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석은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웃음에 과거의 수많은 추억들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아, 아냐...”그는 말을 더듬으며 차를 몰기 시작했지만 숨조차 조심스럽게 쉬고 있었다.“고유진이랑은 언제 약혼식 다시 올릴 거야?”고하린은 뜻밖에도 상냥한 말투로 먼저 말을 걸었다.진우석은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그녀의 질문을 듣고 그녀를 흘깃 바라봤다.“그게... 아직 확정은 안 됐고 너희 오빠 커플도 결혼 이야기 중이라 아마 그쪽이 먼저 할 수도 있어. 오늘 밤에 너희 오빠 여자 친구도 와서 같이 상의할 거야.”고하린은 고개를 끄
“고하린!”고재헌이 더는 참지 못하고 고함을 치자 집안 사람들 전부 깜짝 놀라 움찔했다.양서정은 얼른 앞으로 나서서 예비 며느리를 달랬다.“리안아, 하린이 말은 신경 쓰지 마. 너도 알다시피 하린이가 인신매매로 끌려가서 삼 년이나 고생했잖니. 그 바람에 정신이 좀... 종종 헛소리를 하기도 해.”‘저게 친엄마라는 사람이 할 말인가?’고하린은 싸늘하게 웃기만 할 뿐 반박하지 않았다.조리안은 고하린을 본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일었고 애써 마음을 눌러왔지만 이 상황에서 고하린 쪽이 먼저 싸움을 걸 줄은 몰랐다.조리안은
조리안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그 옆에선 고유진이 진우석에게 따지고 있었다.“조리안 저 여자가 언제부터 오빠를 좋아했던 거야? 난 왜 한 번도 못 들었지?”고유진은 화가 나서 눈을 부라렸다.진우석은 억울한 표정으로 답했다.“그게... 조리안이 날 좋아한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난 조리안 안 좋아했어. 예전에 조리안이 하린이한테 찾아간 적이 있어서 너도 아는 줄 알았는데...”진우석은 고유진을 달래려다 오히려 조리안까지 완전히 건드려 버렸다.“진우석! 너 같은 게 뭐라고! 내가 그땐 눈이 삐었지! 이제는 널 봐도 아무 감
고재헌은 자신이 방금 휘두른 손을 내려다보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후회의 기색이 분명했다.“유진아, 오빠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오빠는...”“나 이제 못 살아! 흐아아아...!”고유진은 울부짖으며 얼굴을 감싸 쥔 채 계단으로 뛰어올랐다.“유진아!”고재헌이 뒤따라 올라가려는 순간, 조리안도 등을 돌려 뛰쳐나갔다.그는 둘 사이를 번갈아 보며 망설이다가 결국 조리안을 따라 마당 밖으로 달려 나갔다.마당에서 그녀의 팔을 붙잡자, 조리안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그대로 고재헌의 뺨을 후려쳤다.“놓으라고! 고재헌, 너 나랑 계속
어떤 사람은 비중을 줄이자고 했고 어떤 사람은 종목을 갈아타자고 했으며 또 어떤 이는 하락하면 매수 기회라고 주장하며 김하나, 유지훈과 주현은 문자를 주고받았다. [이 여사는? 이번에 돌아오고는 잘 안 보이던데. 아직 몸 안 좋은가?][그러게, 이 여사. 어떻게 해야 해? 알려 줘.][아직 너무 이른가 봐, 아마 잘듯.]고하린은 한참을 달리다 숨이 차올라 속도를 늦췄고 알림이 계속 울려서 그녀는 결국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나 왔어. 어제 장이 많이 올라서 나는 어젯밤에 일부 매도했어.][그럼 오늘은 떨어진다는
“지금 뭐 하는 거야?”고태진이 소리쳤지만 고하린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가정부 방은 못 쓰게 막아놨다면서요. 그럼 원래 제 방에서 자야죠.”“엄마! 엄마 지금 보고 있어요?”고유진은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쟤 제 방 가겠대요! 절대 안 돼요!”양서정이 급히 나서며 말했다.“하린아, 거기서 멈춰!”하지만 고하린은 아무런 반응 없이 계속 걸었다.“재헌아, 너 올라가서 끌어내려!”고태진이 단호하게 명령했다.그러자 고재헌은 목을 뻣뻣이 세우며 말했다.“왜 제가 가요? 아버지가 가시든가요.”“이 자식이!”
“유진이가 힘들었다고요?”고하린은 오히려 더 크게 웃으며 손을 뻗어 이 화려한 대저택을 가리켰다.“이런 대저택에서 살면서 내 방 차지하고 내 보석 훔치고 내 옷이랑 내 돈은 다 갖다 버리고 고씨 집 장녀라는 명함 달고 폼 나게 살았죠. 정말 고통스러웠겠네요? 밤마다 웃느라 잠도 못 잤겠어요.”“고하린!”고태진이 그녀의 말을 듣고 또다시 벌컥 소리쳤다.“넌 정말 제정신이 아니구나! 오늘은 반드시 이 집에서 나가야 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든 상관없어, 우리에겐 유진이 하나만 딸이야!”그 말에 고하린의 웃음이 뚝 멎었고 눈빛
고하린은 가족의 압박이나 회유 따위에 흔들릴 생각은 없었다.“...”고태진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분노로 가득 찼고 방금 전 잠시 보였던 유화적인 태도를 금세 후회했다.“그래도 아빠한테 감사는 드려야겠네요. 양심이라는 게 아직 조금은 남아 있단 뜻이니까요. 사실 말인데요, 만약 오늘 진짜로 절 강제로 쫓아냈으면 저 바로 라이브 켜고 기자들 불러서 ‘고씨 집 추방극’ 생중계했을 거예요. 어쩌면 덕분에 인터넷에서 화제도 되고 협찬도 들어오고 이것저것 팔면서 돈도 벌 수 있었겠죠?”말을 마친 그녀는 일부러 천천히 일어나 옷깃을
고하린은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바닥 위에는 루비 목걸이가 놓여 있었다.고유진의 눈에서 금방이라도 꺼질 듯하던 눈빛이 다시 활활 타올랐고 흥분한 그녀는 거의 펄쩍 뛸 뻔했다."엄마! 보세요! 역시 언니가 훔친 거였어요!"방금 전까지만 해도 울며불며 망가졌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얼굴에는 생기가 가득했다.고하린은 그 놀라운 변신을 보고 피식 웃었다."유진아, 너 진짜 충무로 가야겠다. 연기대상은 네 꺼야."양서정은 딸의 손에 들린 목걸이를 보고 깊은 실망에 빠졌다."하린아, 넌 왜 이런 짓을 해? 손에 들고
고하린은 천천히 입꼬리를 올리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유진아, 네가 그때 인신매매범이랑 짜고 날 팔아넘긴 거 인정하면 그 목걸이 찾는 거 도와줄게. 어때?”이 말은 고유진만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그때 네가 한 짓 인정해. 그럼 네가 내 방에 몰래 숨겨놨던 그 물건, 돌려줄게.’협박이자 거래였고 고유진은 놀라고 당황해 말까지 더듬었다.“언니...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나, 나 정말 여러 번 말했잖아. 나 그 인간들 모른다고... 짜고 그런 적 없다고... 언니가 자꾸 이렇게 억울하게 몰아가면 너무하잖아...”고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고유진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1층 가정부 방문 앞에 도착하자, 양서정은 문을 쾅 두드렸다. 안에서 반응이 없자,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문을 밀고 들어갔다.고하린은 작은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고 가족이 허락 없이 들어온 상황에도 놀라거나 화내지 않고 차분히 고개를 돌려 한마디 했다.“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고유진은 엄마 뒤에 서서 몸을 반쯤 숨긴 채, 자신이 직접 나서진 않고 엄마가 먼저 나서길 기다리는 눈치였다.양서정 역시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고하린을 노려보며 바로 물었다.
“그럼! 남자가 뭐 대단한 존재라고.”두 사람은 깔깔 웃으며 새로 산 집을 신나게 정리했고 이제 이사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집에 돌아온 고하린은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들어섰고 거실에는 양서정과 고유진이 함께 있었다.큰딸이 들어오는 걸 본 양서정은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 역할을 하는 듯한 말투로 말을 건넸다.“하린아, 몸도 안 좋은데 맨날 밖에 나돌아서 뭐 하니? 집에서 좀 쉬면 안 돼?”고하린은 고개도 안 돌리고 한마디 툭 던졌다.“괜히 집에 있다가 눈에 거슬릴까 봐요.”양서정은 말문이 막혔다.고하린은 그대로
“누가 갑자기 안 판다고 했는데요?”고하린이 조용히 던진 한마디에 윤준서는 바로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고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아요. 정말 전액 일시불로 결제하신다면 2억 깎아드리죠.”허리연이 기뻐서 고하린의 팔을 덥석 잡았다.“대박이야, 하린아! 이건 사야 돼!”겉으론 무표정한 고하린도 속으론 은근히 들떴다. 설 2억이나 깎을 줄은 몰랐다. 이 사람, 혹시 아까 욕먹고 정신이 번쩍 든 건가? 갑자기 착해지기로 한 건가?서로 조건이 맞았으니 곧바로 계약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중개인은 신이 나서 이
고하린이 윤준서에게 직설을 날리는 내내, 옆에 있던 허리연은 끊임없이 고하린의 소매를 붙잡고 속삭였다.“하린아, 제발 그만 좀 해...”윤준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온갖 쏟아지는 욕설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이미 화가 극에 달해 무감각해졌는지, 아니면 마음을 비운 건지, 그는 갑자기 느긋하게 의자를 당겨 앉더니 한쪽 다리를 우아하게 꼬고 앉은 얼굴엔 담담한 미소까지 떠올랐다.“다 말했어요?”“아직요. 당신도 진우석이랑 똑같아. 겉과 속이 다르고 가식에...”“악!”고하린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허리연이 놀라서 벌떡
“제가 제 집 안 판다는데 그게 불법인가요?” 윤준서는 중개업자의 말을 단호히 끊으며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훑어봤다.중개업자는 전신이 얼어붙은 듯 굳어버렸다. “그건... 물론 불법은 아니죠. 다만 지금처럼 좋은 기회를 놓치시면 나중에 좀 아쉬울 수도 있어서요...”그러나 윤준서는 그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서려 했다.그때 고하린이 천천히 두 팔을 교차하더니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윤준서 씨, 돌팔이에다가, 쪼잔한 거북이에 속 좁기까지 하신 줄은 몰랐네요.”허리연은 그 말에 화들짝 놀라 그녀
고하린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허리연을 바라봤다.“너... 설마 걔한테 반한 거 아냐?”“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좀 감탄했을 뿐이야. 내가 감히 넘볼 급은 아니지.”“감탄도 하지 마. 너 윤씨 가문이 뭐 하는 집안인지 까먹었어? 그 인간이 의학 연구에 투자하는 거, 성공만 하면 어마어마한 이익이야. 업계 독점도 가능하다고.”허리연의 얼굴은 갑자기 시든 꽃처럼 축 처졌다.“원래는 좋은 얘기였는데 네가 말하니까 갑자기 이상하게 들리잖아...”고하린은 고개를 숙인 채 폰을 꺼내 윤씨 가문의 사업 구조를 대충 검색해 보더니
윤준서가 말했다.[다음 주 봐서 시간 되면 갈게.]그 시각, 고하린은 영화를 보던 중이었고 자꾸만 반짝이는 알림에 결국 앱을 열어 메시지를 확인했다.“오프라인에서 만남?”순간적으로 거부감이 들었지만 잠시 고민한 끝에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몸이 좀 안 좋아서 빠질게. 괜히 분위기 망치기 싫어서. 너희끼리 재밌게 놀고 밥값은 내가 낼게. 그때 단톡방에 선물 쏠게.]이 여섯 명 중 자기가 제일 돈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가지는 못해도 밥값 정도는 당연히 부담해야 할 예의였다.이때 유지훈이 물었다.[이 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