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무슨 말이야?”“남자에게 약을 탄다면 당연히 두 번째 경우겠죠.”정안은 뒤돌아서서 지윤을 바라보며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지윤이 숨을 고르더니 말했다.“언니 지금 도련님 안위를 너무 걱정해서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었어요. 냉정하게 생각해봐요. 백하린이 자기에게 덫을 놓으려 하는걸 알고 있으니 도련님은 분명 대비하고 있을 거예요.”정안은 묵묵히 지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우선, 도련님의 왼팔과 오른팔은 절대 도련님 배신 못 해요. 일단 발각되는 즉시 머리가 잘리겠죠?”“그리고 반드시 남자가 혼미하고 흥분한 상태에서만 남녀 간의 일을 할 수 있어요. 도련님이 진정제를 휴대하고 다니시면 그런 발정 약을 먹어도 두려워할 필요 없겠죠.”“마지막으로 무엇보다 백하린은 절대 도련님 상대가 안 돼요. 언니가 너무 긴장하고 있어요.”정안은 진정하고 생각에 잠긴 듯 남씨 별장을 나섰고 지윤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혹시 내가 이번에 오빠 보호하겠다고 나선 게 오빠는 우습고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언니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정안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길가에 서서 차를 불렀다.“내가 전에 우린 친구도 할 수 없고 심지어 영원히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거든. 근데 지금 나 뭐 하는 거니?”“언니 나름대로 고충이 있잖아요? 그리고 도련님도 언니 원망하는 것 같지 않았어요.”정안은 너무 씁쓸한 마음에 택시가 그 앞에 서 있는데도 올라가지 않고 머뭇머뭇 물었다.“네 말이 맞아. 하준 오빠는 내 보호 없이도 충분히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어. 그럼 나 지금 금원으로 돌아가는 게 맞을까?”“난 지금 언니가 금원에 사는 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요.”지윤은 택시 문을 열고 그녀를 밀었다.“일단 차에 타서 말해요.”정안이 차에 탔고 지윤이 따라올라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았다.“백인호는 도련님에게 거의 죽을 듯이 맞았지만 죽은 건 아니잖아요? 만약 백씨 저택에 돌아간다면 분명 언니를 가만두지 않을 거고 도련님도 동의하지 않겠죠.
“우리에게 밥을 사준다고요?”지윤은 아연실색했다.요리사의 이상한 말에 정안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요리사를 지나쳐 안으로 뛰어들었고 요리사는 긴장해서 뒤쫓아 들어가려고 했다.지윤이 요리사의 손을 덥석 잡더니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아저씨 오늘 왜 이렇게 긴장하세요?”요리사는 지윤의 손을 뿌리치며 대답했다.“아닙니다. 저 먼저 가볼게요.”지윤이 요리사의 앞을 가로막았다.“서두르지 말고 조금만 더 계세요.”당황한 요리사는 다시 한번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지윤의 눈에 띄었고 경호원 경력이 풍부한 지윤은 그가 매우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두말없이 요리사를 그대로 땅에 눌러버렸다.거실로 뛰어 들어간 정안은 백하린이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오빠, 문 열어요. 나 하린이에요. 하준 오빠.”백하린은 문을 두드리며 끊임없이 외쳤다.“문 좀 열어요. 나 할 말 있단 말이에요.”정안이 벽에 있는 시간을 보니 낮 2시, 점심을 먹은 지 한 시간이 지났다.그녀가 2층으로 뛰어 올라가 보니 백하린은 투명한 망사 스커트를 입고 속치마가 보일 듯 말 듯 섹시한 몸매를 뽐내고 있었다.“지금 뭐해?”정안은 화가 치밀어 올라 소리쳤다.백하린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급히 옷을 잡아당겼다.“네가 왜 여기 있어? 넌 분명...”정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분명 뭐?”백하린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정안이 비꼬며 말했다.“내가 백인호한테 갇힌 줄 알았어?”백하린은 한 줄기 미소를 지으며 짐짓 덤덤한 척 땅바닥의 가방을 집어 들고 그 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백인호의 번호를 눌렀다.계속 전화가 연결되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해 물었다.“백인호 어디 있어?”정안은 일말의 감정도 없이 차갑게 말했다.“아마 집에서 죽었을걸? 그런데 넌 왜 그 꼴로 금원에 온 거지? 대체 무슨 속셈이야?”백하린은 덤덤하게 대답했다.“금원은 원래 하준 오빠가 우리 신혼집으로 마련한 거야. 나 여기서 오래 살았어. 집 비밀번호까지
집에서 평소처럼 식사하다 약을 먹었으니 남하준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정안은 방에 갇힌 남하준이 걱정돼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하준 오빠, 나예요. 백하린은 이미 류청 씨가 데려온 사람들에게 끌려갔으니 문 좀 열어봐요.”곧 남하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문 열어봐요. 어디 아파요? 나랑 병원에 가요.”“아픈 데 없어.”“그럼 문 좀 열어요. 얼굴 좀 보게.”“괜찮다니까.”정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오빠, 문 열어요 얼른.”남하준은 조금 짜증 섞인 말투로 화를 내며 물었다.“너 진짜 바보야?”정안은 남하준이 이렇게 매서운 말투로 욕하는 걸 처음 들었다. 그것도 바보라고 욕하다니.“왜 나 욕해요?”정안은 억울해하며 중얼거렸다.“난 오빠 걱정하고 있는 건데 왜 바보라고 욕해요?”정안은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괜찮으면 됐어요. 백하린의 음모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니 나 더이상 여기 있을 필요 없겠네요. 이만 가볼게요.”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방문이 갑자기 열렸다.정안이 반응하기도 전에 남하준에게 이끌려 방으로 들어갔고 번개같이 문이 닫히더니 얼떨결에 그녀는 이미 벽에 밀어붙여 있었다.남하준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를 가운데에 가두었다.정안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심장 박동이 빨라져 긴장된 눈으로 남하준을 바라보았다.상의를 입지 않은 그의 상반신에는 근육질 몸매와 완벽한 라인이 드러났고 은은한 바디워시 향까지 풍기고 있었다.짧은 머리는 반쯤 젖어 있고 꿋꿋하고 준수한 얼굴에 살짝 홍조를 띠며 얼굴부터 목까지, 벗은 상체 피부까지 평소보다 약간 붉게 물들었다.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은 활활 타오르는 화염처럼 사람을 녹일 수 있을 것 같았다.정안은 침을 꿀꺽 삼키고 긴장한 채 입술을 오므리고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남하준이 허스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나 괜찮은 거 확인했지?”정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하준이 또 물었다.
정안은 순간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고 시선을 옮겨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호흡이 흐트러졌다.“내가... 병원에 데려다줄게요.”남하준이 가볍게 물었다.“언론에 알리고 싶은 거야?”정안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그런 뜻 아니에요.”남하준의 불처럼 빛나는 눈동자는 그녀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바라보았고 그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바짝바빡 마르는 얇은 입술을 오므렸다.그의 숨결은 그녀의 은은한 향기로 가득 차 있었고 가슴이 끓어올랐다. 방금 찬물 샤워로 누그러뜨린 욕망이 지금 되살아났다.그는 주먹을 불끈 쥐더니 손을 놓고 한발 물러섰다.“나가.”“네?”“금원에 있어. 아무 데도 가지 말고.”남하준의 말투가 진지해졌다.“오빠 몸 정말 괜찮은 거예요?”정안은 걱정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남하준은 그녀의 붉게 물든 입술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에게 계속 말하는 것은 마치 양귀비꽃처럼 매력적이고 치명적이었다.그녀에게 키스한 적이 있기에, 그 맛이 얼마나 아름답고 매혹적인지 알고 그녀의 매력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다.하지만 남하준은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안 죽어.”정안은 백하린의 일이 생각나 또 물었다.“방금 백하린 반응 보니까 백인호 상황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았어요. 백인호 어떻게 됐어요?”남하준은 눈살을 찌푸리고 안색이 확 굳어졌다.“그 자식 걱정하는 거야?”“아니요.” 정안이 긴장해서 해명했다.“백인호가 죽으면 부모님이 어디 계신지 찾을 수 없고 또 오빠가 형사 책임을 질까 봐 두려운 거죠.”남하준은 심호흡을 하며 필생의 의지력으로 욕망을 꾹 억눌렀다.“그 자식 안 죽어. 일단 좀 나가.”“어디 있어요?”“병원에.”“오빠가 구한 거예요?”남하준은 곧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마지막으로 물었다.“완아, 안 나갈 거야?”정안은 지금의 남하준이 약물의 작용으로 몸과 마음이 괴롭다는 건 까맣게 잊은 채 자신이 구출된 후 백인호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고 싶어 계속 캐물었다.“백인호가 안 죽었다면 납치범으로 고소해
정욕에서 깨어난 정안은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있던 손을 풀며 착잡한 심정이었다.남하준은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만지며 그녀의 귓볼에 가볍게 키스했고 허스키한 목소리는 거의 애원에 가까웠다.“네가 원하는 건 뭐든 다 해줄게. 내가 많이 사랑해주고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 나랑 결혼해줘. 응?”정안은 가슴이 욱신욱신 쑤시고 눈시울이 젖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주먹을 불끈 쥐고 참았다.만약 그녀가 기억이 없을 때 이 말을 들었으면 크게 감동하고 단박에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을 것이다.그러나 그녀는 지금 백완자가 아니라 정안이었다. 그녀는 M국 군전 그룹의 수장과 절대 감정적으로 얽힐 수 없었다.“미안해요.”정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눈물이 시야를 흐렸다.“나 오빠랑 결혼할 수 없어요.”남하준은 고통스럽게 눈을 감고 그녀의 목에 머리를 묻은 채 처량하게 물었다.“나 사랑하지 않아서? 아니면 못하는 거야?”정안은 가슴을 쥐어뜯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만약 그를 사랑하지만 결혼할 수 없다고 하면 남하준은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캐묻고 그녀의 상황을 조사하면서 그녀의 정체도 알게 될 것이다.정안은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며 애써 평온하게 말했다.“둘 다요.”남하준은 몸이 얼어붙었다. 심장을 에이는 듯 한 고통이 전해졌고 그는 씁쓸하게 미소 짓더니 눈동자는 온통 붉어졌다.심장의 통증이 몸의 욕망보다 더 심하고 고통스러웠던 그는 천천히 정안에게서 일어섰다.정안은 그의 목을 덥석 껴안고 붉게 물든 남자의 눈동자를 바라보니 지독하게 슬프고 우울하고 고독해 보여 가슴이 찢어졌다.그녀는 약간 울먹이며 말했다.“하지만 난 좋아요.”남하준은 한 손으로는 침대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손을 끌어내린 채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뭐가?”“오빠랑 자는 거요.”남자의 서글픈 눈빛을 보니 가슴이 아파 수줍음따위 잊은 그녀였다.남하준은 촉촉하고 붉어진 눈을 가늘게 뜨고 뻣뻣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정안은 놀라지 않고 계속 고개를 숙이고 책을 읽었다.“결혼 못 해.”“도련님과 결혼하는 게 아니라, 도련님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이미 돈을 주고 Z국에서 언니 신분증을 재발급받아 언니 신분으로 결혼한다고요!”정안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지윤을 바라보았고 지윤은 굳은 얼굴로 황급히 정안의 곁에 다가와 앉았다.“언니 할머니께서 이미 결혼식을 준비하고 계시는데 신랑이 누군지 알아요?”“그게 누구든 할아버지는 왜 허락하신 거야?”“할아버지께서는 당연히 반대하셨지만 제멋대로 날뛰는 백하린이랑 억지를 부리는 할머니를 막을 수 없었어요.”정안은 주먹을 불끈 쥔 채 이를 갈며 말했다.“백씨 가문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 온갖 짓을 다 버리네.”“어떡해요?”지윤은 정안의 손을 잡고 말했다.“만약 백하린이 언니 신분으로 M국의 고위 관리 자제에게 시집간다면 앞으로 골치 아픈 일이 너무 많을 거예요.”“고위 관리?”정안은 화가 나서 온몸이 언짢았다.“맞아요. 남자 쪽 아버지가 시장이래요.”정안은 걱정으로 가득 차서 이일의 엄중성을 깨달았다.만약 정말 혼인신고를 한다면 그녀는 Z국으로 돌아가 다시 정치심사를 받고 조사를 받은 후 M국의 결혼을 처리하게 될 것이고 골치 아픈 일들이 산더미처럼 일어날 것이다.“지금 가장 걱정 되는 건 앞으로 일어날 골치 아픈 일들이 아니야.”정안은 사색에 잠겨 중얼거렸다.“만약 백하린이 진짜 M국으로 시집와서 상속권을 얻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유언장을 손에 쥐게 되면 두 분을 해치게 될까 봐 두려워.”지윤은 멍해졌다.“그럼 가만있을 수 없죠! 내일 안성 호텔에서 약혼식하고 모레 혼인 신고하러 간대요. 결혼식은 대략 한 달 후에 하고.”정안은 여전히 우려하는 부분이 있었다.“만약 내가 신분을 밝히면 우리 부모님은 어떡하지?”“언니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을 수도 있어요. 비록 시체를 찾지 못했지만 그 한 가닥 희망 때문에 백하린이 언니 행세를 하는 걸 묵인하고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를 희생할 수는 없잖아요?”정안
“이게 누구야?”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정안이 고개를 돌려 보니 바로 남하준의 고모 남연희였다.“안녕하세요, 고모님.”점잖고 고귀한 차림의 남연희는 경멸하며 웃었다.“호칭에 주의하지 그래? 이미 우리 하준이랑 이혼했는데 내가 왜 그쪽 고모야?”정안은 개의치 않은 듯 덤덤하게 답했다.“죄송합니다.”“오늘 여기 온 사람들은 모두 거물급인데 그쪽이 왜 여기 있어? 청첩장은 어디서 났고?” 정안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지윤이 보다 못해 이를 악물고 반격하려다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정안의 손에 눌렸다.그때 남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다가와 정안을 보고 깜짝 놀랐다.비록 남하준과 이미 이혼했지만 그녀는 원래 호칭대로 일일이 인사했다.“아버님, 어머님, 아주버님, 형님.”남창민과 허윤미 그리고 큰형 내외는 정안에게 상냥한 편이었지만 둘째 내외는 표정이 굳었고 셋째 내외는 숨기지도 않고 남연희처럼 대놓고 깔보았다.정안이 여기에 나타나 오늘 파티의 격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세상에 어쩜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 있지? 내 첫사랑을 뺏어가더니 이젠 또 남의 남편 염탐하러 왔네.”셋째 형수 최서윤이 조롱하며 말하자 지윤은 더 이상 못 참고 쏘아붙였다.“지금 누구보고 뻔뻔하다는 거예요? 빙빙 에두르지 말고 할 말 있으면 바로 해요.”몸에 오만이 배인 최서윤은 아랑곳하지 않고 받아쳤다.“나? 방금 서다인 욕했는데? 내가 뭐 잘못 말했나? 대체 무슨 낯짝으로 하린이 약혼식에 온 거야?”“당신!”지윤은 화가 나서 얼굴이 파랗게 질려 그녀의 뺨을 때리려 했다.정안이 지윤의 충동적인 행동을 막더니 최서윤에게 웃으며 말했다.“제가 눈에 거슬리시면 멀리 떨어져 계세요. 굳이 저 찾아와서 험담하면서 입 더럽힐 필요 있나요?”최서윤의 안색이 어두워져 말을 하려는데 남창민이 엄하게 말했다.“남 잔칫상에까지 와서 소란 피울 거냐?”남연희도 최서윤의 편에 서서 말했다.“오빠. 서다인은 이미 하준이랑 이혼했어요. 누가 오빠 며느리인지
소우빈은 어깨를 으쓱하고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정안을 응시했다.정안은 더 이상 남자를 상대하지 않고 돌아서서 떠났고 지윤이 그 뒤를 따랐다.두 사람은 반대편 구석으로 가 똑같이 어색하고 불안해 하는 지우를 발견했다.상류층 부자들의 잔치에 처음 참석한 지우는 아는 사람이 없어 더욱 긴장했다.정안이 다가가 인사했다.“지우야.”지우는 정안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급히 다가가 손을 잡으며 말했다.“드디어 널 만났네.”정안은 그녀 손바닥의 땀기운을 느끼고 부드럽게 웃었다.“괜찮아. 긴장하지 마.”지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네 엄마 방금까지 여기 계셨는데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지우야, 오늘이 지나면 진화연 씨는 더 이상 내 엄마가 아니고, 나도 서다인이 아니야.”지우가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그럼 네 이름이 뭔데?”“백완자.”정안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이름을 말하자 지우는 입술을 오므리고 싱긋 웃었다.“너무 귀엽다! 네 부모님은 어떻게 그런 귀여운 이름을 지어주신 거야?”정안은 고개를 숙이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하준 오빠가 지어준 거야.”지우가 한참 경악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은은한 음악으로 바뀌고 조명이 어두워지자 약혼식은 신비에 빠졌다.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무대 위에 집중되었다.음악이 점차 아름다워지고 무대 스포트라이트가 천천히 백스테이지 입구에서 켜졌다.화려한 드레스를 예쁘게 차려입은 백하린은 활짝 웃으며 소우빈의 팔짱을 낀 채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걸어갔다.소우빈이 먼저 부모님과 친인 친척들, 그리고 백하린에게 고맙다는 공식적인 말을 전했다.지나치게 형식적인 말에 손발이 오그라들었지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백하린은 행복에 겨워 활짝 웃으며 공주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정안이 현장을 한 바퀴 휙 둘러보니 올 사람들은 전부 모였다.방송국 간부들, 변호사들, 검찰과 경찰들, 시장들, 그리고
사람은 기쁜 일이 생기면 기분이 상쾌한 법이다. 하루 종일 바빠도 지우와의 관계를 회복한 생각만 하면 속으로 은근히 기뻐 났다.남태준이 막 차 옆으로 다가갔을 때 임다희가 차 뒤에서 걸어왔다.“태준아.”남태준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 무슨 일이야?”“할 얘기가 있어. 아주 중요한 얘기야.”임다희는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타.”남태준이 쿨하게 대답하자 임다희는 그의 차에 올라탔고 남태준이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 안에서 남태준이 물었다.“어디서 얘기할래?”“너희 집.”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그건 안돼.”“아주 중요한 일이야. 반드시 사람 없는 곳에서 얘기하고 싶어서 그래.”임다희는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빛을 내뿜으며 엄숙하게 말했다.“마약 거래에 관한 얘기야.”“그럼 지금 얘기해.”남태준은 차를 길가에 세웠다.“차 안에는 우리 둘만 있으니까 안전해.”임다희가 앞뒤를 돌아보니 이 길은 행인도 없고 오가는 차량도 뜸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태준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려 하자 마지못해 핸드백을 열어 그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이 시간에 거래가 있을 거야.”그의 다년간 사건 처리 경험으로 볼 때, 이렇게 명확한 거래 장소와 시간은 임다희가 절대 알 수 없었다.이 정보가 가짜이거나, 누군가가 그녀에게 준 것이 틀림 없었다.“어디서 났어?”남태준이 묻자 임다희는 조금 켕긴 듯 대답했다.“건달인 친구가 알아낸 정보인데 내가 샀어.”남태준은 입꼬리를 꼬며 그녀의 거짓말이 좀 억지스러워서 계속 물었다. “네가 마약 형사도 아니고 이 정보를 왜 사는데?”“너 주려고.”남태준은 움찔하더니 침묵했다.임다희는 애정 어린 눈으로 남태준을 지그시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태준아, 우리 다시 만나자.”남태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뭐라고?”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울먹였다.“전에는 내가 미안했어. 네
지하 카지노 사무실.육건우는 자료를 책상에 던지고는 화가 나서 일어나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임다희를 노려봤다.“너 혹시 남태준 스파이야?”임다희가 미소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그럴 리가 있나요? 우리는 같은 배에 탄 사람이잖아요. 내가 남태준을 도와서 얻을 수 있는 게 뭔데요? 난 단지 애매한 단서만 줬지 실질적인 증거를 준 적은 없어요.”“요즘 사복 경찰이 계속 우리 촬영장 밖을 배회하고 가끔 항공사진 드론이 공중을 선회하고 또...”육건우는 책상으로 가서 서류뭉치를 집어던졌다.“이건 전부 최근 경찰들에게 적발된 물건이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젠장!”임다희는 긴장해서 침을 삼키고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육건우는 분노하여 임다희를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네 신분을 잊지 마. 내가 너를 도와 남태준과 그 여자를 갈라놓겠다고 약속했고 그 동생까지 함정에 빠뜨렸어. 그런데 그 여자가 지금 나를 고소했다고. 젠장.”임다희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제가 어떻게 사장님의 큰 은혜를 잊겠어요? 다만... 저는 다시 전 남자친구와 재결합하고 싶어요. 그런데 하필 태준이가 마약 경찰이잖아요. 그래서 저... 이 일에서 손 떼고 싶은데 보스에게 사정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육건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임다희가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그해 남태준과 요트에서 탈출한 뒤 남태준은 그녀 때문에 다시 잡혀가 바다에 빠져 하마터면 숨질 뻔했지만 그녀는 사실 안전하게 귀국할 방법이 없었다.배후의 빅보스가 바로 그녀를 죽이려고 했지만 육건우가 빅보스에게 사정을 해서 그녀에게 살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그녀의 연예인 신분을 이용하여 마약을 갖고 귀국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그녀는 마지못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십여 킬로그램의 마약을 촬영장 카메라 기둥에 숨긴 후 요트를 타고 귀국했다.그 이후로 그녀는 마약밀매 조직의 일원이 되었고 매번 물건을 가져오거나 몸을 헌신해야 했다.임
꽃가게 앞을 지날 때 남태준이 걸음을 멈추었다.“지우야. 나...”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는 재빨리 그를 끌고 나가 그의 팔을 껴안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부질 없는 곳에 돈 낭비하지 말아요.”“여자들은 다 꽃을 좋아하지 않아?”지우에 의해 팔이 단단히 조여진 남태준은 아주 편안했고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 번졌다.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안 좋아해요. 굳이 사주고 싶다면 차라리 다육식물을 줘요. 기르기도 쉽고 번식도 할 수 있잖아요.”“가방의 품질, 브랜드, 가격 중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가격이죠.”남태준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소비 관념과 가치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또 물었다.“다이아몬드와 금 중에 뭐가 좋아?”“금이요.”지우가 고민도 없이 대답하자 남태준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좋아. 알겠어.”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을 때 흥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우야!”지우가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더니 그녀를 부른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바로 그녀에게 맞선 상대를 소개해 준 중매인이었다.그녀는 빠르게 남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놀라움과 설렘이 가득해 말했다.“어쩐지 내가 그렇게 좋은 남자들을 소개해줘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니. 알고 보니 눈이 이렇게 높았었네? 남편 어디 사람이야? 누가 소개해줬어?”지우는 어색하고 난처해하며 웃어 보였다.“친구가 소개해줬어요.”말하자면 백완자가 그들을 소개해 준 셈이었다.“외모도 빼어나고 큰 기에 몸매도 좋네. 어디 사람이야? 무슨 일 해?”역시 가십에 관심이 많은 중매인이었다.남태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지 않았지만 지우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안성 사람이에요. 아주머니, 제가 얼른 가서 밥해야 해서요. 다음에 얘기 나눠요.”“안성 좋지! 큰 도시 사람이네!”지우는 남태준의 손을 잡고 서둘러 떠났다.그녀는 매우 급하게 걸었지만 남태준의 얼굴에는
지우는 긴장되어 귀가 빨개졌다.“싫어?”남태준은 그녀의 진심을 떠보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와 재결합하고 싶은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의 허벅지에 몸을 기울여 앉았는데 긴장해서 등이 약간 뻣뻣했다.남태준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덥석 끌어안고 뒤로 기댔다.지우는 그의 튼실한 가슴에 완전히 엎드렸고 몸이 나른해졌다. 수줍고 난처해 감히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그의 품에 안겨있는 느낌은 아주 편안하고 심장이 왠지 모르게 떨리면서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만약 네가 불편하거나 거부감이 든다면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남태준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갖고 싶었지만 그녀가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그 말을 들은 지우는 조바심이 났다.그녀는 남태준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그의 깊고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나 불편하지 않아요. 거부감도 들지 않고요.”“그러니까 너 지금...”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가 갑자기 입을 맞추었다.그러자 남자는 움찔했다.지우는 눈을 감고 두 손을 천천히 남자의 어깨에서 뒤로 걸어 목을 감은 뒤 수줍고 서툴게 그의 따뜻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그녀는 심장이 천둥처럼 뛰었다.남태준은 몇 초 동안 멍해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마음은 더없이 흥분되었다.그는 지우의 뒤통수를 낚아채 옅은 키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의 입술과 혀는 그녀의 어금니를 비틀어 열고 곧장 달려들어 여자의 혀와 한데 엉켰다.“음!”지우는 그의 공세에 못 이겨 수줍은 소리를 냈다.그동안의 갈망과 그리움을 남태준은 한숨에 모두 보상받고 싶은 심정이었다.지우를 꽉 껴안고 격렬하고 난폭한 키스를 계속 퍼부었다.긴 키스가 이어지고 지우는 입술이 다 아프고 호흡이 가쁜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남자의 가슴을 밀면서 고개를 뒤로 뺐다.남태준은 아쉬운 듯이 그녀를 놓아주었다.두 사람은 눈을 감고 서로 이마를 맞댔고 거친 호흡을 나누며 뜨거운 기운이 감돌
지우가 부랴부랴 그를 불렀다. “아니요. 나 안 더워요.”남태준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놓았다.그녀의 영롱한 큰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맑고 깨끗했으며 매력적이었다.지우는 잔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어 물었다. “태준 씨가 임다희와 사귀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남태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지우는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남태준에게 건넸다.순간, 지우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이미 헤어진 이상 그와 다른 여자에 관해 물어볼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참지 못했다.확실히 묻지 않으면 그녀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비록 죄책감을 느끼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다만 이때 그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은 그녀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아 보일 수 있었다.모두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저지른 일이지만 그녀는 동생의 취업을 위해 목적을 갖고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지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뉴스를 본 남태준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긴장하며 설명했다.“지우야. 나와 다희 그런 사이 아니야. 나 믿어줘.”현재 임다희는 그의 정보원이기 때문에 보안 및 기밀 유지 계약으로 인해 임다희의 신분과 작업을 기밀로 유지해야 했으므로 지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지우가 자신을 믿지 못할까 봐 초조하게 이마를 짚고 죽을상이 된 얼굴로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또 불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지우를 바라봤다.지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여자가 먹여준 음식 먹었어요?”“그저 보통 친구와 밥 한 끼 먹은 거야. 나와 다희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 아니야.”“안 먹었어요?”“응. 거절했어.”“아.”지우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오므렸다.그러자 둘 다 침묵에 빠졌다.남태준이 지우를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
스쿠터를 타고 남태준의 집에 도착한 지우는 고개를 들어 한낮의 햇살을 올려다보았다. 이 시간에 그는 아마 출근 중이겠지?너무 일찍 온 것 같아서 그녀는 입구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차를 돌려 떠날 준비를 했다.그녀가 막 떠나려던 참에 남태준이 문을 열고 나왔고 그는 지우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성큼성큼 앞으로 쫓아가며 불렀다.“지우야!”지우는 차를 세우고 그를 뒤 돌아봤다.마음이 격해진 남태준은 몇 걸음 만에 지우 곁으로 달려가 뜨거운 시선을 내뿜으며 다정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야?”방금까지만 해도 용기가 넘치던 지우는 그를 만난 순간 맥이 풀리며 긴장해서 물었다.“출근 안 했어요?”“오늘 휴식이야.”남태준은 둘 곳 없는 손을 주머니에 천천히 찔러 넣었다지우는 부끄러워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왠지 모를 애틋한 감정이 마음속에 번져 그녀를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만들었다.“어디 나가요?”지우가 묻자 남태준은 고민 없이 말했다.“아니. 나 아무 일도 없어. 들어가 앉을래?”지우가 고개를 돌려 집을 보니 또 긴장감이 감돌았다.머릿속에 지난번 장면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뭐 물어보려고 왔어요. 물어만 보고 갈 거예요.”묻기만 하고 바로 간다?남태준은 너무 아쉬웠다.헤어진 후 지우가 먼저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태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여기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서 너무 더워.”지우도 고개를 들어 눈 부신 햇살을 보며 생각했다.‘이 남자가 햇볕에 약하다고?’그리고 남자의 건강한 구릿빛 피부를 보니 평소에도 햇볕을 많이 쬐는 것 같았다.지우는 몇 초 동안 고민하다가 차를 옆으로 몰고 가서 멈추고 가방을 들고 그의 앞에 다가갔다.그러자 남태준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그녀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걸어가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오신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임다희가 육건우의 범죄 증거를 입수했으니 네가 가서 가져와. 난 오늘 중요한 일이 생겼으니 방해하지 마
“육건우가 지금 나랑 같이 거물을 만나러 가자고 하는데 네가 찾는 그 신비로운 사람인지 모르겠어. 와볼래?”남태준은 생각지도 않고 말했다.“주소 보내.”“좋아.”전화를 끊은 남태준은 지우의 메시지를 잊고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이 밤.지우는 휴대전화를 안고 남자의 답장을 기다렸지만 밤새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벌써 두 번째였다. 남태준이 그녀에게 두 번이나 답장하지 않았다.지우는 마음이 완전히 뒤숭숭해져서 남태준이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는지 확신이 없었다.그에게 재결합을 청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그렇게 평온해 보이는 이틀이 지났다.두 사람은 서로 연락하지 않았고 지우는 평생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남태준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고 그와 임다희가 도대체 무슨 사이인지 계속 생각했다.송수빈이 자주 가던 커피숍으로 지우를 불렀고 지우는 일할 마음이 없어 컴퓨터를 보며 멍하니 있었다.송수빈은 한창 일하다가 다시 휴대전화를 들고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문득 송수빈이 소리쳤다.“지우야. 네 전 남자친구 연예 뉴스에 나왔어!”지우는 정신을 차리고 긴장해서 고개를 내빼고 기웃거렸다.송수빈이 핸드폰 액정을 그녀 앞에 널어놓은 채 허탈한 표정으로 지우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지우는 그 안의 사진과 글을 보고 움찔 놀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남태준과 임다희가 한 레스토랑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고 임다희가 남태준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다정한 장면이 찍힌 것이었다.제목은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임다희, 다정하게 음식을 먹여주다.’였다.송수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나무랐다.“내가 정말 사람을 잘못 봤어. 남 대장님 너랑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전 여자친구랑 만나고 있어? 이거 환승 연애 아니야? 쓰레기!”지우는 가뜩이나 마음이 아팠는데 송수빈이 남태준을 쓰레기라고 욕하는 것을 듣자 그녀는 더욱 괴로워하며 감싸기 시작했다.“그냥 밥 한 끼 먹은 것뿐이잖아? 그게 뭐? 요즘 기자들 직업정신 없어서 사진 한 장으로도 아
지우는 눈물을 흐릿하게 머금은 채 일어나서 버럭 소리쳤다.“다른 사람에게 빌붙을 생각만 하지 말고 독립해야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서 이익을 얻을 궁리만 해? 네가 그러고도 남자야?”욕을 먹은 지성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진효연은 아들이 아까워 남태준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지우를 야단쳤다.“지금 그게 동생에게 할 소리야? 지성이가 왜 남자답지 못하고 왜 독립적이지 않은데? 지성이는 그저 좋은 직장 찾고 싶은 거잖아. 게다가 태준이가 남이야? 지성이 미래의 매형인데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잖아?”남태준은 놀라서 어리둥절했다.지우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라 화를 냈다.“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 그런 사이 아니야!”“밥 안 먹어!”지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먹이며 말하고는 식탁을 빠져나와 방으로 가더니 쾅 하고 방문을 닫았다.진효연은 그제야 반응하고 약간 난처한 표정으로 남태준을 보았다.남태준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두 사람 아직 화해 안 했어?”진효연이 조심스럽게 묻자 남태준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이제 저희 반대 안 하시는 거예요?”진효연이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나 반대 안 해. 내가 허락해서 두 사람 이미 다시 만나는 줄 알았어.”진효연은 말을 잇지 못하더니 문득 쑥스러웠다.남태준이 지우의 남자친구가 아니라면 방금 그녀의 부탁은 확실히 좀 지나쳤다.지금 남태준은 마음속에 돌이 박힌 듯 숨이 막혔다.이따금 전해지는 괴로움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차라리 지우가 어머니의 반대 때문에 그와 헤어졌길 바라고 있었다.지금 보니 지우의 어머니는 두 사람을 동의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지우는 정말 자신의 이유 때문에 헤어지자고 했을까?단순히 그를 사랑하지 않고 그에게 아무 느낌이 없어서?남태준은 맛을 느낄 수 없는 식사를 했다.그가 떠날 때까지 지우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그는 차를 몰고 넓은 거리를 무작정 누볐고 마음이 아프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뚜뚜.메시지 벨이 울렸다.
남태준은 당연히 진효연의 뜻을 알았다.그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진효연은 자기 자식을 너무 사랑했고 딸은 결국 시집갈 것이고 평생 그녀와 함께할 수 없으므로 아들에게 더욱 마음이 기울 것이다.가난한 사람 중에는 가식적인 사람이 많았다.하지만 본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진효연이 남태준은 마음에 들었다. 무슨 생각이든 마음에 숨겨두지 않고 바로 표현할 줄 알았으니.남태준이 여유롭게 말했다.“아주머니, 지성이가 공무원이 되려면 반드시 공무원 시험을 쳐야 해요. 통과해야만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어요.”진효연은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공무원 시험이 어디 쉽나.”“만약 공무원이 되기 싫으면 안성에 가도 돼요. 제가 가족들한테 회사에 맞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할게요.”진효연은 싱글벙글 웃으며 남태준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고마워 태준아. 내가 정말 많이 고마워.”지성도 기뻐했다.“고마워요 형.”지우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밥 먹을 기분이 없어 수저를 놓았다.그녀는 아직 남태준의 여자친구가 아닌데 그녀의 가족은 흡혈귀처럼 그에게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관계가 더 가까워지면 앞으로 어떤 무리한 요구를 제기할지 모른다.지우는 지성을 가리키며 경고했다.“너 못 가.”진효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지우를 쳐다보며 불쾌하게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지성도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내가 왜 못 가? 누나도 내가 나가서 돈 벌기를 바라잖아.”지우는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면접 보고 들어가는 건 되는데 낙하산은 절대 안 돼.”“왜?”지우는 제대로 된 신분으로 자존감을 갖고 남태준과 만나고 싶었다. 그의 도움을 받으며 난처한 위치에 처 하고 싶지 않았다.“그냥.”“내가 언제 누나더러 도와 달래? 난 태준이 형에게 부탁했어. 게다가 형도 흔쾌히 수락했고.”“너 바보니? 일자리도 혼자 못 찾아?”“내가 졸업한 대학교가 평범하잖아. 취업이 어려운 요즘 세상에 대기업 들어가는 일이 어디 쉬운 줄 알아?”“그래도 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