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소흠은 앞으로 조금 이동해 그녀를 비운으로 데려다 줬다. 루장월은 손에 군만두를 들고 차에서 내리고는 허리를 숙여 그에게 잘가라는 손인사를 해보였다.한편 비운에 문연주를 찾아온 수옥이 때마침 이 장면을 보게 됐다. 그는 눈썹을 들썩거리더니 한발 앞서 회사로 들어갔다. 그가 문연주를 찾아오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통보도 필요없이 바로 올라가면 그뿐인 것이다.그가 노크를 한다문연주가 방문 넘어 대답한다.”들어오세요.“수옥이 문을 밀고 들어간다.문연주가 고개를 들어 그를 한번 쳐다본다.”아무데나 앉아.“그는 아직도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수옥도 개의치 않고 그의 커피머신으로 스스로 커피를 내리고는 한 모금 마신 뒤 생각없이 툭 내뱉는다.“루비서 요즘 잘나가나봐. 금방까진 소운이더니 이젠 심소흠이네——방금 심소흠이 데려다 주는 거 내가 봤거든, 그 둘은 언제부터 접점이 있었지?“문연주가 고개를 들더니 미간을 찌푸린다.수옥이 숨은 뜻이 있는 듯한 묘한 말을 꺼낸다.“근데 루비서가 확실히 심소흠 취향이긴 하지.”심소흠은 겉보기엔 모범적인 군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취향은 아주 “저급“했다. 잘록한 허리를 좋아하는 그에게 루장월의 그 몸매는 완벽히 적합했다.문연주도 홀짝 커피를 마셨다. 이미 식어버린 커피때문에 그의 얼굴도 따라서 차가워졌다.수옥이 느릿느릿 말한다.”많이들 루장월을 갖고 싶어한다고 내가 진작에 말했잖아, 넌 여태 믿지 않았지만.“바로 이 타이밍에 루장월이 사무실 문을 두드린다.문연주는 감정없는 목소리로 말한다.”들어오세요.“사무실에 들어온 루장월이 수옥이 있는 걸 보고 정중히 인사를 드린다.”수 사장님.“수옥이 고개를 까딱 흔든다.루장월은 문연주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문 사장님. 제가 사장님 요구에 부합하는 어울리는 지원자를 찾았습니다. 여기 이력서 한번 보세요.“그러나 문연주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루장월은 업무시 늘 정장을 입고 다닌다. 흰 셔츠와 짧은 스커트, 셔츠는 치마 속에 가지런히
여자에 관한 말은 한가할때나 심심함을 달래려 두어마디 주고 받는거지, 그들의 핵심은 아직 업무 있었다. 수옥이 커피잔을 내려놓고 오늘 그를 찾아온 진짜 업무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심취해 말하는 사이 오후가 훌쩍 지나갔다.퇴근 시간이 되고 밥 먹을 채비를 한 두 사람은 금방 사무실에서 나와 아까 그 비서가 물 반컵을 루장월에게 뿌리는 걸 목격했다.어찌나 급작스러웠는지 루장월은 피할새도 없었고 물은 그녀의 얼굴에서부터 정교하게 뻗은 아래턱까지 내려와 한방울 한방울 옷 위로 떨어졌다.비서는 컵을 버리고 입을 굳게 다물고는 몸을 돌려 도망가 버렸다. 모양새를 보니 울었던 것 같다.“……”루장월은 담담란 얼굴로 사무실애 있는 다른 사람들 시선은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종이 몇 장을 뽑아 얼굴을 닦았다.문연주에겐 이미 알맞는 비서 후보가 생겼으니 그녀는 자연히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고 루장월은 인사부더러 그녀에게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를 하게 했다.비서는 단번에 눈치를 챘다. 그녀는 그들에게 아니——정확히말하면 루장월에게 차였다는 걸.진 사장도 배신하고 그들에게까지 차이고 나니 수치심이 분노로 뒤바뀐 그녀가 앞뒤 생각도 안하고 비로 루장월에게 차가운 물을 퍼부었던 것이다.하지만 루장월은 화가 난다기 보단 귀찮은 마음이 더 컸다.정말 너무 귀찮다.문연주가 법을 들먹이며 그녀를 입박하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지금쯤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을텐데, 이렇게 돌아와 그의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할 필요가 어디 있을까. 또 그를 위해 “미인 고르기”에 쓸데없는 “도화”들까지 처리해야 하니 말이다.루장월은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돌려 탈의실로 가 셔츠부터 갈아입으려 했다.뒤 도는 순간 문연주가 무표정으로 수옥과 함께 그녀를 바라보는게 보인다.루장월이 잠시 뜸알 들이더니 보고를 드리며 말했다.“사장님, 비서에 관한 일은 제가 이미 처리했습니다.”문연주가 매정하게 지적질을 하며 말한다.“형편없게 처리했지. 너의 능력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문연주가 별안간 걸음을 멈추더니 서늘한 얼굴을 하곤 양복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던지다 싶이 걸쳐주며 말한다.“자기절로 옷 사서 바꿔입어.“루장월은 외투를 걸치지 않았고 옷은 그렇게 바닥에 떨어졌다.문연주의 안색이 한층 더 서늘해지더니 말한다.“너 지금 나한테 화 내는거야?“수옥은 참지 못하고 콧등을 만졌다. 세상에나……루장월이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휴게실에 바꿔입을 옷 있다고 했잖아요. 사장님만 아니었으면 돈 들여서 셔츠 살 일도 없죠.““너 셔츠 하나 살 돈도 없어?”문연주가 가죽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똑같이 그녀에게 던져줬지만 그녀가 받지 않아 또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두 사람은 그렇게 신경전을 벌였다.결국엔 보다 못한 수옥이 땅에 떨어진 외투를 집어 먼지를 털어주곤 카드를 주머니에 넣은채 루장월의 어깨에 걸쳐주며 말했다.“맞은켠에 백화점 있는데 여성복도 팔거예요. 날도 추운데 루비서 하나 골라서 바꿔입어요,감기 걸리면 안되니까.““카드는 맘대로 긁어, 얼마정도 사도 괜찮으니까……우린 먼저 “송학거”에 가 있을게. 옷 다 사면 바로 건너 와 기다리고 있을테니까.“문연주가 차가운 눈빛으로 루장월을 한번 바라보더니 몸을 돌려 가버렸다.수옥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뒤따라갔다.루장월은 단 일초도 참지 못하고 외투를 벗어던져 손에 꽉 움켜쥔다. 바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말이다.이 남자가 진짜!장장 3분동안을 화를 삭힌 루장월은 겨우 진정하고 맞은 켠 백화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한편 여기서는 수옥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한다. “너는 어? 그렇게 이유도 없이 루비서 못살게 굴어야겠냐?“그의 여자가 남들 입에 오르락 내리락하는데 이건 순전히 본인 앞길을 막는게 아니고 뭐란 말인가?문연주는 그저 그녀가 뭘 하든 다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었다.수옥이 따끔하게 말한다.“너도 꼭 후회할 날이 있을거야.”……루장월은 백화점으로 들어가 브랜드를 고르지도 않고 아무 옷이나 고른 뒤 치수를 알려줬다.“
이 식사 자리에서 루장월은 딱히 끼어들어 할 말이 없었기에 조용히 식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심묘묘가 문연주를 붙잡고 이것 저것 묻는 사이 루장월은 벌써 죽순마 삼계탕,게장 두마리,새우 튀김 세 개에 푸아그라 절편,계피 생선,배추 절임까지 해치우고 있었다.수옥은 속으로 이 여자 식욕이 엄청나다며 감탄을 하고 있다.문연주 역시 처음으로 그녀가 이렇게 잘 먹는걸 본것 같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며칠 굶긴 줄 알 정도로 집중해 먹고 있는 그녀는 다른 사람은 거들꺼 보지도 않는다.그가 별안간 입을 연다.“너 다 먹었어?“고개를 든 루장월은 그가 자신을 보며 묻는걸 알곤 레몬차를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 ”사장님 무슨 지시 사항이라도?“문연주가 말한다.”심 아가씨 집에 데려다 드려.“루장월은 차가 없는데 어떻게 데려가라는 건가?하지만 반박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이 기회를 틈 타 빠져나가기 위해 얼른 대답했다.”알겠어요.“심묘묘도 그녀와 함깨 가길 원했는지 백을 들고 몸을 일으킨다.”그럼 연주 오빠, 저희 내일부터 회사에서 봬요.“문연주가 고개를 끄덕인다.심묘묘가 루장월의 팔짱을 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부른다.“장월 언니~”두 사람이 식당을 나가는 걸 본 수옥은 문연주를 어이없어 한다. 심묘묘를 우연히 만난건데 어떻게 그의 썸 상대를 루장월더러 집에 데려다주게 할 생각을 할 수 있지?그가 말한다.“네가 루비서더러 데려다 주라고 하면 또 심소흠이랑 마주칠거 아니야?”문연주가 미간을 찌푸린다.루장월과 심묘묘는 길가에서 콜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묘묘는 어린 애처럼 친하지도 않은데 친근하게 손을 잡고는 상반신을 완전히 그녀의 어깨에 기댄채 끈적끈적하게 말했다.“사장님 너무 잘 생기셨어요~”“전 대학교 4년동안 한번도 이렇게 잘 생긴 남자를 본 적이 없어요, 남자 연예인들 보다도 훨씬 잘 생겼어요! 그리고 일종의 매력같은 게 있는데 뭐랄까. 장월 언니는 알죠,일종의 그런……그런……뭐라고 해야 하지, 아무튼 전 3년이 지나도 잊혀
심묘묘가 흥분에 겨워 말했다.“진짜요? 좋아요!”그녀는 폴짝폴짝 뛰며 날 듯이 기뻐했다. “장월 언니, 그럼 전 언니 안 따라갈게요. 저희 내일 회사에서 봐요~“루장월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문연주는 바로 가버린다.루장월은 길가에서 계속 콜택시를 기다리며 속으론 언제부터 심묘묘와 자신이 친한 언니 동생 사이가 됐는지, 문연주와는 이미 연인사이가 된건지 담담하게 생각을 했다.“문연주 여자 친구“라는 지위는 원래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구나.백유도 되고 심묘묘도 되고.다시 돌이켜보니 3년을 따라다니고도 아무런 칭호 하나 없었던 건 오직 그녀 뿐이다.흥.그저 루장월은 문연주의 “먹성“이 그리 좋은 줄 몰랐을 뿐이었다.이튿날, 그녀가 회사에 도착했을때 비서실엔 심묘묘 뿐만 아니라 그 비서도 함께 있었다.비서가 우쭐거리며 그녀 앞으로 다가와선 득의양양하게 말한다.“사장님이 저더러 돌아오시라고 한거예요. 제가 회사에 세운 공이 있으니 절 해고하지 않으시겠다고요. 그 누구더러 잘난 체 하지 말라네요.“루장월은 속으로 몇번이고 눈쌀을 찌푸렸지만 겉으론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다.어제 이미 그녀가 이해관계에 대해 명명백백히 설명했고 문연주도 이에 동의해서 다시 심묘묘를 찾은건데 왜 비서더러 더 남아있으라고 하는거지?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건, 비서의 눈엔 오만 뿐만 아니라 미움도 함께 공존해 있다는 것이었다.루장월은 서류를 제출하러 문연주의 사무실로 가면서 이참에 그에게도 물었다.“사장님 어제 분명 저한테 그 비서 남기지 말라고 하시지 않으셨어요?“문연주가 도리어 반박한다.“너 비서한테 내가 아주 마음에 들어한다 했다며? 네가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그럼 나도 자연히 남겨야지.”“제가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앞전 차 안에서 저한테 그 비서만 데려오면 진 사장님께 한 발 양보하시겠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그건 흥미를 느끼는 게 아니면 뭔가요?“따져보면 어제 루장월이 덮어썼던 물 반 컵과 비서의 살기는 그녀를 향하는 게
루장월이 고개를 드니 비서가 웃음을 꾹꾹 참는듯한 모습으로 말한다.“루비서님 빨리 처리해주세요. 얼른 써야 돼요.“서류를 열어보니 진 사장 계약서다. 그녀는 도로 서류를 덮으며 말했다.“이 협력건은 본인이 맡고 있는 건데요. 전 마지막 회담에만 참여 했을 뿐입니다.“비서가 팔짱을 끼며 말한다.“문 사장님이 그러시는데 비서실 모든 서류는 수석 비서가 담당한다고 하시던데요.““그럼 사장님더러 직접 저한테 와서 말씀하시라고 하세요. 제가 담당해야 하는 문건이면 제가 무조건 책임집니다.“루장월은 바로 서류를 비서 자리로 던져버리고 책상 끄트머리에 있던 물 컵도 함께 엎어버렸다.비서가 화가 폭발해서는 소리친다.“너!”루장월은 받은대로 갚아줬을 뿐이었다.심묘묘는 눈을 꿈벅꿈벅거리더니 자발적으로 와서는 땅에 엎어진 루장월이 보온병을 주워 책상에 올려주곤 비서를 밀어 비서실 밖으로 나갔다.“저,언니. 제가 금방 와서 화장실이 어딘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저 데리고 같이 가주세요.“그녀는 금방 화장실에 다녀왔지만 이렇게라도 둘을 떼어놔야 진짜 싸우는 걸 막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다른 두 비서들도 연신 루장월을 달래며 말했다.“문 사장님이 요구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너도 너무 그러지는 마.“그들은 문연주가 극대노해 그녀들을 발령낼 게 두려웠던 것이다.일은 그들이 상상하던 그대로 전개됐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비서가 퉁퉁 부은 눈으로 사장실로 달려가 고자질하는 걸 보게 됐다. 채 10분도 되지 잖아 루장월 역시 들어오라는 문연주의 연락을 받았다.이 장면,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이다.지난 번 발령때도 똑같은 이 절차였다.두 명의 비서는 근심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지만 루장월은 오히려 평온한 마음으로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문 사장님.”문연주가 옷걸이에 걸려있던 양복 외투를 입으며 그녀를 보지도 않은 채 지시를 내린다.“책상 위에 있는 서류 들고 가서 기사한테 말해. 5분 뒤 정문에서 픽업하라고.“루장월은 이해가 가지 않는
아이스크림점을 지나게 되자 심묘묘는 잔뜩 애교를 부리며 문연주에게 막대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했다. 방천 역시 갈증이 난다며 사달라고 했고 문연주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들더러 직접 기서 고르도록 했다.문연주는 막대 아이스크림을 보니 루장월이 좋아했던게 문득 생각이 났는지 하나를 가지고는 뒤로 몸을 돌렸다. 허나 루장월은 항상 달고 다니던 보온병을 열어 물을 마시고 있었다.“……”루장월도 아이스크림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번 생리통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는 유산으로 인한 자궁 손상으로 추측하고 잘 요양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찬 음식과 얼음 들어간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았고 평소엔 대추차만 마셨댔다.문연주는 무표정으로 막대 아이스크림을 도로 냉장고에 가져다 놨다.심묘묘가 “앗”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스크림이 녹아 손가락에 떨어졌는데 종이로 두어번 닦은 뒤에도 끈적끈적하니 불편했는지 말한다.“여기 화장실 없어요?”“있어요. 저기서 코너만 도시면 돼요.”쇼핑몰 관리자가 길을 안내해주자 심묘묘는 아이스크림을 던져버리고 말했다.“연주 오빠. 저 가서 손 씻고 올테니까 저 기다려야 돼요.”문연주는 브랜드 관계자에게 상황 설명을 듣고 있었는데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무튼 고개를 끄덕이긴 한다.심묘묘는 혼자 화장실로 향했다.루장월은 다른 데를 돌아보다가 우연히 뷰티 매장 가이드 둘이 말하는걸 엳듣게 됐다.“너 그거 알아? 우리 매장 근처에 바바리맨 나타났대! 나 어젯밤에 퇴근하다가 먼데서 그 사람 보고는 까무러칠 뻔했다니까!”“나도 알아. 누가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들이 어디로 숨어들었는지 그 사람 못 잡았대……설마 우리 매장에 있는 건 아니겠지……”루장월이 정신이 번뜩 들어 뒤를 빙 돌아봤다. 문연주는 아직도 브랜드 관계자와 대화중이고 방천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심묘묘만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그녀가 시계를 들여다 본다. 벌써 10분이나 지났다, 예감이 좋지 않았던 그녀는 재빨리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금방 가려는데
바바리맨은 가드들에 의해 잡혔고 파출소로 인계됐다.심묘묘는 충격이 컸는지 불쌍한 척 울면서 자기 몸을 더럽혔다고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문연주를 붙잡곤 꼭 자기 곁에 있어달란다.결국 오늘의 외부 시찰응 할수 없이 마무리 됐고 그들은 근처에 있는 호탤 방을 잡아 그녀가 샤워를 하게 했다.문연주가 사람을 시켜 심묘묘더러 옷을 사주게 했다.심묘묘가 글썽이며 말한다.“다른 사람은 싫고 장월 언니요. 장월 언니 저 도와서 사주세요, 다른 사람들은 보는 눈이 없어서 그래요. 전 못난 옷은 입기 싫거든요!”문연주가 루장월을 바라본다. 루장월이 알아 차리고 인차 답한다.“제가 가서 사올게요.”문연주의 시선이 한참동안 그녀의 얼굴에서 머물더니 그제야 입을 연다.“호텔 맞은켠에 옷 가게 있으니까 먼저 가서 사고 회사 가서 청구해.“알겠다고 답하고 뒤 돌아 두 발자국 걸어간 루장월에게 그가 또 한마디를 덧붙인다.”필요하면 너도 사도 돼.“루장월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린다. 심묘묘가 문연주의 옷을 끌어당기며 바바리맨 몸에서 약한 냄새가 났어서 아직도 그게 잊혀지기가 않는다며 헛구역질을 하며 말하는게 보인다.”연주 오빠. 제 곁으로 더 와요, 오빠한테선 좋은 냄새 나……“루장월은 시선을 거두고 방을 나왔다.방천이 뒤따라 나오며 말했다.”여자애가 나이는 어린데 잔꾀는 많네.”딱히 그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루장월은 표정 변화도 없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고 이윽고 문이 열렸다.방천을 문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쟤 순진한 척, 약한 척 하는거 안 보여? 옷 사준다 해도 그건 그냥 못 살게 굴고 떼어놓으려고 그러는 거잖아. 우리 둘 다 없으면 방에서 무슨 일 생길지 생각해 봤어?”그녀가 목을 만지며 심묘묘 성대모사를 하며 말했다.”연주 오빠, 저 혼자 있기 무서워요. 오빠가 저 씻겨주면 안 돼요……“루장월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한다.”방비서 취비가 성대모사면 연예계 입성이나 해보지 그래. 난 이런 행위 예술 안 좋아하니
사무실에서 유월영은 턱을 괴고 마우스를 움직이며 인터넷에 넘쳐나는 이혁재의 스캔들 뉴스를 보고 있었다.이혁재의 호텔 방에서 일어난 일을 누군가가 인터넷에 올렸고 이미 댓글들이 폭발하고 있었다.그녀는 웃으며 평가했다.“이 제목 누가 지었는지 정말 잘 지었네요. [해성 그룹 임원 이혁재 혼인 중 외도, 호텔에서 현장 발각]이라니. 혁재 씨의 신분에 회사 이름도 나오고, 제목까지 자극적으로 지어 누군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네요.”“게다가 지금 해성 그룹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상황이라 작은 움직임도 큰 주목을 받는데 뉴스 제목에 해성 그룹을 걸었으니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도 당연하겠죠.”한세인이 말했다.“저도 봤어요. 댓글에선 해성 그룹이 안팎으로 온갖 나쁜 일은 다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오성민은 이혁재 씨를 망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같아요.”유월영이 마우스를 내려놓고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손을 배 위에 포개며 물었다.“부정적 여론의 최적 대응 시간이 얼마였죠?”“골든타임은 24시간이에요. 물론 빠를수록 좋습니다.”유월영이 미소를 지었다.“그럼 내보내요.”이혁재의 외도 스캔들은 오전 내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고 그는 순식간에 쓰레기 남편으로 전락했다.누리꾼들이 비난하는 와중에 점심시간 동안 갑자기 한 영상이 나타나 인터넷에 빠른 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그 영상에는 이혁재가 정신을 잃은 채 두 명의 직원에게 방으로 옮겨지고 침대에 던져지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었다. 직원들은 대화를 나누며 말했다.“여자 도착했어?”“도착했대.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오는 중이야. 먼저 이 남자 옷을 벗기자.”동영상에서는 직원들은 합심해 이혁재의 옷을 모두 벗기고 있었다. 물론 노출 장면은 모자이크 처리되었다.옷을 모두 벗기고 이불을 덮어준 후 방에는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바로 그 화영이였다.“다 됐어?”“술에 수면제를 넣었어. 해 뜨기 전까진 못 깨어날 거야.”“알겠어. 이제 나가 봐.”화영은
유월영이 멍해 있자 연재준이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당신도 전에 나를 가지고 장난쳤잖아. 난 그러면 안 돼?”“...”유월영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냉랭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차에 올라탔다.연재준은 차가 도로로 들어서는 것을 바라보며 자기 손끝을 내려다보았다.손끝에는 그녀의 립스틱 자국이 남아 있었다.그는 이유 모를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닦아내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 이혁재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날 저녁, 이혁재는 배 사장을 데리고 온천 호텔에서 식사를 대접했고 배 사장은 매우 만족스러워하며 말했다.“이곳 공기가 정말 좋군요. 자동차 배기가스나 공장 오염 같은 게 없는 것 같아요.”이혁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사장님께서 전원생활을 좋아하신다고 들어서 이 호텔을 고른 겁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여기 사람들이 말하길 아침 공기가 더 좋다고 하네요. 내일 아침 식사 후에 산속을 걸으면서 산림욕을 즐기시는 게 어떨까요?”배 사장의 눈이 반짝였다.“그거 정말 좋겠군요.”“그럼 지금 마사지하러 가실까요?”이혁재가 말했다.“여기 직원분들 모두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이시랍니다. 호텔 사장님이 약자를 돕고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장애인분들에게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하더군요.”배 사장이 감탄하며 말했다.“정말 훌륭한 분이시군요. 저는 이렇게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가를 좋아합니다. 그 사장님이 누구신지 꼭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이혁재가 모호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나중에 제가 알아보겠습니다.”“좋습니다.”그들은 함께 마사지실로 향했고 두 명의 청각장애인 마사지사가 자신을 소개하며 그들을 맞이했다.그들은 마사지를 받으며 계약 연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고 직원이 친절하게 디저트와 칵테일을 가져다주었다.칵테일 도수가 높지는 않았지만 마사지는 너무나도 편안한 탓인지 이혁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다.그리고 마사지사 두 명이 이내 무언의 눈빛을 교환했다.…이혁재가 깨어난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연재준은 차를 몰고 유월영의 사무실로 갔다. 주차장을 한 바퀴 돌아 유월영의 차를 찾아낸 뒤 그녀 차 옆에 차를 세웠다.시간을 보니 12시 30분이었다. 유월영은 회사에 하루 종일 머무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주로 오전에 업무를 처리한 뒤 점심때 회사를 나서곤 했다.유월영이라면 굳이 매일 출근 도장을 찍을 필요가 없었고 시간은 더 중요한 일을 위해 쓰여야 했다.연재준은 참을성 있게 한 시간가량 기다렸고 그제야 그녀가 한세인과 함께 회사를 나서고 있었다.한세인은 차에서 내리는 연재준을 빠르게 발견하고 유월영의 귓가에 속삭였다. 유월영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유월영은 오늘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헤어밴드로 장식했다. 그리고 하얀색 쉬폰 블라우스에 고급스러운 블랙 스커트를 매치하여 전체적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유월영은 그대로 연재준을 향해 걸어왔고 작은 굽의 힐이 시멘트 바닥 위에서 맑은 또각또각 소리를 냈다.그녀가 우선 입을 열었다.“이제 모퉁이를 돌 때마다 연 대표님 만나는 게 놀랍지도 않네요.”연재준의 시선이 유월영이 착용한 진주 귀걸이에 향했다. 광택이 도는 고급 진주는 그녀의 피부색과 잘 어울렸다.그는 뜬금없이 말했다.“해성 그룹에 꽤 큰 거래 파트너가 있어. 성은 배 씨인데 갑자기 반년 짜리 계약을 체결하겠다고 하더군.”유월영의 눈이 반짝였다.“그래요?”“혁재가 그를 접대하고 있어.”연재준이 물었다.“당신의 생각은 어때?”유월영이 잠시 멈췄다가 말했다.“정말 저를 끝까지 도우려는 건가요?”“...”옆에서 듣고 있던 한세인은 그들이 무슨 말을 주고받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두 분이서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건가?’‘왜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거지?’해성 그룹이 고객을 접대하는 일을 연재준은 왜 유월영에게 말하는지, 이게 어떻게 그녀를 돕는 것인지 한세인은 알 수가 없었다.연재준이 유월영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래, 끝까지 도우려고. 그러니까 나에게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연재준도 힐끗 이혁재의 핸드폰 화면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이렇게 메시지를 많이 보냈는데도 이 변호사님이 널 차단하지 않은 걸 보면 그냥 널 방해 금지 모드로 설정한 것 같네.”이혁재는 핸드폰을 빼앗으며 말했다.“한 놈은 아내가 옆에 없고, 다른 한 놈은 아내가 다른 사람의 옆에 있고. 이렇게 감정 불화가 있는 두 놈이 나 같은 화목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을 괴롭히고 있네.‘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라는 속담이 딱 맞아.”연재준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서지욱을 향해 말했다.“이제 내가 법원에서 전해준 말을 믿겠지.”서지욱은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3년 동안 조용히 있길래 정말 욕심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완전히 변태가 된 거였네.”이혁재는 얼음물을 한 모금 마시며 갑자기 뭔가를 떠올리듯 찡그렸다.“짜증 나네. 오늘 밤에 회식이 있다니.”그는 연재준에게 고개를 까딱하며 말했다.“넌 아내도 없잖아. 그 회식 네가 대신 가.”연재준이 담담히 말했다.“널 찾아온 거지 날 찾아왔냐?”이혁재는 혀를 차며 말했다.“회사가 다 망해가고 있는데 아내와 알콩달콩하게 보낼 밤을 방해하다니 정말 죽여 마땅한 죄지.”연재준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시간 됐으니 준비하고 가. 배 사장이 신주시에 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 잘 접대해. 그럼 너에게도 좋은 일이 생길 거야.”이혁재도 그 말에 동의하며 시간을 확인하고 떠날 준비를 했다.그는 바로 접시를 들고 밥을 국에 말아 몇 분 만에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휴지로 입을 닦으며 손을 흔들었다.“간다.”서지욱은 미간을 누른 채 생각에 잠겼다.그리고 여유롭게 식사를 마저 하고 있는 연재준을 보며 말했다.“오늘 너 기분 꽤 좋아 보인다?”연재준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그래?”서지욱이 말했다.“마르세유에서 돌아온 이후로 얼굴이 더 좋아진 것 같아. 근데 내가 알기로는 아직 월영 씨랑 화해도 못 했고 월영 씨는 4월에 현시우랑 결혼 준비 중이라고 하던
유월영은 그의 말에 반박하기도 귀찮아 대꾸하지 않았다.코트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 보니 4시 44분이었다. 그녀는 피식 웃었다.“정말 죽음을 숫자로군. 흥미로운데.”유월영이 말했다.“혁재 씨 그 말이 오성민을 자극했어요.”“전에 말했듯이 오성민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에요. 자존감이 높을수록 더 예민한 법이죠. 혁재 씨가 그의 치부를 그렇게 쑤셔댔으니 그의 표정이 얼마나 어두웠는지 봤어요? 그는 지금 미쳐가고 있으니 앞으로의 일이 더 재밌어질 거예요.”연재준은 그녀가 이렇게 여유롭게 계획을 세우는 모습을 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응.”...어느덧 늦은 밤이 되고, 집에 온 오성민은 계속해서 이승연에게 전화를 걸었다.며칠 전만 해도 그녀는 그의 전화를 받았지만 이제는 길고 긴 전화벨 소리만 울릴 뿐 받지도 끊지도 않았다.마치 예전처럼.예전의 오성민은 이승연이 전화를 받지 않아도 이렇게까지 괴롭지 않았었다. 그녀의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자신이 치유되는 것 같았으니까.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달콤한 맛을 본 그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며칠간 이승연과 그토록 바랬던 시간을 누렸던 그는 이제 다시 그녀를 “잃는” 다는 걸 견딜 수 없었다.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승연아, 제발 전화를 받아줘. 제발, 승연아!”전화벨 소리가 끊기자 오성민은 안경을 벗어 책상 위로 힘껏 내던졌다!활짝 풀어헤친 셔츠 깃 사이로 가슴이 격렬하게 오르내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하지만 그의 화는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일어나 부하의 옷깃을 잡고 음침한 얼굴로 물었다.“내가 이혁재의 치부를 찾아보라고 했는데, 찾아냈어? 응?”이승연은 감정적으로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가 바람을 피웠을 때 그녀는 단칼에 관계를 끊었고 이혁재가 여자 모델과의 소문이 났을 때도 이혼을 생각했다.이승연은 그동안의 정이 남아 있어 관계를 끊지 못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그녀는 한 번 결심하면 망설임 없이 관계를 끝냈다.그래서 그는 이혁재가
이혁재는 복도로 돌아와 이승연을 보자 표정을 풀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애기야.”이승연은 화가 난 고양이처럼 예쁘고도 도도하게 말했다.“그렇게 부르지 마!”이혁재는 웃으며 달래듯 말했다.“그럼 뭐라고 불러야 해?”이승연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예전처럼 불러.”이혁재는 일부러 모르는 척하며 말했다.“내가 예전에 뭐라고 불렀더라? 갑자기 기억이 안 나네.”이승연은 그를 노려보았지만 그의 장난스러운 표정에 결국 몇 초 후 항복하며 말했다.“여보.”이혁재는 음료 뚜껑을 열어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다른 건 없어?”이승연은 작게 웅얼거리며 말했다.“자기.”이혁재가 바로 대답했다.“그래!”이승연이 그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이혁재가 웃으며 말했다.“예전에 들었는데, 요즘 인터넷에서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남자를 ‘여보’라고 부른다더라고. 누나도 나를 그렇게 불러도 돼. 나 괜찮아.”이승연은 그의 철면피에 정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화를 내기도 지쳐 고개를 돌려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이혁재는 바로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입을 맞추며 말했다.“복숭아 맛이 꽤 달콤하네. 이제 집에 가자, 여보.”이승연은 입술을 꾹 다물고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그와 함께 걸어갔다.복도의 구석에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며 유월영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그 옆에서 연재준이 그녀를 지켜보며 물었다.“왜 웃는 거야?”유월영은 기분이 좋았다. 요즘 사람들이 달콤한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연애는 역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보는 게 더 재미있네.”그녀는 벽에 기대며 무심하게 말했다.“이혁재 씨가 연 대표님 지인들 중에서 연애를 가장 잘하는 것 같네요.”연재준이 눈썹을 살짝 올리며 말했다.“그가 책임을 떠넘기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정반대에요. 그는 지금 자신과 승연 언니 사이의 관계를 예전처럼 되돌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거라고요.” 유월영이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느긋하게 걸었다.
이혁재가 벌린 온갖 난리를 겪고 나니 이승연은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날 어린애처럼 달래지 마.”이혁재가 능청스럽게 말했다.“여보와 누나 사이에서 이 변호사님은‘애기’라는 별명을 고른 거잖아.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제부터 당신을 애기라고 부를게.”이승연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정말 그렇게 부른다면 네 입을 찢어버릴 거야.”이혁재가 히죽거리며 그녀의 입가에 키스했지만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잠시만 앉아 있어. 내가 마실 거 사 올게.”그녀의 입술이 건조해져서 트고 있었다.“응.”자판기는 다른 복도에 있었고 이혁재는 복숭아 맛 음료 두 병을 골랐다.그때 갑자기 오성민이 나타나 그를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넌 말장난으로 이승연을 속이고 있는 거야.”이혁재는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자판기에서 결제하며 무심히 말했다.“내가 내 아내랑 어떻게 지내는지는 당신이 간섭할 일이 아니야.”오성민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그녀는 그렇게 해서 마음속의 두려움을 극복한 게 아니야! 그건 그냥 눈 가리고 아웅, 본질을 피해 가는 것일 뿐이라고!”이혁재가 웃으며 말했다.“정말 이상하다 말이지. 왜 꼭 두려움을 극복해야 해?”자판기가 덜컹 소리를 내며 음료 두 병을 떨어뜨렸다.이혁재는 음료를 바로 꺼내지 않고 오성민을 바라보며 말했다.“요즘 어떤 사람들은 인생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좌절이나 어려움들이 사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작은 걸림돌인데도, 굳이 극복해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하지. 그냥 피해 가면 안 돼? 왜 굳이 쓸데없이 고통을 자처해야 하지?”오성민이 비웃었다.“말도 안 되는 소리군!”이혁재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그래서 난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당신은 어때?”“들리는 얘기로는 당신 부모도 썩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들었어. 온 가족이 형만 편애했다고 하던데. 이렇게 보니 우리 상황이 조금 비슷하네. ““내 아버지도 두 명의
이혁재가 뻔뻔하게 말했다.“나를 봐봐. 매일 당신한테 달라붙어서 뽀뽀해 달라고 안아 달라고 하고 1분이라도 못 보면 떼를 쓰잖아. 내가 꼭 애 같지 않아? 응? 어차피 내가 연하이기도 하잖아, 나를 아들로 봐도 아무 문제 없어.”이승연은 그의 헛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이혁재는 단도직입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나 병 있어. 그리고 당신만이 나를 살릴 수 있어. 그러니까 나를 떠나지 마. 누나가 원하는 건 뭐든 할게.”“...”이승연은 더는 대꾸할 힘이 없어 그를 밀쳤다. 다만 이번엔 아까처럼 혐오감에 의한 거부가 아니라 그의 엉뚱한 발언에 기가 차서 그와 거리를 두고 싶었던 것이다.하지만 이혁재는 그녀를 다시 품에 끌어안았다.이승연은 거의 기진맥진했지만 오랫동안 그녀를 짓눌렀던 고통이 점차 사라지는 걸 느꼈다.그녀는 눈을 감으며 나지막이 이혁재의 말을 되풀이했다.“당신 잘못 아니야...”이혁재가 대답했다.“그럼 당연히 내 잘못이 아니지. 나도 완전히 억울한 피해자야. 그러니까 나를 미워하면 안 돼.”그의 당당한 태도는 마치 모든 액운을 쓸어내는 빗자루 같았고 이승연의 마음속 어두운 생각들이 깨끗하게 지워졌다.이승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품에서 익숙한 향기가 났다.그녀는 매일 아침 이 향기 속에서 깨어났고 그녀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이혁재가 갑자기 자신의 넥타이를 풀어 헤쳐 이승연의 눈을 가렸다.“법정을 설 용기가 없어도 상관없어. 안 보면 되지. 자, 눈을 가려줄게.”그는 넥타이를 그녀의 머리 뒤에서 묶으며 말했다.“눈을 가리고 법정에 서면 안 된다는 법도 없잖아?”식물인간으로 지냈던 3년 동안 어둠에 익숙해져서인지 눈앞이 깜깜해지자 이승연은 오히려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이혁재는 고개를 숙여 넥타이를 사이에 두고 그녀의 눈 위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눈을 가려도 참 예쁘네. 이렇게 예쁜 여자가 누구 아내지? 아, 내 아내네.”이승연은 그의 황당한 발언들을
이혁재는 순간 흠칫했다. 그러고 나서야 깨달았다.깨어난 뒤 왜 그에게 그런 태도를 보였는지.이승연은 그날 자신과 아이를 구해내지 못한 이혁재를 줄곧 마음속 깊이 원망하고 있었다.이혁재는 이승연의 힘에 밀려 몇 걸음 물러섰다.그러다 갑자기 정신을 차린 그는 밀어낸 이승연의 손을 잡아채며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여보.”이혁재는 느낄 수 있었다. 이승연은 사랑싸움이 아닌 진심으로 그를 거부하고 있었다이혁재의 팔을 꽉 잡은 그녀의 손톱이 그의 살에 파고들었다. 이승연은 그를 향해 울부짖었다.“이거 놔!”오성민도 뒤따라왔고 큰 소리로 외쳤다.“승연이한테서 손 떼!”오성민이 이승연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두 명의 경호원에게 가로막혔다.그 경호원들이 이혁재의 사람이라 생각하고 화를 냈지만 어쩔 수 없었다.여기는 법원이니 감히 손을 쓸 수 없었다.하지만 사실, 이 경호원들은 유월영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는 이승연의 첫 재판을 걱정해서 직접 법정에 와 있었다.하지만 예상 밖으로 연재준도 법정에 나타났고 그 순간, 복도 모퉁이에서 두 사람이 시선이 마주쳤다.연재준은 손을 입가에 대며 말했다.“쉿.”“...”급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유월영은 그에게 물었을 것이다.“그렇게 회사를 내팽개치고 하루 종일 날 따라다녀도 돼요?”정말 그렇게 한가하다면 병원에나 가보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이혁재는 주변 사람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픔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이승연을 꼭 안고 말했다.“여보, 내 말 좀 들어봐...당신은 나를 벗어날 수 없어. 내가 하는 말 다 듣고 나서도 여전히 내가 싫다면 그땐 내가 떠날게. 더는 귀찮게 하지 않을게.”이승연이 여전히 몸부림쳤지만 이혁재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빠르게 말했다.“3년 전 그 일은 내 잘못이 아니야.”그는 또렷하게 말했다.“그때 내 자리는 방청석이었고 내 앞에는 몇 줄의 좌석과 다른 방청객들이 있었어.사건이 터졌을 때 모두 놀라 도망치기 바빴고 내 앞을 막아섰어. 난 좌석을 지나 혼란스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