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지우는 당장 남태준을 찾아가고 싶었다.그러나 어젯밤 그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 그의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그녀를 상대할 의향이 있을까?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어젯밤 자신이 남태준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보았다. 그는 아직도 답장하지 않았다.어제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매몰차게 말했는데 지금 다시 메시지를 보내 다시 만나자고 하면 너무 성의 없어 보이지는 않을까?이렇게 하면 그녀가 남태준을 대하는 감정이 제멋대로이고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처럼 오만하게 보이지 않을까?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고민하다 보니 생각이 많고 마음이 착잡했다.전화도 문자도 모두 성의 없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그녀는 스쿠터를 타고 경찰서로 향했다.이 시간에 남태준은 이미 퇴근했을 것이다.저녁노을이 지우에게 쏟아지고 그녀는 저녁 바람을 맞으며 길가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더없이 좋았다.가락을 찾지 못하는 노래를 흥얼거렸고 스쿠터가 무성한 오동나무 아래를 지나는데 봄바람이 불어와 공기마저 향긋했다.지우는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30분 후. 경찰서 입구에 도착한 지우는 브레이크를 밟고 전원을 끄고 대문 안을 바라보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안에서 계속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데 유독 남태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지우는 한참을 기다렸다가 차를 잠그고 가방을 들고는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좀 긴장되었다.들어가서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전부 업무를 보고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들이었다.그때 경찰복을 입은 남자가 지나가면서 물었다.“어떻게 오셨죠?”지우는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긴장하며 물었다. “실례지만 마약 단속팀 남 대장님 계시나요?”남자는 사무실을 돌아보며 대답했다.“안 계세요.”“그럼 어디로 가셨죠?”지우가 또 묻자 경찰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주시했다.“누구시죠? 무슨 일로 남 대장님을 찾으시죠?”지우는 상대방의 경계심과 엄숙함이 느껴졌고 뭔가 사납고 엄한 압박감을 주는
‘너 참. 한심하다!’지우는 속으로 자신을 욕하며 스쿠터를 돌려 힘없이 집 쪽으로 향했다.다음 날.지우는 더 이상 남태준을 찾으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매일 휴대전화를 보며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그가 메시지 한 통이라도 보내길 바랐다.그를 찾으러 갈 용기와 핑계가 필요했지만 메시지는 끝내 오지 않았다.지성의 퇴원을 앞두고 진효연은 집에서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그녀에게 남태준을 부르라고 했지만 지우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병원 병실.지성은 옷을 개면서 의자에 앉아있는 지우를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물었다.“나 퇴원하는 거 도와주러 온 거 아니야? 왜 아무것도 안 하고 폰만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어?”지우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지성을 쏘아보며 나무랐다.“너 이제 움직일 수 있잖아? 옷 몇 벌 개인다고 안 죽어.”“누나 같은 여자를 어느 남자가 데려가겠어? 정말 불쌍하다.”워낙 기분이 안 좋았던 지우는 그 말을 듣자 더욱 괴로워 벌컥 화를 냈다.“누가 너더러 데려가래?”지성과 지우는 어릴 적부터 서로 치고받으면서 커왔고 어린이 된 지금도 자주 다퉜다.지성이 인정사정없이 말했다.“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여자가 바로 누나 같은 여자야. 지나가는 남자들 다 홀릴 것 같은 몸매를 지닌 것도 모자라 여자가 상냥하지도 않고 어질지도 않고 배려심도 없고 사납고 악독하잖아!”지우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되받아쳤다.“그래 나 몸매 좋다! 부렵냐? 너처럼 깡마른 자식은 대나무 장대 같은 아내밖에 차려지지 않아!”“너!”지성은 화가 치밀어 상처가 아팠고 어두운 얼굴로 지우를 가리켰다.지우는 멈추지 않고 계속 공격했다.“아니다. 너 같은 놈에게 어느 여자가 시집가겠어? 평생 노총각으로 늙어 죽어라!”지성은 이를 악물었다.“누나. 말이 너무 심하잖아!”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지우와 지성은 모두 조용해져서 입구 쪽을 보았다문은 열려 있었고 남태준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서 그들 남매가 다투는 것을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M국, 변경.서다인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친오빠라는 자가 도박 빚을 갚기 위해 그녀를 2천만 원에 팔아버렸다!이 암담한 사기 센터에는 전화 사기, 인신매매, 장기매매, 구타와 학대가 매일 발생하고 있다. 이곳은 사람을 풀 베듯 함부로 죽이는 곳이다.서다인은 수려한 미모를 지녀 범죄자들에게 강제로 이끌려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다.그녀는 죽을지언정 필사적으로 반항하여 혹독하게 두들겨 맞아 옷이 갈기갈기 찢어졌고 몸에 온통 상처투성이였다.서다인은 고통과 두려움에 휩싸여 절망의 끝자락에 놓였을 때 문득 남편 남하준이 떠올랐다.“제발 저 건드리지 마세요. 우리 남편더러 돈 보내오라고 할게요... 얼마든지 다 드릴 수 있어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그녀는 울먹이며 애원했다. 이건 최후의 몸부림이나 다름없다.금전 갈취는 그들의 업무 중 하나이다.앞장선 김호영이 화색을 띠며 서다인을 두들겨 패는 부하들을 멈춰 세우고 재빨리 그녀에게 휴대폰을 건넸다.“네 남편에게 40억 가져오라고 전해! 10원 한 장이라도 모자라기만 해봐. 그땐 여기 있는 우리 애들을 네가 전부 먹여 살려야 할 거야. 몸을 팔아서 손님들 돈을 벌어와야 한다고, 알아들었어?”서다인은 온몸에 소름이 쫙 돋고 겁에 질려 눈동자가 흔들렸다.짝사랑한 지 3년, 혼인 신고한 지 1개월이 지났지만 단 하루도 함께 지내지 않은 그녀의 남편이 진짜 40억을 내놓으며 그녀를 구할까?“알았어요.”서다인은 무기력하게 대답한 후 남하준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건 마지막 동아줄이다. 그녀의 생사가 걸린 마지막 전화 한 통이다.전화가 연결되자 수화기 너머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누구세요?”그 순간 서다인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것처럼 눈앞이 캄캄하고 마음이 텅 비었다.그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나 초조하게 말했다.“저는 남하준 씨 아내 서다인이에요. 실례지만 남하준 씨 바꿔줄 수 있나요?”전화기 너머로 여자가 담담하게 말했다.“오빠 지금 낮잠 자고 있어요. 용건
국가의 안위를 위해 침략자를 몰아내며 피로 물든 전쟁을 이어가면서도 두려운 기색은 추호도 없었다.남하준은 중동 내부전쟁에 참가한 군사의 왕이고 위기에 처한 이 나라를 구한 영웅이며 가장 참혹한 전쟁에서 포위를 뚫은 신과 같은 존재인데 눈앞에 있는 연약한 여자가 그의 아내라니, 이건 당최 말이 안 되는 일이다.김호영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부하를 타일렀다.“걱정들 붙들어 매. 남하준이 어떤 사람이야? 권력이 하늘을 찌르고 단지 이름 석 자만으로도 사람을 간담이 서늘해지게 하는데 그런 사람의 아내를 누가 감히 팔겠어? 내가 알기로 남하준은 아직 미혼이야. 아마 동명이인일 거야. 이년 남편한테 계속 연락해서 40억 갖고 오라고 해!”남자들은 계속 남하준에게 연락했다.서다인은 마음이 재가 되어 구석에 털썩 주저앉아 절망감에 휩싸인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얼마나 지났을까.귀가 쩌렁쩌렁 울리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콰당!”대지가 흔들릴 정도의 폭격 소리였다.서다인은 화들짝 놀라며 두 눈을 떴다.방에서 한창 카드놀이를 하며 서다인의 몸값을 기다리던 남자들이 식겁하여 넋을 놓았다.밖에 있던 부하들도 공포에 휩싸여 큰소리로 외쳤다.“보스, 큰일 났어요. 우리 대문이 폭발해버렸어요.”“폭발?”김호영은 겁에 질렸다.“누구 짓이야?”“그게... 군전 그룹 사람들이에요. 어마어마한 군부대가 거침없이 쳐들어와 우리 센터를 포위해버렸어요.”부하는 상공을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전투기 헬리콥터도 두 대 더 있어요...”“필레 전쟁에 참여한 군전 그룹을 말하는 거야? 우린 이젠 뒈졌어!”이때 김호영이 가녀린 체구의 서다인을 잡아당기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윽박질렀다.“네 남편이 정말 군전 그룹 수장 남하준이야?”서다인은 무기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김호영은 순간 미친 듯이 후회가 밀려왔다. 그는 서다인에게 총을 겨눈 채 밖으로 나갔다.사기 센터 밖에는 수십 대의 무장 차량이 이곳을 가지런히 에워쌌다.수백 명의 건장한 무장 병사가 강렬한
김호영은 겁에 질려 몸을 벌벌 떨며 끝까지 협박했다.“그럼 도련님 아내분과 함께 죽을 겁니다.”남하준은 살인에 늘 단호한 법이다. 그 누구에게도 협박당해보지 못한 그였기에 두 눈에 살기가 스쳤다!별안간 일곱 발의 탄알이 폭발하는 소리가 서다인의 고막을 울렸다.그녀는 몸을 움찔거리더니 온몸에 피가 굳은 듯 제자리에 경직되어서 두 눈만 질끈 감고 있었다.잔인한 참살이 이뤄지고 선홍빛 핏물이 창백한 그녀의 얼굴에 튀었다.이 순간 그녀가 남하준의 아내란 신분은 단지 우스갯소리에 불과했다. 이토록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니!남하준이 구한 건 그녀가 아니라 사기 센터에 갇힌 수천 명의 피해자였으니 실수로 그녀를 죽여도 전혀 괜찮겠지?!서다인은 한없이 연약한 몸으로 이런 충격을 견디지 못해 비통한 슬픔에 젖은 채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군전 그룹 본사.M국 최대 규모의 무기 생산 기지이자 삼엄한 경계를 이룬 국영 병기 공장.“안돼...”악몽에서 놀라 깬 서다인은 땀에 흠뻑 젖어서 두 눈을 부릅떴다.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의식이 흐트러진 채 사방을 둘러보다가 침대 맡에 서 있는 여자에게 시선이 멈췄다. 의학의 힘을 빌린 정교한 이목구비는 마치 인형 같았고 요염함 속에 은은한 청순함이 돋보였다.여자의 손에 쥔 쟁반에는 온수 한 잔과 전복죽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깼어? 오빠가 먹을 것 좀 가져다주라길래.”백하린이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고마워요.”서다인은 친절하게 고마움을 표하고는 나른한 몸을 이끌고 겨우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그녀는 종일 물 한 방울도 안 마셔서 지금 허기지고 온몸에 기운이 쫙 빠졌다.백하린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나더러 네게 음식을 갖다 주라고 하긴 했지. 근데 아쉽게도 네가 대접받을 급은 아니잖아.”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백하린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수중의 음식을 바닥에 내던지고 본인도 잇따라 주저앉았다.물건이 깨지는 요란한 소리가 문밖까지 울려 퍼졌다. 백하린은 울먹이는 목
남하준이 한없이 차가운 눈길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그 순간 뼈가 시릴 정도로 한기가 감돌았다. 남하준은 진중하면서도 냉담한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무슨 뜻이지?”서다인은 굳건한 표정으로 그를 빤히 쳐다봤다.“우리 이혼해요.”그녀는 이 남자를 3년 동안 짝사랑하며 바라는 건 단 하나, 순수한 결혼생활뿐이었다.이젠 이 혼인 관계가 더는 순수하지 않으니 그녀도 굳이 타협하며 눈 감고 살아갈 필요가 없다.남하준은 서늘한 눈빛에 표정이 일그러졌다.뒤에 서 있던 비서실장 류청이 언짢은 말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름, 서다인, 나이 25세, M국 안성시 출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가정폭력 성향이 있고 어머니와 오빠는 도박에 빠져 빚이 산더미입니다.”서다인은 놀란 눈길로 류청을 쳐다봤다.류청은 거리낌 없이 계속 말을 보탰다.“서다인 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중퇴하고 인터넷으로 만난 남자에게 사기를 당하여 유흥업소에서 몇 년 동안 아가씨로 몸담아왔습니다. 20살 때 해외에 있는 80세 노인에게 시집갔는데 2년도 안 돼 과부가 되었고 재산은 한 푼 상속받지 못했습니다.”“다인 씨는 기껏해야 초등학교 학력이고 이 몇 년 동안 아무런 성과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인간관계가 문란하고 복잡하며 성매매로 두 번 잡히고 성형을 15번 했습니다. 성병 치료 세 번에 알려진 남자친구만 32명입니다. 최대 5명까지 동시에 사귀었고 원나잇 상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3년 전에 M국으로 돌아와 일부러 어르신을 가까이하며 환심을 사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죠. 그러다 결국 재벌가인 남씨 일가에 시집와서 도련님의 아내로 거듭났습니다.”서다인은 자신의 과거를 듣고 있자니 등골이 오싹해서 식은땀이 나고 머리가 곤두섰다.화려한 과거사에 그녀도 실로 놀라울 따름이었다.류청은 서다인의 신상정보와 과거의 흑역사를 적나라하게 캐내며 야유 조로 말했다.“서다인 씨 같은 사람이 도련님의 아내로 사는 건 하늘이 내린 축복이나 다름없는데 대체 무슨 염치로 이혼을 논하는
남하준은 아찔하고도 강렬한 수컷의 기운을 내뿜었다.“감히 날 협박해?”서다인은 그의 압도적인 기세에 숨이 막혀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녀는 불안감에 떨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제발 사람 강요하지 말아요.”남하준은 싸늘하고도 한없이 짙은 두 눈동자를 반짝이며 그녀의 얼굴을 담담하게 쳐다봤다.매끄럽고 탱탱한 피부 결과 또렷한 이목구비, 작고 동그란 얼굴은 젖살이 채 빠지지 않아 귀엽고 앙증맞을 따름이었다.그녀의 예쁘장한 얼굴은 백하린의 어릴 때 모습을 조금 닮아 있었다.남하준은 넋 놓고 바라보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눈썹을 살짝 들썩거렸다.“네가 그 여자 어릴 때 모습이랑 비슷해지려고 갖은 수단을 부렸나 봐? 이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겠어. 이래서 할머니가 널 그렇게 좋아하셨구나.”그 여자 어릴 때 모습이라니?남하준이 말한 ‘그 여자’는 대체 누구일까?서다인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남하준이 침착하게 대답했다.“알았어, 네 요구 들어줄게.”그는 이 말만 남긴 채 부하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그 순간 서다인은 어안이 벙벙했다.어떤 요구를 들어준다는 말이지?이혼 아니면 부부로서 잘 지내는 거?...밤이 깊어지고 청량한 바람이 불어왔다.류청이 저녁밥을 방 문 앞까지 가져왔고 서다인은 식사를 마친 후 방 안에서 병법에 관한 서적을 한 권 찾아내 흥미진진하게 새벽까지 책을 읽었다.피곤이 몰려오자 그제야 씻으러 들어갔다.욕실에서 30분을 씻은 후 갈아입을 옷이 없어 몸에 걸쳤던 때 묻은 옷을 깨끗이 빨아서 욕실 창문 밖에 내걸어놓고는 샤워가운을 두르고 밖으로 나왔다.별안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녀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라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남하준이 막 상의를 벗고 튼실한 몸매를 드러내며 버젓이 방에 나타난 것이다.건강한 피부색과 탄탄한 근육, 군살 하나 없는 완벽한 몸매에 간간이 옛 상처가 보여 남자의 매력이 더 물씬 풍겼다. 말 그대로 상남자였다.남하준이 상의 탈의한 채로 화끈한 몸매를 드러내며 그
남하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정색하며 물었다.“이 남하준의 아내가 바닥에서 잔다고? 지금 누굴 능멸하는 거야?”막강한 남성호르몬과 아찔함 속에 스친 무언의 압박감에 서다인은 곧 질식할 것만 같았다.그녀는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며 잔뜩 긴장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그저... 하준 씨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 우리가 함께... 함께 자는 게 마땅치 못하다고 생각했어요.”남하준은 눈썹을 치키며 입꼬리를 말아 올려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난 너한테 아무 감정 없어. 네가 발가벗고 내 앞에서 춤춘다 해도 쳐다보지 않을 거고 터치할 일은 더더욱 없어.”서다인은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지고 가슴 깊숙이 있는 가장 연약한 곳을 찔린 듯 숨이 턱턱 막혔다.반박하고 싶었지만 목이 불에 타듯 따가웠고 입만 열면 이 서러운 감정이 한꺼번에 분출될까 봐 두려웠다.그녀의 맑고 영롱한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서다인은 결국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침묵했다.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에 수정처럼 맑은 눈물이 고인 순간 남하준은 무언가에 홀린 듯 잠시 넋을 놓았다.이어서 그는 옆자리에 등지고 누워 차갑게 명령했다.“불 끄고 이만 자.”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방 안의 조명이 어두워졌다.서다인은 칠흑같이 어두운 방 안을 쳐다보며 마음이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그녀는 자세를 다잡고 편하게 누웠다.커다란 더블침대에 두 남녀는 각자 침대 양옆에 눕고 중간에 아주 넓은 거리를 두었다.이날 밤 서다인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새벽에 너무 피곤한 나머지 끝내 참지 못하고 스르륵 잠들었다.다음 날 이른 아침, 그녀는 벨 소리에 놀라서 깼다.비스듬히 눈을 뜨니 남하준이 멋진 검은색 군복 세트를 차려입고 위풍당당한 기운이 저절로 차 넘쳤다.이런 게 아마도 한 사람을 짝사랑하는 자의 마음가짐이겠지. 그가 나타난 곳마다 눈부신 아우라가 풍기는 그런 느낌.남하준이 전화를 받고 목소리를 낮췄다.“좋은 아침, 하린아, 무슨 일이야?”서다인은 백하린이 뭐라 말하는지 모르지만 남하
‘너 참. 한심하다!’지우는 속으로 자신을 욕하며 스쿠터를 돌려 힘없이 집 쪽으로 향했다.다음 날.지우는 더 이상 남태준을 찾으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매일 휴대전화를 보며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그가 메시지 한 통이라도 보내길 바랐다.그를 찾으러 갈 용기와 핑계가 필요했지만 메시지는 끝내 오지 않았다.지성의 퇴원을 앞두고 진효연은 집에서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그녀에게 남태준을 부르라고 했지만 지우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병원 병실.지성은 옷을 개면서 의자에 앉아있는 지우를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물었다.“나 퇴원하는 거 도와주러 온 거 아니야? 왜 아무것도 안 하고 폰만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어?”지우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지성을 쏘아보며 나무랐다.“너 이제 움직일 수 있잖아? 옷 몇 벌 개인다고 안 죽어.”“누나 같은 여자를 어느 남자가 데려가겠어? 정말 불쌍하다.”워낙 기분이 안 좋았던 지우는 그 말을 듣자 더욱 괴로워 벌컥 화를 냈다.“누가 너더러 데려가래?”지성과 지우는 어릴 적부터 서로 치고받으면서 커왔고 어린이 된 지금도 자주 다퉜다.지성이 인정사정없이 말했다.“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여자가 바로 누나 같은 여자야. 지나가는 남자들 다 홀릴 것 같은 몸매를 지닌 것도 모자라 여자가 상냥하지도 않고 어질지도 않고 배려심도 없고 사납고 악독하잖아!”지우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되받아쳤다.“그래 나 몸매 좋다! 부렵냐? 너처럼 깡마른 자식은 대나무 장대 같은 아내밖에 차려지지 않아!”“너!”지성은 화가 치밀어 상처가 아팠고 어두운 얼굴로 지우를 가리켰다.지우는 멈추지 않고 계속 공격했다.“아니다. 너 같은 놈에게 어느 여자가 시집가겠어? 평생 노총각으로 늙어 죽어라!”지성은 이를 악물었다.“누나. 말이 너무 심하잖아!”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지우와 지성은 모두 조용해져서 입구 쪽을 보았다문은 열려 있었고 남태준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서 그들 남매가 다투는 것을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지우는 당장 남태준을 찾아가고 싶었다.그러나 어젯밤 그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 그의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그녀를 상대할 의향이 있을까?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어젯밤 자신이 남태준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보았다. 그는 아직도 답장하지 않았다.어제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매몰차게 말했는데 지금 다시 메시지를 보내 다시 만나자고 하면 너무 성의 없어 보이지는 않을까?이렇게 하면 그녀가 남태준을 대하는 감정이 제멋대로이고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처럼 오만하게 보이지 않을까?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고민하다 보니 생각이 많고 마음이 착잡했다.전화도 문자도 모두 성의 없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그녀는 스쿠터를 타고 경찰서로 향했다.이 시간에 남태준은 이미 퇴근했을 것이다.저녁노을이 지우에게 쏟아지고 그녀는 저녁 바람을 맞으며 길가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더없이 좋았다.가락을 찾지 못하는 노래를 흥얼거렸고 스쿠터가 무성한 오동나무 아래를 지나는데 봄바람이 불어와 공기마저 향긋했다.지우는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30분 후. 경찰서 입구에 도착한 지우는 브레이크를 밟고 전원을 끄고 대문 안을 바라보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안에서 계속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데 유독 남태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지우는 한참을 기다렸다가 차를 잠그고 가방을 들고는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좀 긴장되었다.들어가서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전부 업무를 보고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들이었다.그때 경찰복을 입은 남자가 지나가면서 물었다.“어떻게 오셨죠?”지우는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긴장하며 물었다. “실례지만 마약 단속팀 남 대장님 계시나요?”남자는 사무실을 돌아보며 대답했다.“안 계세요.”“그럼 어디로 가셨죠?”지우가 또 묻자 경찰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주시했다.“누구시죠? 무슨 일로 남 대장님을 찾으시죠?”지우는 상대방의 경계심과 엄숙함이 느껴졌고 뭔가 사납고 엄한 압박감을 주는
“난...”진효연은 당황하고 긴장하여 침을 꿀꺽 삼켰다.“이게 전부 너를 위해서야.”지우는 눈물을 닦고 울며 말했다.“전 세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거의 매일 사람이 죽어요. 병으로 죽거나 사고로 죽거나 살해당하거나.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거 아니에요?”“내가 만약 운전기사와 결혼하면 남편이 운전하다가 차에 치여 죽지 않는다는 보장 있어요?”“내가 작은 가게 사장에게 시집가면 그 사람이 술을 많이 마셔 죽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어요?”“만약 농부에게 시집가면 가난해서 죽겠네요?”“뉴스 보면 가문이 몰살되는 참사가 얼마나 많아요?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고 마약 형사만 해당하는 거 아니라고요.”“제발 엄마의 그 비참한 운명을 나에게도 돌리지 말라고요!”지우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파에 엎드려 목놓아 울었다.진효연은 어찌할 줄 몰라 멍하니 있으며 감히 움직이지도 못했고 마음도 어지러워졌다.한바탕 눈물을 흘린 지우는 일어나서 눈물을 닦고 코를 훌쩍였다.“엄마 첫사랑인 그 약혼자가 뜻밖에 세상을 떠나 결혼하지 못한 건 엄마 평생의 한이겠죠. 이제 나도 똑같아요. 다른 점은 내 첫사랑은 죽지 않았다는 거죠. 하지만 우리 감정은 엄마 때문에 이미 억눌려 죽었어요.”진효연은 얼굴이 창백하여 넋을 잃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말을 마친 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고 거실은 적막했다.진효연은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넋을 잃은 채로 소파에 멍하니 있었고 초점을 잃은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그날 밤, 지우도 잠을 설쳤고 진효연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이튿날 아침.하룻밤이 지나자 지우는 어제저녁 자신이 한 말이 너무 심해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쨌거나 진효연은 지우를 사랑하고 걱정하기 때문이었다.지우는 미안한 마음으로 진효연의 방문을 두드렸다.“엄마. 일어났어요?”방안에 인기척이 없자 지우는 또 몇 번 두드리며 마음이 조급해졌다. 진효연은 늘 정서적으로 불안했고 늘 삶에 대
지우가 난동을 부릴수록 남자는 더욱 괴로웠다.남자의 키스는 그녀의 입술에서 천천히 떨어져 나가며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부드럽게 닿았다.지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울다가 눈을 감은 채 몸을 떨며 울먹였다.“태준 씨. 이러지 말아요.”“사랑해 지우야.”그녀의 귓불에 키스하고 있는 남자의 목소리는 빠져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지우는 그의 손길이 스쳐 지나고 그가 키스한 피부에 마치 전류가 흘러 사지를 관통하고 온몸이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그녀는 두렵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갈망하고 있었다.어느새 몸부림을 포기하고 남자를 받아들이고 있었다.누군가를 사랑하기 전, 그녀는 절대 혼전 순결을 지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하지만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이성보다 신체의 갈망이 훨씬 컸다.지우는 온몸에 힘을 빼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상한 촉감에 입에서 수줍은 신음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꾹 참았다.그녀가 남태준이 주는 정욕의 설렘을 즐기고 있을 때 남자가 갑자기 멈추었다.그는 지우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숨을 몰아쉬더니 그녀의 옷 밑에서 천천히 손을 빼내어 그녀의 흐트러진 옷을 정리해주었다.“미안해.”남태준은 욕망을 고통스럽게 억누르고 죄책감 가득한 채 속삭였다.“미안해. 미안해.”그는 하마터면 통제력을 잃을 뻔했다.이성이 돌아온 지금, 남태준은 자신의 뺨을 몇 대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른 거야?’“난 정말 개자식이야. 미안해.”남태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고 그는 숨을 헐떡이며 그녀의 몸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지우는 가슴이 출렁이고 호흡이 어지럽고 눈을 깜박이며 천장을 바라보며 마음을 추스르고 욕망을 추슬렀다.좋아하는 남자가 키스하면서 쓰다듬어주면 몸에서 이렇게 격렬한 반응이 일어날 줄이야.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녀는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 같아 강렬한 욕망까지 생겼다.아주
그래서 이 일은 남태준에게 매우 중요할 것이다.그의 사명이고 명예이고 책임이고 그의 전부일 것이다.지우는 남태준을 사랑하고 그의 일과 삶도 존중했다.남태준은 그녀의 팔을 잡고 힘껏 끌어당겼다.“내가 그 비실비실한 이혼남보다도 못하다는 거야?”지우는 중심을 잃고 그의 품에 안겨 방황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팔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그녀는 서럽게 눈물을 흘렸고 턱은 떨리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를 바라봤다.남태준은 그녀 눈 밑의 눈물을 바라보며 자신도 눈시울을 붉혔고 그의 슬픈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만약 가능하다면 내가 다리도 못 쓰고 앞도 못 보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네가 돈 때문에 나를 보살피기는 했지만 나 그때 정말 기쁘고 행복했어.”그때를 생각하면 지우 눈 밑의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그녀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당시의 남태준은 너무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다.그가 언제나 지금처럼 건강하기를 바랐다.“그때 너는 내가 눈이 안 보인다고 멋대로 행동했어.”남태준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 밑에는 눈물이 흐르지만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네가 나를 도와 샤워하고 밥 먹여주고 우리 같은 침대에서 자기도 했었지. 넌 청개구리처럼 내가 싫어하는 행동만 골라 했어.”“네가 아무리 완자 친구라지만 내 말 한마디면 엄마는 널 해고할 수 있었어. 하지만 난 널 떠나보내는 게 너무 아쉬웠어. 진흙탕이 된 내 마음을 넌 작은 작대기로 계속 저어주어 더 이상 평온하지 않고 매일 파도가 일렁였어.”“그러던 어느 날, 네가 갑자기 떠났어.”남태준은 눈물이 흘러넘쳐 흐느껴 울었다.“난 또다시 그 암흑 같은 삶으로 돌아갔어. 햇볕도 없고 활기도 없는 그 어두운 세계로.”“지우야. 네가 돈을 원한다면 난 만족시켜 줄 수 있어. 네가 사랑을 원한다면 난 온 마음을 다해 널 사랑할 거야. 네가 안정감을 원한다면 나 일선에서 떠나 사무직으로 물러날 수 있어.”남태준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애틋했고 점점 더 간절해졌다.“제발 나 떠나지 말아줘.
지우는 남태준에 의해 강제로 집에 끌려들어 갔다.문이 잠기는 순간 지우는 좀 당황스러웠다.그녀는 화가 난 남자가 어떤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지 몰라 계속 몸부림치며 떠나려고 했지만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남자의 힘센 손에서 벗어나는 건 무리였다.남태준에 의해 거실로 끌려가 그대로 소파에 던져졌다.그녀는 긴장해서 움츠러들었고 방황하면서도 경계하는 눈빛으로 남태준을 쳐다보았다. 그가 미칠 듯이 달려들 것 같아 속으로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이성적으로 그녀 곁에 앉아 쓸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매우 괴로워 보였다.밝은 거실은 두 사람의 가벼운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창밖은 캄캄했다.집안의 분위기가 점점 굳어졌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지우는 남태준이 화가 나서 그녀와 단둘이 지낼 이유를 찾는 것이지 그녀에게 화풀이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태준 씨, 나 놔주겠다고 했잖아요?”남태준은 얼굴을 가리고 깊게 숨을 내쉬더니 온몸에 냉기가 번져 형언할 수 없는 감상과 슬픔이 어렴풋이 배어 있었다.그는 소파 등에 기대어 옆으로 지우를 바라보며 눈가에 쓸쓸한 감정이 가득했다.“지우야. 내가 헤어지겠다고 했지 널 포기한 적은 없어. 난 계속 노력하고 있었어.네가 나 좋아하도록, 네 가족이 나 좋아하도록.”지우는 고개를 숙이고 괴로워하며 말했다.“진짜 그럴 필요 없어요.”“우리 사이에는 그 어떤 갈등도 다툼도 제삼자도 없었어. 네가 갑자기 헤어지자고 한 거 혹시 엄마 때문이야?”지우는 침묵했고 손가락을 꽉 쥐고 손톱을 뜯었다.“대답해줘.”남태준은 소파를 따라 천천히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다가갔다가 꾹 참았다.그에게는 이제 지우의 손을 잡을 명분이 없었다.매일같이 그리움에 시달리고, 미칠 듯이 그녀를 보고 싶고, 안고 싶고, 키스하고 싶어도 이젠 아무런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그저 모퉁이에 몰래 서서 먼발치에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헤어지는 날은 녹슨 무딘 칼처럼,
“맞아. 하지만 이미 마음에 다른 남자를 품고 있어서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 미안해.”진준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어쩔 수 없이 말했다.“무슨 말인지 알겠어. 만약 네 마음에 있는 그 남자에게 기회가 없다면 차라리 그 기회를 나에게 주는 건 어때? 어쩌면 우리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잖아.”지우가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자 진준호 역시 멈추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나 아주 아쉬워. 널 오랫동안 짝사랑했지만 졸업 시즌에 네게 고백하지 못한 거 계속 후회했어. 만약 지금 그 기회가 왔다면 놓치고 싶지 않아.”지우는 용감한 사람을 탄복했다“준호야, 나...”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나의 그림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지우가 반응도 하기 전에 강력한 힘의 큰 손이 그녀의 팔을 꽉 잡고 힘껏 잡아당기더니 그녀를 자신의 따뜻하고 튼튼한 가슴으로 끌어당겼다.그녀가 경악하며 고개를 들자 남태준의 준수한 얼굴을 보고는 가슴이 떨렸다.지우가 낯선 남자의 품에 안기는 것을 본 진준호는 다급하게 물었다.“당신 뭐야?”남태준의 거대한 체구에 진준호는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고 말로 으름장을 놓았다.“당장 지우 놔줘!”남태준은 싸늘한 눈빛에 노기를 띤 채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여자친구에게 할 말이 있어 먼저 실례할게요.”여자친구?지우는 멍해졌고 진준호는 더욱 어리둥절했다.남태준이 지우를 끌고 떠나자 진준호가 급히 쫓아가 두 사람 앞을 막으며 물었다.“지우야. 너 솔로라며?”지우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가로젓고는 혼란스럽게 말했다.“나 솔로 맞아. 이 사람은 전 남자친구야.”그녀의 말에 남태준의 안색이 더욱 새파래졌다.“나 이 사람이랑 얘기 좀 할 테니까 너 먼저 가봐.”지우는 웃으며 진준호에게 손을 흔들었다.“잘 가.”진준호도 더 이상 지우를 빼앗을 이유가 없어 지우가 끌려가는 것을 못마땅해 하며 노려봤다.남태준은 지우를 차에 태워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매주고는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량이 넓
지우는 입술을 깨물고 서러워하며 되물었다.“그럼 네가 다시는 목숨으로 나 협박하지 말라고 엄마 설득할 수 있어?”“아니 난 못해. 엄마는 너무 독해. 매번 빈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분이시잖아.”지성은 감탄하며 고개를 저었고 지우도 말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사랑을 위해 어머니의 목숨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남태준을 잊고 가슴 아픈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칠 후 지성이 퇴원하자 지우의 생활도 정상으로 돌아왔다.매일 글쓰기에 바쁘고 어머니의 매점도 봐주고 가끔 밥도 하고 친구와 함께 나가 쇼핑을 하며 기분 전환을 했다.이날 송수빈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가자고 했다.늘 외지에서 일했던 지우는 동창 모임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올해 그녀가 마침 고향에 있으니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동창들과 모이려고 했다.한 식당의 룸.큼지막한 원형 테이블에는 비슷한 또래의 남녀가 가득했는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사람도 있는 신혼이거나 미혼인 사람도 있었다.지우와 송수빈은 미혼이라 싱글남 친구들의 시선을 끌었는데 두 사람의 외모도 출중하고 몸매도 좋았다.모두들 웃고 떠들며 건배하며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을 때, 한 친구가 갑자기 말했다.“준호가 지우를 오랫동안 짝사랑했잖아. 준호 녀석 지금 이혼했는데 설마 아직 지우를 못 잊은 거 아니야?”음식을 먹던 지우는 고개를 번쩍 들고 경악하며 말하는 남자를 쳐다보았다.반장이던 그는 지금 한 기업의 관리자였다.그는 술잔을 들고 일어나 지우를 향해 물었다.“지우야. 너 아직 싱글이라며. 아직 준호에게 기회가 있는 거냐?”지우는 긴장된 듯 침을 삼키고 진준호를 바라보았다.부드러운 눈매를 가진 진준호는 어색한 듯 지우를 바라보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이혼한 지 얼마 안 된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다.이공계 IT 남으로 수입도 높고 외모도 잘생겼고 성격도 온순했다.같은 마을 사람이라 부모끼리도 서로 잘 알고 있었다.지우는 난처해하며 미소 지었다.
이번에 지성은 말을 할 수 있었고 사유도 또렷했다.그들은 신분을 밝힌 후 지성의 몸 상태를 물었고 지성이 괜찮은 걸 확인하고는 조사를 시작했다.지성은 남태준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가 누나의 전 남자친구라는 것을 알고 더욱 존경했다.지성이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누나가 육건우를 고소했기 때문에 제 빚은 소송이 끝나기 전까지 갚지 않아도 되거든요.”“하지만 육건우의 부하들이 저를 가만두지 않았어요. 그날 저를 뒷산으로 데려가 폭행했고 저는 그들을 따돌리고 필사적으로 도망쳤어요. 철조망이 가로막힌 곳까지 도망쳤는데 더 이상 도망갈 길이 없어서 아주 높은 나무에 올라가 철조망을 넘어 안에 있는 나무로 뛰어올랐어요.”“들어가고 나서 계속 출구를 찾았는데 못 찾았고 마스티프 몇 마리가 저를 쫓아왔어요.”“그래서 큰 스튜디오 몇 군데로 달려갔어요. 근데 안에 촬영 장비는 없고 오히려 양귀비꽃과 비슷한 식물이 많이 심겨 있더라고요.”“저는 깜짝 놀라 얼른 숨었어요.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요.”“그러다 어떤 창고에 숨었는데 그 안에서 마약을 정제하는 사람들이 저를 발견하고는 저를 죽일 듯이 때렸고 제 심장에 칼까지 꽂고 산기슭에 저를 던졌어요.”지성은 심장의 상처를 만졌다. 의사가 말하길 지성의 심장 위치가 다른 사람과 달라서 조금 빗나가 목숨을 부지했다고 했다.불행 중 다행이었다.남태준과 오신우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표정이 굳어졌다.산꼭대기에 촬영기지를 설립하려면 소방 안전 검사와 경찰의 순찰도 필요하다.그런데도 안에서 미친 듯이 독을 심고 마약을 정제할 수 있다면 분명 백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그 백은 결코 직위가 낮지 않을 것이다.자백을 마친 지성이 긴장하며 물었다.“남 대장님, 만약 제가 죽지 않은 걸 알면 또 사람을 보내 저를 죽이러 올까요?”“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요.”남태준은 온화한 태도로 진지하게 말했다.“지성 씨 옆에 24시간 경호를 붙여 신변을 보호할게요.”“감사합니다.”지성이 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