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산이 정말로 진서준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다면, 강백산의 아버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나있을 것이다.강백산은 진서준의 주소를 알고는 곧바로 황동원을 데리고 그곳으로 향했다.이때 진서준은 유정 등 사람들을 위해 약을 담고 있었다. 이건 유정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허사연 등 사람들의 몫도 있었다.진서준이 일을 마치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별장 문이 열렸다.“이 자식, 네가 진서준이야?”문을 연 사람을 본 뒤 강백산은 차가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진서준이 자기보다 겨우 1, 2살 많은 청년임을 본 그는 같잖다는 표정을 했다.서현욱이 이런 놈에게 제압당했다니, 참 기가 막혔다.상대방이 다짜고짜 욕하자 진서준은 곧바로 그의 뺨을 때렸고 강백산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그는 눈앞의 청년이 자신을 때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강백산이 누구인가? 고양의 지하 세력의 왕인 강은우의 아들이다.그가 남의 뺨을 때린 적은 있어도 누군가에게 뺨을 맞은 적은 없었다.강백산은 순간 화가 치밀어올랐다.“이 자식, 감히 내 뺨을 때려? 오늘 네 얼굴이 불어 터질 때까지 때려줄게!”강백산은 소리를 지르더니 곧바로 황동원에게 말했다“얼른 해치워. 이 자식을 죽여버려. 날 건드린 결과가 무엇인지 보여줘야지!”말을 마친 뒤 강백산은 차가운 얼굴로 웃으며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는 진서준이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그러나 5초 동안 기다렸지만 황동원은 가만히 있었다. 그는 조금 궁금해졌다.“황동원, 뭐 하는 거야? 빨리 때리라니까! 안 들려? 때리라고!”강백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그런데 진서준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뺨을 때려요.”황동원은 강백산을 힐끗 보더니 이를 악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도련님!”말을 마친 뒤 강백산의 멍청한 눈빛을 바라보며 황동원은 그의 뺨을 때렸다.강백산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 그는 자기가 데려온 사람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상대의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황동원, 미쳤어? 감
전화가 끊기고 한참이 지나서야 강백산은 정신을 차렸다.강백산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진서준을 낮잡아본 일로 아버지가 이렇게 화를 낼 줄은 몰랐다.눈앞의 청년이 대체 누구길래?“아버지가 뭐라고 했어? 날 혼내준다고 했어? 아니면 널 혼내준다고 했어?”진서준은 재밌다는 얼굴로 놀라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강백산을 바라보았다.진서준도 강백산과 강은우의 통화 내용을 들었다.그는 강은우가 이렇게 큰 반응을 보일 줄 예상했다.저번에 진서준은 강은우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이번에 강백산이 황동원을 데리고 진서준의 집까지 찾아왔는데, 진서준이 강백산을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강은우의 체면을 많이 생각해 준 것이었다.“당... 당신 대체 누구야?”강백산은 떨리는 목소리로 진서준에게 물었다. 그의 몸도 떨리고 있었다. 그는 마치 얼음 동굴 안에 갇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난 네가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진서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네 아버지도 날 보면 정중히 고개를 숙여야 해.”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황동원은 그 정도가 아닐 거로 생각했다.이번에 강은우는 아마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진서준에게 사정할 것이다.진서준을 연달아 두 번이나 건드렸으니 강은우는 진서준이 자신에게 손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강은우가 고양시 암흑 세력 중 최강이라고 해도 진서준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진서준이 그를 죽이려 한다면, 감히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왜 아직도 서 있어? 얼른 무릎 꿇어. 네 아버지가 도착할 때까지 말이야.”진서준은 강백산을 보고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강백산은 흠칫하더니 곧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나한테 무릎을 꿇으라고? 절대 안 꿇을 거야!”강백산은 오냐오냐 자라서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앞에서 고개를 숙인 적이 없었다.진서준은 지금 그에게 별장 앞에서 무릎을 꿇으라고 했고 강백산은 당연히 그럴 생각이 없었다.황동원은 서둘러 강백산의 바짓
진서준이 상대를 죽이고 싶어 한다면 상대는 전혀 반격할 수가 없었다.만약 강백산이 진서준의 말에 따라 이곳에 가만히 무릎 꿇고 있지 않는다면 황동원은 그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진서준이 강백산을 죽인다고 해도 강은우는 진서준에게 복수하지 못할 것이다.남주성을 아울러봐도 진서준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그렇지 않으면 뭐? 난 그 자식이 날 죽일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않아!”강백산이 이를 악물며 일어나려고 했지만 두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얼른 날 부축해 줘. 난 계속 이곳에 무릎 꿇은 채로 있고 싶지 않아.”강백산이 황동원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그러나 황동원은 감히 그럴 수 없었다. 그는 강백산이 죽임당한다면 그 책임을 짊어질 수가 없었다.이때 별장 문이 열리고 진서준이 제작을 끝낸 약을 들고나왔다.“입 닥치고 가만히 무릎 꿇고 있어. 계속 소리를 질러댄다면 서울을 떠나지 못하게 될 줄 알아.”진서준의 까만 눈동자에서 소름 돋는 한기가 느껴졌다.강백산은 진서준의 눈빛을 보고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눈앞의 청년이 사람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악마처럼 느껴졌다.진서준이 떠나고 나서야 강백산은 조금 전의 두려움에서 정신을 차렸다.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강백산이 더는 소란을 부리지 않자 황동원도 한숨 돌렸다.진서준은 운전해서 먼저 김연아의 회사로 향했다.김연아는 피부가 아주 좋았고 탄력이 넘쳤다. 이 약만 있으면 그녀의 피부는 더욱 완벽해질 것이다.김연아의 회사 아래 도착한 뒤 진서준은 전화를 꺼내 그녀에게 연락했다.전화가 두 번 울린 뒤 김연아가 전화를 받았다.“진서준 씨, 무슨 일로 저한테 전화한 거예요?”김연아의 말투에서 숨기지 못한 흥분과 신남이 느껴졌다.“피부에 좋은 약을 좀 만들어봤는데 주고 싶어서요. 지금 김연아 씨 회사 아래에 있어요.”진서준이 웃으며 설명했다.“그러면 올라와요. 저 사무실에 있어요.”김연아가 기쁜 얼굴로 말했다.
휴게실 안, 김연아는 화장대 앞에 앉아서 진서준이 직접 약을 발라주기를 기다렸다.진서준은 조금 난감했다. 파우더 형태의 약이라 그것을 발라주려면 김연아의 얼굴을 만져야 했기 때문이다.여자의 몸에는 손을 대면 안 되는 곳이 많았다. 연인이 아니라면 절대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김연아의 얼굴 말이다.“진서준 씨, 빨리요. 전 효과를 보고 싶다고요!”김연아는 고개를 돌려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사실 김연아는 효과를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진서준이 그녀를 위해 파우더를 발라줄 때, 피부가 닿는 걸 원했다.김연아는 진서준을 향한 마음을 더는 감추지 않고 노골적으로 그에게 보여줬다.“그건 좀 아닌 부적절한 것 같은데...”진서준이 망설이며 말했다.“뭐가 부적절해요? 그냥 날 환자라고 생각해요. 내 구궁한증을 치료할 때 내 등도 만졌었잖아요?”진서준이 자신을 치료해 줬던 걸 떠올린 김연아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심지어 귀까지 빨갛게 물들었다.“그건 달라요. 그건 단순히 치료였으니까요.”진서준은 말문이 막혔다.당시 김연아를 치료할 때 등에 손을 대기는 했지만 그것은 확실히 치료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그런데 김연아에게 이 파우더를 발라주는 건 굳이 진서준이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싫으면 말아요!”김연아는 일부러 화가 난 척 입을 비죽였다.“알겠어요. 발라줄게요...”진서준은 어쩔 수 없이 승낙했지만 사실 조금 흥분됐다.김연아와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형언할 수 있는 기분이 들었다.그 기분은 허사연과 있을 때는 느껴본 적 없는 것이었다.진서준은 파우더를 조금 집은 뒤 물 안에 넣고 살살 저었다.곧 파우더는 물에 녹아서 청색의 끈적거리는 액체가 되었다.진서준은 두 손가락으로 액체를 조금 집어 올린 뒤 조심스럽게 김연아의 얼굴에 발라줬다.“어머!”김연아가 살짝 소리를 냈다.“왜 그래요?”진서준은 깜짝 놀라서 서둘러 손을 들었다.그는 자신이 만든 약에 자신감이 넘쳤다. 피부가 아주 민감한 사람이라도
30분 뒤라는 말에 김연아의 눈이 빛났다.“좋아요. 그러면 30분 뒤에 씻어줘요.”김연아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진서준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왜 씻는 것까지 그에게 맡기는 걸까?하지만 김연아의 아련하고 애절한 눈빛을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알겠어요... 내가 씻겨줄게요.”“좋아요!”김연아는 진서준을 데리고 침대 위로 가서 앉았다.“잠깐만 기다려요. 여기 빔 프로젝터가 있는데 같이 영화나 봐요!”김연아는 진서준에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고 빔 프로젝터를 작동시켜서 로맨스 영화를 선택했고 진서준의 팔에 팔짱을 낀 채 침대 위에 누웠다.침대 위, 김연아에게서 느껴지는 옅은 향수 냄새에 진서준은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조금 덥네요.”김연아가 갑자기 말했다.“그러면 내가 에어컨 켤게요!”진서준은 일어나서 리모컨을 찾으려고 했다.“괜찮아요. 겉옷을 벗으면 되니까요.”김연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빨개진 얼굴로 자신의 검은색 겉옷을 벗었다.겉옷 안에는 흰색 셔츠와 속옷뿐이었다.김연아는 셔츠의 가장 위쪽 단추를 풀며 흰 피부를 드러냈다.진서준은 김연아의 곁에 누워있었는데 키 차이 때문에 김연아보다 더 위쪽에 누워있었다.그래서 진서준의 각도에서는 김연아의 쇄골과 그 안쪽이 훤히 보였다.김연아는 그러고 난 뒤 다시 진서준의 팔에 팔짱을 끼고 얌전히 영화를 감상했다.이때 진서준은 더는 영화를 볼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묵묵히 애국가를 불렀다....“조규범, 왜 갑자기 나한테 연락한 거야? 내 남자 친구한테 또 맞고 싶어?”집에 있던 허윤진은 갑자기 조규범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몇 번이나 끊었지만 결국 화를 참지 못한 허윤진은 전화를 받고 다짜고짜 욕했다.전화 건너편의 조규범은 허윤진의 말을 듣자 이마에 핏줄이 섰다. 하지만 계획을 위해서는 참아야 했다.“윤진아, 오해야. 이번에 너한테 전화한 건 사과하고 싶어서야.”조규범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과?”허윤진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조규범 같은
“신경거리의 여루 카페,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조규범은 허윤진에게 장소를 알려줬다.약속 장소가 카페라고 하자 허윤진은 더욱 겁이 나지 않았다.지금 이 시간이면 카페에 사람이 많을 테니, 조규범이 사람들 있는 곳에서 대놓고 그녀에게 손을 대지는 못할 거로 생각한 것이다.그러나 그 카페는 어젯밤 조규범이 대관하여 이틀 동안은 다른 고객을 받지 않았다.그래서 지금 카페에는 조규범과 홍경천만 있었다.“어때? 온대?”홍경천은 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평온하게 물었다.“오고 있대요. 도착하면 이 여자를 이용해서 그 자식을 불러내는 거예요.”조규범이 악랄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진서준이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지금 조규범은 허윤진을 가지는 것보다 진서준을 죽을 때까지 괴롭히는 게 더욱 중요했다.진서준은 그에게 크나큰 치욕을 안겨줬기 때문이다.진서준을 죽이지 않는다면 조규범은 어젯밤 있었던 일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경천 아저씨, 잠시 뒤에 그 자식을 묶어주세요. 제가 직접 그 자식의 살을 한 점 한 점 발라내고 싶어요.”조규범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조규범이 직접 상대의 살을 베어내겠다고 하자 홍경천은 덤덤히 웃었다.이렇게 악랄한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었지만 정말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지금 이 사회에 살인은 물론이고 직접 닭을 죽여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홍경천은 처음 살인했을 때 며칠 동안 악몽에 시달렸었다.허윤진은 집에서 나갈 때 특별히 집안 도우미들에게 자신이 어디로 갔냐고 허성태 또는 허사연이 묻는다면 자신과 조규범의 약속 장소를 알려주라고 했다.허윤진은 만일에 대비해 그런 말을 남겼다. 조규범이 정말 미쳐서 이성적이지 못한 짓을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허윤진이 카페에 도착했을 때 조규범은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허윤진은 카페에 사람이 없고 조규범 혼자 있는 것 같아서 조금 신경이 쓰였다.“윤진아, 왔어?’허윤진을 본 조규범은 웃는 얼굴
“뭐하냐고? 내가 뭘 할 것 같아? 넌 지금 같은 상황에도 그 자식이 떠오르나 보지? 내가 그 자식보다 못한 게 뭐야? 전과도 있는 놈이 그렇게 좋아?”조규범은 말하면 말할수록 화가 나서 표정이 마구 일그러졌다.“그 사람을 조사한 거야?”허윤진이 화를 내며 물었다.“난 걔 팬티 색까지 알고 있어!”조규범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우리 조씨 일가는 네 상상보다 훨씬 더 강해. 감옥에 갔던 쓸모없는 놈은 내가 한 손으로도 죽일 수 있다고!”말을 마친 뒤 조규범은 뒤에 앉아 있는 홍경천을 향해 눈빛을 보냈다.홍경천은 허유진의 뒤로 걸어가서 그녀의 목덜미를 쳐 그녀를 기절시켰다.“진서준, 네가 도착하고 나면 난 네 앞에서 네가 좋아하는 여자가 내게 능욕당하는 걸 지켜보게 할 거야!”진서준의 표정을 상상한 조규범은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이내 진서준은 허윤진의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이때 진서준은 김연아와 영화를 보고 있었다. 방 안의 분위기는 한껏 무르익었고 김연아는 진서준의 가슴팍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그녀의 부드러움이 그대로 느껴졌다.진서준은 계속 이러다가는 참지 못할 것 같았다.다행히도 이때 전화벨 소리가 울려서 이런 분위기를 깨부쉈다.진서준은 곧바로 전화를 들고 침대에서 내려와 휴게실에서 나갔다.김연아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진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내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섰는데도 아무런 반응도 없다고? 내가 떠먹여 줘야 해?”밖에서 진서준은 전화를 들고 물었다.“윤진 씨, 왜 그래요?”“진서준, 30분 안에 여류 카페에 도착하지 않으면 넌 영원히 허윤진을 보지 못할 거야!”다음 순간 엄청난 살기가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심지어 휴게실 안에 있던 김연아마저 느꼈다.“어떻게 된 일이지?”곧바로 휴게실에서 나온 김연아는 안색이 한없이 어두운 진서준을 보게 되었다.이렇게 무시무시한 진서준의 모습은 처음 본 것이었다.“조규범, 기다리고 있어. 너란 존재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주겠어.”진서준은 이를 악물고
진서준은 강성철과 도진수 두 사람에게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았고, 두 사람도 묻지는 않았다. 그들은 곧바로 모든 부하를 여루 카페로 보냈다.카페 안.강성철, 도진수 두 사람에게 전화한 뒤 진서준은 잠깐 고민하다가 이 일을 허사연에게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허윤진은 허사연의 친언니이기 때문에 알 권리가 있었다.“왜 그래요, 서준 씨? 왜 이 시간에 나한테 연락한 거예요? 나랑 데이트하려고요?”허사연이 웃으며 물었다.내일 진서준은 서울을 떠나게 된다. 그래서 허사연은 진서준이 자신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는 건 줄로 알았다.하지만 허사연은 진서준에게서 놀라운 소식을 들을 줄은 몰랐다.“아뇨. 윤진 씨가 조규범에게 잡혔어요.”진서준이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뭐라고요?”허사연은 잠깐 당황하더니 이내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었다. 옆에 있던 비서마저 허사연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허사연은 조규범의 신분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조규범은 조씨 집안 사람이고 신분이 귀한 데다가 허사연을 좋아했었다.하지만 허사연은 조규범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허윤진을 납치할 줄은 몰랐다.“정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우리 허씨 집안이 그렇게 만만해 보였던 걸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죠?”허사연이 화를 내며 말했다. 주먹을 너무 세게 쥔 탓에 손톱이 손바닥 안을 파고들었다.“사연 씨, 일단 진정해요. 제가 지금 윤진 씨를 구하러 가고 있으니까 윤진 씨는 분명 괜찮을 거예요.”진서준이 위로했다.저번에 허사연이 납치당했을 때도 진서준이 그녀를 구해줬었다. 그래서 진서준이 나서준다는 말에 허사연은 마음이 놓였다.하지만 허사연은 진서준이 혹시라도 위험해질까 봐 조금 걱정되었다.“진서준 씨, 꼭 조심해야 해요. 서준 씨가 다친다면 내 마음이 아플 거예요.”허사연이 걱정해 주자 진서준은 마음이 따뜻해졌다.“걱정하지 말아요. 조규범 그 자식은 내 안중에도 없으니까요.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어요.”“네, 믿어요.”전화를 끊은
이제 황씨 가문엔 황현호 같은 멍청이만 남았으니 황씨 가문을 손에 넣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았다.박씨 가문과 황씨 가문은 오래전부터 경쟁 관계였고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는 사이였다.그런데도 머리가 비어 있는 황현호는 자기가 박진강과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박진강은 황현호의 곁에 앉아 위로하기 시작했다.“너무 초조해하지 마. 너희 누나가 누군가에게 구조되었다고 했잖아? 그렇다면 그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야.”“그런데 왜 전화를 받지 않지? 밤새도록 전화를 걸었는데도 말이야.”황현호는 초조하게 말을 이어갔다.“황씨 가문의 모든 직원이 우리 누나를 찾으러 나갔지만 밤새도록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황현호가 아무리 생각해도 누나는 죽었거나 누군가에게 잡혀 감금당했을 가능성이 큰 것 같았다.어느 쪽이든 황현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지금 황씨 가문의 회사는 뱃사공이 없어 산으로 가는 중이었다. 황예은이 빨리 나타나지 않는다면 회사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 뻔했다.“너무 초조해하지 마. 산에 이르면 길이 있는 법이잖아.”박진강이 또 황현호를 달랬다.그때 황현호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황현호는 누나가 전화한 줄 알고 급히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하지만 발신자를 확인한 순간 황현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전화 건 사람은 회사 이사회 멤버 중 한 명인 동식 삼촌이었다.“동식 삼촌, 무슨 일이시죠?”“네 누나는 찾았어?”“아직 못 찾았습니다.”황현호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럼 일단 회사로 와.”전화 너머에서 동식 삼촌이 말했다.동식 삼촌은 황경영과 오랜 친구였고 회사 설립 초기부터 몸담아 온 원로급 인물이었다.일부 사람들은 황씨 가문에 유능한 사람이 없다면 황씨 가문의 회사는 동식 삼촌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지금 황씨 가문의 유능한 사람인 황예은이 갑자기 생사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남은 건 황현호라는 무능한 인물뿐이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사회 사람들은 슬슬 견디기 힘들어지고 있었다.“누
“진서준을 경호원으로 쓰겠다고요?”서지은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이번에 진서준이 명주시에 온 건 아주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이런 상황에서 진서준이 황예은의 경호원을 맡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였다.“언니 곁에는 항상 죽청 어르신 두 분이 계셨잖아요. 근데 오늘 밤엔 그분들이 왜 따라오지 않았어요?”서지은이 문득 황예은 곁을 지키던 육급 정점 대종사 두 명을 떠올리며 물었다.“그 두 분은 요즘 칠급 대종사 경지에 오르려고 폐관 수련 중이야.”황예은이 답했다.신농산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청 어르신은 황예은을 찾아와 폐관 수련에 들어가겠다고 알렸다.이 두 사람이 동시에 칠급 대종사로 올라선다면 황예은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은 자기 실력을 몇 번이나 재고 또 재야 할 것이다.그러나 뜻밖에도 누군가가 이 두 사람의 폐관 시기를 노리고 황예은을 공격한 것이다.황씨 가문에는 죽청 어르신 외에도 팔급 대종사 한 마스터가 있었다.하지만 한 마스터는 황경영을 따라 해외에 나가 있어 지금 명주시에 없었다.그 외의 대종사들은 실력이 평범했고 진서준처럼 압도적인 실력을 갖춘 사람은 없었다.게다가 진서준은 의술까지 겸비하고 있어 설령 독에 걸린다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내일 아침 일어나면 진서준한테 직접 물어봐요.”서지은은 진서준을 대신해 결정을 내릴 권리가 없었다.사실 서지은은 마음속으로 이 제안을 반대했다.겨우 진서준과 단둘이 있을 기회가 생겼는데 황예은 때문에 깨져버린 것도 모자라 이젠 경호원까지 맡으라고 한다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황예은은 명주시에서 외모와 몸매가 모두 최상급으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서지은은 언젠가 진서준이 황예은의 유혹에 넘어가 버릴까 봐 내심 걱정되었다.허사연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장이라도 서울시에서 급히 달려올 게 뻔했다.“일단 오늘 밤은 여기서 묵고 가세요.”서지은이 대화를 마무리했다.그날 밤, 황예은은 아주 달콤하게 잠들었지만 그녀의 동생 황현호는 급한 마음에 미칠 뻔했다.시장은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누구나 범인일 수 있었다.박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황씨 가문의 적도 수없이 많았다.“그럼 오늘 저녁은 누구랑 먹었어요?”서지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우리 동생이랑 먹었어.”서지은은 그 대답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동공이 흔들리며 무서운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명문대가에서는 혈육 사이에 관계가 틀어져서 원수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황씨 가문이 대한민국 최고 재벌 가문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황현호가 자기 누나를 질투해 이런 일을 벌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황예은은 서지은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우리 동생은 권력이나 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야. 동생이 그런 것에 환장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황씨 가문을 이끌 기회는 없었을 거야. 다만 내가 가장 우려하는 건 우리 동생이 멍청하게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거야. 내 부하들이 말하길, 요즘 들어 황현호가 박서명 아들과 친하게 지낸다고 하더라.”황예은과 황현호 남매는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황현호에게 있어서 황예은은 누나인 동시에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황경영이 황현호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황예은은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다.황현호가 황예은을 해치려고 한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단, 황현호가 누군가에게 이용당하지 않았다면 말이다.“현호 씨 바보 아니에요? 황씨 가문이랑 박씨 가문 사이가 어떤지 뻔히 알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죠?”서지은이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강남 서씨 가문 아가씨인 서지은조차도 황씨 가문과 박씨 가문 사이의 악연을 알고 있을 정도였으니 황씨 가문의 직계인 황현호는 더더욱 이를 모를 리 없었다.“지난번에 내가 현호를 신농산에서 데리고 온 후로 그 애는 무도에 심취해서 그 김평안이라는 남자를 직접 쓰러뜨리고 싶다고 했어. 그 뒤로 현호는 무도 수련에 미쳐버린 것처럼 보였어.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 같았지. 박서명 아들 중 한 명이 엄청난 수련법을 얻었다고 하더라고. 우리 그 멍청한 동생은 그
“황예은 씨가 몸에 흉터를 남기고 싶으면 다른 사람한테 맡기세요.”진서준이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황예은의 몸에는 몇 군데나 총상이 남아 있었고 그 흔적은 꽤나 눈에 띄었다.완벽주의자인 황예은에게 있어서 가장 참기 힘든 것은 몸에 흉터가 남는 것이었다.만약 흉터를 없애지 못한다면 황예은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잠에서 깨어날 게 분명했다.잠시 고민하던 황예은은 이를 악물고 결정을 내렸다.“좋아요, 이번에도 진서준 씨가 마음대로 해보세요.”어차피 이 남자는 이미 볼 것도 다 봤고 만질 것도 다 만진 남자였다.이런 사소한 것에 연연해 몸에 흉터가 남는다면 평생 후회할 게 뻔했다.진서준은 황예은의 말을 듣고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며 불만스럽게 말했다.“황예은 씨 몸에 있는 흉터를 없애주는 게 어떻게 내가 제멋대로 하는 겁니까? 제가 뭐 황예은 씨 몸을 좀 본다고 해서 황예은 씨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도 아니잖아요.”“하지만 진서준 씨는 본 것만이 아니라 만지기까지 했잖아요.”황예은이 억울하다는 듯 반박했다.“그건 다 황예은 씨를 살리려고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진서준은 진심으로 화나기 시작했다.“황예은 씨가 이런 사람인 줄 알았다면 그때 구하지 말 걸 그랬네요.”지금까지 진서준이 구해준 사람들은 전부 감사의 인사를 연발했는데 황예은처럼 은혜를 원망으로 갚는 사람은 처음이었다.황예은도 사실 진서준이 자기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황예은은 자기가 지금까지 지켜온 순결이 훼손된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됐어, 서준아. 너 어젯밤 내내 고생했으니까 이제 가서 좀 쉬어.”서지은이 진서준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예은 언니, 잠시만 기다려요. 먼저 서준을 방으로 데려다줄게요.”진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지은을 따라 방으로 갔다.방으로 돌아오자 서지은이 조용히 말했다.“서준아, 예은 언니한테 조금만 양보해 줘. 언니는 성격이 워낙 강해서 그래. 그래도 내가 보기엔 네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어.”서지은
황예은이 옷을 다 갈아입자 서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찾으러 갔다.“서준아, 예은 언니가 좀 화난 것 같으니까 이따가 해명할 때 되도록 조심해.”서지은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알았어.”진서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조심하라는 말을 다시 되새겼다.만약 상대가 너무 무례하게 굴면 진서준도 결코 양보하며 자세를 낮추지 않을 예정이었다.문제는 자기가 일부러 실수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진서준은 황예은이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들어간 게 아니었다.게다가 진서준은 황예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진서준 씨, 아까 지은한테서 들었는데, 진서준 씨가 저를 구했다고 하던데요.”황예은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들어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 눈빛과 태도는 마치 왕좌에 앉은 여왕처럼 고압적이었다.이는 오랫동안 높은 자리를 지키며 형성된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황경영이 대한민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황예은은 회사 업무의 일부를 맡아 처리하고 있었다.회사의 지도자, 그것도 여성이 지도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그러니 황예은의 성격도 강인하고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황예은이 이사장으로 올라간 후, 회사 내에서 황예은의 이름만 들어도 직원들이 벌벌 떨곤 했다.“맞아요. 제가 구했습니다.”진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황예은 맞은편에 앉았다.그런데 앉고 나서야 진서준은 후회했다.황예은이 입은 옷은 목선이 매우 낮았다.비록 황예은이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앉아 있었지만 풍만한 가슴이 살짝 드러나 있었고 그 모습이 진서준의 시야에 그대로 들어왔다.당혹한 모습을 감추려고 진서준은 뒤로 기대어 눈을 감았다.하지만 이 자세는 상대방에게 매우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었다.황예은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와 대화할 때 이런 태도로 임하는 것은 큰 실례였다.진서준이 소파에 기대 누운 모습을 보자 황예은의 마음속에서 잠잠했던 분노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진서준 씨는 다른 사람
별장에서 황예은은 이미 깨어난 상태였다.다만 지금 황예은의 몸에는 옷이 거의 없었다.정확히 말하면 상반신에는 레이스가 달린 검은 속옷 하나만 걸쳐져 있었다.이 속옷은 서지은이 가져온 속옷이었고 아직 한 번도 입지 않은 새것이었다.그리고 하반신에는 아까 진서준이 마사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었다.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두 여자는 동시에 문 쪽을 바라보았다.황예은은 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남자를 보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황예은의 차가운 눈빛만으로도 지금 심정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었다.황예은은 자기 알몸을 보고 있는 이 남자를 죽여버리고 싶었다.하지만 황예은은 사실 이번이 진서준에게 두 번째로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순간이란 걸 몰랐다.“서준아, 왜 노크하지 않고 그냥 들어왔어...”서지은이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서지은은 진서준이 약왕 이용진과 저녁 식사를 오래 하고 밤늦게나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진서준이 너무 일찍 돌아온 것이다.“언제까지 더 볼 생각이야?”황예은이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진서준은 정신을 차리고 코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돌린 뒤 말했다.“먼저 나가 있을게. 옷을 다 갈아입었으면 날 불러.”진서준이 나간 뒤, 황예은은 서지은을 바라보며 물었다.“저 사람 누구야?”“진서준이에요. 제 남자친구거든요.”서지은이 솔직하게 대답하며 한마디 보탰다.“예은 언니, 사실 언니 목숨도 진서준이 구한 거예요.”그 말을 듣자 황예은의 눈에서 뿜어나오던 냉기가 다소 누그러졌다.어쨌든 자기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데 너무 차가운 태도로 대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황예은은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내 옷은 네가 벗긴 거야?”서지은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서준이 언니를 치료할 때 상황이 너무 위급해서 먼저 언니를 여기 데려온 거예요. 나도 여기 들어와 치료 과정을 볼 때 서준이 언니를 추행하는 줄 알았어
지금까지도 진서준은 박씨 가문의 의도가 오리무중이었다.하지만 박씨 가문의 일은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지금 진서준의 우선순위는 약재를 구하고 모든 정력을 간첩을 잡는 데 쏟아부어야 했다.호텔을 떠난 진서준은 이용진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30여 분을 달린 끝에 진서준 일행은 마침내 이용진의 장원에 도착했다.이용진의 장원 면적은 서씨 가문 것만큼 크지 않았지만 화려함만큼은 서씨 가문을 능가할 기세였다.각종 명인의 고화와 진귀한 보물들이 온 사방에 진열되어 있었다.이 모든 보물은 하나하나가 최소 10억 이상의 진품이었고 적어도 진서준이 자세히 살펴본 결과 위조품은 하나도 없었다.이 보물들만 해도 자산 가치가 조 단위를 뛰어넘을 될 터였다.“용존님,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말만 하세요.”이용진이 호탕한 어조로 말했다.“난 이런 것들에는 관심 없습니다.”진서준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렇군요...”이용진은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돈을 통해 진서준과의 관계를 더 가까이 만들고자 했던 이용진의 계획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진서준과 친분이 두터워지면 나중에 치료를 부탁하기도 훨씬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진서준은 이용진의 속셈을 꿰뚫어 본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약왕님 체내 내상이 다 나으면 매주 두 번씩 무도를 연마하고 한 달에 다른 사람과 한 번 실력을 겨루는 수준으로 수련하면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약왕님 무도 실력도 늘어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겁니다.”“알겠습니다. 앞으로 꼭 용존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이용진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수많은 별장을 지나 진서준은 이용진을 따라 규모가 어마어마한 냉장실로 들어갔다.냉장실 안에는 사람 키 절반 정도 되는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각 기둥 위에는 희귀한 약재들이 놓여 있었고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었다.진서준이 자세히 둘러보니 여기에 진열된 약재는 성약당의 것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희귀성만큼은 성약당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 사람은 바로 어제 서울시에서 체포되었던 박운기였다.진서준 역시 이렇게 빨리 박운기를 다시 마주칠 줄은 몰랐다.“운기야, 저 사람 알아?”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박운기를 힐끔 바라보며 물었다.“바로 저놈이 사람들을 이끌고 내 계획을 망쳤습니다.”박운기가 이를 갈며 말했다.만약 진서준이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박운기의 계획은 이미 성공했을 것이다.그랬다면 박씨 가문으로 돌아갈 때는 차가운 시선 대신 온갖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을 터였다.이번에 서울시에서의 임무를 맡기 위해 박운기는 온갖 시련을 이겨내며 경쟁했다.모두가 보기에 이 임무는 그야말로 공을 세우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렇게 쉬운 임무를 박운기가 망쳐버렸다.망친 것도 모자라 박씨 가문은 관계를 동원해 박운기를 구출해야만 했다.공을 세워야 할 장사가 완전히 손해만 본 장사로 탈바꿈한 것이다.박씨 가문의 계획을 망친 장본인이 진서준이라는 사실을 알자 중년 남자는 진서준을 쓱 훑어보고는 냉랭하게 비웃었다.“전설 속의 용존님, 역시 이름값 제대로 하시는군요.”진서준은 그 남자를 힐끗 보고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걸어 들어갔다.진서준이 자기를 무시하자 중년 남자의 눈빛에 차가운 기운이 잠깐 스쳤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약왕님은 언제부터 용존님과 친구가 되셨습니까?”중년 남자는 이용진을 발견하자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박재명, 분명히 말해두지. 용존님 일은 바로 내 일이야. 감히 용존님에게 시비를 걸려고 한다면 내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용진이 싸늘하게 대응했다.박재명은 박씨 가문의 실질적인 권력자가 아니었다.그는 단지 박서명의 넷째 동생일 뿐이었다.그래서 이용진은 굳이 박재명을 깍듯하게 모시며 아부할 필요가 없었다.이용진의 말에 박재명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약왕님, 굳이 한 사람 때문에 우리 박씨 가문을 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겠습니까?”이용진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당연히 가능하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애초에 병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겠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용존님.”그러자 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아직은 섣불리 고마워하지 마세요. 제가 치료하는 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저 이용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기꺼이 돕겠습니다!”이용진이 자신 있게 가슴을 치며 말했다.“제가 약왕인 당신에게 부탁이 있다면 당연히 약재 때문이죠.”진서준은 차분하게 진서라의 체내 독소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약재를 설명했다.이용진은 그 얘기를 들은 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용존님, 솔직하게 말할게요. 용존님이 언급하신 약재 중 혈령지는 제 약재 창고에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 약재는 아쉽게도 제 창고에 없습니다.”“그것 하나만 있어도 충분합니다.”진서준은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적어도 하나는 확보했으니 오늘 헛걸음을 한 게 아니었다.“얼마면 되겠습니까? 시세대로 구매하겠습니다.”이용진은 그 말을 듣고 자기 얼굴을 가볍게 툭툭 쳤다.“용존님, 가격을 말하는 건 제게 따귀를 날리는 겁니다. 용존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 약재 창고에 나머지 세 가지 약재가 있었다면 전부 무료로 드렸을 겁니다.”이용진이 이렇게 호탕하게 나오자 진서준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생명을 구해준 대가로 혈령지 하나를 받는 건 결코 과한 요구가 아니었다.“용존님, 급하지 않으시다면 식사를 마친 후 제가 약재 창고로 가서 혈령지를 가져오겠습니다.”이용진의 제안에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죠.”“오늘 식사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곽 선생님, 어서 앉으시죠.”이용진은 웨이터를 불러 이곳의 대표 요리를 전부 주문했다.이 대표 요리들만 해도 가격이 2억을 넘겼다.일반인 한평생 월급을 한 끼 식사로 소비하는, 그야말로 호화로운 만찬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차려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