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은 배고픔을 전혀 느낄 수 없고 갈증은 더더욱 느끼지 못했다.남하준이 돌아오지 않았으니 깨어날 의욕이 전혀 없어 다시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나 괜찮아. 좀 더 잘게. 오빠 오면 나 깨워줘.”“언니!”지윤은 놀라서 펑펑 울었다. 그녀는 정안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정안은 작은 일에도 울고 낙담하고 슬퍼하는 사람이었다.지금 남하준에게 사고가 났으니 아주 슬픈 일이지만 그녀는 뜻밖에도 울지도 않고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줄곧 쿨쿨 자고 있었다.마치 삶의 의지를 잃은 것처럼 삶을 홀대하는 소극적인 태도에 가까웠다.이런 정안이 지윤은 더욱 무서웠다.백진은 남하준에게 사고가 났다는 걸 알게 된 후, 사람을 더 보내 수색 범위를 넓혔다.그는 손녀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계속 잠만 자는 걸 볼 때마다 마음이 괴로웠다.아무리 설득해도 그녀는 듣지 않고 깨어나면 물었다.“오빠 돌아왔어요?”남하준을 못 보자 그녀는 다시 누워 눈을 감고 잠을 잤다.사흘째 되던 날.주치의가 와서 정안에게 영양제를 투여했다.의사가 주사를 놓을 때도, 정안은 마치 자기 손이 아닌 듯 아무것도 묻지 않고 영양제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선생님.”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예의 바르게 물었다.“네. 아가씨. 어때요? 뭐 좀 드시겠어요?”정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드러운 말투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배 안 고파요. 혹시 제 남편 보셨어요? 남편 이름이 남하준인데 아직 안 돌아왔어요?”“남 장군님은 아직 안 돌아오셨습니다.”정안이 손을 뻗어 옆자리를 만져보며 물었다.“제 아들은요?”“도우미가 젖 먹이려고 데리고 나갔어요.”“나 더 자고 싶어요. 제 남편이 돌아오면 꼭 깨워주세요.”정안은 말을 마친 뒤 자세를 바꿔 잠이 들었다.옆에 많은 사람이 서 있었는데 정안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무관심했다.그리고 그녀는 다시 잠이 들었다.남창민과 허윤미가 정안을 보러 왔다.아들은 아직 생사를 알 수 없고 며느리는 살 의욕을 잃어버렸고 손자는 아직 그렇
바로 그때 류청이 부랴부랴 걸어 들어와 얼굴이 창백하고 이마에 콩알만 한 땀방울이 맺히고 숨을 헐떡이며 목소리는 약간 울먹였다.“어르신... 시체... 떠오른 시체를 찾았는데 형체가 알아볼 수 없어서 법의학자가 시체를 확인하러 오라고 하셨어요.”허윤미는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다리가 나른해지며 기절했고 남창민은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애써 진정하며 곁에 있던 아내를 재빨리 부축했다.류청이 상황을 보고 급히 달려가 도왔다.백진은 몸을 약간 떨면서 침대 가장자리로 가서 몸을 웅크리고 정안의 차가운 작은 손을 잡고 부드럽게 어루만졌다.“완자야. 일어나봐. 하준이를 찾았어.”정안은 하준이라는 두 글자에 허약한 눈꺼풀을 뜨고 덤덤하게 백진을 바라보았다.그는 얼굴이 굳어지고 눈 밑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할아버지 왜 우세요?”정안은 쉰 목소리로 가슴 아파하며 물었다.백진은 그녀의 관심에 더욱 슬퍼졌고 눈물을 닦았다.“구조대가 강가에서 시신 한 구를 건져냈어. 지금 법의학자들이 감식하고 있는데 하준이 가족들 보고 가서 DNA를 채취해 시체를 확인하라고 해. 너도 같이 가서 하준이가 맞는지 보자꾸나.”정안은 애써 웃어 보이며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절대 하준 오빠 아니에요. 오빠는 분명 돌아와요. 죽었을 리가 없어요.”백진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다정하게 달랬다.“그럼 안 죽었지. 아내와 아들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죽어? 그래도 일어나서 할아버지랑 같이 가보자. 가서 하준이가 아닌 걸 확인하면 더 안심하잖아.”정안은 숨이 가빠진 것을 느끼며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나 안 갈래요. 오빠 돌아오면 내 방으로 오라고 하세요. 며칠 동안 보지 못했더니 너무 보고 싶어요. 너무너무.”정안은 말하면 할수록 힘이 빠지고 목소리는 가벼워지더니 이내 깊은 잠에 빠져 캄캄하고 아득한 꿈속에 자신을 가두었다.꿈나라에서 그녀는 하얀 호수에 앉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수천 년을 헛되이 기다린 요정처럼 몸과 마음이 너무 허전하고 무력했다
지윤이 말을 이었다.“언니! 도련님 연락 왔어요! 도련님 소식이라니까요. 얼른 일어나요!”정안이 서서히 눈을 뜨고 피곤한 눈을 깜박이다가 앞에 류청을 보고는 다시 감고 중얼거렸다.“오빠 아니잖아.”류청이 심호흡하고 긴장해서 말했다.“사모님. 도련님이 제게 메시지를 보내셨어요. 지금 위험에 처하셨으니 저더러 구하러 오래요.”정안은 다시 한번 눈꺼풀을 젖히고 손을 뻗어 지윤을 잡고는 허약한 몸으로 일어나려 했다.“지윤아. 나 좀 일으켜 줘.”지윤은 감격에 겨워하며 급히 정안을 일으켜 세웠다.정안이 류청에게 손을 내밀며 물었다.“오빠가 보낸 메시지는요?”류청이 급히 휴대전화를 꺼내 프로그래머가 설정한 정보를 열어 정안에게 건넸다.정안은 남하준의 번호를 보고 또 그가 보낸 메시지를 보더니 눈물이 핑 돌고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나 안 죽었어. 낯선 곳에 갇혀 있는데 나 구할 방법을 생각해봐. 완자에게는 내가 사고 났다고 말하지 말고 당분간 출장 갔으니 걱정 말라고 거짓말해.]류청은 심호흡하고 감정을 추스르며 말했다.“사모님, 도련님 아직 살아 계세요. 어딘 가에 갇혀 있대요. 이렇게 사모님을 걱정하시는데 이제 그만 마음 추스르세요.”정안은 더 이상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휴대전화를 끌어안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온몸을 떨며 지윤의 품에 안겨 목 놓아 울었다.마치 그동안 참았던 고통을 단숨에 토해내듯 숨이 턱턱 막히도록 비통하게 울었다.결국 의사를 불러 진정제를 맞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할 수 있었다.다들 어리둥절했다. 정안이 왜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였는지 알지 못했다.진정제를 맞은 정안은 자기는커녕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그녀는 휴대전화를 류청에게 건네주며 씁쓸하게 말했다.“연기가 너무 서투네요. 그리고 이 메시지도 오빠가 보낸 거 아니잖아요. 오빠 폰은 아마 강바닥에서 꺼내지 못했을 텐데 어떻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겠어요?”정안의 사유가 또렷하자 지윤과 류청은 반색했다.의사는 정안이 메시지를 보고 기운을 차리고 그녀의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남하준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강에서도 시체를 건져내지 못했고 마치 증발이라도 한 듯 모습을 감췄다.나라에서는 비밀리에 전문적인 수사대를 파견하여 그의 종적을 찾았다. 몸을 회복한 정안도 밤낮없이 그를 찾기 시작했다.다만 그녀는 수색팀처럼 맹목적으로 강을 수색하거나 수사대처럼 밖에서 찾지 않고 당일 도로 상황 CCTV를 확인했다.당시 남하준의 차량은 여러 대의 미스터리한 번호판 차량에 쫓기고 있었고 도로에서 과속 현상이 나타났지만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갑자기 남하준의 차가 고장 나듯 옆 가드레일을 들이받으면서 차 전체가 강물에 빠졌다.그를 미행하던 차량은 곧장 앞으로 나가더니 핸들을 꺾어 강 아래 도로로 향했다.강의 양쪽 길에는 CCTV가 없어 모든 추적 화면이 끊겼다.정안은 남하준의 입장에서 일을 생각하려 했다.그는 왜 들러리를 서려고 했을까?왜 연회 도중에 갑자기 떠났을까?만약 임무를 수행하러 갔다면 절대 혼자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류청도 부하도 데려가지 않은 건 대체 무슨 목적일까?정안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류청이 서재 문을 두드렸다.“들어와요.”“사모님, 찾았어요!”정안이 급히 류청이 건넨 USB를 받았다.USB를 받은 그녀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컴퓨터에 꽂았다.류청이 다가가 같이 보면서 감격해서 말했다.“얼마나 어렵게 얻은 줄 아세요? 제가 주변 인맥을 총동원해서 이 CCTV 영상을 겨우 얻었어요.”정안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열심히 구인아의 결혼식 날 영상을 확인했다.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지켜보던 정안은 선우석이 반지에 손을 베인 것을 보고 남하준이 다가가 손수건으로 선우석의 손가락을 가릴 때 멈춤 버튼을 눌렀다.당시 무대에서는 아무도 이런 미세한 움직임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류청도 경악해서 말했다.“도련님께서 왜 손수건을 몰래 바꾸셨을까요? 대체 뭘 하시려는 걸까요?”정안은 몇 초간 침묵하다가 계속 영상을 틀었다.그제야 정안은 그날의 사회자가 왜 그렇게 형편
“만약 선우석의 신분이 깨끗하다면 자기 피 때문에 긴장할 리 없고 만약 선우석이 진짜 문제가 있다면 바로 처리하겠죠.”류청은 그제야 알아차리고 활짝 웃었다.“그러니까 도련님의 진정한 목적은 선우석의 피로 DNA 검사를 하는 게 아니라 선우석의 의심을 사기 위해 허상을 만들었다는 거네요? 선우석이 먼저 공격하게끔?”정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제 추측으로는 그래요.”“근데 도련님께서 왜 그러신 거죠?”정안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머리가 윙윙 아팠다.그녀는 한참 동안 이마를 짚고 생각하더니 물었다.“혹시 최근에 오빠가 특별히 이상한 일을 시켰거나 차에 뭐 좀 실으라고 한 적 있어요?”류청은 뭔가 떠올라 경악했다.“있어요! 얼마 전에 저보고 군 창고에서 잠수에 쓰이는 산소 펌프와 차창을 깨는 전문 망치를 가져오라고 하셨어요.”정안은 참지 못하고 한줄기 미소를 지었다. 요 며칠 동안의 슬픔과 괴로움이 모두 사라지고 모든 걱정이 동력으로 바뀌었다.그녀 마음속의 큰 바위가 마침내 내려졌다.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휴대전화를 꺼내 남하준이 그녀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열어 보았다.[마음 단단히 먹고 나 기다려.]정안은 입술을 깨물고 속으로 희비가 엇갈렸다.‘남하준, 돌아오면 단단히 혼내줄 거야. 그렇게 위험한 계획을 나와 상의도 없이 혼자 목숨 걸고 뛰어들면 어떡해? 만약 사고라도 생기면 나랑 아이는 어떡하라고?’류청이 호기심에 물었다.“사모님, 도련님의 계획이 뭘까요? 지금 어디 계실까요?”“그건 저도 몰라요.”정안은 남하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상황이 전부 그의 장악하에 있다는 것만 알았다.“그럼 우리 이제 어떡하죠?”“계속 맹목적으로 찾아요. 조사하지 말고 선우석에게 접근하지 말고, 사람 붙이지도 말고 그저 그 사람이랑 아무 상관없다는 듯. 그냥 류청 씨 할 일을 하세요. 하준 오빠 계획 망치지 말고.”“네, 사모님.”“그리고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세요.”“네. 알겠습니다.”.
지윤이 아이를 안고 떠나자 정안은 뒤돌아 구인아 앞으로 다가갔고 미소를 지으며 휴대전화를 꺼내 통화기록을 펼쳤다.통화기록을 구인아 앞에 널어놓은 채 여유롭게 말했다.“결혼식에서 당신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에게 치근덕거리기 시작했어요. 이건 지난 한 달 동안 당신 남편이 나에게 전화한 기록이죠. 어디 한번 잘 봐봐요. 아는 번호죠?”구인아는 안색이 어두워지며 손을 뻗어 정안의 휴대전화를 뺏으려 했다. 정안이 재빨리 휴대전화를 숨기고 차갑게 말했다.“집에 돌아가서 남편에게 제발 나에게 치근덕거리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난 그 사람 모르고, 친구 하고 싶은 마음도 없으니 부디 자중해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스토커로 고소할지도 모른다고.”구인아는 아랫배를 누르고 화가 나서 온몸이 떨리고 호흡이 어지러웠다.정안은 그녀가 아랫배를 감싸는 동작을 보고 그녀의 임신을 더욱 확신했다.같은 엄마로서 정안은 더 이상 그녀를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아 차가운 태도를 거두고 여유롭게 말했다.“그리고 두 분, 앞으로 말조심하세요. 나랑 내 남편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고, 그 사람이 나 십 년 넘게 좋아했고 나도 그 깊은 사랑에 감동한 거지 누가 누굴 꼬신 적은 없으니까.”정안은 유미를 노려보며 말했다.“그리고 당신, 입만 벙긋하면 자꾸 내가 남하준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자격이 없다고 하는데. 세상에 완전히 어울리는 부부가 몇이나 되겠어? 날 사랑하는 그 마음이면 충분한 거야.”유미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반박하려 했지만 정안이 바로 말을 끊었다.“억지 부리지 마. 세상에 당신만이 남하준 곁에 있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아쉽게도 당신이 하늘의 신선이라고 해도 남하준은 당신 거들떠보지도 않아. 근데 굳이 무리해가면서 남하준이 당신을 미워하게 만들 필요가 있나?”유미는 화가 나서 말문이 턱 막혔다.구인아는 상황을 보고 태동을 건드릴까 봐 무서워 급히 유미를 끌고 먼저 떠났다.“유미야. 우리 가자. 이런 미친 여자는 상대할 필요도 없어.”정안이 말다
침대 하나, 옷장 하나, 세면대, 그리고 수건과 칫솔 치약이 놓여 있었다.이렇게 큰 방에 다른 물건이 더 없었다.왼쪽에는 창문이 있고 그 위에는 강철이 용접되어 있고 그 너머로 높은 담장이 보였다.남하준이 침대에서 내려와 방의 문을 열고 나가보니 밖은 넓은 거실이었다.거실 가운데에는 식탁과 의자 네 개가 놓여 있고, 벽 쪽에 책장이 하나 있고, 책장 위에는 많은 책이 놓여 있었다.이것 말고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바로 그때, 종이비행기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의 발아래로 떨어졌다.얼굴이 하얀 남자아이가 달려왔다.“비행... 기.”남하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멍해 있다가 천천히 몸을 웅크리고 종이비행기를 주워들고 어린 남자아이를 안아 올리고 엷게 웃으며 물었다.“이름이 뭐야?”남자아이가 눈을 깜박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바로 그때 부드럽고 중후한 중년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백건.”남하준이 소리가 나는 방향을 따라 보니 점잖은 외모의 중년 남자가 다른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그를 본 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그가 바로 백완자의 아버지 백정우였다.그러자 우아하고 고상한 중년 여자가 걸어 나왔는데 미모가 수려했다.그녀는 백완자의 어머니 서윤아였다.백정우가 먼저 물었다.“하준아, 오랜만이구나. 우리를 기억해?”남하준이 옅은 미소를 띠며 예의 바르게 말했다.“죄송하지만 제가 머리를 다쳐서 기억을 잃었습니다.”“내 딸 백하린은? 기억해?”남하준이 고개를 젓자 서윤아가 수정했다.“너 어릴 때는 완자라고 불렀는데 정말 아무런 기억이 없어?”“네. 없습니다.”남하준이 주위를 쓱 훑어보더니 순식간에 모든 CCTV를 스캔했다. 거실에만 대략 열 몇 개의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백정우와 서윤아는 낙담하며 한숨을 내쉬었다.남하준은 아이를 내려놓고 종이비행기를 돌려주고는 가서 놀라고 했다.그리고 남하준은 의자에 앉아 물었다.“제가 왜 여기 있죠?”백정우와 서윤아도 식탁 의자에 앉아 그 위에 있는 물을 남하준에게 한 잔
백정우가 깜짝 놀라며 남하준을 바라보았다.“방금 나 뭐라고 불렀어?”남하준은 손을 뻗어 그의 어깨에 걸치며 뜨거운 눈빛으로 부드럽하게 웃었다.그의 눈빛과 웃음에는 조금의 생소함도 없었다.존경하는 어른을 만난 듯 겸손과 예의를 갖추고 있었고 의젓하고 따뜻했다.백정우는 흥분하며 손끝이 약간 떨리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말문이 막혔다.자신이 건넨 정보가 충분해 백정우가 이해했을 거로 생각한 남하준이 즉시 화제를 돌렸다.“여기 감시 카메라가 없는 곳이 어디죠?”백정우는 약간 감격스러운 듯 남하준의 손을 잡고 화장실로 향했다.화장실로 들어가니 샤워하는 곳과 화장실 칸을 커튼으로 둘러 카메라를 차단했다.그리고 백정우는 또 그들의 방으로 남하준을 데리고 갔다.방에는 네 개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침대에는 천 커튼을 모기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이 두 곳에만 카메라가 없어.”남하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충분해요.”이 충분하다는 말에 백정우는 안정제를 먹은 것 같았다.그는 떨리는 손으로 남하준의 손목을 잡았고 눈물이 반짝이는 눈에서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묻고 싶고 또 알고 싶었지만 감히 소리 내어 말할 수 없었다.남하준은 그의 의혹과 격앙된 감정을 알아차렸지만 들통날까 봐 많은 말을 할 수 없었다.그저 백정우의 손등을 토닥이며 무언의 위로를 해줄 수밖에 없었고 백정우는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남하준이 불쑥 말했다.“오늘 저녁에 저랑 방을 바꿔서 주무시죠.”“네가 우리 방에서 자겠다고?”“네. 하루만요.”백정우는 남하준이 무슨 목적인지 모르지만 틀림없이 카메라에게 찍히기 싫은 일이라 믿고 거침없이 대답했다.“그래. 너 오늘 금방 왔으니 필요한 거 있으면 뭐든 말해.”남하준이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더니 물었다.“면도기 있어요?”“있어.”“소독수는요?”“그것도 있어.”남하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식탁에 앉아 시선은 문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백정우가 또 그의 곁에 앉아 물었다.
지우는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병원에 병 보러 오지 왜 왔겠어? 갑자기 왜 태준 씨를 물어?”임다희는 지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재차 확인했다.“태준이가 당신 안 찾았어?”“아니.”지우가 고개를 젓자 임다희는 가볍게 웃었다.“그쪽이 아니라면 대체 누굴 찾아갔을까?”“그게 무슨 말이야?”지우가 일부러 이해가 안 가는 척 묻자 임다희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두 사람 재결합한 거 맞지?”지우는 침묵했다.임다희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조롱했다.“거짓말할 필요 없어. 두 사람 다시 만나는 거 아니까. 태준이가 당신을 찾지 않은 건 아마 약효가 너무 강해 당신 같은 여린 몸을 망쳐도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으니 다른 여자를 찾아 해결했나 보네.”“약효가 너무 세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지우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며 그녀를 만족시켜줬다.임다희는 속이 편안해지며 여유롭게 말했다.“그건 당신이 알 바 아니고. 이 시간에 당신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와 침대에서 뒹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지우의 안색이 확 가라앉았다.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고 눈앞의 이 악랄한 여자를 갈기갈기 찢고 싶었다.남태준을 그렇게 괴롭게 만들고 무슨 염치로 지금 까불고 있을까?만약 남태준이 그녀가 임다희와 정면충돌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면 지우는 절대 임다희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남태준의 뜻에 따라 얌전하고 철든 여자친구가 되어야 했다.지우는 괴로운 척 연기하며 겨우 눈물 한 방울을 짜냈다.임다희는 그녀의 괴로운 모습을 보고 마음속의 분한 감정을 잠재우고는 실소를 터뜨렸다.“이게 당신들 사랑이야? 하하. 우습네!”그녀의 비아냥거림과 함께 차 문이 닫히고 차량이 서서히 빠져나갔다.지우는 마음을 가다듬은 뒤 택시를 잡아타고 난 뒤에도 여전히 남태준을 걱정했다. 그의 옷이 흠뻑 젖어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지우는 기사에게 주소를 말하고는 남태준의 집에 가서 깨끗한 옷 몇 벌을 챙기려 했다.
잠시 후 한 남자 의사가 들어와 남태준이 평온하게 쉬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효과가 조금은 있네요.”말을 마친 그는 남태준의 아랫도리를 보더니 한마디 보탰다.“하지만 효과가 만족스럽지는 않네요. 휴. 환자분 물 많이 주시고 약효가 천천히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의사는 자리를 떠났고 지우는 급히 미지근한 물을 붓고 남태준의 아랫배를 슬쩍 쳐다봤다.병원의 이불이 너무 얇은 편도 아니었는데 남태준의 아랫배가 여전히 부풀어 올랐다.지우는 속으로 욕했다.‘늑대 같은 임다희! 빌어먹을!’“태준 씨. 물 좀 마셔요.”지우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남태준이 흐릿한 검은 눈동자를 뜨고 몸을 지탱하며 일어나자 지우가 서둘러 그의 등을 부축해 주었다.“아직도 힘들어요?”지우가 관심하며 묻자 남태준은 대답하지 않고 물을 마시고 다시 누워 눈을 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나 이제 괜찮으니까 너 집에 가서 쉬어.”“싫어요. 여기 있을래요.”남태준은 눈을 감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돌아가라고.”“혹시 무슨 일 생겼는데 옆에 돌봐줄 사람 없으면 어떡해요?”“여기 의사도 있고 간호사도 있으니까 나 괜찮아.”“그래도 난 여기 있고 싶다고요.”남태준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흐릿한 검은 눈동자를 천천히 뜨고 뜨거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몸 안의 불은 꺼졌지만 탄소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어. 넌 탄소 더미 옆의 디젤과 같아서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고.”“비유를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남태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지우는 그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녀가 여기 머무르는 게 어쩌면 그의 안정과 회복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좋아요. 나 먼저 갈 테니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 줘요.”“그래.”지우는 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1층 로비에서 매니저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약을 받는 임다희를 만났다.지우는 재빨리 기둥 뒤에 숨었다. 보아하니 그녀는 허리와 다리를 다친
지우는 문득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시골 옆집에서 종돈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매번 거래가 있을 때면 이웃 할아버지는 종돈에게 독한 약을 먹였고 약을 먹은 종돈은 열 몇 마리의 암퇘지와 교배를 했다.그녀는 그 장면을 본 적은 없지만 처절하고 끔찍한 돼지 울음소리는 그녀 어린 시절의 악몽이었다.정신이 번쩍 든 지우는 두말없이 펑 하고 문을 닫았다.갑작스레 문을 닫는 모습과 지우의 창백한 얼굴, 당황하는 모습에 남태준은 피식 웃었다.지우는 부랴부랴 택시를 잡았고 15분 후, 남태준은 지우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응급실에 가서 의사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의사가 남태준 옆에 있는 지우를 가리키며 물었다.“환자분 여자친구예요?”남태준이 다급하게 말했다.“여동생이에요.”지우는 마음이 뭉클했다. 남태준은 스스로 고통을 참을지언정 그녀가 고통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여자친구 있어요?”“없어요.”“내가 주소를 줄 테니 가서...”의사가 간단한 방법을 추천하려 하자 남태준이 엄숙하게 말했다.“나 경찰입니다.”의사는 말을 뚝 그치고 긴장된 듯 침을 삼키더니 웃어 보이며 애써 둘러댔다.“그러니까 제 말은 이런 경우 의사를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다는 거예요. 게다가 우리도 해독제가 없어요.”“진정제 놔주세요. 진정제가 안 되면 마취제라도...”“그런 약은 함부로 처방할 수 없고 일정한 수치에 도달해야 처방할 수 있어요. 환자분 같은 경우는...”의사는 난처해하더니 남태준의 차가운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그의 강한 카리스마에 겁을 먹고 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진정제 놓아드리겠지만 효과가 그리 좋지는 않을 거예요. 그저 괴로움을 조금 억제하는 정도예요.”“감사합니다.”남태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괴롭게 참아내느라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다른 약도 같이 처방해 드릴게요.”의사가 약을 처방하며 말했다.“여자친구도 없고 그런 서비스도 받기 싫다면 여동생분께 성인 가게에 가서 사달라고 하세요.”지우는 이렇게 난처한 적이 없었다.
지우가 만약 숫처녀라면 아마 고생할 것이다.남태준은 생각하다가 결국 휴대전화를 꺼내 구급차를 불러 의사를 찾아 해결할 생각이었다. 휴대전화를 찾아 다이얼을 돌리려던 순간, 조수석 문이 열리면서 지우가 다급하게 들어와 앉더니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태준 씨?”남태준은 움찔 놀랐다. 뜨거운 눈으로 지우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니 입이 바짝 마르고 욕망이 최고조에 달했다.지우는 남자가 머리와 몸이 흠뻑 젖어 숨도 약간 헐떡이는 것을 보고 몸을 기울여 그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타오를 듯한 고온에 지우는 화들짝 놀랐다.“태준 씨 열 나요. 내가 병원에 데려다줄게요.”남태준은 꾹 참으며 천천히 눈을 감고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운전할 줄 알아?”“아니요.”지우가 긴장하며 말했다.“방금 택시 타고 왔어요. 택시 타고 병원에 데려다줄게요.”택시?남태준은 자신이 통제 불능이 되어 택시에서 무슨 엉뚱한 짓을 할지 몰라 걱정했다.지우는 휴지를 뽑아 그의 볼과 목의 물기를 닦아 줬다.여자의 몸에서 나는 향기, 손바닥의 부드러움은 치명적인 유혹처럼 그를 걷잡을 수 없이 달려들고 싶게 만들었다.“지우야.”남태준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눈을 감고 감히 그녀를 쳐다보지도 못하며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말했다.“방금 다희를 만났어.”지우는 땀을 닦는 동작을 멈추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티 나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그리고요?”“그리고 이렇게 됐어. 너무 괴롭고 답답해 죽을 것 같아.”남태준은 침을 삼키고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지우의 시선은 그의 고통스러운 안색에서 내려와 그의 가슴팍을 보니 기복이 아주 심했고 더 아래로 내려가니 운전석에 앉아도 선명하게 드러날 정도로 무섭게 부풀어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임다희가 약을 먹였어요?”지우는 분해서 주먹을 불끈 쥐고 어쩔 줄 몰랐다.그러자 남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어떡해요?”지우는 부랴부랴 고개를 내밀어 근처에 호텔이 있는지 살폈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그건 지난번에 이미 설명했잖아.”“그 사람 내가 만나야겠어. 주소와 연락처 줘.”“없어.”임다희는 냉정한 얼굴로 어금니를 깨물며 악에 받쳐 말했다.“내가 그렇게 큰 단서를 줘서 네가 공을 세웠는데 넌 내게 조금의 감사함도 없이 이런 태도로 날 심문해?”“네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내가 너 경찰서로 데려가 어떻게 해서 그 단서를 얻었는지 조사할 거야. 너 절대 쉽게 못 벗어나.”임다희는 피식 웃더니 심호흡을 하고 중얼거렸다.“정말 어이가 없어.”남태준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그 술을 마신 후 몸이 따뜻해짐을 느꼈다.알코올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따뜻함이 점차 뜨거움으로 번지고 일부 기능은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해지며 의식이 약간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는 예리한 눈빛으로 컵을 보더니 와인을 바라보았다.컵은 닦았으니 틀림없이 문제가 없을 것이고 문제는 아마 개봉하지 않은 것 같은 와인에 있을 것이다그가 방심했다.남태준은 더 이상 임다희를 캐묻지 않고 벌떡 일어나 두말없이 성큼성큼 돌아서서 가버렸다.“태준아!”임다희가 급히 뒤쫓아가 남태준을 뒤에서 덥석 끌어안고 두 손을 놓지 않았다.“가지 마. 태준아. 사랑해.”임다희는 와인에 매우 강한 약을 넣었다. 소 열 마리라도 이 약효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그녀는 남태준의 경계하고 신중한 성격을 알고 일부러 와인에 약을 넣은 다음 개봉하지 않은 것처럼 포장하여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했다.“이거 놔.”남태준은 화를 꾹 참고 나지막이 명령했지만 임다희는 한사코 놓지 않았다.그의 몸을 더 꽉 껴안고 자기 몸을 그의 몸에 문지르며 그를 통제 불능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남태준의 눈빛이 가라앉더니 임다희의 손목을 힘껏 잡아당겨 어깨너머로 세게 넘어뜨렸다.펑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임다희의 괴로운 울부짖음 소리가 들렸다. 고통스럽게 땅바닥에 뒹굴며 잔뜩 일그러진 얼굴은 초라했다.“내일 다시 봐.”남태준은 매섭게 말하고는 방에서 사라졌다.그는 걸으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
며칠 후.남태준은 임다희가 제공한 단서에 따라 미리 깊은 산에 잠복해 마약 밀매업자들을 잡았고 몇 킬로그램의 물품도 압수했다.모두가 기뻐하고 공적을 세운 것을 감격스러워하며 축하하고 있을 때, 남태준만 걱정이 가득했다.그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임다희가 이렇게 정확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는 건 분명 그녀의 신분이 간단하지 않다는 뜻이다.이 사건은 곧 경찰에 의해 발표되었고 공식 웹사이트는 물론 뉴스에도 게재되었다.뉴스를 본 임다희가 남태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태준아. 네가 마약상을 잡고 물건까지 손에 넣은 건 내 공도 있지 않아? 나 밥 한 끼 사줘야 하는 거 아니야?]남태준은 그녀의 입에서 단서를 더 찾고 싶어 그녀의 요구를 승낙했다.저녁, 퇴근 후 남태준은 임다희가 준 장소로 차를 몰고 갔다.장소에 도착해서야 개인 클럽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곳은 VIP 예약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준 초대 코드로 그 클럽에 들어갔다.긴 복도를 지나 웨이터가 룸의 문을 열었다.남태준이 들어가서 보니 범상치 않은 방이었다. 커다란 방에는 침대, 소파, 식탁, 옷장에 화장실까지 있었다.식탁에서 임다희는 섹시하고 우아한 튜브톱 스커트를 입고 요염하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식탁 위에 촛불을 켜 놓은 저녁 식사는 매우 낭만적이었다.“태준아 왔어?”임다희는 일어나서 활짝 웃으며 말했다.“어서 앉아.”남태준은 조금 경계하며 천천히 걸어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앞에 있는 양식을 보고 옆에 있는 몇 병의 술을 보며 말했다.“오늘 식사를 위해 준비를 많이 한 모양이야.”“마음에 들어?”임다희가 웃으며 묻자 남태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아니. 싫어.”임다희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남태준은 의자 등받이에 나른하게 기대어 덤덤하게 말했다.“네가 준 정보 아주 정확하더라. 고마워. 만약 필요하다면 경찰서에 와서 상금 받아 가.”임다희는 어이없이 웃으며 옆에 이미 열린 술을 들고 남태준에게
“네?”지우가 멍하니 아직 반응하지 못했을 때 남태준이 바로 키스를 했다.남자의 패기 넘치고 강한 딥키스에 지우는 어질어질하고 온몸이 나른하고 힘이 없었으며 그의 부드럽고 끈적거리는 몸 아래에서 넋을 잃었다.함께 있는 시간은 늘 뜨겁고 끈적끈적했으며 아늑하고 행복했다.진한 키스를 나눈 후, 지우는 몸이 나른하고 숨이 가빠졌지만 남태준은 오히려 더욱 에너지가 넘치고 심지어 욕망이 자극되어 발산되지 않으니 더욱 흥분했다.그는 지우를 거실에 남겨두고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방으로 달려가 목욕을 했다.다시 나왔을 때 지우는 거실에서 소설을 쓰고 있었다.남태준은 살금살금 다가가서 그녀 옆에 앉아 그녀의 컴퓨터 내용을 들여다봤다.그러자 지우는 노트북을 덥석 덮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시간이 늦었어요. 집에 가야겠어요.”남태준이 고개를 들어 시간을 보니 저녁 9시가 넘었다.그는 지우를 떠나보내기 아쉬워하며 그녀가 더 오래 머물기를 바랐다.“열 시에 가.”남태준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조용히 달랬다.“열 시에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지우는 고개를 흔들었다.남태준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가 항상 그녀에게 키스해 그가 욕망을 억누를 수 없을까 봐 조금 두려웠다.그가 매번 자신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또 고통스럽게 억누르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그런 남자를 보며 지우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아니요. 지금 가야겠어요. 너무 늦으면 안 돼요.”남태준은 그녀의 머리를 잡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래.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게.”지우는 즉시 물건을 챙기고 가방을 든 뒤 남태준의 따뜻한 손을 잡았다.“가요.”남태준은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좀 서운했다.지우는 정말 그와 더 있고 싶지 않은 걸까?그녀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가슴이 미어졌다.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승용차는 마당에서 천천히 빠져나가 도로로 들어가 쏜살같이 달려갔다.길가에는 오랫동안 주차된 승합차 한 대가 줄곧
적어도 지우가 그를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증명해주니 말이다.남태준은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다희는 언제나 자신이 훌륭하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사람이야. 자기가 원하는 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대가를 치러서라도 손에 넣으려 하지.”지우가 감탄하며 말했다.“그 여자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네요.”남태준이 거침없이 말했다.“그래도 한 때 만났던 사이니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그럼 태준 씨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지우가 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다시 만나고 싶어요?”남태준이 화를 억누르고 물었다.“나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묻는 거야?”“그럼 아까 왜 그렇게 긴장하며 끌고 나갔어요. 그건...”남태준의 바로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그건 네가 우리 집에 있는 거 들키기 싫어서지. 지성이가 이미 육건우에게 한 방 먹었는데 아직도 모르겠어?”지우는 순간 그의 뜻을 알아챘다.전에 남태준은 임다희가 아직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몰라서 대범하게 지우를 소개해줬었다.하지만 지금은 임다희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걸 알았으니 지우를 보호하기 위해 이 연애를 잘 숨겨야 했다. 아니면 임다희가 또 무슨 수단을 써서 두 사람을 이간질할지 모른다.마음이 따뜻해진 지우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우리 남 대장님도 무서울 때가 있었네요?”남태준은 그녀의 말에 화가 나서 손을 뻗어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지우가 날쌔게 손을 피했다.“지우야. 이리 와.”남태준이 화난 척 말했지만 지우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싫은데요?”남태준이 몸을 기울이고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으려 하자 지우가 그의 손을 뿌리치고 식탁을 나섰다.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아직 밥 다 안 먹었는데 어디 가?”“안 먹을래요.”지우는 방긋 웃으며 남태준의 행동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가 자신을 잡고 혼내주려 하는 것 같았다.남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지우는 급하게 돌아서서 거실로 뛰어갔다.“이리 오라고.”남태준이 부드러운 명
“그래 그럼.”남태준은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 아무리 쓸쓸하고 힘들어도 그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었다.지우가 그의 곁에 있는 한 그는 반드시 그녀의 마음, 그녀의 사랑, 그녀의 모든 것을 기다릴 수 있었다.그때, 입구의 벨이 울렸다.지우는 궁금한 얼굴로 남태준을 보았고 남태준도 입구를 보았다.“이 시간에 누구죠?”지우가 묻자 남태준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아마 신우일 거야.”“먼저 먹고 있어.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볼게.”말하면서 그는 거실로 나와 문을 열었다.순간 남태준의 안색이 일그러졌다.바로 임다희였다.방금 차에서 내린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지만 이대로 남태준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다시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찾아왔다.“태준아 난...”남태준은 바로 나가서 문을 닫고 임다희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집에 지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두 사람이 재결합했다는 것을 임다희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임다희가 알면 지우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고 불필요한 문제만 일으킬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그의 집에 있다는 것을, 임다희가 지우와 재결합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여긴 왜 왔어?”남태준은 불쾌한 듯 묻더니 그녀의 팔을 끌고 마당으로 향했다.임다희는 남태준의 언짢음과 난폭함을 느끼고 말했다.“너랑 다시 잘 얘기하려고 찾아왔어. 방금 너 쓰레기라고 욕한 거 사과할게. 너무 슬퍼서 홧김에 내뱉은 말이지 진심이 아니었어.”“나 쓰레기 맞아.”남태준은 그녀를 마당 밖으로 끌고 나가 철제 난간을 나와 철문을 걸어 잠그고 마당 바깥 입구에 서 있었다.“우리 친구는 될 수 있지만 연인으로는 얘기가 이미 끝났어.”“우리 앉아서 얘기 좀 해. 우리 다시 시작하자.”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의 덤덤한 눈을 올려다보며 울먹였다.“나 많이 변했어. 더 이상 이전의 임다희가 아니라고. 나 너를 많이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남태준은 몇 초 동안 어이없어 하더니 엄숙하게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