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하지만 이미 마음에 다른 남자를 품고 있어서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 미안해.”진준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어쩔 수 없이 말했다.“무슨 말인지 알겠어. 만약 네 마음에 있는 그 남자에게 기회가 없다면 차라리 그 기회를 나에게 주는 건 어때? 어쩌면 우리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잖아.”지우가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자 진준호 역시 멈추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나 아주 아쉬워. 널 오랫동안 짝사랑했지만 졸업 시즌에 네게 고백하지 못한 거 계속 후회했어. 만약 지금 그 기회가 왔다면 놓치고 싶지 않아.”지우는 용감한 사람을 탄복했다“준호야, 나...”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나의 그림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지우가 반응도 하기 전에 강력한 힘의 큰 손이 그녀의 팔을 꽉 잡고 힘껏 잡아당기더니 그녀를 자신의 따뜻하고 튼튼한 가슴으로 끌어당겼다.그녀가 경악하며 고개를 들자 남태준의 준수한 얼굴을 보고는 가슴이 떨렸다.지우가 낯선 남자의 품에 안기는 것을 본 진준호는 다급하게 물었다.“당신 뭐야?”남태준의 거대한 체구에 진준호는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고 말로 으름장을 놓았다.“당장 지우 놔줘!”남태준은 싸늘한 눈빛에 노기를 띤 채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여자친구에게 할 말이 있어 먼저 실례할게요.”여자친구?지우는 멍해졌고 진준호는 더욱 어리둥절했다.남태준이 지우를 끌고 떠나자 진준호가 급히 쫓아가 두 사람 앞을 막으며 물었다.“지우야. 너 솔로라며?”지우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가로젓고는 혼란스럽게 말했다.“나 솔로 맞아. 이 사람은 전 남자친구야.”그녀의 말에 남태준의 안색이 더욱 새파래졌다.“나 이 사람이랑 얘기 좀 할 테니까 너 먼저 가봐.”지우는 웃으며 진준호에게 손을 흔들었다.“잘 가.”진준호도 더 이상 지우를 빼앗을 이유가 없어 지우가 끌려가는 것을 못마땅해 하며 노려봤다.남태준은 지우를 차에 태워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매주고는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량이 넓
지우는 남태준에 의해 강제로 집에 끌려들어 갔다.문이 잠기는 순간 지우는 좀 당황스러웠다.그녀는 화가 난 남자가 어떤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지 몰라 계속 몸부림치며 떠나려고 했지만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남자의 힘센 손에서 벗어나는 건 무리였다.남태준에 의해 거실로 끌려가 그대로 소파에 던져졌다.그녀는 긴장해서 움츠러들었고 방황하면서도 경계하는 눈빛으로 남태준을 쳐다보았다. 그가 미칠 듯이 달려들 것 같아 속으로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이성적으로 그녀 곁에 앉아 쓸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매우 괴로워 보였다.밝은 거실은 두 사람의 가벼운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창밖은 캄캄했다.집안의 분위기가 점점 굳어졌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지우는 남태준이 화가 나서 그녀와 단둘이 지낼 이유를 찾는 것이지 그녀에게 화풀이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태준 씨, 나 놔주겠다고 했잖아요?”남태준은 얼굴을 가리고 깊게 숨을 내쉬더니 온몸에 냉기가 번져 형언할 수 없는 감상과 슬픔이 어렴풋이 배어 있었다.그는 소파 등에 기대어 옆으로 지우를 바라보며 눈가에 쓸쓸한 감정이 가득했다.“지우야. 내가 헤어지겠다고 했지 널 포기한 적은 없어. 난 계속 노력하고 있었어.네가 나 좋아하도록, 네 가족이 나 좋아하도록.”지우는 고개를 숙이고 괴로워하며 말했다.“진짜 그럴 필요 없어요.”“우리 사이에는 그 어떤 갈등도 다툼도 제삼자도 없었어. 네가 갑자기 헤어지자고 한 거 혹시 엄마 때문이야?”지우는 침묵했고 손가락을 꽉 쥐고 손톱을 뜯었다.“대답해줘.”남태준은 소파를 따라 천천히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다가갔다가 꾹 참았다.그에게는 이제 지우의 손을 잡을 명분이 없었다.매일같이 그리움에 시달리고, 미칠 듯이 그녀를 보고 싶고, 안고 싶고, 키스하고 싶어도 이젠 아무런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그저 모퉁이에 몰래 서서 먼발치에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헤어지는 날은 녹슨 무딘 칼처럼,
그래서 이 일은 남태준에게 매우 중요할 것이다.그의 사명이고 명예이고 책임이고 그의 전부일 것이다.지우는 남태준을 사랑하고 그의 일과 삶도 존중했다.남태준은 그녀의 팔을 잡고 힘껏 끌어당겼다.“내가 그 비실비실한 이혼남보다도 못하다는 거야?”지우는 중심을 잃고 그의 품에 안겨 방황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팔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그녀는 서럽게 눈물을 흘렸고 턱은 떨리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를 바라봤다.남태준은 그녀 눈 밑의 눈물을 바라보며 자신도 눈시울을 붉혔고 그의 슬픈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만약 가능하다면 내가 다리도 못 쓰고 앞도 못 보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네가 돈 때문에 나를 보살피기는 했지만 나 그때 정말 기쁘고 행복했어.”그때를 생각하면 지우 눈 밑의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그녀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당시의 남태준은 너무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다.그가 언제나 지금처럼 건강하기를 바랐다.“그때 너는 내가 눈이 안 보인다고 멋대로 행동했어.”남태준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 밑에는 눈물이 흐르지만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네가 나를 도와 샤워하고 밥 먹여주고 우리 같은 침대에서 자기도 했었지. 넌 청개구리처럼 내가 싫어하는 행동만 골라 했어.”“네가 아무리 완자 친구라지만 내 말 한마디면 엄마는 널 해고할 수 있었어. 하지만 난 널 떠나보내는 게 너무 아쉬웠어. 진흙탕이 된 내 마음을 넌 작은 작대기로 계속 저어주어 더 이상 평온하지 않고 매일 파도가 일렁였어.”“그러던 어느 날, 네가 갑자기 떠났어.”남태준은 눈물이 흘러넘쳐 흐느껴 울었다.“난 또다시 그 암흑 같은 삶으로 돌아갔어. 햇볕도 없고 활기도 없는 그 어두운 세계로.”“지우야. 네가 돈을 원한다면 난 만족시켜 줄 수 있어. 네가 사랑을 원한다면 난 온 마음을 다해 널 사랑할 거야. 네가 안정감을 원한다면 나 일선에서 떠나 사무직으로 물러날 수 있어.”남태준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애틋했고 점점 더 간절해졌다.“제발 나 떠나지 말아줘.
지우가 난동을 부릴수록 남자는 더욱 괴로웠다.남자의 키스는 그녀의 입술에서 천천히 떨어져 나가며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부드럽게 닿았다.지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울다가 눈을 감은 채 몸을 떨며 울먹였다.“태준 씨. 이러지 말아요.”“사랑해 지우야.”그녀의 귓불에 키스하고 있는 남자의 목소리는 빠져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지우는 그의 손길이 스쳐 지나고 그가 키스한 피부에 마치 전류가 흘러 사지를 관통하고 온몸이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그녀는 두렵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갈망하고 있었다.어느새 몸부림을 포기하고 남자를 받아들이고 있었다.누군가를 사랑하기 전, 그녀는 절대 혼전 순결을 지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하지만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이성보다 신체의 갈망이 훨씬 컸다.지우는 온몸에 힘을 빼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상한 촉감에 입에서 수줍은 신음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꾹 참았다.그녀가 남태준이 주는 정욕의 설렘을 즐기고 있을 때 남자가 갑자기 멈추었다.그는 지우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숨을 몰아쉬더니 그녀의 옷 밑에서 천천히 손을 빼내어 그녀의 흐트러진 옷을 정리해주었다.“미안해.”남태준은 욕망을 고통스럽게 억누르고 죄책감 가득한 채 속삭였다.“미안해. 미안해.”그는 하마터면 통제력을 잃을 뻔했다.이성이 돌아온 지금, 남태준은 자신의 뺨을 몇 대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른 거야?’“난 정말 개자식이야. 미안해.”남태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고 그는 숨을 헐떡이며 그녀의 몸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지우는 가슴이 출렁이고 호흡이 어지럽고 눈을 깜박이며 천장을 바라보며 마음을 추스르고 욕망을 추슬렀다.좋아하는 남자가 키스하면서 쓰다듬어주면 몸에서 이렇게 격렬한 반응이 일어날 줄이야.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녀는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 같아 강렬한 욕망까지 생겼다.아주
“난...”진효연은 당황하고 긴장하여 침을 꿀꺽 삼켰다.“이게 전부 너를 위해서야.”지우는 눈물을 닦고 울며 말했다.“전 세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거의 매일 사람이 죽어요. 병으로 죽거나 사고로 죽거나 살해당하거나.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거 아니에요?”“내가 만약 운전기사와 결혼하면 남편이 운전하다가 차에 치여 죽지 않는다는 보장 있어요?”“내가 작은 가게 사장에게 시집가면 그 사람이 술을 많이 마셔 죽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어요?”“만약 농부에게 시집가면 가난해서 죽겠네요?”“뉴스 보면 가문이 몰살되는 참사가 얼마나 많아요?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고 마약 형사만 해당하는 거 아니라고요.”“제발 엄마의 그 비참한 운명을 나에게도 돌리지 말라고요!”지우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파에 엎드려 목놓아 울었다.진효연은 어찌할 줄 몰라 멍하니 있으며 감히 움직이지도 못했고 마음도 어지러워졌다.한바탕 눈물을 흘린 지우는 일어나서 눈물을 닦고 코를 훌쩍였다.“엄마 첫사랑인 그 약혼자가 뜻밖에 세상을 떠나 결혼하지 못한 건 엄마 평생의 한이겠죠. 이제 나도 똑같아요. 다른 점은 내 첫사랑은 죽지 않았다는 거죠. 하지만 우리 감정은 엄마 때문에 이미 억눌려 죽었어요.”진효연은 얼굴이 창백하여 넋을 잃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말을 마친 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고 거실은 적막했다.진효연은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넋을 잃은 채로 소파에 멍하니 있었고 초점을 잃은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그날 밤, 지우도 잠을 설쳤고 진효연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이튿날 아침.하룻밤이 지나자 지우는 어제저녁 자신이 한 말이 너무 심해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쨌거나 진효연은 지우를 사랑하고 걱정하기 때문이었다.지우는 미안한 마음으로 진효연의 방문을 두드렸다.“엄마. 일어났어요?”방안에 인기척이 없자 지우는 또 몇 번 두드리며 마음이 조급해졌다. 진효연은 늘 정서적으로 불안했고 늘 삶에 대
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지우는 당장 남태준을 찾아가고 싶었다.그러나 어젯밤 그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 그의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그녀를 상대할 의향이 있을까?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어젯밤 자신이 남태준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보았다. 그는 아직도 답장하지 않았다.어제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매몰차게 말했는데 지금 다시 메시지를 보내 다시 만나자고 하면 너무 성의 없어 보이지는 않을까?이렇게 하면 그녀가 남태준을 대하는 감정이 제멋대로이고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처럼 오만하게 보이지 않을까?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고민하다 보니 생각이 많고 마음이 착잡했다.전화도 문자도 모두 성의 없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그녀는 스쿠터를 타고 경찰서로 향했다.이 시간에 남태준은 이미 퇴근했을 것이다.저녁노을이 지우에게 쏟아지고 그녀는 저녁 바람을 맞으며 길가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더없이 좋았다.가락을 찾지 못하는 노래를 흥얼거렸고 스쿠터가 무성한 오동나무 아래를 지나는데 봄바람이 불어와 공기마저 향긋했다.지우는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30분 후. 경찰서 입구에 도착한 지우는 브레이크를 밟고 전원을 끄고 대문 안을 바라보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안에서 계속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데 유독 남태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지우는 한참을 기다렸다가 차를 잠그고 가방을 들고는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좀 긴장되었다.들어가서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전부 업무를 보고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들이었다.그때 경찰복을 입은 남자가 지나가면서 물었다.“어떻게 오셨죠?”지우는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긴장하며 물었다. “실례지만 마약 단속팀 남 대장님 계시나요?”남자는 사무실을 돌아보며 대답했다.“안 계세요.”“그럼 어디로 가셨죠?”지우가 또 묻자 경찰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주시했다.“누구시죠? 무슨 일로 남 대장님을 찾으시죠?”지우는 상대방의 경계심과 엄숙함이 느껴졌고 뭔가 사납고 엄한 압박감을 주는
‘너 참. 한심하다!’지우는 속으로 자신을 욕하며 스쿠터를 돌려 힘없이 집 쪽으로 향했다.다음 날.지우는 더 이상 남태준을 찾으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매일 휴대전화를 보며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그가 메시지 한 통이라도 보내길 바랐다.그를 찾으러 갈 용기와 핑계가 필요했지만 메시지는 끝내 오지 않았다.지성의 퇴원을 앞두고 진효연은 집에서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그녀에게 남태준을 부르라고 했지만 지우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병원 병실.지성은 옷을 개면서 의자에 앉아있는 지우를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물었다.“나 퇴원하는 거 도와주러 온 거 아니야? 왜 아무것도 안 하고 폰만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어?”지우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지성을 쏘아보며 나무랐다.“너 이제 움직일 수 있잖아? 옷 몇 벌 개인다고 안 죽어.”“누나 같은 여자를 어느 남자가 데려가겠어? 정말 불쌍하다.”워낙 기분이 안 좋았던 지우는 그 말을 듣자 더욱 괴로워 벌컥 화를 냈다.“누가 너더러 데려가래?”지성과 지우는 어릴 적부터 서로 치고받으면서 커왔고 어린이 된 지금도 자주 다퉜다.지성이 인정사정없이 말했다.“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여자가 바로 누나 같은 여자야. 지나가는 남자들 다 홀릴 것 같은 몸매를 지닌 것도 모자라 여자가 상냥하지도 않고 어질지도 않고 배려심도 없고 사납고 악독하잖아!”지우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되받아쳤다.“그래 나 몸매 좋다! 부렵냐? 너처럼 깡마른 자식은 대나무 장대 같은 아내밖에 차려지지 않아!”“너!”지성은 화가 치밀어 상처가 아팠고 어두운 얼굴로 지우를 가리켰다.지우는 멈추지 않고 계속 공격했다.“아니다. 너 같은 놈에게 어느 여자가 시집가겠어? 평생 노총각으로 늙어 죽어라!”지성은 이를 악물었다.“누나. 말이 너무 심하잖아!”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지우와 지성은 모두 조용해져서 입구 쪽을 보았다문은 열려 있었고 남태준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서 그들 남매가 다투는 것을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지우가 휴대전화와 가방을 들고 일어서니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래. 그럼 나 간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남태준의 옆을 지나갔다.남태준의 시선은 그녀를 따라 움직였고 그녀가 병실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벼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지우는 그와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저번에 강제로 그녀의 몸을 가지려고 해서 그녀를 놀라게 한 것 같았다.요 며칠 동안 그는 끝없는 번뇌와 후회 속에 살았다.그때 지성이 가방을 들고 남태준 앞으로 다가왔다.“형. 가요.”남태준은 정신을 차리고 그의 가방을 받아들며 말했다.“내가 들게.”지성은 크게 기뻐했고 눈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고마워요. 형.”차에 오른 남태준은 차에 시동을 걸고 천천히 출발했다.잠시 후 지우가 뒤에서 따라오자 남태준은 속도를 줄이고 백미러로 지우가 스쿠터를 타는 모습을 보며 약간 멍해졌다.지성이 그런 남태준의 상태를 눈치채고 말했다.“누나 기다릴 필요 없어요. 매일 다니는 길이라 아주 익숙해요. 조금 있다가 앞쪽 길목에 도착해서 오솔길로 빠지면 누나가 우리보다 훨씬 빨라요.”남태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덤덤하게 대답했다.“그래.”지성은 힐끔 남태준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사실 우리 누나가 가끔 사납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착하고 어질어요.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많이 하는 편이었고 사람 잘 챙길 줄 알고 성실하고 선량한 편이에요.”남태준이 입술을 오므리며 가볍게 웃었다.“알아.”“아주 가정적인 사람이에요. 아버지가 병에 걸리셨을 때, 난 대학생이었고 누나 혼자 힘으로 이 집안을 지켰어요. 병원비며 빚이며 모두 누나 혼자 짊어졌어요.”남태준이 계속 응대했다.“알아. 지우 좋은 사람인 거.”지성이 궁금해서 물었다.“우리 누나 좋은 사람인 거 알면서 왜 헤어졌어요?”남태준은 조금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네 누나가 나 안 좋아해. 별로 느낌이 없대.”지성은 입을 떠벌리고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갈았다.“누나 사람 보는 눈은 개나 줘버렸나? 난 또 엄마가 두 사람
남태준은 당연히 진효연의 뜻을 알았다.그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진효연은 자기 자식을 너무 사랑했고 딸은 결국 시집갈 것이고 평생 그녀와 함께할 수 없으므로 아들에게 더욱 마음이 기울 것이다.가난한 사람 중에는 가식적인 사람이 많았다.하지만 본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진효연이 남태준은 마음에 들었다. 무슨 생각이든 마음에 숨겨두지 않고 바로 표현할 줄 알았으니.남태준이 여유롭게 말했다.“아주머니, 지성이가 공무원이 되려면 반드시 공무원 시험을 쳐야 해요. 통과해야만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어요.”진효연은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공무원 시험이 어디 쉽나.”“만약 공무원이 되기 싫으면 안성에 가도 돼요. 제가 가족들한테 회사에 맞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할게요.”진효연은 싱글벙글 웃으며 남태준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고마워 태준아. 내가 정말 많이 고마워.”지성도 기뻐했다.“고마워요 형.”지우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밥 먹을 기분이 없어 수저를 놓았다.그녀는 아직 남태준의 여자친구가 아닌데 그녀의 가족은 흡혈귀처럼 그에게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관계가 더 가까워지면 앞으로 어떤 무리한 요구를 제기할지 모른다.지우는 지성을 가리키며 경고했다.“너 못 가.”진효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지우를 쳐다보며 불쾌하게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지성도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내가 왜 못 가? 누나도 내가 나가서 돈 벌기를 바라잖아.”지우는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면접 보고 들어가는 건 되는데 낙하산은 절대 안 돼.”“왜?”지우는 제대로 된 신분으로 자존감을 갖고 남태준과 만나고 싶었다. 그의 도움을 받으며 난처한 위치에 처 하고 싶지 않았다.“그냥.”“내가 언제 누나더러 도와 달래? 난 태준이 형에게 부탁했어. 게다가 형도 흔쾌히 수락했고.”“너 바보니? 일자리도 혼자 못 찾아?”“내가 졸업한 대학교가 평범하잖아. 취업이 어려운 요즘 세상에 대기업 들어가는 일이 어디 쉬운 줄 알아?”“그래도 넌...
네모난 식탁에는 여섯 가지 요리에 국 하나, 그리고 디저트와 과일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새우, 게, 생선, 닭, 쇠고기, 야채, 수입산 인삼 비둘기 찜이 있었다.이러한 음식은 그다지 비싸지 않지만 남태준은 명절이나 중요한 날이 아니면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한 상 가득한 음식을 보던 남태준이 시선을 돌려 지성의 어두운 얼굴을 보니 이 맛있는 음식들이 지성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지성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엄마, 의사가 상처 완전히 아물기 전에는 담백하고 잘 소화되는 음식을 많이 먹고 기름진 음식은 피하라고 했어요. 아직 이런 음식은 벅차요.”진효연은 야채를 집어 지성의 그릇에 놓았다.“넌 야채 많이 먹어. 이건 충분히 담백해.”지성은 게를 보며 침을 흘렸다. 평소 해산물을 거의 먹지 않는 그의 집에서 하필 그가 다쳤을 때 해산물을 준비하다니.밥을 먹기도 전에 화가 잔뜩 불렀다.진효연은 집게로 가장 큰 게를 집어 남태준 앞에 놓인 작은 접시에 놓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태준아. 넌 이거 많이 먹어.”“감사합니다.”남태준은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지우를 쳐다봤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국을 먹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태준은 진효연이 너무 열정적인 것 같았다.설마 그를 수양아들로 삼아 지우의 오빠로 만들고 싶은 걸까?“혹시 게 뜯는 도구 있어요?”남태준이 식탁을 보며 묻자 진효연은 어리둥절했다.게를 자주 먹지 않으니 게를 먹을 때 전문적인 도구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지우는 그릇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달려가 깨끗한 작은 가위와 커피용 작은 숟가락을 꺼내 남태준에게 건넸다.“대충 이거라도 써요. 우리 집은 게를 먹을 때 그냥 입으로 뜯었어요.”지우가 부드럽게 말하자 남태준은 엷게 웃으며 도구를 받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우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계속했다.진효연은 남태준에게 해산물을 집어주고 지성에게 닭고기를 집어주며 많이 먹으라고 했다.다들 열심히
지우가 물건을 들고 지성의 방으로 가져갔다.남태준은 신발을 갈아신고 들어가서 그녀의 집안을 둘러봤다.확실히 좀 좁고 낡긴 하지만 깔끔한 편이었다.부엌 맞은 편에 바로 식탁이 있고 식탁 옆에는 거실이 있고 거실 소파도 짧아서 세 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였다.텔레비전은 구식이고 냉장고도 작아서 거실 구석에 비치되어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비좁아 보였다.“태준이 왔어?”진효연은 음식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며 활짝 웃으며 열정적으로 맞이했다.“앉아. 어서 앉아. 준비 거의 끝나가.”너무 친절하고 다정한 태준이라는 호칭에 남태준은 조금 어리둥절했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제가 뭐 도와드릴까요?”“없어. 없어. 그저 앉아서 차나 마시고 지우와 얘기나 나누면 돼. 부엌일 정도는 나 혼자로 충분하지.”남태준은 또 움찔했다.지우와 얘기를 나누라니. 조금 어리둥절했다.너무 갑작스러운 열정에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지성은 부랴부랴 남태준에게 거실 소파에 앉으라고 청한 뒤 녹차 한 잔을 우려낸 뒤 리모컨을 건넸다.“TV 볼래요?”남태준이 다급하게 거절했다.“괜찮아.”지성은 습관적으로 TV를 켜고 스포츠 채널을 누르면서 말했다.“누나는 로맨스 드라마만 좋아해요. 누나가 집에 있으면 내가 리모컨을 차지한 적이 없어요.”남태준이 따뜻하게 웃었다.“그건 직업 때문에 그런 거잖아.”“형도 누나 글 쓰는 거 알아요?”“누나가 경찰의 사랑 이야기를 쓴 적 있는데 아쉽지만 결말은 비극이었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책을 출판했어요.”남태준은 방금 찻잔을 들자마자 흠칫 놀라더니 동작이 뻣뻣해져서 차마 차를 마실 수 없었다.방 안에서 지성의 옷을 챙겨주던 지우가 그의 말을 듣고 노기등등하게 뛰쳐나왔다.“야. 너 그 부질 없는 입 다물어!”남태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지우를 바라보았다. 뾰로통한 그녀의 모습이 아주 귀여웠다.하지만 지성에게는 그저 무서울 따름이었다.지성은 긴장한 채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담담하게 TV를 계속
지우가 휴대전화와 가방을 들고 일어서니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래. 그럼 나 간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남태준의 옆을 지나갔다.남태준의 시선은 그녀를 따라 움직였고 그녀가 병실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벼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지우는 그와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저번에 강제로 그녀의 몸을 가지려고 해서 그녀를 놀라게 한 것 같았다.요 며칠 동안 그는 끝없는 번뇌와 후회 속에 살았다.그때 지성이 가방을 들고 남태준 앞으로 다가왔다.“형. 가요.”남태준은 정신을 차리고 그의 가방을 받아들며 말했다.“내가 들게.”지성은 크게 기뻐했고 눈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고마워요. 형.”차에 오른 남태준은 차에 시동을 걸고 천천히 출발했다.잠시 후 지우가 뒤에서 따라오자 남태준은 속도를 줄이고 백미러로 지우가 스쿠터를 타는 모습을 보며 약간 멍해졌다.지성이 그런 남태준의 상태를 눈치채고 말했다.“누나 기다릴 필요 없어요. 매일 다니는 길이라 아주 익숙해요. 조금 있다가 앞쪽 길목에 도착해서 오솔길로 빠지면 누나가 우리보다 훨씬 빨라요.”남태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덤덤하게 대답했다.“그래.”지성은 힐끔 남태준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사실 우리 누나가 가끔 사납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착하고 어질어요.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많이 하는 편이었고 사람 잘 챙길 줄 알고 성실하고 선량한 편이에요.”남태준이 입술을 오므리며 가볍게 웃었다.“알아.”“아주 가정적인 사람이에요. 아버지가 병에 걸리셨을 때, 난 대학생이었고 누나 혼자 힘으로 이 집안을 지켰어요. 병원비며 빚이며 모두 누나 혼자 짊어졌어요.”남태준이 계속 응대했다.“알아. 지우 좋은 사람인 거.”지성이 궁금해서 물었다.“우리 누나 좋은 사람인 거 알면서 왜 헤어졌어요?”남태준은 조금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네 누나가 나 안 좋아해. 별로 느낌이 없대.”지성은 입을 떠벌리고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갈았다.“누나 사람 보는 눈은 개나 줘버렸나? 난 또 엄마가 두 사람
‘너 참. 한심하다!’지우는 속으로 자신을 욕하며 스쿠터를 돌려 힘없이 집 쪽으로 향했다.다음 날.지우는 더 이상 남태준을 찾으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매일 휴대전화를 보며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그가 메시지 한 통이라도 보내길 바랐다.그를 찾으러 갈 용기와 핑계가 필요했지만 메시지는 끝내 오지 않았다.지성의 퇴원을 앞두고 진효연은 집에서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그녀에게 남태준을 부르라고 했지만 지우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병원 병실.지성은 옷을 개면서 의자에 앉아있는 지우를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물었다.“나 퇴원하는 거 도와주러 온 거 아니야? 왜 아무것도 안 하고 폰만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어?”지우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지성을 쏘아보며 나무랐다.“너 이제 움직일 수 있잖아? 옷 몇 벌 개인다고 안 죽어.”“누나 같은 여자를 어느 남자가 데려가겠어? 정말 불쌍하다.”워낙 기분이 안 좋았던 지우는 그 말을 듣자 더욱 괴로워 벌컥 화를 냈다.“누가 너더러 데려가래?”지성과 지우는 어릴 적부터 서로 치고받으면서 커왔고 어린이 된 지금도 자주 다퉜다.지성이 인정사정없이 말했다.“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여자가 바로 누나 같은 여자야. 지나가는 남자들 다 홀릴 것 같은 몸매를 지닌 것도 모자라 여자가 상냥하지도 않고 어질지도 않고 배려심도 없고 사납고 악독하잖아!”지우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되받아쳤다.“그래 나 몸매 좋다! 부렵냐? 너처럼 깡마른 자식은 대나무 장대 같은 아내밖에 차려지지 않아!”“너!”지성은 화가 치밀어 상처가 아팠고 어두운 얼굴로 지우를 가리켰다.지우는 멈추지 않고 계속 공격했다.“아니다. 너 같은 놈에게 어느 여자가 시집가겠어? 평생 노총각으로 늙어 죽어라!”지성은 이를 악물었다.“누나. 말이 너무 심하잖아!”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지우와 지성은 모두 조용해져서 입구 쪽을 보았다문은 열려 있었고 남태준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서 그들 남매가 다투는 것을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지우는 당장 남태준을 찾아가고 싶었다.그러나 어젯밤 그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 그의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그녀를 상대할 의향이 있을까?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어젯밤 자신이 남태준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보았다. 그는 아직도 답장하지 않았다.어제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매몰차게 말했는데 지금 다시 메시지를 보내 다시 만나자고 하면 너무 성의 없어 보이지는 않을까?이렇게 하면 그녀가 남태준을 대하는 감정이 제멋대로이고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처럼 오만하게 보이지 않을까?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고민하다 보니 생각이 많고 마음이 착잡했다.전화도 문자도 모두 성의 없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그녀는 스쿠터를 타고 경찰서로 향했다.이 시간에 남태준은 이미 퇴근했을 것이다.저녁노을이 지우에게 쏟아지고 그녀는 저녁 바람을 맞으며 길가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더없이 좋았다.가락을 찾지 못하는 노래를 흥얼거렸고 스쿠터가 무성한 오동나무 아래를 지나는데 봄바람이 불어와 공기마저 향긋했다.지우는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30분 후. 경찰서 입구에 도착한 지우는 브레이크를 밟고 전원을 끄고 대문 안을 바라보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안에서 계속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데 유독 남태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지우는 한참을 기다렸다가 차를 잠그고 가방을 들고는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좀 긴장되었다.들어가서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전부 업무를 보고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들이었다.그때 경찰복을 입은 남자가 지나가면서 물었다.“어떻게 오셨죠?”지우는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긴장하며 물었다. “실례지만 마약 단속팀 남 대장님 계시나요?”남자는 사무실을 돌아보며 대답했다.“안 계세요.”“그럼 어디로 가셨죠?”지우가 또 묻자 경찰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주시했다.“누구시죠? 무슨 일로 남 대장님을 찾으시죠?”지우는 상대방의 경계심과 엄숙함이 느껴졌고 뭔가 사납고 엄한 압박감을 주는
“난...”진효연은 당황하고 긴장하여 침을 꿀꺽 삼켰다.“이게 전부 너를 위해서야.”지우는 눈물을 닦고 울며 말했다.“전 세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거의 매일 사람이 죽어요. 병으로 죽거나 사고로 죽거나 살해당하거나.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거 아니에요?”“내가 만약 운전기사와 결혼하면 남편이 운전하다가 차에 치여 죽지 않는다는 보장 있어요?”“내가 작은 가게 사장에게 시집가면 그 사람이 술을 많이 마셔 죽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어요?”“만약 농부에게 시집가면 가난해서 죽겠네요?”“뉴스 보면 가문이 몰살되는 참사가 얼마나 많아요?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고 마약 형사만 해당하는 거 아니라고요.”“제발 엄마의 그 비참한 운명을 나에게도 돌리지 말라고요!”지우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파에 엎드려 목놓아 울었다.진효연은 어찌할 줄 몰라 멍하니 있으며 감히 움직이지도 못했고 마음도 어지러워졌다.한바탕 눈물을 흘린 지우는 일어나서 눈물을 닦고 코를 훌쩍였다.“엄마 첫사랑인 그 약혼자가 뜻밖에 세상을 떠나 결혼하지 못한 건 엄마 평생의 한이겠죠. 이제 나도 똑같아요. 다른 점은 내 첫사랑은 죽지 않았다는 거죠. 하지만 우리 감정은 엄마 때문에 이미 억눌려 죽었어요.”진효연은 얼굴이 창백하여 넋을 잃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말을 마친 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고 거실은 적막했다.진효연은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넋을 잃은 채로 소파에 멍하니 있었고 초점을 잃은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그날 밤, 지우도 잠을 설쳤고 진효연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이튿날 아침.하룻밤이 지나자 지우는 어제저녁 자신이 한 말이 너무 심해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쨌거나 진효연은 지우를 사랑하고 걱정하기 때문이었다.지우는 미안한 마음으로 진효연의 방문을 두드렸다.“엄마. 일어났어요?”방안에 인기척이 없자 지우는 또 몇 번 두드리며 마음이 조급해졌다. 진효연은 늘 정서적으로 불안했고 늘 삶에 대
지우가 난동을 부릴수록 남자는 더욱 괴로웠다.남자의 키스는 그녀의 입술에서 천천히 떨어져 나가며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부드럽게 닿았다.지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울다가 눈을 감은 채 몸을 떨며 울먹였다.“태준 씨. 이러지 말아요.”“사랑해 지우야.”그녀의 귓불에 키스하고 있는 남자의 목소리는 빠져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지우는 그의 손길이 스쳐 지나고 그가 키스한 피부에 마치 전류가 흘러 사지를 관통하고 온몸이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그녀는 두렵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갈망하고 있었다.어느새 몸부림을 포기하고 남자를 받아들이고 있었다.누군가를 사랑하기 전, 그녀는 절대 혼전 순결을 지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하지만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이성보다 신체의 갈망이 훨씬 컸다.지우는 온몸에 힘을 빼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상한 촉감에 입에서 수줍은 신음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꾹 참았다.그녀가 남태준이 주는 정욕의 설렘을 즐기고 있을 때 남자가 갑자기 멈추었다.그는 지우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숨을 몰아쉬더니 그녀의 옷 밑에서 천천히 손을 빼내어 그녀의 흐트러진 옷을 정리해주었다.“미안해.”남태준은 욕망을 고통스럽게 억누르고 죄책감 가득한 채 속삭였다.“미안해. 미안해.”그는 하마터면 통제력을 잃을 뻔했다.이성이 돌아온 지금, 남태준은 자신의 뺨을 몇 대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른 거야?’“난 정말 개자식이야. 미안해.”남태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고 그는 숨을 헐떡이며 그녀의 몸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지우는 가슴이 출렁이고 호흡이 어지럽고 눈을 깜박이며 천장을 바라보며 마음을 추스르고 욕망을 추슬렀다.좋아하는 남자가 키스하면서 쓰다듬어주면 몸에서 이렇게 격렬한 반응이 일어날 줄이야.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녀는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 같아 강렬한 욕망까지 생겼다.아주
그래서 이 일은 남태준에게 매우 중요할 것이다.그의 사명이고 명예이고 책임이고 그의 전부일 것이다.지우는 남태준을 사랑하고 그의 일과 삶도 존중했다.남태준은 그녀의 팔을 잡고 힘껏 끌어당겼다.“내가 그 비실비실한 이혼남보다도 못하다는 거야?”지우는 중심을 잃고 그의 품에 안겨 방황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팔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그녀는 서럽게 눈물을 흘렸고 턱은 떨리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를 바라봤다.남태준은 그녀 눈 밑의 눈물을 바라보며 자신도 눈시울을 붉혔고 그의 슬픈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만약 가능하다면 내가 다리도 못 쓰고 앞도 못 보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네가 돈 때문에 나를 보살피기는 했지만 나 그때 정말 기쁘고 행복했어.”그때를 생각하면 지우 눈 밑의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그녀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당시의 남태준은 너무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다.그가 언제나 지금처럼 건강하기를 바랐다.“그때 너는 내가 눈이 안 보인다고 멋대로 행동했어.”남태준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 밑에는 눈물이 흐르지만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네가 나를 도와 샤워하고 밥 먹여주고 우리 같은 침대에서 자기도 했었지. 넌 청개구리처럼 내가 싫어하는 행동만 골라 했어.”“네가 아무리 완자 친구라지만 내 말 한마디면 엄마는 널 해고할 수 있었어. 하지만 난 널 떠나보내는 게 너무 아쉬웠어. 진흙탕이 된 내 마음을 넌 작은 작대기로 계속 저어주어 더 이상 평온하지 않고 매일 파도가 일렁였어.”“그러던 어느 날, 네가 갑자기 떠났어.”남태준은 눈물이 흘러넘쳐 흐느껴 울었다.“난 또다시 그 암흑 같은 삶으로 돌아갔어. 햇볕도 없고 활기도 없는 그 어두운 세계로.”“지우야. 네가 돈을 원한다면 난 만족시켜 줄 수 있어. 네가 사랑을 원한다면 난 온 마음을 다해 널 사랑할 거야. 네가 안정감을 원한다면 나 일선에서 떠나 사무직으로 물러날 수 있어.”남태준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애틋했고 점점 더 간절해졌다.“제발 나 떠나지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