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는 수줍게 반항했다.“여보. 여기 서재예요. 여긴 불편해요.”남태준은 그녀의 옷을 벗기고 그녀를 안아 자신의 허벅지에 걸터앉혔다.그는 지우의 얼굴을 들고 고개를 숙여 키스하며 속삭였다.“많은 시간을 놓쳐도 괜찮아. 적어도 지금은 네가 내 곁에 있잖아. 네가 옆에 있다는 걸 절실하게 느낄 수 있어. 난 너를 놓치지 않았어.”노을빛이 창밖에서 어두운 서재로 비치고 분위기가 야릇하고 뜨거운 열기가 감돌았다.두 개의 심장이 두근대고 있었다.남태준은 엉덩이를 올리고 바지를 내렸다.그는 지우의 얼굴을 들고 깊고 옅은 키스를 반복하며 가장 진실하고 뜨거운 감각 자극으로 그녀의 존재를 느끼고 싶어 했다.그녀가 쓴 책을 읽고 나니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 책 속의 결말 때문에 슬퍼졌다.남태준은 이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열렬한 감각이 급히 필요했다.지금 가장 충실한 감각은 그녀의 몸을 갖는 것이다.그의 손은 지우의 뺨에서 흘러내려 가냘픈 몸을 쓰다듬더니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잡았다.강한 팔의 힘으로 허리를 이끌며 지우의 귓가에 다가가 귓불을 살짝 깨물고 속삭였다.“자기가 움직여봐.”지우는 두 손으로 그의 목을 감싸고 그의 두툼한 어깨에 얼굴을 묻고는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수줍어했다.행복한 날은 항상 이렇게 부끄러움이 없었다.어두컴컴한 서재,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녹초가 된 지우는 남태준의 몸 위에 엎드려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남태준은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만지며 부드럽게 속삭였다.“앞으로 이런 가학적인 소설은 쓰지 마. 보면 우울해져.”“알았어요.”지우가 나른하게 대꾸했다.“오늘 크랭크인 참석하러 갔어?”“맞아요. 마침 임다희를 만났잖아요. 여전히 말을 얄밉게 하더라고요.”“그런 사람 때문에 화내지 마. 그럴 가치도 없으니까.”지우는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어 남태준의 품에서 허리를 쭉 펴며 긴장한 듯 말했다. “나 오늘 임다희 손가락에서 당신이 전에 갖고 있던 반지와 똑같은 걸 봤어요.”남태준이 의문스러운 듯 물었다.“반지라
남태준은 지우의 말을 듣고 다음 날 경찰서로 돌아가 바로 상사에게 가장 믿을 만한 동료와 함께 임다희를 추적하는 것을 동의해달라고 신청했다.진연우는 그 사람이 왜 자신인지 너무 궁금했다.그러자 남태준이 대답했다.“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너야. 지금 큰 물고기가 바다로 나오려 하고 있어.”진연우는 순간 구미가 당겨 흥분하며 물었다.“어디서 얻은 소식이야? 확실해?”“꼭 그렇진 않아.”“그럼...”결국 남태준과 진연우가 임다희를 추적하기로 결정 났다.그 후로 두 사람은 하루 24시간 교대로 근무했다.경찰에 첩자가 있을 경우를 대비해서 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았다.임다희는 매일 촬영이 끝나면 호텔로 돌아갔고 가끔 요청을 받고 행사에 참석하곤 했다.며칠째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남태준은 벌써 며칠째 집에 돌아가지 않았고 지우에게 문자와 전화밖에 할 수 없었다.늦은 밤 임다희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그와 진연우는 교대로 집에 돌아가 씻었다.남태준은 매일 조용히 집에 가서 몰래 지우를 보고 그녀를 깨울까 봐 또 조용히 떠났다.이른 아침.지우가 일어나자 침대 옆자리가 여전히 텅 비어 있어 마음이 쓸쓸했다. 남편이 경찰이라는 생각에 있어서는 안 되는 우울한 감정을 묵묵히 견뎌내고 그를 이해하고 지지하려고 노력했다.물론, 그가 보고 싶었다.지우는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들어갔다.갑자기 위가 끓어올라 그녀는 급히 입을 특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가 안에서 구토를 했다.위가 불편하지만 헛구역질만 하고 토사물은 없었다. 오랫동안 토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토하지 못했다.지우는 숨을 깊게 돌리고 씻으러 달려갔다.아마 어젯밤에 야식을 먹어서 그런 것 같았다.지우는 다 씻고 아침을 먹으러 나왔다.아주머니가 그녀에게 생선 죽 한 그릇과 반찬 몇 가지를 가져다주었다.지우는 냄새를 맡자 참지 못하고 입을 가리고 헛구역질을 몇 번 했다.요리사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 긴장하며 말했다. “사모님 왜 그러세요?”지우는 웃음을 짜내어 답했다.
지우는 손이 떨리고 눈물이 핑 돌며 긴장한 채 물었다.“내가 정말 임신했어요? 이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은 없어요?”이하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런 가능성도 있지만 확률이 아주 낮아요. 여전히 못 믿겠다면 병원에 가서 피 검사를 받아보세요.”요리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저랑 같이 가세요.”“괜찮아요. 저 혼자 가도 돼요.”지우는 테스트기를 들고 흥분한 마음을 좀처럼 가라앉히지 못했다.“당분간은 태준 씨에게 말하지 마세요.”“네.”아침을 먹은 후, 지우는 혼자 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소변과 혈액을 검사했다.임신 4주가 최종 확정됐다.그녀는 흥분한 마음을 오랫동안 가라앉히지 못했다.당장 남태준을 만나 이 좋은 소식을 그와 공유하고 싶었다.그러나 남태준은 아이가 너무 일찍 오는 것을 그다지 바라지 않는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은 갑자기 찬물에 잠겨버렸다.남태준은 아이를 그렇게 원하진 않았다.병원을 나온 지우는 길가에 서서 차를 기다리며 손에 든 보고서를 보며 기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그때 갑자기 리무진 한 대가 달려와 그녀 앞에 멈추었다.그녀가 뒤로 두 걸음 물러서자 차에서 인상이 사나운 양복 차림의 남자 몇 명이 내려오더니 지우를 사냥감처럼 노려보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지우는 당황해서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볼륨 버튼을 길게 눌렀다.순간, 남자가 손수건을 꺼내자 지우는 놀라서 빌기 시작했다.“제발 기절시키지 마세요. 제가 순순히 따라갈게요.”그녀를 기절시키려던 남자도 놀라 멍해졌다.지우는 당황스러웠지만 냉정하게 행동하며 고급 차량에 다가가 뒤 칸에 탔다.남자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따라서 차에 올랐다.차에 탄 뒤 지우는 가방을 차에 놓고 조심스레 물었다.“당신들 누구예요? 나 지금 어디로 데려가요?”몇몇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검은 천을 꺼내 지우의 눈을 묶고 경고했다.“소리 내지 마.”“네.”지우가 머리를 끄덕였고 차량은 빠른 속도로 달렸다.한편.남태준은 진연우와 함께 임다희
남태준은 바로 결혼반지를 빼고 목에서 목걸이를 빼더니 반지 펜던트를 꺼내 손가락에 끼웠다.진연우가 궁금해서 물었다.“그게 뭐야?”남태준은 설레하며 대답했다.“배표.”“딱 봐도 반지인데 무슨 배표야?”진연우가 경악하며 물었다.“네가 직접 올라가려고?”남태준은 경계하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엄숙하게 말했다.“지금 당장 지원 요청하고 해경을 보내 저 배를 추적하게 해. 내가 신호를 보내면 바로 저 배를 수색 체포해.”“저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군데?”진연우는 어리둥절했다. 지우는 보이지 않고 그 어떤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남태준이 왜 저 배가 의심스럽다고 단정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남태준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마약패 빅보스.”이윽고 그는 재빨리 배에 올랐고 진연우는 부두에 서서 바라보았다.안전 검사를 할 때 남태준이 당당하게 그 반지를 꺼내니 쉽게 통과할 줄은 몰랐다.진연우는 남태준의 판단을 믿고 별다른 생각없이 바로 전화로 지원을 요청했다.지우는 눈앞이 캄캄하고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느낌이었다.아마 여러 명 있는 것 같았다.그때 그녀의 눈이 풀렸다.지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눈앞의 빛에 적응했다. 아담한 방 안의 가죽 소파에 두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지우는 그녀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임다희, 그리고 준영이라고 하는 그녀의 친구인 것 같은데 전에 5성급 레스토랑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지우가 임다희의 드레스에 커피를 뿌리고 옷 브랜드 측에 몇천만 원을 냈었다.지우가 다시 주변을 둘러보니 정장 차림의 경호원 4명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준영은 손을 뻗어 그녀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머리카락을 긁어모으고는 두 손을 소파에 유유히 얹었다. 흐릿한 눈을 가늘게 뜨고 지우를 가만히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준영의 몸에서 지우는 남성적인 카리스마를 느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무서운 욕망이 배어 있었다.지우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임다희를 바라보았다.임다희는 나른하게 준영의
준영은 재밌다는 듯 임다희를 밀어내고 지우 앞으로 가서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은 지우의 얼굴을 만졌다.지우의 미모를 감상하며 시선은 점차 그녀의 하얀 목선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고 살짝 느슨한 옷깃을 통해 섹시한 쇄골이 보였다.“이렇게 예쁜 얼굴을 망가뜨리기엔 너무 아깝지. 하늘이 내려준 복 받은 몸이잖아?”지우는 온몸에 소름이 돋고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이 들었으며 모든 세포가 이 여자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었다.그녀는 이 상황이 괴롭고 역겹고 당황하고 두려웠지만 조금도 내색하지 못하고 애써 담담한 척 강인하게 행동했다.이미 남태준에게 구조요청 메시지를 보냈으니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했다.“임다희가 그쪽 여자야?”그러자 준영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맞아. 근데 왜?”“임다희는 지금 당신을 이용해 전 남자친구에게 복수하고 있어. 그건 임다희가 아직 전 남자친구를 못 잊었다는 얘기지. 기꺼이 이용당하고 싶어? 화도 안 나?”준영은 살짝 넋이 나갔다.임다희는 화가 치밀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헛소리!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임다희는 마음이 어지러워 바짝 긴장해서 말했다.“이 여자 헛소리 듣지 말아요. 난 당신을 이용해 남태준에게 복수하려는 게 아니라 당신을 도와 남태준을 죽이려는 거예요.”지우가 코웃음을 치더니 차갑게 말했다.“내 남편을 죽이고 싶으면 직접 총을 쏘거나 나를 이용해 죽이면 되지. 물론 나도 함께 죽일 수 있고. 근데 왜 남자들을 이용해 날 능욕하고 약물을 주입하려고 해? 그건 이분의 물건을 낭비하는 일이고 또 너의 사적인 원한을 풀려는 목적 아니야?”임다희는 순간 안색이 창백해졌다.준영은 뜨거운 눈으로 만족스러운 듯 지우를 바라보았다.“아주 침착하고 덤덤하군. 정말 죽음이 두렵지 않아?”그러자 지우가 냉정하게 말했다.“두려워. 나 지금 아주 두려워하고 있어. 하지만 내가 두려워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져?”“남태준 옆에 오래 있어서 그런가? 용감하고 침착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꼭 남태준을 닮
지우는 준영의 뜻을 알아챘다.알고 보니, 임다희도 준영의 도구일 뿐이었다.“그러니까 애초에 내 남편을 학대해서 불구로 만든 것도 모자라 바다에 내던진 사람이 당신이란 거야?”지우가 한을 꾹 참고 물으니 준영이 차갑게 웃었다.“그때 남태준을 죽였어야 했는데. 숨이 붙어 있는 줄 몰랐어. 명줄이 길어 용케도 살아났고 심지어 원래 자리로 돌아가 여전히 나와 맞서고 있어.”지우는 크게 당황했다.남태준이 그동안 애타게 찾던 마약 밀매업자가 여자였다니.아주 무서운 여자였다. 만약 남태준이 온다면 위험하지 않을까?지우는 걱정하기 시작했다.준영은 소파에 다시 앉아 탁자 위의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이를 악물고 또박또박 말했다.“내가 남태준 때문에 요 몇 년 동안 얼마나 큰 손해를 본 줄 알아?”지우는 침묵했고 벌써 당황하기 시작한 임다희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떠나려 했다.“최소 1조 원의 손해를 봤어.”준영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술잔을 흔들며 바라보았고 숨결을 약간 헐떡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처음에는 스파이로 들어와 내 부하를 한 명 한 명 배신하면서 내 사업을 조금씩 망쳤어. 그러다 나중에는 아예 나를 물고 늘어졌고 내 사업은 계속 문제가 생겼어.”“내가 남태준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거야.”“그쪽을 너무 흉하게 죽이진 않을 거야.”준영은 미간을 찌푸리고 지우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어쨌든 너와 남태준은 모두 임다희의 손에 죽은 거로 보여야 하니 한 방에 목숨을 끊어주지. 몸이 더럽혀지는 일도, 약물이 투입되는 일도 없을 거야. 간단할수록 좋아. 그래야 경찰이 나를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임다희는 당황해서 긴장한 채 준영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지금 나더러 죄를 뒤집어쓰라는 거예요?”준영은 그녀의 턱을 만지며 능글맞은 말투로 속삭였다.“네가 그랬잖아. 나를 도와 남태준을 죽여주겠다고?”임다희는 무서워 목소리가 떨렸다.“남태준을 죽여주겠다고 약속한 건 맞지만 난 죽기 싫다고요! 당신이 내 뒤를 봐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
준영이 명령했다.“너희들, 남태준 아내를 데리고 내려가서 잘 가둬. 몸에 손대지 말고 잘 자키고 있어. 알아들어? 경찰이 절대 이 여자 몸에서 어떠한 단서도 발견해선 안 돼.”“네. 보스.”경호원은 즉각 대답하더니 지우에게 다가가 예의 바른 제스처를 취했다.“가시죠.”그들은 감히 지우에게 손도 대지 못했다.지우는 가면서 마지막으로 임다희를 째려보며 그녀는 벌을 받아 마땅하고 죽어도 아깝지 않다고 여겼다.처음에 지우는 남태준이 그녀를 구하러 오기를 바랐다.하지만 지금은 남태준이 절대 그녀를 구하러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가 절대 배에 오르지 말고 안전하기를 바랐다. 그들의 매복에 걸리지 않기 위해 절대 혼자 와서도 안 되었다.지우는 방에 갇혔고 밖에는 경호원 몇 명이 지키고 있었다.시간은 1분 1초 흘러갔다.지우는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고 안절부절못하며 창밖의 풍경을 내다보았다. 너무 괴롭고 허망하고 무기력했다.“태준 씨, 제발 오면 안 돼요. 제발 나 구하러 오지 말아요.”지우는 마음이 찌릿찌릿 아파 났다. 남태준이 배에 타면 사살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수백 조각으로 찢어지는 듯 떨리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배를 쓰다듬으며 울먹였다.“아가야, 넌 엄마와 같이 죽는 거니 무서워할 거 없어. 이번에는 아빠 데리고 가지 말자. 응? 아빠는 살아야 해. 반드시 잘 살아가야 해.”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지우는 허기가 졌다. 그녀가 창밖을 내다보니 보트 한 대가 이쪽에서 천천히 떠나고 있었다.그녀는 급히 창문에 엎드려 그 떠나는 보트를 자세히 보았다.남태준을 태운 보트만 아니면 되었다.보트는 아주 빨리 떠났지만 그녀는 준영의 뒷모습을 확실히 보았다.준영은 이 크루즈에 물샐틈없는 그물을 치고 남태준이 배에 오르기를 기다리며 자신은 먼저 발을 뺐다.남태준과 지우를 죽인 죄명은 아마 임다희가 뒤집어쓸 것으로 보였다.지우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더니 침대로 돌아가
그녀의 심장 박동은 쿵쾅쿵쾅 이백 이상을 뛰어넘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고 아랫배에서 통증이 전해졌다.남태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지우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뚝 떨어졌고 긴 숨을 내쉬고는 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흥분해서 울고 싶은 것도 아니고 슬퍼서 울고 싶은 것도 아니라 너무 놀라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남태준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하고 귓가에 위로했다.“여보. 괜찮아. 소리 내지 마. 나 왔어.”지우는 어렴풋이 아픈 아랫배를 가리고 천천히 내려앉더니 두 발이 나른해졌다.남태준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고 서둘러 수도꼭지를 열고 나지막이 물었다.“왜 그래?”“왜 그렇게 사람을 놀라게 해요?”지우가 눈물을 머금고 중얼거리자 남태준은 미안한 마음에 설명했다.“이 방에 갇혀 있는 사람이 너인지 확실하지 않아서 숨어야 했어. 너인 거 확신하고 나온 거야.”지우는 눈살을 찌푸리고 아랫배의 통증을 참으며 물었다.“언제 왔어요?”“배가 출발하기도 전에 올라왔어.”남태준은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느끼고 긴장하며 물었다.“너 왜 그래? 어디 아파?”지우가 낮은 소리로 나무랐다.“당신 때문에 유산할 것 같아요.”유산이라는 두 글자에 남태준은 한바탕 놀라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 긴장하고 당황해서 물었다.“당신... 임신... 했어? 언제 임신했어? 난 전혀 몰랐어.”지우는 서둘러 그의 입을 막고 긴장된 표정으로 밖을 내다봤다.그녀는 급히 걸어가서 화장실 문을 닫고 이번에는 샤워기도 틀었다.그러자 화장실은 온통 물소리뿐이었다.남태준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호흡이 어지러워 긴장한 채로 지우를 바라보았다. 흥분한 눈빛은 죄책감에 휩싸여 복잡하기 그지없었다.그가 가장 설레고 행복한 순간이어야 하는데 이런 결말일 줄은 몰랐다.그가 오래도록 기다린 두 사람의 아이가 왔는데 자신 때문에 유산했다니.남태준은 순간 이런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며 죄책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지우의 손을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미
끝난 후, 너무 수줍은 남서연은 백건이 어찌할 수 없는 틈을 타 재빨리 자신의 옷을 챙겨 입고 거의 도망가듯 뛰쳐나갔다.“서연아...”백건은 옷을 챙겨 입지 못해 따라잡을 수 없었다.그녀는 사무실을 뛰쳐나가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숨을 헐떡였다.그녀가 디자인 부서로 돌아왔을 때 여다혜는 급히 걸어가서 책상을 두 손으로 받치고 그녀의 붉어진 얼굴과 약간 불그스름한 입술을 보았다.“서연아, 왜 그래?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너 점심 먹었어?”남서연은 마음이 켕겨 감히 여다혜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먹었어. 혼자 먹었어.”“식당에서 너 못 봤는데? 그리고 평소에는 30분이면 다 먹더니 오늘은 왜 한 시간이나 걸렸어?”“나... 구내식당이 아니라 밖에서... 멀리 가서 먹었어.”여다혜는 불쾌해하며 그녀의 손을 두드렸다.“왜 좋은 곳에 나는 안 데리고 갔어?”남서연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귓가에 있는 머리를 뒤로 넘겼다.“다음에. 다음에 꼭 데리고 갈게.”여다혜가 깜짝 놀라 외쳤다.“너 움직이지 마.”남서연은 경악에 찬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여다혜는 그녀의 긴 머리를 쓸어올리고 귓불 뒤 목덜미에 닿는 위치를 보며 의아해하며 물었다.“너 목에 왜 빨간 자국이 있어? 마크 같아.”“무슨 마크?”“키스 마크!”크게 당황한 남서연은 황급히 긴 머리를 풀어 목을 가리고는 화난 척 말했다.“함부로 말하지 마. 그냥... 긁은 거야. 모기한테 물려서 난 자국이야.”모기에 물린 것인지, 키스 마크인지 여다혜는 경험자로서 한눈에 알 수 있었다.더군다나 남서연은 지금 볼이 붉어지고 눈 밑에는 수줍음이 가득했다.여다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물었다.“서연아, 너 정말 우리 오빠 안 좋아해?”“안 좋아해. 자꾸 엮지 마.”남서연이 나지막이 말하자 여다혜는 어깨를 으쓱하고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그럼 돌아가서 희망이 없다고 오빠에게 말할게. 네 생각하지 말고 빨리 다른 여자 만나라고.”남서연은 담담하게 웃었다.
백건은 그녀 앞에 와서 안색이 어두워지고 눈빛이 흐려지며 부드러운 말투에 약간 불쾌함을 띠었다.“나 무서워하지 마. 서연아.”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가로저었다.백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일할 때는 좀 엄숙하긴 하지만 부하직원에게만 그래.”남서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나도 부하직원이잖아요.”백건은 화가 나서 웃더니 고개를 떨구고 어쩔 도리가 없었다.남서연은 자신이 말실수를 한 줄 알고 급히 해명했다.“무서워한 게 아니라 그냥 좀 적응이 안 됐어요.”차이가 너무 컸으니 말이다.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사납다가 갑자기 그녀에게 너무 다정하게 대해서 적응이 안 됐을 뿐이다.백건이 손목을 들어 시간을 살펴보더니 물었다.“배고파?”남서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너무 배고픈 건 아니에요.”백건은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옆 휴게실로 향했다.그는 남서연의 마음을 떠보고 싶었고 그녀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백건은 문을 열고 들어갔고 그녀도 끌고 들어갔다.문이 닫히자 남자는 곧장 그녀를 문짝에 눌렀다. 두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가두고 몸을 붙이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남서연은 깜짝 놀라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져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남자의 강한 호르몬이 그녀를 감싸고 있고 보이지 않는 압박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며 호흡에는 그의 몸에서 나는 향기가 가득했다.남자는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의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관능적인 목젖을 위아래로 구르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서연아. 네가 거절하지 않는 건 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돼?”남서연은 머리가 하얘지고 몸이 약간 떨릴 정도로 긴장했다.문득 남자의 얼굴이 다가와 얇은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막았다.“음!”그녀는 수줍은 소리를 내며 벽에 등을 바짝 붙였다.그의 키스는 매우 갑작스러웠고, 거칠면서도 거침없이 그녀의 입안을 침략하고 입과 혀를 섞었다.그의 키스는 매우 깊었다.남자는 서서히 자신의 몸을 눌렀고 나른해
그녀는 넓은 홀을 걸으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비서 자리는 텅 비어 있었고 하현우는 보이지 않았다.대표 사무실의 문이 굳게 닫혀있지 않았다.남서연은 궁금해서 앞으로 걸어가며 문을 두드리려고 했다.그때 안에서 서류 뭉치가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가까이 다가간 남서연은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백건의 냉엄한 목소리만 들렸다.“당신 사람들 데리고 당장 나가세요!”그러자 연륜이 느끼지는 중후한 목소리가 버럭 화를 냈다.“백건! 너무 나대지 마. 내가 네 할아버지와 사업을 일굴 때 넌 태어나지도 않았어.만약 네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넌 날 보고 끽소리도 못 냈어. 네 아버지가 나를 봐도 아저씨라고 정중하게 부르는데 네가 감히 나를 해고해?”백건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맞아요. 나는 지금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을 해고하고 있어요. 당장 나가세요.”“네가 뭔데 나를 해고해? 내가 공로는 없어도 고생은 함께 했는데 어떻기 감히 나를 내보내?”“당신 손에 있는 주식, 매달 월급 그리고 매년 주어지는 배당금까지, 전부 고생 값이에요. 회사는 이미 현금으로 보상했으니 더 이상 빚진 것 없어요. 사람이 늙으면 능력이 떨어지고 더 이상 가치를 창출할 수 없으면 회사 자원을 점유하지 말고 집에 가서 노후를 보내야죠.”“백건. 네 이놈!”“당신 낙하산을 타고 들어온 사람들 한 명도 남기지 마세요.”또 한바탕 큰소리에 남서연은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예순 살쯤 된 늙은 남자가 양복 차림의 젊은이 몇 명을 데리고 사무실을 나섰고 입구에서 남서연과 부딪혔다.남자는 남서연을 매섭게 쏘아보더니 조롱했다.“바로 너야? 일개 디자이너가 감히 대표 사무실에 찾아와? 생긴 건 번지르르하네. 몸을 팔아 디렉터를 쫓아낸 거지?”남서연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전 디자인 디렉터도 그의 사람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깨달았다.말을 마친 남자는 사람들을 데리고 사무실을 떠났다.백건은 소리를 듣고 뛰쳐나왔고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안색이 좀 긴장된 남
“대... 대표님. 아침부터 제가 뭐 잘못했나요? 왜 그러세요?”백건의 목소리는 얼음 창고에서 흘러나오는 듯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느껴졌다.“어제저녁에 왜 야한 영화를 보냈어? 잘리고 싶어?”하현우는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렀고 침을 삼키고 긴장하며 말했다.“그건 대표님께서... 로맨스 애니메이션 영화를 부탁하셨잖아요. 혼자 사는 성인 남자가 저녁에 영화를 달라고 하니. 그리고 대표님은 애니메이션도 안 보고 로맨스 영화도 안 보시니 분명 그런 장르를 원한 거 아니셨어요?”백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를 갈았다.“서연이가 보려고 한 거야. 내가 로맨스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해 모르니 네게 부탁한 거고. 네가 무슨 짓을 한 줄 알아?”하현우는 어안이 벙벙하고, 입이 떡 벌어지며,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져 오랫동안 진정되지 않았다.백건은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그의 옷깃을 풀어주고 한 발짝 물러서서 경고했다.“만약 서연이가 이 일로 날 미워하고 나에 대해 나쁜 인상을 받았다면 넌 바로 아웃이야.”하현우는 깜짝 놀라며 90도로 허리를 숙였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반드시 만회할 방법을 찾을게요. 반드시 대표님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백건은 차가운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하현우는 이마의 식은땀을 닦고 급히 운전석을 열고 들어가 차를 몰고 떠났다.가는 내내 하현우는 어떻게 만회해야 할지 고민했고 백건은 뒷좌석에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순간 하현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서연 아가씨께서 어제 영화를 끝까지 안 보셨죠?”“응.”백건이 덤덤하게 대답하자 하현우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물었다.“그럼 대표님은요?”“다 봤어.”백건이 솔직하게 말하자 하현우는 꾹 참으며 감히 웃지 못했다.그는 재미있는 영화를 거절할 수 있는 남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남자가 아닌 한.하현우가 또 물었다.“그런 영화 자원이 더 필요하세요?”백건은 서류를 덮고 눈을 감더니
색은 남녀의 천성이었다.남자로서 자신이 호색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었다.“호색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때는...”백건이 설명하려는데 남서연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남서연은 다급히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뒤적거리며 크게 당황했다.백건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벨 소리에 묻혔다.“내가... 널 좋아하니까.”“여보세요, 할머니!”남서연은 휴대전화를 귓가에 대고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친구랑 같이 있어요. 곧 돌아가요... 아니에요. 오빠가 데리러 올 필요 없이 저 혼자 택시 타고 돌아가면 돼요... 자꾸 저 어린애 취급하지 마세요. 저도 이제 23살이에요. 어린애가 아니라고요... 네 알겠어요. 이따가 봬요.”남서연은 통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고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요?”백건은 안색이 굳어지더니 말이 목에 걸렸다. 몇 초 동안 침묵하다가 몸을 돌려 차 키를 가지러 갔다.“데려다줄게.”“괜찮아요. 택시 타고 가면 돼요.”남서연이 거절했지만 백건은 차 키를 들고 신발을 갈아 신고 남서연의 옆을 지나면서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남서연은 등뼈가 굳어지며 한발 한발 밖으로 따라나섰고 시선은 자신의 손을 잡은 남자의 손에 고정되었다. 그의 따뜻한 큰 손바닥은 마치 전류가 흘러 그녀의 손바닥 피부에서 팔다리로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다정한 촉감에 그녀는 심장이 벌렁거렸다.그녀는 온몸이 긴장되고 호흡이 좀 가빠졌다.백건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기는 게 아니라 손바닥을 잡아주고 있었다.이토록 다정하게 남자의 손바닥에 닿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남서연은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져서 가슴이 쿵쾅대며 몰래 즐거워하고 있었다.백건은 그녀를 차량 옆으로 끌고 가 조수석 문을 열어주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수줍게 숙이고 있었다.여자의 수줍은 자태는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그제야 자신이 남서연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손을 놓지 않았
저녁을 먹고 나니 8시가 넘었고 남서연은 과일도 조금 먹었다.이렇게 큰 집에 그녀와 백건 두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다소 긴장되고 어색했다.그녀는 시간을 보고 일어섰다.“시간이 늦었어요. 저 갈게요.”백건은 부랴부랴 일어나 다급하게 남서연의 손목을 잡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서연아.”남서연이 그를 뒤돌아보니 그의 눈빛에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조금만 더 앉아 있어. 조금만. 아직 9시도 안 됐으니 조급해하지 마.”남서연은 거절하기 미안하고 또 좋아하는 남자가 붙잡으니 다소 마음이 약해져 다시 자리에 앉았다.“그래요.”백건은 그녀가 심심할까 봐 물었다.“TV 볼래? 아니면 영화?”남서연은 2초간 머뭇거리다가 물었다.“애니메이션 영화 봐도 돼요?”백건은 2초간 어리둥절하더니 말했다.“그래. 어떤 애니메이션 보고 싶어?”남서연이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그녀가 너무 귀엽고 동심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면 그도 함께 볼 수 있었다.그녀와 함께라면 무엇을 해도 지루하지 않았다.남서연은 생각하다가 말했다.“아무거나요. 사랑을 다룬 애니메이션 아무거나 골라봐요.”백건은 그런 것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었다.그는 평소에도 TV와 영화를 보지 않고 애니메이션은 더더욱 본 적이 없었다.그는 리모컨을 들고 TV를 켰다.자신이 잘 못 골라서 남서연이 지루해할까 봐 휴대전화를 꺼내 하현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당장 재미있는 로맨스 애니메이션 영화 하나 보내줘. 꼭 재밌어야 해.”잠시 후 하현우가 영화 링크를 그의 휴대전화로 보내주며 꼭 이어폰을 끼고 보라고 일러줬다.백건은 별생각 없이 거실 조명을 어둡게 하고 휴대전화의 링크를 TV에 띄웠다.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그리 가깝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영화가 시작되면서 남서연은 서서히 몰입했다.영화의 질감은 아름다운데 여주인공의 몸매가 너무 화끈하고 옷차림도 살짝 드러났다.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남녀주인공을 둘러싼 짝
사장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인사했다.“감사합니다. 곧 보내드릴게요.”백건은 남서연을 끌고 나가 한적한 시장 거리에 서서 화가 난 채로 몸을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남서연은 어렴풋이 백건의 화를 느끼며 긴장된 듯 침을 삼키고는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화를 꾹 억누르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남서연, 마지막으로 알려두는데 난 남우영의 삼촌이지 네 삼촌이 아니야. 난 네 부모님과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고. 알아들어?”남서연은 그가 왜 화가 났는지 몰라 거듭 사과했다.“미안해요. 알았어요. 다음부터는 그렇게 부르지 않을게요.”백건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허탈하게 그녀를 쳐다보았고 남서연도 그를 바라보았다.두 눈이 마주치자 눈빛 사이에 조금 다른 감정이 흘렀다.남서연이 용기를 내어 물었다.“오빠, 진짜 승아 누나와 사귀는 사이가 아니에요?”“아니야.”남서연은 심장이 콩닥거렸고 또 물었다.“그럼 여자친구는 있어요?”“없어.”남서연은 속으로 기뻐하며 자신이 웃지 못하도록 입술을 오므리고는 담담한 척 대답했다.“아!”마음을 진정한 백건이 말했다.“가자. 화분이 배달되면 어떻게 놓을지 네가 봐줘.”남서연은 바짝 긴장했다.“오빠 집에까지 가자고요?”백건은 그녀의 말투를 듣고 그녀가 싫어하는 줄 알고 급히 설명했다.“그냥 화분 놓을 위치만 봐줘. 끝나면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게.”“네.”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쑥스러운 미소를 숨겼다.두 사람은 차에 올랐고 시동을 걸고 떠났다.가는 길에 남서연은 그에게 그때 무슨 마음으로 자기와 잠자리를 가졌는지 너무 묻고 싶었다.하지만 너무 어색해 결국 묻지 못했다.남자와 여자는 달랐으니 말이다.어떤 남자들은 사랑을 떠나 그저 외롭고 욕망이 끓어오르면 아무 여자나 찾아 생리적 수요를 해결하면 되었으니.산 중턱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웠다.그들이 막 집에 도착했을 때, 화분을 운반하는 차도 도착했고 일꾼들은 화분을 운반하고 차에서 내려 집으로 배달했다.남서연은 화분의 위치
“오빠. 우리 둘뿐이에요?”“응.”“그래요.”남서연은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서둘러 조수석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맸다.문을 닫은 백건은 운전석으로 돌아가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떠났다.석양이 서쪽으로 지고 붉은 노을이 하늘에 가득했다.차 안의 분위기는 다소 답답하고 억압되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으니 분위기가 점점 더 어색해졌다.남서연은 그 정적을 깨려고 화제를 찾으려 했지만 너무 떨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몇 번이나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그때 백건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우영이는 네가 나와 꽃 사러 가는 거 알아?”“몰라요. 다혜랑 쇼핑 간다고 말했어요.”백건의 안색이 굳어지며 마음이 좀 언짢았다.꽃을 사러 시장에 가는 것은 낯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왜 그의 존재를 숨겼을까? 그와 쇼핑하러 가는 것도 가족을 속여야 하는 일일까?새가 지저귀고 꽃이 향기로운 꽃 시장에 간 두 사람은 어리둥절했다.그들은 모두 처음 와서 이 시장이 6시부터 문을 닫는 것을 몰랐다.차를 세우고 둘러보니 두세 군데 가게에 그래도 녹색 식물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화분 필요하세요?”마감 정리를 하던 사장이 반갑게 인사했다.남서연은 백건과 나란히 가게로 걸어가서 사방을 둘러보았다.백건은 남서연의 곁에 다가가 부드럽게 물었다.“뭐가 맘에 들어?”남서연은 그제야 모든 녹색 식물이 아름답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대나무 같은 녹색 식물을 가리키며 말했다.“이거 예쁘네요.”그러자 백건이 사장에게 말했다.“이 친구가 좋아하는 거 다 포장해 주세요.”사장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네. 알겠습니다.”많은 희한한 녹색 식물이 정교하고 예쁘게 생겼다. 처음 본 남서연은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이것도 예쁘네요.”“이건 무슨 꽃이에요? 실내에서 키울 수 있어요?”“태양이 조금 필요한 베란다에 심을 수 있어요.”“그것도 사죠.”백건이 말했다.남서연은 구석에 있는 이상한 식물을 보고 얼른 백건의 팔을 잡아끌었다.“오빠. 저것 좀
남서연은 심장이 움찔하더니 두 손으로 휴대전화를 꼭 잡은 채 백건이 보낸 메시지를 읽었다.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읽으며 매 글자의 뜻을 모두 이해했다.‘지금 나와 단독으로 만나겠다는 건가? 가야 하나?’남서연은 고민하다가 운전석의 남우영을 돌아보고 떠보듯 말했다.“오빠, 내일 퇴근 후에는 나 집에 데려다줄 필요 없어요.”“왜?”“그게...”야근한다고 하면 남우영이 곧바로 조사해서 거짓말이라는 걸 알 테니 거짓말을 지어냈다.“친구랑 쇼핑하려고요.”“어느 친구? 어디서 쇼핑하는데?”남우영이 묻자 남서연은 자신 없이 대답했다.“회사 동료 다혜랑요. 회사 근처에서 쇼핑할 거예요.”남우영은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그래. 그럼 조심하고 일찍 집에 돌아와.”남서연은 속으로 기뻐하며 남우영에게 기대어 애교스럽게 웃었다.“고마워요 오빠.”남우영은 어리둥절했다.“나한테 왜 고마워해? 재미있게 놀아.”이어 주머니에서 블랙 카드 한 장을 꺼내 남서연에게 건넸다.“마음껏 사.”“괜찮아요. 나 돈 있어요. 충분해요.”남우영은 웃으며 카드를 남서연의 손에 쥐여주고 사랑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넣어둬. 오빠 돈 써. 네 돈은 모아서 부자 돼야지.”남서연은 입술을 오므리고 빙그레 웃었다.“고마워요.”그녀는 다시 휴대전화를 보았지만 아직 백건에게 답장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채팅창에 입력 중이라고 떴는데 갑자기 취소되고 조금 있다가 다시 입력 중이라고 떴다.한참이나 메시지를 받지 못하자 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타이핑을 했다.서재에 있는 백건은 휴대폰을 보고 또 보았다. 책상 위에 놓았다가 또 들고 메시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그녀의 답장을 애타게 기다렸다.‘왜 답장을 안 하지? 나와 함께 나가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모르는 건가?’뚜뚜.백건은 방금 내려놓은 핸드폰을 빠르게 집어 들고 열어보았다.[좋아요. 하지만 내일 출근해야 해서 퇴근 후에 시간 있어요.]백건은 미간을 구부리고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바로 답장했다.[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