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준의 목소리는 늦봄 추위보다 더 차가웠다.“신 대표님, 이런 서프라이즈를 왜 저한테는 미리 알려주지 않으셨나요?”오성민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연 대표님께서 얼마 전까지 몸이 안 좋으셨잖아요? 이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요양하시는데 방해 될까 얘기안했어요.”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이건 고 대표님께 사과의 성의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니 연 대표님과는 별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아셨으니 늦지 않다고 생각되어서...”당연히 이 말들은 모두 핑계였다.연재준은 이 서툰 변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집요하게 물었다.“오 변호사님과 신 대표님은 이‘선물’을 준비하기 전에 조사하지 않으셨나요? 백유진 씨는 저희 어머니의 간병인입니다.”신현우는 처음 듣는 듯 말했다.“그런 관계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냥 고 대표님이 이 여자를 찾고 있다는 말을 듣고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에...”“맞아요.” 오성민이 다시 유월영을 바라보며 말했다.“고 대표님. 우리 사이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에 서로 불편한 상황이 벌어진 것 같은데 오늘 이 자리를 빌려서 오해를 풀면 어떨까요?”유월영은 소파에 앉은 채 다리를 꼬며 말했다.“오 변호사님이 말씀하시는 오해란 게 혹시 계향산에서의 일인가요?”오성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모두 제 비서가 꾸민 일이기 한데 사장인 제가 관리가 미흡했던 잘못도 있으니 제가 대신 고 대표님께 사과드립니다.”아니나 다를까 오성민은 모든 책임을 비서에게 돌렸다.유월영이 술을 한 모금 마시며 싸늘하게 웃었다.오성민이 이어 말했다.“고 대표님께서 오늘 이 선물을 받아주신다면 이 일을 넘어가는 거로 알겠습니다. 어떠세요?”유월영이 대답 대신 물었다.“신 대표님 생각은요?”신현우가 차분하게 대답했다.“고 대표님과 제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 프로젝트가 자꾸 겹치는 것 같은데, 우리 서로 더 많은 분야에서 협력하는 게 어떨까요? 그래야 외부에서 우리 관계를 두고 불필요한 추측을
유월영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그녀는 백유진의 턱을 꽉 잡고 강제로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저 사람에게 구해달라고 해봐야 소용없어.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 질문에 답하는 것뿐이야.”그녀의 무심한 말투는 갑자기 분노로 변하며 소리쳤다. “말해!”백유진은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다시 한번 연재준을 바라보았고 그가 자신을 구해주기만을 바랐다...그러나 연재준도 똑같이 물어왔다.“왜 그랬어?”“...” 백유진은 체념한 듯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이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오늘 대답하지 않으면 정말로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지금 눈앞의 유월영은 3년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백유진은 유월영이 두려워졌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그, 그건...큰 사모님이 시켜서...”“큰 사모님? 윤미숙 씨를 말하는 거야?”유월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네가 윤미숙 씨랑 서로 알고 있다고?”백유진은 두려움에 눈물을 흘렸다. “...저는 연 대표님을 오랫동안 좋아해 왔어요. 윤미숙 씨가 먼저 저를 찾아와서 만약 연 대표님과 함께 있고 싶다면 유월영 씨를 제거해야 한다고 했어요. 당시 제가 잠시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 말대로 따랐어요. 하지만 정말로 유월영 씨가 임신한 줄은 몰랐어요. 저는 단지 당신을 쫓아내고 싶었을 뿐이에요...”“단지 쫓아내고 싶었을 뿐이라고?”유월영은 지금까지도 그 수술할 때 살을 도려내는 듯한 그 고통을 잊을 수 없었다.그녀는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단지 나를 깊은 산속에 팔아넘겨서 나이 많고 장가 못 간 시골 영감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다는 거야? 백유진 씨, 당신 정말 자비롭네.”노현재는 그저 두 여자 사이의 작은 갈등이라고 생각하고 관여할 생각이 없었지만 백유진의 말을 듣고 난 후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그는 술잔을 내려놓고 유월영의 옆으로 다가가며 얼굴이 한층 차가워졌다.백유진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상
술잔이 깨지는 소리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유월영에게 향했다.유월영이 건조하게 웃으며 말했다.“실수로 컵을 깼네요.”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그 말투만큼 가볍지 않았다. 오히려 겨울의 호수처럼 얼어붙어 있고 햇볕에도 녹지 않는 차가운 느낌이었다.그녀는 바닥에 엎드려 있는 백유진을 보며 눈에는 희미하게 핏발이 섰다.백유진도 위험을 감지하고 울며 뒤로 물러났다.연재준이 곧바로 다가가 유월영의 손을 붙잡았다. 유월영의 시선이 그의 얼굴로 향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유월영의 손을 살폈다.손바닥은 깨진 유리 조각에 베여 상처가 생겼고 피가 손등을 타고 타일 바닥에 떨어져 붉은 꽃처럼 퍼졌다. 다행히 상처는 생각만큼 깊지 않았고 게다가 그녀는 장갑을 끼는 습관이 있어서 상처는 얕았다.신현우가 가정부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구급상자를 가져오세요.”유월영이 힘껏 손을 빼려 했지만 연재준은 더욱 단단히 붙잡았다.“내가 지금 기분이 별로라서요. 연 대표님, 더 이상 선 넘지 마시죠. 제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연재준이 되물었다. “상관없어. 당신 나한테 자주 손찌검하잖아.”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유월영이 싸늘한 눈빛으로 연재준을 노려봤지만 그는 그저 침착하게 그녀가 어떻게 하든 상관없다는 태도였다.그 옆의 오성민과 신현우도 묵묵히 서로를 쳐다보았다.오성민은 미소를 지으며 술 한 모금을 마셨고 신현우의 시선은 살짝 뒤로 가서 강수영이 손에 들고 있던 두 잔의 술을 보았다.매실주는 옅은 녹색을 띠고 있어 마치 동화 속에서 불안한 기운을 풍기는 독약처럼 보였다.유월영은 바닥에 주저앉은 백유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내가 그만해도 된다고 한 적 없는 것 같은데?”노현재가 백유진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술병을 들어 그녀의 입에 강제로 부었다.노현재는 결코 자신을 신사나 군자라고 자처한 적이 없었다. 그의 원칙은 단 하나였다. 유월영을 해친 사람은 모두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었다.유월영이 조롱하듯 말했다.“연 대표님, 당
연재준이 세 번째 잔을 들자 노현재는 차마 볼 수 없어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유월영만이 연재준을 말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입을 열었다.“월영 씨...”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 유월영이 웃음을 띤 채 말했다.“이 사람 저 사람 다 못 마신다 그러면, 나보고 마시라는 건가요?”그녀는 일어나서 모여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오성민과 신현우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선물'을 보내는 목적이 무엇인지 유월영은 지금은 차분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그리고 연재준...유월영은 연재준이 들고 있던 술잔을 빼앗아 들고 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을 향해 인사한 후 잔을 들어 단숨에 입에 털어 넣었다.그리고 아무렇게나 탁자 위에 던지자 술잔은 굴러서 곡선을 그리며 카펫 위로 떨어졌다.“오늘 밤 초대해 주신 신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술맛도 아주 좋았고 연극도 아주 재미있었네요. 늦었으니 저는 이제 그만 가보겠습니다. 이 ‘선물'은 오 변호사님께 맡길게요.”오성민이 공손하게 물었다.“저 여자는 몇 년형을 살게 하고 싶으신가요?”유월영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오 변호사님께서 받아낼 수 있는 최대 형량이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문을 향해 걸어 나갔고 노현재도 바로 그녀를 따라나섰다.하지만 한 발짝 나가자마자 강수영이 달려와 노현재의 앞을 막았다.“당신은 따라가면 안 돼!”노현재는 어이가 없었다.“왜?”강수영은 복잡한 표정으로 뭐라 설명하지 못하고 대신 연재준을 밀어냈다.“오빠, 오빠가 월영 씨를 데려다주는 게 좋겠어!”연재준이 피곤한 듯 말했다. “지금 내 얼굴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은데.”강수영이 초조하게 발을 구르다 그의 등을 밀며 문밖으로 밀어냈다.“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따라가지 않을 거야? 오빠가 그 모양이니 아직 화해하지 못한 거야. 이번엔 내 말을 들어. 놓치지 말고 빨리 따라가라니까!”강수영은 또다시 그를 문밖으로 밀어냈다.연재준은 주춤거리다 할 수 없이 따라나섰다.강수영은 몸으로 현
한적한 밤길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도로 중앙에 서 있는 두 남녀가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고, 멀리 주차된 네 대의 승용차가 있었다. 그 차들 안에는 유월영의 경호원들이 타고 있었다.한세인이 없고 노현재도 자리를 비우자 경호원들은 명령을 내릴 상사가 없어 지시를 받지 못한 채 두 사람을 떼어놓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원칙적으로는 두 사람을 떼어놓아야 했지만 유월영이 저항하지 않았기에 그들이 함부로 나서기에도 적절하지 않았다.경호원들은 잠시 논의한 끝에 유월영이 필요로 할 때 나설 수 있도록 일단 차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하지만 실제로는 유월영이 저항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저항의 폭이 너무 작아 경호원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유월영은 한바탕 울분을 토해낸 후 점점 힘이 빠져 연재준의 가슴을 밀어낼 힘조차 없었다.그녀는 예전에도 비서로 일하면서 술자리에서 술을 마신 경험이 많아 자신의 주량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마신 양은 절대 취할 정도가 아니었는데 어쩐지 팔다리가 힘이 없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느낌이 들었다.‘...혹시 매실주의 성분 때문에? 아니면 보통의 알코올과는 다른가?’‘모르겠어...’유월영은 목이 타는듯한 느낌에 자기도 모르게 손을 더듬으며 차가운 것을 찾았다.그녀는 숨을 약간 거칠게 쉬었고 연재준의 특유한 차가운 향기가 그녀의 코끝으로 밀려들어 왔다.그의 그 숨결은 평소에는 그저 차갑고 소원하게만 느껴졌지만 지금은 사막에서의 오아시스처럼 거부하기 아쉬웠다.유월영은 무의식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고 그녀의 코끝이 그의 가슴에 부딪혔다. 그녀는 연재준의 냄새를 탐욕스럽게 들이마시며 뜨거운 숨결이 연재준의 목과 쇄골에 뿜어졌다.유월영이 불편함을 느끼듯 연재준 또한 편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몸이 반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유월영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가 좋아했던 여자였으며 그는 언제나 그녀에게 욕망을 품고 있었다.그녀와 함께했던 그 몇 년 동안, 마지막 반년을 제외하
유월영은 정신이 혼미하여 어떻게 연재준과 같이 산수원에 오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삐삐삐, 현관문이 열리고 외부 사람들은 문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은 불을 켜지 않았다. 열린 커튼 틈으로 밖의 네온사인이 새어 들어왔고 오색영롱한 불빛들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마치 그날 광장에서 펼쳐졌던 불꽃놀이 같았다.연재준은 유월영을 문에 밀친 채 그녀의 목덜미에 키스를 퍼부었다. 그녀의 남은 약간의 의식은 안 된다고 경종을 울렸지만 그녀의 몸은 전혀 그를 밀어낼 수 없었다.외투는 바닥에 떨어졌고 스웨터와 셔츠도 아무렇게 널브러져 있었다.두 사람은 술에 취한 채 모든 원한과 증오를 잠시 잊어버렸다.결국 두 사람은 침대 위에 누웠다. 체온은 점점 뜨거워졌고 숨결이 거칠어졌다.연재준은 유월영의 허리에 베개를 받치고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유월영은 연재준이 잠시 몸에서 떨어지는 듯한 느낌에 눈을 떴지만 다시 그의 존재가 그녀를 덮쳐왔다.밀폐된 방 안에서 짧은 신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유월영은 팔꿈치로 침대를 짚고 상체를 일으키자 눈에 보인 것은 연재준의 까만 머리카락이었다.그가 유월영에게 그렇게 애무를 해준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3년 전 잠깐 재결합했을 때 두 사람은 모든 걸 다 경험했었다.유월영은 땀에 젖어 온몸이 축축해졌다.그녀의 다리는 그의 어깨에 올려진 채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한 마음속에서 영혼은 점점 사라져갔다.연재준은 그녀의 숨결이 더 거칠어진 것을 느끼고 입맞춤하려 고개를 들었지만, 유월영은 바로 고개를 돌려 피했다.그가 웃으며 말했다.“뭐야. 싫어?”유월영이 눈을 흘겼다.물론 이 정도의 장난은 지금 상황에서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수줍은 듯한 투정처럼 느껴져 사랑스러웠다.연재준이 침대 옆 탁자에서 물잔을 집어 들고 유월영의 눈을 바라보았다. 침실에 불은 켜지 않았지만 그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밤바다에서 배를 안내하는 등대처럼.그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입을 헹군 후 유월
유월영은 분노와 수치심이 함께 폭발한 채 손을 휘둘렀고 연재준의 뺨에 얕은 할퀸 자국을 남겼다.연재준은 그녀의 가슴에서 고개를 들었고 눈가는 욕망으로 붉게 물들었다. 그는 잠시 유월영을 바라보다가 곧 알아챈 듯 입을 열었다.“오늘 우리가 같이 먹은 건 술뿐이야. 그 술은 신현우가 준비한 거고.”신현우는 최근에 두 사람을 화해하게 하고 싶어 했으니 그가 약을 타서 두 사람을 하룻밤을 보내게 했을 가능성이 짙어 보였다.하지만 유월영은 여전히 눈앞에 있는 이 남자가 더 의심스러웠다.“신 대표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거예요!”그는 그런 짓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었다.“그럼 나는 그럴 사람인가?”연재준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내가 당신을 화나게 할까 봐 얼마나 눈치를 보는지 당신도 알잖아.”“...”두 사람의 몸은 아직도 밀착되어 있었고 서로의 체온과 사소한 몸의 변화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몽롱한 상태에서는 괜찮았지만 이제 정신이 든 유월영은 어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이 3년 동안 그녀는 관계를 가진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몸의 기억이 깨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유일하게 그녀와 육체적 관계를 가졌던 남자에 의해 깨어났으니 약 효과가 거의 사라졌어도 그녀는 참기 어려웠다.더군다나 그의 입술과 혀는 방끔까지도...그녀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떨어져요!”연재준은 이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그는 유혹적이고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정말로 계속하지 않을 거야? 나를 원하지 않아?”유월영은 잠시 유혹에 빠졌다.그리고 상대의 마음이 흔들린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이 남자의 특기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본 그는 바로 유월영의 살갗에 입술을 가져갔다.유월영의 온몸은 불타오르는 것 같았고 연재준은 흐느끼는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내가 깊이 안 할게...계속하자, 괜찮지?”‘당연히 안 괜찮지!’유월영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성추행으로 감옥에 가고 싶다면 그렇게 해요.”연재준은 그
유월영은 그에게 다가가지 않고 문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연재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가정 의사에게 말했다.“의사 선생님, 저쪽도 봐주세요.”가정 의사는 상황을 이해하고 유월영에게 다가가 말했다.“아가씨, 손을 내밀어 주세요.”유월영은 손목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의사가 맥을 짚는 동안 유월영은 생각에 잠겼다.‘오늘 밤 있었던 일은 절대 다른 사람이 알아서는 안 돼. 특히 시우 씨가 알면 안 되는데...’연재준은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멀리서 덤덤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 가정 의사는 비밀을 잘 지켜. 당신 약혼자의 귀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거야.”그의 말 속에서 느껴지는 비꼼에 유월영은 대꾸했다.“그렇게 해주신다면 다행이네요. 시우 씨랑 저, 곧 결혼할 거니까요.”연재준이 차분하게 말했다.“내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두고 볼 것 같아?”유월영이 그를 쳐다보았다. 연재준의 차가운 얼굴에는 강렬한 공격성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표정은 전혀 농담이 아니었다.유월영은 더 이상 그의 말에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의사가 맥을 다 짚은 후 유월영이 물었다.“누가 약을 탄 건지 알아냈어요?”연재준이 멈칫하며 대답했다.“아직 조사 중이야.”사실 아까 욕조에서 몸을 담그면서 유월영은 생각해 낸 게 있었다. 그녀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연 대표님의 사촌 여동생이 범인이에요. 이런 짓한 게 이번 처음도 아니고요.”예전에도 강수영은 그들이 화해하도록 도와준다고 유월영을 작은 숲으로 유인해 연재준이 그녀를 구하도록 했던 적이 있었다.강수영은 이런 식의 수작을 즐겼다.사실 연재준도 이미 이 사실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수영이 아직 어리니까 당신이 너무 뭐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유월영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강수영이 신 대표의 집안에서 이런 짓을 벌였는데 과연 신 대표가 모르고 있었을까요?”정말로 누구에게 따져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가정 의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아가씨,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