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희는 구경꾼처럼 현시우를 보다가 다시 유월영을 바라보았다.그녀도 사실 머리가 나쁘지 않았으며 심지어 똑똑하기까지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애초에 몇 마디 말로 ‘연재준이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한다’는 허상을 만들어 유월영이 오해하게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서정희는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된다는 듯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었다. 병으로 나른했던 얼굴에는 야릇한 웃음이 피어났다.“내가 그때 짠 판이 완전히 실패한 것도 아닌가 보네. 이렇게 연 대표님을 도와 미인의 마음까지 얻게 도와준 걸 보면...”유월영이 쌀쌀하게 대꾸했다.“재준 씨와 나 사이는 당신이 왈가불가 할 게 아니에요.”“당신은 진실을 알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거 아닌가요? 내가 지금 진실을 알려주고 있는데 당신은 도리어 들을려고 하지 않잖아요. 유 비서님, 왜 이렇게 모순이에요? 아~ 알겠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는데 마주할 용기가 안 나는 거죠? 반지까지 낀 상황에서 자신이 잘못된 사람한테 마음을 줬다는 걸 알게 되면 감당 안 될 수도 있겠죠.”서정희는 그녀의 약지에 끼고 있는 에로스 반지를 보았다. 다만 이번에 그녀는 질투가 아닌 어리석은 마음이 들었다. 그건 두 여자의 동병상련 마음이었다. 현시우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서정희가 유월영에 대한 비아냥 때문이었지만 그는 제지하지 않았다. 그는 유월영이 알기를 바랬다. 그녀가 지금까지 연재준이 무고하다고 생각한 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지.유월영은 신경이 곤두서있고 안색도 긴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진실을 마주하기 두려워서라는 걸 인정하기 싫었다. 그저 그녀는 그럴 필요가 없으며 여기서 서정희의 빈정거림을 듣고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자신을 설득했다. 그녀는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바로 가려고 몸을 돌렸다. “막으세요.”서정희의 한 마디에 하인들이 나타나 유월영 앞을 가로막았다. 유월영은 고개를 돌려 냉랭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서정희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듣기 싫겠지만 어쩌
유월영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떤 일이요?”서정희가 입을 열었다. “당시 인터넷 여론이요. 네티즌들이 모두 당신이 나를 해친 거라고 욕했었잖아요.”유월영은 생각이 난 듯 화나서 소리 질렀다.“그건 당신이 일부러 그렇게 여론을 조성한 거잖아요!”서정희는 억울하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 “내가 아니에요. 이승연 씨가 제가 여론을 부추겼다고 대신 고소했는데, 법원은 나중에 내가 그랬다는 사실 증거가 없다고 판결까지 했으니 이건 정말 내가 아니에요.”“...”유월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서정희는 이어 말했다.“그래요, 당신을 모함하려고 더 한 짓도 할 수 있지만, 인터넷에 나의 사진을 올려서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게 할 정도는 아니에요. 나도 여전히 이 바닥에서 살아가야 하는데 그 정도로 막 나가지는 않아요. 게다가 누군가 일부로 이 일에 불을 지핀 게 아니라면, 이 정도로 일이 크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그래서 이것도 연재준이 한거라고 추측해요. 뭐 목적은 당연히 당신의 심리 방어선을 더 무너뜨려 당신이 사면초가를 느끼고 그에게 더욱 의지하게 하는 거죠.”유월영은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고 눈은 쉴 새 없이 깜빡이었다. 서정희는 그녀 앞으로 다가가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때 네티즌이 보낸 피 묻은 택배를 받은 걸로 기억하는데, 네티즌이 보낸 건지 아니면 연 대표가 보낸 것인지 이제는 답을 알았나요?”...아니야!그럴 리 없어!재준 씨가 그럴 리가 없잖아!유월영은 생각에 잠긴 듯했지만 이내 차가운 눈빛으로 고소해하고 있는 서정희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 “모든 걸 재준 씨 탓으로 돌리지 말아요!”“당신이 나를 모함하기 위해서 뭔들 못했겠어요! 내가 다 잊은 줄로 알고 있나 본데, 여론의 시작은 당신이 병원 옥상에 올라가서 자살소동 일으켰기 때문이잖아요. 그 때문에 소방관과 경찰이 출동했고 일이 온라인에 더 거세게 퍼진 거 아닌가요? 당신이 그
하정은은 너무 놀라서 가만히 있다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월영 씨, 정말 유월영이에요?”그녀는 너무 갑작스러워서 ‘사모님’이라든가 존칭을 쓰는 걸 잊었다. “왜 서정희 씨 핸드폰으로 하신 건가요? 지금 어디 계세요? 연 대표님께서 지금 여기저기서 찾고 계십니다!”유월영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지금 재준 씨랑 같이 있어요?”“아니요. 대표님 오늘 회사 안 나오셨어요. 지금 어디 계시는지 알려주시면 제가 대표님께 연락해서 바로 모시러 갈게요.”“정은 씨, 우리 3년 동안 동료로 지냈고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내가 서정희에게 모함을 당했을 때 왜 정은 씨도 뒤에서 여론조작하고 나를 공격했었나요?”서정희는 뒤에서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 웃었다. ‘질문이 훌륭한데.’하정은은 잠시 침묵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월영 씨, 무슨 말 하는 거예요? 난 그런 적이 없...”유월영은 더 듣지도 않은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기를 움켜쥔 그녀의 얼굴은 점점 굳어졌고 서정희는 깔깔거리며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웃고 있었다.“하하하, 난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하려 하다니, 정말 한 적이 없으면 당신이 물어봤을 때 즉각 반박했겠지. 왜 중간에 그렇게 뜸을 들여요? 안 그래요? 하 비서도 놀랐겠죠, 유월영씨가 그렇게 물어보니. 하하하!”보통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가장 먼저 본능적으로 바로 부인하기 마련이다. “난 아니야. 그런 일 한 적이 없어. 누구한테 들은 거야?”이런 정상적인 반응이야 한다. 그렇게 오래 침묵하는 게 아니라.하정은의 침묵은 분명히 유월영의 단호한 질문에 속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마도 유월영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그녀의 질문을 인정해야 할지, 인정해도 되는지를 고민했을 것이며, 그래서 서정희는 유월영의 질문 방식이 대단하다고 한 것이었다. ‘역시 유 비서야.’서정희는 웃음을 거두고 박수를 쳤다. 정말 통쾌한 진실 게임이었다. “이제 믿으시죠? 그래서 제가 이번
유월영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평소에 냉정하고 이성적이던 그녀는 지금 이렇게 모든 걸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서정희가 자초지종을 분명하게 말한다고 해도, 하정은의 침묵이 모든 걸 얘기하고 있어도, 그녀는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이건 모든 당신의 억측이야!”그녀의 고집스러운 모습은 서정희도 더 이상 눈 뜨고 볼 수 없어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 순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월영아, 그놈은 네가 믿기에 아까운 놈이야.”그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으며 담담하고 평온하게 그를 바라보던 현시우였다.그 장미 꽃잎들은 모두 바람에 실려 그의 발 쪽으로 날아갔고, 붉은 꽃잎은 마치 선혈 같았다.그의 말을 듣자마자 유월영은 몸 안의 장기들이 뒤틀리면서 숨이 막힐 듯한 통증을 느꼈다.현시우의 갈색 눈동자에 유월영의 모습이 비쳤다. 그의 눈은 분명 온천처럼 따뜻했지만 입에서 내뱉은 말은 마치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처럼 날카로웠다. “그가 먼저 당신과 재결합을 계획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당신 집에 가서 결혼 승낙을 받아내고 당신과 결혼할 수 있었겠어? 그리고 당신과의 관계를 이용해서 양아버지에게 장부를 내놓으라고 강요할 수 있었겠어?”유월영은 마치 누가 숨통을 조여오는 듯 숨을 쉴 수 없었다. 현시우가 이어 말했다. “월영아, 그 자식은 모두 계획이 있었다고, 아직도 이해가 안 돼?”...하정은은 유월영이 그렇게 전화를 끊자 다시 걸어봤지만 이미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녀는 생각할수록 이상하다고 생각되어 바로 연재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대표님, 방금 사모님이 서정희 씨 핸드폰으로 저에게 전화하셨습니다.”연재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월영이 뭐라고 했어?”하정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모님이 서정희 씨 그때 그 사건, 내가 뒤에서 여론을 조종했냐고 물으셨어요. 제가 바로 대답을 못 하고 가만히 있었더니 사모님께서 그냥 전화 끊으셨어요...제가 생각엔 믿지 않으시는 눈치였어
유월영은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까 맑은 날씨 아니었어? 왜 갑자기 해가 사라진 거지?’‘왜 나에게 갑자기 이런 진실을 안겨주는 거야?’‘연재준...사실 그는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 게 아니었어’지난 3년 동안, 그녀는 단지 그의 도구일 뿐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의 도구였었다. 어떻게 한 번 당하고 그 고생을 하고도 또다시 그가 짠 판에 들어갈 수 있는지 그녀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 자신에 대한 짝사랑 때문에? 아니면 그 어릴 적 연애편지 때문일까.하지만 그녀가 두 눈으로 보고 느낀 감정조차도 거짓인데, 그녀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전한 감정과 의미 모를 말들은 또 얼마나 진실될까?유월영은 반지를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V자는 손가락에 걸린 채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손가락 마디의 살갗은 반지에 긁혀 피가 났지만 여전히 빼낼 수 없었다. 유월영은 이를 악문 채 어떻게든 반지를 빼려고 다시 한번 손에 힘을 주려는 순간, 현시우의 손이 그녀를 말렸다.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됐어, 그만해. 그 반지 빼낼 수 없을거야.”“...정말로 방법이 없는 거야?”“그건 에로스 반지야. 예전의 주인들은 모두 죽은 후에야 그 반지를 벗을 수 있었어.”세상에 어떻게 이런 막무가내인 반지가 있을 수 있을까? 이 세상에 어떻게 연재준처럼 무정한 남자가 있을 수 있을까? 이 세상에 어떻게 그녀 자신처럼 교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자가 있을까? 같은 사람에게 또 속다니.‘월영아’, ‘자기야’. 유월영은 연재준이 그녀에게 속삭이던 달콤한 말들이 생각났으며 지금 눈앞의 추악한 진실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그녀는 토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들어 참지 못하고 헛구역질했다. 메스꺼운 느낌이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솟구쳐 올라왔고 그녀는 그렇게 몇 번 더 헛구역질했다. 현시우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더니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월영아, 괜찮아?”유월영은 흐릿한 눈빛
현시우가 담담한 표정으로 한세인을 바라봤다. 한세인이 손뼉을 두 번 치자 어두운 곳에서 그들을 경호하던 사람들이 빠르게 나타나 연재준의 사람들과 대치하였다. 그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고 현시우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수척해 보였지만 훤칠한 모습으로 마침 유월영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저도 전에 연 대표님께 말했을 텐데요. 월영은 이제 두번 다시 당신과 함께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연재준의 눈동자는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그럼 한번 해보시던가.”노현재는 킥킥 웃으며 걸어 나왔다. “그 말인즉 당신에 애들이 우리 애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한세인은 한 걸음 앞으로 나와 훈련용 장갑을 끼고 열 손가락을 움켜쥔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현재를 노려봤다. 노현재는 그녀가 전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천천히 포장을 뜯어 입어 넣었다. 그리고 아주 예의 바르게 포장지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난 여자를 안 때려.”그는 현시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 나랑 한판 붙자고.”현시우는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도 마찬가지로 노현재가 안중에 없었다. 노현재는 오랜만에 무시를 당하자 재미있다는 듯 냉소를 지으며 먼저 달려들었다. 그의 주먹은 빠르고 매서웠다. 한세인은 바로 그의 주먹을 막아 내었으며 두 사람은 빠르게 주먹이 오갔다. 보스가 움직이자 나머지 수하들도 당연히 몸을 사리지 않고 잇달아 난투극에 가담했다. 한세인의 실력은 의의로 좋은 편이서 두 사람은 한동안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양쪽 부하들도 서로 엉겨 붙어 싸우느라 얼마 지나지 않아 정원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서정희가 소리 지르며 말렸지만 아무도 그녀를 상대하지 않았다. 유월영은 이 난장판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 죽일 듯이 싸우고 있는 두 패거리는 마치 숲속에서 만난 두 마리의 짐승처럼, 아무 목적도 없이 상대를 죽음으로 몰고 가려는 듯해 보였다. 현시우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 “걱정하지 마.”연재준은
‘내가 결정하라고?’‘이걸 어떻게 내가 선택을 할 수 있어?’‘엄마로 협박하는데 내가 타협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있을까?’유월영은 기가 막힌 듯 웃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가 빙빙 도는 느낌이 들어 그녀는 비틀거리며 연재준 쪽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유월영의 팔을 잡고 있던 현시우의 손이 내려와 그녀의 손바닥을 잡아 맞댔다. 유월영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많은 걸 말하고 있었다. 연재준은 싸늘한 시선은 두 사람의 애틋한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맞잡은 두 손으로 향했다. 유월영은 주먹을 꼭 쥔 채 연재준을 바라봤다. “당신이랑 다시 돌아가면, 정말로 엄마를 풀어줄 건가요?”연재준은 시선을 거두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 나랑 같이 안 가면 누구랑 가고 싶은데?”유월영은 현시우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고 한숨을 쉬면서 정원 밖으로 걸어갔다. 한세인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에게 향했다.“현 대표님...”현시우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유월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연재준은 승리를 만끽하는 표정 대신 차가운 눈빛으로 현시우를 노려보았다. “이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그는 유월영을 따라잡아 그녀의 손을 낚아채고 막무가내로 차에 태웠다. 한세인이 이를 갈며 말했다. “대표님, 이대로 유월영 씨를 그냥 보낼 건가요? 저들이 사람이 많지만 우리가 싸워 이길 수도 있잖아요!”“양어머니가 잡혀 있는 한, 월영이도 어머니를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을 거야.”신주시는 연재준이 꽉 잡고 있었고 나머지 세 개의 가문까지 있어서 그들 손에서 이영화를 데려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영화의 몸도 아직 회복되지 않아 무리할 수 없었다. 현시우가 말했다.“지남이도 연재준의 손에 있어...”유월영은 방금 현시우의 손을 잡고 있을 때, 그녀에게 뭔가를 쥐어줬다....노현재가 앞좌석에서 돌아보면서 눈썹을 긁적이었다.
“...”유월영은 그를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의 힘을 당해내지 못했다. 연재준의 다리와 허리, 그리고 가슴은 그녀에게 밀착시켜 왔다. 그의 따뜻한 체온과 익숙한 숨결이 닿자 그녀는 매일 밤 안고 자던 기억이 떠올랐다. 유현석이 자살한 후 그녀는 매일 밤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때마다 그는 그녀를 안은 채 다독여 주고 같이 있어 줬으며 그녀에게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의 모든 행동이 단지 연기라는 생각이 들어 털끝 하나 건드리기만 해도 견딜 수가 없었다. 유월영은 젖 먹던 힘까지 써서 발버둥 쳤다. “혼인신고만 안 하면 당신이랑 관계가 없어요!”“오늘 전까지 당신 그런 생각하지 않았었잖아.”연재준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또 현시우 때문이야? 당신 현시우랑 만나기만 하면 모든 걸 다 부정하잖아. 10년이나 지났는데, 왜 아직도 그 자식을 못 잊는 거야?”연재준의 질투하는 듯한 말에 유월영은 콧방귀를 끼었다. “나에 대한 모든 행동이 계획된 게 아니라는 점만 해도, 벌써 당신보다 훨씬 나아요.”그의 손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유월영은 반항하기를 멈추고 가만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예쁜 두 눈에는 한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말끝마다 내 남편이라고 강조하지 말아요. 나랑 결혼한 목적이 아버지의 장부를 내놓으라고 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이제는 알았으니까.”연재준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웃음을 터뜨리면서 차갑게 말했다. “알고 있는 게 참 많군.”유월영은 그가 지금 바로 그녀에게 자백한 건지 헷갈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쨌든 그건 사실일 뿐이니까. 유월영도 비웃으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자살하기 전까지도 장부를 나와 엄마에게 맡기지 않았어요.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우리를 잡아간다고 해도 당신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을 거예요.”연재준이 물었다.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어?”유월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몰라요. 연 대표님의 속을 누가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