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유지수가 진짜 당황해했다.유지수가 진서준의 눈에서 강렬한 살의를 읽었기 때문이었다.진서준은 지금 진짜 유지수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진서준, 정신 차려! 내가 죽으면 구지범은 절대 네 아버지를 풀어주지 않을 거야!”유지수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체내의 강기가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그 느낌은 마치 누군가 일부러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구지범의 목적은 이미 알고 있어. 그놈은 단지 우리 아버지에게서 장청결을 얻으려는 것뿐이야.”진서준은 쌀쌀하게 말을 이었다.“널 풀어준 건 우리 아버지 흔적을 찾는 시간을 지연시키려는 술수에 불과했어. 유지수, 넌 내가 일부러 널 살려줬다고 착각했어?”진서준이 말하는 동안, 용전이 구경꾼들을 향해 소리쳤다.“다들 우리 신농을 위해 이 배신자를 잡아. 선뜻 나서는 자에게는 우리 신농이 큰 빚을 지는 거야.”그 말을 듣자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대한민국 최상급 종문 신농이 큰 빚을 진다면 이후 대한민국에서 거의 법을 무시하며 제멋대로 살아갈 수 있었다.“당신은 신농의 한낱 제자일 뿐인데 어떻게 감히 신농을 대표해 그런 약속을 할 수 있죠?”조슬기가 단칼에 반박했다.진서준에게 두 번이나 목숨을 구원받은 조슬기는 진서준이 다수에게 포위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용전의 얼굴이 시퍼렇게 굳어졌다.조슬기가 자기 계획을 방해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조슬기 씨 말이 맞아. 신농 제자 따위가 감히 신농을 대표할 자격이 있겠나?”“그냥 우린 지켜보자고. 무엇보다 저 용존 실력이 너무 강해.”“신농 제자들을 한 방에 처리했는데 우리가 어떻게 상대할 수 있겠어?”사람들은 다시 자리에 앉아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용전은 분통이 터졌다.용전은 이제라도 사실을 밝힐지 고민하고 있었다.진서준에게 선법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용전이 굳이 부추기지 않아도 이들이 알아서 덤벼들 것이다.하지만 그 순간이 오면 용전은 선법을 차지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승려는 진서준 앞에 다다르기도 전에 그 기운에 짓눌려 한 걸음 내딛는 것도 힘들어졌고 결국 진서준의 손바닥에 맞아 날아가듯 튕겨 나갔다.“감히 우리 승려를 공격해?”다른 소림 승려들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겹겹이 둘러쌌다.“진 시주님, 이만 물러나세요.”황금 가사를 두른 승려가 앞으로 나서며 설득했다.이 승려는 소림 열여덟 금강 중 한 명이었는데 천의방에 오를 정도로 실력이 강력한 인물이었다.“주 장로님, 어서 진서준 오빠를 구해주세요.”진서준이 승려들에게 포위당하자 조슬기가 초조한 마음으로 도움을 청했다.“저 녀석이 우릴 전부 속였잖아. 애초에 수상쩍었는데 왜 굳이 구해줘야 해?”“그러게 말이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여자를 학대하는데, 저런 놈을 왜 우리가 도와야 하지?”“슬기 후배, 너도 정신 좀 차려. 저런 미친놈은 여기서 죽는 게 좋은 일이야.”곤륜 제자들이 일제히 진서준을 도와줄 필요가 없다며 소림 승려가 죽이는 게 정당하다고 여겼다.“조슬기 아가씨, 저는 변경에서 저 녀석을 만났을 때부터 뭔가 수상쩍다고 생각했어요.”신수란이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여자를 이렇게까지 학대하는데 남자로서, 아니,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맞나요?”모두가 진서준을 비난했지만 아무도 진서준이 왜 이러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여러분,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요.”조슬기가 분노를 터뜨렸다.“진서준 오빠가 당신들에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적대하는 거죠?”“조슬기 아가씨, 그럼 저 녀석이 여자를 죽도록 패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진서준 오빠가 저러는 건 꼭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아무리 이유가 있다고 해도 이건 너무한 게 아닌가요?”신수란은 여전히 진서준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얼씨구, 소림이 작정하고 오늘 끝까지 남의 일에 간섭하려 한다는 거지?”진서준이 금강을 노려보며 물었다.“시주님, 살생을 멈추세요.”“살생을 멈추라고? 말은 참 쉽군.”
인력은 결국 한계가 있다.설령 지선이라 해도 신화 속 신선들처럼 산을 옮기고 바다를 뒤엎으며 별 불로 하늘을 태울 수는 없다.오직 한 부류의 사람이 이 정도로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데 그건 바로 선인이었다.먼 옛날부터 이 세상에는 선인이 출현했다는 많은 증거가 있었다.그 선인들은 사실 처음에는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단지 그들이 수선지법을 갖고 있었기에 평범한 사람과 달라진 것이다.용전의 말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그제야 왜 스무 살 남짓한 진서준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실력을 자랑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한 듯 보였다.이유는 사실 간단했다.진서준이 절세의 전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그 절세의 전승이 과연 무엇일지, 다들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바로 진서준이 수선지법을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었다.순식간에 사람들이 진서준을 바라보는 눈빛이 뜨겁게 달아올랐다.“여러분, 그거 아나요? 20여 년 전, 대한민국이 대재앙을 겪을 때 대한민국을 깜짝 놀라게 했던 그 진요한이라는 남자가 바로 이놈의 아버지입니다. 그동안 진요한은 우리 신농의 금지 구역에 가두어두고 수선지법을 얻어 모든 이와 나누기 위해 애썼습니다. 하지만...”용전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진요한은 고집이 세서 이 좋은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득이하게 진요한의 아들을 잡으러 온 거죠.”용전은 자기가 도덕적 고지에 올라선 듯한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지금까지 한 모든 일이 결국 선법을 얻어 모두와 나누기 위한 것인 듯 모두를 속이고 있었다.이 해명을 들은 사람들은 모든 죄를 진서준에게 돌리기 시작했다.“이 자식이 갑자기 무도계에 튀어나온 이유가 있었군. 수선지법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했던 거였어.”“그렇게 대단한 걸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와 나누지 않는다니, 진짜 이기적이네.”“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지.”천천히 지켜보려던 사람들도 전부 일어섰다.선법은 최고 수준의 전승이었다.진서준이 스무 살 남짓
그러자 소림의 사람들은 즉시 자리를 비켜주었다.“장로님, 우리도 얼른 올라갑시다. 조금만 늦으면 저놈 선법을 다른 사람이 빼앗을 겁니다.”도권우도 급한 마음에 문추원을 재촉했다.“급해할 거 없어. 이 녀석 실력이 약하지 않으니 저 미련한 놈들에게 당할 수 없어. 일단 인해 작전에 지치게 놔두자.”문추원도 바보는 아니었다.진서준처럼 선법을 가진 사람과는 절대 정면으로 맞붙으면 안 된다.이런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생포해야 목적을 이룰 수 있다.생포하는 것과 죽이는 건 차이가 엄청난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상대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이 있지 않는 이상 생포할 수는 없을 것이다.장백 쪽에서도 미적지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4대 종문의 제자들은 수련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던가? 바로 선인의 길을 추구하는 것, 영생을 얻기 위해서였다.이제 선법을 얻을 기회가 생겼으니 당연히 놓칠 수 없었다.하지만 그들은 문추원과 마찬가지로 무모하게 움직이지 않고 적절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멈추세요! 진서준 오빠를 공격하지 마세요!”조슬기가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 진서준 앞에 서며 말했다.“조슬기 씨, 이 일은 우리와 이놈의 개인적인 일이니 끼어들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황의 노인이 조슬기를 설득했다.“진서준 오빠는 제 목숨을 구해주신 분이에요. 이 일은 저와도 당연히 상관있는 일이에요.”조슬기의 태도는 단호했다.“게다가 이 선법은 진서준 오빠의 가보인데 왜 당신들한테 줘야 하죠? 진서준 오빠에게 사이좋게 나누자고 하기 전에 당신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는지나 한번 생각해 보세요.”황의 노인은 자기가 논리적으로 밀리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조슬기와 언쟁을 벌이려 하지 않았다.“조슬기 씨, 오늘 이 선법을 손에 넣을 사람은 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 백 명이 넘는 사람이 함께할 겁니다. 그런데도 조슬기 씨가 길을 비키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눈이 달리지 않은 주먹과 발이 조슬기 씨를 스칠 수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황의 노
백 명을 상대해도 진서준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진서준은 4대 종문 대회에 참가하려고 다짐했을 때부터 이런 날이 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왕관을 쓰고 싶은 자는 그 무게를 감당해야 했다.자기가 힘들게 얻은 전승을 지키려면 그에 걸맞은 실력이 필요하다는 걸 진서준은 이제야 깨달았다.그리고 왜 그 창욱 어르신이 은둔 생활을 하게 됐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두 분의 선의는 잘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 내려가 주세요.”진서준은 조슬기와 배수정에게 다정하게 말했다.“그럴 수는 없어요. 진서준 오빠는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조슬기의 얼굴에 깊은 우려가 떠올랐다.“괜찮아요. 이 사람들은 날 죽일 수 없습니다.”진서준은 여전히 담담하게 웃고 있었고 이 자리에 있는 무인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황의 노인은 그 말을 듣고 분노를 억제할 수 없었다.“조슬기 씨, 평온 스님,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으니 얼른 비키세요.”“맞아요, 비키세요. 칼에 눈이 없어 자칫 두 분을 다칠까 봐 두려워 그럽니다.”진서준도 다시 한번 정중하게 부탁했다.배수정은 진서준의 결단에 찬 눈빛을 보자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진서준이 일단 결정을 내리면 쉽게 바꾸지 않는 사람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진 시주님 말대로 우린 더 이상 이분을 방해하지 맙시다.”배수정은 조슬기를 끌고 링에서 내려왔다.“진서준 오빠, 꼭 무사하셔야 해요.”조슬기의 눈에서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둘이 막 링을 떠나자 황의 노인은 즉시 명령을 내렸다.“다들 함께 이 녀석을 잡아! 선법은 우리 다 함께 나눠 갖자!”노인은 팔을 높이 치켜들며 외쳤고 사람들은 즉시 뜨거운 반응을 보이며 진서준을 향해 달려갔다.진서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달려드는 무리를 보며 피하지도 않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탐욕이야말로 사람을 죽이는 가장 큰 원흉이야.”진서준은 참선검을 몸 앞에 잡고 체내의 영기를 다뤄 전부 참선검에 모였다.그러자 청색 검광이 번쩍이더니 진서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검
그때, 문추원과 나머지 두 장로가 천천히 일어섰다.“애송이야, 그 선법을 넘겨. 그럼 적어도 네 목숨은 살려줄 수 있어.”주자청이 입을 열었다.“이장로님, 진서준 오빠는 제 생명의 은인인데 어떻게 이렇게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 있죠?”조슬기가 굳어진 얼굴로 급히 따졌다.“이장로님이 이러는 건 우리 곤륜을 불의와 부정의 늪에 밀어 넣는 것과 같은 일이에요.”하지만 주자청은 미간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반박했다.“지금 이 자식을 무사하게 이곳을 떠나게 하는 거야말로 우리 곤륜을 불의와 부정의 늪에 밀어 넣는 거야.”“장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이제 이 자식은 도망칠 수 없을 거야.”주자청을 비롯한 장로가 나서자 은범 일행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 장로들은 실력이 막강했다.백운성은 십급 대종사로 한 걸음만 더 가면 지선급에 도달할 수 있었다.게다가 주자청과 문추원은 구급 대종사였다.이런 무시무시한 조합은 대한민국 경성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하물며 진서준 같은 애송이를 잡는 건 전혀 어려울 게 없었다.비록 선법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절대적인 실력 차이 앞에선 아무 소용도 없었다.노인 세 명은 협공의 자세로 진서준을 가운데 가두었다.그 모습을 본 진서준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그저 차분하게 장로들을 바라보았다.“이봐, 선법을 넘겨. 그럼 널 그냥 보내주마.”문추원의 말에 진서준은 침착하게 대응했다.“우리 아버지가 신농에 20년 동안 갇혔지만 절대 선법을 넘기지 않았어. 근데 내가 너희에게 넘길 것 같아?”“넘기지 않으면 크게 다칠 준비를 해야 할 거야. 현명한 판단을 내려.”백운성도 옆에서 경고했다.“고작 너희 셋이서?”진서준은 콧방귀를 끼며 비웃었다.“선법이 있다고 해서 천하무적이 된 거라고 착각하면 큰 오산이야.”주자청도 눈을 가늘게 뜨며 경고했다.“우리가 대한민국 최정상 종문으로 오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그건 나도 알아.”진서준은 평온하게 말을 이어갔다.“너희는 가짜 선법을 배우고 있지.
“흥, 장로 세 명이 함께 공격하면 지선이라도 전력을 다해야 막아낼 수 있는데, 고작 육급 대종사에 불과한 저놈이 어떻게 장로들의 상대가 될 수 있겠어?”도권우는 콧방귀를 뀌며 경멸이 가득 찬 눈빛으로 진서준을 노려봤다.아무리 봐도 진서준의 행동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진서준, 오늘 절대 널 살려두지 않을 거야!”양지천의 눈에는 원한과 원망이 가득했다.양지천은 진서준을 죽일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진서준 때문에 양지천은 가문에서 고개를 들고 떳떳하게 지낼 수 없게 되었기에 진서준을 죽여야만 그 원한을 풀 수 있을 것 같았다.“이봐, 네가 슬기를 구한 걸 감안해서 선법만 넘기면 목숨은 살려주마.”주자청은 뒷짐을 지고 이미 최후 승리를 거둔 사람처럼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먼지 속에서 진서준은 천천히 일어섰다.진서준의 옷은 찢어져 있었고 온몸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날 죽이기엔 너희들은 역부족이야.”진서준의 표정은 여전히 싸늘했다.“건방지긴 짝이 없구나!”문추원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우리 셋이 전력을 다해서 공격했다면 방금 넌 저세상에 갔을 거야. 오늘 네가 선법을 넘기지 않는다면 넘길 때까지 흠씬 두들겨 팰 거야.”말이 떨어지자 세 사람은 다시 움직였다.“여러분, 일단 제 말을 들어보시오.”불법이 가득한 목소리가 멀리서 가까이로 천천히 들려왔다.그 강력한 법력에 주자청 세 사람은 순간 몸이 굳었다.세 사람은 머리를 돌려 눈을 가늘게 뜨고 지현민을 바라봤다.이 영감이 벌써 지선급에 이르렀단 말인가?지선, 즉 가짜 금단은 삼천대도 중 하나를 깨달은 자를 말한다.지현민의 방금 목소리에는 깊숙한 불법이 담겨 있었는데 이건 지현민이 불가의 도 하나를 깨달았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지현민 주지님, 이 자식 편을 들려는 건 아니겠죠?”주자청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로 고발했다.“지금 시체가 널브러진 이 상황은 전부 이 자식이 한 짓입니다. 설마 지주님 불문이 이 악마를 보호하려는 건 아
“이래도 계속할 거야?”지현민이 여전히 평온한 말투로 물었다.“이 영감탱이가 뭐 이렇게 나대? 네가 저 녀석을 한번 구할 수 있다 해도 평생은 못 구할 거야.”“오늘 일은 기억해 두겠어. 두고 보자!”“가자!”백운성은 체내에서 끓어오르는 기혈을 억지로 누르며 불만을 가득 안고 링에서 내려와 떠났다.방금 그 한 방으로 백운성은 자기와 지현민의 차이를 확연히 알게 되었다.지선이 되지 못하면 아무리 수련해도 여전히 개미처럼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다.지현민을 이기려면 반드시 동등한 수준의 지선이 나서야 한다.“장로님, 이렇게 포기하는 겁니까?”양지천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그럼 너 혼자 여기 남아.”백운성이 양지천을 노려보며 불쾌하게 말했다.“아니요, 저도 갈 겁니다.”양자천은 바로 꼬리를 내리며 따라갔다.주자청도 콧방귀를 끼며 으름장을 놓았다.“영감탱이, 오늘 이 일은 우리 곤륜도 기억해 둘 거야. 우리 종주가 직접 찾아올 때 알아서 그분에게 제대로 해명해 봐.”말을 마치고 주자청은 바로 곤륜 제자들을 데리고 떠났다.“진서준 오빠, 제가 돌아가서 우리 아빠에게 잘 설명할게요.”조슬기도 서둘러 한마디 남기고 함께 떠났다.문추원은 아무 말 없이 제자들을 데리고 현장을 떠났다.순식간에 4대 종문 중 세 종문이 소림을 떠났고 오직 용전 일행만이 남았다.“용전 선배, 우리도 빨리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은범이 조심스럽게 여쭸다.“진서준, 다음에 또 만나면 넌 절대 도망가지 못할 거야.”용전은 협박을 남기고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다.임배는 진서준에게 꼭 조심하라는 눈빛을 슬쩍 주고 함께 떠났다.다른 무인들도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뿔뿔이 도망쳤다.“지현민 지주님, 정말 감사합니다.”진서준은 지현민을 향해 공손하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감사할 필요 없습니다. 진 시주님이 심은 작은 나무가 결국 열매를 맺은 것뿐입니다.”지현민이 평온하게 말했다.서북 지역 일만 아니었다면 오늘 지현민은 진서준을 구해주지 않았을 것이다.그
“이건 회춘단이잖아! 당신 아버지를 살릴 유일한 보물을 짓밟아 버렸어!”주 신의는 통탄하며 급히 천 조각을 꺼내 회춘단의 부스러기를 조심스럽게 긁어모았다.“뭐라고요? 이 쓰레기 같은 게 우리 아버지를 살리는 보물이라고요?”오주화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주 신의님, 농담하시는 거죠?”이 약이 정말 사람을 살리는 약이라면 오주화가 자기 아버지를 죽인 대역죄인이 될 것이다.“제가 이런 농담을 할 것 같아요? 회춘단은 내상 치료에 기적적인 효과가 있어요. 한 알에 억 단위로 거래되지만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보물입니다.”주 신의는 안타까운 듯 고개를 연신 저었다.“아깝군, 너무나도 아까워. 이 약은 누가 준 겁니까?”주 신의가 다급히 물었다.“제 친구가 줬습니다.”오영수가 답했다.“영수야, 이렇게 중요한 약이면 진작 말했어야지. 다 네 탓이야.”오주화는 즉시 책임을 떠넘기기 시작했다.“제 탓이라고요? 아까 제가 약을 먹여 보자고 하지 않았나요?”오영수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근데 넌 이게 회춘단이라고 말하진 않았잖아. 내가 이 약이 그렇게 중요한 약인 줄 어떻게 알았겠어?”오주화는 억울한 듯 고개를 저었다.“그만하시죠. 지금 회춘단을 만든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당신 아버지를 살릴 희망이 있습니다.”주 신의가 둘 사이의 언쟁을 막았다.“좋아요, 지금 당장 제 친구를 데려오겠습니다.”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오영수는 곧장 별채로 뛰어가 진서준을 찾았다.“왜 그렇게 서두르는 겁니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진서준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태연하게 물었다.“진서준 씨, 어서 저랑 가셔야 할아버지를 살려 주세요.”오영수가 다급하게 외쳤다.“네? 그건 무슨 뜻이죠? 아까 제가 회춘단을 줬잖아요? 설마 할아버지가 복용하지 않은 겁니까?”진서준이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네, 그게... 넷째 삼촌이 발로 짓밟아 버렸어요.”오영수가 고개를 저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한테 왜
오영수는 그 말에 순간 멈칫했다.“진서준 씨, 이게 정말 효과가 있는 겁니까?”“효과 없으면 제가 왜 굳이 주겠어요?”진서준은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좋아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셋째 삼촌이 안 보이던데 아마 밖에서 사업 얘기 중일 겁니다.”이번에 진서준이 온 이유는 삼촌 오주산을 찾아 용맥의 일족에 관해 알아보기 위해서였다.“괜찮아요, 일단 대장님 할아버지 상태를 살펴보세요.”“그럴게요.”오영수는 주먹을 쥐고 예를 표한 뒤 병실로 돌아갔다.그러나 병실로 들어서자마자 오영수는 얼굴이 굳어졌다.노인은 피를 토하고 있었고 두 눈은 핏발이 서서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어서 오영준에게 전화해. 좀 더 서둘러야 해. 어르신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오주화가 소리쳤다.누가 봐도 어르신은 오래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다.오영수는 바로 앞으로 나아가 진서준이 준 알약을 꺼냈다.“넷째 삼촌, 이건 진서준 씨가 주신 약입니다.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을 겁니다.”오영화는 그 약을 힐끗 보더니 이내 분노를 터뜨렸다.“이건 아무리 봐도 수상쩍은 약이야. 게다가 네 친구가 준 거라고? 넌 할아버지를 해칠 작정이야?”“지금 할아버지 상황이 너무 심상치 않아요. 제 친구 알약 말고 다른 방법이 더 있어요?”오영수가 설득하려 했지만 오주화는 단칼에 거절했다.“안 된다면 안 되는 거야. 당장 치워.”화를 참지 못한 오주화는 약을 손바닥으로 쳐서 바닥에 떨어뜨리더니 이어서 단숨에 발로 짓밟아 산산조각을 냈다.“뭐 하는 겁니까?”오영수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고 얼굴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이런 쓰레기 같은 약은 필요 없어. 오영수, 너 그냥 전신전에 돌아가. 그리고 부탁이니까 다시는 우리 오씨 가문에 발 들이지 마.”오주화가 일그러진 얼굴로 싸늘하게 꾸짖었다.“됐어, 넷째야. 영수도 아버지를 살리려고 한 거잖아. 너무 몰아세우지 마.”오주화가 선을 넘는 것 같자 오주풍이 중재에 나섰다.그때였다.“왔어요. 주 신의가 오셨어요!”아까 주
“어라? 영수가 왔네?”“이야, 이런 상황에서 널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오영수까지 돌아온 걸 보니 할아버지 병세가 정말 심각한가 보구나.”오영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나섰다.“큰아버지, 넷째 삼촌. 할아버지 상태가 어떠세요?”오영수가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응? 영수 왔어?”오주풍이 오영수를 힐끗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상황이 좋지 않아. 주 신의가 제때 도착하지 못하면 네 할아버지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실지도 몰라.”“뭐라고요? 어떻게 이럴 수 있죠? 저번에 왔을 때는 건강하셨잖아요.”오영수는 눈살을 찌푸렸다.“네가 마지막으로 온 게 반년 전이었지? 벌써 시간이 꽤 흘렀어. 네 할아버지가 네가 올 때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오주풍의 말투에 가시가 돋쳐 있었는데 자기 조카에 대한 불만이 있는 게 분명했다.오주풍뿐만 아니라 병실에 있는 다른 가족들도 오영수를 그리 반갑게 대하지 않는 눈치였다.이유는 단 하나, 바로 오영수의 직업 때문이었다.전신전 대장이라고 하면 대단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오씨 가문은 아홉 후손의 혈맥을 잇는 명문대가였다.정체를 숨기고 떠돌아다니는 전신전 같은 조직에 몸담은 것은 가족들에게 탐탁지 않은 일이었다.“큰아버지, 할아버지가 대체 왜 이렇게까지 된 겁니까?”오영수는 굳이 오주풍과 시비를 걸려고 하지 않았다.이런 태도는 어릴 때부터 익숙했기 때문이다.오영수가 진지하게 묻자 오주풍도 태도를 바꿔 자세하게 설명했다.“네 할아버지가 구급 대종사 경지를 돌파하려다 내상을 입으셨고 그 결과 지금 이 상태까지 번지게 된 거야.”“이 연세에 그렇게 무리하시면 어떡해요?”오영수는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바로 그 연세이기 때문에 더 필사적으로 매달리신 거야. 경지를 돌파해야 몇 년이라도 더 살 게 아니야.”오주화가 말을 이었다.“최근 들어 신씨 가문과 안씨 가문의 어르신이 연달아 경지를 돌파했으니 네 할아버지가 더 조급해진 거야.”“큰아버지, 넷째 삼촌, 이쪽은 제 친구
그 시각, 오씨 가문 저택 내에 백발이 성성한 한 노인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노인의 안색은 창백했고 몸은 야위었으며 숨결은 미약했는데 바람 앞의 등불처럼 언제 꺼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태였다.오씨 가문의 자손들은 모두 침대 곁에 둘러서서 근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어르신의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만이 자리에 없을 뿐, 나머지 가족은 전부 모여 있었다.오씨 가문의 어르신은 아들 넷을 두었고 손자병법을 무척 좋아한 그는 아들의 이름을 주풍, 주림, 주산, 주화로 지었다.이 네 형제는 각각의 분야에서 상당한 성취를 이루었으며 그 아래에는 열 명이 넘는 손자와 손녀가 있었다.그중 몇몇은 이미 결혼하여 자식을 두고 있었고 오씨 가문은 그야말로 대가족을 이루고 있었다.“전화 한 번 더 걸어. 주 신의를 얼른 모셔 와야 해. 아버지가 버티지 못하실 것 같아.”장남 오주풍은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아버지가 갑자기 학질에 걸릴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형, 너무 걱정 마. 방금 전화해 보니 주 신의가 이미 길을 나섰고 곧 도착할 가라고 했어.”막내 오주화가 형을 진정시키며 말했다.“게다가 아버지의 병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되었고 수많은 명의도 다 손을 들었잖아. 이번에도 무리하게 경지를 돌파하겠다고 수련을 강행하다가 몸이 상한 거잖아. 괜히 무리하지 않았더라면 이 정도로 앓아눕지도 않았을 거야.”“어휴, 연세가 이렇게 많으신데도 아직도 그렇게 애쓰시니 원...”오주풍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오주풍도 이 상황이 참 난감했다.팔십 고령에도 끝없이 수련을 이어가는 아버지를 두었으니 자식으로서 체면이 서질 않았다.“아버지도 경지를 돌파해서 몇 년이라도 더 살고 싶으셨던 거겠지. 요즘 대한민국 전역이 심상치 않잖아.”오주화도 아버지가 사뭇 안타까웠다.“안타까운 일이야. 백 년 전 용맥의 일족이 혼란에 빠지지만 않았어도 지금 같은 문제는 생기지 않았을 텐데...”오주풍이 고개를 저었다.두 형제가 대화를 나누
김혜민은 이렇게 쓰레기 같은 남자를 처음 보는 것 같았다.“그러니까 사회생활을 할 땐 항상 조심해야 해.”진서준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맞다, 진서준. 너 곧 강남을 떠난다고 했어?”김혜민이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응, 르벨에 볼 일이 좀 있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데려가면 안 돼? 집에 갇혀 있으니까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김혜민이 갑자기 진서준의 팔을 붙잡고 애원했다.“안 돼. 난 일 때문에 가는 거지 여행 가는 게 아니야. 놀고 싶으면 연아 상처가 회복한 후에 너희끼리 가.”진서준은 단칼에 거절했다.진서준이 르벨에 가는 이유는 용맥의 일족에 관해 알아보기 위해서였다.여행하러 가는 게 아니었고 설사 여행이라도 김혜민과 단둘이 갈 이유는 없었다.“너 너무 매정한 거 아니야?”김혜민이 입을 삐쭉이며 화난 모습을 보였다.“응, 난 원래 매정한 사람이야.”진서준이 태연하게 대꾸했다.“너, 너 꼬박꼬박 말대꾸하지 마.”김혜민은 주먹으로 솜을 때리는 듯한 허탈감을 느꼈다.진서준이 집에 도착하자 김연아가 아직 자지 않을 걸 발견했다.“어때? 일 잘 해결했어?”김연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응, 충돌이 일어나기 전에 서광문 삼촌이 나타나서 상황을 제대로 수습해 줬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연아야, 나 내일 오영수랑 함께 르벨에 좀 다녀와야 해.”“알고 있어. 며칠 전에도 말했잖아. 걱정 마, 난 이제 거의 다 나은 것 같아.”김연아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그래, 그럼 푹 쉬어.”진서준은 몸을 돌려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가지 마. 오늘 밤 여기서 자고 가.”김연아의 얼굴이 붉어졌고 촉촉한 눈망울이 반짝였다.그러자 진서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머뭇거렸다.“근데 네 상처가 아직...”“괜찮아. 살살 하면 돼.”김연아가 살짝 입술을 깨물며 조용히 속삭였다.김연아가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진서준이 굳이 거절할 리 없었다.“그럼 먼저 씻자.”진서준은 김연아를 안고 욕실로 향했다.곧 욕실에서 여자
귀로 듣는 건 믿을 수 없고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만이 진짜인 법이다.조상규는 진서준에 관한 소문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언제나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했다.스무 살 갓 넘긴 애송이가 육급 대종사급 실력을 갖췄다는 게 정말 가능하다고?대한민국 전역을 통틀어도 그런 무도 천재는 있을 수 없었다.심지어 은거한 4대 정통 종문조차도 그런 무시무시한 재능을 가진 제자는 없었다.그런데 지금 직접 확인하니 눈앞의 진서준은 정말 2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그러니 조상규는 더욱 진서준의 실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방 안의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졌다.곧 대대적으로 충돌이 일어날 듯한 순간, 누군가가 방에 들어왔다.“경범아,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방에 들어온 사람은 서지은의 아버지이자 이 호텔의 주인인 서광문이었다.오늘 저녁, 서광문은 호텔에서 사업 파트너와 미팅하던 중, 매니저가 호텔에서 소란이 일어났다고 보고해서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고 직접 나선 것이었다.“어라? 진서준? 너도 있었어?”서광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설마 소란을 피우는 게 진서준과 하경범이란 말인가?“광문 삼촌, 이 녀석을 아세요?”하경범은 서광문을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진서준은 우리 딸의 절친이야.”서광문이 고개를 끄덕였다.“너희 둘이 혈기 왕성해서 다소 충돌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내 체면 봐서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나?”서광문이 팽팽한 분위기를 풀어보려 하자 하경범은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광문 삼촌이 정 원하신다면 제가 삼촌 말씀 따를게요.”서씨 가문은 강남에서 서열 1위에 있는 가문이었다.굳이 여자 하나 때문에 이런 엄청난 가문을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었다.“진서준, 넌 어때?”서광문이 진서준을 바라봤다.“도지아의 부모를 풀어줘. 그럼 나도 더 이상 따지지 않을 거야.”진서준은 도지아를 가리켰다.지금도 도지아의 부모는 하경범의 손에 있었다.서광문의은 그 말에 살짝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경범아, 가족은 건드리는 게 아니야.
“계속해. 바지도 벗어.”도지아는 천천히 바지 벨트도 풀었다.슬림한 청바지가 내려가자 속바지도 있었지만 도지아의 긴 다리가 완전히 드러났다.“음... 저 흉터는 확실히 보기 안 좋네. 나중에 유명한 의사를 불러서 깨끗이 없애 줄게.”하경범은 음흉하게 웃으며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 도지아에게 걸어가 짐승처럼 도지아를 덮쳤다.바닥에 쓰러진 도지아는 눈을 꼭 감았고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바로 그때, 누군가가 문을 거칠게 걷어차 열어젖혔다.“누구야?”하경범이 벌떡 일어나 살기를 띤 얼굴로 문 쪽을 바라봤다.그리고 문 앞에 선 남자를 확인한 순간, 하경범은 냉랭한 미소를 지었다.“또 너야?”진서준을 본 하경범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진서준!”도지아는 절망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본 듯한 표정으로 진서준의 이름을 불렀다.진서준은 도지아가 아직 속옷을 입고 있는 걸 확인하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조금만 늦었어도 황예은에게 뭐라고 해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그날 레스토랑에서 내가 뭐라고 경고했는지 기억 안 나?”진서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이봐, 그날은 내가 경호원을 안 데리고 가서 네가 좀 날뛸 수 있었던 거야.”하경범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근데 오늘은 다르지. 오늘 이년을 즐기겠다고 결심한 이상, 준비가 없을 리가 있겠어?”“비겁한 놈, 부끄러운 줄 알아. 여자나 괴롭힐 줄 아는 쓰레기 같은 놈.”김혜민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날렸다.“어라? 네 옆에 있는 애도 괜찮은데? 진서준, 네 덕에 오늘 밤 두 명을 즐길 수 있게 됐네.”김혜민의 얼굴을 확인한 하경범의 눈이 번쩍였다.김혜민은 그 말에 구역질이 날 뻔했다.“진서준, 저 개자식 입을 찢어버려. 듣기만 해도 역겨워.”“입만 찢는 게 아니라 그냥 없애버릴 거야.”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날 없애겠다고? 일단 여기서 살아남고 허세를 부려.”하경범은 진서준을 비웃으며 손뼉을 쳤다.순간, 복도에서 방으로 달려
저녁을 먹던 진서준은 전화를 받고 눈썹이 꿈틀거렸다.“무슨 일이야?”“내 절친, 그 길쭉한 다리 자랑하는 애 있잖아. 하경범한테 속아서 호텔로 갔어. 당장 가서 구해줘. 난 지금 명주로 가는 중이라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어.”황예은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짜증이 섞여 있었다.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서둘러 나왔는데 하필 이 타이밍에 도지아가 사고를 친 것이다.“뭐? 어느 호텔인데?”“클라우드 호텔 308호 방이래. 근데 지금도 거기서 식사하는지는 모르겠어.”“알았어. 바로 갈게.”전화를 끊은 진서준은 맞은편에 앉아 있던 김연아를 바라봤다.“연아야, 난 사람 좀 구하러 가야 해. 이따가 피곤하면 먼저 자.”“알았어, 꼭 조심해.”김연아의 얼굴에 우려가 가득했다.진서준이 차고로 내려가자 막 차를 몰고 돌아온 김혜민과 마주쳤다.“진서준, 어디 가? 우리 언니 안 돌봐?”김혜민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사람 구하러 가.”진서준은 짧게 대꾸하고 곧장 차에 올라탔다.“사람 구하러 가? 나도 갈래.”진서준이 말릴 틈도 없이 김혜민은 재빠르게 조수석에 올라탔다.“안전벨트 매. 바로 출발할 거야.”시간이 없었던 진서준은 굳이 김혜민을 말리지 않고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그러자 차가 총알처럼 도로를 질주했다.한편, 308호 방.하경범은 느긋하게 와인잔을 흔들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하경범은 여자가 절망에 빠져 싫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몸을 바쳐야 하는 이 순간을 가장 좋아했다.여자의 존엄과 순결을 짓밟는 것만큼 짜릿한 게 없었다.“도지아, 결정했어? 네 순결을 지킬래? 아니면 네 가족 목숨을 지킬래?”차가운 목소리가 방 안을 울리자 도지아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다른 요구는 안 돼?”“안 돼. 나 같은 놈은 원래 여자를 밝히거든. 네 예쁘고 기다란 그 다리를 예전부터 내가 탐났던 거 알아?”하경범의 미소는 여전히 음흉했다.“물론 강요는 안 해. 네가 거절할 수도 있어. 근데 네가 날 거절하면 네 가족이 어떤 끔찍한 일을
신도시는 이미 새 아파트가 가득 지어진 지역이었다.또한 발전도 활발한 곳이라 갑자기 다시 철거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너 혹시 우리 가족을 납치했어?”도지아는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철거는 핑계였고 가족을 납치한 게 진짜 목적이었다.하씨 가문은 르벨의 실세인지라 그들이 도지아의 가족을 납치하는 건 손바닥 뒤집기만큼 쉬운 일이었다.“아니야,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내가 그런 미친 짓을 하겠어?”하경범은 태연하게 웃으며 천천히 주머니에서 장명쇄 하나를 꺼냈다.그것을 본 순간, 도지아는 온몸이 굳어버렸다.왜냐하면 도지아의 동생이 딱 저런 장명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이, 이 장명쇄는 어디서 난 거야?”도지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아, 내 부하가 며칠 전에 르벨에서 가져왔어. 철거하려는 집에 있던 청년한테서 얻었다고 하더라고.”하경범은 느긋하게 웃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그거 내가 확인해 봐도 돼?”도지아의 목소리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당연하지.”하경범은 장명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도지아 앞으로 밀었다.도지아는 서둘러 손을 뻗어 장명쇄를 집어 들었다.그 순간, 눈에 들어온 성씨를 확인하자 도지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이건 틀림없이 도지아 동생의 장명쇄였다.이제야 도지아는 순식간에 지금 이 상황을 깨달았다.하경범은 처음부터 사과 따윈 생각도 없었다.하경범은 이미 도지아의 가족을 납치했고 그걸 빌미로 도지아를 협박하려는 것이었다.“하경범. 너 인간이 맞아? 내 가족을 감히 납치해?”도지아는 분노로 치를 떨었다.“응?”하경범은 눈을 가늘게 뜨고 모르쇠를 놓았다.“지아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난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이건 내 동생의 장명쇄야. 네놈이 내 가족을 납치했잖아?”도지아는 이를 갈며 하경범에게 따졌다.“어라? 벌써 알아차렸어?”하경범은 더 이상 가면을 쓸 필요가 없다는 듯이 냉소를 지었다.“네 가족이 내 손에 있다는 걸 안다는 사람이 감히 그런 태도로 말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