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영은 두 개의 유리컵을 꺼내 정수기에 다가갔다. 그리고 물이 가득 찬 겁을 현시우에게 건넸다. 그가 컵을 받으려 할 때 유월영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시우 씨. 혹시 이렇게 급하게 돌아온 이유가 어젯밤 일 때문이야?”현시우는 그녀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묵묵부답에 유월영은 오히려 그가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유월영은 그의 약혼녀였다. 다른 남자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과 비록 둘 다 약에 취한 상황이었고 그가 생각하던 그런 일은 없었지만 그녀는 어쨌든 현시우에게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하지만 유월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머리가 아파왔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떼려는 순간 현시우는 물잔을 받아서 들며 평온하게 말했다. “다 알고 있어. 네 잘못이 아니란 것도. 걱정하지 마. 누구에게 이 책임을 물어야 할지 잘 알고 있어.”유월영은 그의 처리 방식이 언제나 냉정하고 결단력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누굴 찾아가려고? 연 대표도 모르고 있었던 일이야.”“그를 찾아가려던 게 아니야...”현시우는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긴장돼? 내가 그를 찾아가 복수할까 봐 걱정하는 거야?”현시우는 그녀가 어젯밤의 상황에서 연재준과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짐작했었지만 상관이 없었다. 그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연재준을 걱정하고 있는 유월영의 모습이었다. 유월영은 처음으로 그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내 생각에 더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은 놀이공원 사건이야. 더 이상 언론에 퍼지지 않도록 막아야 할 것 같아.”그녀는 비록 숙취로 인해 평소처럼 머리가 맑지는 않았지만 그 사건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다.현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서 내가 오늘 밤 너에게 서울 가는 비행기 표를 예약했어. 짐을 싸고 먼저 가 있어. 내가 이쪽 일을 해결하고 나면 곧 따라갈게.”유월영이 불안한 듯 물었다. “여기 남아 처리할 일이 뭐가 있어?
“...”유월영은 연재준과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을 기분이 아니어서 다시 한세인에게 말했다.“비행기표 예약하세요. 지금 당장 신주시로 돌아가야겠어요.”한세인은 이미 항공편 정보를 조회하고 있었다.“아가씨, 가장 빠른 비행기는 내일 아침 9시 30분입니다.’지금 밤 10시가 넘었고 더 이상 항공편이 없었다.하지만 유월영은 내일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전세 비행기를 신청할 수 없을까요?”한세인이 고개를 저었다.“항공사 직원들도 이미 퇴근하고 없습니다. 게다가 요즘 전세 항공편이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어서 가장 빨라야 내일 오전에나 가능해요.”유월영은 약간 짜증이 나 관자놀이를 눌렀다.연재준은 한참 동안 정신없이 움직이는 유월영을 바라보다 말했다.“왜 나한테는 안 물어봐? 내 전세기 타면 되는데, 탈래?”유월영이 바로 눈을 반짝이며 그를 바라보았다.“지금 바로 출발할 수 있어요?”“그래.”연재준의 말에 갈피를 잡지 못하던 유월영은 순간 안도감이 차올랐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왜 그렇게 서두르는지 말해줘.”유월영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뉴스 안 봤어요?”연재준이 미간을 찌푸렸다.“저녁 뉴스? 아니, 나는 방금 수영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다음 약속 장소 가는 중이라서 핸드폰을 볼 시간이 없었어. 무슨 일이 있었어?”‘강수영을 집에 데려다줬다고?’유월영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내가 수영 씨한테 따지러 갈까 봐 서둘러 보낸 거예요?”연재준이 살짝 미소 지었다.“아니야. 그럴 리가. 우리 고 대표님같이 아량이 넓은 사람이 그런 어린애와 따지기라도 하겠어? 내가 여기로 일 보러 오면서 그냥 가는 길에 데려다준 것뿐이야.“빈말은 그만하시죠.”유월영이 쓴웃음을 지었다.“수영 씨 나랑 동갑인데 무슨 어린애예요? 그리고 연 대표님은 어제까지 신주시에서 한가로이 있었으면서 오늘 급한 일이 있어 왔다고 하는 건 너무 억지 아닌가요?”연재준은 유월영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가며 눈을 반짝이였다.“그래서 당신도 어제 일에
“...”유월영은 무슨 말을 해도 타격감이 없는 그의 태연한 표정을 노려보다 입술을 꾹 다물고 소파에 앉았다.연재준이 찻잔을 내밀며 말했다.“한 번 마셔봐.”허브차의 향긋한 냄새가 전해지자 유월영의 미간이 점차 느슨해졌다.몇 초 후, 유월영은 그가 건넨 찻잔을 받았다.연재준은 차를 마시는 그녀의 모습을 다정하게 바라보다가 물었다.“허브차가 신경을 안정시켜준다고 하더라고. 아까보다 좀 진정이 되지 않아?유월영은 잠시 멈춰서 연재준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제야 유월영은 자신이 너무 불안해하자 그가 일부러 주의를 돌리려고 그랬다는 것을 깨달았다.유월영은 그의 배려를 받아들이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차를 마셨다.연재준은 옆에 앉아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한참 확인하다 이미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하고는 얼굴을 찡그리며 신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신주시.신현우는 막 경찰서에서 나와 전화를 받았다.비록 깊은 밤이었지만 문 앞에는 그를 인터뷰하려는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그는 경호원의 보호를 받아 겨우 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연재준이 바로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에요?”신현우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사고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이 일의 책임을 분명히 우리 회사에 물을 거예요. 신씨 가문이 곤경에 처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누구겠어요?”그는 유월영을 의심하고 있었다.하지만 연재준이 고개를 저었다.방금 사상자가 나오고 여러 사람들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유월영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었다. 그녀가 범인일 가능성은 없었다.아무리 그녀가 차갑고 냉정한 모습을 보일지라도 그녀는 본성적으로 선량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렇게 두려워하고 무서워했던 것이다.“월영 씨는 아니에요.”유월영이 그를 바라보았다.연재준의 시선은 차분하지만 확고했다.신현우가 물었다.“무슨 근거로 그렇게 확신하세요?”연재준이 말했다.“월영 씨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우리 모두 지금 여기 살아있지 못할 거예요.”유월영은 언제나 법
“내가 현시우라고 말한 게 아니라 바로 당신이 그렇게 행동하는 거야.”연재준이 부드럽게 말했다.“만약 당신이 현시우가 한 게 아니라는 걸 확신한다면 그렇게 불안해하지도 않았겠지.”유월영은 목이 막힌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마침 한세인이 핸드폰을 그녀 앞에 내밀었다. 전화는 현시우한테서 걸려 온 것이었다.유월영은 벌떡 일어나 VIP 라운지를 나가 밖에서 전화를 받았다.그녀는 인사도 없이 바로 물었다.“신 대표의 기술단지 그 사건, 시우 씨가 그런 거야?”현시우는 유월영이 아직 공항에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차분하게 말했다.“아직 호텔로 가지 않았어? 내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라고 시켜놨는데. 조금이라도 먹어야 밤에 배고프지 않을 거야.”유월영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나 지금 신주시로 돌아가려고.”현시우가 말렸다.“거기에 있는 일부터 처리해. 여긴 내가 맡을 테니까.”유월영이 입술을 깨문 채 말했다.“시우 씨가 했든 아니든, 나는 지금 여기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돌아갈 거야.”현시우가 부드럽게 말했다.“월영아, 내 말 들어.”유월영은 눈시울을 붉히며 처음으로 그에게 크게 외쳤다.“내 말 못 들었어? 지금 당장 돌아가야겠다고!”연재준은 그 소리를 듣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현시우는 전화 너머로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널 그쪽으로 보낸 이유가 바로 신주시 일에 엮이지 않게 하려고 그런 거야.”유월영은 머리가 멍해지며 물었다.“그럼...그 폭발이 정말 시우 씨가 한 게 맞아?”그녀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소리쳤다.“시우 씨 미쳤어?! 4명이 죽고 17명이 다쳤어. 이건 다 사람 목숨이야! 그 사람들은 아무 잘못 없잖아! 우리의 원한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왜 그 사람들을 끌어들인 거야?!”현시우는 잠시 침묵했다.그 침묵은 유월영이 자신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에 말문이 막힌 것인지, 아니면 그가 묵인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그러고 나서 그가 반문했다.“네가 보기엔, 내가 그런
유월영은 이마를 만져보았지만 아무 느낌도 없었다.한세인이 장갑을 벗고 그녀의 이마를 만져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아가씨, 정말 열이 있으세요.”비행기에서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느낀 이유가 있었다. 유월영은 한숨을 내쉬며 왜 하필 이때라는 생각이 들었다.한세인이 급히 말했다.“제가 의사를 불러올게요.”그러자 연재준이 유월영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내가 의사를 데리고 왔어요. 따로 부를 필요 없어요.”유월영이 놀라서 몸부림쳤다.“이거 당장 내려놔요! 그냥 약간 열이 있는 거지 걸을 수는 있거든요!”“괜찮았으면 핸드폰도 안 떨어뜨렸겠지. 묵는 호텔이 어디예요?”연재준이 한세인을 보며 물었다. 한세인이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쉐라톤 호텔입니다.”그러자 연재준은 유월영을 안은 채 공항을 빠져나와 온 차에 올랐다.분명 차도 운전기사도 모두 유월영의 것이었지만 연재준은 마치 주인인 듯 명령했다. “호텔로 가세요.”운전사는 잠시 망설이다 곧 차를 출발시켰다.유월영이 그를 밀쳐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전까지는 몸 상태가 괜찮다고 생각했으나 열이 있다고 하니 갑자기 몸의 불편함이 연이어 밀려왔다.유월영은 머리가 멍해지면서 감기 몸살 증상이 한꺼번에 밀려와 맥이 풀렸다. 그녀는 연재준에게 저항할 힘조차 없어졌다.연재준은 그녀가 눈을 감고 얼굴을 찡그리자 부드럽게 달랬다.“금방 호텔에 도착해. 조금만 참아.”유월영은 고개를 돌렸다.한세인은 유월영이 연재준에게 안겨 있는 모습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유월영을 다시 데려오려고 했다.연재준은 한세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저 유월영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담담하게 말했다.“만약 월영 씨 건강보다 주인에 대한 충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월영이를 깨워서 데려가세요.”한세인은 멈칫하다 유월영의 손을 놓았다.호텔에 도착하자 연재준은 유월영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유월영은 이내 정신을 차리며 그를 밀쳐내고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럴 필요 없어요.”
유월영의 뜨거운 눈물의 셔츠를 젹셔오자 연재준의 가슴은 마치 불에 데인 것처럼 아팠다.그는 유월영이 막 악몽에서 깨어난 걸 알고 마음과 감정이 불안정할 것이라 여겨 원래는 그녀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녀가 울자 그 역시 자기도 모르게 몸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결국 그는 유월영을 더 꽉 안아 자신의 품에 눌러 안았다.“울지 마.”유월영은 원래 잘 울지 않는 성격이었다. 연재준은 처음으로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보았다.“월영아...”유월영은 눈을 감기만 해도 그 잘린 팔다리들이 떠올랐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나 때문이야...내가 그 모임에 가지 않았다면 약을 먹지 않았을 거고 시우 씨도 그렇게 화를 내지 않았을 거고 그러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유월영이 혼자 중얼거리며 자책하자 연재준은 눈살을 찌푸렸다.“네 잘못이 아니야.”유월영은 그의 가슴을 밀었다.“맞아요. 이게 다 재준 씨 잘못이야.”연재준은 유월영의 눈물에 젖은 얼굴을 볼지 두려워 꽉 안은 팔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것이 그를 너무 아프게 할 것 같았다.“그래 내 잘못이야. 월영아, 지금은 일단 자 둬. 남은 일은 내일 이야기하자, 알겠지?”유월영은 기진맥진하고 머리가 혼란스러워 눈을 감았다.연재준은 그녀가 더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자세를 조금 바꾼 후 그녀를 그렇게 안은 채로 부드럽게 달랬다.“자,이제 걱정하지 말고 자.”반 시간이 지나고 연재준은 품 안의 유월영이 다시 깊이 잠든 것을 느끼고는 천천히 그녀를 놓아주었다.침대 머리맡의 희미한 야간 등이 빛나고 있었고 그는 유월영의 눈가에 마른 눈물 자국이 남아 있는 것을 보았다.하지만 그는 유월영이 깨울까 봐 감히 닦지 못했다.연재준은 예전에 그녀가 너무 냉정하고 너무 이성적이며 사람한테 의지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녀가 정말로 이렇게 약해진 모습을 보자 그는 오히려 세상이 미울 지경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자신까지도 어떻게 그녀를 이렇게 만들 수 있는지 마음이 아파졌다.연재준은
수술이 끝나 병실로 옮겨질 때까지도 유월영은 자신이 유산으로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그녀를 병실로 데려간 간호사는 인적 사항을 등록하기 위해 그녀에게 물었다.“유월영 환자분, 가족들은 어디 계신가요?”유월영은 초점을 잃은 눈으로 천장만 올려다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간호사가 재차 물었다.“유월영 씨, 가족들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이때, 약품을 정리하던 다른 간호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한테 줘. 그거 내가 입력할게. 환자가 구급차에 실려올 때 신분증이랑 카드 나한테 줬었어. 바로 등록하고 비용 결제하면 된다고. 아마 이 환자는….”유월영은 그제야 입술을 달싹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저는 가족이 없어요.”진한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를 잃었다는 상실감이 점점 더 진실되게 다가왔다. 그녀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었다.깊은 절망감이 찾아왔다.수술을 마친 유월영은 홀로 병원에서 사흘간 입원해 있었다.그 동안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나흘 째 되던 날, 드디어 연재준에게서 전화가 왔다.“유 비서, 무단 결근 3일이면 충분히 휴식하지 않았어? 지금 옷 입고 서덕궁으로 와.”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배경 음악과 여자들의 웃음소리까지 같이 전해져 왔다. 유월영은 지금 입원 중이라고 말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유 비서.”낮게 깔린 중저음 목소리가 재차 전해졌다.화가 많이 났다는 증거였다.유월영은 하려던 말을 도로 삼키고 그대로 병원을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부랴부랴 서덕궁으로 향했다. 그녀는 가는 길에 차 안에서 화장을 했다.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녀는 대충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고 카운터로 직행했다.“해운그룹 연 대표님이 계신 방이 어디죠?”고개를 든 어린 남직원은 눈앞의 미모의 연인을 보고 수줍게 웃으며 다급히 길을 안내했다.“연 대표님은 1번 룸에 계십니다. 제가 안내할게
술자리가 끝나고 유월영은 고객사 직원들을 한 명씩 차에 태워 보냈다. 모든 일이 끝난 뒤, 그녀는 피곤한 얼굴로 길가 가로등에 등을 기댔다. 이미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오장육부가 뒤틀리듯이 아팠다.립스틱은 이미 지워진지 오래고 파리한 입술에는 핏기 한 점 없었다.그녀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 연재준의 운전기사가 다급히 다가오며 그녀에게 말했다.“유 비서님, 먼저 차에 타실래요?”유월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힘겹게 뒷좌석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 문이 열리더니 밖에 연재준과 여자애가 서 있었다. 같이 타려고 했는데 유월영이 먼저 타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연재준이 그녀를 보고 인상을 확 찌푸렸다.여자는 다급히 달려가서 조수석 문을 열며 말했다.“대표님, 제가 앞에 탈게요.”연재준은 짜증스럽게 문을 쾅 닫고 차에 오르며 말했다.“유진이 먼저 데려다줘.”유월영은 고통스럽게 두 눈을 감았다. 온몸에 힘이 다 빠지고 속이 울렁거렸다. 유산하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술을 마시니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차는 한 낡은 아파트 구역으로 들어섰다. 유월영이 잠깐 눈을 붙이고 있는데 연재준이 갑자기 그녀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골목이 어두워서 위험해. 유 비서가 유진이 집까지 좀 데려다줘.”백유진이 흑수정 같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말했다.“괜찮아요, 대표님. 언니도 피곤할 텐데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있어요. 조금만 더 걸으면 도착해요. 혼자 올라갈게요.”차에서 내린 그녀는 뒷좌석 차창에 대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대표님은 월영 언니 바래다줘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좋은 꿈 꿔요.”차갑기만 하던 연재준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언뜻 스치고 지나갔다.“그래, 좋은 꿈 꿔.”유월영은 차에 오르고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운전기사는 유월영을 집에 데려다주는 대신, 연재준의 동해안 별장으로 차를 돌렸다. 그는 연재준의 가까운 심복 중 한 명으로써 눈빛 하나로도 연재준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다.집 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