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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9화

작가: 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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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호 호숫가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걸어오는 사람의 실루엣을 보자 서광철의 눈에 섬뜩한 살의가 번졌다.

지난번 진서준이 결혼식에서 신부를 데려간 후, 워낙 정신 상태가 불안정했던 서동현은 심각한 충격을 받아 우울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서광철은 아버지로서 아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속이 타들어 갔다.

그날 이후로 서광철은 진서준의 목숨으로 이 굴욕을 씻어내고 싶은 생각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지난번에는 서광문이 제지했기 때문에 계획이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진서준을 끌어내기 위해 서지은에게 만년몽을 사용할 정도로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서광철은 서지은이 일단 위험에 처하면 진서준이 반드시 나타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진서준은 나타났다. 그것도 홀로 서씨 가문에 찾아온 것이다.

지금 국안부는 해외 강자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거의 모든 무인을 국경으로 파견했다.

오늘 서광문이 방해하지 않는 한, 진서준은 반드시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진서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구나. 난 네가 서지은의 목숨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평생 겁쟁이로 살 줄 알았어.”

서광철은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진서준을 차갑게 쳐다보았다.

서광철은 진서준이 지난 석 달 동안 모습을 감춘 것이 틀림없이 자기를 피하고자 숨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서준은 서광철에서 불과 열 걸음 떨어진 곳에 멈춰 서서 서광철을 냉랭하게 바라보았다.

“내가 지난 석 달 동안 숨었다고 생각해?”

“아니면 뭐겠나? 이 세상에 누가 명성을 떨치기 시작할 때 갑자기 모습을 감추겠어?”

서광철은 냉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무도계의 타고난 재능을 갖춘 이들은 자기가 유명해질 기회에 실력을 과시하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진서준은 경성에서 6연승을 거두고 용존이라는 봉호를 얻었다.

서광철은 진서준이 이런 이름을 널리 떨칠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고 여겼다.

“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지.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을 건드려서 숨어버린 거야. 그리고 그 잘못 건드린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지.”

서광철은 자부심에 찬 듯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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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광철이 모셔 온 이 두 사람은 모두 지의방 랭킹 50위 안에 드는 은세 강자였다.왼쪽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고성운이라 불리며, 지의방 44위에 있는 육급 절정 대종사였다.오른쪽의 감청색 장포를 입은 노인은 육위준이라 불리며, 지의방 45위에 있는 육급 절정 대종사였다.이 두 사람은 이미 무도계에서 은둔한 지 오래되었다.30대나 40대의 젊은 무인 중 절반 이상은 두 사람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하지만 강남의 구세대 종사들이 두 사람의 이름을 듣는다면 놀라서 허겁지겁 도망칠 정도였다.20년 전, 강남 명문대가들은 지금과 달리 광범위하게 널렸다.그때 서씨 가문은 최고의 가문이 아니라 실력이 출중한 가문 중 하나였다.이런 상황에서 강남의 명문대가들은 이익을 둘러싼 갈등으로 대규모 싸움을 벌였다.그날, 수많은 가문이 한순간에 몰락했고 무인도 대량으로 죽었으며 일부 종사와 대종사도 그날을 끝으로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바로 그 대규모 싸움 중, 고성운과 육위준의 손에 죽은 대종사만 해도 열 명이 넘는다고 알려졌고 종사는 스무 명이 넘었다.그 후, 국안부의 정안부가 이 사안에 대한 조사를 개시하자 고성운과 육위준은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두 사람의 존재를 점차 잊었다.서광철이 이처럼 잔혹한 두 사람을 모실 수 있었다는 것은 진서준을 죽이려는 결심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줄 수 있었다.“잠시 후 우리가 나서서 진서준을 구해야 하나요?”왕안석이 서광문을 보며 물었다.“하아...”서광문은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서광문은 서광철이 이곳에서 죽는 것도 원치 않았고 진서준이 죽는 것도 원치 않았다.한쪽은 자기 가족이었고 다른 한쪽은 자기 딸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그사이에 끼인 서광문이 가장 괴로웠다.“구할지 말지는 당신들 선택하기 나름입니다.”서광문은 선택권을 왕안석과 이한석에게 넘겼다.침묵을 지키던 이한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해외 용멸 계획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국안부의 최근 동향을 서씨 가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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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운은 담담한 눈빛으로 젊은 진서준을 바라봤다.진서준에 대한 소문은 들은 적 있지만 여태껏 직접 본 적은 없었다.오늘 처음 보니 진서준이 겨우 스무 살을 넘긴 나이란 사실에 고성운은 큰 실망감이 들었다.스무 살 청년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얼마나 강력할 수 있을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실력과 바탕은 타고난 재능으로는 보완할 수 없는 것이었고 오랜 시간을 거친 노력이 필요했다.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결국 무용지물일 것이다.“저 녀석을 끝장내주세요.”서광철은 뒤로 물러나 고성운과 육위준에게 공격을 개시할 공간을 남겼다.“얼마나 오랫동안 사람을 죽이지 않았던가. 사람을 죽이는 느낌을 까먹을 지경이야.”고성운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날카로운 눈에는 한 점의 동요도 없었다.진서준은 고성운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웃었다.“그럼 오늘도 사람을 죽이는 느낌을 경험할 수는 없을 거야. 그 대신,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는 느낌을 제대로 경험할 거야.”고성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비웃음이 흘러나왔다.“얼씨구? 요즘 젊은이들은 모두 이렇게 오만한가? 20년 전 내가 강남 종사들을 죽일 때 네가 그 모습을 보았다면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고성운의 도발에도 진서준의 눈빛은 여전히 평온했다.“20년 전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죽는 사람은 오히려 너였을 거야.”고성운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예전의 나도 너처럼 젊고 혈기 왕성했지.”“젊고 혈기 왕성하다고?”말이 떨어지자마자 진서준의 허리에서 청색의 빛이 발산해 나왔다.곧바로 그 빛은 고성운의 눈앞에서 점점 확장해 칠척 길이의 장검으로 변했다.청색의 검이 천지 사이에 우뚝 서 있었고 태양의 빛마저 절반으로 가른 듯했다.이 장검이 나타나는 순간, 고성운은 발바닥에서부터 서늘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고 그 기운은 고성운의 사지에 빠른 속도로 퍼졌다.순간, 고성운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너...”고성운이 입을 열려던 찰나,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이며 측면으로 뛰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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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엄청난 천재를 키워낸 스승 역시 실력이 형편없는 무인일 리 없었다.“저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진서준이 서울의 감옥에 있었던 적이 있다는 것만 들었습니다.”서광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멀리서 진서준과 대치하고 있는 서광철과 육위준의 눈에는 믿을 수 없는 놀라움이 넘쳐흘렀다.특히 육위준은 이 상황을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육위준은 고성운과 거의 동등한 실력을 갖춘 인물이었다.방금 진서준의 그 일격을 정면으로 맞았다면 육위준 역시 고성운과 마찬가지로 꼴사나운 모습으로 곤경에 처했을 것이다.“이 녀석이 정말 소문대로인 것 같군...”조금 전과 달리, 육위준의 눈에는 더 이상 진서준에 대한 경멸이 없었다.이 순간, 육위준은 강력한 적에 맞서는 것처럼 긴장감이 감돌았다.“전에 내가 당신들에게 말했죠? 저 녀석을 절대 얕보지 말라고요.”서광철은 다소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진서준이 정말 형편없는 실력이었다면 서광철이 굳이 고성운과 육위준 같은 고수를 모시기 위해 그렇게 막대한 돈을 지급할 필요가 없었다.쿵!갑자기 고성운이 떨어진 자리에서 강력한 기세가 폭발했다.허공에서 흩날리던 먼지가 순식간에 이 기세에 의해 사방으로 흩어졌다.다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쪽을 쳐다보며 확인하려고 했다.반백의 머리였던 고성운이 지금은 온통 백발이 되어 있고 온몸이 피투성이인 채 처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고성운이 내뿜는 기세는 상처 입은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는데 마치 방금 진서준의 그 일격이 고성운에게 닿지 않은 듯했다.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비장의 카드를 꺼내 드는 걸 보니 고성운도 참으로 신중한 사람이 맞는 것 같았다.진서준의 추측이 빗나가지 않았다. 고성운은 증원단이라는 단약을 복용했다.증원단의 효능은 폭원단과 비슷했다.증원단은 짧은 시간 내에 자기 실력을 대폭 향상할 수 있지만 그 효과는 폭원단보다 몇 배 더 좋았다.본래 육급 정점 대종사급에 있던 고성운이 지금은 육급의 한계를 뛰어넘어 칠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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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급 대종사의 실력을 갖춘 고성운과 육위준을 바라보며 진서준의 얼굴에는 여전히 평온함이 가득했다.이 두 사람은 20년 전의 난전에서 살아남은 인물이니 결코 평범한 존재가 아니었다.두 사람이 폭원단 같은 단약을 복용했을 가능성도 진서준은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칠급 대종사.”진서준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참선검을 천천히 가슴 앞에 가로로 들었다.단순히 실력을 논하자면 고성운과 육위준은 증원단을 복용했어도 신농산의 그 무인들의 실력에 미치지 못했다.신농산의 인물들도 진서준을 상대하기에 버거웠는데 이 두 사람이 진서준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고성운과 육위준은 긴장한 채 몸을 바짝 당겼다.증원단을 복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서준을 상대하자니 두 사람에게 목에 칼이 드리워진 것처럼 숨이 꽉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진서준이 손에 잡은 그 청색 장검이 언제든지 두 사람의 목을 베어낼 것만 같았다.두 사람은 차가운 숨을 들이켰다.“오늘 반드시 저 녀석을 죽여야 해.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가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야 해.”고성운이 갑자기 초조한 말투로 외쳤다.고성운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고 처음 진서준을 마주할 때 보였던 선풍도골의 모습이 지금은 흉악한 모습으로 변했다.육위준 역시 이 상황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다.진서준이 오늘 죽지 않는다면 두 사람이 운 좋게 도망칠 수는 있어도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진서준은 유유히 웃으며 고성운의 직설적인 말을 듣고 있었다.그러고는 참선검의 칼날을 살짝 비스듬히 하여 청광이 하늘을 찌르듯 비추게 했다.“날 죽이겠다고? 너희는 혹시 개미가 하늘을 뒤흔드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개미가 하늘을 흔든다니, 진서준 이 녀석이 칠급 대종사 두 명을 개미에 비유하고 자기를 하늘에 비유하는 오만한 태도를 보자 서광문은 저도 몰래 쓴웃음을 지었다.하지만 진서준은 오만하게 굴만한 근거가 있다.적어도 현재로서는 진서준의 기세가 이 두 사람 못지않았다.“얼씨구? 어디 두고 보자고, 도대체 누가 개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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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의 먹구름도 검빛의 영향을 받은 듯 신기하게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이건 뭐지...”서광문 일행은 이 광경에 몸이 경직되었고 그 갑작스러운 검빛을 바라보며 말문이 턱 막혔다.검빛이 검은 강기를 뚫고 나가자 주변의 강기도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이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라져 버렸다.거의 동시에 세 사람의 형체가 다시 사람들의 시선 속에 나타났다.그중, 누군가가 한 손으로 검을 들고 서 있었고 그의 그림자는 먹구름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에 의해 길게 늘어졌다.고성운과 육위준은 전부 몸이 굳어 있었다.두 사람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고 눈 속에는 공포 외에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응? 이게 어떻게 된 거지?”정신을 차린 서광문 일행은 너무나 기이한 장면을 바라보며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려고 애썼다.불길한 예감이 서광철의 마음속에 스멀스멀 피어올랐다.고성운과 육위준이 설마 조금 전 그 참격을 맞고 죽은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서광철 역시 대종사였기에 방금 전 하늘을 찢고 나오는 그 검빛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단 일격으로 두 명의 칠급 대종사를 죽인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인 것 같았다.칠급 대종사는 이미 일반 사람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는 무인의 등급이었다.게다가 한 단계 더 나아가면 팔급 대종사가 되는데 그 경지에 이르면 일반 사람과 완전히 다른 세계에 들어서는 것이다.전 세계 팔급 대종사를 다 합쳐도 그 숫자는 겨우 열 명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서광문 일행이 도대체 조금 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때, 검의 소리가 울려 퍼지며 진서준의 손에 잡고 있던 참선검이 계속 회전하다가 결국 팬던트가 되어 그의 허리에 돌아갔다.“진서준이... 지금 검을 거둔 겁니까?”서광문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고성운과 육위준이 정말 서광문의 예상대로 죽은 걸까?쿵!거대한 옥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갑자기 천지 사이에 울려 퍼졌다.진서준의 허리에 걸려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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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해외 강자들이 대한민국을 포위해서 공격하는 건 절호의 기회였다.만약 진서준이 이번 용멸 계획에서 큰 공을 세운다면 서광문이 언급한 전용 권리를 얻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대한민국 무도계를 공격하는 해외 강자는 결코 실력이 형편없는 사람들이 아니었다.국안부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이번에 공격에 참여한 해외 강자들은 기본적으로 지의방과 인의방에 오른 강자였다.대한민국 국안부의 종사 수는 본래 많지 않은 데다 지의방과 인의방에 오른 사람은 더욱 적었다.이번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안부는 산이나 농촌에 은거하고 있는 구시대 종사를 여러 명 초청했다.하지만 서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 내의 종사들은 거의 출동하지 않았다.그 이유는 단순했다. 가문 내 종사가 출동한 틈을 타서 다른 세가에 습격당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이것이 왕안석과 이한석이 아직 서씨 가문에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진씨 가문의 대종사도 물론 출동하지 않았다.나라가 없으면 가정이 없다고 했다.하지만 이런 이치를 아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드물었다.적어도 서광문은 그렇게 할 수 없다.서광문은 자기 가족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게 최우선이었다.식사가 끝난 후, 서지은은 진서준을 데리고 자택의 정원을 한가롭게 거닐었다.잠시 후, 서지은과 진서준은 호수 가운데 있는 정자에 도착했다.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정자에 앉았다.“서준아, 넌 아빠가 방금 한 말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난 명분 따윈 없어도 괜찮아.”서지은이 고개를 돌려 진서준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대다수 여성은 감성이 뛰어난 동물이다.여자 서지은은 일반 여성보다 더더욱 감성적이었다.서지은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이 거지라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권력이나 재물을 추구하는 다른 여성들과 비교하면 서지은이 원하는 건 단순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이 단순한 행복은 서지은이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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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예은이 옷을 다 갈아입자 서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찾으러 갔다.“서준아, 예은 언니가 좀 화난 것 같으니까 이따가 해명할 때 되도록 조심해.”서지은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알았어.”진서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조심하라는 말을 다시 되새겼다.만약 상대가 너무 무례하게 굴면 진서준도 결코 양보하며 자세를 낮추지 않을 예정이었다.문제는 자기가 일부러 실수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진서준은 황예은이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들어간 게 아니었다.게다가 진서준은 황예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진서준 씨, 아까 지은한테서 들었는데, 진서준 씨가 저를 구했다고 하던데요.”황예은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들어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 눈빛과 태도는 마치 왕좌에 앉은 여왕처럼 고압적이었다.이는 오랫동안 높은 자리를 지키며 형성된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황경영이 대한민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황예은은 회사 업무의 일부를 맡아 처리하고 있었다.회사의 지도자, 그것도 여성이 지도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그러니 황예은의 성격도 강인하고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황예은이 이사장으로 올라간 후, 회사 내에서 황예은의 이름만 들어도 직원들이 벌벌 떨곤 했다.“맞아요. 제가 구했습니다.”진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황예은 맞은편에 앉았다.그런데 앉고 나서야 진서준은 후회했다.황예은이 입은 옷은 목선이 매우 낮았다.비록 황예은이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앉아 있었지만 풍만한 가슴이 살짝 드러나 있었고 그 모습이 진서준의 시야에 그대로 들어왔다.당혹한 모습을 감추려고 진서준은 뒤로 기대어 눈을 감았다.하지만 이 자세는 상대방에게 매우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었다.황예은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와 대화할 때 이런 태도로 임하는 것은 큰 실례였다.진서준이 소파에 기대 누운 모습을 보자 황예은의 마음속에서 잠잠했던 분노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진서준 씨는 다른 사람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69화

    별장에서 황예은은 이미 깨어난 상태였다.다만 지금 황예은의 몸에는 옷이 거의 없었다.정확히 말하면 상반신에는 레이스가 달린 검은 속옷 하나만 걸쳐져 있었다.이 속옷은 서지은이 가져온 속옷이었고 아직 한 번도 입지 않은 새것이었다.그리고 하반신에는 아까 진서준이 마사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었다.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두 여자는 동시에 문 쪽을 바라보았다.황예은은 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남자를 보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황예은의 차가운 눈빛만으로도 지금 심정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었다.황예은은 자기 알몸을 보고 있는 이 남자를 죽여버리고 싶었다.하지만 황예은은 사실 이번이 진서준에게 두 번째로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순간이란 걸 몰랐다.“서준아, 왜 노크하지 않고 그냥 들어왔어...”서지은이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서지은은 진서준이 약왕 이용진과 저녁 식사를 오래 하고 밤늦게나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진서준이 너무 일찍 돌아온 것이다.“언제까지 더 볼 생각이야?”황예은이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진서준은 정신을 차리고 코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돌린 뒤 말했다.“먼저 나가 있을게. 옷을 다 갈아입었으면 날 불러.”진서준이 나간 뒤, 황예은은 서지은을 바라보며 물었다.“저 사람 누구야?”“진서준이에요. 제 남자친구거든요.”서지은이 솔직하게 대답하며 한마디 보탰다.“예은 언니, 사실 언니 목숨도 진서준이 구한 거예요.”그 말을 듣자 황예은의 눈에서 뿜어나오던 냉기가 다소 누그러졌다.어쨌든 자기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데 너무 차가운 태도로 대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황예은은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내 옷은 네가 벗긴 거야?”서지은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서준이 언니를 치료할 때 상황이 너무 위급해서 먼저 언니를 여기 데려온 거예요. 나도 여기 들어와 치료 과정을 볼 때 서준이 언니를 추행하는 줄 알았어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68화

    지금까지도 진서준은 박씨 가문의 의도가 오리무중이었다.하지만 박씨 가문의 일은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지금 진서준의 우선순위는 약재를 구하고 모든 정력을 간첩을 잡는 데 쏟아부어야 했다.호텔을 떠난 진서준은 이용진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30여 분을 달린 끝에 진서준 일행은 마침내 이용진의 장원에 도착했다.이용진의 장원 면적은 서씨 가문 것만큼 크지 않았지만 화려함만큼은 서씨 가문을 능가할 기세였다.각종 명인의 고화와 진귀한 보물들이 온 사방에 진열되어 있었다.이 모든 보물은 하나하나가 최소 10억 이상의 진품이었고 적어도 진서준이 자세히 살펴본 결과 위조품은 하나도 없었다.이 보물들만 해도 자산 가치가 조 단위를 뛰어넘을 될 터였다.“용존님,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말만 하세요.”이용진이 호탕한 어조로 말했다.“난 이런 것들에는 관심 없습니다.”진서준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렇군요...”이용진은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돈을 통해 진서준과의 관계를 더 가까이 만들고자 했던 이용진의 계획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진서준과 친분이 두터워지면 나중에 치료를 부탁하기도 훨씬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진서준은 이용진의 속셈을 꿰뚫어 본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약왕님 체내 내상이 다 나으면 매주 두 번씩 무도를 연마하고 한 달에 다른 사람과 한 번 실력을 겨루는 수준으로 수련하면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약왕님 무도 실력도 늘어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겁니다.”“알겠습니다. 앞으로 꼭 용존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이용진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수많은 별장을 지나 진서준은 이용진을 따라 규모가 어마어마한 냉장실로 들어갔다.냉장실 안에는 사람 키 절반 정도 되는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각 기둥 위에는 희귀한 약재들이 놓여 있었고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었다.진서준이 자세히 둘러보니 여기에 진열된 약재는 성약당의 것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희귀성만큼은 성약당을 훨씬 뛰어넘었다.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67화

    이 사람은 바로 어제 서울시에서 체포되었던 박운기였다.진서준 역시 이렇게 빨리 박운기를 다시 마주칠 줄은 몰랐다.“운기야, 저 사람 알아?”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박운기를 힐끔 바라보며 물었다.“바로 저놈이 사람들을 이끌고 내 계획을 망쳤습니다.”박운기가 이를 갈며 말했다.만약 진서준이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박운기의 계획은 이미 성공했을 것이다.그랬다면 박씨 가문으로 돌아갈 때는 차가운 시선 대신 온갖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을 터였다.이번에 서울시에서의 임무를 맡기 위해 박운기는 온갖 시련을 이겨내며 경쟁했다.모두가 보기에 이 임무는 그야말로 공을 세우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렇게 쉬운 임무를 박운기가 망쳐버렸다.망친 것도 모자라 박씨 가문은 관계를 동원해 박운기를 구출해야만 했다.공을 세워야 할 장사가 완전히 손해만 본 장사로 탈바꿈한 것이다.박씨 가문의 계획을 망친 장본인이 진서준이라는 사실을 알자 중년 남자는 진서준을 쓱 훑어보고는 냉랭하게 비웃었다.“전설 속의 용존님, 역시 이름값 제대로 하시는군요.”진서준은 그 남자를 힐끗 보고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걸어 들어갔다.진서준이 자기를 무시하자 중년 남자의 눈빛에 차가운 기운이 잠깐 스쳤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약왕님은 언제부터 용존님과 친구가 되셨습니까?”중년 남자는 이용진을 발견하자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박재명, 분명히 말해두지. 용존님 일은 바로 내 일이야. 감히 용존님에게 시비를 걸려고 한다면 내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용진이 싸늘하게 대응했다.박재명은 박씨 가문의 실질적인 권력자가 아니었다.그는 단지 박서명의 넷째 동생일 뿐이었다.그래서 이용진은 굳이 박재명을 깍듯하게 모시며 아부할 필요가 없었다.이용진의 말에 박재명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약왕님, 굳이 한 사람 때문에 우리 박씨 가문을 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겠습니까?”이용진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66화

    “당연히 가능하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애초에 병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겠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용존님.”그러자 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아직은 섣불리 고마워하지 마세요. 제가 치료하는 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저 이용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기꺼이 돕겠습니다!”이용진이 자신 있게 가슴을 치며 말했다.“제가 약왕인 당신에게 부탁이 있다면 당연히 약재 때문이죠.”진서준은 차분하게 진서라의 체내 독소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약재를 설명했다.이용진은 그 얘기를 들은 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용존님, 솔직하게 말할게요. 용존님이 언급하신 약재 중 혈령지는 제 약재 창고에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 약재는 아쉽게도 제 창고에 없습니다.”“그것 하나만 있어도 충분합니다.”진서준은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적어도 하나는 확보했으니 오늘 헛걸음을 한 게 아니었다.“얼마면 되겠습니까? 시세대로 구매하겠습니다.”이용진은 그 말을 듣고 자기 얼굴을 가볍게 툭툭 쳤다.“용존님, 가격을 말하는 건 제게 따귀를 날리는 겁니다. 용존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 약재 창고에 나머지 세 가지 약재가 있었다면 전부 무료로 드렸을 겁니다.”이용진이 이렇게 호탕하게 나오자 진서준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생명을 구해준 대가로 혈령지 하나를 받는 건 결코 과한 요구가 아니었다.“용존님, 급하지 않으시다면 식사를 마친 후 제가 약재 창고로 가서 혈령지를 가져오겠습니다.”이용진의 제안에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죠.”“오늘 식사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곽 선생님, 어서 앉으시죠.”이용진은 웨이터를 불러 이곳의 대표 요리를 전부 주문했다.이 대표 요리들만 해도 가격이 2억을 넘겼다.일반인 한평생 월급을 한 끼 식사로 소비하는, 그야말로 호화로운 만찬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차려졌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65화

    이용진은 평생 실력이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청년을 본 적이 없었다.자기를 지키는 두 호위가 반응할 틈조차 없이, 아니, 심지어 방어할 기회도 없이 한순간에 당하다니,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곽윤상 역시 진서준이 갑자기 공격을 시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해명할 기회가 생겼다.“약왕님, 이분은 바로 국안부 용존님이십니다.”곽윤상이 재빨리 이 틈을 이용해 설명했다.“뭐라고? 네가 바로 그 용존이라고?”이용진은 입을 떡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용존이라는 이름은 이미 명주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대다수 명주시 명문대가는 이 절세 천재를 돈으로라도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진서준을 끌어들이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진서준이 아직은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었기 때문이다.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 용존이라는 봉호를 받은 인물이니 앞으로 거의 30년이 지나면 대한민국 전역에서 진서준과 겨뤄볼 만한 상대가 있을 리 없었다.심지어 4대 은거 문파조차도 진서준에게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보시다시피 용존이 틀림없습니다.”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서준이 처음부터 용존이라는 신분을 밝혔다면 이용진은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대한민국 전역에서 이 나이에 육급 절정의 대종사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진서준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이용진은 이제야 이 청년이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대화할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용존님, 방금 제가 무례했던 점은 널리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약왕 이용진은 몸을 약간 숙이며 진서준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조금 전의 거만했던 태도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용진은 곽윤상이 명주시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 질책했었다.그런데 3분도 안 돼 본인이 직접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었다.이용진은 지금 누군가가 그에게 귀싸대기라도 날린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약왕님, 앉으세요.”진서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64화

    이용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놀라운 기색이 담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진서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방금 당신이 한 얘기는 전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 체내에 숨은 질병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 오는 날씨에 수련을 하다 보면 체내 강기를 돌릴 때 복부 아래쪽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통증은 심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요. 설령 신경이 쓰여 의사를 보인다고 해도 보통 의사라면 문제를 발견하지 못할 겁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정밀한 장비로도 알아내기 어렵겠죠.”진서준의 이 말에 이용진의 표정이 한순간 어두워졌다.진서준은 정확히 이용진의 몸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지난 2년 동안, 비만 오면 이용진은 온몸이 불편해졌다.특히 강기를 돌릴 때면 복부 아래쪽에서 은은하게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처음에는 이용진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그러나 점점 이상하다고 느껴져 성약당의 장로까지 불러 진찰을 받았지만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그런데 진서준이 오늘 초면에 단번에 이 문제를 짚어내자 이용진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이용진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이며 묻자 진서준은 태연히 대답했다.“당연히 당신 얼굴을 보고 알았죠.”“얼굴을 본다고 어떻게 알 수 있어?”이용진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졌고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터무니없군. 성약당의 장로조차 알아내지 못한 문제를 네가 단번에 알아냈다고?”이용진은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진서준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이봐 청년, 솔직하게 말해. 내 곁에 내통자를 심어 놓은 게 아니야?”명주시에서 이용진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은 항상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계해야 했다.다시 말해 억울한 사람 천 명을 죽이더라도 내통자 한 명도 놓치지 않는 태도가 생존의 비결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명주시 같은 복잡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려웠다.이용진 곁의 두 대종사도 이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63화

    ‘이 녀석 미쳤나?’방 안의 모든 사람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이용진이 누구인가? 바로 명주시에서 누구나 다 아는 약왕이었다.전국을 논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절반 이상의 귀한 약재는 약왕의 손을 거친다.이런 사람이 어떻게 병에 걸릴 수 있을까?더군다나 매일 약재를 다루는 약왕에게 병이 있다면 명의들이 못 알아챘을 리가 없었다.그러니 진서준이 이용진에게 병에 걸렸다고 말한 건 미친 소리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소리였다.“이봐, 넌 지금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지 알고는 있나?”이용진의 얼굴은 어둠 그 자체였다.그는 이곳에서 꼬박 30분 넘게 기다렸다.그런데 자기를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 장본인이 고작 이런 애송이였고 오자마자 병이 있다며 모욕까지 했다.평소 인내심이 깊고 신사적이던 이용진도 이 순간만큼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용진의 분노를 눈치채자 곽윤상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겁에 질려 진서준의 옷자락을 살짝 당겼다.하지만 진서준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태연히 이용진 맞은편에 앉아 스스로 차를 따라 마셨다.진서준의 이 태연한 모습에 이용진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아무래도 이 청년은 약왕인 이용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난 똑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아요.”진서준은 차 한 모금을 마신 뒤,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진서준의 말에 이용진 오른쪽에 앉아 있던 대종사가 비웃으며 말했다.“약왕님은 무공을 수십 년간 연마하셨고 이미 종사 경지에 도달한 무인이야. 병에 걸렸다면 네가 말하지 않아도 진작 발견되었을 거야. 허튼소리도 정도껏 해야지.”보통 종사 경지에 오른 무인은 병에 걸리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무인의 근육, 뼈, 혈액은 이미 평범한 인간을 초월했기에 체내 바이러스조차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종사 무인이 병에 걸릴 경우라면 대개 다음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난치병이거나 중독이거나 아니면 심각한 내상이 있을 경우였다.하지만 이용진은 이 세 가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난치병은커녕, 누군가의 독에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62화

    “여기는 국제적인 대도시잖아요.”곽윤상도 감탄했다.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교내 미인 대회에 나가도 손색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 안내원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손님, 저희 호텔은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식사나 숙박을 원하시면 회원 자격이 필요합니다.”곽윤상은 군말 없이 금박으로 장식된 카드를 꺼냈다.여성 안내원은 카드를 꼼꼼히 확인한 뒤,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곽 선생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이미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꼭대기 층의 5번 방입니다.”곽윤상의 말에 여성 안내원이 대답했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확인해 보겠습니다.”여성 안내원은 프런트로 가서 예약 사항을 확인한 뒤, 두 사람을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꼭대기 층으로 가는 직행 엘리베이터는 총 네 대였고 속도는 어마어마했다.무려 300미터의 높이를 단 20초도 되지 않아 올라갔다.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진서준은 눈앞의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멀리 보이는 구름층과 자기와 나란히 있는 듯한 달빛이 시야에 들어와 하늘 속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진 마스터님, 여긴 어떠십니까?”곽윤상의 질문에 진서준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내가 가본 레스토랑 중 가장 호화로운 곳 중 하나로군요.”“그렇긴 하죠. 이 호텔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곽윤상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이 호텔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회원이어야 하는데 꼭대기 층에 오고 싶다면 일반 회원으로는 부족하고 최소한 골드 회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골드 회원권을 발급받는 데만 200억이 필요합니다.”골드 회원권이 200억이나 한다는 말에 진서준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그럼 일반 회원은 얼마인가?”“10 억입니다.”곽윤상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며 말했다.“그리고 이 돈은 카드에 적립되는 게 아니라 그냥 회원권 발급 비용일 뿐입니다.”그 말을 듣고 진서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전국을 통틀어도 이런 가격을 자신 있게 책정하는 곳은 명주시의 호텔들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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