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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6화 넌 반드시 살려

Author: 연의 수정
이럴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그따위 연회에 참석하지 말았어야 했다.

호텔 지배인은 더 이상 박진성을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서둘러 경호원들에게 그를 뒤 따라가라고 지시했다.

박진성은 거센 빗속으로 돌진했다. 거센 빗줄기에 몸은 이미 흠뻑 젖어버렸다. 지금 내리는 비는 비가 아니라 칼날처럼 느껴졌다. 한기를 잔뜩 머금은 빗물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박진성의 피부를 무자비하게 긁고 있었다.

박진성의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민여진! 민여진! 얼른 나와!”

그는 호텔 주위를 샅샅이 살폈다. 30분 안에 그녀를 찾는다는 것은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산 아래로 내려가며 민여진을 찾던 도중, 산어귀 버스정류장에서 박진성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산을 손에 꼭 쥐고 있던 그녀는 어떻게든 비를 피해 보려 한 것 같았으나 강한 바람 때문에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머리카락은 옷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고, 추위에 몸을 떨며 구석에 웅크린 민여진은 마치 버려진 길고양이 같았다.

무언가가 박진성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민여진에게 다가가 있는 힘껏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땅에 떨어진 우산은 바람에 날려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민여진은 그제야 낮게 중얼거렸다.

“버스가...”

“뭐?”

“막차가, 안 왔어.”

민여진도 박진성의 곁에 남을 것을 결심한 상태였다. 민영미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고통스러운 삶이라도 이 악물고 기꺼이 살아갈 생각이었다.

“너, 떠날 생각이었어?”

어금니를 꽉 깨문 박지성이 가까스로 분노를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굳이 여기까지 나온 거야? 여기는 남연이니까, 여기서 숨어버리면 널 못 찾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민여진은 몸을 떨며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박진성의 힘이 더욱 세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입을 열어보려 했지만 다리에서는 자꾸 힘이 풀렸다.

그렇게 민여진은 박진성의 품에 힘없이 쓰러졌다.

“민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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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차에 오르려 하자 박진성은 뒤에서 민여진을 힘껏 끌어안았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민여진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멈춰 섰다. 그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엄청난 무력감을 느꼈다.박진성은 천천히 민여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그럼 오늘 하루는 나한테 맡겨. 내가 네 눈이 되어줄게. 관람차 위에서 풍경을 볼 수 없다고 해도, 내가 다 설명해줄게. 롤러코스터를 타도 그 스릴 내가 느끼게 해줄게. 눈을 잃었다고 삶의 희망까지 잃을 필요는 없어. 여진아, 나 한 번만 믿어줘.”박진성의 믿어달라는 말에 민여진은 먼 곳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흥분한 듯한 환호성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박진성은 민여진의 손을 잡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이 놀이공원 역시 그의 투자로 지어진 곳이었지만 박진성은 민여진과 함께 줄을 서며 그 설렘을 함께 즐겼다. 폐쇄된 공간 안으로 들어가던 그때, 박진성이 입을 열었다.“여긴 관람차야.”민여진은 긴장감으로 식은땀 어린 손을 유리창에 꼭 대고 있었다. 잠시 후, 관람차가 천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자 박진성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시간이 얼마 없을까 봐 일부러 일정을 좀 앞당겼어. 사실 여긴 밤에 오던 더 예쁘거든. 불빛들이 알록달록해서.”그는 차가운 손으로 민여진의 손을 잡으며 유리창을 함께 매만졌다.“저기엔 회전목마가 있어. 저걸 중심으로 모든 놀이기구가 있는데, 오늘 사람 진짜 많아. 그리고 저기, 이거 다 타면 저기 가서 롤러코스터를 탈 거야.”그는 민여진의 손을 잡고 유리창을 하나하나 짚으며 놀이기구의 방향을 얘기해 주었다. 그 덕에 민여진의 머릿속에는 대충 놀이공원의 그림이 떠올랐다.관람차에서 내리자 민여진은 박진성이 자신에게 가까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둘의 얼굴은 가까이 붙어 있었고, 고개를 돌리면 박진성의 피부에서 전해지는 열기와 고른 숨결이 느껴졌다.민여진은 다급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이게 가자.”뒤에서 민여진을 바라보는 박진성의 시선은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23화 감당할 수 없어

    박진성은 민여진이 오직 민영미 때문에 그 많은 음식을 다 비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박진성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소화제 하나를 꺼내 민여진의 입에 넣어주었다.“이제 가자.”시계를 한 번 확인한 박진성은 민여진에게 외투를 둘러주며 그녀를 데리고 함께 마당 밖으로 나갔다.서원이 두 사람을 따라가려 하자 박진성이 그를 막았다.“넌 오늘 집에 있어. 단둘이 따로 볼 일이 있으니까 굳이 안 따라와도 돼.”박진성이 민여진과 함께 집을 떠나자 강태화는 서원의 팔을 붙잡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넌 참 눈치도 없지. 딱 보면 몰라? 오늘 두 분이 데이트하러 가는 거잖아. 거길 끼려고 해?”“데이트요?”서원이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그럴 리가요?”“왜 말이 안 돼?”자세한 사정을 몰랐던 강태화가 손수건을 털며 말했다.“두 분 사이가 좀 복잡해 보이긴 하지만, 서로 마음이 있는 건 분명해. 뭔가 오해가 있었던 걸 거야. 이제 그 오해가 풀렸으니 같이 밥 먹으러 가고 데이트도 나가는 건 당연한 일 아니야?”서원은 차가 떠난 방향을 계속 주시하며 멍하니 서 있었다.오직 서원만이 둘의 복잡한 사이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박 대표님...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에요...’민여진은 조수석에 올라탔고 운전대는 박진성이 직접 잡았다. 가는 내내 민여진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안전벨트를 꼭 잡고 있었다.“진성 씨... 어디 가는 거야?”“가보면 알아.”민여진이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또 애견카페 가는 거야?”“아니.”그 말에 박진성이 가볍게 웃었다.“난 똑같은 수법 두 번 안 써. 맞힐 거면 다른 쪽으로 맞혀 봐.”더 이상 떠오르는 게 없었던 민여진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갈피를 못 잡는 민여진에 박진성이 힌트를 주었다.“네가 가고 싶은 곳.”민여진이 가고 싶은 곳이라고?그 말에 민여진은 더욱 혼란스럽기만 했다. 어릴 적, 그녀는 가고 싶은 곳이 아주 많았다. 빈민가에서 자라면서 바깥세상을 볼 기회에 민여진에게는 없었던 탓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22화 우리 관계에 진전이 있는 줄 알았는데

    “계란도 같이 먹어. 단백질이잖아.”숟가락을 들던 민여진이 동작을 잠시 멈추었다.그 변화를 눈치챈 박진성이 물었다.“왜 그래?”“아무것도 아니야.”민여진이 다시 고개를 숙였지만 그녀의 동작에는 망설임이 어려 있었다. 계란을 막 떠 입에 넣으려 하던 순간, 서원이 급히 민여진을 말리며 그녀의 숟가락을 빼앗았다.“여진 씨! 방금 선생님께서 약 먹은 두 시간 뒤에는 절대 계란을 드시면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뭐?”박진성의 미간이 한껏 찌푸려졌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민여진을 바라보며 물었다.“왜 나한테 말 안 했어?”민여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별거 아니니까.”“속 뒤집히고 토하고 식은땀까지 흘리면서 그게 별거 아니라고요?”서원도 화가 났는지 말을 덧붙였다.“설마 벌써 잊은 거예요? 겨우 한 입 먹고, 어떻게 됐었는지? 방금엔 저 계란을 한입에 다 넣으려고까지 했잖아요!”민여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창백해진 박진성의 얼굴은 점점 파랗게 질려갔다.서원이 진심으로 민여진을 걱정하는 듯 말하는 그 목소리도 짜증 났지만 민여진에게 더 화가 났다.그는 한 손으로 민여진의 손목을 강하게 잡아채며 말했다.“계란 먹으면 안 된다는 거 뻔히 알고 있었잖아. 왜 거절 안 했어?”서원이 말리지만 않았어도 민여진은 그 계란을 입에 넣고 말았을 것이다.“말했잖아... 별거 아니라고...”아파오는 손목에 민여진의 얼굴도 이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손목을 빼내려 했지만 그럴수록 박진성의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뜨거운 그의 손바닥으로 박진성이 지금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었다.“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럼 너한테 중요한 건 대체 뭔데? 그래, 넌 죽는 것도 안 무서우니까 별거 아니겠지. 죽겠다고 투신까지 한 사람한테 이깟 계란이 뭐가 무섭겠어?”민여진이 입술을 달싹였지만 변명할 기력이 없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그 모습에 박진성은 더 화가 났다.“민여진, 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내가 모를 줄 알아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21화 꿈에서 깰까 두려워

    마치 박진성이 이 미친 짓으로 민여진에게 뭔가를 전해주고 싶은 것 같았다.민여진은 다리가 풀려 그대로 박진성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그제야 민여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박진성의 심장이 얼마나 빠르게 뛰고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민여진.”민여진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낮게 가라앉은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천천히 민여진의 귓가에 입술을 갖다 대며 조심스레 물었다.“괜찮겠어?”박진성의 질문이 어떤 의도를 품고 있는지는 아주 명확했다. 민여진은 박진성이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꺼낸다는 게 너무 낯설었다. 만약 민여진이 여기서 고개를 젓기만 한다면 박진성은 뜨거운 숨결을 내뱉으면서도 조금의 주저 없이 그녀를 놓아줄 것만 같았다.민여진은 눈을 꼭 감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박진성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대답 안 하면, 나도 무언의 동의라고 받아들일게.”...모든 것이 끝나자 민여진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박진성은 그녀를 품에 안아 욕실로 들어가 몸을 씻겨준 후, 마치 소중한 보물이라도 다루듯 조심스레 다뤘다.박진성은 잠에 빠졌지만 민여진은 여전히 잠들 수 없었다. 그녀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물론 눈에 보이는 것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뿐이었지만 민여진은 억지로 눈을 뜨고 있었다. 마치 언젠가 한 줄기 빛이 자신의 눈으로 들어오길 바라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녀는 그 한 줄기 빛으로 자신의 곁에 누워 있는 이 남자가 누구인지 제대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정말 그 차갑고 매정한 박진성이 맞을까?왜 갑자기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이제 박진성은 민여진이 살아있기만 바라는 게 아니었다. 그는 목숨을 걸면서까지 차가운 비를 뚫고 그녀를 지켜주려 했다.몸 상태 때문에 임신 여부는 딱히 걱정되지 않았지만 민여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에 들 수 없었다.그녀는 지금 이 모든 것이 그저 한낱 꿈에 불과할까 두려웠다. 이대로 잠에 들면 자신의 꿈이 깨져버릴까 봐 무서웠다.그러면 민여진은 다시 차갑고 잔인한 현실로 돌아가야 했다.그렇게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20화 하루만 더 기다려

    “하지만 내일 바로 만나잖아. 오늘부터 그렇게 한다고 해도,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민여진의 걱정 어린 얼굴을 보며 박진성을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는 돌연 민여진의 손목을 꽉 쥐며 말했다.“그럼...”민여진은 멍하니 박진성을 쳐다보았다. 박진성은 이를 꼭 깨문 채 말했다.“조금만 더 미룰까?”그는 어떻게든 시간이 더 지체되길 미친 듯이 바랐다. 민여진이 아직 그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은 상태에 모든 게 밝혀지더라도 그 순간이 조금이라도 미뤄지길 바랐다. 단 하루라도.“더 미룬다고?”민여진은 넋이 나가버린 듯한 표정으로 박진성을 마주했다. 이윽고 아랫입술을 꽉 깨문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싫어.”그녀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난 오늘만을 손꼽아 기다려왔어. 이제 와서 조금 더 미루라면, 너무 고통스럽잖아.”“나도 이해해.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 가서 행복하게 잘 지낸다고 하면, 아주머니가 그 말을 믿으실까?”박진성은 민여진을 똑바로 응시하며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남은 일말의 망설임이라도 꺼내 보려 했다.“조금만 더 미룰까?”“내가 다 설명할 거야. 그냥 몸이 좀 안 좋았다고...”잠시 망설이던 민여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박진성의 손에 힘이 탁 풀려버렸다. 그 순간, 온몸의 힘이 모두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눈을 꼭 감은 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니까 네 삶은 다 아주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거야? 아주머니랑 만나는 게 네가 제일 원하는 거야?”민여진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만약 민영미가 아니었다면 민여진은 그날 밤,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망설임 없이 계속 길을 따라 걸어갔을 것이다.박진성의 일로도 그녀는 상처를 많이 받았고, 둘 사이에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존재했다.박진성은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잣집 자식이었고 그의 인생은 시작부터 화려하고 풍요로웠다.하지만 그에 비하면 민여진은 빈민가의 쓰레기 더미 속에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19화 이제는 돌도 따뜻해져야 할 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박진성은 일을 마치고 서재에서 나왔다. 복도는 어두웠고, 민여진의 방에서는 문틈 사이로 밝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문을 열고 들어간 박진성은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는 민여진을 발견했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저 앉아 있는 민여진의 모습에 박진성이 미간을 찌푸렸다.“새벽 다 됐는데, 아직도 안 자고 혼자 침대에서 뭐 하는 거야?”민여진은 박진성의 말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더니 옷을 향해 손을 뻗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내가 어떤 옷을 입고 가야 엄마가 좋아할지 생각 중이었어. 내일 아침에 엄마 만나러 가잖아. 예쁘게 입고 가고 싶은데, 뭘 좋아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민여진은 말을 마친 후, 약간 실망한 듯 고개를 떨구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나 진짜 딸 자격 없다, 그치?”박진성의 가슴이 답답했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이 그에게는 일종의 자극으로 다가왔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러 당장 내일 그 여자를 만나러 가야 했다.둘의 첫 만남이 어떻게 흘러갈지, 혹시라도 눈치 빠른 민여진에게 들통나는 건 아닐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둘이 만나는 장면을 떠올리자 이 상황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생각에 박진성의 마음은 묵직해져만 갔다. 그는 저릿해 오는 심장을 부여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뭘 입고 가든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왜 그런 걸 지금까지 고민하고 있어? 아주머니는 네가 뭘 입고 가든 신경 안 쓰실걸. 네가 딸인데, 뭘 입고 가든 널 싫어할 리 없잖아.”“그렇지...”민여진이 잠시 흠칫했다.박진성은 애써 감정을 추스르고 방 문을 닫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침대 위에 놓인 옷가지를 살펴보던 그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장밋빛 원피스를 꺼내 민여진에게 건네주었다.“이거 입어 봐, 내가 봐 줄게.”민여진은 재빨리 옷을 건네받아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몇 발자국 떼기도 전에 박진성의 목소리가 들렸다.“그냥 여기서 입어.”박진성이 미간을 찌푸렸다.“여기 무슨 다른 사람 있는 것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18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죽지 마

    민여진은 반드시 살아야 했다.만약 그녀가 죽어버리면 박진성은 후회 속에서 살아갈 것이고,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은 마음에 무너져내릴 것이다.하지만 만약 그때 호텔에서 보낸 차가 제때 오지 않았더라면 박진성 역시 민여진과 함께 빗속에서 죽음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그런 건 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걸까?수도꼭지를 돌려 뜨거운 물을 잠근 후 병실로 나왔다. 병실에는 민여진이 침대 위에 누워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 그녀는 꿈을 꾸면서까지 민영미를 찾고 있었다.병실을 나서려던 박진성은 민여진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박지성, 살아야 돼... 넌 살아야 해.”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파도가 일었다.뜨거운 불길 속에서 한 여자가 이를 악물고 박진성을 등에 업으며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박진성, 살아야 해, 넌 살아야 해.”그 순간, 몸이 겹쳐지는 듯한 기분에 박진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우스운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단지 외모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구해준 여자가 민여진이라고 생각했던 걸까?그럴 리 없었다. 분명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곁을 지켜줬던 사람은 문채연이었다....3일이 꼬박 지나고 나서야 민여진은 의식을 되찾았다. 악몽에서 깨어난 그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당황스러운 와중에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그 크고 따뜻한 손의 주인은 박진성 말고 없었다잠시 멍하니 있던 민여진은 식은땀에 젖은 등을 침대에서 떼어내며 천천히 안정을 되찾았다.모두가 살아있었다. 이제야 살아있다는 게 실감 났다.하지만 목에서는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손을 뻗어 물컵을 찾으려던 그때, 박진성이 선잠에서 깨어나 의식을 되찾을 민여진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컵을 건네주었다.민여진은 간단한 감사 인사를 건넨 후, 고개를 숙여 물을 마셨다.그녀가 물을 다 마시자 박진성은 물컵을 한쪽으로 치워주었다. 민여진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뭐 좀 물어볼게. 그때, 나 왜 구해준 거야? 우리 둘 다 죽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17화 이러면 우리 다 죽어

    박진성은 점점 험난해지는 길에 차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민여진은 이미 정신을 잃었고 푸르스름하던 얼굴은 따뜻해진 환경 속에서 더욱 뜨거워져만 갔다. 민여진은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계속 민영미만 찾아댔다.아무리 극한의 상황으로 몰려도 민여진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민영미뿐이었다.박진성은 이제 더 이상 질투조차 할 수 없었다. 민영미는 민여진에게 거의 반쪽 같은 존재였다.박진성은 이를 꼭 악문 채 민여진을 달랬다.“여진아, 버텨. 네가 버텨야, 네가 깨어나야 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어. 이제 벌써 1년 넘게 못 만났잖아. 그러니까 더 살아야 하지 않겠어? 아주머니를 위해서라도 견뎌야 해!”하지만 하늘은 박진성의 편이 아니었던 건지, 잘 가던 차가 도로 한복판에서 멈춰 버렸다.차는 길 한 가운데에서 멈춰 버렸고 우박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떨어졌다. 박진성은 외투를 벗어 민여진에게 둘러주고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차에서 내려 빗속을 달렸다.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달려보려 해도 날씨 탓인지 박진성의 두 다리는 얼음에 달라붙어 버린 듯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얼음장 같은 한기에 그의 두 다리에서는 고통이 밀려왔고 달리면 달릴수록 점점 더 굳어갔다.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지만 무감각해진 발바닥 때문에 공중에 떠 있는 것만 같았다.이대로 가다가는 박진성도 힘없이 넘어질 것만 같았다. 이런 날씨에 두 사람 모두 쓰러지면 둘 다 죽고 말 것이다.“박... 박진성...”드디어 박진성의 재킷 속에서 정신을 차린 민여진이 입을 열었다.“돌아가... 차 안에 있으면, 조금은 버틸 수 있을 거야...”민여진은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은 그녀에게 아주 평화롭게 느껴졌다.“우리 엄마 잘 부탁해. 그게... 내... 유일한 소원이니까...”“닥쳐!”박진성이 절규했다. 목구멍이 아릿해 왔고 얇은 입술은 불안함에 덜덜 떨렸다.“넌 살아! 넌 꼭 살아야 해!”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얼음장 같은 칼날이 목을 후벼 파는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16화 넌 반드시 살려

    이럴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그따위 연회에 참석하지 말았어야 했다.호텔 지배인은 더 이상 박진성을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서둘러 경호원들에게 그를 뒤 따라가라고 지시했다.박진성은 거센 빗속으로 돌진했다. 거센 빗줄기에 몸은 이미 흠뻑 젖어버렸다. 지금 내리는 비는 비가 아니라 칼날처럼 느껴졌다. 한기를 잔뜩 머금은 빗물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박진성의 피부를 무자비하게 긁고 있었다.박진성의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민여진! 민여진! 얼른 나와!”그는 호텔 주위를 샅샅이 살폈다. 30분 안에 그녀를 찾는다는 것은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산 아래로 내려가며 민여진을 찾던 도중, 산어귀 버스정류장에서 박진성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우산을 손에 꼭 쥐고 있던 그녀는 어떻게든 비를 피해 보려 한 것 같았으나 강한 바람 때문에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머리카락은 옷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고, 추위에 몸을 떨며 구석에 웅크린 민여진은 마치 버려진 길고양이 같았다.무언가가 박진성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민여진에게 다가가 있는 힘껏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땅에 떨어진 우산은 바람에 날려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민여진은 그제야 낮게 중얼거렸다.“버스가...”“뭐?”“막차가, 안 왔어.”민여진도 박진성의 곁에 남을 것을 결심한 상태였다. 민영미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고통스러운 삶이라도 이 악물고 기꺼이 살아갈 생각이었다.“너, 떠날 생각이었어?”어금니를 꽉 깨문 박지성이 가까스로 분노를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래서 굳이 여기까지 나온 거야? 여기는 남연이니까, 여기서 숨어버리면 널 못 찾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민여진은 몸을 떨며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박진성의 힘이 더욱 세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입을 열어보려 했지만 다리에서는 자꾸 힘이 풀렸다.그렇게 민여진은 박진성의 품에 힘없이 쓰러졌다.“민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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