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연주가 별안간 걸음을 멈추더니 서늘한 얼굴을 하곤 양복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던지다 싶이 걸쳐주며 말한다.“자기절로 옷 사서 바꿔입어.“루장월은 외투를 걸치지 않았고 옷은 그렇게 바닥에 떨어졌다.문연주의 안색이 한층 더 서늘해지더니 말한다.“너 지금 나한테 화 내는거야?“수옥은 참지 못하고 콧등을 만졌다. 세상에나……루장월이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휴게실에 바꿔입을 옷 있다고 했잖아요. 사장님만 아니었으면 돈 들여서 셔츠 살 일도 없죠.““너 셔츠 하나 살 돈도 없어?”문연주가 가죽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똑같이 그녀에게 던져줬지만 그녀가 받지 않아 또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두 사람은 그렇게 신경전을 벌였다.결국엔 보다 못한 수옥이 땅에 떨어진 외투를 집어 먼지를 털어주곤 카드를 주머니에 넣은채 루장월의 어깨에 걸쳐주며 말했다.“맞은켠에 백화점 있는데 여성복도 팔거예요. 날도 추운데 루비서 하나 골라서 바꿔입어요,감기 걸리면 안되니까.““카드는 맘대로 긁어, 얼마정도 사도 괜찮으니까……우린 먼저 “송학거”에 가 있을게. 옷 다 사면 바로 건너 와 기다리고 있을테니까.“문연주가 차가운 눈빛으로 루장월을 한번 바라보더니 몸을 돌려 가버렸다.수옥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뒤따라갔다.루장월은 단 일초도 참지 못하고 외투를 벗어던져 손에 꽉 움켜쥔다. 바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말이다.이 남자가 진짜!장장 3분동안을 화를 삭힌 루장월은 겨우 진정하고 맞은 켠 백화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한편 여기서는 수옥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한다. “너는 어? 그렇게 이유도 없이 루비서 못살게 굴어야겠냐?“그의 여자가 남들 입에 오르락 내리락하는데 이건 순전히 본인 앞길을 막는게 아니고 뭐란 말인가?문연주는 그저 그녀가 뭘 하든 다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었다.수옥이 따끔하게 말한다.“너도 꼭 후회할 날이 있을거야.”……루장월은 백화점으로 들어가 브랜드를 고르지도 않고 아무 옷이나 고른 뒤 치수를 알려줬다.“
이 식사 자리에서 루장월은 딱히 끼어들어 할 말이 없었기에 조용히 식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심묘묘가 문연주를 붙잡고 이것 저것 묻는 사이 루장월은 벌써 죽순마 삼계탕,게장 두마리,새우 튀김 세 개에 푸아그라 절편,계피 생선,배추 절임까지 해치우고 있었다.수옥은 속으로 이 여자 식욕이 엄청나다며 감탄을 하고 있다.문연주 역시 처음으로 그녀가 이렇게 잘 먹는걸 본것 같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며칠 굶긴 줄 알 정도로 집중해 먹고 있는 그녀는 다른 사람은 거들꺼 보지도 않는다.그가 별안간 입을 연다.“너 다 먹었어?“고개를 든 루장월은 그가 자신을 보며 묻는걸 알곤 레몬차를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 ”사장님 무슨 지시 사항이라도?“문연주가 말한다.”심 아가씨 집에 데려다 드려.“루장월은 차가 없는데 어떻게 데려가라는 건가?하지만 반박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이 기회를 틈 타 빠져나가기 위해 얼른 대답했다.”알겠어요.“심묘묘도 그녀와 함깨 가길 원했는지 백을 들고 몸을 일으킨다.”그럼 연주 오빠, 저희 내일부터 회사에서 봬요.“문연주가 고개를 끄덕인다.심묘묘가 루장월의 팔짱을 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부른다.“장월 언니~”두 사람이 식당을 나가는 걸 본 수옥은 문연주를 어이없어 한다. 심묘묘를 우연히 만난건데 어떻게 그의 썸 상대를 루장월더러 집에 데려다주게 할 생각을 할 수 있지?그가 말한다.“네가 루비서더러 데려다 주라고 하면 또 심소흠이랑 마주칠거 아니야?”문연주가 미간을 찌푸린다.루장월과 심묘묘는 길가에서 콜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묘묘는 어린 애처럼 친하지도 않은데 친근하게 손을 잡고는 상반신을 완전히 그녀의 어깨에 기댄채 끈적끈적하게 말했다.“사장님 너무 잘 생기셨어요~”“전 대학교 4년동안 한번도 이렇게 잘 생긴 남자를 본 적이 없어요, 남자 연예인들 보다도 훨씬 잘 생겼어요! 그리고 일종의 매력같은 게 있는데 뭐랄까. 장월 언니는 알죠,일종의 그런……그런……뭐라고 해야 하지, 아무튼 전 3년이 지나도 잊혀
심묘묘가 흥분에 겨워 말했다.“진짜요? 좋아요!”그녀는 폴짝폴짝 뛰며 날 듯이 기뻐했다. “장월 언니, 그럼 전 언니 안 따라갈게요. 저희 내일 회사에서 봐요~“루장월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문연주는 바로 가버린다.루장월은 길가에서 계속 콜택시를 기다리며 속으론 언제부터 심묘묘와 자신이 친한 언니 동생 사이가 됐는지, 문연주와는 이미 연인사이가 된건지 담담하게 생각을 했다.“문연주 여자 친구“라는 지위는 원래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구나.백유도 되고 심묘묘도 되고.다시 돌이켜보니 3년을 따라다니고도 아무런 칭호 하나 없었던 건 오직 그녀 뿐이다.흥.그저 루장월은 문연주의 “먹성“이 그리 좋은 줄 몰랐을 뿐이었다.이튿날, 그녀가 회사에 도착했을때 비서실엔 심묘묘 뿐만 아니라 그 비서도 함께 있었다.비서가 우쭐거리며 그녀 앞으로 다가와선 득의양양하게 말한다.“사장님이 저더러 돌아오시라고 한거예요. 제가 회사에 세운 공이 있으니 절 해고하지 않으시겠다고요. 그 누구더러 잘난 체 하지 말라네요.“루장월은 속으로 몇번이고 눈쌀을 찌푸렸지만 겉으론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다.어제 이미 그녀가 이해관계에 대해 명명백백히 설명했고 문연주도 이에 동의해서 다시 심묘묘를 찾은건데 왜 비서더러 더 남아있으라고 하는거지?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건, 비서의 눈엔 오만 뿐만 아니라 미움도 함께 공존해 있다는 것이었다.루장월은 서류를 제출하러 문연주의 사무실로 가면서 이참에 그에게도 물었다.“사장님 어제 분명 저한테 그 비서 남기지 말라고 하시지 않으셨어요?“문연주가 도리어 반박한다.“너 비서한테 내가 아주 마음에 들어한다 했다며? 네가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그럼 나도 자연히 남겨야지.”“제가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앞전 차 안에서 저한테 그 비서만 데려오면 진 사장님께 한 발 양보하시겠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그건 흥미를 느끼는 게 아니면 뭔가요?“따져보면 어제 루장월이 덮어썼던 물 반 컵과 비서의 살기는 그녀를 향하는 게
루장월이 고개를 드니 비서가 웃음을 꾹꾹 참는듯한 모습으로 말한다.“루비서님 빨리 처리해주세요. 얼른 써야 돼요.“서류를 열어보니 진 사장 계약서다. 그녀는 도로 서류를 덮으며 말했다.“이 협력건은 본인이 맡고 있는 건데요. 전 마지막 회담에만 참여 했을 뿐입니다.“비서가 팔짱을 끼며 말한다.“문 사장님이 그러시는데 비서실 모든 서류는 수석 비서가 담당한다고 하시던데요.““그럼 사장님더러 직접 저한테 와서 말씀하시라고 하세요. 제가 담당해야 하는 문건이면 제가 무조건 책임집니다.“루장월은 바로 서류를 비서 자리로 던져버리고 책상 끄트머리에 있던 물 컵도 함께 엎어버렸다.비서가 화가 폭발해서는 소리친다.“너!”루장월은 받은대로 갚아줬을 뿐이었다.심묘묘는 눈을 꿈벅꿈벅거리더니 자발적으로 와서는 땅에 엎어진 루장월이 보온병을 주워 책상에 올려주곤 비서를 밀어 비서실 밖으로 나갔다.“저,언니. 제가 금방 와서 화장실이 어딘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저 데리고 같이 가주세요.“그녀는 금방 화장실에 다녀왔지만 이렇게라도 둘을 떼어놔야 진짜 싸우는 걸 막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다른 두 비서들도 연신 루장월을 달래며 말했다.“문 사장님이 요구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너도 너무 그러지는 마.“그들은 문연주가 극대노해 그녀들을 발령낼 게 두려웠던 것이다.일은 그들이 상상하던 그대로 전개됐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비서가 퉁퉁 부은 눈으로 사장실로 달려가 고자질하는 걸 보게 됐다. 채 10분도 되지 잖아 루장월 역시 들어오라는 문연주의 연락을 받았다.이 장면,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이다.지난 번 발령때도 똑같은 이 절차였다.두 명의 비서는 근심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지만 루장월은 오히려 평온한 마음으로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문 사장님.”문연주가 옷걸이에 걸려있던 양복 외투를 입으며 그녀를 보지도 않은 채 지시를 내린다.“책상 위에 있는 서류 들고 가서 기사한테 말해. 5분 뒤 정문에서 픽업하라고.“루장월은 이해가 가지 않는
아이스크림점을 지나게 되자 심묘묘는 잔뜩 애교를 부리며 문연주에게 막대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했다. 방천 역시 갈증이 난다며 사달라고 했고 문연주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들더러 직접 기서 고르도록 했다.문연주는 막대 아이스크림을 보니 루장월이 좋아했던게 문득 생각이 났는지 하나를 가지고는 뒤로 몸을 돌렸다. 허나 루장월은 항상 달고 다니던 보온병을 열어 물을 마시고 있었다.“……”루장월도 아이스크림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번 생리통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는 유산으로 인한 자궁 손상으로 추측하고 잘 요양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찬 음식과 얼음 들어간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았고 평소엔 대추차만 마셨댔다.문연주는 무표정으로 막대 아이스크림을 도로 냉장고에 가져다 놨다.심묘묘가 “앗”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스크림이 녹아 손가락에 떨어졌는데 종이로 두어번 닦은 뒤에도 끈적끈적하니 불편했는지 말한다.“여기 화장실 없어요?”“있어요. 저기서 코너만 도시면 돼요.”쇼핑몰 관리자가 길을 안내해주자 심묘묘는 아이스크림을 던져버리고 말했다.“연주 오빠. 저 가서 손 씻고 올테니까 저 기다려야 돼요.”문연주는 브랜드 관계자에게 상황 설명을 듣고 있었는데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무튼 고개를 끄덕이긴 한다.심묘묘는 혼자 화장실로 향했다.루장월은 다른 데를 돌아보다가 우연히 뷰티 매장 가이드 둘이 말하는걸 엳듣게 됐다.“너 그거 알아? 우리 매장 근처에 바바리맨 나타났대! 나 어젯밤에 퇴근하다가 먼데서 그 사람 보고는 까무러칠 뻔했다니까!”“나도 알아. 누가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들이 어디로 숨어들었는지 그 사람 못 잡았대……설마 우리 매장에 있는 건 아니겠지……”루장월이 정신이 번뜩 들어 뒤를 빙 돌아봤다. 문연주는 아직도 브랜드 관계자와 대화중이고 방천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심묘묘만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그녀가 시계를 들여다 본다. 벌써 10분이나 지났다, 예감이 좋지 않았던 그녀는 재빨리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금방 가려는데
바바리맨은 가드들에 의해 잡혔고 파출소로 인계됐다.심묘묘는 충격이 컸는지 불쌍한 척 울면서 자기 몸을 더럽혔다고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문연주를 붙잡곤 꼭 자기 곁에 있어달란다.결국 오늘의 외부 시찰응 할수 없이 마무리 됐고 그들은 근처에 있는 호탤 방을 잡아 그녀가 샤워를 하게 했다.문연주가 사람을 시켜 심묘묘더러 옷을 사주게 했다.심묘묘가 글썽이며 말한다.“다른 사람은 싫고 장월 언니요. 장월 언니 저 도와서 사주세요, 다른 사람들은 보는 눈이 없어서 그래요. 전 못난 옷은 입기 싫거든요!”문연주가 루장월을 바라본다. 루장월이 알아 차리고 인차 답한다.“제가 가서 사올게요.”문연주의 시선이 한참동안 그녀의 얼굴에서 머물더니 그제야 입을 연다.“호텔 맞은켠에 옷 가게 있으니까 먼저 가서 사고 회사 가서 청구해.“알겠다고 답하고 뒤 돌아 두 발자국 걸어간 루장월에게 그가 또 한마디를 덧붙인다.”필요하면 너도 사도 돼.“루장월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린다. 심묘묘가 문연주의 옷을 끌어당기며 바바리맨 몸에서 약한 냄새가 났어서 아직도 그게 잊혀지기가 않는다며 헛구역질을 하며 말하는게 보인다.”연주 오빠. 제 곁으로 더 와요, 오빠한테선 좋은 냄새 나……“루장월은 시선을 거두고 방을 나왔다.방천이 뒤따라 나오며 말했다.”여자애가 나이는 어린데 잔꾀는 많네.”딱히 그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루장월은 표정 변화도 없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고 이윽고 문이 열렸다.방천을 문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쟤 순진한 척, 약한 척 하는거 안 보여? 옷 사준다 해도 그건 그냥 못 살게 굴고 떼어놓으려고 그러는 거잖아. 우리 둘 다 없으면 방에서 무슨 일 생길지 생각해 봤어?”그녀가 목을 만지며 심묘묘 성대모사를 하며 말했다.”연주 오빠, 저 혼자 있기 무서워요. 오빠가 저 씻겨주면 안 돼요……“루장월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한다.”방비서 취비가 성대모사면 연예계 입성이나 해보지 그래. 난 이런 행위 예술 안 좋아하니
루장월이 끄덕하지 않고 말한다.“비서라면 당연히 준비가 잘 돼 있어야죠. 뭐 틀린것도 아닌데요.”문연주가 답한다.“넌 그렇게 내가 쟤랑 무슨 일 생겼으면 좋겠어?”“사장님이 뭘 하고 싶으시든 저랑은 상관 없어요.”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문연주가 갑자기 그녀를 향해 걸어온다. 루장월은 직감적으로 그가 기분이 안 좋다는 걸 알고는 뭘할지 몰라 뒷걸음질을 쳤다.마침 이때 심묘묘가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연주 오빠, 저 옷 갈아 입었어요.”루장월이 곧장 말한다.“그럼 전 먼저 아가씨 데려다 줄게요.”심묘묘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괜찮아요 장월 언니, 저 이미 괜찮아졌어요. 계속 출근할 수 있어요.”“그렇게까지 꾸역꾸역 안 해도 돼.”“저희가 같이 겪은 일인데 장월 언니는 울지도 않고 저도 더 이상 약하게 굴 순 없어요. 저도 용감해 질거예요!”심묘묘는 진지하기 그지없었다.문연주는 누구도 보지 않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회사 돌아가자.” 회사 돌아온 루장월이 비서실로 가려는데 문연주가 그녀의 팔목을 붙잡고 말했다.“따라 와.”그녀는 강제로 사무실로 끌려갈 수 밖에 없었다.루장월이 미간을 찌푸린다. 상사와 직원 사이의 이런 신체적 접촉은 누가 봐도 합리하지 않은데 말이다.그녀가 얼른 손을 빼내며 말한다.”사장님 지시 사항 있으시면 바로 말씀하시면 돼요.“문연주가 차갑게 말한다.”매장 일 때문에 그러는거야.“루장월이 그에게 보고한다.”제가 이미 매장 측과 말해봤습니다. 바바리맨은 매장에 있는 화물 옮기는 뒷문으로 들어왔을거라고 하네요, 보안도 그리 심하지 않아서요.“”당연히 매장 측에서도 관리상의 허점을 인정했고요. 이런 일들은 매장에 부정적 영향을 줘 이미지에 타격을 주니 거기서 내놓은 방안은 보안을 강화하고 감시 및 순찰을 강화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는 거였습니다.“”제가 그 사람들한테 놀란 사람이 서청 심씨 가문 아가씨라고 말씀드렸어요. 아가씨에게 직접 사과드리길 원하더군요. 선물도 보내드릴건데
탕비실 입구로 걸어갔던 루장월이 때마침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됐다.그녀가 우뚝 걸음을 멈춘다.심묘묘가 재빨리 대답했다.“저희 사이 이간질하지 마세요!“”연주 오빠랑 장월 언니가 설령 진짜 뭐가 있다고 해도 전 장월 언니랑 공평하게 경쟁할거예요! 비서님도 연주 오빠 좋아하면 같이 공평하게 경쟁해도 돼요. 전 제가 그 누구보다 우월하다고 자신해요. 연주 오빠는 결국 저와 함께하게 될거예요!“루장월이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심묘묘는 확실히 착한 여자애다. 근데 이 방천이란 사람은 그녀를 이용해 심묘묘를 처리하지 못하니 바로 심묘묘를 꼬드겨 그녀를 처리하려 든다. 뭐든 하지 않는게 좋을거다, 그랬다간 그때는 그녀 또한 이판사판이니까.……저녁 퇴근 뒤 루장월은 1층 로비에서 심소흠을 봤다.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심 교수님.”“루 아가씨.”심소흠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다.루장월이 추측하며 말한다.“아가씨 데리러 오셨군요? 제가 내려올때 동료와 얘기하고 있던데 아마 곧 내려올거예요.”심소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늘 매장에서의 일은 저도 다 들었어요. 비서님한테 고맙다는 인사도 미처 못 드렸네요.”“그게 무슨 목숨 바쳐 구한거라고요, 그저 손 드는 일만큼 간단한 일이었는걸요. 그리고 제가 없었더라도 아가씨는 그때 별일 없으셨을거예요.”따뜻한 심소흠의 눈빛이 안경 너머로 비춰진다.“하지만 현실은 확실히 비서님이 제 동생을 구해주신 거죠.”루장월이 멋쩍게 웃어보이며 말한다.”알겠어요. 교수님 감사 인사는 제가 먼저 받을게요.“심소흠이 말한다.”고맙다는 말로는 안되죠. 제가 식사 대접할게요.“루장월이 다급하게 말했다.“진짜 괜찮아요.”심소흠이 진지한 얼굴로 농담을 늘어놓는다.“제가 식사라도 안 대접하면 양심에서 내려가질 않아서 그래요.”그저 밥 한끼다. 연신 거절하는 것도 아닌듯 하니 루장월도 결국 승낙하며 말했다.“그럼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얼마나 지났을까, 심묘묘가 내려왔다. 그녀 역시 열정적
현시우는 이런 터무니없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는 차분하면서도 냉정한 태도로 어머니를 추궁했다.“단순히 유용우를 봤다는 이유로 유월영이 그의 친여동생이라고 단정 짓는 건 말이 안 돼요.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러시는데요?”그가 아는 바로는 유월영의 집에는 세 자매가 있었다. 왜 꼭 유월영이어야 하는 걸까?“나이대가 맞지 않아서요?”그는 계속해서 반박했다.“다른 가능성도 있지 않나요? 유월영의 집은 부유한 가정이 아니에요. 자식을 여러 명 키우는 건 부담스럽고, 게다가 고씨 가문의 딸을 키우는 건 위험 부담도 크잖아요. 여동생이 이미 다른 곳으로 보내졌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 않나요?”이 모든 시간 동안 그들은 늘 긴장 속에서 살아왔다.연회 부인은 외출조차 하지 못했고, 유용우네 가까이 지내는 것도 두려워했다.그래서 유용우네 부부가 시내로 이사한 것도 몰랐고, 그들의 세부 사항도 알 수 없었다.현시우는 어머니의 말에 반박할 수 있는 이유를 수십 가지나 가지고 있었다.연회 부인이 조용히 말했다.“그러면 유전자 검사를 직접 해보렴.”“...”만약 그녀가 확신이 없다면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현시우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거미줄처럼 얽힌 핏줄은 그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연회 부인은 그가 이 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그를 위로하려고 애썼다.“아마 너는 처음부터 네 감정을 잘못 알았던 것 같아. 너의 마음속에서 유월영에 대한 감정은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었을 수도 있어. 어쩌면 혈연관계가 작용해서 너를 혼란스럽게 만든 걸지도 몰라.”“그렇지 않다면 너의 성격으로 그렇게 쉽게 누군가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네 주변에 훌륭하고 예쁜 여자애들이 많았잖아? 그런데 너는 그들에게 아무 감정도 없었잖아. 그런데 유월영을 알게 된 지 몇 달 만에 이렇게 깊이 좋아하게 된다니, 말이 안 되지 않니?”“그래서 내 생각엔 이건 사랑이 아니라 운명이 장난을 친 거야.
“손님, 이 케이크는 당일 제조된 거라 유통기한이 짧아요. 냉장고에 넣어도 최대 3일밖에 보관할 수 없으신데, 이렇게 많이 사가시면 다 드실 수 있으신가요?”유월영이 조심스레 물었다.연회 부인은 선글라스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일 제조된 거라면 학생이 직접 만든 거예요?”“제가 아니고 저희 가게에서 직접 만든 거예요. 한번 맛보신 후에 마음에 드시면 구매하셔도 돼요. 다만 가족 인원이 많지 않으시면 한 번에 다 사는 건 추천해 드리지 않아요.”유월영이 케이크 한 조각을 잘라 그녀에게 건넸다.“우리 집은 식구가 많아서 다 먹을 수 있어요.”연회 부인은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학생, 교복을 보니 신주시 고등학교 학생인 것 같은데 우리 아들도 그 학교 다녀요.”유월영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아, 그러신가요.”“학생, 참 예쁘게 생겼네.”연회 부인은 그녀가 점점 더 마음에 들었고 유월영은 조금 쑥스러워하며 말했다.“아니에요. 손님께서 훨씬 멋지고 품격 있어 보이세요.”“말도 참 예쁘게 하네요.”연회 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케이크 맛있네요. 이거 전부 살게요. 계산해 주세요.유월영은 계산하며 말했다.“총 3만 6백 원인데, 3만 원만 받을게요. 맛있으시면 또 오세요.”“그럼 그럴게요.”계산을 마친 연회 부인이 케이크 포장을 들려고 했지만 그녀의 네일아트를 본 유월영이 주저하며 물었다.“차로 오셨나요? 제가 차까지 들어다 드릴게요.”“그래요, 그러면 저야 고맙죠.”연회 부인은 그녀를 차로 데려갔고 유월영은 케이크를 차에 실은 후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연회 부인이 출발하려는 찰나 중년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 옆에 멈췄다.“아빠!”유월영이 그를 부르는 소리에 연회 부인은 본능적으로 그쪽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그녀의 얼굴은 창백해졌다.유월영이 아버지라고 부르던 사람은 고해양의 곁을 지키던 경호원이었고 그녀는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갑작스러운 만남에 연회 부인은 몸은 얼어붙었고 혼란에
“아니.”현시우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남자들끼리의 문제일 뿐이야. 별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유월영이 화를 내며 말했다.“별거 아니긴 개뿔!”현시우는 예상밖의 반응에 잠시 멍해졌다.유월영이 이렇게 거친 말을 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비록 심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자신을 위해 그랬다는 사실에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월영아, 욕은 하지 마.”“할 거야! 너도 싸움질을 했으면서 내가 욕하는 걸 뭐라고 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지!”유월영은 그의 상처를 가까이서 살펴보며 점점 더 화가 났다.“도대체 너랑 싸운 사람이 누구야? 왜 싸운 건데?”현시우는 말하고 싶지 않아 아픈 팔다리를 살짝 움직이며 말했다.“월영아, 와서 안아줘.”“꿈 깨!”옆방에서 의무실 선생이 연재준의 얼굴에 멍이 든 곳에 약을 바르려고 했지만 그는 무표정하게 이를 피하며 말했다.“필요 없어요. 그냥 나가세요.”의무실 선생은 잠시 망설였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료 상자를 챙겨 방을 나갔다.두 소년의 부상은 비슷했다. 뼈나 근육에는 이상이 없었고 학교 보안요원이 빠르게 싸움을 말려 모두 표면적인 상처에 불과했다.방문이 닫히지 않았기 때문에 옆방에서 들리는 대화가 연재준의 귀에 고스란히 들려왔다.유월영이 현시우를 걱정하며 하는 말들이 하나하나 그의 귀에 들어왔다.연재준은 그 말을 들으며 살을 도려내는 고통이 있다면 이와 같을 거라고 느꼈다.학교는 싸움에 대해 별다른 처벌을 내리지 않았고 다만 두 학생의 부모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다.연민철은 이미 아들 연재준을 신경 쓰지 않았고 반면 현시우의 가족은 이 소식에 크게 놀랐다.현시우는 어릴 때부터 감정 기복이 별로 없고 차분한 성격으로 한 번도 싸움을 하거나 심지어 다툰 적도 없었다.그런 그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것도 학교 안에서 참지 못하고 싸움을 벌인 건지 현씨 가문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당시, 현시우의 어머니인 연회 부인은 현씨 가문에서 사모님으로 은둔하며 지냈다.하지
현시우가 유월영을 집까지 데려다주며 단호하게 말했다.“내일 내가 대신 병가를 낼 테니까 너는 집에서 푹 쉬어. 책도 보지 말고 문제도 풀지 마.”유월영은 그의 강압적인 태도에 살짝 당황하며 대답했다.“괜찮아. 나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의사 말 못 들었어? 네가 과로로 쓰러진 거라고. 시간이 부족하면 중요하지 않은 일부터 줄여야 해. 월영아, 모든 걸 다 해내려고 하지 마. 그리고 모든 걸 완벽하게 하려고도 하지 마.”현시우는 그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유월영은 항상 모든 일을 포기하지 못하고 최선을 다해 이루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집착과 강박은 결국 그녀를 지치게 만들고 말았다.사람의 몸은 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유월영은 신중히 고민한 끝에 어머니에게 댄스 수업을 그만두겠다고 말했고 학교의 댄스 동아리도 탈퇴하기로 결정했다.춤은 그녀에게 단순한 취미였지만 이제는 정상적인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었기에 잠시 내려놓는 것이 맞았다. 대학에 가거나 졸업 후 여유가 생기면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주말과 월요일까지 3일이 지나고 유월영은 학교로 돌아왔다. 몸 상태는 완전히 회복되었고 감기도 거의 나아 약간의 콧물만 남아 있었다.유월영이 등교한 날, 연재준은 유월영의 교실 앞을 지나쳤다. 친구들과 웃으며 대화하는 그녀의 얼굴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그는 발걸음을 돌렸다.병원에서 그는 원래 깨어난 유월영에게 잃어버린 옥불을 따질 계획이었지만 아버지로부터 온 전화로 인해 급히 돌아가야 했다. 부모님의 이혼 문제 논의에 꼭 참석해야 했던 것이다.그리고 익명의 영웅이 될 생각이 없었던 그는 방과 후 그녀를 찾아갈 계획이었다.연재준이 유월영의 반으로 향하던 중, 현시우와 마주쳤다. 연재준은 신경 쓰지 않고 지나치려 했지만 현시우가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그날 월영이를 병원으로 데려다줘서 고마워.”연재준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고맙다면 네가 아니라 본인이 와서 말해야지. 넌 대리인이야?”현시우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담담히
운전기사는 연재준의 상태를 걱정하며 우산을 들어주었지만 연재준은 비에 젖은 창백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차에 올라탔다.그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고 병실에 도착했을 때 유월영은 링거를 다 맞고도 여전히 깨어나지 않은 상태였다.연재준은 침대 옆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고 그의 몸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한참을 서 있던 그는 쉰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유월영, 이제 너는 나한테 빚졌어.”그녀 때문에 잃어버린 것은 그녀가 반드시 갚아야 할 것이었다.얼마 후, 유월영이 천천히 눈을 떴다. 침대 앞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물웅덩이와 함께 현시우가 앉아 있었다.“...”유월영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병원이었지만 자신이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목이 쉬고 아픈 느낌이 들었다.“목 아파? 편도선염이야. 당분간 말하지 마.”현시우는 탁자에 있던 따뜻한 물을 들고 한 팔로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을 한 모금씩 먹이며 부드럽게 상황을 설명했다.“너 열이 나서 길에서 쓰러졌어. 다행히 누군가 널 병원으로 데려왔어.”“기절했다고?”유월영은 놀란 눈으로 현시우를 바라봤다. 폭우 속에서 길을 헤매던 기억은 있었지만 쓰러졌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따뜻한 물이 목을 적시니 조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목이 아팠다.유월영이 억지로 몇 마디를 이어갔다.“누가...날 병원에 데려왔어?”현시우는 물컵을 내려놓고 그녀가 좀 더 편히 누울 수 있도록 베개를 정리했다.“간호사 말로는 너랑 같은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었는데 이름을 남기지 않았대.”“시험 끝나고 널 찾으러 갔는데 네 짝꿍이 네가 집에 갔다고 했어. 근데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걱정돼서 네 집으로 갔거든. 근데 네가 없더라.”유월영의 가족조차 그녀가 어디 갔는지 몰랐고 현시우가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위험에 빠진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에 가족들과 함께 학교에서 집까지의 길을 수색했다. 그러다 편
연재준의 화난 표정은 유월영을 바라보며 점점 누그러졌다.그녀는 너무 말랐고 얼굴이 창백했다. 입술에는 핏기가 없었으며 온몸이 빗물로 흥건해져 안쓰럽기 그지없었다.게다가 두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 건 드문 일이었다.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수건을 들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과 목에 흐르는 빗물을 닦아주었다. 그러다 부드러운 피부에 손이 닿자 순간적으로 손을 홱 뒤로 뺐다.소년의 얼굴에는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귓불은 점점 붉어졌다.연재준은 숨을 멈추고 다시 유월영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고 그는 그제야 살짝 안도했다.그녀가 자신을 기회를 노리는 이상한 변태라고 생각하는 건 원하지 않았다.연재준도 자신의 마음을 잘 몰랐다.지난 18년간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었던 자신이 왜 교내 축제에서 춤추는 그녀를 보고 이렇게 빠져들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는 유월영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며 혼잣말을 시작했다.“너 그렇게 예쁘지도 않아. 사람 보는 눈도 별로고.”“왜 하필 현시우 같은 놈을 좋아하는 거야? 사람들은 항상 나랑 현시우를 비교하잖아. 그러니 너도 내 이름을 들어봤을 텐데...내가 너 대신 농구공도 막아줬고 도서관에서 햇빛도 가려줬잖아. 다 잊은 거야?”그는 자신의 기억을 곱씹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우리 함께 변태 선생을 잡은 적도 있잖아. 정말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거지...왜 한 번도 날 찾지 않았어?”“내가 너 앞을 그렇게 여러 번 지나갔는데 넌 왜 나한테 아는 척도 안 했어? 현시우가 나랑 친해지지 말라고 해서 그런 거야? 너 그렇게 말을 잘 듣는 아이였어?”그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중얼거렸다.“나도 나름 괜찮게 생겼잖아. 남자 친구를 바꿔보는 게 어때? 내가 현시우보다 너한테 더 잘해줄 자신 있는데. 유월영, 내 말 들려?”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그는 이렇게 많은 말을 했지만 유월영은 단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연재준은 그녀가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
유월영은 줄곧 모범생이었다. 지각이나 조퇴는커녕 항상 성적도 우수했기에 선생님들은 항상 그녀를 신뢰했다. 그래서 그녀가 조퇴를 요청하자 선생님은 별다른 질문 없이 허락해 주었다.다만 유월영의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자 선생님은 부모님께 연락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유월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저 혼자 돌아갈 수 있어요.”그녀는 어머니가 자전거를 탈 줄 모르고 아버지는 성격이 급했기에 아버지와 접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게다가 선생님은 그녀와 현시우가 가까운 사이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사적인 문제에 간섭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다. 이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발언권이 크지 않았다.선생님은 현시우가 차량을 보내줄 것이라고 짐작하며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조퇴 허가서를 작성해 주었다.“비가 많이 올 수도 있으니 밖에 오래 머물지 말고 빨리 집으로 가렴. 내일도 몸이 안 좋으면 꼭 병가를 내고 쉬어.”“감사합니다, 선생님.”갑작스러운 폭우가 내렸지만 유월영은 현시우에게 연락하지 않았다.그녀는 어젯밤 이미 그가 오늘 시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고작 20분 거리인데 그를 찾는다 건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다.비가 온다고 해도 우산을 가지고 있으니 괜찮을 거라 여겼다.그러나 유월영은 집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힘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갑작스러운 폭우가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쏟아졌고 강풍과 빗물 때문에 숨쉬기조차 어려웠다.유월영은 허둥지둥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펼쳤지만 강한 바람에 우산이 뒤집히고 순식간에 옷이 젖어버렸다.앞이 점점 보이지 않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몸이 휘청였다.그때 멀리서 날카로운 경적이 들렸다.빠르게 달려오는 트럭을 발견한 유월영이 급히 뒤로 물러섰지만 발밑에서 미끄러운 무언가를 밟아 넘어질 뻔했다.그 순간 강한 손길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그 사람은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유월영은 그의 가슴에 부딪히며 싸한 솔잎 향이 풍겨왔다.본능적으로 그의
“준비는 다 끝난 거예요? 거주지, 의사, 그리고 돌봐줄 사람까지.”연재준이 물었다.“그래. 신 씨 아저씨가 다 준비해 주셨어.”어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래요.”신씨 아저씨라...연재준의 어머니는 내심 죄책감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묶어놓은 족쇄에서 벗어나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됐다.하지만 아들은 비록 성숙하고 독립적으로 보이더라도 아직 고등학생일 뿐이었고 과연 그가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재준아, 걱정하지 마. 너희 아빠랑 이혼 합의서에 분명히 명시했어. 그가 재혼하더라도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도록. 연씨 가문과 해운 그룹은 앞으로 반드시 네 것이 될 거야.”이것이 그녀가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연재준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그는 지금 가문과 해운 그룹에 큰 미련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필요하다면 아버지가 열 명, 스무 명의 자식을 더 낳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가 굳이 애쓸 필요는 없었다.그는 마지막으로 허리를 굽혀 어머니를 안아주며 말했다.“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몸 잘 돌보세요. 방학 때 시간이 나면 찾아갈게요.”어머니는 감동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상자를 꺼냈다.“이걸 네게 주려고 가져왔어.”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투명하고 맑은 옥불이 들어 있었다.연재준은 그것을 알아보았다.“외할머니께서 남기신 거잖아요.”“그래. 외할머니께서 법사에게 받은 거라 아주 영험하다고 하셨어. 평안을 빌어주는 거야.”연재준은 다시 어머니에게 돌려주며 말했다.“어머니가 갖고 계세요.”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가지고 다니면 내가 마음이 놓일 것 같아.”결국 연재준은 옥불을 꺼내 목에 걸고 어머니를 배웅했다.차가 떠난 후, 그는 옥불을 교복 안쪽에 넣어 피부에 닿도록 하고 학교로 들어갔다.평소에도 말수가 적던 그는 오늘따라 더욱 차갑고 냉랭한 분위기를 풍겼다.쉬는 시간에 평소 그와 친했던 몇몇 친구
아침 6시 45분.유월영은 학교로 걸어가던 중 그녀의 짝꿍을 만나 두 사람이 함께 걸었다. 하지만 오늘 유월영의 상태는 조금 축 처져 보였고 짝꿍도 이를 알아차렸다.“너 어디 아픈 거야? 어젯밤 또 늦게까지 문제집 풀었어?”“아니야, 어젯밤은 꽤 일찍 잤는데 그냥 좀 어지러워. 왜 그런지 모르겠어.”짝꿍이 그녀의 이마를 만져봤지만 열은 없었다.“나 페퍼민트 오일 가져왔는데, 발라줄까?”“좋아, 고마워.”“뭘 이런 걸로.”유월영은 월반으로 들어온 학생이라 반에서 나이가 가장 어렸고 짝꿍보다도 두 살 어리니 마치 어린 여동생 같았다.페퍼민트 오일을 바른 후 짝꿍에게 돌려줄 때, 짝꿍의 시선은 먼 곳에 가 있었다.“저기 차 옆에서 누군가랑 얘기하고 있는 남학생이 연재준 아니야. 주변에 경호원들도 지키고 있네.”유월영은 제대로 듣지 못하고 짝꿍이 아는 사람을 본 줄 알고 물었다.“그럼 가서 인사라도 할래?”짝꿍은 과장되게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누가 감히 그래!”아무도 연재준에게 괜히 인사하러 가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짝꿍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빨리 가자, 빨리!”하지만 유월영은 달리자 머리가 더 아픈 느낌이 들었다.연재준은 고개를 돌리다 우연히 소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치마가 바람에 살짝 펴지며 만들어낸 곡선을 본 그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재준아.”차 안에서 여자가 그를 불렀다.연재준은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서서 차 안을 바라보며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두 분이 합쳐서 일흔 살이나 되셨는데 아직도 스스로 내린 결정에 책임질 수 없다면 그동안 헛산 거예요.”여자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내가 정말 참을 만큼 참아왔어. 하지만 요즘 네 아빠가 자기 비서랑 동거를 시작했어. 더는 못 견디겠어, 미칠 것 같아. 나 정말 이혼해야겠어.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내가 진짜로 미쳐버릴 거야.”연재준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몸 안에서 느껴지는 그 애매한 아픔을 완화하려 했다.이 여자는 그의 친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