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영은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까 맑은 날씨 아니었어? 왜 갑자기 해가 사라진 거지?’‘왜 나에게 갑자기 이런 진실을 안겨주는 거야?’‘연재준...사실 그는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 게 아니었어’지난 3년 동안, 그녀는 단지 그의 도구일 뿐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의 도구였었다. 어떻게 한 번 당하고 그 고생을 하고도 또다시 그가 짠 판에 들어갈 수 있는지 그녀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 자신에 대한 짝사랑 때문에? 아니면 그 어릴 적 연애편지 때문일까.하지만 그녀가 두 눈으로 보고 느낀 감정조차도 거짓인데, 그녀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전한 감정과 의미 모를 말들은 또 얼마나 진실될까?유월영은 반지를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V자는 손가락에 걸린 채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손가락 마디의 살갗은 반지에 긁혀 피가 났지만 여전히 빼낼 수 없었다. 유월영은 이를 악문 채 어떻게든 반지를 빼려고 다시 한번 손에 힘을 주려는 순간, 현시우의 손이 그녀를 말렸다.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됐어, 그만해. 그 반지 빼낼 수 없을거야.”“...정말로 방법이 없는 거야?”“그건 에로스 반지야. 예전의 주인들은 모두 죽은 후에야 그 반지를 벗을 수 있었어.”세상에 어떻게 이런 막무가내인 반지가 있을 수 있을까? 이 세상에 어떻게 연재준처럼 무정한 남자가 있을 수 있을까? 이 세상에 어떻게 그녀 자신처럼 교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자가 있을까? 같은 사람에게 또 속다니.‘월영아’, ‘자기야’. 유월영은 연재준이 그녀에게 속삭이던 달콤한 말들이 생각났으며 지금 눈앞의 추악한 진실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그녀는 토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들어 참지 못하고 헛구역질했다. 메스꺼운 느낌이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솟구쳐 올라왔고 그녀는 그렇게 몇 번 더 헛구역질했다. 현시우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더니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월영아, 괜찮아?”유월영은 흐릿한 눈빛
현시우가 담담한 표정으로 한세인을 바라봤다. 한세인이 손뼉을 두 번 치자 어두운 곳에서 그들을 경호하던 사람들이 빠르게 나타나 연재준의 사람들과 대치하였다. 그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고 현시우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수척해 보였지만 훤칠한 모습으로 마침 유월영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저도 전에 연 대표님께 말했을 텐데요. 월영은 이제 두번 다시 당신과 함께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연재준의 눈동자는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그럼 한번 해보시던가.”노현재는 킥킥 웃으며 걸어 나왔다. “그 말인즉 당신에 애들이 우리 애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한세인은 한 걸음 앞으로 나와 훈련용 장갑을 끼고 열 손가락을 움켜쥔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현재를 노려봤다. 노현재는 그녀가 전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천천히 포장을 뜯어 입어 넣었다. 그리고 아주 예의 바르게 포장지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난 여자를 안 때려.”그는 현시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 나랑 한판 붙자고.”현시우는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도 마찬가지로 노현재가 안중에 없었다. 노현재는 오랜만에 무시를 당하자 재미있다는 듯 냉소를 지으며 먼저 달려들었다. 그의 주먹은 빠르고 매서웠다. 한세인은 바로 그의 주먹을 막아 내었으며 두 사람은 빠르게 주먹이 오갔다. 보스가 움직이자 나머지 수하들도 당연히 몸을 사리지 않고 잇달아 난투극에 가담했다. 한세인의 실력은 의의로 좋은 편이서 두 사람은 한동안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양쪽 부하들도 서로 엉겨 붙어 싸우느라 얼마 지나지 않아 정원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서정희가 소리 지르며 말렸지만 아무도 그녀를 상대하지 않았다. 유월영은 이 난장판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 죽일 듯이 싸우고 있는 두 패거리는 마치 숲속에서 만난 두 마리의 짐승처럼, 아무 목적도 없이 상대를 죽음으로 몰고 가려는 듯해 보였다. 현시우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 “걱정하지 마.”연재준은
‘내가 결정하라고?’‘이걸 어떻게 내가 선택을 할 수 있어?’‘엄마로 협박하는데 내가 타협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있을까?’유월영은 기가 막힌 듯 웃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가 빙빙 도는 느낌이 들어 그녀는 비틀거리며 연재준 쪽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유월영의 팔을 잡고 있던 현시우의 손이 내려와 그녀의 손바닥을 잡아 맞댔다. 유월영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많은 걸 말하고 있었다. 연재준은 싸늘한 시선은 두 사람의 애틋한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맞잡은 두 손으로 향했다. 유월영은 주먹을 꼭 쥔 채 연재준을 바라봤다. “당신이랑 다시 돌아가면, 정말로 엄마를 풀어줄 건가요?”연재준은 시선을 거두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 나랑 같이 안 가면 누구랑 가고 싶은데?”유월영은 현시우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고 한숨을 쉬면서 정원 밖으로 걸어갔다. 한세인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에게 향했다.“현 대표님...”현시우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유월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연재준은 승리를 만끽하는 표정 대신 차가운 눈빛으로 현시우를 노려보았다. “이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그는 유월영을 따라잡아 그녀의 손을 낚아채고 막무가내로 차에 태웠다. 한세인이 이를 갈며 말했다. “대표님, 이대로 유월영 씨를 그냥 보낼 건가요? 저들이 사람이 많지만 우리가 싸워 이길 수도 있잖아요!”“양어머니가 잡혀 있는 한, 월영이도 어머니를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을 거야.”신주시는 연재준이 꽉 잡고 있었고 나머지 세 개의 가문까지 있어서 그들 손에서 이영화를 데려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영화의 몸도 아직 회복되지 않아 무리할 수 없었다. 현시우가 말했다.“지남이도 연재준의 손에 있어...”유월영은 방금 현시우의 손을 잡고 있을 때, 그녀에게 뭔가를 쥐어줬다....노현재가 앞좌석에서 돌아보면서 눈썹을 긁적이었다.
“...”유월영은 그를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의 힘을 당해내지 못했다. 연재준의 다리와 허리, 그리고 가슴은 그녀에게 밀착시켜 왔다. 그의 따뜻한 체온과 익숙한 숨결이 닿자 그녀는 매일 밤 안고 자던 기억이 떠올랐다. 유현석이 자살한 후 그녀는 매일 밤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때마다 그는 그녀를 안은 채 다독여 주고 같이 있어 줬으며 그녀에게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의 모든 행동이 단지 연기라는 생각이 들어 털끝 하나 건드리기만 해도 견딜 수가 없었다. 유월영은 젖 먹던 힘까지 써서 발버둥 쳤다. “혼인신고만 안 하면 당신이랑 관계가 없어요!”“오늘 전까지 당신 그런 생각하지 않았었잖아.”연재준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또 현시우 때문이야? 당신 현시우랑 만나기만 하면 모든 걸 다 부정하잖아. 10년이나 지났는데, 왜 아직도 그 자식을 못 잊는 거야?”연재준의 질투하는 듯한 말에 유월영은 콧방귀를 끼었다. “나에 대한 모든 행동이 계획된 게 아니라는 점만 해도, 벌써 당신보다 훨씬 나아요.”그의 손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유월영은 반항하기를 멈추고 가만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예쁜 두 눈에는 한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말끝마다 내 남편이라고 강조하지 말아요. 나랑 결혼한 목적이 아버지의 장부를 내놓으라고 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이제는 알았으니까.”연재준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웃음을 터뜨리면서 차갑게 말했다. “알고 있는 게 참 많군.”유월영은 그가 지금 바로 그녀에게 자백한 건지 헷갈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쨌든 그건 사실일 뿐이니까. 유월영도 비웃으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자살하기 전까지도 장부를 나와 엄마에게 맡기지 않았어요.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우리를 잡아간다고 해도 당신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을 거예요.”연재준이 물었다.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어?”유월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몰라요. 연 대표님의 속을 누가 알겠어
연재준은 밀리지 않고 오히려 유월영을 더 세게 눌러왔다. “내가 그깟 수단을 써서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은 게 뭐가 잘못된 거야? 당신도 말했었잖아, 성인들 사이 약간의 수단과 방법은 받아들일 수 있다고. 왜 그때의 신연우는 되고, 내가 그러는 건 안 된다고 하는 거야?”유월영은 그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그만 억지 부려요! 이게 어디 같은 일인가요?”“왜 아니야?”연재준의 선명한 아래턱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당신도 그날 말했었잖아. 반지를 끼면 그전에 있었던 일들은 다 용서하고 없던 일로 하겠다고. 그러면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유월영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없던 일로 하겠다고.’‘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입 밖에 낼 수 있지?’그의 논리대로라면 본성을 숨기고 착한 척한 건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였다. 압력을 넣어 여론을 조작한 것도, 아버지를 협박하고 어머니를 납치한 것도, 모두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한 작은 수단과 방법일 뿐이며 도리에 어긋나더라도 모두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고 모두 그녀가 반지를 받기 전에 일어난 일이니 그녀의 약속대로 더 이상 그를 탓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그의 변명이었다. 유월영은 그의 옷깃을 꽉 움켜쥐었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고 창자가 꼬이는 듯한 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녀가 반박할 수 없다는 걸 단정하는 듯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유월영은 그를 밀쳐냈다. “...이거 놔! 연재준! 이거 놓으라고!”유월영의 얼굴이 창백해지자 연재준은 그녀가 하루 종일 굶어 위병이 도진 줄 알고 그녀의 팔목을 잡아끌고 강제로 선실 밖으로 향했다. “밥 먹어.”유월영은 다른 한 손으로 문틀을 잡은 채 나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다 문에 부딪치고 말았다. 쿵 하는 소리가 선실 밖으로 울려 퍼졌고 소란을 들은 노현재는 재빨리 다가와 상황을 살피다 문에서 실랑
연재준은 멍하니 있다가 그녀가 한 말을 이해하고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당신 눈에는 내가...”그는 갑자기 숨이 막혀오고 가슴이 답답해져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유월영의 말은 모두 비수가 되어 그에 가슴에 박혔다. 노현재는 상황이 치닫자 이러다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급하게 끼어들었다.“재준이 형, 기장이 형을 찾던데, 잠깐 가서 뭔 일인가 보지 그래?” 연재준의 잘생긴 얼굴은 기침 때문에 점점 창백해졌다. 그의 눈은 한밤중처럼 새카맣고, 표정은 굳어진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에야 그는 숨을 고르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잘 살아 있는 게 좋을 거야. 당신이 죽으면 어머님은 어떻게 하려고 그래? 당신 따라 죽기를 바라는 거야? 그리고 당신 언니랑 조카, 조카를 그렇게 예뻐하잖아. 매번 조카선물도 잊지 않고 사주던데. 당신이 정말 죽으면 우리는 그들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고.”‘연재준, 당신 정말 대단해.’유월영은 입술을 깨문 채 그를 노려봤다. 그녀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기 싫어 선실로 돌아가 힘껏 문을 닫았다. 연재준도 더 이상 그녀를 쫓아가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그녀는 심지어 그가 자신이 죽기를 바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들 사이에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으랴.연재준은 가슴을 움켜쥐고 노현재의 곁을 지나면서 한마디 던졌다. “월영이 방에 먹을 것 좀 가져다줘.”...기진맥진 한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소파에 주저앉아 한참 쉬고 나서야 복통이 점차 멎었다. 그녀는 두 다리를 껴안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그저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잠시 후 이성을 찾은 유월영은 갑자기 두려워졌다. 이렇게 그와 얼굴을 붉혔는데 연재준이 엄마를 만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방문이 다시 열리고 유월영은 차가운 시선으로 문 쪽을 노려보았다. 노현재였다.그녀는 역시나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입가에 슬쩍 미소가 어린 채 손에 있는
다섯 시간 후 비행기가 신주시에 착륙했고 하정은은 차량을 이끌고 공항으로 그들을 마중 나왔다. 유월영은 곧장 그중 차 한 대로 향했다. 그녀는 앞좌석에 앉아 연재준과 같이 나란히 앉을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했다. 하지만 차 문을 열고 올라타기도 전에 연재준은 그녀의 팔을 잡고 뒷좌석으로 밀어 넣었다. 더 실랑이 해도 허사라는 걸 깨닫고 그녀는 아무런 반항 없이 뒷좌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하정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우선 동해안 저택으로 가시겠어요?”연재준이 대답했다.“응.”유월영은 즉시 반박했다.“엄마 만나서 병원에 갈 거예요.”연재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지금 ICU에 계셔서 당신 들어갈 수 없어. 그리고 가서 만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당신이 병원에서 먹고 자고 하는 건 동의할 수 없어.”“내가 곁에 같이 있든 말든 내 일이에요. 더 이상 날 어떻게 할 생각하지 말아요.”“그럼 내가 할 수 있나 없나 한 번 보지.”연재준이 다시 말했다.“동해안 저택으로 가.”유월영도 지지 않고 소리 질렀다.“병원으로 가라고요!”운전기사는 당연히 연재준의 말에 따랐고,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동해안으로 설정했다. 유월영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날 내려줘요. 나 혼자 병원에 갈 거예요.”운전기사는 백미러로 연재준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아무런 지시가 없자 운전기사는 그대로 속도를 줄이지 않고 길을 달렸다. 자기 말에 아무런 반응이 없자 유월영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바로 앞 좌석으로 몸을 일으켜 운전기사의 운전대를 낚아챘다.“차 세우라고!”갑작스러운 행동에 운전기사는 핸들을 놓치고 차는 길에서 방향을 잃고 휘청거렸다. 다행히 주위에 차가 없어서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 연재준은 재빨리 그녀를 끌어당겼다. “당신 미쳤어?”유월영은 연재준의 손을 뿌리쳤다. 다음 순간, 그녀는 손에 유리 조각을 쥐고 연재준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하정은이 놀라 소리 질렀다.“대표님! 사모님! 진정하세요!
차는 곧 신주병원 입구에 도착했다. 유월영은 차에서 내려 바로 병원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이내 연재준이 그녀를 잡아끌었다. “재준 씨!”유월영이 빠져나오려 하자 연재준이 담담하게 말했다.“어머님 보고 싶으면 나한테 맞춰줘.”‘뭘?’유월영은 눈살을 찌푸리고 그를 바라봤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이끌고 병원 안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계단을 오르자 뒤따라오던 승용차 한 대가 입구에서 천천히 멈춰 섰다. 뒷좌석 차창이 천천히 내려지고 윤영훈과 오성민이 얼굴을 드러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옆으로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다 병원 안으로 사라지자 비로소 눈길을 돌렸다. “연 대표 정말로 유 비서를 데려왔네.”윤영훈 비웃는 어조로 말했다. “난 또 유 비서가 현시우 따라가 버리고 다시는 안 돌아올 줄 알았지. 현시우가 첫사랑이라고 하지 않았어? 첫사랑도 별거 없고 연재준이 더 좋다 이건가?”오성민은 손에 있는 염주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자기 엄마를 위해 돌아왔을 거야. 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달려온 거고.”“그건 모르는 거야. 당신이 유 비서를 몰라서 그래. 내가 애초에 그녀를 얼마나 열심히 쫓아다녔는데. 내게 웃는 얼굴도 안 보여줬어. 이 아가씨 아주 냉정하고 똑똑하다고. 연재준과 결혼까지 한 걸 보면 정말로 연재준을 좋아하는 걸 거야.”오성민은 윤영훈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챘다.“그 말은 그녀가 정말로 연재준을 위해서 유용우하고 고해양 그리고 고씨 집안의 복수를 포기할 거라는 뜻이야?”윤영훈이 표정 변화 없이 대꾸했다.“불가능한 건 아니잖아. 똑똑한 여자일수록 사람에 빠지면 답이 없다고.”오성민은 안전벨트를 풀고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도 사랑에 빠지면 답이 없어 보이는데?”윤영훈은 오성민이 그가 했던 말처럼 뿌리를 뽑을까 봐, 유월영이 해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애써 설명하고 있었다. 오성민은 차 문을 열고 내렸다.“내 눈으로 봐야겠어.”그는 병원으로 들어가 ICU 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