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준은 쓸쓸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말했다.“저 아주머니 미워하지 않아요. 오히려 너무 이해하는걸요? 만약 제 딸이 마약 형사와 만난다고 하면 저도 반대했을 거예요.”진효연은 고개를 돌려 남태준을 바라보며 그가 진심으로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했다. 만약 직업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지우가 그에게 시집가는 건 커다란 복일 것이다.“지성이 병원비는...”진효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태준이 이미 그녀의 뜻을 알고 급히 위로했다.“병원비는 급히 갚을 필요 없어요. 지성이가 깨어나서 나중에 돈을 벌면 천천히 갚으라고 하세요. 무기한으로요.”진효연은 가슴이 뭉클해 눈시울이 젖었고 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손을 잡고는 울먹였다.“내가 정말 고마워요. 지성이를 대신해서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남태준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고 가슴이 내려앉았다.그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며 지우를 도울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벗고 나설 것이다.진효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남 대장님만 괜찮으시다면 우리 지우 오빠로...”남태준의 얼굴빛이 순간 굳어지더니 바로 말을 끊었다.“아주머니. 그럴 필요 없어요. 헤어졌는데 어떻게 오빠 동생으로 지내요?”진효연은 난처해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남태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떻게 메워야 할지 몰랐다.남태준은 마음이 답답했다.어떻게 그더러 지우의 오빠로 지내라고 할 수 있을까?그렇다면 앞으로 계속 연락하지만 서로 사랑해서는 안 되며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지우가 시집가는 걸 눈 뜨고 지켜보고 지우의 미래 남편을 매부라고 불러야 할까?남태준은 죽어도 할 수 없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 바르게 말했다.“아주머니 저는 아직 일이 남아서 먼저 가볼게요. 무슨 일 있으면 제게 전화하세요.”“그래요. 어서 가봐요.”남태준은 목례를 하고 성큼성큼 떠났다.진효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또 한바탕 한숨을 쉬었다.남태준이 마약 형사의 일을 그만두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일 것 같았다
이번에 지성은 말을 할 수 있었고 사유도 또렷했다.그들은 신분을 밝힌 후 지성의 몸 상태를 물었고 지성이 괜찮은 걸 확인하고는 조사를 시작했다.지성은 남태준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가 누나의 전 남자친구라는 것을 알고 더욱 존경했다.지성이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누나가 육건우를 고소했기 때문에 제 빚은 소송이 끝나기 전까지 갚지 않아도 되거든요.”“하지만 육건우의 부하들이 저를 가만두지 않았어요. 그날 저를 뒷산으로 데려가 폭행했고 저는 그들을 따돌리고 필사적으로 도망쳤어요. 철조망이 가로막힌 곳까지 도망쳤는데 더 이상 도망갈 길이 없어서 아주 높은 나무에 올라가 철조망을 넘어 안에 있는 나무로 뛰어올랐어요.”“들어가고 나서 계속 출구를 찾았는데 못 찾았고 마스티프 몇 마리가 저를 쫓아왔어요.”“그래서 큰 스튜디오 몇 군데로 달려갔어요. 근데 안에 촬영 장비는 없고 오히려 양귀비꽃과 비슷한 식물이 많이 심겨 있더라고요.”“저는 깜짝 놀라 얼른 숨었어요.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요.”“그러다 어떤 창고에 숨었는데 그 안에서 마약을 정제하는 사람들이 저를 발견하고는 저를 죽일 듯이 때렸고 제 심장에 칼까지 꽂고 산기슭에 저를 던졌어요.”지성은 심장의 상처를 만졌다. 의사가 말하길 지성의 심장 위치가 다른 사람과 달라서 조금 빗나가 목숨을 부지했다고 했다.불행 중 다행이었다.남태준과 오신우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표정이 굳어졌다.산꼭대기에 촬영기지를 설립하려면 소방 안전 검사와 경찰의 순찰도 필요하다.그런데도 안에서 미친 듯이 독을 심고 마약을 정제할 수 있다면 분명 백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그 백은 결코 직위가 낮지 않을 것이다.자백을 마친 지성이 긴장하며 물었다.“남 대장님, 만약 제가 죽지 않은 걸 알면 또 사람을 보내 저를 죽이러 올까요?”“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요.”남태준은 온화한 태도로 진지하게 말했다.“지성 씨 옆에 24시간 경호를 붙여 신변을 보호할게요.”“감사합니다.”지성이 예의
지우는 입술을 깨물고 서러워하며 되물었다.“그럼 네가 다시는 목숨으로 나 협박하지 말라고 엄마 설득할 수 있어?”“아니 난 못해. 엄마는 너무 독해. 매번 빈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분이시잖아.”지성은 감탄하며 고개를 저었고 지우도 말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사랑을 위해 어머니의 목숨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남태준을 잊고 가슴 아픈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칠 후 지성이 퇴원하자 지우의 생활도 정상으로 돌아왔다.매일 글쓰기에 바쁘고 어머니의 매점도 봐주고 가끔 밥도 하고 친구와 함께 나가 쇼핑을 하며 기분 전환을 했다.이날 송수빈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가자고 했다.늘 외지에서 일했던 지우는 동창 모임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올해 그녀가 마침 고향에 있으니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동창들과 모이려고 했다.한 식당의 룸.큼지막한 원형 테이블에는 비슷한 또래의 남녀가 가득했는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사람도 있는 신혼이거나 미혼인 사람도 있었다.지우와 송수빈은 미혼이라 싱글남 친구들의 시선을 끌었는데 두 사람의 외모도 출중하고 몸매도 좋았다.모두들 웃고 떠들며 건배하며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을 때, 한 친구가 갑자기 말했다.“준호가 지우를 오랫동안 짝사랑했잖아. 준호 녀석 지금 이혼했는데 설마 아직 지우를 못 잊은 거 아니야?”음식을 먹던 지우는 고개를 번쩍 들고 경악하며 말하는 남자를 쳐다보았다.반장이던 그는 지금 한 기업의 관리자였다.그는 술잔을 들고 일어나 지우를 향해 물었다.“지우야. 너 아직 싱글이라며. 아직 준호에게 기회가 있는 거냐?”지우는 긴장된 듯 침을 삼키고 진준호를 바라보았다.부드러운 눈매를 가진 진준호는 어색한 듯 지우를 바라보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이혼한 지 얼마 안 된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다.이공계 IT 남으로 수입도 높고 외모도 잘생겼고 성격도 온순했다.같은 마을 사람이라 부모끼리도 서로 잘 알고 있었다.지우는 난처해하며 미소 지었다.
“맞아. 하지만 이미 마음에 다른 남자를 품고 있어서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 미안해.”진준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어쩔 수 없이 말했다.“무슨 말인지 알겠어. 만약 네 마음에 있는 그 남자에게 기회가 없다면 차라리 그 기회를 나에게 주는 건 어때? 어쩌면 우리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잖아.”지우가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자 진준호 역시 멈추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나 아주 아쉬워. 널 오랫동안 짝사랑했지만 졸업 시즌에 네게 고백하지 못한 거 계속 후회했어. 만약 지금 그 기회가 왔다면 놓치고 싶지 않아.”지우는 용감한 사람을 탄복했다“준호야, 나...”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나의 그림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지우가 반응도 하기 전에 강력한 힘의 큰 손이 그녀의 팔을 꽉 잡고 힘껏 잡아당기더니 그녀를 자신의 따뜻하고 튼튼한 가슴으로 끌어당겼다.그녀가 경악하며 고개를 들자 남태준의 준수한 얼굴을 보고는 가슴이 떨렸다.지우가 낯선 남자의 품에 안기는 것을 본 진준호는 다급하게 물었다.“당신 뭐야?”남태준의 거대한 체구에 진준호는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고 말로 으름장을 놓았다.“당장 지우 놔줘!”남태준은 싸늘한 눈빛에 노기를 띤 채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여자친구에게 할 말이 있어 먼저 실례할게요.”여자친구?지우는 멍해졌고 진준호는 더욱 어리둥절했다.남태준이 지우를 끌고 떠나자 진준호가 급히 쫓아가 두 사람 앞을 막으며 물었다.“지우야. 너 솔로라며?”지우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가로젓고는 혼란스럽게 말했다.“나 솔로 맞아. 이 사람은 전 남자친구야.”그녀의 말에 남태준의 안색이 더욱 새파래졌다.“나 이 사람이랑 얘기 좀 할 테니까 너 먼저 가봐.”지우는 웃으며 진준호에게 손을 흔들었다.“잘 가.”진준호도 더 이상 지우를 빼앗을 이유가 없어 지우가 끌려가는 것을 못마땅해 하며 노려봤다.남태준은 지우를 차에 태워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매주고는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량이 넓
지우는 남태준에 의해 강제로 집에 끌려들어 갔다.문이 잠기는 순간 지우는 좀 당황스러웠다.그녀는 화가 난 남자가 어떤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지 몰라 계속 몸부림치며 떠나려고 했지만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남자의 힘센 손에서 벗어나는 건 무리였다.남태준에 의해 거실로 끌려가 그대로 소파에 던져졌다.그녀는 긴장해서 움츠러들었고 방황하면서도 경계하는 눈빛으로 남태준을 쳐다보았다. 그가 미칠 듯이 달려들 것 같아 속으로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이성적으로 그녀 곁에 앉아 쓸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매우 괴로워 보였다.밝은 거실은 두 사람의 가벼운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창밖은 캄캄했다.집안의 분위기가 점점 굳어졌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지우는 남태준이 화가 나서 그녀와 단둘이 지낼 이유를 찾는 것이지 그녀에게 화풀이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태준 씨, 나 놔주겠다고 했잖아요?”남태준은 얼굴을 가리고 깊게 숨을 내쉬더니 온몸에 냉기가 번져 형언할 수 없는 감상과 슬픔이 어렴풋이 배어 있었다.그는 소파 등에 기대어 옆으로 지우를 바라보며 눈가에 쓸쓸한 감정이 가득했다.“지우야. 내가 헤어지겠다고 했지 널 포기한 적은 없어. 난 계속 노력하고 있었어.네가 나 좋아하도록, 네 가족이 나 좋아하도록.”지우는 고개를 숙이고 괴로워하며 말했다.“진짜 그럴 필요 없어요.”“우리 사이에는 그 어떤 갈등도 다툼도 제삼자도 없었어. 네가 갑자기 헤어지자고 한 거 혹시 엄마 때문이야?”지우는 침묵했고 손가락을 꽉 쥐고 손톱을 뜯었다.“대답해줘.”남태준은 소파를 따라 천천히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다가갔다가 꾹 참았다.그에게는 이제 지우의 손을 잡을 명분이 없었다.매일같이 그리움에 시달리고, 미칠 듯이 그녀를 보고 싶고, 안고 싶고, 키스하고 싶어도 이젠 아무런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그저 모퉁이에 몰래 서서 먼발치에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헤어지는 날은 녹슨 무딘 칼처럼,
그래서 이 일은 남태준에게 매우 중요할 것이다.그의 사명이고 명예이고 책임이고 그의 전부일 것이다.지우는 남태준을 사랑하고 그의 일과 삶도 존중했다.남태준은 그녀의 팔을 잡고 힘껏 끌어당겼다.“내가 그 비실비실한 이혼남보다도 못하다는 거야?”지우는 중심을 잃고 그의 품에 안겨 방황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팔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그녀는 서럽게 눈물을 흘렸고 턱은 떨리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를 바라봤다.남태준은 그녀 눈 밑의 눈물을 바라보며 자신도 눈시울을 붉혔고 그의 슬픈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만약 가능하다면 내가 다리도 못 쓰고 앞도 못 보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네가 돈 때문에 나를 보살피기는 했지만 나 그때 정말 기쁘고 행복했어.”그때를 생각하면 지우 눈 밑의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그녀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당시의 남태준은 너무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다.그가 언제나 지금처럼 건강하기를 바랐다.“그때 너는 내가 눈이 안 보인다고 멋대로 행동했어.”남태준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 밑에는 눈물이 흐르지만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네가 나를 도와 샤워하고 밥 먹여주고 우리 같은 침대에서 자기도 했었지. 넌 청개구리처럼 내가 싫어하는 행동만 골라 했어.”“네가 아무리 완자 친구라지만 내 말 한마디면 엄마는 널 해고할 수 있었어. 하지만 난 널 떠나보내는 게 너무 아쉬웠어. 진흙탕이 된 내 마음을 넌 작은 작대기로 계속 저어주어 더 이상 평온하지 않고 매일 파도가 일렁였어.”“그러던 어느 날, 네가 갑자기 떠났어.”남태준은 눈물이 흘러넘쳐 흐느껴 울었다.“난 또다시 그 암흑 같은 삶으로 돌아갔어. 햇볕도 없고 활기도 없는 그 어두운 세계로.”“지우야. 네가 돈을 원한다면 난 만족시켜 줄 수 있어. 네가 사랑을 원한다면 난 온 마음을 다해 널 사랑할 거야. 네가 안정감을 원한다면 나 일선에서 떠나 사무직으로 물러날 수 있어.”남태준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애틋했고 점점 더 간절해졌다.“제발 나 떠나지 말아줘.
M국, 변경.서다인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친오빠라는 자가 도박 빚을 갚기 위해 그녀를 2천만 원에 팔아버렸다!이 암담한 사기 센터에는 전화 사기, 인신매매, 장기매매, 구타와 학대가 매일 발생하고 있다. 이곳은 사람을 풀 베듯 함부로 죽이는 곳이다.서다인은 수려한 미모를 지녀 범죄자들에게 강제로 이끌려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다.그녀는 죽을지언정 필사적으로 반항하여 혹독하게 두들겨 맞아 옷이 갈기갈기 찢어졌고 몸에 온통 상처투성이였다.서다인은 고통과 두려움에 휩싸여 절망의 끝자락에 놓였을 때 문득 남편 남하준이 떠올랐다.“제발 저 건드리지 마세요. 우리 남편더러 돈 보내오라고 할게요... 얼마든지 다 드릴 수 있어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그녀는 울먹이며 애원했다. 이건 최후의 몸부림이나 다름없다.금전 갈취는 그들의 업무 중 하나이다.앞장선 김호영이 화색을 띠며 서다인을 두들겨 패는 부하들을 멈춰 세우고 재빨리 그녀에게 휴대폰을 건넸다.“네 남편에게 40억 가져오라고 전해! 10원 한 장이라도 모자라기만 해봐. 그땐 여기 있는 우리 애들을 네가 전부 먹여 살려야 할 거야. 몸을 팔아서 손님들 돈을 벌어와야 한다고, 알아들었어?”서다인은 온몸에 소름이 쫙 돋고 겁에 질려 눈동자가 흔들렸다.짝사랑한 지 3년, 혼인 신고한 지 1개월이 지났지만 단 하루도 함께 지내지 않은 그녀의 남편이 진짜 40억을 내놓으며 그녀를 구할까?“알았어요.”서다인은 무기력하게 대답한 후 남하준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건 마지막 동아줄이다. 그녀의 생사가 걸린 마지막 전화 한 통이다.전화가 연결되자 수화기 너머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누구세요?”그 순간 서다인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것처럼 눈앞이 캄캄하고 마음이 텅 비었다.그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나 초조하게 말했다.“저는 남하준 씨 아내 서다인이에요. 실례지만 남하준 씨 바꿔줄 수 있나요?”전화기 너머로 여자가 담담하게 말했다.“오빠 지금 낮잠 자고 있어요. 용건
국가의 안위를 위해 침략자를 몰아내며 피로 물든 전쟁을 이어가면서도 두려운 기색은 추호도 없었다.남하준은 중동 내부전쟁에 참가한 군사의 왕이고 위기에 처한 이 나라를 구한 영웅이며 가장 참혹한 전쟁에서 포위를 뚫은 신과 같은 존재인데 눈앞에 있는 연약한 여자가 그의 아내라니, 이건 당최 말이 안 되는 일이다.김호영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부하를 타일렀다.“걱정들 붙들어 매. 남하준이 어떤 사람이야? 권력이 하늘을 찌르고 단지 이름 석 자만으로도 사람을 간담이 서늘해지게 하는데 그런 사람의 아내를 누가 감히 팔겠어? 내가 알기로 남하준은 아직 미혼이야. 아마 동명이인일 거야. 이년 남편한테 계속 연락해서 40억 갖고 오라고 해!”남자들은 계속 남하준에게 연락했다.서다인은 마음이 재가 되어 구석에 털썩 주저앉아 절망감에 휩싸인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얼마나 지났을까.귀가 쩌렁쩌렁 울리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콰당!”대지가 흔들릴 정도의 폭격 소리였다.서다인은 화들짝 놀라며 두 눈을 떴다.방에서 한창 카드놀이를 하며 서다인의 몸값을 기다리던 남자들이 식겁하여 넋을 놓았다.밖에 있던 부하들도 공포에 휩싸여 큰소리로 외쳤다.“보스, 큰일 났어요. 우리 대문이 폭발해버렸어요.”“폭발?”김호영은 겁에 질렸다.“누구 짓이야?”“그게... 군전 그룹 사람들이에요. 어마어마한 군부대가 거침없이 쳐들어와 우리 센터를 포위해버렸어요.”부하는 상공을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전투기 헬리콥터도 두 대 더 있어요...”“필레 전쟁에 참여한 군전 그룹을 말하는 거야? 우린 이젠 뒈졌어!”이때 김호영이 가녀린 체구의 서다인을 잡아당기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윽박질렀다.“네 남편이 정말 군전 그룹 수장 남하준이야?”서다인은 무기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김호영은 순간 미친 듯이 후회가 밀려왔다. 그는 서다인에게 총을 겨눈 채 밖으로 나갔다.사기 센터 밖에는 수십 대의 무장 차량이 이곳을 가지런히 에워쌌다.수백 명의 건장한 무장 병사가 강렬한
그래서 이 일은 남태준에게 매우 중요할 것이다.그의 사명이고 명예이고 책임이고 그의 전부일 것이다.지우는 남태준을 사랑하고 그의 일과 삶도 존중했다.남태준은 그녀의 팔을 잡고 힘껏 끌어당겼다.“내가 그 비실비실한 이혼남보다도 못하다는 거야?”지우는 중심을 잃고 그의 품에 안겨 방황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팔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그녀는 서럽게 눈물을 흘렸고 턱은 떨리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를 바라봤다.남태준은 그녀 눈 밑의 눈물을 바라보며 자신도 눈시울을 붉혔고 그의 슬픈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만약 가능하다면 내가 다리도 못 쓰고 앞도 못 보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네가 돈 때문에 나를 보살피기는 했지만 나 그때 정말 기쁘고 행복했어.”그때를 생각하면 지우 눈 밑의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그녀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당시의 남태준은 너무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다.그가 언제나 지금처럼 건강하기를 바랐다.“그때 너는 내가 눈이 안 보인다고 멋대로 행동했어.”남태준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 밑에는 눈물이 흐르지만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네가 나를 도와 샤워하고 밥 먹여주고 우리 같은 침대에서 자기도 했었지. 넌 청개구리처럼 내가 싫어하는 행동만 골라 했어.”“네가 아무리 완자 친구라지만 내 말 한마디면 엄마는 널 해고할 수 있었어. 하지만 난 널 떠나보내는 게 너무 아쉬웠어. 진흙탕이 된 내 마음을 넌 작은 작대기로 계속 저어주어 더 이상 평온하지 않고 매일 파도가 일렁였어.”“그러던 어느 날, 네가 갑자기 떠났어.”남태준은 눈물이 흘러넘쳐 흐느껴 울었다.“난 또다시 그 암흑 같은 삶으로 돌아갔어. 햇볕도 없고 활기도 없는 그 어두운 세계로.”“지우야. 네가 돈을 원한다면 난 만족시켜 줄 수 있어. 네가 사랑을 원한다면 난 온 마음을 다해 널 사랑할 거야. 네가 안정감을 원한다면 나 일선에서 떠나 사무직으로 물러날 수 있어.”남태준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애틋했고 점점 더 간절해졌다.“제발 나 떠나지 말아줘.
지우는 남태준에 의해 강제로 집에 끌려들어 갔다.문이 잠기는 순간 지우는 좀 당황스러웠다.그녀는 화가 난 남자가 어떤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지 몰라 계속 몸부림치며 떠나려고 했지만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남자의 힘센 손에서 벗어나는 건 무리였다.남태준에 의해 거실로 끌려가 그대로 소파에 던져졌다.그녀는 긴장해서 움츠러들었고 방황하면서도 경계하는 눈빛으로 남태준을 쳐다보았다. 그가 미칠 듯이 달려들 것 같아 속으로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이성적으로 그녀 곁에 앉아 쓸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매우 괴로워 보였다.밝은 거실은 두 사람의 가벼운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창밖은 캄캄했다.집안의 분위기가 점점 굳어졌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지우는 남태준이 화가 나서 그녀와 단둘이 지낼 이유를 찾는 것이지 그녀에게 화풀이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태준 씨, 나 놔주겠다고 했잖아요?”남태준은 얼굴을 가리고 깊게 숨을 내쉬더니 온몸에 냉기가 번져 형언할 수 없는 감상과 슬픔이 어렴풋이 배어 있었다.그는 소파 등에 기대어 옆으로 지우를 바라보며 눈가에 쓸쓸한 감정이 가득했다.“지우야. 내가 헤어지겠다고 했지 널 포기한 적은 없어. 난 계속 노력하고 있었어.네가 나 좋아하도록, 네 가족이 나 좋아하도록.”지우는 고개를 숙이고 괴로워하며 말했다.“진짜 그럴 필요 없어요.”“우리 사이에는 그 어떤 갈등도 다툼도 제삼자도 없었어. 네가 갑자기 헤어지자고 한 거 혹시 엄마 때문이야?”지우는 침묵했고 손가락을 꽉 쥐고 손톱을 뜯었다.“대답해줘.”남태준은 소파를 따라 천천히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다가갔다가 꾹 참았다.그에게는 이제 지우의 손을 잡을 명분이 없었다.매일같이 그리움에 시달리고, 미칠 듯이 그녀를 보고 싶고, 안고 싶고, 키스하고 싶어도 이젠 아무런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그저 모퉁이에 몰래 서서 먼발치에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헤어지는 날은 녹슨 무딘 칼처럼,
“맞아. 하지만 이미 마음에 다른 남자를 품고 있어서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 미안해.”진준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어쩔 수 없이 말했다.“무슨 말인지 알겠어. 만약 네 마음에 있는 그 남자에게 기회가 없다면 차라리 그 기회를 나에게 주는 건 어때? 어쩌면 우리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잖아.”지우가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자 진준호 역시 멈추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나 아주 아쉬워. 널 오랫동안 짝사랑했지만 졸업 시즌에 네게 고백하지 못한 거 계속 후회했어. 만약 지금 그 기회가 왔다면 놓치고 싶지 않아.”지우는 용감한 사람을 탄복했다“준호야, 나...”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나의 그림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지우가 반응도 하기 전에 강력한 힘의 큰 손이 그녀의 팔을 꽉 잡고 힘껏 잡아당기더니 그녀를 자신의 따뜻하고 튼튼한 가슴으로 끌어당겼다.그녀가 경악하며 고개를 들자 남태준의 준수한 얼굴을 보고는 가슴이 떨렸다.지우가 낯선 남자의 품에 안기는 것을 본 진준호는 다급하게 물었다.“당신 뭐야?”남태준의 거대한 체구에 진준호는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고 말로 으름장을 놓았다.“당장 지우 놔줘!”남태준은 싸늘한 눈빛에 노기를 띤 채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여자친구에게 할 말이 있어 먼저 실례할게요.”여자친구?지우는 멍해졌고 진준호는 더욱 어리둥절했다.남태준이 지우를 끌고 떠나자 진준호가 급히 쫓아가 두 사람 앞을 막으며 물었다.“지우야. 너 솔로라며?”지우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가로젓고는 혼란스럽게 말했다.“나 솔로 맞아. 이 사람은 전 남자친구야.”그녀의 말에 남태준의 안색이 더욱 새파래졌다.“나 이 사람이랑 얘기 좀 할 테니까 너 먼저 가봐.”지우는 웃으며 진준호에게 손을 흔들었다.“잘 가.”진준호도 더 이상 지우를 빼앗을 이유가 없어 지우가 끌려가는 것을 못마땅해 하며 노려봤다.남태준은 지우를 차에 태워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매주고는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량이 넓
지우는 입술을 깨물고 서러워하며 되물었다.“그럼 네가 다시는 목숨으로 나 협박하지 말라고 엄마 설득할 수 있어?”“아니 난 못해. 엄마는 너무 독해. 매번 빈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분이시잖아.”지성은 감탄하며 고개를 저었고 지우도 말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사랑을 위해 어머니의 목숨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남태준을 잊고 가슴 아픈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칠 후 지성이 퇴원하자 지우의 생활도 정상으로 돌아왔다.매일 글쓰기에 바쁘고 어머니의 매점도 봐주고 가끔 밥도 하고 친구와 함께 나가 쇼핑을 하며 기분 전환을 했다.이날 송수빈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가자고 했다.늘 외지에서 일했던 지우는 동창 모임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올해 그녀가 마침 고향에 있으니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동창들과 모이려고 했다.한 식당의 룸.큼지막한 원형 테이블에는 비슷한 또래의 남녀가 가득했는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사람도 있는 신혼이거나 미혼인 사람도 있었다.지우와 송수빈은 미혼이라 싱글남 친구들의 시선을 끌었는데 두 사람의 외모도 출중하고 몸매도 좋았다.모두들 웃고 떠들며 건배하며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을 때, 한 친구가 갑자기 말했다.“준호가 지우를 오랫동안 짝사랑했잖아. 준호 녀석 지금 이혼했는데 설마 아직 지우를 못 잊은 거 아니야?”음식을 먹던 지우는 고개를 번쩍 들고 경악하며 말하는 남자를 쳐다보았다.반장이던 그는 지금 한 기업의 관리자였다.그는 술잔을 들고 일어나 지우를 향해 물었다.“지우야. 너 아직 싱글이라며. 아직 준호에게 기회가 있는 거냐?”지우는 긴장된 듯 침을 삼키고 진준호를 바라보았다.부드러운 눈매를 가진 진준호는 어색한 듯 지우를 바라보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이혼한 지 얼마 안 된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다.이공계 IT 남으로 수입도 높고 외모도 잘생겼고 성격도 온순했다.같은 마을 사람이라 부모끼리도 서로 잘 알고 있었다.지우는 난처해하며 미소 지었다.
이번에 지성은 말을 할 수 있었고 사유도 또렷했다.그들은 신분을 밝힌 후 지성의 몸 상태를 물었고 지성이 괜찮은 걸 확인하고는 조사를 시작했다.지성은 남태준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가 누나의 전 남자친구라는 것을 알고 더욱 존경했다.지성이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누나가 육건우를 고소했기 때문에 제 빚은 소송이 끝나기 전까지 갚지 않아도 되거든요.”“하지만 육건우의 부하들이 저를 가만두지 않았어요. 그날 저를 뒷산으로 데려가 폭행했고 저는 그들을 따돌리고 필사적으로 도망쳤어요. 철조망이 가로막힌 곳까지 도망쳤는데 더 이상 도망갈 길이 없어서 아주 높은 나무에 올라가 철조망을 넘어 안에 있는 나무로 뛰어올랐어요.”“들어가고 나서 계속 출구를 찾았는데 못 찾았고 마스티프 몇 마리가 저를 쫓아왔어요.”“그래서 큰 스튜디오 몇 군데로 달려갔어요. 근데 안에 촬영 장비는 없고 오히려 양귀비꽃과 비슷한 식물이 많이 심겨 있더라고요.”“저는 깜짝 놀라 얼른 숨었어요.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요.”“그러다 어떤 창고에 숨었는데 그 안에서 마약을 정제하는 사람들이 저를 발견하고는 저를 죽일 듯이 때렸고 제 심장에 칼까지 꽂고 산기슭에 저를 던졌어요.”지성은 심장의 상처를 만졌다. 의사가 말하길 지성의 심장 위치가 다른 사람과 달라서 조금 빗나가 목숨을 부지했다고 했다.불행 중 다행이었다.남태준과 오신우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표정이 굳어졌다.산꼭대기에 촬영기지를 설립하려면 소방 안전 검사와 경찰의 순찰도 필요하다.그런데도 안에서 미친 듯이 독을 심고 마약을 정제할 수 있다면 분명 백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그 백은 결코 직위가 낮지 않을 것이다.자백을 마친 지성이 긴장하며 물었다.“남 대장님, 만약 제가 죽지 않은 걸 알면 또 사람을 보내 저를 죽이러 올까요?”“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요.”남태준은 온화한 태도로 진지하게 말했다.“지성 씨 옆에 24시간 경호를 붙여 신변을 보호할게요.”“감사합니다.”지성이 예의
남태준은 쓸쓸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말했다.“저 아주머니 미워하지 않아요. 오히려 너무 이해하는걸요? 만약 제 딸이 마약 형사와 만난다고 하면 저도 반대했을 거예요.”진효연은 고개를 돌려 남태준을 바라보며 그가 진심으로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했다. 만약 직업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지우가 그에게 시집가는 건 커다란 복일 것이다.“지성이 병원비는...”진효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태준이 이미 그녀의 뜻을 알고 급히 위로했다.“병원비는 급히 갚을 필요 없어요. 지성이가 깨어나서 나중에 돈을 벌면 천천히 갚으라고 하세요. 무기한으로요.”진효연은 가슴이 뭉클해 눈시울이 젖었고 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손을 잡고는 울먹였다.“내가 정말 고마워요. 지성이를 대신해서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남태준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고 가슴이 내려앉았다.그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며 지우를 도울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벗고 나설 것이다.진효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남 대장님만 괜찮으시다면 우리 지우 오빠로...”남태준의 얼굴빛이 순간 굳어지더니 바로 말을 끊었다.“아주머니. 그럴 필요 없어요. 헤어졌는데 어떻게 오빠 동생으로 지내요?”진효연은 난처해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남태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떻게 메워야 할지 몰랐다.남태준은 마음이 답답했다.어떻게 그더러 지우의 오빠로 지내라고 할 수 있을까?그렇다면 앞으로 계속 연락하지만 서로 사랑해서는 안 되며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지우가 시집가는 걸 눈 뜨고 지켜보고 지우의 미래 남편을 매부라고 불러야 할까?남태준은 죽어도 할 수 없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 바르게 말했다.“아주머니 저는 아직 일이 남아서 먼저 가볼게요. 무슨 일 있으면 제게 전화하세요.”“그래요. 어서 가봐요.”남태준은 목례를 하고 성큼성큼 떠났다.진효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또 한바탕 한숨을 쉬었다.남태준이 마약 형사의 일을 그만두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일 것 같았다
“저희는 아직 일이 좀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오신우가 예의 바르게 인사하자 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살펴 가세요.”지우는 오신우와 다른 형사 한 명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는 마음을 추스르고 계속 ICU 병실로 향했다.그녀는 ICU 입구에 있는 벤치 앞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남태준과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분위기가 상당히 화기애애했다.그녀는 완전히 멍해졌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지우가 생각해 보니 진효연은 남태준을 본 적이 없으니 그가 자신의 전 남자친구인 줄 모를 것이다.지우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가가며 예의 바르게 입을 열었다.“남 대장님 오셨어요?”남태준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니 며칠 못 본 사이에 부쩍 초췌하고 말라 있었다.진효연도 멍하니 지우를 바라봤다.지우는 남태준과 거리감 있게 인사하고는 진효연에게 물었다.“엄마. 지성이 깼어요?”진효연이 유리창 안쪽 병실을 가리켰다.“깼는데 아직 활력 징후가 불안정해 ICU에서 나올 수 없대.”“지성이가 산에서 양귀비를 봤다고 했어요?”지우가 묻자 진효연은 주먹을 불끈 쥐고 악에 받쳐 말했다.“마약은 우리 일대에서 사라진 적이 없었어. 곳곳에 끝없이 이어진 언덕이 있고 몇 개의 큰 산을 넘으면 바로 이웃 나라 국경이잖아. 약쟁이들은 우리처럼 작은 지역을 좋아해. 외진 곳이라 아무도 그들을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말을 마친 진효연은 다시 남태준을 바라보며 긴장한 듯 그의 팔에 손을 얹었다.“남 대장님, 일하면서 꼭 몸조심하세요. 마약쟁이들은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악마예요.”남태준이 따뜻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꼭 조심할게요.”지우는 다시 한번 경악했다.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의 어머니는 마약 형사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녀가 형사에게 시집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진효연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지우에게 말했다.“여긴 별일 없으니 넌 매점에 가봐. 난 여기서 지성이 지켜보면서 남 대장님과 더
“전에 출연했던 작품 투자자였어요.”“당신들은 촬영이 끝났는데 왜 아직도 안 가는 거죠?”“새로운 작품 촬영 중인데요?”“육건우 뒤에 있는 보스와 아직도 연락할 수 있어요?”임다희는 차갑게 웃었다.“태준이한테 배웠어요? 마치 범인을 심문하는 듯한 말투네요.”“만약 남태준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도와주세요. 하마터면 그 사람을 죽일 뻔했던 배후를 잡아야죠.”“그건 그쪽이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거예요.”“그럼 오늘 날 왜 찾아왔죠?”“그쪽이 태준이와 깨끗하게 끝났으면 해서요.”“어떻게 하면 깨끗하게 끝난 거죠?”지우가 물으니 임다희는 주머니에서 카드 한 장과 명함 한 장을 꺼냈다.“카드 안에 6천만 원 들어 있어요. 동생 병원비로 쓰세요. 그리고 이건 내 친구 명함이에요. 다른 도시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지우 씨가 그 회사에 출근해도 돼요. 조건이 나쁘지 않을 거예요.”알고 보니 그녀는 지우를 남태준에게 멀리 떨어지게 하려는 목적이었다.지우는 명함과 은행 카드를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내가 아직도 다희 씨에게 예의를 차리는 건 내가 소질이 있어서지 당신 같은 사람과 거래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당신은 여전히 내게 태준 씨를 팔아넘겨 죽일 뻔한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여자니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당신은 내가 가장 싫어하고 혐오하는 사람이야.”“태준 씨가 만약 당신을 사랑해서 다시 만나고 싶다면 난 그 사람 축복해. 나와 태준 씨는 이미 끝난 사이니까 이딴 짓 하지 마. 역겨우니까.”말을 마친 지우는 일어나 차갑게 인사했다.“당신 같은 사람이랑은 더 이상 할 말 없으니까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말자. 당신의 그 더러운 손이 우리 가족에게 뻗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럼 이만.”지우가 몇 걸음 갔을 때 임다희가 뒤에서 외쳤다. “당신들 남동생 병원비를 전혀 감당할 수 없잖아? 내 돈을 받지 않겠다면 태준이 찾아가 돈을 빌리는 일도 없었으면 해. 이미 끝난 이상 더 이상 얽히지 말라고.”지우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지우는 울지 않았고 울 수도 없었다.테이블 밑에 놓인 그녀의 손은 일찌감치 주먹을 불끈 쥔 채 눈 밑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화가 나서 눈앞의 징그러운 여자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이 여자는 지금 무슨 자격으로 우는 거지? 정말 미치겠네!’임다희는 휴지를 꺼내 계속 눈물을 닦았다. “나중에 난 무사히 귀국했지만 태준이는 이미 살아날 확률이 전혀 없을 정도로 혹사당했어요. 모두 태준이가 죽은 줄 알고 해변에 시신을 버렸어요.”지우는 눈시울을 붉히고 이를 갈며 물었다.“겨우 살아난 태준 씨가 가장 절망적이고 어둡던 시절에 당신은 어디 있었죠? 한 번도 보러 오지 않았잖아요? 대체 왜죠? 태준 씨가 장애를 얻어서?”임다희는 다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물을 글썽이며 지우를 보았다.“아니에요. 난 태준이 동생 때문에 감히 보러 가지 못했어요.”“남하준?”지우가 묻자 임다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태준이가 사고 난 후로 우리나라 미사일이 바로 이웃 섬으로 날아가 순식간에 초토화됐어요. 국제적으로는 미사일이 빗나간 우발적인 사고라고 보도됐죠.”“하지만 난 그 섬이 태준이가 계속 조사해온 가장 큰 마약 굴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섬 전체가 마약을 생산하고 판매하고 있었거든요.”지우는 차갑게 웃고는 차를 마시고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남하준이 그 일로 당신에게 복수할까 봐 감히 태준 씨를 보러 가지 못했다?”임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하지만 태준 씨는 당신을 언급하지도 않았어요. 그 일도 남하준이 직접 조사한 거고.”“그분 성격으로는 당신을 죽이고도 남았겠지만 태준 씨가 원하지 않았죠.”임다희는 눈물을 닦고 밝은 태도를 보였다.“그걸 난 이제야 알았고 그래서 지우 씨에게 태준이는 아직도 날 많이 사랑한다고 알려주고 싶었어요.”지우는 참다못해 차갑게 웃고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돌려 창밖의 대나무 숲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 다시 임다희를 바라보았다. “당신 남태준 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