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영 체내의 칠채지독이 완전히 제거되자 진서준은 여자 하인들에게 조민영을 욕실로 데려가라고 지시했다.“진 마스터님, 정말 감사합니다.”조태희는 다시 한번 깊이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조태희가 다시 몸을 치켜 세우자 진서준은 냉랭하게 물었다.“누가 독을 넣었는지 짐작 가는 사람이 있나요?”“변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의심됩니다. 근데 제 생각에는 변씨 가문의 가능성이 더 큽니다. 제 딸 민영이 이미 심씨 가문과 혼약을 맺은 상황에서 우리 조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손을 잡으면 변씨 가문은 아무런 대항도 하지 못할 게 뻔하니까요.”조태희가 가문 사이의 상황에 관해 자세히 설명했다.그 말을 들은 진서준의 몸에서 갑자기 강렬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심씨 가문과의 혼약은 조 가주님이 정한 건가요, 아니면 민영 씨 본인의 뜻인가요?”그 무시무시한 기세에 질린 조태희는 얼굴이 새파래지며 급히 대답했다.“진 마스터님, 이건 제 결정이긴 합니다만... 민영이도 동의했습니다.”“동의했다고요?”진서준은 동의라는 글자를 중얼거리며 피식 웃었다.“조 가주님이 제안했는데 민영 씨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나요?”가문 간의 혼사는 오직 양가 어른들 간의 합의만 있으면 결정되는 것이고 정작 그 당사자는 어떠한 거부권도 가질 수 없다.이전의 김연아도 이런 일을 경험했었다.김연아는 당시 가문 어르신과 저항하고 싶어 했지만 그녀의 힘으로 진씨 가문과 서씨 가문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지금 조태희가 조민영이 동의했다고 말하는 걸 보면 참 가소로운 일인 것 같았다.“민영 씨가 깨어나면 내가 직접 물어볼 겁니다. 민영 씨가 진심으로 이 혼인을 원했다면 나도 더 이상 이 일에 간섭하지 않을 거고요. 하지만 민영 씨가 이 혼인을 원치 않는다면 누구도 민영 씨를 강요할 수는 없을 겁니다.”진서준의 목소리는 싸늘했다.진서준의 마음속에서 조민영은 이미 자기 여동생 같은 존재였다.만약 누군가가 진서준의 여동생 진서라에게 강제 결혼을 강요한다면 진서준은 그
“으르르르...”하얀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자 조기강은 즉시 소리 나는 방향을 주목했다.그 울부짖는 소리는 조기강이 천산에서 마주했던 설괴의 소리와 똑같았기 때문이다.조기강은 곧바로 50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작은 하얀이를 발견하고 얼굴이 굳어졌다.비록 몸집은 작아졌지만 하얀이의 몸속에 깃든 그 무시무시한 힘은 여전했기 때문이다.“이 짐승이 여기에 어떻게 온 거지?”조기강은 상대하기 버거운 적을 마주한 듯 긴장했다.진서준은 조기강의 긴장한 모습을 보자 하얀이를 향해 손짓했다.그러자 하얀이의 얼굴에 맺혀 있던 분노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고분고분 진서준의 발치로 달려가 그의 종아리에 머리를 비비댔다.조기강은 본인을 거의 빈사 상태로 몰고 갔던 설괴가 이렇게 얌전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이게 과연 자기가 천산에서 만났던 그 사나운 설괴가 맞는가?어떻게 이렇게 순한 모습으로 변했지?“천산에서 검존님이 만났던 게 이 하얀이 맞죠?”진서준이 조기강에게 물었다.“맞아요... 근데 어쩌다 이런 모습으로 변했죠? 게다가 왜 이렇게 말을 잘 듣는 거죠?”조기강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묻자 진서준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이제 하얀이는 내 반려동물이 됐어요. 더 이상 천산의 야만적인 설괴가 아닙니다.”진서준이 설괴를 반려동물로 삼았다는 말에 조기강은 속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진서준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조기강은 본인과 진서준의 실력이 비슷하리라 여겼다.조기강은 현존하는 검존으로서 언제나 자부심이 넘쳐났었다.진서준이 비록 뛰어난 재능을 갖췄다고 해도 아직 스무 살 남짓이니 실전 경험에서는 조기강이 앞설 것이라 여겼다.그러나 지금 조기강의 모든 예상이 우르르 무너졌다.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한 조태희가 물었다.“기강아, 너 이 귀염둥이와 면목이 있어?”“형, 내가 천산에서 당한 상처가 바로 이 귀염둥이 때문이야...”조기강이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하자 조태희는 동공이 흔들렸다.조태희는 친동생 조기강의 실
허윤진과 허사연 자매를 바라보는 변지오의 눈빛에 놀라움이 스쳤다.이렇게 아름다운 자매는 변지오도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변지오는 스스로 이쁜 여자를 많이 봐왔다고 자부했지만 허사연 자매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매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더니 허윤진 씨는 정말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완벽하군요.”변지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환하게 웃으며 허윤진에게 걸어갔다.변지오의 우아한 매너와 세련된 기품은 한눈에 봐도 여성들을 충분히 매료시킬 만했다.거기에 변씨 가문 가주 장남이라는 신분까지 보탰으니 일반적인 여자는 변지오의 매력에 빠져들고도 남을 터였다.그러나 허윤진은 다른 여자와 달랐다.허윤진은 변지오에게 일말의 호감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살짝 반감이 섞인 눈빛으로 변지오를 바라보고 있었다.“감사합니다.”허윤진이 냉랭한 목소리로 대응하자 변지오는 멈칫하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이렇게 차가운 반응을 보인 여자도 변지오는 난생처음이었다.이때 허순재가 급히 나서서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변 도련님, 오해하지 마세요. 제 손녀는 원래 성격이 이렇습니다. 어떤 남자를 대해도 다 이렇게 냉랭하게 대하곤 하지요.”그러나 허순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윤진은 진서준의 팔짱을 껴버렸다.그 행동은 허순재의 체면을 구기는 것과 다름없었다.허윤진은 사실 허순재를 존중했지만 허순재가 그녀의 동의도 없이 변지오를 집으로 부른 것에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허순재가 허윤진을 가문 사이 결혼에 필요한 도구 취급하는 것 같아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허순재는 그 모습을 보며 눈빛에 살기가 번뜩였고 어색한 미소를 애써 유지했다.변지오 역시 허윤진의 돌발 행동에 화가 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작은할아버지, 저는 지금 연애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허윤진이 단호하게 변지오를 알 생각이 없다고 하자 허순재는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변 도련님이 오늘 여기 온 건 단지 너와 인사를 나누기 위해서야.”그러면서 허순재는 진서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허순재가 진서준과 말다툼을 벌이는 상황에서 허사연이 진서준을 편들지 않을 리 없었다.“작은할아버지, 제 남자 친구 문제는 이제 그만 신경 쓰세요. 그리고 윤진 남자친구 문제도요. 이런 건 작은할아버지와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에요.”허순재의 동공이 흔들리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이를 꽉 악물었다.불효녀들이 오늘 여기서 대역죄를 저지르는 판이었다.옆에 있던 변지오는 상황을 대충 이해하고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허 어르신, 보아하니 허씨 가문 젊은이들이 당신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것 같군요. 사실 오늘 밤 우리 범씨 가문 저택에서 여는 연회에 허씨 가문을 초대하려 했는데, 이제 보니 그럴 필요가 없겠네요.”변지오는 허순재가 만류하려는 것도 무시하고 곧장 허씨 가문 저택을 떠났다.허순재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허사연과 허윤진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외쳤다.“너희 둘, 정말 날 화병으로 죽이려는 거야?”진서준의 눈빛은 싸늘했다.“당신이 사연과 조금이라도 혈연이 있었기에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당신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겁니다.”이 말은 허순재에게 겁주려고 위협하는 말이 아니었다.진서준은 이미 조씨 가문에서 조민영이 가문 사이 결혼을 강요당한 일을 듣고 내심 불쾌한 상태였다.그런데 허순재가 이번에는 허씨 가문을 위해 허윤진을 변지오에게 넘기려 하다니, 이건 진서준의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진서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몹쓸 짓을 하려는 자는 죽어 마땅했다.그런데 뜻밖에도 허순재는 피식 웃으며 진서준을 비꼬았다.“나도 한때 너처럼 젊고 겁 없던 시절이 있었지. 하지만 곧 너희가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거야. 변씨 가문의 압도적인 실력은 너희처럼 세상 물정을 모르는 자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야.”허순재의 뻔뻔한 모습에 허사연은 역겨워 구역질이 났다.왜 지금까지 이 노인이 온순한 양의 가면을 쓴 늑대라는 걸 몰랐을까?“가자, 서준아. 여기 더 있을 필요 없어.”허사연은 더 이상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너희가 어디
허씨 가문을 떠날 때야 허윤진은 진서준과 함께 온 하얀이를 알아챘다.“진서준, 이 원숭이는 어디서 샀어?”허윤진은 하얀이를 원숭이로 착각하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하얀이는 그 말에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왜 다들 날 원숭이 취급하는 거지? 정말 원숭이처럼 생긴 건가?’진서준은 피식 웃으며 설명했다.“이건 원숭이가 아니라 천산의 괴물 설괴야.”“설괴라고?”허윤진은 생전 처음 듣는 단어에 눈을 반짝였다.“그래. 내가 천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만난 녀석이야. 쉽게 말하면 누렁이 친구라고 생각하면 돼.”진서준의 말에 허윤진은 금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누렁이한테 친구 만들어주려는 거야?”허윤진이 웃으며 물었다.“그런 셈이지. 게다가 하얀이는 누렁이보다 훨씬 강해. 집에서 누렁이랑 함께 있으면 어머니랑 서라 걱정을 덜어도 될 거야.”그때 허사연이 뜬금없이 물었다.“서준아, 그럼 변씨 가문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거야?”아까 허순재가 말했던 것처럼 변지오는 변씨 가문 가주의 장남이었다.게다가 변씨 가문은 동북 지역에서 손꼽히는 명문대가였으니 잘못 건드렸다가는 세 사람이 곤란해질 게 뻔했다.진서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오늘 저녁에 열리는 변씨 가문 연회에 같이 가자.”“응? 근데 우린 초대도 안 받았잖아?”허윤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설마 우리가 강제로 들어가겠다는 건 아니겠지?”“변씨 가문이 우리를 초대하진 않았지만 조씨 가문은 초대받았잖아.”진서준이 조씨 가문을 언급하자 허윤진은 질투 어린 눈길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아차, 깜빡했네. 네 귀여운 애인이 조씨 가문의 금지옥엽이었구나.”진서준은 그 말에 난감한 표정으로 웃었다.“무슨 소리야? 민영이는 내 마음속에서 그냥 여동생 같은 존재야.”조민영은 진서준의 마음속에서 아무런 연애 감정도 없는 단순한 가족 같은 존재였다.조민영은 진서라처럼 진서준이 보호해 주고 싶은 대상일 뿐이었다.“흥, 너희 남자들 속은 뻔히 보인다고.”허윤진은
“민영아, 이제 심씨 가문 도련님과 결혼하지 않아도 돼. 오늘 연회에 참석하는 것도 심씨 가문과 변씨 가문 앞에서 우리 조씨 가문 미래는 네가 짊어질 필요가 없다고 선언하기 위해서 가는 거야.”“네?”조민영은 그 말에 그대로 얼어붙었다.이전에 조민영이 심씨 가문 도련님과 결혼해야 할지 망설이던 그때, 조태희가 얼마나 입이 아프게 자기를 설득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 조민영이 병으로 쓰러지자마자 아버지가 이렇게 태도를 180도로 바꿀 줄은 몰랐다.조민영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의아한 눈빛으로 조태희를 바라봤다.“아빠, 저한테 장난치는 거 아니죠?”“당연히 아니지. 아빠가 이제 결혼 안 해도 된다고 했으면 정말 안 해도 되는 거야.”“그래도...”조민영은 그 말에 오히려 더 초조해졌다.조민영은 이 사회의 더러운 풍파 속에서도 순진무구함을 유지해 온 사람이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민영이 세상의 이치를 모르는 순진한 바보는 아니었다.조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혼인이란 특별한 관계로 손을 잡지 않으면 심씨 가문이 변씨 가문과 동맹을 맺을 게 뻔했다.그렇게 되면 조씨 가문은 동북 지역에서 떠나든가 아니면 완전히 사라지는 길만 남을 것이다.“민영아, 사실 아빠가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우리 조씨 가문에 귀인이 찾아왔기 때문이야.”조태희가 웃으며 설명했다.“귀인이라고요? 어떤 귀인이죠?”조민영은 여전히 의문투성이였다.“이건 내가 너한테 묻고 싶은 말인데?”조태희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너 대체 언제부터 진 마스터랑 친구가 된 거야?”이 질문을 들은 조민영은 어안이 벙벙했다.진 마스터라니, 조민영이 아는 사람 중에 진씨 성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아빠,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 진씨 성을 가진 사람은 모르는데요?”조민영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되물었다.“그럴 리가 있겠어? 네 병을 고쳐준 사람이 바로 진 마스터야.”조태희는 딸이 부끄러워서 그러는 줄 알고 웃으며 말했다.“민영아, 너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 남자친구를 사
조민영은 심씨 가문에 시집가기 전에 꼭 다시 한번 김평안과 만나고 싶었다.조민영은 김평안에게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고 이후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김평안에게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김평안에 대한 감정이 단순히 남녀 사이의 호감인지, 아니면 오빠에게 기대고 싶은 감정인지 심지어 조민영 자신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그저 김평안이 옆에 있으면 조민영은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만 확신할 수 있었다.진서준은 순수한 얼굴을 한 조민영을 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 사람은 지금 수련 중이에요. 어디서 수련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이번에 봉천시에 온 것도 김평안이 부탁해서 온 거예요.”자신의 소원이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만 조민영은 그 말을 듣고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실망감에 빠져 고개를 푹 숙인 조민영을 보며 진서준은 격려의 말을 건넸다.“괜찮아요, 나중에 또 만날 기회가 있을 거예요.”“아니에요... 더 이상 기회는 없을 거예요.”조민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조태희는 그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진서준이 멀리서까지 와서 조민영의 병을 치료해 준 건 전부 김평안 덕분이었다.조태희는 김평안에 대해 좋지 않았던 인상이 지금 완전히 사라졌다.“민영아, 걱정 마. 이 진 마스터님이 우리가 지금 겪는 모든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해 줄 거야.”조태희가 조민영을 안심시키며 말했다.“아니요, 저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이 저 때문에 피를 흘리게 하고 싶지 않아요.” 조민영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아빠, 저 한 사람으로 우리 조씨 가문 장래가 밝아지게 할 수 있다면 저는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조민영의 결연한 태도를 본 허사연과 허윤진은 즉시 그녀에 대한 편견을 버렸다.진서준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 아이는 진서라와 정말 닮아 있었다.진서준은 여전히 차분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있었고 조민영의 결정을 두고 다른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조민영을 데려가지 않은 이유는 딸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는 의도였다.“민영 씨,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진서준도 조태희를 거들었다.“아니요, 저도 같이 가요.”하지만 조민영의 태도는 단호했다.“그럴 건가요? 그럼 아빠랑 함께 가요.”진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겠습니다.”진서준의 말이 떨어지자 조태희는 더 이상 실랑이하지 않고 조민영을 데리고 심씨 가문 사람들 쪽으로 향했다.조태희 부녀가 떠난 후, 허사연이 말문을 열었다.“서준아, 정말 민영 씨를 심씨 가문에 시집보낼 생각이야?”“모든 건 조민영이 스스로 결정할 일이야. 조민영이 원하면 시집보내는 거지.” 진서준은 차분하게 대답했다.조민영이든, 진서라든, 다들 스스로 결혼을 원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진서준은 절대로 방해하지 않으려고 결심했다.결혼하든, 하지 않든, 모든 건 그녀들이 선택한 삶일 뿐, 다른 누군가가 대신 결정을 내릴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진서준의 생각이었다.“조민영은 심씨 가문에 시집가는 걸 원하지 않는 것 같아.”허윤진은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단지 자기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결혼을 선택하려는 거야.”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청년이 진서준 일행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응? 저 세 명은 어떻게 들어왔지?”멋진 옷차림을 한 변지오는 차가운 눈빛으로 진서준 일행을 바라보았다.“지오야, 저 사람들 네가 아는 사람이야?”변지오와 비슷한 나이대의 또 다른 청년이 물었다.“알지. 오후에 허씨 가문 집안 어르신이 내게 존예를 소개한다고 했잖아. 바로 저 여자야.”변지오는 허윤진을 가리키며 말했다.“대박, 저렇게 예쁜 자매는 처음 봐.”그 청년은 부러워 입을 쩝쩝 다시며 말했다.“나도 아쉽긴 해. 내가 네 여동생과 결혼하지 않으면 저 두 여자를 너랑 나랑 하나씩 나눠 가졌을 텐데.”그 말을 듣자 변지오는 웃음을 터뜨렸다.“도준아, 네가 내 동생과 결혼한 게 대수야? 어차피 결혼해도 넌 따먹을 여자 다 따먹잖아.”“좋아, 나중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전화로 물어보겠습니다.”전화하기 전에 진서준은 한마디 덧붙였다.“간호사를 불러 여동생에게 목욕을 시키고 병실도 바꾸는 게 좋을 겁니다.”“알겠습니다, 자, 다들 진서준 씨 말대로 움직여.”소하비는 자기가 데리고 온 여성 하인들에게 즉시 지시했다.예린을 돌보기 위해 소하비는 평소 예린의 시중을 드는 여성 하인을 전부 데려왔다.진서준은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를 살펴보았다.“지유 누나에게 전화해 보자. 지유 누나랑 성우 형 인맥이 꽤 넓으니까.”진서준은 즉시 한지유에게 전화를 걸었다.벨 소리가 두 번 울리더니 한지유가 전화를 받았다.“서준 동생, 오늘은 웬일로 내게 전화했어?”한지유가 웃으며 물었다.진서준과 한지유는 꽤 오랫동안 서로 연락이 없었다.“지유 누나,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전화를 드리게 되었어요.”진서준은 웃으며 바로 전화를 건 이유를 설명했다.“지유 누나, 이 동네에서 약재를 큰 규모로 다루는 곳을 아시나요? 백년 영지를 급하게 하나 구하고 싶어서 그래요.”“약재를 다루는 곳이라... 잠깐만 기다려.”한지유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답했다.“실제로 아는 곳이 있긴 해, 부지로에 있는 회춘당이라는 곳이야. 그 집은 최근에 새로 열었는데 주로 귀한 약재를 팔아.”“감사합니다, 지유 누나. 기회가 되면 성우 형이랑 누나에게 식사 대접할게요.”진서준은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뭘 그런 걸로 그래? 우리 사이에 그런 예의는 필요 없어.”몇 마디 인사를 나눈 후, 진서준은 전화를 끊었다.“확인했어요, 회춘당에 백년 영지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네요. 바로 가보겠습니다.”진서준이 소하비에게 말하자 소하비도 동참하겠다고 했다.“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다들 여기서 예린 공주를 잘 지켜. 절대 내가 없는 사이에 누구도 동생 몸에 손대게 해서는 안 돼.”소하비는 경호원들을 병원에 남겨두고 진서준과 함께 차를 타고 회춘당으로 향했다.같은 시각, 회춘당 가게 앞.서현욱은 이쁜 얼굴에 화
서양의 여성들은 남녀 관계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었고 왕실의 여성들은 더 개방적이었다.적지 않은 왕실의 여성이 여러 명의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하지만 샛터 왕실은 일반 왕실과 다르게 매우 보수적이었다.소하비 왕자조차도 아직 여자와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었다.여동생인 예린도 관계는 둘째치고 남자와 신체적인 접촉도 전혀 없었다.그런데 진서준은 예린의 옷을 벗기고 마사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진서준 씨, 다른 방법은 없나요?”소하비는 얼굴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샛터 왕실은 정조를 무엇보다 더 중시한다.진서준이 예린의 옷을 벗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샛터 왕실의 체면은 완전히 구겨질 것이다.“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내가 굳이 이런 방법을 쓸까요?”진서준은 그 말에 덤덤하게 되물었다.“근데 제 여동생은 여태껏 남자와 한 번도 접촉한 적이 없어요.”“그럼 소하비 왕자님이 선택하세요. 사람을 살릴 것인지, 아니면 여동생의 정조와 명예를 지킬 것인지.”진서준도 굳이 강요하지 않았다.어떻게 선택할지는 전적으로 소하비의 책임이었다.“소하비 왕자님, 공주님 병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습니다. 자칫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베컨이 옆에서 끼어들었다.“좀 더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소하비는 미간을 찌푸린 채 깊은 고민에 빠졌다.바로 그때, 침대에 누워 있던 예린이 갑자기 격렬하게 기침했다.예린의 창백했던 얼굴이 이제는 종이처럼 더욱 창백해졌다.“예린아!”소하비가 깜짝 놀라며 외쳤다.베컨이 다가가서 한 번 확인한 후,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공주님 병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소하비 왕자님,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진서준 씨, 오늘 일은 절대로 외부인에게 알려지면 안 됩니다.”“알겠습니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샛터 왕실의 체면이 걸린 일인 만큼 진서준도 신중하게 대해야 했다.소하비와 베컨이 나간 후, 진서준은 조심스럽게 예린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진서준이 예상치 못한 건 예린의 옷 아래 숨
경호원의 얼굴이 급변하더니 바로 체내의 선천강기를 모았다.강기가 손을 감싸자 총알조차 뚫지 못하는 강력한 보호막이 형성되었다.“자업자득이야.”옆에서 구경하던 소하비가 불쑥 한마디 내뱉었다.소하비가 데려온 경호원들은 전부 자국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강자였다.맨손으로 총알을 쥐어버리는 건 이 경호원들에게 숨 쉬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하지만 소하비가 그날 밤 천하 유람선을 떠나지 않고 진서준과 교회 기사와의 전투를 봤다면 이런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쿵!둔탁한 소리와 함께 소하비는 눈앞의 광경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경호원은 진서준의 주먹의 기세를 버텨내지 못하고 그대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고 KTX에 치인 듯 시뻘건 피가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병원 바닥에도 경호원의 붉은 피가 흥건했다.“이래도 또 덤빌 거야?”진서준은 몸을 돌려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소하비가 데려온 경호원 네 명 중에는 육급 정점 대종사와 칠급 정점 대종사도 있었다.이 네 명이 힘을 합쳐서 달려든다면 진서준도 확실히 수습하기 어려울 상황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하지만 경호원 쪽에서 이미 먼저 공격한 마당에 진서준이 반격하지 않으면 이 경호원들은 진서준을 곤경에 몰아넣기 위해 더욱 기를 쓰고 달려들 것이다.진서준이 반격하자 나머지 세 경호원도 즉시 참전하려 했다.“그만둬.”하지만 의외로 소하비는 바로 경호원들을 제지했다.소하비는 자기가 데려온 경호원들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진서준이 자기 경호원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면 그만큼 진서준의 실력이 대단한 것이다.소하비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진서준에게 다가가 말했다.“진서준 씨, 당신 외엔 이제 제 여동생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발 여동생의 생명을 살려주세요. 이전의 무례함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소하비 왕자님은 우리 샛터의 얼굴입니다. 어떻게 한낱 평민에게 사과할 수 있습니까?”“맞아요, 왕자님. 그렇게 사과하면 우리나라 체면이 구겨집니다.”“절대로 이 녀석과 타
이 장면에 소하비는 순간 말문이 막혔고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베컨 닥터는 따귀를 맞고도 반격은커녕, 따귀를 날린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하다니, 혹시 따귀를 맞고 머리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가?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대한민국 청년의 의술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베컨만이 알았다.방금 진서준이 따귀를 날린 후, 베컨은 갑자기 자기 머리가 맑아지고 심지어 흐릿하던 시력도 훨씬 좋아진 걸 느꼈다.세계가 공인하는 불치병이 이렇게 간단하게 치료되다니, 너무나도 무섭고 놀라운 일이었다.“내 의술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잖아.”진서준이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방금은 제가 눈이 멀어서 선생님의 뛰어난 의술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어요. 제 무례함을 용서해 주세요.”베컨은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베컨은 수십 년 동안 난치병을 연구해 왔고 본인의 병을 치료하는 데 십 년이나 넘는 시간을 투자했으나 결과를 얻지 못했다.하지만 지금 진서준의 따귀 한 대로 베컨의 병을 치료한 것만 봐도 진서준의 의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베컨 닥터, 지금 뭐 하는 겁니까?”소하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베컨을 바라보았다.“소하비 왕자님, 이분이야말로 진정한 신의입니다.”베컨은 고개를 들고 흥분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제 병은 이 신의 따귀 한 대로 완벽하게 치료되었습니다.”소하비는 그 말을 듣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고작 따귀 한 대로 불치병을 치료했다니, 영화 시나리오도 아닌 일이 현실 세계에서 일어났다고?하지만 소하비는 베컨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베컨은 자기 고집이 센 노인이었다.진서준이 뭔가 특별한 능력이 없다면 절대로 베컨의 인정을 받으며 사과까지 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어쩌면 자기 여동생 예린이 정말 구원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진 씨, 정말 베컨 닥터 불치병을 치료한 겁니까?”소하비의 질문에 진서준은 아니꼽게 대답했다.“저 사람이 더 잘 알겠죠.”“소하비 왕자님, 저는 제 조상님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
“이 청년은 내 손자보다 더 어려 보이는데 의술이 고명할 수가 없잖아요.”베컨도 물러나지 않고 진지하게 말했다.두 사람은 영어로 대화하고 있었고 진서준은 조금 알아들을 수 있었다.진서준은 베컨을 흘깃 바라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대한민국에는 개처럼 천한 놈이 딴 사람을 깔본다는 속담이 있어.”“지금 누구를 개처럼 천한 놈이라고 욕하는 거야?”베컨은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샛터 왕실의 구성원이라도 베컨에게 이렇게 함부로 막말하는 사람은 없었다.그런데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젊은 대한민국 청년이 자기를 개라고 비하하고 있었다.“너 말고 다른 사람이 더 있어? 나이가 많다고 의술이 뛰어난 건 아니고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내가 너보다 못하다는 법은 없어.”진서준이 차갑게 말하자 베컨은 화가 나서 헛웃음이 나왔다.“웃기고 자빠졌네. 의학에 몸을 담근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너 같은 방자한 청년은 처음 봐.”진서준은 베컨을 자세히 훑어보더니 갑자기 화제의 방향을 바꿨다.“넌 오랫동안 눈이 흐릿하고 가끔씩 사고가 몇 초 동안 멈추는 것 같구나.”베컨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지만 곧 기운을 차리고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너 지금 뭐라고 헛소리하는 거야?”“서양 의학에서는 이걸 두뇌 경화라고 하지.”진서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일종의 불치병이야.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해.”이 청년은 도대체 어떻게 이걸 알아챈 거지?베컨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을 받아 할 말을 잃었다.진서준의 말대로 베컨은 확실히 두뇌 경화를 앓고 있었다.이 병은 현재 서양 의학으로는 완치할 방법이 없었고 단지 발병 빈율과 시간을 늦추는 것만 가능했다.하지만 이 병은 베컨만의 비밀이었고 본인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그런데 지금 자기 앞에 있는 대한민국 청년이 이를 정확히 지적하다니,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소하비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진 씨, 그 말이 사실인가요?”“사실인지 아닌지는 이 사
샛터 왕실의 로고가 새겨진 비행기가 공항에 서서히 착륙했다.막 착륙한 또 다른 비행기에서 몇몇 승객들이 그 비행기를 보고 수군거렸다.“저 비행기 로고는 처음 보는데?”“이렇게 오랫동안 비행기를 탔지만 나도 처음 봐. 혹시 부자의 개인 비행기일까요?”“그건 개인 비행기가 아니라 샛터 왕실 전용 비행기야!”조금 안목이 있는 중년 남자가 믿기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즉시 떠들썩한 반응이 일었다.샛터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였다.왕실 구성원의 재산은 포브스 부자 순위에 오른 상위 3명보다도 더 많은 자산을 자랑했다.이토록 부유하고 신분이 높은 사람이 왜 갑자기 작은 도시 서울시에 전용기를 타고 왔을까?잠시 후, 왕실 전용기의 문이 열렸고 건장한 남자 네 명이 먼저 내려왔다.주변에 위험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소하비와 그 일행이 내려왔다.“소하비 왕자, 지금이라도 돌아갈 기회가 있습니다.”베컨이 여전히 진지하게 고집을 부렸다.“그만하세요. 난 마음을 굳혔으니까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마세요.”소하비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이 노인은 자기가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자꾸 소하비의 계획을 방해하고 있었다.도대체 이 노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베컨은 소하비의 태도가 단호한 걸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공항을 나온 소하비 일행은 차를 타고 시립 병원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소하비는 진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진 씨, 저는 소하비입니다. 황예은 씨가 이미 상황을 설명했을 거라고 믿습니다.”소하비는 직설적으로 말했다.“제 여동생을 살릴 수 있다면 칠색정화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비용도 받지 않겠습니다.”칠색정화의 가격은 서울시 경제를 일으킬 정도로 엄청났지만 소하비에게는 여동생의 생명이 더 중요했다.“병원에서 기다리세요.”진서준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저희는 병원으로 가는 중입니다. 되도록 빨리 오세요.”전화를 끊고 소하비는 자기
“응? 그 왕자가 날 만나서 뭘 하려고?”진서준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유람선에서 소하비는 진서준이 필요한 약재를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사 갔다.“소하비 여동생이 위독하대.”황예은이 차분하게 말하자 진서준은 흠칫 떨었다.“뭐라고? 그 왕자가 칠색정화를 사서 동생을 살리려던 거 아니었어? 혹시 칠색정화가 효과가 없었던 거야?”“구체적인 상황은 소하비가 얘기하지 않았어. 그저 네 도움이 필요하다고만 했어.”“물론 도울 수 있어. 근데 나도 조건이 있어. 그 칠색정화을 내가 받아야겠어.”진서준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아무 조건 없이 소하비를 돕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소하비의 여동생을 구하는 대가로 진서준이 꼭 필요한 칠색정화를 손에 넣어야 했다.“난 이미 그 요구를 말했어. 소하비도 동의했어. 오늘 밤에 서울에 도착할 거야.”황예은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칠색정화가 진서준에게 중요한 약재라는 걸 잘 아는 황예은은 진서준이 요구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소하비에게 이렇게 제안할 것이다.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겪고 난 황예은은 이제 진서준과 같은 편이었다.“좋아, 그럼 오늘 밤 그 왕자가 오기만을 기다리면 되겠네.”진서준은 순간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칠색정화를 되찾을 기회가 이렇게 생길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진서라를 치료하는 목표가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오빠,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기뻐해?”진서라가 궁금해하며 묻자 진서준은 웃으며 설명했다.“네 독을 치료할 약재를 하나 더 찾았어.”“오빠, 그렇게 고생할 필요 없잖아.”진서라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감옥에서 나온 이후 여태껏 가족을 위해 힘쓰고 있는 진서준을 보니 진서라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너랑 엄마만 무사하면 난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아.”진서준은 확고한 눈빛을 보이며 대답했다.가족이 함께 오손도손 지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었다.얼핏 보기에 단순하고 아름다운 바람이지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이제 4대 종문 회전에 참가해
진서준은 이미 1년 동안 유지수를 만나지 못했다.현재 유지수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진서준도 확신할 수 없었다.왕권 부귀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승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 실력이 약할 리 없었다.하지만 유지수와 직접 겨뤄보기 전까지 진서준은 유지수를 무조건 죽인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하지만 허사연을 안심시키고 쓸데없는 걱정하지 않도록 진서준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 마, 유지수가 왕권 전승을 얻었다고 해도 나보다는 못해.”진서준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허사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다행이야...”그러나 허사연은 다시 뭔가 생각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유지수 스승은 실력이 분명 강력할 거야. 네가 유지수 스승과 유지수 본인을 동시에 상대해야 할까 봐 걱정돼.”진서준은 이미 유지수의 스승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지선 급의 절세 강자인 구지범이 바로 유지수의 스승이었다.천용 반지 내의 힘은 진서준이 명주시 바다에서 소모해 버렸고 현재까지도 회복되지 않았다.이 상태에서 정말 구지범을 만나게 된다면 진서준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승산이 없으면 도망가면 돼. 걱정 마.”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허사연의 예쁜 얼굴을 쓰다듬었다.“넌 지금 건강을 빨리 되찾는 게 가장 중요해. 나머지 일은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걱정하지 마.”“서준아, 난 너무 쓸모없는 것 같아. 네게 폐만 끼치고 한 번도 도움을 주지 못한 것 같아.”허사연이 진심으로 자책했다.“아니야, 네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최고의 선물이야.”진서준은 허사연을 꼭 껴안았다.“이제 그만 좀 해. 나 아직 여기 있어.”허윤진은 입술을 삐쭉 내밀며 두 사람이 자기를 무시하고 대놓고 꽁냥꽁냥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다.허사연은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실 허사연도 허윤진이 방에 있다는 걸 까먹었다.“그만 놔줘...”허사연은 얼굴이 붉어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진서준은 허사연이 쑥스러움이 많다는 걸 알기에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그
“진서준, 빨리 도망쳐... 도망쳐...”악몽을 꾸는 듯한 허사연은 점점 더 흥분한 상태로 말을 이었다.그 모습을 본 진서준은 양손으로 허사연의 손을 꽉 잡았다.“미안해, 사연아. 내가 널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어. 네가 나랑 함께한 이후로 난 너에게 부귀영화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이렇게 끔찍한 경험이나 겪게 했어. 진심으로 미안해, 널 볼 면목이 없어.”진서준의 눈에는 자책이 가득했다.허사연은 익숙한 안전감을 느낀 듯, 잔뜩 찌푸렸던 미간은 서서히 펴지고 불온정한 상태는 점점 안정되었다.진서준의 양손에 허사연의 손가락이 전부 들어갔는데 지금 이 열 손가락은 모두 부러져 있었다.“유씨 가문, 너희는 피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할 거야.”진서준의 눈에서는 냉혹한 기운이 감돌았다.진서준은 속으로 유씨 가문이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굳게 맹세했다.며칠이 지나는 동안 진서준은 집에서 허사연을 세심하게 돌봤고 때로는 밤을 새워가며 허사연의 곁을 지켰다.단지 허사연이 다시 악몽을 꾸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어느 날 아침.그동안 의식이 없던 허사연이 드디어 잠에서 깨어났다.의식을 되찾은 허사연은 먼저 주위를 둘러보았다.텅 빈 낯선 방이 허사연의 시야에 들어왔다.“내가 살아있었다고? 서준이 구해준 거야?”허사연은 양손을 침대에 대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갑자기 자기 손이 말을 듣지 않는 걸 느꼈다.아무리 애써도 허사연은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내 손...”허사연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슬픔이 솟구쳤다.본래 진서준의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던 허사연은 지금 오히려 진서준의 짐이 되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셈이었다.“사연아, 깼어?”진서준은 의식을 회복한 허사연을 보자 기쁨에 차서 다가갔다.진서준을 본 허사연은 목이 메어 눈물이 흘러나왔다.“서준아. 난 다시는 널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그날 밤, 유지수가 허사연에게 가한 고문은 그녀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한낱 평범한 여자가 이토록 잔인하게 변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