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남하준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강에서도 시체를 건져내지 못했고 마치 증발이라도 한 듯 모습을 감췄다.나라에서는 비밀리에 전문적인 수사대를 파견하여 그의 종적을 찾았다. 몸을 회복한 정안도 밤낮없이 그를 찾기 시작했다.다만 그녀는 수색팀처럼 맹목적으로 강을 수색하거나 수사대처럼 밖에서 찾지 않고 당일 도로 상황 CCTV를 확인했다.당시 남하준의 차량은 여러 대의 미스터리한 번호판 차량에 쫓기고 있었고 도로에서 과속 현상이 나타났지만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갑자기 남하준의 차가 고장 나듯 옆 가드레일을 들이받으면서 차 전체가 강물에 빠졌다.그를 미행하던 차량은 곧장 앞으로 나가더니 핸들을 꺾어 강 아래 도로로 향했다.강의 양쪽 길에는 CCTV가 없어 모든 추적 화면이 끊겼다.정안은 남하준의 입장에서 일을 생각하려 했다.그는 왜 들러리를 서려고 했을까?왜 연회 도중에 갑자기 떠났을까?만약 임무를 수행하러 갔다면 절대 혼자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류청도 부하도 데려가지 않은 건 대체 무슨 목적일까?정안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류청이 서재 문을 두드렸다.“들어와요.”“사모님, 찾았어요!”정안이 급히 류청이 건넨 USB를 받았다.USB를 받은 그녀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컴퓨터에 꽂았다.류청이 다가가 같이 보면서 감격해서 말했다.“얼마나 어렵게 얻은 줄 아세요? 제가 주변 인맥을 총동원해서 이 CCTV 영상을 겨우 얻었어요.”정안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열심히 구인아의 결혼식 날 영상을 확인했다.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지켜보던 정안은 선우석이 반지에 손을 베인 것을 보고 남하준이 다가가 손수건으로 선우석의 손가락을 가릴 때 멈춤 버튼을 눌렀다.당시 무대에서는 아무도 이런 미세한 움직임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류청도 경악해서 말했다.“도련님께서 왜 손수건을 몰래 바꾸셨을까요? 대체 뭘 하시려는 걸까요?”정안은 몇 초간 침묵하다가 계속 영상을 틀었다.그제야 정안은 그날의 사회자가 왜 그렇게 형편
“만약 선우석의 신분이 깨끗하다면 자기 피 때문에 긴장할 리 없고 만약 선우석이 진짜 문제가 있다면 바로 처리하겠죠.”류청은 그제야 알아차리고 활짝 웃었다.“그러니까 도련님의 진정한 목적은 선우석의 피로 DNA 검사를 하는 게 아니라 선우석의 의심을 사기 위해 허상을 만들었다는 거네요? 선우석이 먼저 공격하게끔?”정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제 추측으로는 그래요.”“근데 도련님께서 왜 그러신 거죠?”정안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머리가 윙윙 아팠다.그녀는 한참 동안 이마를 짚고 생각하더니 물었다.“혹시 최근에 오빠가 특별히 이상한 일을 시켰거나 차에 뭐 좀 실으라고 한 적 있어요?”류청은 뭔가 떠올라 경악했다.“있어요! 얼마 전에 저보고 군 창고에서 잠수에 쓰이는 산소 펌프와 차창을 깨는 전문 망치를 가져오라고 하셨어요.”정안은 참지 못하고 한줄기 미소를 지었다. 요 며칠 동안의 슬픔과 괴로움이 모두 사라지고 모든 걱정이 동력으로 바뀌었다.그녀 마음속의 큰 바위가 마침내 내려졌다.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휴대전화를 꺼내 남하준이 그녀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열어 보았다.[마음 단단히 먹고 나 기다려.]정안은 입술을 깨물고 속으로 희비가 엇갈렸다.‘남하준, 돌아오면 단단히 혼내줄 거야. 그렇게 위험한 계획을 나와 상의도 없이 혼자 목숨 걸고 뛰어들면 어떡해? 만약 사고라도 생기면 나랑 아이는 어떡하라고?’류청이 호기심에 물었다.“사모님, 도련님의 계획이 뭘까요? 지금 어디 계실까요?”“그건 저도 몰라요.”정안은 남하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상황이 전부 그의 장악하에 있다는 것만 알았다.“그럼 우리 이제 어떡하죠?”“계속 맹목적으로 찾아요. 조사하지 말고 선우석에게 접근하지 말고, 사람 붙이지도 말고 그저 그 사람이랑 아무 상관없다는 듯. 그냥 류청 씨 할 일을 하세요. 하준 오빠 계획 망치지 말고.”“네, 사모님.”“그리고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세요.”“네. 알겠습니다.”.
지윤이 아이를 안고 떠나자 정안은 뒤돌아 구인아 앞으로 다가갔고 미소를 지으며 휴대전화를 꺼내 통화기록을 펼쳤다.통화기록을 구인아 앞에 널어놓은 채 여유롭게 말했다.“결혼식에서 당신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에게 치근덕거리기 시작했어요. 이건 지난 한 달 동안 당신 남편이 나에게 전화한 기록이죠. 어디 한번 잘 봐봐요. 아는 번호죠?”구인아는 안색이 어두워지며 손을 뻗어 정안의 휴대전화를 뺏으려 했다. 정안이 재빨리 휴대전화를 숨기고 차갑게 말했다.“집에 돌아가서 남편에게 제발 나에게 치근덕거리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난 그 사람 모르고, 친구 하고 싶은 마음도 없으니 부디 자중해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스토커로 고소할지도 모른다고.”구인아는 아랫배를 누르고 화가 나서 온몸이 떨리고 호흡이 어지러웠다.정안은 그녀가 아랫배를 감싸는 동작을 보고 그녀의 임신을 더욱 확신했다.같은 엄마로서 정안은 더 이상 그녀를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아 차가운 태도를 거두고 여유롭게 말했다.“그리고 두 분, 앞으로 말조심하세요. 나랑 내 남편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고, 그 사람이 나 십 년 넘게 좋아했고 나도 그 깊은 사랑에 감동한 거지 누가 누굴 꼬신 적은 없으니까.”정안은 유미를 노려보며 말했다.“그리고 당신, 입만 벙긋하면 자꾸 내가 남하준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자격이 없다고 하는데. 세상에 완전히 어울리는 부부가 몇이나 되겠어? 날 사랑하는 그 마음이면 충분한 거야.”유미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반박하려 했지만 정안이 바로 말을 끊었다.“억지 부리지 마. 세상에 당신만이 남하준 곁에 있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아쉽게도 당신이 하늘의 신선이라고 해도 남하준은 당신 거들떠보지도 않아. 근데 굳이 무리해가면서 남하준이 당신을 미워하게 만들 필요가 있나?”유미는 화가 나서 말문이 턱 막혔다.구인아는 상황을 보고 태동을 건드릴까 봐 무서워 급히 유미를 끌고 먼저 떠났다.“유미야. 우리 가자. 이런 미친 여자는 상대할 필요도 없어.”정안이 말다
침대 하나, 옷장 하나, 세면대, 그리고 수건과 칫솔 치약이 놓여 있었다.이렇게 큰 방에 다른 물건이 더 없었다.왼쪽에는 창문이 있고 그 위에는 강철이 용접되어 있고 그 너머로 높은 담장이 보였다.남하준이 침대에서 내려와 방의 문을 열고 나가보니 밖은 넓은 거실이었다.거실 가운데에는 식탁과 의자 네 개가 놓여 있고, 벽 쪽에 책장이 하나 있고, 책장 위에는 많은 책이 놓여 있었다.이것 말고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바로 그때, 종이비행기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의 발아래로 떨어졌다.얼굴이 하얀 남자아이가 달려왔다.“비행... 기.”남하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멍해 있다가 천천히 몸을 웅크리고 종이비행기를 주워들고 어린 남자아이를 안아 올리고 엷게 웃으며 물었다.“이름이 뭐야?”남자아이가 눈을 깜박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바로 그때 부드럽고 중후한 중년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백건.”남하준이 소리가 나는 방향을 따라 보니 점잖은 외모의 중년 남자가 다른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그를 본 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그가 바로 백완자의 아버지 백정우였다.그러자 우아하고 고상한 중년 여자가 걸어 나왔는데 미모가 수려했다.그녀는 백완자의 어머니 서윤아였다.백정우가 먼저 물었다.“하준아, 오랜만이구나. 우리를 기억해?”남하준이 옅은 미소를 띠며 예의 바르게 말했다.“죄송하지만 제가 머리를 다쳐서 기억을 잃었습니다.”“내 딸 백하린은? 기억해?”남하준이 고개를 젓자 서윤아가 수정했다.“너 어릴 때는 완자라고 불렀는데 정말 아무런 기억이 없어?”“네. 없습니다.”남하준이 주위를 쓱 훑어보더니 순식간에 모든 CCTV를 스캔했다. 거실에만 대략 열 몇 개의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백정우와 서윤아는 낙담하며 한숨을 내쉬었다.남하준은 아이를 내려놓고 종이비행기를 돌려주고는 가서 놀라고 했다.그리고 남하준은 의자에 앉아 물었다.“제가 왜 여기 있죠?”백정우와 서윤아도 식탁 의자에 앉아 그 위에 있는 물을 남하준에게 한 잔
백정우가 깜짝 놀라며 남하준을 바라보았다.“방금 나 뭐라고 불렀어?”남하준은 손을 뻗어 그의 어깨에 걸치며 뜨거운 눈빛으로 부드럽하게 웃었다.그의 눈빛과 웃음에는 조금의 생소함도 없었다.존경하는 어른을 만난 듯 겸손과 예의를 갖추고 있었고 의젓하고 따뜻했다.백정우는 흥분하며 손끝이 약간 떨리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말문이 막혔다.자신이 건넨 정보가 충분해 백정우가 이해했을 거로 생각한 남하준이 즉시 화제를 돌렸다.“여기 감시 카메라가 없는 곳이 어디죠?”백정우는 약간 감격스러운 듯 남하준의 손을 잡고 화장실로 향했다.화장실로 들어가니 샤워하는 곳과 화장실 칸을 커튼으로 둘러 카메라를 차단했다.그리고 백정우는 또 그들의 방으로 남하준을 데리고 갔다.방에는 네 개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침대에는 천 커튼을 모기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이 두 곳에만 카메라가 없어.”남하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충분해요.”이 충분하다는 말에 백정우는 안정제를 먹은 것 같았다.그는 떨리는 손으로 남하준의 손목을 잡았고 눈물이 반짝이는 눈에서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묻고 싶고 또 알고 싶었지만 감히 소리 내어 말할 수 없었다.남하준은 그의 의혹과 격앙된 감정을 알아차렸지만 들통날까 봐 많은 말을 할 수 없었다.그저 백정우의 손등을 토닥이며 무언의 위로를 해줄 수밖에 없었고 백정우는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남하준이 불쑥 말했다.“오늘 저녁에 저랑 방을 바꿔서 주무시죠.”“네가 우리 방에서 자겠다고?”“네. 하루만요.”백정우는 남하준이 무슨 목적인지 모르지만 틀림없이 카메라에게 찍히기 싫은 일이라 믿고 거침없이 대답했다.“그래. 너 오늘 금방 왔으니 필요한 거 있으면 뭐든 말해.”남하준이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더니 물었다.“면도기 있어요?”“있어.”“소독수는요?”“그것도 있어.”남하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식탁에 앉아 시선은 문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백정우가 또 그의 곁에 앉아 물었다.
대문이 열리고 철제 난간 밖에 총을 든 두 남자가 서 있었다.인상이 사나운 두 사람은 살상력이 매우 강한 소총을 들고 있었다.그러자 한 남자가 남하준에게 총을 겨누고 냉소를 지었다.“너, 얌전히 있어. 여기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해.”백정우가 황급히 나서서 좋게 말했다.“형님들 노여움 푸세요. 아직 젊고 원기 왕성한 나이에 방금 갇혔으니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정상이죠. 제가 잘 가르치겠습니다.”또 다른 총을 든 건장한 남자가 차갑게 웃었다.“네가 이 방에서 도망친다고 해도 신호가 잡히지 않는 외딴 섬에서 탈출하는 건 불가능해.”남하준의 안색이 확 굳어졌다.그러자 두 사람은 활짝 웃더니 몸을 돌려 떠나며 말했다.“어쩌면 이렇게 신호가 전혀 없냐고. 나 완전 원시인 된 것 같다니까?”“참아. 몇 년만 더 벌다가 관둘 거야. 이 섬은 정말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야.”백정우가 문을 닫고 몸을 돌려 남하준에게 말했다. “괜찮아. 상대할 필요 없어.”“식사와 일용품을 계속 저 두 사람이 배달해 왔어요?”“아니. 지난 몇 년간 아마 수십 명은 봤지? 때로는 총을 든 사내들이 한 무리 와서 정원 밖의 공터에서 집합해.”남하준이 감시 카메라를 올려다보며 호기심에 물었다.“섬에 신호가 없는데 이 카메라들은 어떻게 화면 데이터를 전송하죠?”이 물음에 백정우는 어안이 벙벙하더니 잠시 후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저자들이 우리를 감시하든 안 하든 우리는 절대 저 철제문을 열 수 없고 이 섬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윤아가 말을 이었다.“그래. 여기는 배도 없고 신호도 없어. 무기 없이 반항하면 바로 죽음이야.”남하준은 말없이 식탁으로 돌아와 그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저녁 식사 후 서윤아는 그릇을 깨끗이 씻어 철제 난간 밖으로 내놓고 막내아들을 씻기고 남하준의 방에서 재웠다.한편, 그들과 방을 바꾼 남하준은 커튼을 치고 모든 카메라를 차단한 채 천천히 그의 계획을 진행하기 시작했다.다른 방, 막내아들이 잠들자 백정우와 서윤아는 이불
두 사람은 서서히 깊은 잠에 빠졌고 새벽 5시가 되었다.날이 아직 어둑하고 안개가 짙었다.갑자기 윙윙거리는 큰 소리가 하늘을 빙빙 돌았다.서윤아가 먼저 놀라 깨더니 즉시 백정우를 흔들어 깨웠다.“여보. 여보. 빨리 일어나봐.”백정우가 벌떡 일어나 앉더니 긴장해서 물었다.“왜 그래?”“소리 좀 들어봐.”백정우가 정신을 차리고 소리를 듣더니 곧바로 흥분하여 이불을 젖히고 창가로 가서 철제 난간에 엎드려 하늘을 바라보았다.하늘이 희끗희끗해지기 시작하고 하늘에는 헬기 몇 대가 빙빙 돌고 있었다.헬기 안에서 검은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줄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그때 지붕에서도 희미하게 점프하는 소리가 들렸다.백정우는 감격에 겨워 침대로 달려가 한 손으로 아들을 안은 뒤 한 손으로 서윤아를 끌어안고 흥분에 겨워 말했다.“여보! 왔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왔어!”“누가 왔는데?”서윤아는 백정우의 품에 안겨 떨리고 설렜다.“누군지는 몰라. 헬기가 많이 왔고 그 헬기에서 총을 들고 건장한 특수부대원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내렸어.”두 사람은 부둥켜안고 남하준의 말을 되새기며 감히 이 방을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이윽고 총소리가 요란했다.백정우는 놀라서 아들의 귀를 막았다.연거푸 총소리가 나더니 총알이 철문에 부딪혀 큰 소리를 냈다.순간, 철문이 깨지고 류청이 권총을 들고 무장한 병사들을 데리고 돌진해 들어왔다.거실에서 남하준은 앞에 반쯤 마신 물 한잔을 놓고 차분하고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류청이 남하준을 보더니 흥분에 차서 말했다.“도련님!”“왔어?”남하준이 한없이 담담하게 이 말을 하는 순간, 지난 한 달의 노력이 값지게 느껴졌다.“죄송합니다. 도련님. 제가 늦어서 도련님이 고생하셨어요.”남하준이 그를 보며 흐뭇해했다.“아니야. 제때 왔으니 사과할 필요 없어.”“가시죠. 도련님.”류청이 말하자 남하준이 다른 방을 가리켰다.“내 장인어른, 장모님과 처남이 저 안에 있어. 놀라시지 않도록 조심해
“요 며칠 그룹에 돌아가 일하고 있었는데 마침 위성 감시 데이터 부서 직원이 도련님 위치를 추적했다면서 즉시 군대와 헬기를 출동시켜 구조하러 온다는 거 듣고 따라 왔어요.”남하준이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일어나 손을 뻗어 류청에게 걸쳤다. “나 좀 부축해 줘.”류청이 남하준을 부축해 천천히 입구 쪽으로 향했다.밖에 총소리가 멈추자 류청이 궁금해서 물었다.“도련님, 근데 왜 이번 계획은 저까지 속인 거예요?”“넌 나랑 가장 가까운 부하잖아. 네가 만약 내 계획을 알았다면 실제처럼 연기하지 못했을 거고 적의 눈도 속일 수 없었을 거야.”류청은 서운해 나지막이 투덜댔다.“그러니까, 적이 도련님에게 진짜 사고가 났다고 믿게 하려고 저와 사모님, 그리고 가족분들까지 속이신 거예요? 전부 도련님에게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백방으로 찾아다니고 가슴 졸이고 슬퍼하고 계셨다고요.”남하준이 피식 웃었다.“그래.”“근데 다리는 어쩌다 다치신 거예요?”“위치추적기를 체내에 숨겨뒀었어. 병원 검사를 피하려고 계속 꺼진 상태였지.”류청이 경악했다.“그래서 직접 살을 베어 위치 추적기를 작동시키신 거예요?”남하준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더니 감탄하며 말했다.“마취 없이 아파 죽는 줄 알았어. 수건을 어찌나 깨물었는지 이가 다 부서지는 줄.”류청이 그 장면을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도련님, 앞으로 이렇게 위험하고 어려운 임무는 저에게 맡기세요. 전 절대 정호처럼 도련님 배신하지 않아요.”“난 너 의심한 적 없어.”“감사합니다.”남하준은 방을 나와 헬기를 타고 병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안성 병원으로 향했고 류청은 엘리트 부대를 데리고 남아서 계속 범인을 수색했다.헬기는 무인도를 넘어 광활한 바다 위를 날았다.M국의 영토가 아닌 외딴 섬을 보고 있자니 남하준은 마음이 무거워졌다.장인어른과 장모는 구출했지만 백인호의 손에 든 카드가 점점 거대해지고 있었다. 그는 지금 정통 어르신의 사위였으니 정통 어르신의 이미지와 지위에 영향을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