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내린 다음 날은 여전히 흐린 날씨였다. 오전 9시가 막 지났을 때 연재준의 차가 연씨 가문 별장으로 들어왔다.그는 출근길에 연민철 비서의 전화를 받았다. 비서는 급한 말투로 연민철이 중요한 일로 그를 찾고 있다면서 지금 꼭 집에 들르라고 했다. 그의 차가 마당으로 들어서자, 비서는 오래 기다렸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차 문을 열어주면서 말했다.“연 대표님, 오셨어요? 회장님께서 2층 안방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안방?”연재준은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집 안에 들어가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어디 편찮으신가요?”“어젯밤 회장님의 혈압이 200까지 치솟아 그 자리에서 기절하셨어요. 다행히 가정의가 계셔서 상황을 잘 넘기셨어요. 아침 7시에 다시 혈압을 재보았는데 여전히 높았습니다.”연재준의 발걸음이 무거워졌다.연민철은 평소에 고혈압이 있었으며 매번 그와 연재준이 싸울 때마다 유월영은 옆에서 연재준을 일깨워줬다. 게다가 전에는 이렇게까지 심각한 적이 없었다. 연재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안방으로 들어갔다.방문은 닫히지 않았고, 윤미숙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연민철에게 죽을 먹여주고 있었다.비서가 나지막이 인사 했다. “회장님, 사모님, 연 대표님 오셨어요.”연재준은 침대 끝에 기대어 있는 아버지를 바라봤다.4대 재벌이었던 윤민철은 어느덧 60대에 접어들었으며 지금은 앙상한 몸에 병든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벌겠고 눈두덩은 파래진 채 콧날개 양쪽에는 팔자 무늬가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침실에 커튼이 쳐져 있어 빛이 들어오지 않았고 침대 머리에만 전등이 켜져 있어 화면이 더욱 답답해 보였다. 윤미숙은 얼은 몸을 일으키며 아는체했다.“재준이 왔니? 일하는 데 지장 없겠지? 어젯밤 네 아버지가 한밤중에 일어나자마자 너를 보자고 하셨어. 그때 새벽 4시라서 내가 말렸어. 그런데 네가 아침에도 안 오면 아마 이이가 너의 회사까지 찾아갈까 봐 두려웠어. 의사가 지금은 반드시 침대에 누워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하셨어.”
연민철은 여기까지 말하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연재준은 바로 일어나 그의 등을 문질러 준 다음 컵에 물을 따랐다. 자기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보고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혈압이 높은 것 외에 다른 병이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었다.그러나 연민철은 물컵을 받지 않고 오히려 연재준의 손목을 꽉 잡았다. 물컵이 흔들리면서 넘쳐 나온 물에 연재준의 손등이 빨갛게 데었다.연민철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아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의 눈동자는 흐리고 어두운 빛이 번쩍였으며 마치 죽음을 앞둔 야수 같았다.그는 기침 때문에 70세 노인 같은 목소리로 한마디 한마디 힘겹게 내뱉었다.“재준아, 네가 어렸을 때부터 나와 네 어머니의 일로 항상 나를 원망했던 걸 알아. 나는 너에게 미안하고 네 어머니에게도 정말 미안하구나.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보상은 해운그룹과 연씨 가문을 모두 너에게 넘겨주는 거야. 앞으로 해운그룹과 연씨 가문은 모두 네 것이 될 거야.”윤미숙은 방문 밖에서 차가운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연재준은 여전히 허리를 굽혀 연민철의 등을 천천히 두드려 주면서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침대 위 등이 그의 차가운 옆모습을 비추고 있었지만 어두컴컴해서 얼굴이 다 보이지 않았다. 연민철은 이어 말했다. “해운그룹이 여기까지 온 건 쉽지 않아. 이제 해운그룹이 네 것이니 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꼭 장부를 찾아야 해! 누구도, 어떤 일도, 해운그룹의 걸림돌이 될 수 없어!”연재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연민철은 말을 마치자 힘이 다 빠진 듯 손을 툭 떨구었고,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면서도 눈은 여전히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그러다 제정신이 아닌 듯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난 이미 고해양을 이겼어, 난 이미 널 이겼어...해운그룹은 쓰러지지 않을 거야. 재준아, 해운그룹은 망하면 안 돼. 나는 고해양에게 질 수 없어.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
왼쪽에 있던 윤영훈은 비아냥거리면 웃었다.“연 대표님은 그렇게 바쁘신데 30분밖에 안 늦으셨네요.”연재준이 입을 열었다. “집에 갑자기 일이 좀 생겨서 잠시 들리느라 늦었습니다. 여러분의 시간을 뺏으려던 건 아닌데.”오른쪽은 신현우였다. 그의 화상 회의 배경도 사무실이었고 손에 있는 서류에 사인을 하며 느긋하게 말했다. “연 대표님, 윤 대표 말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저희도 온 지 5분밖에 안 됐는데요 뭐.”“5분인가요? 그러면 제가 잘못 기억했네요.”윤영훈은 트로트를 듣고 있었으며 가사를 따라 부르고 손가락으로 허벅지에 대고 박자를 맞추며 낮게 흥얼거렸다.“요즘 기억력이 좋지 않습니다. 내가 알기론 왕년에 고해양의 일은 우리 네 가문이 같이 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돌아가는 상황 보니깐 마치 우리 윤씨 집안에서 혼자 벌인 일 같더라고요. 어쩐지 혼자 개고생하는 사람이 나뿐이라 했더니. 나머지 세 가문은 뭐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하시니 나도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요. 장부고, 고해양 딸이고 다 될 대로 돼라죠. 그때 가서 장부에 누구 문제가 더 크게 적혀있는지 보고 그 가문에서 고해양처럼 죗값을 받으면 될 것 같은데. 안 그래요?”윤영훈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의 반응이 모두 달랐다. 연재준의 손에 들린 커피는 뜨거운 김을 내뿜었지만 그의 표정은 차가웠다. 사인을 하던 신현우의 손이 멈칫했다. 오씨 가문을 대표해 나온 오성민은 안경을 추켜 올리고 나서 나긋한 목소리로 그를 달랬다. “윤 대표, 우리 그런 뜻이 아니란 걸 알잖아. 그래, 우리도 전에는 유현석이 그렇게 자살할 줄 몰랐어. 그에게 직접 물어보면 줄줄 알았지. 게다가 고해양의 딸이 신 대표 밑에서 비서일을 하고 연 대표의 여자 친구이기도 해서 문제없을 줄 알았어.”“유용우가 그렇게 충성심이 깊어 투신자살할 줄은 생각도 못 했어. 그 딸도 그렇게 도망갈 수 있을지도 몰랐고.”신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모든 게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죠.”윤영훈이 콧
신현우는 두 손을 깍지 껴서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그 장부, 유현석 부인에게서 건네주고 유월영씨가 장부를 본 적이 없다고 증언하는 게 가장 좋은 결과에요.”연재준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그 뜻인 즉...“유월영 씨는 장부를 본 적이 없다고 해도, 자기가 고해양의 딸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그 점이 여러 사람들은 두렵게 만들 겁니다. 유월영 씨가 고해양의 예전 일에 대해 별로 크게 마음에 담아 두지 않고 여전히 연 대표님 아내로 이익 공동체라는 걸 보여주기만 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죠.”연재준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다. 지금 신현우는 그가 유월영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첫째, 장부에 관한 일은 모두 이영화에게 넘기는 것이다. 둘째, 유월영이 영원히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연재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듣기로는 신 대표님이 지성에 출장 가서 소은혜를 만났다고 들었어요. 유월영을 도와준 것이 신연우 때문인가요? 아니면 유월영의 신 대표님의 직원이라 그런 건가요? 그것도 아니면 소은혜가 저의 사촌 동생이기 때문인가요?”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그래서 그를 도와준 것인가.신현우는 회피하며 말을 돌렸다.“제가 알기로는 오성민이 연 대표님 친구 이혁재라는 분과 여자 문제 때문에 사이가 틀어졌다던데, 그래서 연 대표님한테도 불똥이 튀어 화근을 없애야 된다는 소리까지 나온 것 같아요. 연 대표님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말을 마치고 그는 영상 통화를 끊었다. 연재준은 얼굴이 굳어진 채로 습관적으로 결혼반지를 만지작거렸다. 큰 유리창 밖으로 번개가 또 한 번 먹구름을 가르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똑똑.”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네.”하정은이 문을 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서 대표님 오셨어요. 회의하시는 걸 알고 작은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모셔 올까요?”연재준은 말없이 일어나 작은 회의실로 향했다. 그도 바람을 좀 쐬어야 했다.
유월영과 현시우는 거의 동시에 한 명은 뒤로, 한 명은 똑바로 허리를 펴고 서서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시선은 다시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바라봤다.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몇 초간 침묵했다. 오렌지꽃 향기가 방을 가득 메웠다. 유월영은 현시우의 목젖이 미끄러지는 것을 보자 두 사람 사이에 더욱 야릇한 분위기가 더해졌다.그녀의 머릿속에 문득 고등학교 시절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어느 모의고사 전, 유월영은 현시우에게 과외해주기로 약속했고 두 사람은 사람이 없는 음악 교실로 갔다. 그녀는 문제집을 풀었고 현시우는 소설책을 골똘히 읽고 있었다. 가늘게 늘어뜨린 속눈썹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그의 옆모습은 약간 현실감이 없이 잘생겨 보였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입술로 다가갔다.입술에 닿자마자 그는 그녀의 턱을 잡고 그녀가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그의 시선은 계속 책에 꽂혀있었고 입가에는 알 듯 말 듯한 미소가 걸려있었다.“나랑 같이 공부하자더니, 이런 걸 공부하려고 한 거야?”처음으로 그에게 입 맞췄지만 그가 별 반응이 없이 놀리자 유월영은 바로 책을 집어 들며 화를 냈다.“실수로 닿은 거라고! 내가 지우개를 가져오려다 그런 거잖아! 네가 내 지우개 가져갔잖아!”유월영은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다시 소리 질렀다.“그러게 왜 남의 지우개를 가져가고 난리야!”현시우는 책을 내려놓고 웃을 듯 말듯 그녀를 보다 갑자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그가 왠지 뽀뽀할 듯한 강렬한 예감이 들어 그만 얼굴이 달아올랐다.그에게 문제집을 던져주고 그녀는 화장실을 핑계로 황급히 자리에서 도망갔다....그때는 정말 고의였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고의가 아니었다.현시우는 먼저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이어갔다.“방금 나한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어?”유월영은 아로마 디퓨저를 가리키며 물었다.“이 냄새를 맡은 적 있어. 전에 영안에서 소은혜가 나를 숲에 버린 그날 밤 내가 구조됐을 때 서지욱 씨의 비서가 내가 잠을 못 잘까 봐 아로마 오일 넣은 가습기
유월영이 설명했다.“내가 신주시에 돌아가는 건 재준 씨를 찾기 위해서야. 어쨌든 그 일은 그와도 큰 관계가 없고, 게다가 우리 아직 부부 사이야...”현시우가 바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혼인신고 하러 너 혼자 갔잖아. 혼인신고 됐는지 안 됐는지 모르고 있어?”“안 됐다는 거야? 난 재준 씨가 그렇게 말하니까 다 끝난 줄 알았어.”유월영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채 하지 못했더라고 난 직접 만나서 얘기하려고. 그 일은 연문철이 한 것이지 그가 아니잖아. 게다가 엄마도 아직 신주시에 있는데 엄마를 그렇게 내버려둘 수 없어.”현시우는 그녀를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연재준이 현시우 얘기를 들을 때마다 포악해지는 것처럼, 현시우도 연재준이 언급되기만 하면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연재준이 그 일과 연관이 없다고? 연씨 가문의 권리도 누리고 그 집안의 돈도 잘 쓰고 있어. 그 집안 사람인 한 그와도 연관이 있다고.”유월영은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참지 못하고 나지막하게 반박했다.“그도 부모님을 선택할 수 없었잖아.”“게다가, 내가 그의 곁에서 오랫동안 비서로 일했는데, 그는 해양그룹과 관련된 어떤 일도 하지 않았어, 그건 내가 잘 알아. 그가 이 일을 전혀 몰랐을 거야. 모르고 있으면 죄가 없잖아.”현시우는 그녀의 턱에 손을 가져갔다. 차가운 손가락에서 은은한 송백향 향기가 났다. “이제 너의 신분도 알았고 연씨 집안에서 고씨 가문에 무슨 짓을 했는지도 알고 있는데, 그러고도 계속 마음 편히 그 자식이랑 같이 살 수 있어?”“...”유월영은 마음이 심란하여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으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 그 순간 현시우의 눈동자에 뭔가가 스쳐 지나갔고 갑작의 그녀의 턱을 꽉 눌렀다. 그리고 나서 허리를 굽혀 그녀의 입술에 바로 키스하기 시작했다. 유월영은 너무 놀라 눈을 크게 뜬 후 재빨리 그를 밀쳐냈다. 원래 침대에 앉아 있던 그녀는 옆으로 뒹굴며 둘 사이에 더 거리를 두었다. “현시우!”현시우는 허리를 굽힌 채 자세를
비는 끝없이 추적추적 내리고 일찍이 봄기운이 완연해야 할 신주시는 아직도 쌀쌀한 겨울 날씨였다. 오후 4시가 넘어가자 날이 어두워졌고 비까지 내려 물빛이 더해져 모든 게 안개 속에서 흐릿하게 보였다. 연재준은 해운그룹을 나와 차로 향했고 그 뒤에 하정은이 우산을 펼쳐 비를 가려주었다. “병원으로 가.”이영화는 계속 신주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여전히 연재준이 데려온 의료진들이 진료를 담당했으며 유설영이 돌봐주고 있었다. 다만 그녀와 같은 병실에 있는 소위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 그리고 때때로 병실 밖에서 왔다 갔다 하는 행인들은 모두 연재준이 그녀를 감시하기 위해 보낸 사람들이었다. 이영화는 아무도 모르게 감금되었다. 연재준의 허락 없이는 병원을 떠날 수 없었으며 외부인도 함부로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그녀 자신만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연재준이 병실 앞에 도착하자 간호사는 핑계를 대고 유설영을 불러냈다.유설영은 나와서 연재준이 온 걸 발견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걸어갔다. 그녀의 남편은 최근에 새 직장을 얻었으며 바로 해운그룹의 자회사에서 매니저직을 맡고 있었다. 연재준은 혼자 병실에 들어섰다. 병상에 있던 이영화는 그가 들어오자 흠칫하다 이내 기뻐하며 시선이 황급히 그의 뒤로 두리번거렸다. “재준 이 왔니... 월영이는 같이 안 왔어? 걔가 며칠 동안 얼굴도 비치지 않고 전화도 꺼져있던데.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요즘 비 오고 날씨가 쌀쌀하더니 감기 걸린 거 아니야? 아니면 벌써 위성에 돌아가 출근하고 있나...”“아니지, 가면 간다고 말이라도 해주고 가던가...재준아?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어?”연재준의 표정은 차가웠다.이영화는 왠지 모르게 정장 차림의 이 사위가 설날 봉현진에서 보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그가 낯설었고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녀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는 형언할 수 없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딸의 이름만 반복해서 불렀다.“월영아, 우리 월영
“너 어떻게, 어떻게 월영이를 속일 수 있어? 걔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네가 걔한테 준 꽃을, 특별히 꽃병을 사서 놓아두던 애야. 너랑 혼인신고를 하러 가던 날, 그렇게 기뻐했어. 그런데 네가 어떻게 월영에게 그럴 수가 있어!”연재준이 씁쓸하게 웃었다.“그렇게 나를 좋아하면 다른 사람을 따라가지도 않았겠죠.”이영화는 놀라 캐물었다.“따라갔다니? 누구랑 어디로 간 거야?”연재준은 다시 물어왔다.“장부 어디 있어요?”이영화도 한 가지만 되물었다.“우리 월영이 어디 있어!”“장부, 어디 있냐고 물었습니다.”연재준의 감정이 배제된 듯한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 끼치게 했다.이영화는 미쳐갈 것만 같았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감정이 치솟아 올라 새끼를 보호하는 엄마 사자처럼 딸을 보호하려 했지만 다른 사람들 한테 붙잡힌 채로 연재준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연재준은 그렇게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으며 그 모습은 마치 감정이 없는 악마처럼 보였다. 이영화는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도록 몸부림치며 외쳤다. “너, 월영이를 어떻게 한 거야! 이 짐승같은 놈들아! 고 회장님을 죽인 것도 모자라 이젠 그의 하나밖에 없는 딸도 해코지하려고 하는 거야!”이영화는 심장 모니터링 장비를 착용하고 있으며 심장 박동이 너무 빨라서 장비에서 '띠띠'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연재준은 입술을 조금 깨물다가 다시 세 번째로 물었다. “장부, 어디 있나요?”이영화는 자책과 슬픔 마음이 들어 눈에 눈물이 고였다. 왜 이런 놈한테 딸을 흔쾌히 내주었는지 후회가 막심하였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눈물이 눈 앞을 가리더니 이내 머리가 핑핑 도는 듯했다. 기기의 경보음이 갈수록 가빠지고 다급해져서 듣는 쥐위사람들의 간담도 서늘해졌다.하정은은 저도 모르게 연재준을 쳐다봤고 연재준은 미간을 찌푸린듯했지만 이내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영화는 얼굴아 하얗게 질려 있었고 연재준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월영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