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 부동산, 급여, 복리후생, 상여금, 적금... 합치면 몇백억 단위로 계산해야 했는데 그녀는 어떤 천문학적 숫자가 나올지 몰라 계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녀는 대체 무엇으로 남태준과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열등감에 짓눌린 지우가 시무룩해서 말했다.“혼전 재산 공증이나 하러 가세요.”‘뭐지? 정말 복수만 하고 나 뻥 차버릴 생각인가?’지우를 달래서 결혼하려 했을 때부터 남태준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평생 그녀에게 이혼 사유와 핑곗거리를 주지 않을 것이다.남태준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랑스럽게 말했다.“만약 내가 결혼 전에 재산 공증을 한다면 네가 어떻게 내 돈을 쓰고 어떻게 나한테 복수하겠어?”그녀는 그저 수십억 원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남태준의 재산은 그녀가 결코 다 쓸 수 없는 금액이었다.그가 투자한 프로젝트가 실패하지 않고 그의 가문 기업이 파산하지 않으면 그는 끊임없이 고액의 수입을 올릴 것이다.지우는 그의 손길을 피하며 씁쓸하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지금의 지우가 자꾸 자신을 피해 남태준은 마음이 무거웠다.“앞으로 이건 네가 맡아줘.”남태준이 서류를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그러나 지우는 뜨거운 감자를 받은 듯 급히 서류를 남태준에게 내던졌다.“난 재테크도 할 줄 모르고 이렇게 많은 재산을 관리할 줄도 모르니 나에게 주지 말아요.”말을 마친 지우는 후다닥 일어나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갔다.문이 닫히는 순간 지우는 문짝에 기대어 고개를 들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그녀는 자신이 너무 쓸모없다고 느꼈다.평생 가난하게 살았고 모처럼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갈 수 있는데 이렇게 패기가 없고 거금을 손에 쥐지도 못하고 겁을 먹고 있으니 참.대체 자신은 무엇을 위해 남태준에게 시집가려 했을까?남태준은 그저 그녀에게 질려 이별을 고했고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더 적합한 여자를 찾지 못해 다시 그녀에게 돌아와 결혼하려는 쓰레기 같은 남자였다.그와 결혼
쥐 죽은 듯 고요하고 깊은 밤 단풍 숲 밖은 캄캄하며 드문드문 가로등이 정원의 한구석을 밝히고 있었다.지우는 저녁부터 잠을 자서 새벽 12시에 일어났는데 저녁을 안 먹었더니 배가 고팠다.그녀가 방을 나서니 집 안의 거실은 불빛이 매우 밝았다.남태준은 캐주얼한 실내복 차림으로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한 손은 소파 등을 걸치고 한 손에는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는데 기척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지우는 남자의 그윽하고 예쁜 검은 눈동자를 마주친 순간 멈칫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며 입을 열었다.“아직... 안 잤어요?”남태준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부드러운 웃음을 띠며 말했다.“아직.”그녀가 보고 싶어서, 벽 한 칸을 사이에 두고 있어도, 아침에 만났어도 저녁이 되면 왠지 모르게 그녀가 자꾸 보고 싶었다.그녀의 문을 두드리기 미안해 거실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지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부엌으로 향했다.남태준은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일어나서 그녀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다.지우는 냉장고 문을 열고 계란 한 개, 야채 한 움큼, 그리고 찬장에서 국수 한 봉지를 찾았다.그녀는 테이블에 물건을 놓고 조미료를 찾기 위해 좌우를 둘러보았다.문득, 등 뒤로 따뜻한 두툼한 가슴이 다가와 남자의 숨결이 일순간에 감돌았다.지우는 경직되어 온몸이 팽팽해졌고 심장이 갑자기 빨라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배고파?”남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대고 중얼거렸다.지우는 목을 움츠리고 그의 친밀한 행동을 슬쩍 피했다.헤어진 지 너무 오래되어 그녀는 남태준의 친밀한 행동을 당분간 적응할 수 없었다.“네.”지우가 나른하게 대답했다.“내가 삶아줄게.”남태준은 그녀의 뒤로 손을 뻗어 그녀 앞에 있는 음식을 들었다.지우는 그가 뒤에서 안은 것 같아 왠지 모를 수줍음이 번졌고 심장은 두근두근 뛰었고 귀밑에서부터 볼까지 후끈 달아올랐다.“그래요.”지우는 그의 앞에서 빠져나와 남태준에서 조금 떨어져 옆으로 옮겼다.조금
전에 남태준과 연애할 때, 지우는 자신이 언젠가 재벌가에 시집갈 수 있다는 것을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지금 남태준이 갑자기 그녀에게 청혼했고 그녀는 얼떨결에 승낙하게 되었다.갑작스러운 변화에 그녀는 당황했다.지금 냉정하게 생각하면 너무 충동적인 결정이었다.그때 남태준이 계란 국수 한 그릇을 들고 와서 지우 앞에 놓고 그녀 옆에 앉았다.“맛이 괜찮은지 한 번 먹어봐.”지우는 가슴이 따뜻해졌고 고개를 숙여 국수와 희끗희끗한 삶은 계란, 파릇파릇한 청경채를 내려다보았다.아주 맛있어 보였다.그녀는 젓가락을 들어 국수 몇 개를 집어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너무 맛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정식 계란 국수의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지우는 기분 좋게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말했다.“맛있어요. 고마워요.”남태준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만족해하며 따뜻한 눈빛으로 지우를 바라보았다.정말 배가 고팠던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먹기 시작했다.몇 입 먹고 지우는 그릇을 들고 국물을 마셨다.남태준을 힐끗 쳐다보니 그는 마치 어린아이를 보듯 다정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우는 순간 호흡이 흐트러져 천천히 그릇을 내려놓고 입술을 오므렸다.저도 모르게 자신의 이미지에 신경을 쓰게 됐다.“좀 먹을래요?”지우가 묻자 남태준이 몸을 기울여 말했다.“한 입만 먹어볼게.”“젓가락 가져올게요.”지우가 일어나려 하자 남태준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우리 내일이면 결혼하는데 젓가락도 같이 못 써?”지우는 가만히 서서 그를 바라보며 망설였다.못 쓰는 게 아니라 그저 쑥스러웠기 때문이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가장 익숙한 낯선 사람이던 남태준과 연애를 건너뛰고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니.그 차이가 너무 커서 자연스러운 친밀감도 부족했다.남태준은 지우의 태도를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됐어. 나 안 먹어.”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놓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다 먹고 나면 그릇과 젓가락은 여기 놓으면 돼. 내일 아줌마가 치울 거야.”지우가 고개를
그의 반응에 지우는 쑥스러워하며 설명했다.“미안하지만 난 옷이 별로 없어요. 이 치마가 그래도 좀 포멀한 편인데 괜찮을까요?”남태준이 다정하게 웃었다.“너 오늘 너무 아름다워.”지우가 화장하고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었고 전에도 치마를 거의 입지 않았다.정말 아름다웠다.남태준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지우는 그의 큰 손을 보고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그에게 손을 건네주었다.지우의 손을 잡는 순간 남태준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의 온 세상을 이끌고 행복의 길로 향했다.예약 시간을 놓친 그들은 다른 부부들처럼 다시 줄을 서서 서류를 작성하고 로비에서 이름을 부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남태준은 앞의 번호를 보고 다시 고개를 숙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번호를 보며 긴장하여 손바닥에 땀이 배어 그는 자신도 모르게 허벅지를 비볐다.옆에 젊은 남자가 남태준을 한참을 지켜보다가 물었다.“이번이 처음이에요?”남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처음입니다.”남자가 가볍게 웃었다.“긴장하지 마세요. 그저 사인하고 서류를 작성하고 서약서를 읽고 직원이 서류를 확인하면 끝나니까. 아주 간단해요.”“이미 해보셨어요?”남자는 의기양양해서 말했다.“난 이번이 세 번째예요.”남태준은 경악했고 지우도 이 말을 듣고 호기심에 그 남자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남자는 남태준과 지우의 표정이 똑같은 것을 보고 황급히 설명했다.“지금 제 아내와 두 번 이혼했어요. 지금은 세 번째로 다시 결혼하는 거고.”남태준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이 사람은 결혼을 장난으로 여기나?’남자가 지우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아내분이 참 미인이시네요.”“감사합니다.”“알고 지낸 지 얼마나 됐어요?”“꽤 오래됐어요.”“누가 먼저 대시했어요?”남태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남자를 보았다.“비밀이에요?”“내가 먼저 대시했어요.”“예물은 얼마나 줬어요?”“...”“설마 안 줬어요?”남자는 조롱하듯 남태준을 바라보았다.“그건 아니죠. 저렇게 예쁜 아내를 얻는
“응.”“나 편집장이 볼일 있다고 해서 회사에 다녀와야 해요.”“오늘...”남태준은 말을 꺼내자마자 멈칫했다.오늘 이렇게 중요한 날, 그는 특별히 멋지게 차려입고 그녀와 축하하기 위해 뒤 일정을 모두 안배해 놓았다.점심은 고급 레스토랑을 대절해 식사하고, 식사 후에는 크루즈를 타고 바다로 나가 둘만의 시간을 가지며 로맨틱한 바다 풍경을 감상하고, 저녁에는 크루즈에서 식사하며 야경을 보고, 저녁에는 5성급 호텔의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에서 좋은 밤을 보낼 생각이었다.“아주 급한 일이야?”남태준은 조금 난감해서 물었다.그러나 그의 생각을 모르는 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아주 급한 일이에요. 메시지를 아주 많이 보낸 거 보면 아마 그 표절 소송 때문일 거예요.”“편집장은 오늘 네가 결혼하는 거 몰라?”“내가 말하지 않았어요.”남태준은 마음이 쓸쓸했다.그는 가볍게 숨을 내쉬고 나서 차 열쇠를 꺼냈다.“내가 데려다줄게.”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반 시간 후, 지우는 회사 밑에 도착했다.“먼저 돌아가세요. 나 기다릴 필요 없어요.”지우는 그가 혼자 기다리면 심심할까 봐 가라고 했지만 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회사 안으로 걸어갔다.“같이 들어가자.”두 사람은 나란히 회사 로비에 도착했다.모두의 시선이 지우에게 쏠렸지만 그 시선의 높이가 조금 높은 것 같았다.지우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옆의 남태준을 보았다.오늘의 그는 확실히 사람의 이목을 끌 만했다.강직하고 잘생긴 얼굴, 뚜렷한 이목구비,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남성 호르몬은 야성미를 마구 발산하고 있었다.만약 그가 군복 차림에 무기를 들고 있다면 수많은 여자를 미치게 할 것이다.곧 두 사람은 편집장 사무실에 도착했다.여민재는 지우가 지난번 같이 왔던 남자를 데리고 온 것을 보고 얼른 일어나서 맞이했다.“얼른 들어와 앉아. 오늘은 친구도 같이 왔어?”남태준은 한 손으로 양복 재킷의 단추를 풀고 소파에 앉아 앞에 있는 여민재를 향해 엄숙한 어조로 말했
남태준의 말에 지우는 안심이 되었다.편집장은 지우와 앞으로 대처 방안과 소송이 어떻게 처리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남태준은 사무실을 나서며 전화 한 통을 걸었다.잠시 후 그는 다시 걸어 들어와 지우가 상사와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조용히 옆에 앉아 지켜보았다.여민재는 얘기하다가 실검을 보더니 놀라 멍해졌다.“뭐야? 다 내렸어?”그가 놀라서 소리치자 지우가 경악해서 물었다.“뭐가 내렸는데요?”여민재는 짧은 시간 동안 마치 마술이라도 부린 듯 인터넷이 깨끗해진 것 같았다.“실검에서 다 내렸고 주제를 검색해도 네가 표절했다는 기사를 찾아볼 수 없어.”지우가 다급히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더니 그녀도 깜짝 놀랐다. 인터넷 정보를 다 뒤져도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그녀가 경악하여 고개를 들어 남태준을 바라보니 그는 지우를 보며 입술을 오므리고 웃고 있었다.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의 초능력은 상상할 수 없었다.지우는 남태준이 손을 썼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업무 이야기가 끝난 후 지우는 남태준을 따라 회사를 떠났다.이미 점심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지우는 배가 너무 고파서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다.계획이 틀어져도 남태준은 서운해하지 않았지만 지우의 우울한 기색을 보고 그녀의 고민거리를 해결해주려 했다.집에 돌아온 지우는 가운으로 갈아입고 노트북을 안고 나왔다.“나 태준 씨 서재 좀 써도 돼요?”남태준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앞으로 이 집의 모든 물건과 장소는 모두 네 것이야.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내 동의 같은 거 구할 필요 없이 네가 쓰고 싶으면 쓰는 거야.”지우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말을 마친 그녀는 노트북을 안고 서재로 들어가 일을 했다.그녀의 고맙다는 인사가 너무 거리감이 느껴져 남태준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는 힘없이 넥타이를 풀어헤치고는 양복 외투를 벗었다.지우는 오후 내내 서재에서 바쁘게 지내다가 저녁
지우는 멍해졌다.남태준은 자신의 손을 들어 손가락의 남성용 반지를 보여줬다.“이거 우리 결혼반지야. 앞으로 절대 빼지 마.”지우가 나른하게 대답했다.“알았어요.”남태준은 사랑스러운 지우의 얼굴을 바라보다 참지 못하고 그녀의 이마에 뽀뽀했다.그러자 지우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이제 열두 시가 돼가는데 우리 마누라 일어나서 점심 먹지 않을래요?”남태준이 다정하게 묻자 지우는 얼굴이 살짝 붉어지고 열이 좀 올랐다.“출근 안 해요?”지우가 호기심에 묻자 남태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앞으로 한 달 동안 출근 안 해.”상사는 결코 그의 사직서에 동의하지 않았고 온갖 핑계를 대며 그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으려 했다.이제 그가 결혼했다는 것을 알았으니 먼저 결혼 휴가를 보내고 결혼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서 퇴사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했다.“네.”지우는 대답하고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이불 밑에서 자신의 잠옷 치마를 잡아당겼다.남태준도 따라 일어나 앉더니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호흡이 약간 가빠져서 그녀의 얼굴 옆에 다가오더니 턱을 그녀의 어깨에 누르고 고개를 돌려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지우야. 나 코도 안 골고 잠버릇이 좋아. 우리 같은 방에서 자야 하는 거 아니야?”지우는 남자의 뜨거운 기운이 귓가에 맴돌아 순간 짜릿함이 온몸으로 퍼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긴장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는 참지 못하고 침을 삼키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 어릴 때부터 계속 혼자 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자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요.”남태준은 어쩔 수 없이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손을 조이고 입술을 그녀의 귀 뒤에 대고 비볐다. 천년 동안 금욕한 듯한 목소리에는 갈망이 가득 찼다.“하지만 이제 결혼했으니 내 존재에 적응해야지.”지우는 심장이 점점 더 격렬해지고 긴장하여 몸이 약간 떨리는 것을 느꼈고 그의 뜨거운 손길에 온몸이 나른해졌고 너무 수줍어 어쩔 줄 몰랐다.“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아주머니는 돌아서서 부엌으로 들어갔다.지우는 발코니 너머 남태준을 돌아보며 손을 뻗어 얼굴을 받치고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가라앉았다.남태준은 통화를 끝내고 식탁에 와서 앉았고 지우에게 국을 떠주었다.“아주머니 탓하지 마. 내가 너 한 끼에 반찬 두 가지만 먹는 거 동의하지 않았어.”“나 탓한 적 없어요.”지우는 눈을 내리뜨고 그가 건넨 국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예전에는 그녀가 다른 사람을 돌보고 나서 자신을 돌봤다.갑자기 남자한테 이런 보살핌을 받으니 말할 수 없는 감동이 일렀다.좀 실감이 나지 않았다.남태준은 국을 떠서 우아하게 마시며 다정하게 물었다.“오후에 급한 일 있어?”“아니요.”“그럼 나랑 어디 좀 갔다 와.”지우가 움찔하자 남태준이 엷게 웃었다.“걱정 마. 우리 부모님 만나러 가는 거니까.”“좋아요.”점심 식사 후 지우는 거실에서 쉬고 있었고 남태준은 서재에 들어가 바쁘게 지내다가 나올 때 손에 은행카드를 들고 나왔다.그가 지우에게 건네주자 지우는 멀뚱멀뚱해서 쳐다보기만 했다.남태준은 그녀가 자존심이 강해서 그의 재산을 함부로 관리하지 못하고 그의 돈도 쓰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적당한 핑계를 찾았다.“이건 우리 부부 공동 재산 카드야. 앞으로 네가 보관해.”“부부 공동 재산이요?”“앞으로 집에 가구나 뭐 살 거 있으면 이 돈으로 사.”지우는 그들의 가정을 위해 돈을 쓴다는 말에 여유롭게 카드를 받았다.“가자. 엄마 아빠 집에.”남태준이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지우는 따뜻한 그의 큰 손에 이끌려 일어나며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옷차림을 봤다.“나 옷차림이 너무 편한 거 아니에요? 좀 그렇죠?”“한 집 식구끼리 뭘 그렇게 신경 써?”지우는 마음 편히 그를 따라 집을 나섰다.단풍나무 집에서 몇 분 걸어 나와 본가에 도착했을 때 지우는 좀 긴장했다.이번엔 며느리의 신분으로 남창민과 허윤미를 만나러 온 것이다.남태준은 지우가 긴장한 걸 눈치채고 그녀의 귓가
남서연은 복잡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저예요.”백건은 숨이 거칠고 오랫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말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다.그는 남서연이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 몰라 계속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시간 있어요?”남서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쭈뼛쭈뼛 물었다.백건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있어.”“잠깐 만나서 얘기할래요?”“좋아.”백건이 곧바로 대답하더니 또 물었다.“어디서 볼래? 데리러 갈게.”남서연이 생각해보니 밖에는 보는 눈이 많아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내가 오빠 집으로 갈게요. 반 시간이면 도착해요.”“좋아.”남서연은 전화를 끊고 일어서서 마스크를 쓰고 공중화장실을 나섰다.한편, 공항 가는 차에 타고 있던 백건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명령했다.“차 돌려서 집으로 가.”“대표님, 비행기 시간 이미 다 됐어요.”백건은 정색해서 말했다.“이번 행사 취소하고 바로 집으로 가.”하현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그 전화를 들으니 아마 남서연일 것이다.백건에게 새 시즌 발표회는 취소할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고 없어도 되는 일이다.그러나 남서연을 만날 어떤 기회도 그는 놓칠 수 없었다.하현우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30분 후.남서연은 산 중턱 별장에 와서 막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하현우가 이미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했다.“서연 아가씨,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남서연은 살짝 놀랐다가 하현우인 걸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경치가 아름다운 화원의 앞마당을 지나 웅장한 큰 집으로 들어갔다.문은 열려 있고 백건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어 우아하고 멋스러우며 준수한 매력을 자랑했다.남자는 그윽한 눈동자로 남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를 다시 만난 남서연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마음속에 토끼 한 마리가 숨
백건은 당황해서 화를 내며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하현우는 침을 삼키고 목숨을 걸고 이렇게 말했다. “만약 한 여자가 대표님과 관계를 맺은 후 연락을 끊었다면 아마도 대표님의 돈과 권력 때문에 감히 저항하지 못했을 거예요. 진짜 대표님께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백건은 화를 참으며 또박또박 말했다.“아니, 돈과 권력이 부족한 여자가 아니야.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아.”하현우는 경악하더니 속으로 크게 흥분했다.‘뭐야? 대표님 설마 서연 아가씨와 잔 거야? 대단하네!’‘목숨을 걸고 남씨 가문의 권위에 도전하다니. 목숨을 바칠 정도로 위대한 사랑이라니.’하현우는 은근히 충고했다.“대표님, 어떤 여자들은 성격이 순하고 마음씨가 착해서 아무리 권위 있는 집에서 자라도 담은 작아요. 어려서부터 너무 잘 보호 받으며 자라서 나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려고 해도 거절할 줄도, 반항할 줄도 모르죠. 그래서 도망을 치죠.”백건은 쓴웃음을 지으며 심장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거절하지 않으면 마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가 일방적으로 남서연에게 상처를 준 걸까?개인적인 사리사욕을 위해 일방적인 행위를 가한 그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아닌가?백건은 눈을 감았고 가슴이 아파서 숨을 쉴 수 없었다. 속으로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남서연은 늘 낙천적인 성격이었다.그녀는 두 번의 잠자리로 인해 계속 괴로워하지 않았다.백건은 어쨌든 그녀가 짝사랑하는 남자였으니 아무리 쓰레기일지라도, 이미 일어난 이상 좋은 추억으로 여기기로 했다.그녀의 짝사랑도 욕망을 만족시킨 셈이었다.만약 백건이 그녀와 사귀고 싶지 않으면서 계속 그녀와 관계를 맺고 싶다면 그것은 절대 불가능했다.여다혜가 말한 대로 그녀는 더 이상 타락해서는 안 되었다.남자는 여자와 달리 사랑이 없어도 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다.그녀는 백건의 전화를 받지 않고 그의 메시지에도 답장하지 않기 시작했다.그 후 백건은 포기하고 그녀를 찾지 않았다.두 사람은 원래도 접촉이 많지 않았으니 남서연은 일
“남서연 씨는요?”직원이 공손하게 대답했다.“대표님, 서연 씨는 방금 가방을 챙겨 나갔습니다.”백건은 군말 없이 급히 몸을 돌려 성큼성큼 엘리베이터 앞으로 달려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그는 휴대폰을 꺼내 남서연의 번호를 눌렀다.벨이 몇 번 울리더니 끊겼다.그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남서연이 다시 끊었다.세 번 연속 시도한 후 결국 포기했다.백건이 1층 로비까지 쫓아갔지만 이미 남서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는 풀이 죽어 위층으로 몸을 돌렸다.종일 그는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날이 저물자 창밖의 네온사인이 유리창에 비쳐 창 앞의 남자를 비추고 있었다.그는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 창문을 마주하고 하늘가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눈 밑은 번화한 경치였지만 그의 마음속은 황폐했다.그는 남서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그때 노크소리가 들렸고 하현우가 들어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이미 10시예요. 퇴근 안 하세요?”백건은 침묵했다.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그의 뒷모습은 쓸쓸해 보였고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뒤덮어 섬뜩하여 그는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하현우는 손목을 들어 시간을 보았다. 이미 몰래 저녁을 먹었지만 집에는 사랑하는 아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아무리 야근 수당이 있어도 또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그는 내키지 않았다.하현우는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대표님, 혹시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세요? 제가 도와드려요?”백건은 말없이 돌아서서 성큼성큼 떠나갔다.하현우는 급히 옆으로 피했고 등이 뻣뻣해져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백건이 지나가고 나서야 그는 쪼뼛쭈뼛 따라갔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백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굴은 얼음처럼 차갑고 깊고 어두운 눈으로 창밖 거리의 야경을 바라보았다.차를 몰던 하현우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추측했다.“대표님, 혹시 서연 아가씨와 연락이 안 되세요?”고개를 돌려 하현우를 보는 백건의 눈빛은 차갑고 굳어 있었다.하현우는 놀라서 침을 꿀꺽 삼키더니 등
[좀 바빠요.][우리 만나서 얘기하자. 응?][서연아, 처음에 너도 거절하지 않았잖아? 왜 이제와서 이래? 이거 무슨 뜻이야?][기다릴 테니 내려와. 아니면 내가 올라간다?]남서연은 백건이 보낸 몇 개의 메시지를 보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마음이 더욱 불안해져 여다혜를 돌아보았다.여다혜는 연애경험이 비교적 풍부해서 거의 감정 전문가인 셈이었다.남서연은 의자를 옮겨 여다혜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다혜야,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여다혜는 책상 위에 엎드려 졸면서 중얼거렸다.“말해.”“내 친구가 있는데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남자를 계속 짝사랑했어. 근데 그 남자는 계속 그 친구에게 차가웠고 만날 때마다 일부러 숨었어. 마치 싫어하는 것처럼.”“나중에 내 친구가 커서 그 남자가 먼저 접근했고 아무 이유 없이 두 번이나 잤어. 그 남자는 대체 무슨 뜻일까?”여다혜는 번쩍 튕겨 일어나 앉더니 깜짝 놀라며 입을 가리고 남서연을 끔벅끔벅 바라보았다.“왜 그래?”남서연이 묻자 여다혜는 비통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서연아, 너 나쁜 남자 만났구나.”“내가 아니라 내 친구라고.”“그래그래. 네 친구.”여다혜는 서둘러 말을 바꾸고 슬픈 듯 입을 납작하게 하고는 눈에는 동정이 가득했다.“네 친구 나쁜 남자 만난 거야. 정말 너무해. 대체 어느 개자식이야?”남서연은 긴장감에 침을 삼키고 숨을 몰아쉬었다.“무슨 말이야?”여다혜는 그녀의 말을 바탕으로 분석했다.“네 친구는 커서 예쁜 여자가 된 게 틀림없어. 그래서 그 남자가 혹한 거지. 어렸을 때부터 네 친구를 좋아하지 않았어도 자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 남자는 하반신으로 고민하는 수컷이니까.”남서연은 얼굴이 희끗희끗해지며 축 처져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여다혜는 남서연의 차디찬 손을 맞잡고 위로했다.“서연아, 네 친구는 감정에 무지하고 세상 물정에 어둡고 순진해서 남자한테 속았을 거야.”“그런... 사람 아니야.”남서연은 무기력하게 해명했다.“그
끝난 후, 너무 수줍은 남서연은 백건이 어찌할 수 없는 틈을 타 재빨리 자신의 옷을 챙겨 입고 거의 도망가듯 뛰쳐나갔다.“서연아...”백건은 옷을 챙겨 입지 못해 따라잡을 수 없었다.그녀는 사무실을 뛰쳐나가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숨을 헐떡였다.그녀가 디자인 부서로 돌아왔을 때 여다혜는 급히 걸어가서 책상을 두 손으로 받치고 그녀의 붉어진 얼굴과 약간 불그스름한 입술을 보았다.“서연아, 왜 그래?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너 점심 먹었어?”남서연은 마음이 켕겨 감히 여다혜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먹었어. 혼자 먹었어.”“식당에서 너 못 봤는데? 그리고 평소에는 30분이면 다 먹더니 오늘은 왜 한 시간이나 걸렸어?”“나... 구내식당이 아니라 밖에서... 멀리 가서 먹었어.”여다혜는 불쾌해하며 그녀의 손을 두드렸다.“왜 좋은 곳에 나는 안 데리고 갔어?”남서연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귓가에 있는 머리를 뒤로 넘겼다.“다음에. 다음에 꼭 데리고 갈게.”여다혜가 깜짝 놀라 외쳤다.“너 움직이지 마.”남서연은 경악에 찬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여다혜는 그녀의 긴 머리를 쓸어올리고 귓불 뒤 목덜미에 닿는 위치를 보며 의아해하며 물었다.“너 목에 왜 빨간 자국이 있어? 마크 같아.”“무슨 마크?”“키스 마크!”크게 당황한 남서연은 황급히 긴 머리를 풀어 목을 가리고는 화난 척 말했다.“함부로 말하지 마. 그냥... 긁은 거야. 모기한테 물려서 난 자국이야.”모기에 물린 것인지, 키스 마크인지 여다혜는 경험자로서 한눈에 알 수 있었다.더군다나 남서연은 지금 볼이 붉어지고 눈 밑에는 수줍음이 가득했다.여다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물었다.“서연아, 너 정말 우리 오빠 안 좋아해?”“안 좋아해. 자꾸 엮지 마.”남서연이 나지막이 말하자 여다혜는 어깨를 으쓱하고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그럼 돌아가서 희망이 없다고 오빠에게 말할게. 네 생각하지 말고 빨리 다른 여자 만나라고.”남서연은 담담하게 웃었다.
백건은 그녀 앞에 와서 안색이 어두워지고 눈빛이 흐려지며 부드러운 말투에 약간 불쾌함을 띠었다.“나 무서워하지 마. 서연아.”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가로저었다.백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일할 때는 좀 엄숙하긴 하지만 부하직원에게만 그래.”남서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나도 부하직원이잖아요.”백건은 화가 나서 웃더니 고개를 떨구고 어쩔 도리가 없었다.남서연은 자신이 말실수를 한 줄 알고 급히 해명했다.“무서워한 게 아니라 그냥 좀 적응이 안 됐어요.”차이가 너무 컸으니 말이다.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사납다가 갑자기 그녀에게 너무 다정하게 대해서 적응이 안 됐을 뿐이다.백건이 손목을 들어 시간을 살펴보더니 물었다.“배고파?”남서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너무 배고픈 건 아니에요.”백건은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옆 휴게실로 향했다.그는 남서연의 마음을 떠보고 싶었고 그녀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백건은 문을 열고 들어갔고 그녀도 끌고 들어갔다.문이 닫히자 남자는 곧장 그녀를 문짝에 눌렀다. 두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가두고 몸을 붙이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남서연은 깜짝 놀라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져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남자의 강한 호르몬이 그녀를 감싸고 있고 보이지 않는 압박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며 호흡에는 그의 몸에서 나는 향기가 가득했다.남자는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의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관능적인 목젖을 위아래로 구르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서연아. 네가 거절하지 않는 건 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돼?”남서연은 머리가 하얘지고 몸이 약간 떨릴 정도로 긴장했다.문득 남자의 얼굴이 다가와 얇은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막았다.“음!”그녀는 수줍은 소리를 내며 벽에 등을 바짝 붙였다.그의 키스는 매우 갑작스러웠고, 거칠면서도 거침없이 그녀의 입안을 침략하고 입과 혀를 섞었다.그의 키스는 매우 깊었다.남자는 서서히 자신의 몸을 눌렀고 나른해
그녀는 넓은 홀을 걸으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비서 자리는 텅 비어 있었고 하현우는 보이지 않았다.대표 사무실의 문이 굳게 닫혀있지 않았다.남서연은 궁금해서 앞으로 걸어가며 문을 두드리려고 했다.그때 안에서 서류 뭉치가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가까이 다가간 남서연은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백건의 냉엄한 목소리만 들렸다.“당신 사람들 데리고 당장 나가세요!”그러자 연륜이 느끼지는 중후한 목소리가 버럭 화를 냈다.“백건! 너무 나대지 마. 내가 네 할아버지와 사업을 일굴 때 넌 태어나지도 않았어.만약 네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넌 날 보고 끽소리도 못 냈어. 네 아버지가 나를 봐도 아저씨라고 정중하게 부르는데 네가 감히 나를 해고해?”백건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맞아요. 나는 지금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을 해고하고 있어요. 당장 나가세요.”“네가 뭔데 나를 해고해? 내가 공로는 없어도 고생은 함께 했는데 어떻기 감히 나를 내보내?”“당신 손에 있는 주식, 매달 월급 그리고 매년 주어지는 배당금까지, 전부 고생 값이에요. 회사는 이미 현금으로 보상했으니 더 이상 빚진 것 없어요. 사람이 늙으면 능력이 떨어지고 더 이상 가치를 창출할 수 없으면 회사 자원을 점유하지 말고 집에 가서 노후를 보내야죠.”“백건. 네 이놈!”“당신 낙하산을 타고 들어온 사람들 한 명도 남기지 마세요.”또 한바탕 큰소리에 남서연은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예순 살쯤 된 늙은 남자가 양복 차림의 젊은이 몇 명을 데리고 사무실을 나섰고 입구에서 남서연과 부딪혔다.남자는 남서연을 매섭게 쏘아보더니 조롱했다.“바로 너야? 일개 디자이너가 감히 대표 사무실에 찾아와? 생긴 건 번지르르하네. 몸을 팔아 디렉터를 쫓아낸 거지?”남서연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전 디자인 디렉터도 그의 사람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깨달았다.말을 마친 남자는 사람들을 데리고 사무실을 떠났다.백건은 소리를 듣고 뛰쳐나왔고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안색이 좀 긴장된 남
“대... 대표님. 아침부터 제가 뭐 잘못했나요? 왜 그러세요?”백건의 목소리는 얼음 창고에서 흘러나오는 듯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느껴졌다.“어제저녁에 왜 야한 영화를 보냈어? 잘리고 싶어?”하현우는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렀고 침을 삼키고 긴장하며 말했다.“그건 대표님께서... 로맨스 애니메이션 영화를 부탁하셨잖아요. 혼자 사는 성인 남자가 저녁에 영화를 달라고 하니. 그리고 대표님은 애니메이션도 안 보고 로맨스 영화도 안 보시니 분명 그런 장르를 원한 거 아니셨어요?”백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를 갈았다.“서연이가 보려고 한 거야. 내가 로맨스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해 모르니 네게 부탁한 거고. 네가 무슨 짓을 한 줄 알아?”하현우는 어안이 벙벙하고, 입이 떡 벌어지며,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져 오랫동안 진정되지 않았다.백건은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그의 옷깃을 풀어주고 한 발짝 물러서서 경고했다.“만약 서연이가 이 일로 날 미워하고 나에 대해 나쁜 인상을 받았다면 넌 바로 아웃이야.”하현우는 깜짝 놀라며 90도로 허리를 숙였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반드시 만회할 방법을 찾을게요. 반드시 대표님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백건은 차가운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하현우는 이마의 식은땀을 닦고 급히 운전석을 열고 들어가 차를 몰고 떠났다.가는 내내 하현우는 어떻게 만회해야 할지 고민했고 백건은 뒷좌석에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순간 하현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서연 아가씨께서 어제 영화를 끝까지 안 보셨죠?”“응.”백건이 덤덤하게 대답하자 하현우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물었다.“그럼 대표님은요?”“다 봤어.”백건이 솔직하게 말하자 하현우는 꾹 참으며 감히 웃지 못했다.그는 재미있는 영화를 거절할 수 있는 남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남자가 아닌 한.하현우가 또 물었다.“그런 영화 자원이 더 필요하세요?”백건은 서류를 덮고 눈을 감더니
색은 남녀의 천성이었다.남자로서 자신이 호색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었다.“호색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때는...”백건이 설명하려는데 남서연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남서연은 다급히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뒤적거리며 크게 당황했다.백건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벨 소리에 묻혔다.“내가... 널 좋아하니까.”“여보세요, 할머니!”남서연은 휴대전화를 귓가에 대고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친구랑 같이 있어요. 곧 돌아가요... 아니에요. 오빠가 데리러 올 필요 없이 저 혼자 택시 타고 돌아가면 돼요... 자꾸 저 어린애 취급하지 마세요. 저도 이제 23살이에요. 어린애가 아니라고요... 네 알겠어요. 이따가 봬요.”남서연은 통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고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요?”백건은 안색이 굳어지더니 말이 목에 걸렸다. 몇 초 동안 침묵하다가 몸을 돌려 차 키를 가지러 갔다.“데려다줄게.”“괜찮아요. 택시 타고 가면 돼요.”남서연이 거절했지만 백건은 차 키를 들고 신발을 갈아 신고 남서연의 옆을 지나면서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남서연은 등뼈가 굳어지며 한발 한발 밖으로 따라나섰고 시선은 자신의 손을 잡은 남자의 손에 고정되었다. 그의 따뜻한 큰 손바닥은 마치 전류가 흘러 그녀의 손바닥 피부에서 팔다리로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다정한 촉감에 그녀는 심장이 벌렁거렸다.그녀는 온몸이 긴장되고 호흡이 좀 가빠졌다.백건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기는 게 아니라 손바닥을 잡아주고 있었다.이토록 다정하게 남자의 손바닥에 닿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남서연은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져서 가슴이 쿵쾅대며 몰래 즐거워하고 있었다.백건은 그녀를 차량 옆으로 끌고 가 조수석 문을 열어주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수줍게 숙이고 있었다.여자의 수줍은 자태는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그제야 자신이 남서연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손을 놓지 않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