 다음 날 아침부터 정상 출근했다.기침을 참아가며 몸살과 어지러움을 무릅쓰고 서류를 넘기고 회의를 소화했다. 하루, 하루, 또 하루.이제는 조금씩 잊히는가 싶었는데 그날 서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대표님! 그 차량 위치를 찾았습니다!”박진성은 손에 쥐고 있던 모든 걸 놓고 바로 차를 몰았다.남산교에 도착하자 서원이 몇몇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칼바람이 불었지만 벌써 윗옷을 벗고 준비 중인 남자들도 있었다.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서원에게 다가갔다.“어떻게 됐어?”“차량 위치는 확인됐습니다. 지금 두 번째 잠수하러 들어가는 중이에요. 장비를 들고 들어가 유리창을 깨고 사모님을... 데리고 나올 겁니다.”“그래...”박진성은 정신이 아득해졌고 마비됐던 감정이 그 순간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그리고 묵직하고 차가운 통증이 심장을 찔렀다.그는 두려웠다. 정말로 민여진의 시신을 보게 될까 봐.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편에선 그녀를 드디어 편히 보내줄 수 있다는 조금의 평온도 느껴졌다. 이 차가운 물속에서 그녀가 더는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까.잠수팀은 장비를 짊어지고 물 속으로 사라졌다.서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정식으로 시신 수습하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95화 원흉

    분노한 박진성은 문채연에게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그런데 너 왜 이 일을 숨겼어? 나한테 한마디도 하지 않고? 민여진이 감옥에 가게 내버려둔 이유가 네가 살아남기 위해서야? 문채연, 넌 죄책감도 안 느껴?”그의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졌고 그는 그녀의 이름을 또렷이 불렀다.문채연은 본능적으로 겁에 질렸고 손을 뻗어 그를 붙잡으려 했다.“진성 씨! 내 말을 들어봐요!”그러나 박진성은 차갑게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그는 순간 깨달았다. 눈앞에 서 있는 이 여자가 더 이상 자신이 알던 그 여자가 아니란 것을.어떻게 이렇게 냉랭해질 수 있을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토록 순수하고 따뜻했던 그녀가 말이다.문채연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불안과 두려움이 뒤섞인 그녀는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진성 씨, 제발... 제발 나를 미워하지 마요.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요. 난 그냥... 너무 무서웠을 뿐이에요...”그녀는 흐느끼며 말을 이었다.“내가 2년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사이에 진성 씨는 민여진 씨와 관계를 이어갔잖아요. 민여진 씨는 이미 진성 씨의 아이까지 가졌고요... 만약 내가 감옥에 가게 된다면 민여진 씨가 아이를 낳고 나서 여전히 내 자리가 있을까요?”“난 진성 씨를 너무 사랑했어요. 그래서 진성 씨를 위해서라면 불 속에도 뛰어들 수 있었어요. 그만큼 내겐 목숨보다 진성 씨가 더 소중해요. 그런데... 그걸 빼앗길까 봐 두려웠어요. 그것뿐이에요.”“나는 알고 있었지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민여진 씨를 해치지도 않았고요. 나의 이기심이 문제라면 그건 인정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나를 미워하지 말아요, 진성 씨...”문채연은 흐느끼며 그를 힘껏 끌어안았고 뜨거운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그러나 박진성은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녀의 팔을 단호하게 밀어냈다.“진성 씨...”문채연의 얼굴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약혼은 미루자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94화 너도 알고 있잖아

    상우가 도착했을 때 박진성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2층에서 내려왔다.“대표님.”상우는 노트 한 권을 내밀었다.“문채연 씨의 약혼식 드레스 디자인입니다. 여러 가지 시안을 준비했는데 매장에서 빠르게 결정해달라고 합니다.”“그래.”박진성은 노트를 받아 들었다.그런데 상우가 돌아서려 할 때 박진성이 그를 불러 세웠다.“서원은 요즘 어디에 있어?”상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서원 형님은 아직도 인양팀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사모님의 시신을 먼저 찾고 싶어 하더라고요. 제대로 안치해 드리고 싶다면서요.”박진성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사실 그조차도 이제는 포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서원은 여전히 집착하고 있었다.박진성은 한참을 침묵하다 짧게 말했다.“추운 날씨에 바닷가에 계속 있게 하지 마. 아직 젊잖아.”“네. 저도 몇 번이나 말렸는데 잘 듣질 않네요. 하지만 대표님께서 말씀하시면 이제 포기할지도 모르죠.”상우가 떠난 후 박진성은 노트를 들고 문채연의 방 문을 두드렸다.잠시 후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진성 씨, 나 샤워 중이에요. 무슨 일이에요?”박진성은 문을 열고 들어갔고 손에 든 노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업체에서 드레스 디자인을 보내왔어. 상우가 가져다줬는데 빨리 결정하라고 하네.”“네, 침대에 놓아 줘요. 곧 나갈게요.”문채연의 목소리는 왠지 조금 부끄러운 듯 들렸다.사실 그녀는 박진성이 기다려 주기를 바랐지만 박진성은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그는 몇 걸음 걸어가 티 테이블 위에 노트를 내려놓았다.그리고 돌아서려는 순간 진동음이 울렸다. 박진성의 시선이 테이블 위의 휴대폰에 꽂혔다.그런데 그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그때 문채연이 서둘러 나왔다. 그녀는 목욕 가운을 걸치고 있었고 머리는 아직 젖어 있었으며 뺨은 열기로 붉어져 있었다.그리고 소파에 앉아 있는 박진성을 본 순간 그녀는 가슴이 뛰었다. 이제야 기회가 왔다. 민여진이 박진성의 마음을 차지한 이유는 아마도 그녀가 그의 ‘첫 여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93화 왜 내려놓지 못할까

    “그건 그래.”조인화는 민여진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민여진의 그릇에 놓았다.“많이 먹어, 몸 좀 더 회복해야지. 며칠 뒤에 내가 수리공을 불러서 네 집 대문을 열어줄 테니까 그때 들어가서 한번 둘러봐.”“네.”...한편 요 며칠 동안 박진성이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일에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는 밀린 업무를 잔뜩 쌓아두고 며칠 밤을 연속으로 사무실에서 버티고 있었다.보다 못한 비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서류 검토는 모두 끝났고 현재 긴급한 업무도 없습니다. 오늘은 들어가서 좀 쉬시는 게 어떨까요?”비서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의 눈 밑에 다크써클이 길게 내려앉았고 얼굴은 피로에 절어 있었다.박진성은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쉬었다.그 순간 그를 짓누르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고 눈앞이 아찔해졌다.“알겠어.”그는 무심하게 대답했다.그러나 그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곳에는 여전히 민여진의 흔적이 남아 있을 테니까.그 집 곳곳에 묻어 있는 그녀의 향기, 그것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눈을 감을 때마다 꿈속에서도 그녀를 만났다.그런데 박진성은 이 상태로 더 버티다간 몸이 먼저 무너질 것이 뻔했다.그는 결국 재킷을 들고 사무실을 나섰고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그러나 집에 도착한 순간 뜻밖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몇몇 사람들이 집 안의 물건들을 나르고 있는 것이다.박진성은 차에서 내렸고 그 순간 한 직원이 들고 있는 상자가 보였다. 상자 안에는 민여진의 옷들이 들어 있었다.순간 폭발한 그는 단숨에 그 상자를 낚아챘다. 그리고 싸늘한 눈빛으로 직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누가 시켰어? 대체 누구 마음대로 집 안 물건을 건드리는 거야?”직원은 겁에 질려 얼어붙었다.그때 거실에서 문채연이 급히 뛰쳐나왔다.“진성 씨, 무슨 일이에요?”그러나 그녀는 시선이 상자로 향하는 순간 무슨 상황인지 알아챘다.당황한 그녀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우리 곧 약혼하잖아요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92화 약혼

    한때 이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로 이름을 떨쳤던 민여진. 그녀가 어른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수많은 청년들이 청혼을 준비했었다.그러나 결국 그녀의 운명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다.조인화는 그 기억을 떠올리자 가슴이 먹먹해졌고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녀는 애써 눈물을 삼키며 TV를 켰다.“여진아, TV라도 보면서 기분 좀 풀어. 나는 부엌에서 음식 좀 가져올게.”“네, 이모.”민여진은 더듬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TV에서는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고 그녀는 머리를 빗으며 드라마의 대사를 듣고 있었다.그리고 드라마가 끝난 후 화면이 연예 뉴스로 바뀌었다.“보스 그룹 박진성 대표의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박진성 대표는 오랜 연인 고효연 씨와 오는 28일 성대한 약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박 대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양성에서 가장 큰 호텔을 통째로 예약했는데 이번 약혼식은 박 대표의 인생 최고의 사랑을 증명하는 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모두 함께 축복하는 마음으로 다가올 28일을 기다려봅시다!”그 순간 조인화가 국을 들고 왔고 TV에서 흘러나온 소식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아니, 보스 그룹 대표가 또 결혼을 한다고? 아내가 감옥에 들어간 지 고작 2년밖에 안 됐잖아?”민여진은 머리를 빗다가 동작을 멈추고 담담하게 대답했다.“잘 모르겠어요.”조인화는 여전히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그런데 고효연... 이 이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왠지 전에 감옥에 갔던 그 여자랑 비슷한 느낌이야.”그렇게 느끼는 것이 당연했다. 왜냐하면 고효연이라는 이름은 문채연이 밖에서 사용하던 가명이었으니까.그리고 이토록 빠르게 약혼을 진행하는 이유는 이제 세상 사람들에게 ‘민여진’이 이미 죽은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그렇다면 박진성과 그녀의 혼인 역시 법적으로는 더 이상 효력이 없을 터였다.민여진은 문득 떠올렸다. 경찰서에서 풀려나기 전날 밤 어떤 낯선 남자가 그녀를 찾아왔었는데 그 남자가 제안했었다.“내 도움을 받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91화 더는 채연이를 망가뜨릴 수 없어

    박진성은 손으로 문채연의 눈물을 닦아주었다.마음이 흔들린 그는 복잡한 감정을 꾹 눌러 삼키며 입을 열었다.“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네가 깨어나 준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기뻐.”“정말요?”문채연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그럼 진성 씨 마음속에 아직도 나 있어요?”박진성은 순간 멍해졌다.마음속에 문채연이 있는지는 그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오직 민여진의 죽음뿐이었다. 그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저릿하게 아파왔다.박진성은 쉽게 대답할 수 없어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그가 침묵하는 사이 문채연은 눈빛에 떠오르는 증오를 삼키고는 슬며시 화제를 돌렸다.“그럼 예전에 약속했던 거 있잖아요... 나와 결혼하겠다고 했던 말, 아직 유효해요? 이제 민여진 씨는 떠났고 두 사람의 결혼 생활도 끝났잖아요. 그러니 이제 나한테 대답해 줘야 해요.”그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박진성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시선이 그의 가슴을 옥죄었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그는 알고 있었다. 빚진 것은 언젠가 갚아야만 한다는 것을.그는 이미 한 사람을 파괴해 버렸으니 더 이상 또 다른 누군가를 망가뜨릴 순 없었다....몇 날 동안 쉼 없이 달려온 차가 드디어 멈춰 섰다.트럭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있던 민여진은 작은 기척에도 긴장해하며 귀를 기울였다.그러다 문이 덜컥 열렸다.“다 왔어요.”운전사가 무심하게 말했고 민여진은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려왔다.그러나 땅을 딛는 순간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하지만 운전사는 돕기는커녕 문을 쾅 닫아버렸다.“여기가 안진 마을이에요. 난 약속한 대로 도와줬으니까 이제부터는 그쪽이 알아서 해요. 나는 더 이상 신경 안 써요.”민여진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고 먼지를 툭툭 털고는 말했다.“고마워요.”그 한마디에 운전수는 그녀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여기 길 알아요? 눈도 안 보이는데 괜히 어디 빠지지 말고요. 그러다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길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90화 민여진 씨를 좋아하게 된 거예요?

    “괜찮아.”박진성은 차라리 이 상처가 영원히 아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계속 아파야 한다. 그래야 그가 얼마나 잔인하게 한 사람을 망가뜨렸는지 잊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박진성은 떨리는 눈을 감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떴다.“돌아가자.”서원이 차를 몰아 박진성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그런데 차에서 내리려던 순간 문 앞에 서 있는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박진성은 순간적으로 정신이 흐려졌고 눈앞이 아득해졌다.‘민여진인가? 민여진이 날 찾아온 건가?’그는 본능적으로 차에서 내려 몇 걸음 성급하게 내디뎠다.그러나 가까이 다가가고서야 깨달았다.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문채연이었다.“진성 씨!”그녀가 다가왔는데 손을 꼭 쥔 채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박진성이 양경호를 찾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곳까지 달려온 것이었다.문채연은 조심스럽게 박진성을 살폈다. 다행히 양경호가 입을 다물고 있었던 모양이다.박진성은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물었다.“왜 왔어? 날씨도 추운데 그냥 돌아가.”“내가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요? 민여진 씨 때문에 진성 씨까지 망가져 가는 걸 두고 볼 순 없었어요!”문채연의 입술이 바짝 말라붙었다.그리고 박진성도 표정이 굳어졌다.그녀의 입에서 ‘민여진’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그의 심장이 강하게 조여왔다. 그 고통에 박진성은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그러나 문채연은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팔을 더욱 세게 붙잡으며 말했다.“진성 씨 벌써 일주일째 회사에도 안 나가고 있잖아요. 아무리 민여진 씨의 일이 충격적이라도 이건 아니에요. 진성 씨는 보스 그룹의 대표예요!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 모든 걸 내팽개쳐도 돼요?”박진성은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고 숨을 가다듬으며 차갑게 말했다.“나도 알아. 회사가 언제 내 도움이 필요한지.”“그런데도 진성 씨는 이렇게 무너지고 있잖아요! 민여진 씨는 이미 떠났어요! 계속 찾는다고 돌아올 사람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89화 죽음으로 몰아가다

    “누가 한 짓이야? 언제 벌어진 거야?”서원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민여진 씨가 수감되기 전날입니다. 그리고 그날이 바로 민영미 씨가 대표님께 쫓겨난 날이기도 합니다. 민영미 씨가 병원에서 쫓겨난 직후 한 대의 차가 민영미 씨를 데려갔고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켰습니다. 영상도 그날 유출되었고요... 어쩌면 민여진 씨도 이미 봤을지 모릅니다.”박진성의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았다.그리고 민여진이 전화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그녀는 미친 듯이 울부짖었고 절망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박진성, 네가 날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어.”그러나 그때 그는 코웃음을 쳤고 민여진이 동정심을 사려고 쇼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에게 줬던 모든 것을 도로 가져온 것뿐인데.민여진은 마치 세상을 잃은 사람처럼 울부짖었고 감옥에 가겠다고 했다. 박진성은 그 이유가 그녀가 누리던 풍족한 삶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고 어머니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그러나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때 민여진은 이미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었다는 것을.그 순간 박진성의 뺨을 세게 후려치는 듯한 충격이 몰려왔고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던 자신의 태도가,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던 그녀의 모습이 날카로운 유리 조각처럼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너무 아팠다.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그런데 민여진은 얼마나 더 아팠을까? 사랑했던 사람에게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내몰렸던 그녀가 그를 보고 왜 그렇게 두려워했는지, 왜 그렇게 절박하게 도망치려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박진성은 주먹을 꽉 쥐었다.그리고 간신히 목소리를 짜냈다.“누가 한 짓이야?”“양경호 씨입니다.”서원이 그 이름을 말하자 박진성은 정신이 혼미해졌다.“그 자식이 왜?”“아마 대표님을 위해서겠죠. 아니면 문채연 씨를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양경호 씨는 대표님을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대표님이 직접 하기 어려운 일이라면 대신 처리해 줄 사람입니다.”서원의 주먹이 떨렸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88화 정말 떠난 걸까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해도 박진성은 포기할 수 없었다.하지만 이미 사흘이 지났고 아무리 찾아도 민여진의 흔적은 없었다. 경찰도 수색을 중단했다.민여진에게 남은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1년 전 그녀의 유일한 혈육이 세상을 떠났으니 이제 그녀와 법적으로 연결된 사람은 오직 남편인 박진성뿐이었다.경찰이 찾아와 사망 확인서에 서명하라고 했다.그 순간 박진성은 손에 쥔 펜을 바닥에 내던졌다.“말도 안 돼요!”그의 태도는 단호했다.“죽었으면 시신이라도 확인 시켜줘요! 민여진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무슨 근거로 사망했다고 단정 짓는 거예요? 어쩌면 아예 그 차에 타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조사가 잘못된 거라고요!”경찰은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고 한숨을 쉬었다.“목격자도 있고 CCTV에도 분명히 찍혔습니다. 민여진 씨는 차 안에 있었습니다.”“중간에 내렸을 가능성은요?”박진성은 핏발 선 눈으로 경찰을 향해 번뜩였다.“시신을 직접 보기 전까지 서명하지 않을 거예요!”그는 결국 서명하지 않았고 몸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사고 현장인 남산교로 향했다.가드레일은 부서져 있었고 차가 돌진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그 앞에 서자 싸늘한 겨울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박진성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그는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민여진이 정말 여기서 떨어졌다고?’믿을 수 없는 그는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쥐었다.박진성은 다시 힘을 내어 몸을 일으키고 철제 가드레일이 없는 바위 절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그만해!”이정화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그녀는 그를 있는 힘껏 붙잡았다.“이제 됐잖아! 언제까지 이렇게 미쳐 있을 거야! 여기서 떨어지면 끝이야. 사람이 이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민여진은 죽지 않았어요.”박진성은 이를 악물었다.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그는 그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민여진은 그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자신을 벌주려고 숨어 있는 것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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