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어떻게 이용했다는 거지?”연재준은 창백한 입술로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녀가 왜 교회에서 당신을 공개적으로 욕했는지 이제 알겠네요.”제임스가 반사적으로 물었다. “왜지?”“그녀가 당신을 공개적으로 욕해야 소문이 퍼질 테니까요. 그녀는 사람들이 레온 그룹과 SAM이 갈등을 겪고 있다고 알기를 원했던 거예요.”장사판에서는 모두 능구렁이였으며 조그만 움직임도 놓쳐서는 안 되었다. ‘레온 그룹이 SAM을 인수하려고 했는데 왜 갑자기 사이가 틀어졌을까?’연재준은 의문이 생기자 바로 사람을 보내 조사했고 결국 레온 그룹에서 투자 은행과 비밀리에 맺은 선물 계약과 SAM 주식을 비밀리에 인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것이 그녀의 전략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해운 그룹도 이 경쟁에 참여하게 되었다.사실, 그녀는 연재준이 자신이 한 일을 알기를 원했고 해운 그룹을 끌어들이려고 했던 것이다. 해운 그룹이 이길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SAM은 레온 그룹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한마디로, 선물 계약, 비밀리 인수, 법정 소송, 두 회사의 주식 구매 경쟁은 모두 계획된 것이었으며 그녀는 해운 그룹을 이용해 원래는 팔 생각이 없었던 SAM을 자발적으로 레온 그룹의 품에 들어오게 했다.제임스는 연재준의 말을 듣고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화내지 않고 도리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그 여자애는 나이가 어리지만 수단은 대단하군!”그녀는 만약 인수될 운명이라면 외국 회사보다 본토 회사인 레온 그룹을 더 선호할 것이라는 제임스의 마음을 간파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전략을 사용한 것이었고 결국 해운 그룹이 시장에 남아 있는 6%의 주식 중 5%를 확보한 것도 그녀가 해운에게 일부러 양보한 것이었다.이 경쟁을 통해 SAM의 주가를 올렸고 레온 그룹이 SAM을 인수한 후 더 큰 이익을 누릴 수 있게 만들었으며 동시에 투자 은행과의 선물 계약도 이겼다. 그녀는 그야말로 일석삼조를 해냈고 정말로 청출어람이었다.제임스
유월영은 레스토랑 안에 있는 단독 룸을 예약했으며 제임스가 자리에 앉자마자 종업원이 요리를 내오기 시작했다.어제 연재준과의 대화에서 그는 분명히 그녀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존중했지만 어쨌든 자신의 회사가 그녀에게 ‘빼앗긴’ 상황에서 제임스는 약간 그녀에게 꼬투리를 잡고 싶었다. 그가 자신에게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묻지도 않고 자의적으로 요리를 주문한 것을 보고 유월영에게 무례하다고 한마디 하려던 찰나, 제임스는 종업원이 가져오는 요리가 모두 자신의 취향에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그가 이 레스토랑에 올 때마다 주문하는 것들이었다.제임스는 그녀가 그의 취향을 철저히 조사하고 완벽하게 준비했다는 것을 알아채고 말문이 막혔다. 요리가 모두 나오자 양복 조끼를 입은 종업원이 제임스의 와인 잔에 화이트 와인을 우아하게 따랐다.유월영은 제임스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제임스 씨가 식사 전에 화이트 와인 반 잔 마시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제가 준비한 이 와인이 취향에 맞을지 모르겠네요.”제임스는 용의주도한 그녀의 매력에 감탄했다“수고했네. 내 이런 작은 습관까지 알아냈다니.”유월영은 이전에도 매우 뛰어난 비서였기에 고객에 대해 미리 파악하는 것은 기본적인 소양이였다. 제임스는 기분이 좋아진 듯 눈앞의 나이 어린 한국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군. 나는 아직도 자네 이름을 모르겠네.”“죄송합니다. 제가 실수했네요.”유월영은 가방에서 명함을 꺼내 두 손으로 건넸다.크림색 명함은 은은한 향기를 풍겼고, 그 위에는 한영불 삼국어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고민서.” 제임스는 이 이름을 처음 듣는듯해서 명함을 받아 들고 그녀 뒤에 있는 한세인을 힐끗 보며 물었다. “저 여자분은 크로노스네 사람 아닌가? 지금은 왜 당신과 함께 있는 거지? 당신은 크로노스와 어떤 관계이길래?”한세인은 유월영을 한 번 보고 대답했다. “제임스 선생님,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저는 저희 가주의 경호원입니다. 고민서 씨는 저희 가주의
제임스가 잠시 멈칫했다.“그녀는 크로노스의 약혼자이자 레온 가문의 미래 안주인이지.”“그 여자가 직접 그렇게 말했어요?”“아니...”“그럼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일흔이 넘은 제임스는 그의 갑작스러운 분노에 깜짝 놀라며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몰라 이어 말했다.“그 여자의 비서가 그렇게 말했어. 그녀도 부정하지 않았고. 게다가 이 식사가 끝나면 그녀는 크로노스와 함께 파리로 갈 거야. 이게 거짓말일 리가 있나?” 태블릿을 쥐고 있던 연재준의 손가락 관절이 점점 더 굳어지며 얼굴도 순식간에 차갑게 변했다. 원래도 약간 창백했지만, 지금은 마치 눈사람처럼 하얗게 보였다.제임스는 그에게 왜 그러는지 묻고 싶었다. “당신...”하지만 연재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상태는 분명 이상했다. 제임스는 급히 물었다. “어디 가는 거야?”“한국에.”“지금? 내일 돌아가기로 하지 않았어?”하지만 연재준은 대답 대신 문을 쾅 닫고 나갔고, 제임스는 영문을 모른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왜 저러지? 화난 걸까? 뭐가 저렇게 급해서?”그는 마치 아내를 잃어버리고 찾으러 가는 것 같았다....연재준은 호텔을 나와 바로 차에 올랐다.그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하정은도 당황하여 한 손으로는 조수석 문을 열고 다른 손으로는 핸드폰으로 신주시로 가는 항공편을 빠르게 검색했다.하지만 비즈니스석은 이미 다 팔렸고 급하게 예약하니 이코노미석밖에 남지 않았다.그녀는 머리가 멍해지며 지금이 직업 생애 최대의 도전임을 느끼고 급히 말했다.“대표님, 오늘 신주시로 가는 항공편에는 비즈니스석은 없고 이코노미석만 남아 있습니다...내일 다시 출국하는 게 어떨까요?”내일 떠난다면 오늘 밤까지 비즈니스석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하지만 연재준은 단 한마디만 했다. “예약해.”이코노미석을 예약하라는 건가? 하지만 마르세유에서 신주시까지는 최소 16시간이 걸리고, 중간에 한 번 환승해야 하는데. 좌석도 그렇게 좁고 다리를
두 사람은 나란히 서 있었다. 한 명은 키가 크고 한 명은 작아서 키 차이가 딱 맞았고 비슷한 스타일의 하늘색 외투를 입고 있었다. 여자는 베레모와 마스크를 쓰고 있어 모자챙이 눈만 보일 정도로 낮게 눌러져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말하는 듯했다. 남자는 몸을 숙여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의 외투에 눌린 머리카락을 옷깃에서 꺼냈다. 검은 머리카락이 그의 하얀 손가락에 감겨 있었고 여자는 그의 행동에 전혀 거부감이 없어 보였고 마치 당연한 듯 보였다.연재준은 순간 작년 신정 때가 떠올랐다. 지성에서 그는 그녀와 손을 잡고 거리에서 산책했다. 그때는 한겨울이었고 찬 바람이 불어오자 그는 그녀의 스카프를 정리해 주면서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꺼내주었다.그녀는 그때 고개를 들어 그에게 눈웃음을 지었다.연재준은 목이 메여 그들을 향해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갔지만 곧바로 멈추었다.‘안 돼, 안 돼.’‘지금은 때가 아니야.’곧 그 사람들은 비행기에 탑승했고 연재준은 더 이상 앞으로 걸음을 떼지 않았다.하정은 뒤따라와서 물었다. “대표님, 누구를 찾으시는 건가요? 제가 도와드릴게요.”연재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하정은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그 사람들의 옷에 달린 가문의 베지를 알아보았다. “저건 레온 가문입니다.”그녀는 그 남자와 여자를 보고, 남자를 알아보았다.“현 대표님...아니, 그는 여기서는 레온 가문의 가주로 불리는데 그 옆에 있는 여자가 그의 약혼자인가요?”연재준의 얼굴은 더 하얗게 질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행기 문이 닫히는 걸 보자 그는 눈을 감고 뒤돌아 걸어갔다.하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해 그는 벽을 짚고 몸을 약간 굽힌 채 다른 손으로 입을 가렸다. 폐가 타는 듯한 고통이 밀려오며 그는 격렬하게 기침했다.그가 기침하자 하정은은 급히 약을 꺼내 주었다. “대표님, 우리 내일 다시 돌아가요. 비즈니스석을 구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전세기를 부를까요?”연재준이 입을 열었다.
연재준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고 달빛은 두꺼운 구름에 가려져 한 줄기 빛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깨어나면서 몸의 감각도 서서히 돌아오자 연재준은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살짝 아픈 복부를 감싸려다 손등에 꽂힌 수액 병을 실수로 건드렸다.병상 가까이에 있던 서지욱이 먼저 그의 움직임을 눈치챘다. “드디어 깨어났구나.”소파에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병상으로 다가왔다.그들 중에는 하정은, 이혁재, 그리고 윤영훈과 신현우도 있었다.서지욱이 물었다. “괜찮아? 의사를 부를까?”연재준은 고개를 저으며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너 큰일 날 뻔했어.”서지욱은 참지 못하고 그를 나무랐다.“너도 참, 자기 몸을 너무 소홀히 하는 거 아니야? 하 비서가 말하길 마르세유에서도 기침했, 신주시로 돌아오는 10여 시간 동안 이코노미석에 앉아 있었다며, 왜 그렇게 자기 자신을 괴롭혀?”연재준이 시선을 아래로 향하자 속눈썹 그림자가 창백한 뺨 위로 드리웠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바닥으로 침대 매트리스를 짚으며 일어나려 했다. 침대 끝에 있던 윤영훈이 침대 높이 조절 버튼을 눌러 침대를 세워 기댈 수 있게 했다.“고마워요.”“별말씀을.”윤영훈은 궁금한 듯 물었다.“의사 말로는 연 대표님의 혈압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게 감정의 급격한 변화 때문이라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혹시 마르세유에서 무슨 일이 있었거나 누구를 만난 건가요?”이 말에는 탐색의 의미가 있었다.이혁재는 그 말에 불쾌해하며 그를 바라보았다.“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윤영훈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내밀며 말했다. “별 뜻 없어요. 그저 연 대표님이 걱정해서 그런 겁니다.”“아르사 그룹과의 협상이 잘 안되어서 그래요.” 연재준이 목소리를 낮추며 약간 기침을 했다.하정은이 즉시 말을 이어받았다. “네, 그들이 해성을 신생 회사로 보고 압박을 가해서 조건을 매우 까다롭게 제시했어요. 하지만 아르사와의 협력이 해성에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혁재는 연재준이 잠깐 해외로 다녀온 후 하는 말들이 다 알쏭달쏭하다는 느낌이 들었다.연재준은 아르사와의 계약서를 서지욱에게 건네주었다.서지욱은 두어 장 넘겨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말했다.“이 프로젝트는 정말 방대해. 완공하려면 최소 3년이 걸릴 텐데, 이 프로젝트만 있으면 해성은 금방 크게 될 수 있어. 묘목에 비유하자면 이제 막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는 단계지.”연재준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해성은 반드시 크게 될 거야. 뿌리내리고 싹을 틔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을 거야.”그녀가 와서 따갈 때까지....신현우와 윤영훈은 함께 병원을 나왔다.5월의 밤바람은 시원했고 병원 앞은 24시간 내내 사람이 붐볐다.두 사람은 길가에 서서 운전사가 차를 가져오기를 기다렸다.길 건너편 상점들의 네온사인이 오색찬란하게 빛나며 그들 위로 떨어졌다. 한 사람은 엄숙하고 정직한 표정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자유롭고 경쾌한 표정이었다.신현우가 윤영훈에게 물었다. “아까 연재준에게 그렇게 물어본 건 무슨 뜻이에요?”무슨 일을 당했는지 누구를 만났냐는 질문은 너무 무례해 보였다.윤영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나는 우리 연 대표님의 감정이 그렇게 요동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어요. 당시 유 비서가 죽었을 때도 담담하던 분이 그러니, 그저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신현우가 말했다.“우리는 지금 협력 파트너예요. 그렇게 계속 그를 탐색하려고 하면 그가 기분 나빠할 수 있어요.”연재준은 절대 좋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윤영훈은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르사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총가치가 60조에요. 60조. 이 숫자, 좀 재미있지 않아요?”...이혁재는 병원을 떠나 집으로 바로 갔다.그는 이승연과 같이 '진주만'에 살고 있었다. 오늘은 그가 최근 들어 가장 일찍 돌아온 날이었으며 평소에는 새벽 몇 시가 되어야 집에 오곤 했다.문을 열자마자 여자의 구토 소리가 들려왔다. 이혁재는
이승연은 흠칫하다 결국 단호하게 이혁재의 품에서 벗어났다.이혁재도 그녀의 몸을 너무 꽉 안지 못하고 그녀가 거부하자 순순히 풀어주었다.이승연은 다른 소파로 가서 앉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보다시피 나는 매일 이렇게 먹고도 아이를 5개월 동안 잘 키우고 있어. 매번 검진 결과도 매우 건강해. 그러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네가 훈계할 필요는 없어.”이혁재는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그녀는 이미 샤워를 마쳤고 얼굴은 깨끗했으며 백옥같은 피부가 스탠드 조명 아래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이야기 하나 해줄게.”“하느님이 이승연이라는 여자를 만들 때 지능을 한 통 가득 부었어. 이제 감성을 한 통 부으려고 보니 어머, 이미 용기가 가득 찼네? 그래서 아쉽지만 감성은 넣지 못했지.”“결과적으로 이승연이라는 여자는 감성이 부족하게 태어난 거야. 내가 당신을 '훈계'한다고? 나는 분명히 당신을 걱정하는 거라고.”이승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5개월이나 지나서 관심을 가져준 것에 감사하지만 너의 관심은 필요하지 않아.”“...”‘변한 게 없다는 방금 한 말은 취소야.’ 임신 5개월 동안 몸매는 변하지 않았지만 성격은 꽤 많이 변했다...원래도 성격이 만만치 않았지만.이승연은 더 이상 그와 말을 섞지 않고 거실로 갔다.이혁재도 따라 나갔다. 이승연은 그릇에 담긴 면을 들고 주방으로 가서 전자레인지에 넣고 데우려고 했다이혁재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말했다.“한 끼도 내가 시킨 음식을 먹지 않으려고 그래? 우리는 부부야, 그렇게 선을 그을 필요가 있어?” 그는 다시 요리를 주문해서 가져다주겠다고 말했었다.“나는 너와 이혼하지 않기로 약속했지, 다른 약속은 하지 않았어. 우리가 선을 긋지 않으면 더 복잡해질 거야...읍!”이승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혁재는 뒤에서 다가와 그녀를 냉장고에 눌러 붙이고 곧바로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그의 키스는 매우 능숙했고 특히 일부러 유
이승연은 그를 밀어냈다. 성격이 강한 사람은 구속받는 것을 싫어했다. 하필이면 이혁재 역시 알파(Alpha)였으며 성격이 강한 두 사람은 ‘상호 배척’하고 있었다.그녀는 오븐 장갑을 끼고 전자레인지에서 면을 꺼내 거실로 돌아와 먹기 시작했다. 이혁재는 자신만의 정신 승리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승연은 자신이 가져오는 음식을 먹기 싫어서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너무 배가 고파서 기다릴 수 없어서 눈앞에 있는 걸 먹는 거라고 자아 위로했다. 그리고는 턱을 긁적이며 냉장고를 열어 두리번거리다가 계란 두 개를 꺼냈다. 이승연은 그가 부엌에서 무엇을 하는지 신경 쓰지 않은 채 국수를 먹으면서 핸드폰으로 서류를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혁재는 그녀의 국수 그릇에 반숙 계란 후라이 두 개를 올려놓았다.“핑크 솔트로 간을 했어. 맛있을 거야.”맛이 어떨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계란은 잘 익었다. 흰자는 타지 않았고 노른자는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다. 이승연이 포크로 살짝 찌르자 반숙된 노른자가 흘러내렸다. 그녀는 이혁재를 한 번 쳐다보았다.“너 요리도 할 줄 알아?”이혁재는 무심코 쿠션을 집어 들고 웃으며 말했다.“잊었어? 나 옛날에 아버지한테 쫓겨나서 당신 집에서 얹혀살았잖아. 당신이 집에 돌아와서 나에게 밥 해주는 걸 잊어버리면 나는 혼자 만들어 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그나마 집에 얼마 없던 식량도 내가 다 먹어버렸잖아.”이 말은 이승연의 거의 잊혀진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혁재가 17, 18세였을 때 그는 한창 반항하고 있었다. 한 번은 어찌 된 일인지 아버지와 크게 다투고 가출해 그녀를 찾아왔다. 그때의 이혁재는 그녀에게 나중에 자신이 그녀를 보호하고 그녀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연은 그를 받아주었고 그는 그녀 집에서 한 달 넘게 지냈다. 그 당시 그녀는 대학생이어서 학업이 바빠 그를 돌볼 시간이 많지 않았다. 기억이 나면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사다 주었고 기억이 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갔다. 이혁재도 10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