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장월이 자리로 돌아와 업무를 볼땐 다른 동료들도 모두 와서 위로해주거나 사과하며 방천을 믿는게 아니라고 했다.루장월은 다 괜찮다고 말한다.그러나 심묘묘는 이상하게도 가지 않고 혼자 자리에 앉은 채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기분이 썩 좋아보이진 않았다.방금 루장월의 결백을 밝혀내기에 급급했던 그녀는 집사더러 호텔로 가 감시 카메라를 돌려보게 했다——그렇다. 그녀는 경찰보다도 한발 빨리 영상을 손에 넣었었다.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문연주가 나타나 두 사람이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올라가는 걸 보고 말았다.남자 여자가 호텔 방에 들어가서 뭘 할지는 제 아무리 순진한 심묘묘라도 눈치챌 수 있었다.그녀는 루장월에게 배신당한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분명 그녀가 먼저 자신을 문연주 곁으로 데려다 주고 문연주와 이어준건데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이건 친한 친구 남친을 빼앗는것과 뭐가 다른가!이때까지 루장월은 심묘묘의 감정변화를 캐치하지 못했고 수옥이 떠나는 걸 보고 사장실로 향했다.“사장님, 저 며칠만 좀 쉬고싶습니다.”문연주가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왜지?”루장월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말한다.“오늘 일 때문에 제가 입은 타격이 어마어마합니다. 며칠 쉬면서 병원이나 가보려고요.”문연주는 단번에 그녀가 헛소리를 하고 있음을 눈치챘다.그는 손에 있는 펜을 빙글빙글 돌리며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정신과 의사 찾아가봤자 소용없어. 마침 나한테 2박3일 유람선 파티 초대장 왔는데 나랑 같이 가서 마음 비우면 더 빨리 좋아질거야.”루장월은 당연히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사장님 심 아가씨랑 같이 가셔도 돼요.”문연주가 관심도 없다는 듯 말했다.“너가 사장이야, 아니면 내가 사장이야? 내가 너랑 가겠다는데 네가 뭘 골라?”루장월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이미 오랫동안 파티같은 건 데리고 가지도 않았으면서 왜 하필 마지막 사흘째에 생각이 바뀐거지?하지만 거절할 여지가 없었던 그녀는 승낙할수 밖에 없었다.사장실에서 나오니
루장월은 손을 뻗어 비녀를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깨물고는 “네”라고 한 마디 했다.그녀에게 사줬다고 말하기 보단 얼른 자신의 이미지를 수립하기 위해 요트의 다른 사장더러 그라는 사람을 비운의 실력을 알아보게 한거라는 말이 적합했다.더 간단하게 말하면 그녀는 또 한번 그가 신분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 쓰여졌다는 것이었다.심소흠은 시선을 거두고 천천히 칵테일 한 모금을 마신다.곁에 있던 지인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묻는다.“너도 저 비녀 마음에 들어? 그렇게 열심히 보냐.”심소흠이 살짝 웃으며 말한다.“그럼. 나도 마음에 들지.”친한 지인이 묻는다.“진짜? 그럼 방금 왜 가격 경쟁 같이 안 한거야? 저 분 문씨 일가 문연주 맞지? 저 가문은 확실히 대단하더라. 유독 몇년 간 벌전 속도며 기세가 장난 아니던데 너희 서청 심씨 가문도 그리 뒤처지진 않잖아. 너도 저 비녀 가지고 싶었으면 뺏어올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심소흠이 웃으며 말한다.”괜찮아. 세월은 길고 기회는 많아.“그는 심소흠과 문연주 쪽을 번갈아 보며 고민하더니 뭔가를 알아차린 듯 물었다.“넌 비녀가 마음에 든게 아니라……비녀를 하고 있는 사람이 마음에 든 거구나?”심소흠이 나긋하게 말한다.“그런 말 함부로 했다간 명예를 격추시킬 수도 있어.“지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흥분에 차서 말한다.”너 진짜로 마음에 든 거면 집에 가서 귀띔이라도 드려. 집에선 무조건 바로 꽃가마 태워서 너한테 시집 보낼거야. 오랜 세월, 옛집에 불 붙을때까지 기다렸으니 말이지.“심소흠은 여전히 웃어보이면서 아무 말도 하지는 않았다.대화에 심취한 그들은 뒷 줄에 엽혁연이 있는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나보다.그들의 목소리가 그리 높진 않았지만 6,7할은 엳들은 그는 문연주가 마침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가려 하자 곧장 따라나섰다.”연주야.“문연주가 뒤 돌아 힐끗 쳐다봤고 두 사람은 함께 화장실로 향했다.”너 언제부터 심소흠이랑 대립중이었어?“엽혁이 묻는다.”심소흠? 아닌데.”“방금 내가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굴 경계하는건지 몰라도 긴 바지에 긴 소매 순면 잠옷을 입고는 있었지만 잠 버릇은 가관이었다. 잠옷 단추는 이리 저리 뒹굴다가 열려 쇄골이 드러나 있었다.그녀는 잘 모르는게 분명하다. 더 싸매면 싸맬수록 더 찢어버리고 싶게 만든다는 도리를 말이다.문연주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물만 마시고는 방으로 돌아갔다.밤에 잠에서 깬 루장월은 담요가 땅에 떨어져 있는걸 보곤 아예 얇은 셔츠를 하나 더 꺼내입고 다시 담요를 꼭꼭 덮었다.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이틑 날 깨어난 루장월은 여전히 머리속이 흐리멍텅한 느낌을 받았다.다행히도 세수를 하고나니 어지럼증은 많아 완화됐다.화장실에서 나와보니 문연주는 이미 주방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그녀가 묻는다.“사장님, 방에 약상자 없어요?”혹시 모르니 감기약이라도 먹어둘 생각이었다.“없어. 뭐 필요하면 웨이터 찾아서 가져.”문연주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본다.“배 멀미?”방에 없으니 굳이 웨이터를 찾아가 방해하기도 싫었다. 그래 큰일도 아닌데.“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그녀가 조용히 앉아 아침을 먹는 동안 먼저 다 먹은 문연주는 커피잔을 들어 한모금 마시며 창밖으로 펼쳐진 에메랄드 빛 바다를 바라본다.“수영복은 가져왔어?”루장월이 고개를 든다.“아니요……수영도 해요? 여기 바다 중심인데 해안가에서 멀어지면 위험하지 않을까요?”“중심이면 좋지, 도망갈래야 갈 수도 없고.”뜻 모를 문연주의 말을 들은 루장월은 몸이 굳으며 눈꺼풀도 두번 뛰는걸 느꼈다. 어딘가 모르게 묘하게 불안한 이 기분.”수영복 없으면 아무거나 입어. 좀 있다 다들 같이 해상 오토바이 타로 갈거니까.“루장월이 입술을 꽉 깨물며 말한다.”근데 전 할 줄 모르는데요.“”모르면 배워.“문연주가 새까만 눈을 하고 말한다.“다른 사람들 분위기 흐리지 말고.”“……네.”루장월의 촉은 늘 정확했다. 문연주가 갑자기 파티에 데려오려는게 이상하다 싶더니……여기서 중요한 건 이미 반년이라는 시간동안 한번도 그 어떤 상
문연주의 솜씨는 전문가 선생님보다도 훨씬 좋았다. 그는 그녀를 데리고 바다 위에서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 정면으로 마주오는 바닷물에 맞아 눈도 못 떴지만 아드레날린은 순식간에 무섭게 치솟았다!“재밌어?”문연주는 귀까지 빨개지며 흥분한 그녀를 보곤 목젖을 움직이더니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를 살짝 물었다.루장월은 무의식적으로 목을 움츠리긴 했지만 어찌나 흥분하고심장 박동이 빨라졌는지 그의 행동에 신경 쓸 새도 없었고 대답 할 새도 없었다.근데 정말 너무 재밌었다.너무 재밌다!심지어 이런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자극감이 좋아하진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머리속에도 아무 생각이 없었고 머리까지 발 끝까지 딱 한 단어만 남아있었다.——미쳤다!문연주가 지루해진듯 묻는다.“더 빨리 해?”루장월은 눈빛마저 빛나며 말했다.“더 빨리도 돼요?”문연주가 입꼬리를 내리더니 액셀을 꽉 잡고 속도를 한 레벨 더 높였다. 이 순간엔 아예 다른 해상 오토바이를 타던 사람들을 저 멀리 제친 뒤였다.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는 모든 미친 일도 다 용납이 될것 같았다. 더이상 참지 못한 루장월은 소리쳤다.“아——“문연주도 웃으며 조금은 힘을 뺀 것 같았다.그들은 한시간을 넘게 놀고서야 배로 돌아왔다. 루장월은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 제대로 서있을 수 조차 없었다.문연주가 팔을 잡아주며 갑자기 웃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내가 침대에서도 널 이렇게 안 만들었는데 차에서 이렇게 만들어버렸네.”이명까지 들리는 루장월은 그의 말을 잘 못 듣고 멀뚱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문연주가 그녀를 놔주자 그녀는 갑판에 주저앉았다. 이왕 이렇게 된거 여기 앉아서 흥분으로 가득 찬 몸을 천천히 추스려야겠다.엽혁연이 다가오며 말한다.“미쳤네 미쳤어. 뒤에서 보는 내가 다 손에서 땀이 나더라, 전복되기라도 할가봐.”문연주가 신경도 안 쓰며 말했다.“놀고 싶대서 데리고 놀아주느라고.”엽혁연은 뭔가를 암시하는 듯한 말을 건넨다.“루비서님, 연주 오토바이 안
넋이 나간 루장월이 고개를 돌렸을때 그들은 이미 코너를 돌아 자취를 감춘 뒤였다.루장월은 그들을 모른다. 그 어떤 교집합도 없는 낯선 이에게 갑자기 욕을 듣는다……심지어 자기를 욕한건 맞는걸까?그 자리에 멈춰선 루장월은 결국 붙잡고 따지지 않기로 했다. 낯선 곳에서 굳이 일을 만들진 말아야 할거 아닌가.계속 방 쪽으로 걸어가던 그녀는 그때부터 기분이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더운 물에 샤워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루장월은 머리를 말릴때 연속으로 재채기를 했고 몸도 으슬으슬 떨려옴을 느꼈다.아침에 추울땐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물에서 놀면서 바람까지 맞다보니 다시 감기에 걸린 것 같다.루장월이 이마를 손을 갖다댄다. 다행이다, 열은 안 나서.욕실에서 나온 그녀는 거실 소파에 이미 슈트로 갈아 입은채 앉아있는 문연주를 본다.그가 눈짓을 하며 말했다.“테이블 위에 있는 차 마셔.”루장월은 의문을 품은 채 걸어갔고 짙은 갈색 차를 들어 향을 맡아본다. 그건 생강차였다.한 모금 마시자마자 오장육부로 따뜻해나는 기분이었다.루장월이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감사합니다 사장님.”문연주가 물으려는 건 따로 있었다.“너 심소흠이랑 어느 정도로 친해?”루장월이 뜨끔하더니 대답했다.“식사 두 번에 커피 한번 마셨어요.”문연주가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고작 그거로 여동생을 내 곁에 소개시켜준 거야?”루장월이 찻잔을 들고 그에게 묻는다.“사장님 아가씨 잊으셨어요? 전에 아가씨가 따라다녔잖아요.”“언제?”문연주는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는 듯 하다.“3년 전 신청대학교에서 이름있는 학우였던 사장님이 신입생 환영 파티에 참여해 무대에서 강연을 할 때 한 눈에 반해서 한동안 쫓아다녔잖아요.”문연주는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지 물었다.“그때 내 반응이 어땠는데?”“……그리 흥미 있어보이시진 않았어요.”문연주가 두 다리를 교차시키며 말한다.“그때도 감흥이 없었는데 왜 지금은 그렇다고 생각하는 거지?”그의 말 뜻이라면……
문연주의 눈빛에 다른 것이 담겨 있는 것 같았지만, 어지럼증에 기분도 그닥 좋지 않은 루장월은 그것을 깊게 고민할 생각이 없었다.행여 그가 심묘묘를 내보내지 않겠다고 해도 그녀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끽해봤자 심소흠에게 눈치를 줘서 심묘묘더러 감정 소비를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귀띔해 주는 것뿐이다.문연주가 건성으로 말했다.“비서실 수석은 너야. 다 너보다 아래 사람들이니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면 내보내면 되는 거지. 이런 사소한 일들은 나한테 물어보지 않아도 돼.”이 말은 심묘묘를 내보내는 걸 동의한다는 건가?문연주는 늘 이랬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심묘묘의 말이 맞았다. 문연주 같은 사람은 상대의 소유욕을 자극한다. 그가 진심을 내보이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지게 만든다.하지만 이미 시도해 봤던 루장월은 처참히 실패했고 이젠 더 이상 그의 사랑을 갈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그저 물 흐르듯 자연스레 자신을 놔주길 바라고 있을 뿐이다.자신에게 다가오는 문연주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든 루장월은 그에게 턱을 잡히고 말았다.“심씨는 우리 비운과 겹치는 업무가 아주 많아, 경쟁 관계이기도 하지. 루비서한테 도리 같은 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심소흠이랑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알겠어?”루장월이 해명했다.“교수님과는 그저 평범한 친구 사이예요. 저흰 단 한 번도 공적인 일에 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어요. 교수님은 교육인이셔서 심씨에 관한 일과는 크게 관련이 없어요.”문연주가 그녀의 턱을 잡고 흔들었다.“심소흠이 너한테 관련이 없다고 말했어?”“제가 추측한 거예요. 만약 심씨가 비운의 상업 기밀을 갈취해 가는 게 두려우시다면 애초에 심묘묘를 비서로 들이지 않았겠죠. 비서의 손에 닿는 기밀 서류가 더 많으니까요.”문연주가 잘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넌 대체 심묘묘를 질투하는 거야 아니면 심소흠을 감싸주는 거야?”루장월이 잠시 뜸을 들이고 대답했다.“둘 다 아니에요. 전 그저 일 예기를 하는 거예요.”귀찮아진
루장월은 화장을 하긴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하다.그런 거였구나……그런 거였어.그래서 문연주가 갑자기 반년 만에 파티에 데려온 거고, 그래서 남자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고 여자들마저 이유없이 욕을 한거였구나……남자들은 그녀를 쉽게 가질수 있는 사람이라 여기고 여자들은 그런 그녀를 수법이 독특한 경쟁 상대로 여긴거였다.그녀만 영문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그녀만 문연주에게 속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진실과 마주한 루장월은 한시라도 빨리 여길 벗어나고 싶었지만 문득 여기는 바다 위고 사면초가가 바다임을 깨달았다. 과연 그녀가 어디로 도망갈 수 있을까?문연주가 한참 전에 이미 말한 적 있다.“도망 갈래야 갈 수 없어.”모든게 다 그가 계산해낸 판이다. 루장월은 두려움 탓인지 실망스러움 탓인지 눈가가 급격히 뜨거워 났다.눈물이 금방 똑 떨어지자 마자 그녀는 재빨리 닦아낸다.왜 울고 있는거지?그녀는 그 남자 때문에 울어서는 안됐다. 매정하게 구는 그 남자 때문에 운 게 어디 하루 이틀도 아닌데 지금은 울기보단 스스로를 구할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사방이 적인 이 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진짜 그런 일에 닥쳤을땐 반항할래야 할 수조차 없을것이다. 그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모든 기회를 놓지지 않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문연주가 이익을 교환하는 도구로 전락되는 걸 막을수 있기에.그녀는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식당으로 돌아갔다.문연주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그의 앞에 앉아있던 사장은 또 다른 사람으로 바뀐 뒤었다.그의 신분이야 이미 다 알고 있었기에 영원히 상대가 찾아와 말을 걸어줄 뿐이었다.루장월이 천천히 다가간다. 관심없이 사장이 본인 회사 자랑을 늘어놓는걸 들으며 말도 섞지 않던 문연주는 루장월이 돌아오니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오래도 다녀오네?”루장월은 그저 “네.”라고만 대답한다.그녀의 눈에 사장이 데리고 온 파트너가 들어온다. 나이가 너무 어려보였는데 미성년자가 맞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바꿀지 말지는 문연주에게 달려있었다.문연주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유 사장은 잘 아나봐요?”“그럼요! 제가 훈육해놓은 여자들만 해도 과장 하나도 없이 백은 안돼도 80은 되죠!”유 사장이 우쭐대며 자랑스럽게 말한다.문연주가 입꼬리를 내리며 말한다.“그래서 이렇게 어린 애 데려오셨네요. 더 어린 애도 만나보셨죠?”유 사장은 쉿 하며 숨기려고 하는 모습이었지만 사실 무서운게 없었고 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징그럽게 웃어보였다.“이런 말은 대놓고 하면 안 돼요. 못 들으셨어요? 필경 이건 위법이고 범죄니까요 하하.”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었던 루장월이 벌떡 일어나자 문연주가 손을 붙잡았다.가지 못하게 하다니!유 사장이 의자를 움직여 문연주의 곁에 바짝 붙으며 말했다. “사장님도 혹시 이 쪽으로 흥미 있으시면 제가 방법 가르쳐 다릴수도 있어요.”문연주가 담담한 눈빛으로 바라보니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줄 안 유 사장은 더욱 곁으로 붙는다. 실실 웃으며 뭔가를 말하려던 그는 문연주가 자신의 얼굴에 술을 퍼부을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악!”문연주가 비단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으며 놀라서 얼 빠진 유 사장에게 천천히 말했다.“방금 협력건은 여기까지.”온 얼굴에 와인을 덮어 쓴 유 사장이 다급히 말한다.”왜, 왜요?“”감옥 가게 생겼는데 같이 협력했다간 나도 곤란해질거 아닌가?“유 사장의 낯빛이 급격히 어두워진다.”무슨 감옥이요?!“문연주가 루장월을 바라보며 말한다.”루비서, 유 사장 방금 한 말 못 들었어? 신고 안 하고 뭐해.“루장월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휴대폰을 꺼내들자 그제야 농담이 아닌걸 눈치 챈 유 사장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문연주는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앉아 있었지만 유 사장보다 기세는 월등히 높았다.“여자를 어떡하든 말든 그건 내 일이야. 본인이 뭔데 날 지적하지? 유병덕이 다음엔 조심해, 다신 무례하게 굴지 마.“그가 갑자기 멈추더니 비웃으며 말했다.”넌 다음도 없겠다.“죽일듯이 문연주를 쏘
현시우는 이런 터무니없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는 차분하면서도 냉정한 태도로 어머니를 추궁했다.“단순히 유용우를 봤다는 이유로 유월영이 그의 친여동생이라고 단정 짓는 건 말이 안 돼요.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러시는데요?”그가 아는 바로는 유월영의 집에는 세 자매가 있었다. 왜 꼭 유월영이어야 하는 걸까?“나이대가 맞지 않아서요?”그는 계속해서 반박했다.“다른 가능성도 있지 않나요? 유월영의 집은 부유한 가정이 아니에요. 자식을 여러 명 키우는 건 부담스럽고, 게다가 고씨 가문의 딸을 키우는 건 위험 부담도 크잖아요. 여동생이 이미 다른 곳으로 보내졌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 않나요?”이 모든 시간 동안 그들은 늘 긴장 속에서 살아왔다.연회 부인은 외출조차 하지 못했고, 유용우네 가까이 지내는 것도 두려워했다.그래서 유용우네 부부가 시내로 이사한 것도 몰랐고, 그들의 세부 사항도 알 수 없었다.현시우는 어머니의 말에 반박할 수 있는 이유를 수십 가지나 가지고 있었다.연회 부인이 조용히 말했다.“그러면 유전자 검사를 직접 해보렴.”“...”만약 그녀가 확신이 없다면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현시우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거미줄처럼 얽힌 핏줄은 그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연회 부인은 그가 이 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그를 위로하려고 애썼다.“아마 너는 처음부터 네 감정을 잘못 알았던 것 같아. 너의 마음속에서 유월영에 대한 감정은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었을 수도 있어. 어쩌면 혈연관계가 작용해서 너를 혼란스럽게 만든 걸지도 몰라.”“그렇지 않다면 너의 성격으로 그렇게 쉽게 누군가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네 주변에 훌륭하고 예쁜 여자애들이 많았잖아? 그런데 너는 그들에게 아무 감정도 없었잖아. 그런데 유월영을 알게 된 지 몇 달 만에 이렇게 깊이 좋아하게 된다니, 말이 안 되지 않니?”“그래서 내 생각엔 이건 사랑이 아니라 운명이 장난을 친 거야.
“손님, 이 케이크는 당일 제조된 거라 유통기한이 짧아요. 냉장고에 넣어도 최대 3일밖에 보관할 수 없으신데, 이렇게 많이 사가시면 다 드실 수 있으신가요?”유월영이 조심스레 물었다.연회 부인은 선글라스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일 제조된 거라면 학생이 직접 만든 거예요?”“제가 아니고 저희 가게에서 직접 만든 거예요. 한번 맛보신 후에 마음에 드시면 구매하셔도 돼요. 다만 가족 인원이 많지 않으시면 한 번에 다 사는 건 추천해 드리지 않아요.”유월영이 케이크 한 조각을 잘라 그녀에게 건넸다.“우리 집은 식구가 많아서 다 먹을 수 있어요.”연회 부인은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학생, 교복을 보니 신주시 고등학교 학생인 것 같은데 우리 아들도 그 학교 다녀요.”유월영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아, 그러신가요.”“학생, 참 예쁘게 생겼네.”연회 부인은 그녀가 점점 더 마음에 들었고 유월영은 조금 쑥스러워하며 말했다.“아니에요. 손님께서 훨씬 멋지고 품격 있어 보이세요.”“말도 참 예쁘게 하네요.”연회 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케이크 맛있네요. 이거 전부 살게요. 계산해 주세요.유월영은 계산하며 말했다.“총 3만 6백 원인데, 3만 원만 받을게요. 맛있으시면 또 오세요.”“그럼 그럴게요.”계산을 마친 연회 부인이 케이크 포장을 들려고 했지만 그녀의 네일아트를 본 유월영이 주저하며 물었다.“차로 오셨나요? 제가 차까지 들어다 드릴게요.”“그래요, 그러면 저야 고맙죠.”연회 부인은 그녀를 차로 데려갔고 유월영은 케이크를 차에 실은 후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연회 부인이 출발하려는 찰나 중년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 옆에 멈췄다.“아빠!”유월영이 그를 부르는 소리에 연회 부인은 본능적으로 그쪽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그녀의 얼굴은 창백해졌다.유월영이 아버지라고 부르던 사람은 고해양의 곁을 지키던 경호원이었고 그녀는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갑작스러운 만남에 연회 부인은 몸은 얼어붙었고 혼란에
“아니.”현시우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남자들끼리의 문제일 뿐이야. 별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유월영이 화를 내며 말했다.“별거 아니긴 개뿔!”현시우는 예상밖의 반응에 잠시 멍해졌다.유월영이 이렇게 거친 말을 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비록 심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자신을 위해 그랬다는 사실에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월영아, 욕은 하지 마.”“할 거야! 너도 싸움질을 했으면서 내가 욕하는 걸 뭐라고 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지!”유월영은 그의 상처를 가까이서 살펴보며 점점 더 화가 났다.“도대체 너랑 싸운 사람이 누구야? 왜 싸운 건데?”현시우는 말하고 싶지 않아 아픈 팔다리를 살짝 움직이며 말했다.“월영아, 와서 안아줘.”“꿈 깨!”옆방에서 의무실 선생이 연재준의 얼굴에 멍이 든 곳에 약을 바르려고 했지만 그는 무표정하게 이를 피하며 말했다.“필요 없어요. 그냥 나가세요.”의무실 선생은 잠시 망설였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료 상자를 챙겨 방을 나갔다.두 소년의 부상은 비슷했다. 뼈나 근육에는 이상이 없었고 학교 보안요원이 빠르게 싸움을 말려 모두 표면적인 상처에 불과했다.방문이 닫히지 않았기 때문에 옆방에서 들리는 대화가 연재준의 귀에 고스란히 들려왔다.유월영이 현시우를 걱정하며 하는 말들이 하나하나 그의 귀에 들어왔다.연재준은 그 말을 들으며 살을 도려내는 고통이 있다면 이와 같을 거라고 느꼈다.학교는 싸움에 대해 별다른 처벌을 내리지 않았고 다만 두 학생의 부모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다.연민철은 이미 아들 연재준을 신경 쓰지 않았고 반면 현시우의 가족은 이 소식에 크게 놀랐다.현시우는 어릴 때부터 감정 기복이 별로 없고 차분한 성격으로 한 번도 싸움을 하거나 심지어 다툰 적도 없었다.그런 그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것도 학교 안에서 참지 못하고 싸움을 벌인 건지 현씨 가문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당시, 현시우의 어머니인 연회 부인은 현씨 가문에서 사모님으로 은둔하며 지냈다.하지
현시우가 유월영을 집까지 데려다주며 단호하게 말했다.“내일 내가 대신 병가를 낼 테니까 너는 집에서 푹 쉬어. 책도 보지 말고 문제도 풀지 마.”유월영은 그의 강압적인 태도에 살짝 당황하며 대답했다.“괜찮아. 나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의사 말 못 들었어? 네가 과로로 쓰러진 거라고. 시간이 부족하면 중요하지 않은 일부터 줄여야 해. 월영아, 모든 걸 다 해내려고 하지 마. 그리고 모든 걸 완벽하게 하려고도 하지 마.”현시우는 그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유월영은 항상 모든 일을 포기하지 못하고 최선을 다해 이루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집착과 강박은 결국 그녀를 지치게 만들고 말았다.사람의 몸은 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유월영은 신중히 고민한 끝에 어머니에게 댄스 수업을 그만두겠다고 말했고 학교의 댄스 동아리도 탈퇴하기로 결정했다.춤은 그녀에게 단순한 취미였지만 이제는 정상적인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었기에 잠시 내려놓는 것이 맞았다. 대학에 가거나 졸업 후 여유가 생기면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주말과 월요일까지 3일이 지나고 유월영은 학교로 돌아왔다. 몸 상태는 완전히 회복되었고 감기도 거의 나아 약간의 콧물만 남아 있었다.유월영이 등교한 날, 연재준은 유월영의 교실 앞을 지나쳤다. 친구들과 웃으며 대화하는 그녀의 얼굴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그는 발걸음을 돌렸다.병원에서 그는 원래 깨어난 유월영에게 잃어버린 옥불을 따질 계획이었지만 아버지로부터 온 전화로 인해 급히 돌아가야 했다. 부모님의 이혼 문제 논의에 꼭 참석해야 했던 것이다.그리고 익명의 영웅이 될 생각이 없었던 그는 방과 후 그녀를 찾아갈 계획이었다.연재준이 유월영의 반으로 향하던 중, 현시우와 마주쳤다. 연재준은 신경 쓰지 않고 지나치려 했지만 현시우가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그날 월영이를 병원으로 데려다줘서 고마워.”연재준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고맙다면 네가 아니라 본인이 와서 말해야지. 넌 대리인이야?”현시우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담담히
운전기사는 연재준의 상태를 걱정하며 우산을 들어주었지만 연재준은 비에 젖은 창백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차에 올라탔다.그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고 병실에 도착했을 때 유월영은 링거를 다 맞고도 여전히 깨어나지 않은 상태였다.연재준은 침대 옆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고 그의 몸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한참을 서 있던 그는 쉰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유월영, 이제 너는 나한테 빚졌어.”그녀 때문에 잃어버린 것은 그녀가 반드시 갚아야 할 것이었다.얼마 후, 유월영이 천천히 눈을 떴다. 침대 앞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물웅덩이와 함께 현시우가 앉아 있었다.“...”유월영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병원이었지만 자신이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목이 쉬고 아픈 느낌이 들었다.“목 아파? 편도선염이야. 당분간 말하지 마.”현시우는 탁자에 있던 따뜻한 물을 들고 한 팔로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을 한 모금씩 먹이며 부드럽게 상황을 설명했다.“너 열이 나서 길에서 쓰러졌어. 다행히 누군가 널 병원으로 데려왔어.”“기절했다고?”유월영은 놀란 눈으로 현시우를 바라봤다. 폭우 속에서 길을 헤매던 기억은 있었지만 쓰러졌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따뜻한 물이 목을 적시니 조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목이 아팠다.유월영이 억지로 몇 마디를 이어갔다.“누가...날 병원에 데려왔어?”현시우는 물컵을 내려놓고 그녀가 좀 더 편히 누울 수 있도록 베개를 정리했다.“간호사 말로는 너랑 같은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었는데 이름을 남기지 않았대.”“시험 끝나고 널 찾으러 갔는데 네 짝꿍이 네가 집에 갔다고 했어. 근데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걱정돼서 네 집으로 갔거든. 근데 네가 없더라.”유월영의 가족조차 그녀가 어디 갔는지 몰랐고 현시우가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위험에 빠진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에 가족들과 함께 학교에서 집까지의 길을 수색했다. 그러다 편
연재준의 화난 표정은 유월영을 바라보며 점점 누그러졌다.그녀는 너무 말랐고 얼굴이 창백했다. 입술에는 핏기가 없었으며 온몸이 빗물로 흥건해져 안쓰럽기 그지없었다.게다가 두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 건 드문 일이었다.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수건을 들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과 목에 흐르는 빗물을 닦아주었다. 그러다 부드러운 피부에 손이 닿자 순간적으로 손을 홱 뒤로 뺐다.소년의 얼굴에는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귓불은 점점 붉어졌다.연재준은 숨을 멈추고 다시 유월영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고 그는 그제야 살짝 안도했다.그녀가 자신을 기회를 노리는 이상한 변태라고 생각하는 건 원하지 않았다.연재준도 자신의 마음을 잘 몰랐다.지난 18년간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었던 자신이 왜 교내 축제에서 춤추는 그녀를 보고 이렇게 빠져들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는 유월영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며 혼잣말을 시작했다.“너 그렇게 예쁘지도 않아. 사람 보는 눈도 별로고.”“왜 하필 현시우 같은 놈을 좋아하는 거야? 사람들은 항상 나랑 현시우를 비교하잖아. 그러니 너도 내 이름을 들어봤을 텐데...내가 너 대신 농구공도 막아줬고 도서관에서 햇빛도 가려줬잖아. 다 잊은 거야?”그는 자신의 기억을 곱씹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우리 함께 변태 선생을 잡은 적도 있잖아. 정말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거지...왜 한 번도 날 찾지 않았어?”“내가 너 앞을 그렇게 여러 번 지나갔는데 넌 왜 나한테 아는 척도 안 했어? 현시우가 나랑 친해지지 말라고 해서 그런 거야? 너 그렇게 말을 잘 듣는 아이였어?”그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중얼거렸다.“나도 나름 괜찮게 생겼잖아. 남자 친구를 바꿔보는 게 어때? 내가 현시우보다 너한테 더 잘해줄 자신 있는데. 유월영, 내 말 들려?”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그는 이렇게 많은 말을 했지만 유월영은 단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연재준은 그녀가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
유월영은 줄곧 모범생이었다. 지각이나 조퇴는커녕 항상 성적도 우수했기에 선생님들은 항상 그녀를 신뢰했다. 그래서 그녀가 조퇴를 요청하자 선생님은 별다른 질문 없이 허락해 주었다.다만 유월영의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자 선생님은 부모님께 연락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유월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저 혼자 돌아갈 수 있어요.”그녀는 어머니가 자전거를 탈 줄 모르고 아버지는 성격이 급했기에 아버지와 접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게다가 선생님은 그녀와 현시우가 가까운 사이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사적인 문제에 간섭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다. 이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발언권이 크지 않았다.선생님은 현시우가 차량을 보내줄 것이라고 짐작하며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조퇴 허가서를 작성해 주었다.“비가 많이 올 수도 있으니 밖에 오래 머물지 말고 빨리 집으로 가렴. 내일도 몸이 안 좋으면 꼭 병가를 내고 쉬어.”“감사합니다, 선생님.”갑작스러운 폭우가 내렸지만 유월영은 현시우에게 연락하지 않았다.그녀는 어젯밤 이미 그가 오늘 시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고작 20분 거리인데 그를 찾는다 건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다.비가 온다고 해도 우산을 가지고 있으니 괜찮을 거라 여겼다.그러나 유월영은 집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힘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갑작스러운 폭우가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쏟아졌고 강풍과 빗물 때문에 숨쉬기조차 어려웠다.유월영은 허둥지둥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펼쳤지만 강한 바람에 우산이 뒤집히고 순식간에 옷이 젖어버렸다.앞이 점점 보이지 않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몸이 휘청였다.그때 멀리서 날카로운 경적이 들렸다.빠르게 달려오는 트럭을 발견한 유월영이 급히 뒤로 물러섰지만 발밑에서 미끄러운 무언가를 밟아 넘어질 뻔했다.그 순간 강한 손길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그 사람은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유월영은 그의 가슴에 부딪히며 싸한 솔잎 향이 풍겨왔다.본능적으로 그의
“준비는 다 끝난 거예요? 거주지, 의사, 그리고 돌봐줄 사람까지.”연재준이 물었다.“그래. 신 씨 아저씨가 다 준비해 주셨어.”어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래요.”신씨 아저씨라...연재준의 어머니는 내심 죄책감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묶어놓은 족쇄에서 벗어나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됐다.하지만 아들은 비록 성숙하고 독립적으로 보이더라도 아직 고등학생일 뿐이었고 과연 그가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재준아, 걱정하지 마. 너희 아빠랑 이혼 합의서에 분명히 명시했어. 그가 재혼하더라도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도록. 연씨 가문과 해운 그룹은 앞으로 반드시 네 것이 될 거야.”이것이 그녀가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연재준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그는 지금 가문과 해운 그룹에 큰 미련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필요하다면 아버지가 열 명, 스무 명의 자식을 더 낳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가 굳이 애쓸 필요는 없었다.그는 마지막으로 허리를 굽혀 어머니를 안아주며 말했다.“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몸 잘 돌보세요. 방학 때 시간이 나면 찾아갈게요.”어머니는 감동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상자를 꺼냈다.“이걸 네게 주려고 가져왔어.”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투명하고 맑은 옥불이 들어 있었다.연재준은 그것을 알아보았다.“외할머니께서 남기신 거잖아요.”“그래. 외할머니께서 법사에게 받은 거라 아주 영험하다고 하셨어. 평안을 빌어주는 거야.”연재준은 다시 어머니에게 돌려주며 말했다.“어머니가 갖고 계세요.”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가지고 다니면 내가 마음이 놓일 것 같아.”결국 연재준은 옥불을 꺼내 목에 걸고 어머니를 배웅했다.차가 떠난 후, 그는 옥불을 교복 안쪽에 넣어 피부에 닿도록 하고 학교로 들어갔다.평소에도 말수가 적던 그는 오늘따라 더욱 차갑고 냉랭한 분위기를 풍겼다.쉬는 시간에 평소 그와 친했던 몇몇 친구
아침 6시 45분.유월영은 학교로 걸어가던 중 그녀의 짝꿍을 만나 두 사람이 함께 걸었다. 하지만 오늘 유월영의 상태는 조금 축 처져 보였고 짝꿍도 이를 알아차렸다.“너 어디 아픈 거야? 어젯밤 또 늦게까지 문제집 풀었어?”“아니야, 어젯밤은 꽤 일찍 잤는데 그냥 좀 어지러워. 왜 그런지 모르겠어.”짝꿍이 그녀의 이마를 만져봤지만 열은 없었다.“나 페퍼민트 오일 가져왔는데, 발라줄까?”“좋아, 고마워.”“뭘 이런 걸로.”유월영은 월반으로 들어온 학생이라 반에서 나이가 가장 어렸고 짝꿍보다도 두 살 어리니 마치 어린 여동생 같았다.페퍼민트 오일을 바른 후 짝꿍에게 돌려줄 때, 짝꿍의 시선은 먼 곳에 가 있었다.“저기 차 옆에서 누군가랑 얘기하고 있는 남학생이 연재준 아니야. 주변에 경호원들도 지키고 있네.”유월영은 제대로 듣지 못하고 짝꿍이 아는 사람을 본 줄 알고 물었다.“그럼 가서 인사라도 할래?”짝꿍은 과장되게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누가 감히 그래!”아무도 연재준에게 괜히 인사하러 가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짝꿍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빨리 가자, 빨리!”하지만 유월영은 달리자 머리가 더 아픈 느낌이 들었다.연재준은 고개를 돌리다 우연히 소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치마가 바람에 살짝 펴지며 만들어낸 곡선을 본 그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재준아.”차 안에서 여자가 그를 불렀다.연재준은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서서 차 안을 바라보며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두 분이 합쳐서 일흔 살이나 되셨는데 아직도 스스로 내린 결정에 책임질 수 없다면 그동안 헛산 거예요.”여자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내가 정말 참을 만큼 참아왔어. 하지만 요즘 네 아빠가 자기 비서랑 동거를 시작했어. 더는 못 견디겠어, 미칠 것 같아. 나 정말 이혼해야겠어.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내가 진짜로 미쳐버릴 거야.”연재준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몸 안에서 느껴지는 그 애매한 아픔을 완화하려 했다.이 여자는 그의 친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