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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장

Author: 고나름
비몽사몽 여러 생각들을 하는 사이, 구치소 문이 열리며 교도관이 소리친다.

“다 일어나!”

다들 손에 들린 밥그릇을 내려놓고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난다.

유월영 역시 이 곳 규정에 관해 듣고는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두 다리가 땅에 닿는 순간, 위가 꼬일듯이 아파오며 다리에 힘이 턱 풀려버린다. 거의 무릎을 꿇기 직전, 어디선가 팔이 쭉 뻗어져오며 유월영을 잡아주는데.

상대의 가슴팍에 부딪치니 익숙한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순간 뭐라 설명할수 없는 설움이 북받쳐 오른다.

함정에 빠진 설움, 두끼나 굶은 설움과 위병이 도진 설움에 “왜 이제 왔냐”는 말을 내뱉을 뻔하지만 겨우 목구멍으로 넘기는 유월영이다.

연재준의 목소리가 정수리에서 들려온다.

“못 걷겠어?”

유월영이 겨우겨우 한 마디 내뱉는다.

“위 아파요......”

“그러게 왜 이승연더러 나 찾아갈가고 말 안했어? 넌 아파도 싸.”

무기력하게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려 하자 연재준은 아예 유월영을 가로로 번쩍 들어올린다.

순간 중심을 잃은 유월영은 눈 앞이 빙글빙글 도는 어지러움에 그의 옷깃을 꽈악 잡아끈다.

연재준은 빨개지다 못해 실핏줄까지 터진 유월영의 눈가를 보고는 덩달아 마음이 찢겨지는듯한 느낌을 받고 미간을 찌푸린다.

유월영이 중얼거리며 묻는다.

“......저 이제 나가도 돼요?”

“응. 보석 신청 통과됐어.”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면서 연재준이 말한다.

아, 이승연이 못 한다고 연재준도 못한다는 법은 없구나.

유월영이 고통과 피곤함에 눈을 질끈 감는다.

구치소를 나오자 하정은이 곧바로 담요를 유월영에게 덮어준다.

유월영은 170이나 되는 큰 키임에도 불구하고 애벌레마냥 꽁꽁 싸진채 연재준에게 폭 안겨있는다.

경찰서를 나와 유월영을 차에 앉히는 연재준이다.

히터를 빵빵하게 튼 차 안 공기와 찬 바깥 공기에 유월영이 몸을 부르르 떤다.

이내 입가에 뭔가가 닿는 느낌을 받는 유월영이다.

본능적으로 입을 떼지만 달콤한 맛이 느껴진다.

“포도당이니까 마셔.”

기력회복엔 포도당 만한게 없다.

유월영이 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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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355장

    유월영이 침을 꼴깍 삼키며 말한다.“그 틈 타서 뭐라도 하시게요?”연재준은 도통 뜻을 알수 없는 묘한 눈빛으로 유월영을 바라보며 12층까지 올라간다.띵---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서야 연재준이 입을 연다.“지금은 너무 더러워서 별로.”“......”그냥 곰팡이 냄새 밴 이불 덮고 얼마 있었을 뿐인데......연재준은 어디서 난건지 모르겠는 유월영의 방 카드를 가지고 문을 연다.물어볼 여력도 없는 유월영이다.연재준이 발로 문을 툭 닫는다. 결국 안으로 들어온 그다.연재준이 유월영을 소파에 앉혀준다. 드디어 손을 빼고 따뜻한 물 한잔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을때 초인종이 울린다.이내 문을 연 연재준은 어느새 손에 도시락통을 가지고 들어온다.이렇게 딱 맞춰 온걸 보면 아마 진작에 준비하라고 말해뒀을테지.뚜껑을 열자 해산물 향이 코를 찌르며 식욕을 자극한다.연재준은 죽을 유월영의 앞에 갖다주며 먹으라는 눈빛을 보내온다.너무 배가 고팠던 유월영은 사양하지 않고 와구와구 먹어대기 시작한다.반 그릇을 비울때까지도 연재준은 계속 유월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다.“사장님은 안 드세요?”“너 너무 더러워서 입맛 떨어져.”“......”그러든지 말든지.연재준이 “혐의가 명확하고 증거가 충분한” 자신을 믿어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또다시 경찰관들과 이승연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유월영이다.“거기에 왜 제 지문이 있었는진 모르겠어요. 현금 안 쓴지가 언젠데.”연재준이 회색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생각에 잠긴다.유월영이 두 남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을때 연재준도 그 자리에 있었다.“너 그때 그 휴대폰 만졌었지?”그 말에 굳어버렸던 유월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한다.“맞아요! 어디로 가야되냐고 물어봐서 지도로 알려줬는데......그러니까 사장님 말은 그 사람들이 그걸 빌미로 제 지문 가져갔다는 말씀이세요?”연재준은 별다른 대답 없이 한 마디 한다.“서정희 부모님 서안 오셨어.”증거 조작이며, 보석 신청 거절같은건 절대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356장

    유월영은 훤칠하고 약한 몸이긴 하지만 깡 마른게 아닌 있을건 다 있는 몸매의 소유자였다. 별 모양새도 없는 잠옷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굴국이 그대로 보이는 정도다.전엔 늘 유월영의 귀에 대고 “넌 날 위해 태어난거야”라고 속삭이던 연재준이었는데. 뭐든 마침 딱 맞다고, 조금만 더 컸으면 한 손에 다 잡히지도 않았을거라고.그럴때마다 유월영은 미친놈이라고 욕하며 몸을 잔뜩 웅크리곤 했었다.이내 연재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연다.“나 불렀어? 무슨 일이야?”유월영은 속옷을 입지 않고 있는줄도 모르고 멍하니 기다란 복도 중간에 서있는다.“승연이가 서정희 사진 인터넷에 퍼졌다고......사장님이 이미 처리하셨어요?”“응.”갈피를 잡고 흔들리던 마음이 다시금 안정을 찾는다.“감사합니다.....”연재준은 셔츠 맨 위 단추를 풀며 유월영에게로 다가간다.“이젠 도움 청할줄도 알아?” 늘 뭐든 혼자 감내하고 혼자 해결하던 유월영은 방금 처음으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에게로 달려왔다.저도 모르게 그만......방금은 그저 사진이 퍼지면 언론 압박이 커져 또다시 잡혀갈까 걱정돼서 그랬을 뿐인데......다시 구치소로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그걸 해결해줄 사람은 연재준밖에 없었고......언제부터였지?언제부터 연재준이 절대 자신을 도와줄리 없는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도와줄 유일한 구원자가 됐단 말인가?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앞을 뒤덮는다. 고개를 번쩍 드니 어느새 연재준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다.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려하자 연재준이 손목을 낚아채 유월영을 안방으로 끌어가려 한다. 문을 덥석 잡으며 유월영이 묻는다.“왜 이러세요?”“거울이나 봤어? 눈 충혈된거 봐, 피곤하면 자 얼른.”연재준이 보기 드문 유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말한다.“너 겁 없잖아? 유람선 땐 혼자서 신현우 앞세우고 윤영훈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면서 나더러 너 넘기지 못하게 협박하더니 지금은 내가 있는데도 뭘 무서워해?”“......”돌멩이 하나가 고요하던 유월영의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357장

    “너 방에서 일 좀 보느라고.”연재준이 유월영에게로 다가온다.“자, 손 줘봐.”연재준의 방은 꼭대기 최고급 펜트하우스 아닌가, 굳이 일을 왜 여기서......유월영이 의문스럽게 손을 내민다.이내 약 두 알이 손바닥 위에 놓여진다.“수면제니까 먹고 자.”“잘거예요......사장님 방 가세요.”연재준은 복잡해하는 유월영이 표정과 부스스한 정수리를 내려다보더니 갑자기 허리를 숙여 예고도 없이 입을 맞춘다.“-----!”머리를 뒤로 훅 젖히는 유월영이다.연재준은 큰 손으로 유월여의 뒷통수를 꽉 붙잡고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뒤 더욱 거칠게 입을 맞춘다. 호흡이 가빠진 유월영은 허겁지겁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며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낸다.“웁.”연재준은 마지막으로 유월영의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고 드디어 해방된 유월영은 재빨리 이불 깊숙이 들어가 눈만 빼꼼 내밀고 그를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본다.연재준은 한 손에 물컵을 느긋하게 든채 덤덤하게 말한다.“지금 너 3년전에 내가 주워왔을때랑 똑같은거 알아?”그때의 유월영은 지금처럼 불안감에 잔뜩 휩싸여 먹지도, 자지도 못한채 구석에 몸을 숨기고 벌벌 떨고만 있었다.처량한 길고양이처럼 말이다.“......”눈가가 반짝 빛나며 그때를 회상하는 유월영이다.그때는 사람들이 또다시 자신을 찾아내 몹쓸 곳에 팔아넘길까, 약에 취해 몹쓸 짓을 당하고 소리 소문없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까 그게 무서웠었다.그래서 유일한 동아줄인 연재준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애를 쓰며 간크게 입도 맞췄었고 별 보잘것 없는 스킬들로 자신에게 흥미를 가지도록 만들며 거둬주고 곁에서 지켜주게 만들었었다.......3년이나 지났는데도 왜 여전히 제자리걸음인것 같지?유월영이 이불을 꽈악 움켜쥐며 자신에게, 그리고 연재준에게 말한다.“전 3년전의 유월영이 아니에요.”연재준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그래야 할거야.”이내 연재준이 말을 이어간다.“제 정신 아니니까 푹 자야돼. 평범한 수면젠데 내가 너 보는 앞에서 먹어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358장

    연재준은 서정희의 자살소동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은채 유월영의 정갈한 옷차림을 보고는 말한다.“출근하게?”유월영도 대답대신 질문을 던진다.“서정희 부모님 만나러 가요? 가서 무슨 얘기하는데요?”연재준은 어젯밤 자기 방으로 돌아간걸까? 아니면 거실에서 밤새 앉아있었던걸까? 늘 검정색 셔츠에 검정색 바지만 입었던터라 바꿔입었는지를 모르겠다. 허나 그는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여전히 날카롭고 예리한 눈빛을 유지하고 있었다.“궁금해서 그래 아니면 불안해서 그래? 내가 그 사람들한테 매수라도 당할까봐?”아마도......후자일듯 싶다.만남을 제안하는건 그가 유월영을 데리고 있는걸 알고 후한 조건을 내밀며 자신들에게 넘기라고 하는걸텐데. 과연 연재준은 그 제안을 받아들일까?받아들인다면 그로써 유월영의 유일한 희망은 눈 앞에서 사라지는 꼴이 될테지.끔찍한 생각에 벼락이라도 맞은듯 머리가 저려나며 마음이 복잡해지는 유월영이다.유일한 희망? 연재준을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한다고??“......”서씨 가문 사람들보다 자신의 오락가락하는 감정상태가 더 무서워진다.단 한번도 연재준을 자신의 희망이라고 생각한적 없다. 늘 혼자였으니까, 믿을건 자신뿐이었으니까.지금은 되려 연재준에게 기댈 생각을 하고 있다니......유월영은 입술을 꽉 깨물고 소파에 놓인 가방을 들고는 도망치듯 자리를 뜬다.“출근해요 저!”연재준은 허둥지둥 나가는 유월영의 뒷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스윽 올린다.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더니 단단히 얼어있던 호수면이 한번 또 한번의 타격으로 깨질 기미를 보이는 순간이다.하정은은 여전히 오리무중에 빠져있다.“사장님, 서 선생님 만나실건가요?”연재준이 손목시계를 내려다본다.“아침 식사 시간 20분 정도 있어.”“네, 그럼 얼른 오시라고 전하겠습니다.”......여전히 같은 호텔 조식 뷔페, 하정은이 연재준을 위해 닭고기버섯죽을 비롯한 여러 메뉴들을 가져다 준다.연재준은 서양식보단 죽을 마시는걸 선호하는 편이다.“서 선생님,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359장

    연재준이 당장이라도 입을 벌려 꿀꺽해 버릴것같은 살벌한 눈빛으로 서정희 엄마를 바라본다.사모님은 겁을 먹었는지 저도 모르게 조용히 자리에 앉는다.이내 정신을 차린 그녀는 어려도 한참이나 어린 자식한테 기가 꺾인게 창피했는지 다시 벌떡 일어나려다가 남편에 의해 손목이 붙잡히고 마는데.그나마 침착한건 서정희 아빠다. 그는 연재준이 직접적으로 유월영을 감싸줄거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아직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재준아 미안하다, 이 사람 성격이 좀 급해서 말이야. 말하는것도 직설적이고......”연재준은 더이상 포장된 형식적인 말을 들어줄 인내심이 없다.“하실 말 있으면 바로 하시죠.”서정희 아빠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직설적으로 한마디를 내뱉는다.“유월영이 장본인이야, 걔가 우리 딸 다치게 만든거니까 꼭 콩밥 먹어야겠어!”그들이 있던 테이블 바로 뒤에서 식사를 하고있던 여자가 손에 들린 숟가락을 툭 그릇에 떨궈버린다.연재준이 뒤를 슬쩍 흘겨보는데.“재준이 너만 끼어들지 않고 간섭하지 않는다면 우리 서씨 가문은 물론 유씨 가문 역시 앞으로 쭉 널 지지해주마.”이내 서정희 아빠가 계약서 한장을 내민다.“이건 우리가 남쪽에 가지고 있는 광산 채굴권이야. 너한텐 별것도 아닌 돈인거 알지만 우리 성의를 봐서라도 받아주고 집이라도 한채 바꾸렴.”역시 큰 손은 큰 손이다. 신주에서 연재준이 살만한 집이라면 적어도 몇십억은 될텐데.보아하니 유월영을 감옥에 집어넣기 위해서라면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것 같다!구석진 테이블에 자리잡은 그들 주위엔 별다른 손님이 없이 조용했다.숨막히는 침묵이 몇분간 이어지고 연재준은 다시 계약서를 밀어내며 서늘하게 말한다.“맞는 말은 겨우 한 마디 뿐이군요. 그 돈이 저한텐 별것도 아니라는것 말입니다.”서정희 아빠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진다.“네!”연재준은 등받이에 느긋하게 기대서는 쌀쌀맞게 쏘아붙인다.“저란 사람은 말이죠, 위협이 제일 안 통하거든요.”“그렇다면 연 사장도 우리가 영리하게 나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360장

    그런 확신에 찬 연재준의 말에도 유월영은 완전히 시름을 놓을수가 없었다.몇십억을 앞세우며 연재준더러 유월영을 포기하라는 사람들이 무슨 짓을 더 못할까?심지어는 경찰서에서 또다시 조사에 협조하라는 연락을 해올까 오전 내내 정신이 거기에만 팔려있던 유월영이다.점심 시간, 동료들이 유월영과 함께 구내식당으로 가자고 조른다. 아직 동료들과 그리 가깝지 않아 식사자리를 함께 한 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유월영은 그들을 따라나선다.다 가서야 그들이 부른 진짜 이유를 알게된다.그건 바로 가십거리를 듣기 위함이었던것.“유 비서님, 듣기론 어젯밤에 서 아가씨 자살하려고 했다던데 진짜예요?”“유 비서님, 어제는 왜 출근 안 하셨어요? 누가 그러는데 비서님 경찰서 가는거 봤대요.”“유 비서님, 서 아가씨 일이랑 진짜 관련 있으세요?”“......”특종에 눈이 기자들마냥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에 유월영은 도통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는다.“아, 숨기지 말고 말 좀 해주세요. 다들 동료들인데 뭐가 부끄러워요?”“그러니까요, 저흰 다른 뜻이 아니라 근야 궁금해서 그러는거잖아요.”“출근까지 했으면 그 일이랑은 상관 없으신거 아니에요?”“......”유월영은 들끓는 감정을 간신히 억누르고 침착하게 말한다.“굳이 그런 질문을 할거라면 제 대답은 ‘모른다’입니다. 썩 만족스럽지 못한 대답이라면 경찰들한테 직접 물어보세요.”동료들이 입을 삐쭉 내민다.“너무 혼자만 겉도는거 아니에요? 그냥 업무 시간 외에 수다나 떨려는건데 뭘 그렇게 차갑게 굴어요?”유월영은 마음속에 불 지펴진 화를 참지 못하고 발산하려 하지만 마침 그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다.발신자는 다름 아닌 신현우다.어젯밤에도 수면제 도움으로 간신히 잠에 들더니 지금은 마치 PTSD라도 걸린것마냥 벨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대로 갔다간 정신쇠약으로 죽을게 뻔한데.입맛 떨어져 밥은 입에 대지도 못하고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는 유월영이다.몇 발자국 떼기도 전에 동료들의 중얼거리는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361장

    “그럼요, 당연히 별 일 없으시죠.” 그제야 유월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금방 심장이식수술을 끝낸 엄마가 놀래서는 안되니 보모에게 신신당부를 한다.“요즘 모르는 번호로 연락해오는건 최대한 받지 마세요. 신원불명인 소포도 받지 마시고요. 무슨 일 있으면 저한테 바로 연락하시거나 경찰에 신고하세요.”보모는 갑작스런 유월영의 말에 말을 더듬거린다.“네, 네 알겠어요......아가씨, 무슨 일 있으세요?”뭔가 큰 일이 난것만 같은 이 느낌은 뭐지?“아니에요, 엄마 아빠한텐 뭐라고 말하지 마세요. 주말엔 저 대신 큰언니 보내서 정기검진 모셕가게 할게요.”“네, 네.”전화를 끊은 유월영은 힘이 쭉 빠져 터벅터벅 자리로 돌아온다.이윽고 이 매니저가 상자 하나를 건네주는데.“유 비서님, 카운터에 비서님 소포도 있길래 제가 같이 가져왔어요.”유월영이 애써 웃음 지어 보인다.“고마워요.”이틀전 주문한 캔들인줄로 알고 박스를 열자 순간 뭔가가 풀쩍 튕겨나온다!예고도 없는 갑작스런 상황에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물건을 던져버리는데.콰당하며 떨어지는 소리에 동료들이 하나둘 몰려든다.“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인데요?”놀란 유월영이 창백해진 얼굴로 뒷걸음질 치자 매니저 두 명이 앞으로 다가간다. 해골 모양을 한 장난감이 땅에 떨어지더니 안에서 정체불명의 붉은 액체가 서서히 흘려나오며 소름돋는 괴상한 효과음을 내기 시작한다.“이, 이게 뭐예요? 몰래 카메라인가?”“유 비서님, 이거 누가 보낸거예요?”당연히 알리없는 유월영이 경직된 몸을 이끌고 땅에 떨어진 박스를 주워들어보지만 발신지는 한 눈에 봐도 가짜인게 확실했다.가까이 가보니 정체모를 붉은 액체의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이윽고 다른 동료들도 하나둘 냄새를 맡아내는데.“저, 저거 설마 진짜 피는 아니겠죠?”“닭피 같은데......”“네티즌들 아닐까요? 유 비서님 개인정보 새나간 뒤로 ‘서프라이즈’ 해줄거라고 그러던데.”“온라인에서 그랬으면 됐지, 왜 이런걸 보내서 사람 놀래키기까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362장

    자신에게 달려올줄이라곤 생각도 못했던 연재준도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이내 두 팔 벌려 달려오는 유월영을 껴안을 준비를 한다.하지만 유월영은 안기는 대신 바로 코 앞에서 걸음을 멈춰버리는데.연재준은 비틀거리는 유월영을 내려다보며 그만 참지 못하고 피식 웃어보인다.“그렇게 달려올 정도야?’“......”유월영은 코끝이 빨개져서는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이를 꽉 깨물고 있는다.농담이라도 던지려던 연재준은 뭔가 이상한 유월영을 보고는 웃음기를 싹 빼고 진지하게 묻는다.“무슨 일 있었어?”유월영이 힘들게 침을 꼴깍 삼키며 고개를 젓는다.“집 가고 싶어요, 엄마아빠 보고싶어요. 나 데리고 갈 방법 없어요?”“너 지금 서안 못 벗어난다는거 알잖아.”유월영이 고개를 들고 그렁그렁거리는 눈으로 묻는다.“사장님도 안 되는거예요?”연재준은 대답 대신 겉옷을 벗어 유월영에게 씌워준다.아침엔 분명 입고 있었는데 얼마나 정신없이 나왔는지 지금은 겉옷도 걸치지 않고있는 유월영이다.습관적으로 거절해보지만 연재준은 아예 유월영의 손을 끌고 회사에서 나온다.뒤에서 걸어가던 유월영의 눈 앞에 연재준의 듬직하고도 넓은 어깨가 보인다.문득 그제서야 연재준만 있다면 그 어떤 음모와 함정 속에서도 안전할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연재준이 자신의 손을 잡고 나가는 모습은 당연히 회사 직원들의 입방아에 오르겠지만 더 이상은 뭐라하든 상관없다.어차피 하루 이틀도 아니고.차에 올라타 문이 닫기는 순간, 동료들의 쉴새없던 말소리와 온라인에서 행해지던 무분별한 언어폭력들이 삽시간에 물 밑으로 가라앉듯 조용해진다.유월영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우드향 방향제 냄새에도 문 옆에 바짝 웅크려 있는다.“무슨 일 있었는데?”말하고 싶지 않다.말하기 뭐한게 아니라 그냥 말하기가 싫다. 며칠 내내 똑같은 일에만 갇혀있다보니 지칠대로 지쳤으니까.연재준은 지그시 유월영을 바라보더니 더이상 묻지 않고 지시를 내린다.“가지.”소리없이 나아가는 차 안에서 유월영은 창가를 바라본 채 아무 생각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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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0화

    방금 중성화 수술을 받은 고양이는 축 늘어져 있었다.이승연은 고양이가 우울증에 걸릴까 봐 걱정되어 이혁재에게 맡기기로 했다.“경험 있는 네가 좀 맡아줘.”이혁재는 황당했다.“내가 무슨 경험이 있다고 그래!”이승연은 그를 잠시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처지가 비슷하잖아.”화가 난 이혁재는 이승연을 들어 신발장 위에 올려놓고 곱게 바른 립스틱을 번지게 했다.“전혀 비슷하지 않거든!”이혁재의 사무실.이혁재와 연재준은 일 얘기를 하고 있었고 두 아이는 옆에서 놀고 있었다.그때 이혁재가 무심코 고양이에게 한마디를 건넸다.“호두야, 누나를 잘 돌봐야 해.”기어다니기 시작한 윤아는 갑자기 호두의 꼬리를 잡았다.호두는 성격이 온순하고 사람을 좋아했지만 꼬리만큼은 예외였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이혁재의 말 때문인지 꼬리를 잡힌 채로 억울한 듯 야옹 소리만 냈다.윤아는 깔깔 웃으며 꼬리 끝을 입에 넣으려 했고 그제야 호두는 꼬리를 빼내더니 아기에게 돌아서서 야옹 소리를 내며 경고했다.마치 “입에 넣으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그러자 윤아는 호두를 향해 돌진하며 그를 덮쳤다.두 아빠가 일을 마치고 아이들을 찾으러 갔을 때 윤아는 카펫 위에서 잠들어 있었고 호두는 듬직한 몸을 베개 삼아 윤아를 받치고 있었다.그 동화 같은 장면에 연재준과 이혁재는 저도 모르게 아빠 미소를 지었다.“고양이가 어린이를 알아본다더니 진짜인가 봐.”퇴근 시간이 되어 이혁재는 호두를 데리고 이승연의 사무실로 향했다.이승연은 호두를 품에 안고 기뻐하며 입을 맞췄고 이어 호두가 이혁재에게도 뽀뽀하도록 했다.갑작스러운 입맞춤에 이혁재는 고양이 털을 한가득 삼키고 서둘러 뱉어냈다.“퉤퉤퉤.”그 순간, 호두도 갑자기 토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흉내를 낸 게 아니라 실제로 무언가를 토해냈다.이혁재는 어이가 없어 발끈했고 이승연은 웃음을 참지 못해 의자에 쓰러지듯 폭소했다.사실 고양이는 털을 핥으며 스스로를 청소하는 습성 때문에 위에 털 뭉치가 생겨 종종 토하곤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59화

    작은 고양이는 케이지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고 치료로 인해 털이 대부분 깎인 채 볼품없는 모습이었다.이혁재가 싫은 소리를 내자 새끼 고양이는 힘겹게 눈을 떴다. 그리고 이승연을 알아본 듯 비틀거리며 케이지 가장자리로 다가와 그녀를 향해 야옹 울었다.이승연은 손가락을 내밀어 고양이를 살짝 만졌다. 그러자 고양이는 꿈틀거리며 그녀의 손가락에 머리를 가져다 대었다.그녀는 미소 지었고 이를 지켜보던 이혁재가 말했다.“여보, 얘 다 낫고 나면 집에 데려가 키우자. 이렇게 작고 못생긴 애가 혼자 힘으로 먹을 걸 찾기도 힘들고, 다른 고양이들이 받아주지도 않을 거야. 우리가 돌보지 않으면 얘 어떻게 살겠어.”이승연도 같은 생각이었다.두 달 후, 고양이는 건강을 회복했다.이혁재는 직접 고양이를 씻기고 구충한 뒤 집으로 데려갔다.시간이 지나면서 고양이는 털이 윤기 나게 자랐고 살이 올라 뼈만 앙상했던 이전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다.결국, 고양이는 기름지고 윤기 나는 털을 자랑하며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이혁재의 몸 위로 덮치는 대형 고양이가 되었다.“이런 젠장!”이혁재는 고양이의 기습에 또 당했고 숨이 턱 막힐 뻔했다.고양이가 도망치려 하자 그는 재빨리 붙잡아 들어 올리며 따졌다.“너 자신이 얼마나 무거운지 전혀 모르는 거야? 아니면 정말 날 깔아뭉개려고 작정한 거야?”고양이는 억울하다는 듯 야옹거리며 반응했다. 그러나 고양이가 이승연에게는 절대 이런 짓을 하지 않았기에 이혁재는 고양이가 일부러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했다.고양이는 이승연이 일할 때 그녀의 발등 위에 앉아 체온으로 발을 따뜻하게 해주었다.그녀가 서류를 검토할 때는 네 발을 모아 단정한 자세로 그녀 곁에 앉아 ‘독서’에 동참했다.때로는 앞발로 서류를 톡톡 두드리며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중요한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이혁재는 고양이를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고양이를 뒤집어 배를 위로 한 채 들어 올려 얼굴을 고양이 배에 묻고 한 번 흡입했다.고양이는 저항하며 네 발로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58화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합의한 후, 이혁재는 정관 절제술을 받았다. 흔히 말하는 ‘피임 수술’을 통해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결정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이혁재는 이 일을 이승연에게 알리지 않았다. 관련 정보를 철저히 조사한 뒤, 직접 차를 몰아 병원으로 갔다.수술은 간단했고 외래 진료에서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수술을 마친 그는 바로 퇴원했고 그날 오후에는 몇 시간 동안 회의를 열기도 했다.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후에는 그 불편함조차 완전히 사라졌다.수술 후 한 달이 지나서야 이혁재는 가벼운 농담처럼 이 일을 이승연에게 털어놓았다.이승연은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평소 재빠른 두뇌 회전과 날카로운 눈치로 유명한 그녀였지만 이번에는 말을 잇지 못했다.이혁재는 그녀가 ‘수술’이라는 단어에 겁을 먹었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혹시 일이 심각하다고 오해했을까 봐 그녀를 안고 달래며 자세히 설명했다.“여보, 내가 요즘 아이를 갖는 게 얼마나 두려웠는지 몰랐지? 피임을 해도 혹시 실수라도 생길까 봐 계속 걱정했어. 만약 사고가 생기면 낳든 낙태하든 둘 다 누나 몸에 무리가 갈 거잖아. 그래서 아예 근본적으로 위험을 없애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이승연은 그의 허리를 감싸안고 이마를 그의 가슴에 기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이 수술 알아. 우리 아빠가 받았거든.”그녀는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갔다.“그 시절에는 보통 여자가 피임 수술을 받곤 했는데 우리 아빠는 알아보니 여자가 받는 수술이 훨씬 위험하고 몸에 무리가 된다는 걸 알게 됐대. 그래서 엄마가 고생하는 걸 차마 볼 수 없어 자신이 받았지.”“아빠는 우리 동네에서 피임 수술을 받은 유일한 남자였고 사람들은 우리 아빠를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남자라고 칭찬했어. 엄마도 복 받은 거라고 하셨고.”이혁재는 그녀가 아버지를 칭찬하며 은근히 자신도 칭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웃음을 터뜨렸다.그날 밤, 소파와 카펫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57화

    이혁재는 전문가를 찾아가 시험관 아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다.의사가 난자를 채취하는 과정을 설명하며 길이 30cm에 달하는 바늘을 꺼내 보이자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이걸로 난자를 채취합니다.”의사의 말에 몇 초간 멍해 있던 이혁재가 물었다.“이걸로 제 아내의 자궁에 찔러서 난자를 채취한다고요?”“네, 그렇습니다.”이혁재는 순간 격분하며 소리쳤다.“당신들 사람 죽이려고 하는 겁니까!”의사는 급히 진정시키려 했다.“선생님,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이 수술은 정식 절차에 따라 진행되며 산모의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합니다.”그러나 이혁재는 진정할 수 없었다.“이승연이 손가락에 바늘 하나만 찔려도 아픈데 이런 무시무시한 바늘을 아내 몸에 넣겠다고요? 미친 짓이야!”그는 곧바로 차를 몰아 이승연이 있는 로펌으로 갔다.“이승연!”그녀의 이름을 직설적으로 부르며 사무실로 들어왔다.이승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너 미쳤어?”“당신이 정말 시험관 아기를 하러 간다면 나 진짜 미쳐버릴 거야!”이혁재는 속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에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제발 내 생각 한 번만 해 줄 수 없어? 왜 그렇게 이기적이야? 아이가 그렇게나 중요해? 그 아이가 나보다 더 중요해?”이승연은 그의 붉어진 눈과 분노, 억울함이 섞인 표정을 바라보았다. 그는 마치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보였다.“네가 먼저 말해봐. 왜 그렇게 아이를 원하지 않는 거야?”그 순간, 이혁재는 폭발하며 외쳤다.“몰라서 물어? 내가 왜 아이를 원하지 않는지 몰라? 당신이 그 사고로 다쳐서 식물인간이 되었을 때 나는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당신이 누워 있는 모습을 지켜봤어! 다신 그런 꼴을 못 봐!”“당신이 괜찮아질 수만 있다면 내가 대신 누워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 당신이 아이 하나를 위해 다시 건강을 걸겠다고 한다면 난 절대 못 해. 절대!”이승연은 잠시 침묵하다 조용히 말했다.“나도 더는 아이를 원하지 않아.”이혁재는 믿을 수 없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56화

    의사는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의학적으로 35세 이상의 임산부를 고령 산모로 정의하는 이유는 나이가 증가할수록 염색체 이상, 임신성 당뇨병, 고혈압 같은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임산부가 이런 문제를 겪는 건 아니며 사람마다 다릅니다.”이혁재가 물었다.“문제가 없을 확률이 높은가요?”“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습니다.”즉, 그들이 아이를 원한다면 가질 수는 있지만 이승연의 건강이 크게 상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병원을 나서며 이혁재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우리, 아이 가지지 말자.”이승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의사가 아직 가능하다고 했잖아. 좋은 소식 아니야?”“그게 무슨 좋은 소식이야! 난 본 적도 없는 아이 때문에 누나 몸이 상하는 걸 절대 두고 볼 수 없어!”이혁재의 단호한 태도는 1%의 타협도 없었다. 두 사람은 3분간 대치하다 결국 이승연이 등을 돌려 걸어갔다.이혁재는 그녀를 쫓아가지 않았다. 그는 평소 거의 모든 일에서 아내에게 맞춰주었지만 이번만큼은 단호했다.결국 그는 부부 생활을 단절하기로 결심했다. 매일 밤 긴 팔과 긴 바지를 입고 마치 순결을 지키는 사람처럼 행동했다.이승연은 이를 눈치채고 일부러 그의 가슴 근육을 만지며 도발했지만 이혁재는 곧바로 거리를 벌리며 경고했다.“그만해! 더 장난치면 난 손님방에서 잘 거야.”이승연은 눈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잠옷 끈이 흘러내려 부드러운 피부가 드러났다.“손님방에 간다고? 정말?”이혁재는 다시 반응해 버렸다. 그는 이를 악물고 침대를 박차고 욕실로 들어가 찬물을 끼얹었다.다음 날, 이승연은 그에게 쇼핑 링크를 보냈다. 링크를 열어본 이혁재는 남성용 순결 벨트를 보고 기가 막혔다.“...”그는 그것을 살지 말지 10초 동안 고민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결국 쇼핑몰 창을 닫고 억울한 이모티콘 하나를 보냈다.그렇게 두 사람은 결혼 후 가장 ‘순수한’ 한 달을 보냈다.이혁재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기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55화

    “...그런 헛소리를 믿어?”“당연히 안 믿지. 중요한 건 그 집에 CCTV가 있다는 거야. 영상 속에서 그의 행동이 정말 이상했거든. 정신병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서 말이야. 만약 정신병으로 판정된다면 내 의뢰인은 원하는 판결을 받기 어려워질 거야. 귀찮아. 다시 생각해 봐야겠어. 그러니 날 귀찮게 하지 마.”이승연이 사건 얘기를 마친 뒤, 이혁재는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혹시 아이 문제로 마음 쓰고 있진 않은지 조심스럽게 그녀를 몇 번 훔쳐보았다. 그러나 그녀가 다른 고민으로 보였기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밤 10시가 넘어 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샤워를 마친 뒤 침대에 누웠다. 이혁재는 별다른 생각 없이 누워 있었지만 불을 끄자마자 이승연이 몸을 돌려 그의 위로 올라탔다.이승연의 이런 행동은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이혁재는 순간적으로 놀라며 긴장했다.“여보...”이승연은 아무 말 없이 그의 셔츠 단추를 풀어 헤쳤다. 그녀가 행동하기도 전에 이혁재는 이미 흥분한 상태가 되었다. 마치 뼈다귀를 발견한 강아지처럼 그는 즉각 반응하며 그녀의 실크 잠옷을 벗겼다.뜨거운 밤이 네 시간 넘게 지속된 후, 새벽에야 모든 것이 끝났다. 이혁재는 기진맥진한 이승연을 안아 화장실로 데려갔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서는 그녀가 콘돔 사용을 거부한 이유를 곱씹었다.‘혹시 누나도 아이를 원하기 시작한 걸까?’욕조 옆에서 물결을 손가락으로 장난치던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여보, 혹시 아이를 갖고 싶어진 거야?”이승연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며 졸린 눈으로 대답했다.“모르겠어.”“내가 정말로 아이를 좋아해서 갖고 싶은 건지, 아니면 첫 아이를 잃고 그걸 잊지 못해 다시 아이를 ‘찾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 아마도 내가 아이를 가지기 전에는 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할 거야.”이혁재는 그녀의 말을 듣고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장난스럽게 말했다.“나 하나로 부족해?”이승연은 피곤한 얼굴로 그를 밀치며 답했다.“...저리가.”이승연이 아이에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54화

    유월영이 딸 고윤아를 낳은 후, 가족 외에 이 아이를 가장 아끼고 사랑한 사람은 이승연이었다.유월영이 봉현진에서 산후조리를 하는 동안 도심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사는 이승연은 바쁜 일정에도 3일마다 시간을 내어 찾아왔다.그녀는 유월영보다도 윤아에게 더 신경을 썼다. 매번 아이를 위한 선물을 사 왔는데 지난번에는 액운을 막아준다는 작은 방울이 달린 은팔찌를, 이번에는 귀여운 아기용품을 들고 나타났다.“너무 귀여워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아이의 성장이 조금 느껴지자 다음번에는 신상 옷을 사줘야겠다고 계획까지 세웠다.유월영이 웃으며 말했다.“우리 윤아가 승연 언니를 대모로 모셔야 할 것 같네.”이승연이 윤아를 보기 위해 올 때마다 남편 이혁재도 동행했지만 그의 목적은 달랐다. 그는 아이가 아니라 아내를 따라오는 데만 신경 썼다. 한 번도 윤아를 안아본 적이 없는 그는 윤아에게 가장 무관심한 사람 중 하나였다.이 사실을 눈치챈 연재준이 물었다.“너, 우리 딸한테 무슨 불만 있어?”이혁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아니, 그냥 난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이 관심이 없을 뿐이야.”연재준은 흥미로운 듯 물었다.“그래? 그럼 예전에 이 변호사가 임신했을 때는 왜 그렇게 들떴었는데?”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혁재는 급히 그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리고 경계의 눈빛으로 이승연 쪽을 확인한 뒤 그녀가 듣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내 아내 앞에서 그 얘기 꺼내지 마!”연재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가 윤아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무관심한 것도 아니야. 넌 이 변호사가 네가 아이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첫 아이를 잃은 걸 떠올릴까 봐 두려운 거지.”역시, 연재준은 이혁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이승연은 올해 35세였다.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난 뒤 매일 운동과 요가를 하며 건강을 유지했지만 의학적으로 고령 산모에 해당했다. 더구나 첫 아이를 잃은 사고로 자궁이 심각하게 손상되어 의사들은 그녀가 다시 임신하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53화

    이승연은 속았다고 느꼈다.이 남자의 따뜻함에 넘어가 버린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지금 기분 좋겠지? 드디어 내 유산을 손에 넣게 됐으니.”이혁재는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유산, 유산, 유산. 왜 항상 이 얘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야?’그는 복잡한 심정을 억누르며 허리를 숙여 그녀의 배를 감싸안았다.“여보, 내가 돈이 부족해 보여? 난 돈이 부족하지 않아. 지금 있는 돈으로 다음 생까지 살아도 충분해. 그 많은 돈을 뒀다 뭐 하겠어? 난 당신 돈을 원하지 않아. 그 유산이 당신한테 주는 부담을 덜어주고 싶을 뿐이야. 난 그냥 당신을 돕고 싶어. 내가 어떻게 해야 날 믿어줄 거야?”이승연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침묵에 빠졌다. 그녀는 그런 시선으로 이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잠시 후,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마치 충성스러운 강아지를 다독이듯. 이혁재는 항상 그녀에게 충실한 강아지처럼 느껴졌다.그 후로 두 사람은 함께 평생을 보내기로 결심했고 아이가 태어나면 행복한 세 식구가 될 거라고 믿었다.그러나 불행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법정에서 사고가 발생하며 아이를 잃었고 이승연은 깊은 혼수 상태에 빠졌다. 의사는 깨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다.처음 한 달 동안 이혁재는 살이 빠져 송장처럼 변해갔다. 그는 며칠씩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으며 잠조차 자지 않았다. 생존 본능에 이끌려 겨우 물 한 모금을 마시곤 했지만 결국 집에서 쓰러지고 말았다.공주연이 아들을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다. 의사들은 그가 극심한 기아 상태였다고 진단했다. 그는 거의 굶어 죽을 뻔했다.이혁재가 깨어났을 때 공주연은 눈물을 흘리며 그의 뺨을 내리쳤다.“넌 네 엄마도 필요 없니? 네 아빠는 이미 날 버렸어. 세상에선 네가 전부야! 그런데 너마저 날 버리려 해?”하지만 이혁재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공주연은 울면서 말했다.“승연이 아직 죽지 않았어! 곧 깨어날 거야. 그런데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52화

    이혁재의 시점사실, 두 사람의 불화와 이별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갈등이 발생했다.이혁재의 어머니인 공주연이 이승연에게 출산을 재촉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공주연은 겉으로는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이승연의 유산을 노리고 있었다.그녀의 계산은 간단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이씨 성을 가진 그 아이가 이승연의 유산을 당당히 상속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이혁재 역시 어머니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아이에게 상속자가 생기면 이승연의 친척들도, 우리 가족도 유산에 대한 욕심을 접고 물러나겠지. 그러면 그녀의 부담도 줄어들 거야.”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바로 이승연에게 가서 아이를 갖자고 제안했다.그러나 이 말을 들은 이승연은 그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우리가 지금 따로 살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를 갖자고?”그리고 이내 그녀는 냉소를 지으며 결혼 전 계약서를 꺼내 들었다.“여기에 사인하기 전에는 꿈도 꾸지 마.”이승연은 이미 이혁재가 자신과 결혼한 이유가 그녀의 유산 때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혁재는 말로 그녀를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닫고 치사한 방법을 선택했다.그녀가 복용하는 피임약을 엽산제와 임신 보조제로 몰래 바꿔치기한 것이다. 결국 이승연은 그의 의도대로 임신하게 되었지만 이로 인해 그들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이승연은 약을 바꿔치기한 사실에 격분했고 심지어 이혁재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의심하기까지 했다. 반면, 이혁재는 호텔에서 이승연과 오성민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오성민과 다시 만나고 있다고 오해했다.그날, 두 사람은 처음으로 크게 다퉜고 이혁재는 한강에 뛰어내릴 생각까지 했다.“너 정말 적당히 좀 해라.”연재준이 기가 막혀 혀를 찼다.“뭘 적당히 하라고!”이혁재는 술잔을 내리치며 소리쳤다.“내 첫사랑은 이제 날 원하지 않는데, 내가 살아서 뭐 하겠어!”서지욱이 나서서 말렸다.“그렇게 미련이 남으면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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