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밥을 사준다고요?”지윤은 아연실색했다.요리사의 이상한 말에 정안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요리사를 지나쳐 안으로 뛰어들었고 요리사는 긴장해서 뒤쫓아 들어가려고 했다.지윤이 요리사의 손을 덥석 잡더니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아저씨 오늘 왜 이렇게 긴장하세요?”요리사는 지윤의 손을 뿌리치며 대답했다.“아닙니다. 저 먼저 가볼게요.”지윤이 요리사의 앞을 가로막았다.“서두르지 말고 조금만 더 계세요.”당황한 요리사는 다시 한번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지윤의 눈에 띄었고 경호원 경력이 풍부한 지윤은 그가 매우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두말없이 요리사를 그대로 땅에 눌러버렸다.거실로 뛰어 들어간 정안은 백하린이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오빠, 문 열어요. 나 하린이에요. 하준 오빠.”백하린은 문을 두드리며 끊임없이 외쳤다.“문 좀 열어요. 나 할 말 있단 말이에요.”정안이 벽에 있는 시간을 보니 낮 2시, 점심을 먹은 지 한 시간이 지났다.그녀가 2층으로 뛰어 올라가 보니 백하린은 투명한 망사 스커트를 입고 속치마가 보일 듯 말 듯 섹시한 몸매를 뽐내고 있었다.“지금 뭐해?”정안은 화가 치밀어 올라 소리쳤다.백하린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급히 옷을 잡아당겼다.“네가 왜 여기 있어? 넌 분명...”정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분명 뭐?”백하린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정안이 비꼬며 말했다.“내가 백인호한테 갇힌 줄 알았어?”백하린은 한 줄기 미소를 지으며 짐짓 덤덤한 척 땅바닥의 가방을 집어 들고 그 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백인호의 번호를 눌렀다.계속 전화가 연결되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해 물었다.“백인호 어디 있어?”정안은 일말의 감정도 없이 차갑게 말했다.“아마 집에서 죽었을걸? 그런데 넌 왜 그 꼴로 금원에 온 거지? 대체 무슨 속셈이야?”백하린은 덤덤하게 대답했다.“금원은 원래 하준 오빠가 우리 신혼집으로 마련한 거야. 나 여기서 오래 살았어. 집 비밀번호까지
집에서 평소처럼 식사하다 약을 먹었으니 남하준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정안은 방에 갇힌 남하준이 걱정돼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하준 오빠, 나예요. 백하린은 이미 류청 씨가 데려온 사람들에게 끌려갔으니 문 좀 열어봐요.”곧 남하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문 열어봐요. 어디 아파요? 나랑 병원에 가요.”“아픈 데 없어.”“그럼 문 좀 열어요. 얼굴 좀 보게.”“괜찮다니까.”정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오빠, 문 열어요 얼른.”남하준은 조금 짜증 섞인 말투로 화를 내며 물었다.“너 진짜 바보야?”정안은 남하준이 이렇게 매서운 말투로 욕하는 걸 처음 들었다. 그것도 바보라고 욕하다니.“왜 나 욕해요?”정안은 억울해하며 중얼거렸다.“난 오빠 걱정하고 있는 건데 왜 바보라고 욕해요?”정안은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괜찮으면 됐어요. 백하린의 음모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니 나 더이상 여기 있을 필요 없겠네요. 이만 가볼게요.”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방문이 갑자기 열렸다.정안이 반응하기도 전에 남하준에게 이끌려 방으로 들어갔고 번개같이 문이 닫히더니 얼떨결에 그녀는 이미 벽에 밀어붙여 있었다.남하준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를 가운데에 가두었다.정안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심장 박동이 빨라져 긴장된 눈으로 남하준을 바라보았다.상의를 입지 않은 그의 상반신에는 근육질 몸매와 완벽한 라인이 드러났고 은은한 바디워시 향까지 풍기고 있었다.짧은 머리는 반쯤 젖어 있고 꿋꿋하고 준수한 얼굴에 살짝 홍조를 띠며 얼굴부터 목까지, 벗은 상체 피부까지 평소보다 약간 붉게 물들었다.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은 활활 타오르는 화염처럼 사람을 녹일 수 있을 것 같았다.정안은 침을 꿀꺽 삼키고 긴장한 채 입술을 오므리고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남하준이 허스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나 괜찮은 거 확인했지?”정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하준이 또 물었다.
정안은 순간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고 시선을 옮겨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호흡이 흐트러졌다.“내가... 병원에 데려다줄게요.”남하준이 가볍게 물었다.“언론에 알리고 싶은 거야?”정안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그런 뜻 아니에요.”남하준의 불처럼 빛나는 눈동자는 그녀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바라보았고 그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바짝바빡 마르는 얇은 입술을 오므렸다.그의 숨결은 그녀의 은은한 향기로 가득 차 있었고 가슴이 끓어올랐다. 방금 찬물 샤워로 누그러뜨린 욕망이 지금 되살아났다.그는 주먹을 불끈 쥐더니 손을 놓고 한발 물러섰다.“나가.”“네?”“금원에 있어. 아무 데도 가지 말고.”남하준의 말투가 진지해졌다.“오빠 몸 정말 괜찮은 거예요?”정안은 걱정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남하준은 그녀의 붉게 물든 입술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에게 계속 말하는 것은 마치 양귀비꽃처럼 매력적이고 치명적이었다.그녀에게 키스한 적이 있기에, 그 맛이 얼마나 아름답고 매혹적인지 알고 그녀의 매력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다.하지만 남하준은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안 죽어.”정안은 백하린의 일이 생각나 또 물었다.“방금 백하린 반응 보니까 백인호 상황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았어요. 백인호 어떻게 됐어요?”남하준은 눈살을 찌푸리고 안색이 확 굳어졌다.“그 자식 걱정하는 거야?”“아니요.” 정안이 긴장해서 해명했다.“백인호가 죽으면 부모님이 어디 계신지 찾을 수 없고 또 오빠가 형사 책임을 질까 봐 두려운 거죠.”남하준은 심호흡을 하며 필생의 의지력으로 욕망을 꾹 억눌렀다.“그 자식 안 죽어. 일단 좀 나가.”“어디 있어요?”“병원에.”“오빠가 구한 거예요?”남하준은 곧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마지막으로 물었다.“완아, 안 나갈 거야?”정안은 지금의 남하준이 약물의 작용으로 몸과 마음이 괴롭다는 건 까맣게 잊은 채 자신이 구출된 후 백인호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고 싶어 계속 캐물었다.“백인호가 안 죽었다면 납치범으로 고소해
정욕에서 깨어난 정안은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있던 손을 풀며 착잡한 심정이었다.남하준은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만지며 그녀의 귓볼에 가볍게 키스했고 허스키한 목소리는 거의 애원에 가까웠다.“네가 원하는 건 뭐든 다 해줄게. 내가 많이 사랑해주고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 나랑 결혼해줘. 응?”정안은 가슴이 욱신욱신 쑤시고 눈시울이 젖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주먹을 불끈 쥐고 참았다.만약 그녀가 기억이 없을 때 이 말을 들었으면 크게 감동하고 단박에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을 것이다.그러나 그녀는 지금 백완자가 아니라 정안이었다. 그녀는 M국 군전 그룹의 수장과 절대 감정적으로 얽힐 수 없었다.“미안해요.”정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눈물이 시야를 흐렸다.“나 오빠랑 결혼할 수 없어요.”남하준은 고통스럽게 눈을 감고 그녀의 목에 머리를 묻은 채 처량하게 물었다.“나 사랑하지 않아서? 아니면 못하는 거야?”정안은 가슴을 쥐어뜯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만약 그를 사랑하지만 결혼할 수 없다고 하면 남하준은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캐묻고 그녀의 상황을 조사하면서 그녀의 정체도 알게 될 것이다.정안은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며 애써 평온하게 말했다.“둘 다요.”남하준은 몸이 얼어붙었다. 심장을 에이는 듯 한 고통이 전해졌고 그는 씁쓸하게 미소 짓더니 눈동자는 온통 붉어졌다.심장의 통증이 몸의 욕망보다 더 심하고 고통스러웠던 그는 천천히 정안에게서 일어섰다.정안은 그의 목을 덥석 껴안고 붉게 물든 남자의 눈동자를 바라보니 지독하게 슬프고 우울하고 고독해 보여 가슴이 찢어졌다.그녀는 약간 울먹이며 말했다.“하지만 난 좋아요.”남하준은 한 손으로는 침대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손을 끌어내린 채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뭐가?”“오빠랑 자는 거요.”남자의 서글픈 눈빛을 보니 가슴이 아파 수줍음따위 잊은 그녀였다.남하준은 촉촉하고 붉어진 눈을 가늘게 뜨고 뻣뻣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정안은 놀라지 않고 계속 고개를 숙이고 책을 읽었다.“결혼 못 해.”“도련님과 결혼하는 게 아니라, 도련님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이미 돈을 주고 Z국에서 언니 신분증을 재발급받아 언니 신분으로 결혼한다고요!”정안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지윤을 바라보았고 지윤은 굳은 얼굴로 황급히 정안의 곁에 다가와 앉았다.“언니 할머니께서 이미 결혼식을 준비하고 계시는데 신랑이 누군지 알아요?”“그게 누구든 할아버지는 왜 허락하신 거야?”“할아버지께서는 당연히 반대하셨지만 제멋대로 날뛰는 백하린이랑 억지를 부리는 할머니를 막을 수 없었어요.”정안은 주먹을 불끈 쥔 채 이를 갈며 말했다.“백씨 가문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 온갖 짓을 다 버리네.”“어떡해요?”지윤은 정안의 손을 잡고 말했다.“만약 백하린이 언니 신분으로 M국의 고위 관리 자제에게 시집간다면 앞으로 골치 아픈 일이 너무 많을 거예요.”“고위 관리?”정안은 화가 나서 온몸이 언짢았다.“맞아요. 남자 쪽 아버지가 시장이래요.”정안은 걱정으로 가득 차서 이일의 엄중성을 깨달았다.만약 정말 혼인신고를 한다면 그녀는 Z국으로 돌아가 다시 정치심사를 받고 조사를 받은 후 M국의 결혼을 처리하게 될 것이고 골치 아픈 일들이 산더미처럼 일어날 것이다.“지금 가장 걱정 되는 건 앞으로 일어날 골치 아픈 일들이 아니야.”정안은 사색에 잠겨 중얼거렸다.“만약 백하린이 진짜 M국으로 시집와서 상속권을 얻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유언장을 손에 쥐게 되면 두 분을 해치게 될까 봐 두려워.”지윤은 멍해졌다.“그럼 가만있을 수 없죠! 내일 안성 호텔에서 약혼식하고 모레 혼인 신고하러 간대요. 결혼식은 대략 한 달 후에 하고.”정안은 여전히 우려하는 부분이 있었다.“만약 내가 신분을 밝히면 우리 부모님은 어떡하지?”“언니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을 수도 있어요. 비록 시체를 찾지 못했지만 그 한 가닥 희망 때문에 백하린이 언니 행세를 하는 걸 묵인하고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를 희생할 수는 없잖아요?”정안
“이게 누구야?”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정안이 고개를 돌려 보니 바로 남하준의 고모 남연희였다.“안녕하세요, 고모님.”점잖고 고귀한 차림의 남연희는 경멸하며 웃었다.“호칭에 주의하지 그래? 이미 우리 하준이랑 이혼했는데 내가 왜 그쪽 고모야?”정안은 개의치 않은 듯 덤덤하게 답했다.“죄송합니다.”“오늘 여기 온 사람들은 모두 거물급인데 그쪽이 왜 여기 있어? 청첩장은 어디서 났고?” 정안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지윤이 보다 못해 이를 악물고 반격하려다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정안의 손에 눌렸다.그때 남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다가와 정안을 보고 깜짝 놀랐다.비록 남하준과 이미 이혼했지만 그녀는 원래 호칭대로 일일이 인사했다.“아버님, 어머님, 아주버님, 형님.”남창민과 허윤미 그리고 큰형 내외는 정안에게 상냥한 편이었지만 둘째 내외는 표정이 굳었고 셋째 내외는 숨기지도 않고 남연희처럼 대놓고 깔보았다.정안이 여기에 나타나 오늘 파티의 격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세상에 어쩜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 있지? 내 첫사랑을 뺏어가더니 이젠 또 남의 남편 염탐하러 왔네.”셋째 형수 최서윤이 조롱하며 말하자 지윤은 더 이상 못 참고 쏘아붙였다.“지금 누구보고 뻔뻔하다는 거예요? 빙빙 에두르지 말고 할 말 있으면 바로 해요.”몸에 오만이 배인 최서윤은 아랑곳하지 않고 받아쳤다.“나? 방금 서다인 욕했는데? 내가 뭐 잘못 말했나? 대체 무슨 낯짝으로 하린이 약혼식에 온 거야?”“당신!”지윤은 화가 나서 얼굴이 파랗게 질려 그녀의 뺨을 때리려 했다.정안이 지윤의 충동적인 행동을 막더니 최서윤에게 웃으며 말했다.“제가 눈에 거슬리시면 멀리 떨어져 계세요. 굳이 저 찾아와서 험담하면서 입 더럽힐 필요 있나요?”최서윤의 안색이 어두워져 말을 하려는데 남창민이 엄하게 말했다.“남 잔칫상에까지 와서 소란 피울 거냐?”남연희도 최서윤의 편에 서서 말했다.“오빠. 서다인은 이미 하준이랑 이혼했어요. 누가 오빠 며느리인지
소우빈은 어깨를 으쓱하고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정안을 응시했다.정안은 더 이상 남자를 상대하지 않고 돌아서서 떠났고 지윤이 그 뒤를 따랐다.두 사람은 반대편 구석으로 가 똑같이 어색하고 불안해 하는 지우를 발견했다.상류층 부자들의 잔치에 처음 참석한 지우는 아는 사람이 없어 더욱 긴장했다.정안이 다가가 인사했다.“지우야.”지우는 정안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급히 다가가 손을 잡으며 말했다.“드디어 널 만났네.”정안은 그녀 손바닥의 땀기운을 느끼고 부드럽게 웃었다.“괜찮아. 긴장하지 마.”지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네 엄마 방금까지 여기 계셨는데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지우야, 오늘이 지나면 진화연 씨는 더 이상 내 엄마가 아니고, 나도 서다인이 아니야.”지우가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그럼 네 이름이 뭔데?”“백완자.”정안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이름을 말하자 지우는 입술을 오므리고 싱긋 웃었다.“너무 귀엽다! 네 부모님은 어떻게 그런 귀여운 이름을 지어주신 거야?”정안은 고개를 숙이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하준 오빠가 지어준 거야.”지우가 한참 경악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은은한 음악으로 바뀌고 조명이 어두워지자 약혼식은 신비에 빠졌다.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무대 위에 집중되었다.음악이 점차 아름다워지고 무대 스포트라이트가 천천히 백스테이지 입구에서 켜졌다.화려한 드레스를 예쁘게 차려입은 백하린은 활짝 웃으며 소우빈의 팔짱을 낀 채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걸어갔다.소우빈이 먼저 부모님과 친인 친척들, 그리고 백하린에게 고맙다는 공식적인 말을 전했다.지나치게 형식적인 말에 손발이 오그라들었지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백하린은 행복에 겨워 활짝 웃으며 공주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정안이 현장을 한 바퀴 휙 둘러보니 올 사람들은 전부 모였다.방송국 간부들, 변호사들, 검찰과 경찰들, 시장들, 그리고
지윤은 소우빈을 보며 말했다.“소우빈 씨, 당신 약혼녀가 진짜 사기꾼인지 아닌지 궁금하지 않아요?”그때 소우빈의 아버지가 앞으로 나서서 위엄 있고 패기 넘치게 소리쳤다.“당신! 지금 당장 명확한 증거를 내놓지 못한다면 남은 평생 감옥에서 지내게 될 거야!”백하린은 소우빈의 팔을 잡고 목소리를 낮추어 긴장하며 말했다.“얼른 이 여자 끌어내요. 우리 약혼식을 망치고 있잖아요.”소우빈은 예리한 눈으로 백하린을 보더니 나지막이 위로했다.“몸이 바르면 그림자가 비뚤어질까 봐 두렵지 않죠. 이 여자 말이 거짓이라면 난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어디 한번 들어나 보죠?”소우빈의 말을 들은 지윤은 그가 자신의 약혼녀가 사기꾼이고 또 블랙 섀도우의 간첩이라는 걸 모른다고 확신했다.지윤이 또 리모컨을 누르자 스크린에는 백씨 가문의 가족사진이 나타났다.백하린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삼촌과 그녀가 있었다.지금으로부터 10년 전, 14살의 백하린이 출국 전 찍은 사진이었다.여은수는 후들후들 떨면서 무대로 나가 노발대발하면서 자신의 손녀를 도우려 했지만 백진이 그녀를 끌어당겼다.여은수는 온몸을 떨며 소리쳤다.“저 여자는 서다인 친구예요. 우리 집에서 먹고 자고 하더니 이젠 우리 손녀 약혼식에 와서 사기꾼이라고 모함하며 소란을 피우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백진은 어쩔 수 없어 하며 위로했다.“일단 흥분하지 말고 다 보고 얘기해요.”“뭘 더 지켜봐요? 우리 손녀가 왜 사기꾼이에요?”여은수가 나지막이 쏘아붙이자 백진은 어두운 얼굴로 혼냈다.“눈먼 노친네. 저 여자는 우리 손녀가 아니야!”“무슨 헛소리에요?”여은수는 화가 나서 벌벌 떨었고 백진이 무대 한쪽 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당신 진짜 손녀는 저기 있다고. 기다려봐.”그때 무대 너머로 정안이 천천히 무대에 올라갔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정안의 모습이 사진 속 여자아이와 똑 닮았기 때문이었다.백하린은 정안이 서서히 걸어가는 것을 보고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