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이 열리고 철제 난간 밖에 총을 든 두 남자가 서 있었다.인상이 사나운 두 사람은 살상력이 매우 강한 소총을 들고 있었다.그러자 한 남자가 남하준에게 총을 겨누고 냉소를 지었다.“너, 얌전히 있어. 여기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해.”백정우가 황급히 나서서 좋게 말했다.“형님들 노여움 푸세요. 아직 젊고 원기 왕성한 나이에 방금 갇혔으니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정상이죠. 제가 잘 가르치겠습니다.”또 다른 총을 든 건장한 남자가 차갑게 웃었다.“네가 이 방에서 도망친다고 해도 신호가 잡히지 않는 외딴 섬에서 탈출하는 건 불가능해.”남하준의 안색이 확 굳어졌다.그러자 두 사람은 활짝 웃더니 몸을 돌려 떠나며 말했다.“어쩌면 이렇게 신호가 전혀 없냐고. 나 완전 원시인 된 것 같다니까?”“참아. 몇 년만 더 벌다가 관둘 거야. 이 섬은 정말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야.”백정우가 문을 닫고 몸을 돌려 남하준에게 말했다. “괜찮아. 상대할 필요 없어.”“식사와 일용품을 계속 저 두 사람이 배달해 왔어요?”“아니. 지난 몇 년간 아마 수십 명은 봤지? 때로는 총을 든 사내들이 한 무리 와서 정원 밖의 공터에서 집합해.”남하준이 감시 카메라를 올려다보며 호기심에 물었다.“섬에 신호가 없는데 이 카메라들은 어떻게 화면 데이터를 전송하죠?”이 물음에 백정우는 어안이 벙벙하더니 잠시 후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저자들이 우리를 감시하든 안 하든 우리는 절대 저 철제문을 열 수 없고 이 섬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윤아가 말을 이었다.“그래. 여기는 배도 없고 신호도 없어. 무기 없이 반항하면 바로 죽음이야.”남하준은 말없이 식탁으로 돌아와 그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저녁 식사 후 서윤아는 그릇을 깨끗이 씻어 철제 난간 밖으로 내놓고 막내아들을 씻기고 남하준의 방에서 재웠다.한편, 그들과 방을 바꾼 남하준은 커튼을 치고 모든 카메라를 차단한 채 천천히 그의 계획을 진행하기 시작했다.다른 방, 막내아들이 잠들자 백정우와 서윤아는 이불
두 사람은 서서히 깊은 잠에 빠졌고 새벽 5시가 되었다.날이 아직 어둑하고 안개가 짙었다.갑자기 윙윙거리는 큰 소리가 하늘을 빙빙 돌았다.서윤아가 먼저 놀라 깨더니 즉시 백정우를 흔들어 깨웠다.“여보. 여보. 빨리 일어나봐.”백정우가 벌떡 일어나 앉더니 긴장해서 물었다.“왜 그래?”“소리 좀 들어봐.”백정우가 정신을 차리고 소리를 듣더니 곧바로 흥분하여 이불을 젖히고 창가로 가서 철제 난간에 엎드려 하늘을 바라보았다.하늘이 희끗희끗해지기 시작하고 하늘에는 헬기 몇 대가 빙빙 돌고 있었다.헬기 안에서 검은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줄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그때 지붕에서도 희미하게 점프하는 소리가 들렸다.백정우는 감격에 겨워 침대로 달려가 한 손으로 아들을 안은 뒤 한 손으로 서윤아를 끌어안고 흥분에 겨워 말했다.“여보! 왔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왔어!”“누가 왔는데?”서윤아는 백정우의 품에 안겨 떨리고 설렜다.“누군지는 몰라. 헬기가 많이 왔고 그 헬기에서 총을 들고 건장한 특수부대원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내렸어.”두 사람은 부둥켜안고 남하준의 말을 되새기며 감히 이 방을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이윽고 총소리가 요란했다.백정우는 놀라서 아들의 귀를 막았다.연거푸 총소리가 나더니 총알이 철문에 부딪혀 큰 소리를 냈다.순간, 철문이 깨지고 류청이 권총을 들고 무장한 병사들을 데리고 돌진해 들어왔다.거실에서 남하준은 앞에 반쯤 마신 물 한잔을 놓고 차분하고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류청이 남하준을 보더니 흥분에 차서 말했다.“도련님!”“왔어?”남하준이 한없이 담담하게 이 말을 하는 순간, 지난 한 달의 노력이 값지게 느껴졌다.“죄송합니다. 도련님. 제가 늦어서 도련님이 고생하셨어요.”남하준이 그를 보며 흐뭇해했다.“아니야. 제때 왔으니 사과할 필요 없어.”“가시죠. 도련님.”류청이 말하자 남하준이 다른 방을 가리켰다.“내 장인어른, 장모님과 처남이 저 안에 있어. 놀라시지 않도록 조심해
“요 며칠 그룹에 돌아가 일하고 있었는데 마침 위성 감시 데이터 부서 직원이 도련님 위치를 추적했다면서 즉시 군대와 헬기를 출동시켜 구조하러 온다는 거 듣고 따라 왔어요.”남하준이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일어나 손을 뻗어 류청에게 걸쳤다. “나 좀 부축해 줘.”류청이 남하준을 부축해 천천히 입구 쪽으로 향했다.밖에 총소리가 멈추자 류청이 궁금해서 물었다.“도련님, 근데 왜 이번 계획은 저까지 속인 거예요?”“넌 나랑 가장 가까운 부하잖아. 네가 만약 내 계획을 알았다면 실제처럼 연기하지 못했을 거고 적의 눈도 속일 수 없었을 거야.”류청은 서운해 나지막이 투덜댔다.“그러니까, 적이 도련님에게 진짜 사고가 났다고 믿게 하려고 저와 사모님, 그리고 가족분들까지 속이신 거예요? 전부 도련님에게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백방으로 찾아다니고 가슴 졸이고 슬퍼하고 계셨다고요.”남하준이 피식 웃었다.“그래.”“근데 다리는 어쩌다 다치신 거예요?”“위치추적기를 체내에 숨겨뒀었어. 병원 검사를 피하려고 계속 꺼진 상태였지.”류청이 경악했다.“그래서 직접 살을 베어 위치 추적기를 작동시키신 거예요?”남하준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더니 감탄하며 말했다.“마취 없이 아파 죽는 줄 알았어. 수건을 어찌나 깨물었는지 이가 다 부서지는 줄.”류청이 그 장면을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도련님, 앞으로 이렇게 위험하고 어려운 임무는 저에게 맡기세요. 전 절대 정호처럼 도련님 배신하지 않아요.”“난 너 의심한 적 없어.”“감사합니다.”남하준은 방을 나와 헬기를 타고 병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안성 병원으로 향했고 류청은 엘리트 부대를 데리고 남아서 계속 범인을 수색했다.헬기는 무인도를 넘어 광활한 바다 위를 날았다.M국의 영토가 아닌 외딴 섬을 보고 있자니 남하준은 마음이 무거워졌다.장인어른과 장모는 구출했지만 백인호의 손에 든 카드가 점점 거대해지고 있었다. 그는 지금 정통 어르신의 사위였으니 정통 어르신의 이미지와 지위에 영향을
정안은 아버지에게 할머니 이야기를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녀는 울음을 그치고 눈물을 닦으며 부모의 품을 떠나 화제를 돌렸다. “아빠, 엄마, 어떻게 나왔어요?”“하준이가 우리를 구했어. 남하준을 알아?”정안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고 방금 멈춘 눈물이 또 왈칵 쏟아졌다.남하준은 그녀의 남편인데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딸, 너 하준이와 결혼했어?”서윤아가 묻자 정안이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백정우와 서윤아는 기쁨에 겨워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며 눈물을 글썽였다.“어쩐지 우리를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부르더라니!”“참 잘했어. 하준이와 결혼하다니!”서윤아는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정안은 여전히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밖을 내다보고 또 옆에 서 있는 부하들을 보고 다시 부모님을 보며 긴장해서 물었다.“근데 하준 오빠는 안 돌아왔어요?”정안은 순간 부모님만 왔을까 봐 당황했다.“우리더러 먼저 헬기 타고 오라고 하고 하준이는 아직 섬에 있어.”서윤아가 말하자 정안이 의문스러워 물었다.“섬에요?”그러자 백정우가 대답했다.“그래.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계속 외딴 섬에 갇혀 있었어. 하준이 병사들이 아주 많이 갔으니까 하준이 걱정 마.”“하지만 하준이가 좀 다쳤어.”백정우가 탄식하더니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남하준의 부상 소식을 들은 정안은 걱정으로 얼굴이 창백해졌고 급히 도우미를 불러 부모님과 어린 동생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쉬게 했다.백정우는 여전히 어머니를 찾아다녔다.도우미에게 물었지만 도우미가 대답하지 않자 백정우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백진에게 거듭 캐물어 어머니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50대 중반의 중년 남자는 방에서 눈물범벅이 된 채 엉엉 울기 시작했다.이렇게 오랫동안 갇혀 있었지만 백정우와 서윤아는 배후의 인물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백진이 백인호라고 알려줬을 때 그는 전혀 믿기지 않았다.백인호는 지난 몇 년간 그들 앞에 나타난 적이 없었고 또 백인호를 친 형제처
남태준의 말에 남하준은 속으로 걱정되었지만 짐짓 덤덤한 척 웃었다.“하하. 완자 성격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빨리 알려줘. 집에서 너 돌아오기만 기다리면서 얼마나 불안하고 걱정되겠어?”“응. 이따가 전화해야지.”남태준이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남하준은 그의 침울한 표정을 보며 물었다.“형, 눈도 안 보이면서 전화해서 안부만 물으면 되지 왜 여기까지 직접 찾아왔어? 혹시 나한테 할 말 있어?”남태준이 의자 등받이에 기대자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확실히 너에게 부탁이 있긴 해.”“뭔데. 말해봐.”“만약 백인호를 잡으면 죽이지 말아줄래?”남하준은 움찔 놀랐고 얼굴에는 의혹스러움이 가득했다.“형, 그게 지금 무슨 말이야?”“백인호가 죽을 죄를 지었다는 거 잘 알아. 하지만 생포해서 잠시만 붙잡아두면 안 될까? 나 뇌수술 받고 싶어.”남하준이 경악하더니 엄숙하게 말했다.“그건 절대 안 돼. 아주 위험하고 악랄한 인물이야. 형 머리를 맡기는 건 목숨을 내놓는 거나 마찬가지라고.”남태준이 엷게 웃더니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만약 네 머리를 맡기면 인호는 주저하지 않고 너 죽이겠지만 나는 해치지 않을 거야.”“만약 형을 해친다면?”“그럼 운명을 받아들여야지.”남하준은 그의 모험을 허락할 수 없었다.백인호는 보기 드문 뇌 외과 의사이고 조예가 깊지만 그런 인물은 너무 위험했다.그에게 수술을 청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노릇이고 또 그의 조건을 들어줘야 할 것이다.남하준이 극구 반대했다.“형, 그건 절대 안 돼. 형 일상생활이 불편한 건 알겠어. 근데 그건 도우미 구하면 사는 데 크게 문제 될 것 없잖아. 만약 백인호에게 머리를 맡긴다면 그 인간 손에 형 목숨을 쥐여주는 거나 마찬가지야.”남태준이 흔들림 없이 말했다.“하준아, 형이 언제 너한테 부탁한 적 있어? 나에게 눈은 아주 중요해. 이렇게 도박할 만큼.”“형은 지금 목숨을 걸고 도박하는 거야. 그리고 워낙 수술 난이도가 높아서 꼭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어.”“알아.”“
남하준은 남태준의 마음을 이해했다.만약 남하준이었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한 번쯤 모험했을 거다.남태준은 깊은 한숨 소리만 들렸고 한참 후 물었다.“하준아, 너 도와줄 수 있지?”“최선을 다해 볼게.남하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부드럽게 말했다. “난 그래도 형이 다시 잘 생각해봤으면 해. 가뜩이나 위험한 수술을 백인호에게 맡기는 건 리스크가 너무 커. 그때 가서 백인호가 제기한 무리한 요구를 우리가 만족시킬 수 없다면 형 수술 해주지 않을 거야.”“넌 목숨만 살려둬.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남하준이 덤덤하게 대답했다.“그래.”“고마워 하준아.”“우리 사이에 고맙다니.”“네가 인호를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많지 않거든.”남하준이 고개를 돌려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지우는 계속 맞선 보고 있어. 좋은 남자 만나면 바로 결혼할 거야.”남하준은 그제야 반응하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지우 씨가 계속 맞선을 본다는 건 형에게 아무런 마음이 없다는 거잖아? 형이 그렇게까지 위험을 감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남태준은 고개를 숙이고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하지 않았다.“형은 지우 씨가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도 없잖아. 근데 형 스타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내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남자야?”남태준이 되묻자 남하준이 멋쩍게 웃었다.“그런 뜻이 아니라 감정에는 외모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그럼 넌 지우가 예쁘다고 생각해?”“완자보단 안 예쁘지.”“하필 비교해도 참. 네 눈에 완자보다 예쁜 여자가 세상에 존재하긴 해?”남하준도 동의하며 웃을 뿐 말하지 않았다.“지우가 예뻐, 아니면 유미가 예뻐?”남하준은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비교했다.“그 두 사람을 비교한다면 난 지우 씨가 더 예쁜 것 같고 유미는 더 성숙한 분위기지.”“유미도 이미 충분히 예쁜데. 그러니까 지우가 유미보다 예쁘다, 그거지?”“아마도? 난 유미가 어디가 예쁜지 잘 모르겠어.”유미
정안이 다가가 남태준의 손을 부축했다.“오빠 내가 데려다줄게요.”남하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손을 뻗어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또 말하기 미안했다.허공에 손을 내놓고 입을 벌렸다가 마지못해 내려놓았다.남태준은 정안의 부축을 받으며 병원에서 나왔고 운전기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완자야. 돌아가. 하준이 기다려.”정안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중얼거렸다.“저 사람 나 보고 싶어 하지 않아요. 내가 류 비서 협박해서 여기 있는 거 알아내지 않았다면 아마 나 계속 속였을 거예요.”“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하준이가 왜 너 안 보고 싶어 해? 아마 미치도록 보고 싶어 할걸? 다만 하준이가 다친 모습을 네게 보여주고 싶지 않을 뿐이야.”정안이 입술을 오므리고 남태준을 차에 태웠다.차에 올라탄 남태준이 급히 설명했다.“완자야, 유미 얘기는 내가 먼저 꺼냈어. 하준이 탓하지 말고 질투하지도 마.”역시 형제애가 남달랐다.“알겠어요. 잘 가요.”정안은 말을 마치고 문을 닫았고 차량이 떠난 후, 그녀는 뒤돌아 병원으로 돌아왔다.그녀가 엘리베이터에서 막 나오자마자 남하준이 긴 복도에 서서 난간을 잡고 고개를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긴장한 기색으로 그녀의 모습을 찾고 있는 것을 보았다.“왜 나왔어요?”정안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남하준은 소리를 듣고 정안을 뒤돌아보더니 다친 다리를 돌볼 겨를도 없이 절룩거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마음이 급해진 정안은 달려가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남자는 그녀를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남하준은 허리를 굽혀 그녀의 목에 얼굴을 묻고, 그녀의 몸을 꼭 껴안고, 뜨겁고 가쁜 숨을 그녀의 피부에 내쉬었다.그는 심장이 출렁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완아... 완아...”정안은 원래 마음속에 약간의 원한이 있었지만 남자의 품에서 그의 온도를 느끼는 순간, 흥분과 기쁨 외에 다른 감정은 전부 사라졌다.눈이 걷잡을 수 없이 흠뻑 젖었다.지금 그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
정안은 남하준이 안도록 내버려 두었고 눈을 감고 그에게 기댄 채 마음은 여전히 설렜다.그의 체온, 그의 호흡, 그의 심장 박동이 이렇게도 행복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정안이 행복한 포옹에 빠져 있을 때 남하준이 그녀의 턱을 살짝 걷어 올렸다.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입술이 따뜻하고 부드럽고 촉촉한 남자의 입술에 의해 뒤덮였고 이내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진한 키스가 이어졌다.그녀는 미간을 젖히고 남하준의 가슴에 두 손을 바짝 대고 그를 밀어내려고 몇 번 발버둥을 쳤다.하지만 남하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허리 뒤로 꺾어 그녀의 손을 고정한 후, 오랫동안 갈망한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음음.”정안이 고개를 가로젓자 남하준이 아쉬운 듯 입술을 떼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정안은 키스로 인해 촉촉해진 입술을 오므리고 수줍어하며 말했다.“여긴 병원이에요. 간호사들이 자주 드나들 텐데. 이러지 말아요.”남하준이 피식 웃더니 눈동자가 더욱 뜨거워져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허스키하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잠깐 키스하는 건 괜찮아.”“방금 급해 하지 말라고 하던 사람이 누군데?”정안이 일부러 비꼬자 남하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의 입술에 빨리 키스했다.“다르단 말이야.”“비슷해요.”남하준은 그녀의 뒤통수를 잡아 그녀의 머리를 고정하고 뜨거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노려보며 속삭였다.“나 키스하고 싶어. 아주 잠깐만. 응?”정안은 얼굴을 홱 돌리고 그의 입술을 피했다.“싫어요. 여긴 불편하니까 집에 돌아가서 얘기해요.”남하준이 손을 뻗어 침대 커튼을 쳤다.“이러면 되지?”“안 돼요.”“1분만.”“싫어요.”“30초만.”“싫어요.”“그럼 2초.”“싫!어!”“완아...”남하준은 무기력하게 말했고 가라앉은 얼굴에 서운한 기색이 역력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정안은 슬쩍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그가 서운하고 갈망하는 모습을 보니 더 이상 그를 놀리고 싶지 않았다.어쩌면 남태준의 말처럼
지우는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병원에 병 보러 오지 왜 왔겠어? 갑자기 왜 태준 씨를 물어?”임다희는 지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재차 확인했다.“태준이가 당신 안 찾았어?”“아니.”지우가 고개를 젓자 임다희는 가볍게 웃었다.“그쪽이 아니라면 대체 누굴 찾아갔을까?”“그게 무슨 말이야?”지우가 일부러 이해가 안 가는 척 묻자 임다희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두 사람 재결합한 거 맞지?”지우는 침묵했다.임다희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조롱했다.“거짓말할 필요 없어. 두 사람 다시 만나는 거 아니까. 태준이가 당신을 찾지 않은 건 아마 약효가 너무 강해 당신 같은 여린 몸을 망쳐도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으니 다른 여자를 찾아 해결했나 보네.”“약효가 너무 세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지우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며 그녀를 만족시켜줬다.임다희는 속이 편안해지며 여유롭게 말했다.“그건 당신이 알 바 아니고. 이 시간에 당신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와 침대에서 뒹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지우의 안색이 확 가라앉았다.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고 눈앞의 이 악랄한 여자를 갈기갈기 찢고 싶었다.남태준을 그렇게 괴롭게 만들고 무슨 염치로 지금 까불고 있을까?만약 남태준이 그녀가 임다희와 정면충돌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면 지우는 절대 임다희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남태준의 뜻에 따라 얌전하고 철든 여자친구가 되어야 했다.지우는 괴로운 척 연기하며 겨우 눈물 한 방울을 짜냈다.임다희는 그녀의 괴로운 모습을 보고 마음속의 분한 감정을 잠재우고는 실소를 터뜨렸다.“이게 당신들 사랑이야? 하하. 우습네!”그녀의 비아냥거림과 함께 차 문이 닫히고 차량이 서서히 빠져나갔다.지우는 마음을 가다듬은 뒤 택시를 잡아타고 난 뒤에도 여전히 남태준을 걱정했다. 그의 옷이 흠뻑 젖어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지우는 기사에게 주소를 말하고는 남태준의 집에 가서 깨끗한 옷 몇 벌을 챙기려 했다.
잠시 후 한 남자 의사가 들어와 남태준이 평온하게 쉬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효과가 조금은 있네요.”말을 마친 그는 남태준의 아랫도리를 보더니 한마디 보탰다.“하지만 효과가 만족스럽지는 않네요. 휴. 환자분 물 많이 주시고 약효가 천천히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의사는 자리를 떠났고 지우는 급히 미지근한 물을 붓고 남태준의 아랫배를 슬쩍 쳐다봤다.병원의 이불이 너무 얇은 편도 아니었는데 남태준의 아랫배가 여전히 부풀어 올랐다.지우는 속으로 욕했다.‘늑대 같은 임다희! 빌어먹을!’“태준 씨. 물 좀 마셔요.”지우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남태준이 흐릿한 검은 눈동자를 뜨고 몸을 지탱하며 일어나자 지우가 서둘러 그의 등을 부축해 주었다.“아직도 힘들어요?”지우가 관심하며 묻자 남태준은 대답하지 않고 물을 마시고 다시 누워 눈을 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나 이제 괜찮으니까 너 집에 가서 쉬어.”“싫어요. 여기 있을래요.”남태준은 눈을 감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돌아가라고.”“혹시 무슨 일 생겼는데 옆에 돌봐줄 사람 없으면 어떡해요?”“여기 의사도 있고 간호사도 있으니까 나 괜찮아.”“그래도 난 여기 있고 싶다고요.”남태준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흐릿한 검은 눈동자를 천천히 뜨고 뜨거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몸 안의 불은 꺼졌지만 탄소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어. 넌 탄소 더미 옆의 디젤과 같아서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고.”“비유를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남태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지우는 그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녀가 여기 머무르는 게 어쩌면 그의 안정과 회복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좋아요. 나 먼저 갈 테니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 줘요.”“그래.”지우는 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1층 로비에서 매니저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약을 받는 임다희를 만났다.지우는 재빨리 기둥 뒤에 숨었다. 보아하니 그녀는 허리와 다리를 다친
지우는 문득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시골 옆집에서 종돈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매번 거래가 있을 때면 이웃 할아버지는 종돈에게 독한 약을 먹였고 약을 먹은 종돈은 열 몇 마리의 암퇘지와 교배를 했다.그녀는 그 장면을 본 적은 없지만 처절하고 끔찍한 돼지 울음소리는 그녀 어린 시절의 악몽이었다.정신이 번쩍 든 지우는 두말없이 펑 하고 문을 닫았다.갑작스레 문을 닫는 모습과 지우의 창백한 얼굴, 당황하는 모습에 남태준은 피식 웃었다.지우는 부랴부랴 택시를 잡았고 15분 후, 남태준은 지우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응급실에 가서 의사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의사가 남태준 옆에 있는 지우를 가리키며 물었다.“환자분 여자친구예요?”남태준이 다급하게 말했다.“여동생이에요.”지우는 마음이 뭉클했다. 남태준은 스스로 고통을 참을지언정 그녀가 고통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여자친구 있어요?”“없어요.”“내가 주소를 줄 테니 가서...”의사가 간단한 방법을 추천하려 하자 남태준이 엄숙하게 말했다.“나 경찰입니다.”의사는 말을 뚝 그치고 긴장된 듯 침을 삼키더니 웃어 보이며 애써 둘러댔다.“그러니까 제 말은 이런 경우 의사를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다는 거예요. 게다가 우리도 해독제가 없어요.”“진정제 놔주세요. 진정제가 안 되면 마취제라도...”“그런 약은 함부로 처방할 수 없고 일정한 수치에 도달해야 처방할 수 있어요. 환자분 같은 경우는...”의사는 난처해하더니 남태준의 차가운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그의 강한 카리스마에 겁을 먹고 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진정제 놓아드리겠지만 효과가 그리 좋지는 않을 거예요. 그저 괴로움을 조금 억제하는 정도예요.”“감사합니다.”남태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괴롭게 참아내느라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다른 약도 같이 처방해 드릴게요.”의사가 약을 처방하며 말했다.“여자친구도 없고 그런 서비스도 받기 싫다면 여동생분께 성인 가게에 가서 사달라고 하세요.”지우는 이렇게 난처한 적이 없었다.
지우가 만약 숫처녀라면 아마 고생할 것이다.남태준은 생각하다가 결국 휴대전화를 꺼내 구급차를 불러 의사를 찾아 해결할 생각이었다. 휴대전화를 찾아 다이얼을 돌리려던 순간, 조수석 문이 열리면서 지우가 다급하게 들어와 앉더니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태준 씨?”남태준은 움찔 놀랐다. 뜨거운 눈으로 지우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니 입이 바짝 마르고 욕망이 최고조에 달했다.지우는 남자가 머리와 몸이 흠뻑 젖어 숨도 약간 헐떡이는 것을 보고 몸을 기울여 그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타오를 듯한 고온에 지우는 화들짝 놀랐다.“태준 씨 열 나요. 내가 병원에 데려다줄게요.”남태준은 꾹 참으며 천천히 눈을 감고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운전할 줄 알아?”“아니요.”지우가 긴장하며 말했다.“방금 택시 타고 왔어요. 택시 타고 병원에 데려다줄게요.”택시?남태준은 자신이 통제 불능이 되어 택시에서 무슨 엉뚱한 짓을 할지 몰라 걱정했다.지우는 휴지를 뽑아 그의 볼과 목의 물기를 닦아 줬다.여자의 몸에서 나는 향기, 손바닥의 부드러움은 치명적인 유혹처럼 그를 걷잡을 수 없이 달려들고 싶게 만들었다.“지우야.”남태준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눈을 감고 감히 그녀를 쳐다보지도 못하며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말했다.“방금 다희를 만났어.”지우는 땀을 닦는 동작을 멈추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티 나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그리고요?”“그리고 이렇게 됐어. 너무 괴롭고 답답해 죽을 것 같아.”남태준은 침을 삼키고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지우의 시선은 그의 고통스러운 안색에서 내려와 그의 가슴팍을 보니 기복이 아주 심했고 더 아래로 내려가니 운전석에 앉아도 선명하게 드러날 정도로 무섭게 부풀어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임다희가 약을 먹였어요?”지우는 분해서 주먹을 불끈 쥐고 어쩔 줄 몰랐다.그러자 남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어떡해요?”지우는 부랴부랴 고개를 내밀어 근처에 호텔이 있는지 살폈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그건 지난번에 이미 설명했잖아.”“그 사람 내가 만나야겠어. 주소와 연락처 줘.”“없어.”임다희는 냉정한 얼굴로 어금니를 깨물며 악에 받쳐 말했다.“내가 그렇게 큰 단서를 줘서 네가 공을 세웠는데 넌 내게 조금의 감사함도 없이 이런 태도로 날 심문해?”“네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내가 너 경찰서로 데려가 어떻게 해서 그 단서를 얻었는지 조사할 거야. 너 절대 쉽게 못 벗어나.”임다희는 피식 웃더니 심호흡을 하고 중얼거렸다.“정말 어이가 없어.”남태준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그 술을 마신 후 몸이 따뜻해짐을 느꼈다.알코올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따뜻함이 점차 뜨거움으로 번지고 일부 기능은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해지며 의식이 약간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는 예리한 눈빛으로 컵을 보더니 와인을 바라보았다.컵은 닦았으니 틀림없이 문제가 없을 것이고 문제는 아마 개봉하지 않은 것 같은 와인에 있을 것이다그가 방심했다.남태준은 더 이상 임다희를 캐묻지 않고 벌떡 일어나 두말없이 성큼성큼 돌아서서 가버렸다.“태준아!”임다희가 급히 뒤쫓아가 남태준을 뒤에서 덥석 끌어안고 두 손을 놓지 않았다.“가지 마. 태준아. 사랑해.”임다희는 와인에 매우 강한 약을 넣었다. 소 열 마리라도 이 약효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그녀는 남태준의 경계하고 신중한 성격을 알고 일부러 와인에 약을 넣은 다음 개봉하지 않은 것처럼 포장하여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했다.“이거 놔.”남태준은 화를 꾹 참고 나지막이 명령했지만 임다희는 한사코 놓지 않았다.그의 몸을 더 꽉 껴안고 자기 몸을 그의 몸에 문지르며 그를 통제 불능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남태준의 눈빛이 가라앉더니 임다희의 손목을 힘껏 잡아당겨 어깨너머로 세게 넘어뜨렸다.펑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임다희의 괴로운 울부짖음 소리가 들렸다. 고통스럽게 땅바닥에 뒹굴며 잔뜩 일그러진 얼굴은 초라했다.“내일 다시 봐.”남태준은 매섭게 말하고는 방에서 사라졌다.그는 걸으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
며칠 후.남태준은 임다희가 제공한 단서에 따라 미리 깊은 산에 잠복해 마약 밀매업자들을 잡았고 몇 킬로그램의 물품도 압수했다.모두가 기뻐하고 공적을 세운 것을 감격스러워하며 축하하고 있을 때, 남태준만 걱정이 가득했다.그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임다희가 이렇게 정확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는 건 분명 그녀의 신분이 간단하지 않다는 뜻이다.이 사건은 곧 경찰에 의해 발표되었고 공식 웹사이트는 물론 뉴스에도 게재되었다.뉴스를 본 임다희가 남태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태준아. 네가 마약상을 잡고 물건까지 손에 넣은 건 내 공도 있지 않아? 나 밥 한 끼 사줘야 하는 거 아니야?]남태준은 그녀의 입에서 단서를 더 찾고 싶어 그녀의 요구를 승낙했다.저녁, 퇴근 후 남태준은 임다희가 준 장소로 차를 몰고 갔다.장소에 도착해서야 개인 클럽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곳은 VIP 예약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준 초대 코드로 그 클럽에 들어갔다.긴 복도를 지나 웨이터가 룸의 문을 열었다.남태준이 들어가서 보니 범상치 않은 방이었다. 커다란 방에는 침대, 소파, 식탁, 옷장에 화장실까지 있었다.식탁에서 임다희는 섹시하고 우아한 튜브톱 스커트를 입고 요염하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식탁 위에 촛불을 켜 놓은 저녁 식사는 매우 낭만적이었다.“태준아 왔어?”임다희는 일어나서 활짝 웃으며 말했다.“어서 앉아.”남태준은 조금 경계하며 천천히 걸어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앞에 있는 양식을 보고 옆에 있는 몇 병의 술을 보며 말했다.“오늘 식사를 위해 준비를 많이 한 모양이야.”“마음에 들어?”임다희가 웃으며 묻자 남태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아니. 싫어.”임다희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남태준은 의자 등받이에 나른하게 기대어 덤덤하게 말했다.“네가 준 정보 아주 정확하더라. 고마워. 만약 필요하다면 경찰서에 와서 상금 받아 가.”임다희는 어이없이 웃으며 옆에 이미 열린 술을 들고 남태준에게
“네?”지우가 멍하니 아직 반응하지 못했을 때 남태준이 바로 키스를 했다.남자의 패기 넘치고 강한 딥키스에 지우는 어질어질하고 온몸이 나른하고 힘이 없었으며 그의 부드럽고 끈적거리는 몸 아래에서 넋을 잃었다.함께 있는 시간은 늘 뜨겁고 끈적끈적했으며 아늑하고 행복했다.진한 키스를 나눈 후, 지우는 몸이 나른하고 숨이 가빠졌지만 남태준은 오히려 더욱 에너지가 넘치고 심지어 욕망이 자극되어 발산되지 않으니 더욱 흥분했다.그는 지우를 거실에 남겨두고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방으로 달려가 목욕을 했다.다시 나왔을 때 지우는 거실에서 소설을 쓰고 있었다.남태준은 살금살금 다가가서 그녀 옆에 앉아 그녀의 컴퓨터 내용을 들여다봤다.그러자 지우는 노트북을 덥석 덮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시간이 늦었어요. 집에 가야겠어요.”남태준이 고개를 들어 시간을 보니 저녁 9시가 넘었다.그는 지우를 떠나보내기 아쉬워하며 그녀가 더 오래 머물기를 바랐다.“열 시에 가.”남태준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조용히 달랬다.“열 시에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지우는 고개를 흔들었다.남태준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가 항상 그녀에게 키스해 그가 욕망을 억누를 수 없을까 봐 조금 두려웠다.그가 매번 자신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또 고통스럽게 억누르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그런 남자를 보며 지우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아니요. 지금 가야겠어요. 너무 늦으면 안 돼요.”남태준은 그녀의 머리를 잡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래.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게.”지우는 즉시 물건을 챙기고 가방을 든 뒤 남태준의 따뜻한 손을 잡았다.“가요.”남태준은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좀 서운했다.지우는 정말 그와 더 있고 싶지 않은 걸까?그녀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가슴이 미어졌다.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승용차는 마당에서 천천히 빠져나가 도로로 들어가 쏜살같이 달려갔다.길가에는 오랫동안 주차된 승합차 한 대가 줄곧
적어도 지우가 그를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증명해주니 말이다.남태준은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다희는 언제나 자신이 훌륭하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사람이야. 자기가 원하는 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대가를 치러서라도 손에 넣으려 하지.”지우가 감탄하며 말했다.“그 여자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네요.”남태준이 거침없이 말했다.“그래도 한 때 만났던 사이니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그럼 태준 씨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지우가 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다시 만나고 싶어요?”남태준이 화를 억누르고 물었다.“나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묻는 거야?”“그럼 아까 왜 그렇게 긴장하며 끌고 나갔어요. 그건...”남태준의 바로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그건 네가 우리 집에 있는 거 들키기 싫어서지. 지성이가 이미 육건우에게 한 방 먹었는데 아직도 모르겠어?”지우는 순간 그의 뜻을 알아챘다.전에 남태준은 임다희가 아직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몰라서 대범하게 지우를 소개해줬었다.하지만 지금은 임다희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걸 알았으니 지우를 보호하기 위해 이 연애를 잘 숨겨야 했다. 아니면 임다희가 또 무슨 수단을 써서 두 사람을 이간질할지 모른다.마음이 따뜻해진 지우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우리 남 대장님도 무서울 때가 있었네요?”남태준은 그녀의 말에 화가 나서 손을 뻗어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지우가 날쌔게 손을 피했다.“지우야. 이리 와.”남태준이 화난 척 말했지만 지우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싫은데요?”남태준이 몸을 기울이고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으려 하자 지우가 그의 손을 뿌리치고 식탁을 나섰다.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아직 밥 다 안 먹었는데 어디 가?”“안 먹을래요.”지우는 방긋 웃으며 남태준의 행동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가 자신을 잡고 혼내주려 하는 것 같았다.남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지우는 급하게 돌아서서 거실로 뛰어갔다.“이리 오라고.”남태준이 부드러운 명
“그래 그럼.”남태준은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 아무리 쓸쓸하고 힘들어도 그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었다.지우가 그의 곁에 있는 한 그는 반드시 그녀의 마음, 그녀의 사랑, 그녀의 모든 것을 기다릴 수 있었다.그때, 입구의 벨이 울렸다.지우는 궁금한 얼굴로 남태준을 보았고 남태준도 입구를 보았다.“이 시간에 누구죠?”지우가 묻자 남태준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아마 신우일 거야.”“먼저 먹고 있어.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볼게.”말하면서 그는 거실로 나와 문을 열었다.순간 남태준의 안색이 일그러졌다.바로 임다희였다.방금 차에서 내린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지만 이대로 남태준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다시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찾아왔다.“태준아 난...”남태준은 바로 나가서 문을 닫고 임다희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집에 지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두 사람이 재결합했다는 것을 임다희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임다희가 알면 지우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고 불필요한 문제만 일으킬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그의 집에 있다는 것을, 임다희가 지우와 재결합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여긴 왜 왔어?”남태준은 불쾌한 듯 묻더니 그녀의 팔을 끌고 마당으로 향했다.임다희는 남태준의 언짢음과 난폭함을 느끼고 말했다.“너랑 다시 잘 얘기하려고 찾아왔어. 방금 너 쓰레기라고 욕한 거 사과할게. 너무 슬퍼서 홧김에 내뱉은 말이지 진심이 아니었어.”“나 쓰레기 맞아.”남태준은 그녀를 마당 밖으로 끌고 나가 철제 난간을 나와 철문을 걸어 잠그고 마당 바깥 입구에 서 있었다.“우리 친구는 될 수 있지만 연인으로는 얘기가 이미 끝났어.”“우리 앉아서 얘기 좀 해. 우리 다시 시작하자.”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의 덤덤한 눈을 올려다보며 울먹였다.“나 많이 변했어. 더 이상 이전의 임다희가 아니라고. 나 너를 많이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남태준은 몇 초 동안 어이없어 하더니 엄숙하게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