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지키는 호국장군을 문지기로 부려 먹는 사람은 아무래도 진서준이 유일할 것이다.진서준도 겸손하게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감사합니다, 진군님.”곧이어 진서준은 본인의 방으로 돌아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진서준의 손바닥 위에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단약 한 알이 자리하고 있었다.단약을 응시하는 진서준의 눈에 유유한 감정이 서렸다.이 단약은 진서준이 성약당의 영약으로 직접 만든 것이다.진서준은 보해로 떠나기 전에 전투를 통해 경지를 한 단계 올리려 했으나, 최근 잦은 싸움 덕에 그의 실력이 급속도로 상승했다.오늘 유씨 가문의 4대 금강과 맞서 싸운 일은 진서준의 실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주었다.지금이 바로 경지를 돌파하기에 최적의 순간이었다.단약을 삼키자 진서준의 단전 안에서 거대한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진서준은 즉시 장청결을 다루어 영기를 자신의 온몸으로 끌어들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진서준의 이마에는 콩알만 한 땀방울이 맺혔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온몸을 휘감았다.진서준은 이러한 대경지의 돌파는 신체와 정신 모두에 큰 시련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이 고통을 버텨내지 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피가 몸속에서 솟구치고 영기가 요동치고 있었고 푸른빛과 붉은빛이 진서준의 몸을 둘러싸며 빛나기 시작했다.방 밖에서 이 강력한 기운을 느낀 신용수는 미소를 지었다.“대한민국에 천재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구나. 아쉽게도 이토록 번창한 시대를 옛 부주님께서는 보지 못했지...”...유씨 가문.딸이 두 팔이 없는 폐인 상태로 돌아온 모습을 본 유경풍은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무슨 일이야? 연비가 어떻게 이 지경이 된 거야?”유경풍은 순간 놀라움과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진서준이라는 자가 이 지경으로 만들었습니다.”금강 중 한 명이 대답했다.“뭐? 진서준이라고? 내가 죽이라고 한 사람은 진서준이 아니라 김평안이었어. 그런데 왜 갑자기 진서준이 튀어나온
오랜 침묵 끝에 신용수는 한마디를 내뱉었다.“김평안은 지금 경지를 돌파 중이니, 돌파가 끝난 후 다시 여기로 와.”과연 유경풍의 예상대로 진서준이 경지 돌파 중이었다.유경풍은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병든 김에 목숨까지 빼앗겠다는 각오로 진서준을 습격하려 했으나 문제는 바로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신용수였다.신용수를 무시하고 강제로 문을 박차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진군님, 저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딸이 처참하게 당한 모습을 보셨다면 진군님도 제 마음을 이해하실 겁니다. 제 자식들은 많지만 제게 효도하고 말 잘 듣는 건 연비뿐입니다. 연비의 아버지로서 딸의 원수를 갚아주지 못한다면 제가 무슨 면목으로 연비를 보겠습니까?”유경풍의 말에는 억울함과 당당함이 함께 담겨 있었다.신용수는 유경풍의 말을 듣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 미소가 정작 유경풍의 눈에 들어오자 가슴이 떨리는 걸 억제할 수 없었다.유경풍은 이 사람이 호국장군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경성의 4대 가문조차 감히 이런 말투로 호국장군에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하물며 서북의 왕이라는 서경풍이 이런 태도로 호국장군을 대하다니, 사실 이건 너무 무모한 짓이었다.“나는 호국장군으로서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 조금 전에 나는 김평안의 수련을 돕기 위해 문지기를 서겠다고 약속했으니 김평안이 폐관 수련을 마칠 때까지 너희는 절대 들어갈 수 없어. 기다릴 수 없다면 뒤에 있는 네 명을 명령해 날 공격하라고 해. 다만, 그럴 경우 너희 유씨 가문이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어.”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신용수의 몸에서 거대한 기운이 서서히 뿜어져 나왔다.쿵!복도에 놓인 유리병이 그 거대한 기운의 충격을 받고 순식간에 산산조각 났다.그 유리 조각은 흩어지기도 전에 곧바로 가루로 부서져 사라졌다.유경풍의 옷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고 그의 뒤에 있던 4대 금강도 위협을 느끼며 불안해져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4대
서울시 금영사에서 헤어진 후, 진서준은 배수정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굳게 믿었다.하지만 반달 만에 두 사람은 이렇게 공교롭게 다시 마주치게 되었다.배수정도 진서준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진서준을 보자마자 배수정의 평온하던 얼굴에 순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그러나 그 놀라움도 한순간일 뿐, 이내 얼굴에서 사라졌다.배수정은 옆에 있던 붉은 가사 입은 스님에게 말을 건넨 뒤, 진서준을 향해 걸어왔다.“이렇게 빨리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배수정은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예전과는 달리, 진서준을 바라보는 배수정의 눈빛은 더욱 맑아졌고 눈 속에 깊이 배어 있던 감정의 흔적은 사라지고 대신 더 차분한 기운이 묻어났다.그 모습을 본 진서준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정을 느꼈다.“그러게요.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은 몰랐네요.”진서준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런데... 소림에 가 있는 거 아니었나요?”“오늘 스승님을 따라 나온 거예요.”배수정은 아까 그 스님을 가리키며 대답했다.그때 스님은 현지의 돈 많고 명망 높은 인물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다들 스님에게 아부하는 듯한 공손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진서준은 심지어 그 스님에게서 은은히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배수정 씨 스승님이 보통 분이 아니네요...”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스승님은 사원의 부사주예요. 대한민국 무도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 서북으로 오신 거예요.”배수정은 차분히 설명했다.사람들은 흔히 평화롭고 번화한 시대에서 도를 볼 수 없고 난세에서 부처를 볼 수 없다고 하지만 대한민국 중부의 소림은 정반대였다.25년 전 대한민국 무도가 대재난을 겪었을 때, 열여덟 나한이 절반이나 쓰러졌다.지금 부주지께서 대한민국 무도를 위해 직접 나섰다는 사실만 봐도 소림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진서준은 배수정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배수정 씨는 이제 무인이 되었나요?”“아니요.”배수정은 살짝
하지만 그녀의 뺨에 살짝 붉은 기운이 스쳐 지나가는 건 숨길 수 없었다.“죄송합니다, 아가씨. 제가 너무 급히 지나가서 실수했네요... 남자친구분께도 죄송합니다, 폐를 끼쳤네요...”배수정을 부딪친 웨이터가 진서준과 배수정에게 연신 사과했다.“괜찮아요, 다음엔 조심하세요.”배수정은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말했다.웨이터는 여러 번 사과한 후에야 자리를 떠났다.“해명해야 하지 않을까요?”진서준이 한마디 물었다.“해명이라뇨?”배수정은 처음엔 진서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잠시 생각하더니 가볍게 미소 지었다.“사람은 사람일 뿐, 굳이 사람답게 살려고 애쓸 필요 없고 세상은 세상일 뿐, 억지로 세상사에 맞추려 할 필요도 없죠. 진... 김평안 씨, 지금의 당신은 평소와 조금 다르네요.”배수정의 말에 진서준은 담담하게 웃었다.“괜히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했군요.”지현진과 신용수 앞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이미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무양아, 이분이 바로 평온이야.”지현진이 배수정을 소개하며 말했다.“평온이요? 배수정 씨 법명인가요?”진서준의 질문에 배수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마음이 편하면 모든 일이 평온해진다는 의미예요.”“난 네가 제자를 안 들일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여제자를 들여?”신용수는 넌지시 농담을 건넸다.“사원의 다른 제자들이 불만이 많겠어.”신용수는 지현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배수정이 뭔가 특별한 자질이 있기에 지현진이 제자로 삼았을 거라고 짐작했다.지현진은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평온이 불법을 깨우치는 능력이 나와 사주를 훨씬 능가할 정도야.”이 말에 진서준과 신용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지현진 스님이 농담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다들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이 너무나 파격적이었다.스물 남짓한 연약한 여성이 지현진과 소림의 주지보다도 높은 불법의 깨달음을 지녔다는 건 너무나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잠시 후, 신용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그렇
신용수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되새긴 뒤 눈빛을 반짝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김평안, 네가 불문에 들지 않는 건 정말 큰 손실이야.”김평안이 마흔이 넘은 나이에 이렇게 강력한 실력을 갖춘 게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이런 깨달음의 경지라면 절대 실력이 약할 리 없었다.지현진은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김 시주, 저희 소림 문은 언제나 당신을 위해 열려 있을 겁니다.”불문에 든다니, 허사연 일행이 반대할지 말지는 둘째치고 진서준이 출가한다고 하면 진서준 어머니 조희선이 가장 먼저 나서서 반대할 것이다.진서준이 세상에 미련이 있는 건 아니지만 진서준 곁엔 소중한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게다가 진서준이 강해지려는 이유도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더 중요한 건, 진서준 아버지 진요한을 신농산 금지구역에서 구출하는 일이었다.무려 25년이나 그 구역에 갇혀 있었는데, 아버지가 아직도 잘 버텨내고 계실지 의문이었다.“제 마음이 아직 속세에 얽매여 있으니 불문은 사양하겠습니다.”진서준은 고개를 저으며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하지만 진서준의 거절에도 지현진은 전혀 실망하는 기색이 없었다.이렇게 천재적인 인물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지현진에게 이미 엄청난 행운이었다.“평온아, 김 시주와 나가서 잠깐 더 얘기라도 하고 오거라. 앞으로 다시 만나려면 더 어려워질 거야.”지현진은 배수정을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배수정이 왜 출가했는지 지현진은 처음엔 대충 짐작만 하고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알 것 같았다. 배수정이 출가한 이유는 바로 눈앞의 이 남자 때문일 것이다.배수정의 표정은 지현진을 속일 수 있어도 그 눈빛은 절대 속일 수 없었다.배수정의 눈에 어린 고통과 씁쓸한 기색을 지현진은 정확히 읽어냈다.“네, 스승님.”배수정은 고개를 끄덕인 뒤 진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나가서 걸을까요?”“그러죠.”진서준과 배수정은 나란히 호텔 밖으로 걸어 나갔다.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자 신용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현진아, 25년
“따뜻하게 해줄게, 안 그러면 진군님이 내가 널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고 나무랄 거야.”진서준은 자연스럽게 손으로 배수정의 손을 잡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진서준의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배수정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배수정은 이를 지그시 물고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진서준 씨, 만약 우리가 조금만 일찍 만났다면 지금 우리 관계는 좀 달랐을까요?”비록 모든 걸 내려놓으려고 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새겨두었던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되자 거세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을 도저히 진정시킬 수 없었다.진서준은 배수정의 질문에 잠깐 멈칫했다.김연아 역시 진서준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만약 자기가 가장 먼저 만난 여자가 배수정이었다면 과연 허사연 대신할 수 있었을까?그 답은 이미 진서준의 마음속에 정해져 있었다.“아니요.”진서준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어떤 일들은 이미 정해져 있는 걸지도 몰라요. 내가 가정 먼저 만난 여자가 배수정 씨라고 하더라도 우리 사이는 지금과 크게 다르진 않았을 거예요.”그 말을 들은 배수정은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왜 허사연이 진서준 씨를 그렇게 사랑하는지 알 것 같아요.”그 후, 둘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걸었다.이 세상에는 입 밖에 꺼내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많았다.오랜 시간을 걸은 후, 진서준은 시간을 확인하고 밤에 있을 해외 이족 처단 작전을 떠올렸다.“돌아가죠.”“그래요.”배수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호텔에 돌아오니 밤은 이미 깊어 있었다.바이올렛은 오늘 산 드레스를 입고 진서준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진서준이 배수정과 손을 잡고 들어오는 걸 본 순간, 바이올렛의 눈동자에는 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가서 쉬세요.”배수정은 진서준의 손을 놓으며 고개를 들어 진서준과 눈을 마주쳤다.“무사히 돌아와요.”배수정이 위층으로 올라가자 진서준은 바이올렛을 바라보며 물었다.“진군님은 어디에 있어?”“난 진군이 너와 함께
진서준의 영기가 본인의 몸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낀 순간, 신용수는 있는 힘을 다해 진서준의 손을 밀어냈다.“날 위해 힘을 낭비하지 마...”신용수의 목소리는 힘없이 떨렸다.“진군님, 제가 진군님을 살릴 수 있어요...”진서준은 눈가가 붉어졌다.아까 지현진이 진서준을 배수정과 함께 밖으로 내보냈을 때, 진서준은 신용수가 지현진과 함께 전장으로 갈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호텔로 돌아와 바이올렛에게 신용수와 지현진이 이미 떠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뒤늦게 모든 걸 깨달았다.신용수는 이번 전투가 목숨을 잃을 만큼 위험하다는 걸 알았기에 일부러 진서준을 멀리 보낸 것이 분명했다.나이가 많아 죽음이 두렵지 않은 자신과 달리 진서준은 아직 젊고 대한민국 무도계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젊은 인물 중 한 명이었다.“아니야... 내 오장육부가 이미 파열돼 얼마 못 버틸 거야.”신용수의 동공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진서준...”“진군님, 전 여기에 있어요!”진서준은 신용수의 손을 꼭 잡으며 대답했다.“대한민국 무도는 이제 너희 젊은이들에게 맡기마...”그 말과 함께 진서준의 손에 있던 그 말랐지만 힘센 손은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신용수는 그렇게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진서준의 눈은 핏발이 서고 그의 가슴속에서 엄청난 분노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올림푸스! 멸용 조직! 이 빚은 반드시 피로 갚게 할 거야!”진서준과 거기를 두고 따라온 바이올렛은 그제야 전장에 도착했다.바이올렛은 이미 숨을 거둔 신용수를 보자 충격을 금치 못했다.이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신처럼 떠받드는 어엿한 호국장군이었다.그런 사람이 서북 전장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잃다니...바이올렛은 아무 말 없이 진서준의 뒤에 조용히 서서 그의 분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숨죽이고 있었다.오랜 시간이 흐른 후, 진서준은 천천히 일어섰다.“이 사람들 중에 네가 말한 올림푸스 신전 신왕이 있는지 확인해 봐.”진서준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바이올렛의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
게다가 호국장군뿐 아니라 삭발한 노인도 있었다.그 노인은 강하지 않았지만 헬라스의 부하들을 두부 베듯 가볍게 베어내며 차례로 쓰러뜨렸다.어제 멸용 조직에서 칠급 절정 강자 두 명을 보내주지 않았다면 헬라스는 대한민국을 무사히 빠져나올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두 시간 가까이 달린 끝에 헬라스는 어느 한적한 공항에 도착했다.그곳에는 오직 한 대의 헬리콥터만이 대기 중이었다.“신왕님, 어쩐 일로 이렇게 빨리 돌아오셨습니까?”헬라스를 맞이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신전 사람은 헬라스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당장 이륙해.”헬라스는 분노에 차서 소리쳤고 지원 인원도 더 이상 물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의 명령에 바로 응하며 헬리콥터를 이륙시켰다.하지만 헬리콥터가 막 공중으로 떠오르는 순간, 헬라스의 가슴속에 강렬한 위기감이 스쳐 지나갔다.헬라스는 고개를 내밀어 지면을 내려다보았다.방금 그들이 떠난 자리에서 누군가의 빈약해 보이는 실루엣이 서 있었다.그 인물은 천천히 청색 장검을 들어 올리더니 아래에서 위로 검을 휘둘렀다.곧이어 하늘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청색 검광이 나타나 헬리콥터를 향해 날아왔다.“젠장, 뒤에 추격자가 있었단 말인가? 아까 아무런 기운도 느끼지 못했는데?”헬라스는 얼굴이 창백해졌고 검광이 헬리콥터에 닿기 직전에 황급히 뛰어내렸다.쾅!둔탁한 폭발음과 함께 미사일로도 쉽게 파괴되지 않는 전투용 헬리콥터가 두 동강 나며 화려한 불꽃을 피워 올렸다.헬라스는 중상을 입은 채로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려 착지에 실패해 바닥에 곤두박질쳤다.헬라스가 간신히 머리를 들기도 전에 방금 검을 휘둘렀던 인물이 그의 앞에 다가왔다.달빛이 그 인물의 얼굴을 가려 헬라스 위에 악마처럼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진서준은 얼음같이 차가운 눈빛으로 금발에 푸른 눈의 중년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청년이야?”헬라스는 진서준의 젊은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헬라스는 이곳까지 쫓아온 사람이 대한민국의 호국장군 중 한 명일 거라 생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