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서서히 깊은 잠에 빠졌고 새벽 5시가 되었다.날이 아직 어둑하고 안개가 짙었다.갑자기 윙윙거리는 큰 소리가 하늘을 빙빙 돌았다.서윤아가 먼저 놀라 깨더니 즉시 백정우를 흔들어 깨웠다.“여보. 여보. 빨리 일어나봐.”백정우가 벌떡 일어나 앉더니 긴장해서 물었다.“왜 그래?”“소리 좀 들어봐.”백정우가 정신을 차리고 소리를 듣더니 곧바로 흥분하여 이불을 젖히고 창가로 가서 철제 난간에 엎드려 하늘을 바라보았다.하늘이 희끗희끗해지기 시작하고 하늘에는 헬기 몇 대가 빙빙 돌고 있었다.헬기 안에서 검은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줄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그때 지붕에서도 희미하게 점프하는 소리가 들렸다.백정우는 감격에 겨워 침대로 달려가 한 손으로 아들을 안은 뒤 한 손으로 서윤아를 끌어안고 흥분에 겨워 말했다.“여보! 왔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왔어!”“누가 왔는데?”서윤아는 백정우의 품에 안겨 떨리고 설렜다.“누군지는 몰라. 헬기가 많이 왔고 그 헬기에서 총을 들고 건장한 특수부대원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내렸어.”두 사람은 부둥켜안고 남하준의 말을 되새기며 감히 이 방을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이윽고 총소리가 요란했다.백정우는 놀라서 아들의 귀를 막았다.연거푸 총소리가 나더니 총알이 철문에 부딪혀 큰 소리를 냈다.순간, 철문이 깨지고 류청이 권총을 들고 무장한 병사들을 데리고 돌진해 들어왔다.거실에서 남하준은 앞에 반쯤 마신 물 한잔을 놓고 차분하고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류청이 남하준을 보더니 흥분에 차서 말했다.“도련님!”“왔어?”남하준이 한없이 담담하게 이 말을 하는 순간, 지난 한 달의 노력이 값지게 느껴졌다.“죄송합니다. 도련님. 제가 늦어서 도련님이 고생하셨어요.”남하준이 그를 보며 흐뭇해했다.“아니야. 제때 왔으니 사과할 필요 없어.”“가시죠. 도련님.”류청이 말하자 남하준이 다른 방을 가리켰다.“내 장인어른, 장모님과 처남이 저 안에 있어. 놀라시지 않도록 조심해
“요 며칠 그룹에 돌아가 일하고 있었는데 마침 위성 감시 데이터 부서 직원이 도련님 위치를 추적했다면서 즉시 군대와 헬기를 출동시켜 구조하러 온다는 거 듣고 따라 왔어요.”남하준이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일어나 손을 뻗어 류청에게 걸쳤다. “나 좀 부축해 줘.”류청이 남하준을 부축해 천천히 입구 쪽으로 향했다.밖에 총소리가 멈추자 류청이 궁금해서 물었다.“도련님, 근데 왜 이번 계획은 저까지 속인 거예요?”“넌 나랑 가장 가까운 부하잖아. 네가 만약 내 계획을 알았다면 실제처럼 연기하지 못했을 거고 적의 눈도 속일 수 없었을 거야.”류청은 서운해 나지막이 투덜댔다.“그러니까, 적이 도련님에게 진짜 사고가 났다고 믿게 하려고 저와 사모님, 그리고 가족분들까지 속이신 거예요? 전부 도련님에게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백방으로 찾아다니고 가슴 졸이고 슬퍼하고 계셨다고요.”남하준이 피식 웃었다.“그래.”“근데 다리는 어쩌다 다치신 거예요?”“위치추적기를 체내에 숨겨뒀었어. 병원 검사를 피하려고 계속 꺼진 상태였지.”류청이 경악했다.“그래서 직접 살을 베어 위치 추적기를 작동시키신 거예요?”남하준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더니 감탄하며 말했다.“마취 없이 아파 죽는 줄 알았어. 수건을 어찌나 깨물었는지 이가 다 부서지는 줄.”류청이 그 장면을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도련님, 앞으로 이렇게 위험하고 어려운 임무는 저에게 맡기세요. 전 절대 정호처럼 도련님 배신하지 않아요.”“난 너 의심한 적 없어.”“감사합니다.”남하준은 방을 나와 헬기를 타고 병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안성 병원으로 향했고 류청은 엘리트 부대를 데리고 남아서 계속 범인을 수색했다.헬기는 무인도를 넘어 광활한 바다 위를 날았다.M국의 영토가 아닌 외딴 섬을 보고 있자니 남하준은 마음이 무거워졌다.장인어른과 장모는 구출했지만 백인호의 손에 든 카드가 점점 거대해지고 있었다. 그는 지금 정통 어르신의 사위였으니 정통 어르신의 이미지와 지위에 영향을
정안은 아버지에게 할머니 이야기를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녀는 울음을 그치고 눈물을 닦으며 부모의 품을 떠나 화제를 돌렸다. “아빠, 엄마, 어떻게 나왔어요?”“하준이가 우리를 구했어. 남하준을 알아?”정안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고 방금 멈춘 눈물이 또 왈칵 쏟아졌다.남하준은 그녀의 남편인데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딸, 너 하준이와 결혼했어?”서윤아가 묻자 정안이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백정우와 서윤아는 기쁨에 겨워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며 눈물을 글썽였다.“어쩐지 우리를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부르더라니!”“참 잘했어. 하준이와 결혼하다니!”서윤아는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정안은 여전히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밖을 내다보고 또 옆에 서 있는 부하들을 보고 다시 부모님을 보며 긴장해서 물었다.“근데 하준 오빠는 안 돌아왔어요?”정안은 순간 부모님만 왔을까 봐 당황했다.“우리더러 먼저 헬기 타고 오라고 하고 하준이는 아직 섬에 있어.”서윤아가 말하자 정안이 의문스러워 물었다.“섬에요?”그러자 백정우가 대답했다.“그래.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계속 외딴 섬에 갇혀 있었어. 하준이 병사들이 아주 많이 갔으니까 하준이 걱정 마.”“하지만 하준이가 좀 다쳤어.”백정우가 탄식하더니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남하준의 부상 소식을 들은 정안은 걱정으로 얼굴이 창백해졌고 급히 도우미를 불러 부모님과 어린 동생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쉬게 했다.백정우는 여전히 어머니를 찾아다녔다.도우미에게 물었지만 도우미가 대답하지 않자 백정우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백진에게 거듭 캐물어 어머니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50대 중반의 중년 남자는 방에서 눈물범벅이 된 채 엉엉 울기 시작했다.이렇게 오랫동안 갇혀 있었지만 백정우와 서윤아는 배후의 인물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백진이 백인호라고 알려줬을 때 그는 전혀 믿기지 않았다.백인호는 지난 몇 년간 그들 앞에 나타난 적이 없었고 또 백인호를 친 형제처
남태준의 말에 남하준은 속으로 걱정되었지만 짐짓 덤덤한 척 웃었다.“하하. 완자 성격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빨리 알려줘. 집에서 너 돌아오기만 기다리면서 얼마나 불안하고 걱정되겠어?”“응. 이따가 전화해야지.”남태준이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남하준은 그의 침울한 표정을 보며 물었다.“형, 눈도 안 보이면서 전화해서 안부만 물으면 되지 왜 여기까지 직접 찾아왔어? 혹시 나한테 할 말 있어?”남태준이 의자 등받이에 기대자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확실히 너에게 부탁이 있긴 해.”“뭔데. 말해봐.”“만약 백인호를 잡으면 죽이지 말아줄래?”남하준은 움찔 놀랐고 얼굴에는 의혹스러움이 가득했다.“형, 그게 지금 무슨 말이야?”“백인호가 죽을 죄를 지었다는 거 잘 알아. 하지만 생포해서 잠시만 붙잡아두면 안 될까? 나 뇌수술 받고 싶어.”남하준이 경악하더니 엄숙하게 말했다.“그건 절대 안 돼. 아주 위험하고 악랄한 인물이야. 형 머리를 맡기는 건 목숨을 내놓는 거나 마찬가지라고.”남태준이 엷게 웃더니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만약 네 머리를 맡기면 인호는 주저하지 않고 너 죽이겠지만 나는 해치지 않을 거야.”“만약 형을 해친다면?”“그럼 운명을 받아들여야지.”남하준은 그의 모험을 허락할 수 없었다.백인호는 보기 드문 뇌 외과 의사이고 조예가 깊지만 그런 인물은 너무 위험했다.그에게 수술을 청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노릇이고 또 그의 조건을 들어줘야 할 것이다.남하준이 극구 반대했다.“형, 그건 절대 안 돼. 형 일상생활이 불편한 건 알겠어. 근데 그건 도우미 구하면 사는 데 크게 문제 될 것 없잖아. 만약 백인호에게 머리를 맡긴다면 그 인간 손에 형 목숨을 쥐여주는 거나 마찬가지야.”남태준이 흔들림 없이 말했다.“하준아, 형이 언제 너한테 부탁한 적 있어? 나에게 눈은 아주 중요해. 이렇게 도박할 만큼.”“형은 지금 목숨을 걸고 도박하는 거야. 그리고 워낙 수술 난이도가 높아서 꼭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어.”“알아.”“
남하준은 남태준의 마음을 이해했다.만약 남하준이었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한 번쯤 모험했을 거다.남태준은 깊은 한숨 소리만 들렸고 한참 후 물었다.“하준아, 너 도와줄 수 있지?”“최선을 다해 볼게.남하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부드럽게 말했다. “난 그래도 형이 다시 잘 생각해봤으면 해. 가뜩이나 위험한 수술을 백인호에게 맡기는 건 리스크가 너무 커. 그때 가서 백인호가 제기한 무리한 요구를 우리가 만족시킬 수 없다면 형 수술 해주지 않을 거야.”“넌 목숨만 살려둬.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남하준이 덤덤하게 대답했다.“그래.”“고마워 하준아.”“우리 사이에 고맙다니.”“네가 인호를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많지 않거든.”남하준이 고개를 돌려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지우는 계속 맞선 보고 있어. 좋은 남자 만나면 바로 결혼할 거야.”남하준은 그제야 반응하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지우 씨가 계속 맞선을 본다는 건 형에게 아무런 마음이 없다는 거잖아? 형이 그렇게까지 위험을 감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남태준은 고개를 숙이고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하지 않았다.“형은 지우 씨가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도 없잖아. 근데 형 스타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내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남자야?”남태준이 되묻자 남하준이 멋쩍게 웃었다.“그런 뜻이 아니라 감정에는 외모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그럼 넌 지우가 예쁘다고 생각해?”“완자보단 안 예쁘지.”“하필 비교해도 참. 네 눈에 완자보다 예쁜 여자가 세상에 존재하긴 해?”남하준도 동의하며 웃을 뿐 말하지 않았다.“지우가 예뻐, 아니면 유미가 예뻐?”남하준은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비교했다.“그 두 사람을 비교한다면 난 지우 씨가 더 예쁜 것 같고 유미는 더 성숙한 분위기지.”“유미도 이미 충분히 예쁜데. 그러니까 지우가 유미보다 예쁘다, 그거지?”“아마도? 난 유미가 어디가 예쁜지 잘 모르겠어.”유미
정안이 다가가 남태준의 손을 부축했다.“오빠 내가 데려다줄게요.”남하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손을 뻗어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또 말하기 미안했다.허공에 손을 내놓고 입을 벌렸다가 마지못해 내려놓았다.남태준은 정안의 부축을 받으며 병원에서 나왔고 운전기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완자야. 돌아가. 하준이 기다려.”정안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중얼거렸다.“저 사람 나 보고 싶어 하지 않아요. 내가 류 비서 협박해서 여기 있는 거 알아내지 않았다면 아마 나 계속 속였을 거예요.”“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하준이가 왜 너 안 보고 싶어 해? 아마 미치도록 보고 싶어 할걸? 다만 하준이가 다친 모습을 네게 보여주고 싶지 않을 뿐이야.”정안이 입술을 오므리고 남태준을 차에 태웠다.차에 올라탄 남태준이 급히 설명했다.“완자야, 유미 얘기는 내가 먼저 꺼냈어. 하준이 탓하지 말고 질투하지도 마.”역시 형제애가 남달랐다.“알겠어요. 잘 가요.”정안은 말을 마치고 문을 닫았고 차량이 떠난 후, 그녀는 뒤돌아 병원으로 돌아왔다.그녀가 엘리베이터에서 막 나오자마자 남하준이 긴 복도에 서서 난간을 잡고 고개를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긴장한 기색으로 그녀의 모습을 찾고 있는 것을 보았다.“왜 나왔어요?”정안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남하준은 소리를 듣고 정안을 뒤돌아보더니 다친 다리를 돌볼 겨를도 없이 절룩거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마음이 급해진 정안은 달려가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남자는 그녀를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남하준은 허리를 굽혀 그녀의 목에 얼굴을 묻고, 그녀의 몸을 꼭 껴안고, 뜨겁고 가쁜 숨을 그녀의 피부에 내쉬었다.그는 심장이 출렁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완아... 완아...”정안은 원래 마음속에 약간의 원한이 있었지만 남자의 품에서 그의 온도를 느끼는 순간, 흥분과 기쁨 외에 다른 감정은 전부 사라졌다.눈이 걷잡을 수 없이 흠뻑 젖었다.지금 그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
정안은 남하준이 안도록 내버려 두었고 눈을 감고 그에게 기댄 채 마음은 여전히 설렜다.그의 체온, 그의 호흡, 그의 심장 박동이 이렇게도 행복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정안이 행복한 포옹에 빠져 있을 때 남하준이 그녀의 턱을 살짝 걷어 올렸다.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입술이 따뜻하고 부드럽고 촉촉한 남자의 입술에 의해 뒤덮였고 이내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진한 키스가 이어졌다.그녀는 미간을 젖히고 남하준의 가슴에 두 손을 바짝 대고 그를 밀어내려고 몇 번 발버둥을 쳤다.하지만 남하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허리 뒤로 꺾어 그녀의 손을 고정한 후, 오랫동안 갈망한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음음.”정안이 고개를 가로젓자 남하준이 아쉬운 듯 입술을 떼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정안은 키스로 인해 촉촉해진 입술을 오므리고 수줍어하며 말했다.“여긴 병원이에요. 간호사들이 자주 드나들 텐데. 이러지 말아요.”남하준이 피식 웃더니 눈동자가 더욱 뜨거워져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허스키하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잠깐 키스하는 건 괜찮아.”“방금 급해 하지 말라고 하던 사람이 누군데?”정안이 일부러 비꼬자 남하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의 입술에 빨리 키스했다.“다르단 말이야.”“비슷해요.”남하준은 그녀의 뒤통수를 잡아 그녀의 머리를 고정하고 뜨거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노려보며 속삭였다.“나 키스하고 싶어. 아주 잠깐만. 응?”정안은 얼굴을 홱 돌리고 그의 입술을 피했다.“싫어요. 여긴 불편하니까 집에 돌아가서 얘기해요.”남하준이 손을 뻗어 침대 커튼을 쳤다.“이러면 되지?”“안 돼요.”“1분만.”“싫어요.”“30초만.”“싫어요.”“그럼 2초.”“싫!어!”“완아...”남하준은 무기력하게 말했고 가라앉은 얼굴에 서운한 기색이 역력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정안은 슬쩍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그가 서운하고 갈망하는 모습을 보니 더 이상 그를 놀리고 싶지 않았다.어쩌면 남태준의 말처럼
남하준은 좁은 싱글 침대를 보고 곧바로 동의했다.“그래. 내가 밑에서 잘 테니까 넌 내 가슴 위에서 자.”정안이 수줍게 웃었다.“난 보호자 침대에서 자면 돼요.”하지만 남하준은 단호한 태도였다.“내 위에서 자.”“오빠 다리 다쳤잖아요. 상처 눌리면 어떡해요.”“괜찮아. 내 가슴 위에서 자.”“싫어요.”“어차피 넌 오늘 여기서 나랑 잘 거야.”정안이 뜨끔 하더니 눈을 깜박이며 그를 바라보았다.“그럼 나 집에 돌아갈게요.”남하준이 긴 한숨을 내쉬며 정안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중얼거렸다.“너 일부러 그러지?”“뭘요?”“내가 기뻐하는 꼴을 못 보겠지?”정안은 피식 웃더니 그의 짧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를 달래듯 부드럽게 말했다.“우리 오빠 착하죠. 내일 아침에 다시 보러 올게요.”남하준은 그녀의 허리를 덥석 껴안아 품에 안은 채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아무 데도 가지 말고 나랑 여기 있어.”“나...”정안이 말을 하기도 전에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유미의 목소리가 들렸다.“하준아...”순간 남하준과 정안은 동시에 얼굴빛이 가라앉았고 남하준이 침대 커튼을 젖히고 문 쪽을 돌아보았다.정안은 차가운 얼굴로 남하준의 품에서 일어났다.유미는 과일 바구니와 꽃다발을 손에 든 채 걱정스러운 얼굴로 들어왔다.“다친 곳은 괜찮아?”남하준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지막이 화를 냈다.“누가 알려줬어?”“뭐?”유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시치미를 떼자 남하준이 다시 물었다.“나 여기 있다는 거 누가 알려줬냐고?”“백완자에게도 누가 알려줬는지 따져 묻지 그래?”유미가 정안을 가리키며 묻자 남하준이 냉소를 지었다.“네가 내 아내랑 같아?”유미의 출현으로 정안은 좋던 기분이 와르르 무너졌고 괴롭고 짜증이 났다.하지만 유미는 여전히 당당한 태도였다.“너 지금 다쳐서 병원에 입원한 건 기밀에 속한다는 거 알아. 근데 왜 백완자에게는 말해주고 나한텐 말해주면 안 되는 건데? 난 그저 네가 걱정돼서 와봤을 뿐이야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
그녀에게 보여줄 수 없는 사진은 무엇일까?여자 사진?남서연은 기분이 가라앉아 말했다.“나 먼저 돌아갈게요.”그러자 백건이 그녀에게 다가갔다.“나랑 같이 집에 가서 어른들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자.”“안돼요.”남서연은 긴장감에 못 이겨 안절부절했다.“일단 아직은 안돼요. 내가 먼저 가서 가족들 생각을 알아보고 다시 결정해요.”“어떤 상황이든, 어떤 결과든, 나 혼자 감당할 거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서두르지 말고 우리 천천히 얘기해요. 내가 우리 가족들 설득하고 오빠는 오빠 가족들 설득해요. 네?”백건은 여전히 변수가 있을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행동해 남서연을 놀라게 해서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그래. 네 말대로 해.”남서연은 그가 덮은 앨범을 가리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덤덤하게 물었다.“누구 사진이에요?”백건은 고개를 돌려 협탁을 보더니 마음이 찔려 말했다.“내 사진이야.”그건 백건이 전에 몰래 찍었던 남서연의 사진이었다.결혼 후에만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그가 한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계획한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어머니의 강력한 방해를 무릅쓰고 그는 강력한 권한을 동원하여 인사팀을 통해 남서연의 면접을 합격시키고 그녀를 ND에 무사히 입사하게 했다.또 직권을 이용하여 남서연을 데리고 해외 출장을 갔다. 그 목적은 바로 남서연을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만든 다음 그 기회를 빌려 잠자리를 갖고 그녀를 임신시키는 것이었다.두 차례의 성관계에도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그녀를 임신시키기 위함이었다.그는 감히 남서연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남서연이 그를 비열하다고, 수단이 더럽다고, 파렴치하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결혼하고 나서 다시 그녀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천천히 용서를 빌어야 했다.남서연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백건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발이 미끄러질까 봐 보호했다. 남서연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호하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서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초롱초롱한 큰 눈으로 물끄러미 백건을 바라보며 머리가 하얘졌다.결혼이라는 두 글자가 백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 큰 유혹이었다.그녀가 당황하고 있을 때, 백건은 갑자기 몸을 기울여 왼쪽 무릎을 그녀 앞에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놀란 그녀는 소파에 붙으며 경악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뜨거운 눈빛으로 부드럽게 말했는데 매우 절실해 보였다.“서연아, 나와 결혼해줘. 응?”‘지금 아이를 위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한 거야?’남서연은 아주 기뻤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괴롭고 불안했다.“두 집안 어른들 모두 찬성하지 않을 거예요.”“너만 원한다면 그런 것들은 전부 내가 알아서 해.”남서연은 차마 배 속의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가족 모두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현실 생활에서 많은 부부가 선을 보고 결혼하니 먼저 결혼하고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결혼 후에 그녀가 잘 보인다면 백건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남서연은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감격에 겨워 붉어진 눈시울이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어지러운 숨결로 소파에 앉더니 남서연을 덥석 품에 끌어안았다.남자의 동작은 절박했고 강렬한 포옹에 그녀는 몸이 아팠다.남서연은 그의 등 뒤에 두 손을 널어놓고 턱을 그의 어깨에 괴고는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았다.귓가에 남자의 무거운 호흡과 함께 약간 울먹이는 쉰 목소리가 들렸다.“고마워. 서연아. 정말 고마워. 반드시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될게.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 최선을 다해서 네게 가장 행복한 미래를 줄게.”남서연은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몽환적이고 아름다웠다.다만, 앞으로 어떻게 가족을 대해야 할까?아이 때문에 결혼하게 되면 백건은 앞으로 후회하지 않을까?
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슬픈 듯 중얼거렸다.“나 임신했어요.”백건은 심장이 움찔했고 온몸은 걷잡을 수 없이 흥분했다. 그는 제자리에서 거의 뛰기라도 하듯 벌떡 일어났다. 가슴의 흥분을 터뜨리기 위해 미친 듯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서연이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고? 나 아빠가 되는 거야? 서연이 아이의 아빠? 이거 지금 꿈 아니지?’그는 갑작스러운 행복을 애써 눌렀다.남서연은 그의 반응에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니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녀를 등지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이 남자가 대체 어떤 마음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그녀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까?그녀처럼 망연자실할까?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남서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책임지라고 찾아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다만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에 오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요. 만약 수술하게 되면 나와 함께 가줘요.”백건은 무거운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순식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그는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얼굴빛은 굳어졌고 말투는 엄숙했다.“뭐? 수술한다고?”남서연은 주눅이 들어 쳐다보며 말했다.“네. 혼전 임신은 안 돼요.”가족들이 만약 그녀가 혼전임신이라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백건을 때려죽일 것이다.숨이 가빠진 백건은 두 손을 꼭 잡았고 엄숙한 말투에 약간의 온기를 더해 부드럽게 달랬다.“서연아, 아이는 포기할 수 없어. 내게 책임질 기회를 줄 수 없어? 나 좋은 아빠가 될게.”남서연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백건을 바라보며 멍해졌다.그녀의 생각과 달랐다.그녀는 백건이 그녀보다 더 이 아이를 원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아이의 존재가 그를 위험하게 만들 테니까.백건은 긴장된 듯 입술을 오므리고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그리고 너만 괜찮다면 나... 좋은 남편이 될 수도 있어.”남자는 주먹을 문지르며 가늘게 떨릴 정도로 긴장했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남서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의 시주를 기
남서연은 복잡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저예요.”백건은 숨이 거칠고 오랫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말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다.그는 남서연이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 몰라 계속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시간 있어요?”남서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쭈뼛쭈뼛 물었다.백건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있어.”“잠깐 만나서 얘기할래요?”“좋아.”백건이 곧바로 대답하더니 또 물었다.“어디서 볼래? 데리러 갈게.”남서연이 생각해보니 밖에는 보는 눈이 많아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내가 오빠 집으로 갈게요. 반 시간이면 도착해요.”“좋아.”남서연은 전화를 끊고 일어서서 마스크를 쓰고 공중화장실을 나섰다.한편, 공항 가는 차에 타고 있던 백건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명령했다.“차 돌려서 집으로 가.”“대표님, 비행기 시간 이미 다 됐어요.”백건은 정색해서 말했다.“이번 행사 취소하고 바로 집으로 가.”하현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그 전화를 들으니 아마 남서연일 것이다.백건에게 새 시즌 발표회는 취소할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고 없어도 되는 일이다.그러나 남서연을 만날 어떤 기회도 그는 놓칠 수 없었다.하현우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30분 후.남서연은 산 중턱 별장에 와서 막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하현우가 이미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했다.“서연 아가씨,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남서연은 살짝 놀랐다가 하현우인 걸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경치가 아름다운 화원의 앞마당을 지나 웅장한 큰 집으로 들어갔다.문은 열려 있고 백건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어 우아하고 멋스러우며 준수한 매력을 자랑했다.남자는 그윽한 눈동자로 남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를 다시 만난 남서연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마음속에 토끼 한 마리가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