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은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동영상도 친자확인 검사도 전부 가짜일 수 있지만 나의 시간과 기억들은 가짜일 수가 없지.”그녀는 백하린에게 말하고 돌아서서 현장의 모든 사람들을 마주했고 시선은 남하준에게 떨어졌다.남하준의 따뜻한 눈빛을 보며 안정감과 충분한 용기를 얻었다.오늘 성공하든 실패하든 남하준만 있으면 그녀는 두렵지 않았다.정안은 목을 축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백완자이고 올해 25살이에요. 본명은 백하린이고 본 국적은 M 국 사람이며 백진 어르신 손녀입니다. 영상에 나온 두 분은 제 부모님이신데 지금 행방이 묘연합니다.”그때 백진이 부주의한 틈을 타 여은수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 무대로 뛰쳐나왔다.“헛소리! 성형 중독인 당신이 어떻게 내 손녀야?”‘아, 할머니!’리듬이 끊긴 정안은 어쩔 수 없는 표정으로 여은수를 바라보았다.“할머니, 나예요. 나 열 살 때 할머니 좋아하는 가수 보려고 온 가족 몰래 나 데리고 외국으로 가서 그 가수에게 10억짜리 차도 선물했잖아요?”여은수는 멍해졌다. 이건 분명 그녀와 손녀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백진이 노발대발하며 달려와 여은수를 손가락질했다.“이 망할 여편네가. 그 남자한테 10억을 썼어?”정안이 급히 위로했다.“할아버지, 여가수예요. 여가수!”여은수는 이미 백진의 화를 돌볼 겨를도 없고 누구에게 돈을 썼든, 비밀 따위는 더더욱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는 비틀거리며 아찔한 걸음으로 뒷걸음질 쳤다.“진짜 내 손녀라고?”정안과 백하린이 동시에 손을 뻗어 여은수를 잡으려 했지만 백하린이 먼저 받아 정안의 두 손이 허공에 멈췄다.“할머니, 이 여자 헛소리하는 거예요. 이런 얘긴 인터넷에 뒤지면 다 나와요.”백하린이 설명하자 정안이 덧붙였다.“할머니, 어릴 때 있었던 일 아무거나 물어보세요. 나 다 기억하니까.”여은수는 눈시울이 빨개져서 백하린을 보고 또 정안을 바라보았다.정안은 한숨을 내쉬고는 예지로운 판단이 어려운 할머니를 외면한 채 계속 하객들을 보며 말
“백하린 맞네!”진이수가 감격하며 말했다.모두가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특히 남씨 가문 사람들은 이미 넋을 잃고 무대 위의 정안을 바라보며 놀라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누군가는 흥분하고, 누군가는 후회하고, 누군가는 믿지 않고 있었다.“하준아.”누군가가 소리쳤다.“어릴 적부터 하린이랑 함께 자란 네가 가장 잘 알 거 아니야? 네가 말해봐. 저 여자 말이 사실이야?”가장 친숙한 세 글자에 남하준은 죄책감이 밀려왔다.그도 오랫동안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남하준이 확신에 차서 말했다.“백하린 맞아요.”이 말이 나오자 아무도 정안의 신분을 의심하지 않았다.곧이어 누군가가 속삭였다.“어쩐지! 남하준이 왜 저 여자랑 결혼하나 했어. 이제야 이해가 되네.”여은수는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고 백하린은 어찌할 줄 모르며 그녀를 지켜줄 유일한 할머니를 잡고 울었다.“할머니, 나 믿어요. 나야말로 할머니 손녀예요. 저 여자는 사기꾼이란 말이에요. 지금 거짓말하고 있어요.”“엄마 아빠랑 자주 영상통화 했던 거 다 잊으셨어요?”“그리고 친자확인 검사를 어떻게 조작해요? 저 영상도 진짜예요. 엄마랑 아빠가 설마 자기 딸을 못 알아보겠어요?”여은수는 정신을 차리더니 백하린의 옆에 서서 허리를 쭉 펴고 정안을 의심했다.“이봐요들. 내 아들과 며느리는 전에 우리랑 자주 영상 통화했어요. 손녀도 자주 얼굴을 비췄고. 한번이 아니라 아주 여러 번! 설마 내 아들과 며느리가 거짓말했겠어요? 설마 자기 딸을 못 알아보겠어요?”여은수는 또 백진을 가리켰다.“우리 영감도 몇 번이나 함께 영상 통화했어요. 내 손녀가 10년 동안 M국에 오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우리 하린이는 원래 이렇게 생겼어요.”“영감, 어서 와서 설명 좀 해봐.”여은수는 조급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우리 손녀가 사기꾼으로 몰리고 있잖아? 친자확인 검사도 이미 했는데 설마 과학을 안 믿고 자네 눈을 믿는 거야? 자기 아들과 며느리도 못 믿는 거냐고!”화가 나서 온몸이 불편해진 백진은 욱신거
정안은 상황이 통제 불능으로 흘러가는 것을 발견했다. 무대 아래의 사람들은 백하린의 말을 믿기 시작했고, 여은수의 변명을 추가하면 정안의 말은 그저 허튼소리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그때 누군가 소리쳤다.“두 번의 DNA 결과가 모든 걸 말해주는 거 아닌가요? 과학만큼 더 정확한 게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저 여자 어머니까지 증언하고 있잖아요.”누군가 정안을 가리키며 거리낌없이 말했다.“저분은 이미 당신이 저분 친딸이라는 DNA 검사 결과 두 개를 갖고 있어요.”현장은 의론이 분분하여 떠들썩했다.정안이 엄숙하게 말했다.“과학은 당연히 믿을 수 있지만 의학은 조작할 수 있죠. 진화연 여사는 제 어머니가 아닙니다. 제가 3년 동안 저분 딸이 된 건 모두 저분 친딸의 모함이었죠.”“이 여자는 저를 사칭하고 제 가족을 훔쳐 갔어요.”정안은 백하린을 가리키며 또박또박 말했다.“심지어 기억을 잃은 저를 자기 가족에게 떠넘겨 대신 효도하게 했죠.”백하린이 노기에 차서 소리쳤다.“거짓말! 난 DNA 검사도 있고 엄마 아빠랑 함께 있은 영상도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 증언도 있고 삼촌 백인호도 증명해줄 수 있어.”이것들은 백하린이 진짜라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하지만 정안은 오직 기억밖에 없었다.정안으로 인해 약혼식이 웃음거리가 된 것을 보고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 소우빈의 아버지는 사건을 빨리 수습하려고 경찰 고위 간부에게 말했다.“자네 사람을 들여보내 현장을 정리하고 식이 끝나면 몰래 조사하게.”“네, 시장님.”잠시 후 경찰 두 명이 들어와 무대에 올라 정안 앞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였다.“저희랑 경찰서에 가주시죠.”정안은 안색이 굳어지며 멍해졌다.지윤은 진화연을 놓고 달려가 정안의 앞을 가로막았다.“당신들이 잡아야 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저 사기꾼이에요.”“저희랑 경찰서에 가시죠. 여긴 시장님 가족분의 약혼식이지 사건을 조사하는 곳이 아닙니다.”지윤은 고개를 돌려 정안을 바라보았다.그녀는 그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뜻으로 천천히
그때, 군전 그룹의 무장 대열이 질서 정연하게 식장으로 뛰어들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갑작스런 군대에 놀라 끽소리도 못했고 총기 행렬이 식장을 에워쌌다.류청은 두 명의 총기를 든 병사를 데리고 천천히 무대로 올라갔다.소우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무대 아래의 남하준에게 물었다. “이게 지금 무슨 경우죠? 남 장군님?”남하준은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안성 시장이 남하준 앞에 다가가 미소를 지으며 예의 바른 표정이었지만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장군님, 오늘은 제 자식 약혼식입니다. 군대를 이끌고 제 귀빈들에게 총을 들이미는 건 너무 제 체면을 구기는 일이죠.”남하준은 여전히 한마디도 하지 않고 쌀쌀한 태도를 보였다.경찰 서장이 남하준 앞에 다가와 오만하게 말했다.“남 장군, 이젠 서장인 나도 안중에 없는 건가?”“그게 무슨 말씀이시죠?”“모함이든 사기든, 이건 민사 사건이니 우리 쪽 소관이네. 국방부 장군이 이젠 내 구역에까지 손을 대는 건가?”남하준이 류청에게 눈치를 주자 류청은 여은수 옆에서 백하린을 끌어당겨 그녀를 중범죄자로 몰아 땅에 처박았다.백하린은 당황해서 살려달라고 소리쳤고 여은수는 화들짝 놀라 류청을 죽어라 때렸다.“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당장 내 손녀 놔줘!”소우빈의 아버지가 화가 나서 남하준을 향해 소리쳤다.“이건 엄연한 월권입니다!”경찰서장은 더욱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다.“남하준! 네가 감히!”남하준은 두 권력자의 분노에 침착하게 대응했다.“저 여자는 사기꾼입니다. 게다가 세트리아에서 보낸 간첩이죠.”이 말이 나오자 시장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당황한 나머지 넋을 잃고 경찰서장을 쳐다보았다.경찰서장도 깜짝 놀랐고 현장이 떠들썩해졌다.“세상에 간첩이래! 이건 사형감이야.”“세트리아에서 보낸 간첩이라잖아. 어쩐지 국방군이 출동하더라니.”“예비 며느리가 간첩이라니. 시장님도 재수가 없지. 분명 정치 심사받을 거야.”“그러게 말이야. 간첩이랑 결탁했는지도 모르잖아
지우는 진화연 곁으로 가서 그녀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저 여자는 정말 서다인이 아니에요. 방금 잡혀간 사람이 바로 진짜 다인이에요. 아주머니 친딸도 못 알아보시는 건 아니죠?”“간첩이 어떻게 내 딸이야!”진화연은 통곡하며 괴로워했고 슬픈 눈동자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여전히 아쉬워하며 정안을 바라보았다.“너야말로 내 딸이야. 다인아! 네가 내 딸 맞잖아!”지우는 진화연을 부축하고 떠났다. “울지 마세요. 아주머니 딸이 아니라 화가 지완이에요. 피아노도 칠 줄 알고 8개 국어도 구사할 수 있고 천문 지리에 밝고 화학 무기에도 정통해요. 아주머니 딸이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우리 현실을 받아들여요.”진화연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녀는 가면서 정안을 바라보았다. 지난 3년간의 모녀 인연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하객들은 모두 소씨 가문의 안배로 천천히 떠나갔고 여은수는 구석 소파에 앉아 축 늘어진 이마를 짚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마음이 무겁고 우울해 보였다.정안은 지윤과 함께 천천히 여은수 곁으로 걸어갔다.“할머니.”정안이 조심스럽게 인사했다.여은수는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반짝이며 여전히 슬픔 가득한 눈이었다.하지만 이 감정들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잡혀간 간첩 때문이었다.심지어 여은수의 눈에서 정안이 그녀의 손녀를 해쳤다는 분노가 가득해 보였는데 정안은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정안은 몸을 쪼그리고 앉아 두 손으로 그녀의 무릎을 만지고 그녀의 눈가를 올려다보며 속삭였다.“나야말로 할머니 손녀잖아요. 나 성형한 적 없고 원래 이렇게 생겼어요. 자세히 한번 봐봐요. 어릴 때랑 많이 닮았죠? 엄마랑 많이 닮았죠?”여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안의 손을 멀리 밀어내고 일어서더니 차갑게 돌아서 천천히 떠났다.지윤은 고집불통인 이 할머니를 보며 화가 나서 이가 근질근질하여 욕이 나갈 뻔했다.정안은 부랴부랴 일어나 떠나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가슴이 미
남하준은 씁쓸하게 웃더니 말이 없었고 기가 푹 죽었다.정안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남하준의 기분이 가라앉는 것을 보고 그녀도 슬펐지만 반드시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하준 오빠.”정안은 가슴이 찌릿찌릿 아팠다. 나른한 목소리에 고통스러운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나 집에 가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상황을 잘 설명해 드리고 Z국으로 돌아갈 거예요.”남하준의 얼굴에 갑자기 먹구름이 드리웠다. 깊고 어두운 눈에는 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호흡도 흐트러져 오랫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그저 가만히 정안을 바라보기만 했다.그렇게 쥐 죽은 듯한 고요가 흘렀다.정안은 고개를 숙인 채 그를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 가문 재산 다 포기했어요. 그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오래 사시기를 바랄 뿐이에요. 앞으로 두 분 재산을 나라에 기부하든, 다른 사람에게 주든 난 다시 M국에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남하준은 입술을 살짝 벌리고 숨을 쉬더니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부모님은 안 찾아?”“찾아야죠. 아직 살아계신다면 아마 Z국에 있을 거예요.”“너...”남하준은 괴로운 듯 입을 열었지만 곧 목이 따갑고 심장이 욱신거렸다. 더 이상 그녀를 만류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가슴에서 북받치는 고통이 순간 밀려왔고 자신의 눈을 마주치지 않는 정안을 바라보며 남하준은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반짝였다.그는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들어 별이 가득한 천장을 바라보았다.주위는 온통 시끄러운 소리였고 그들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천장을 올려다보는 남하준은 가슴을 찌르는 고통이 밀려와 애써 눈물을 억누르고 걷잡을 수 없는 안타까움과 슬픔에 빠졌다.한참 후 하객이 다 떠나고 남은 종업원이 짐을 정리하고 있다.조용하고 텅 빈 식장, 지윤은 이미 멀리 물러나 안타까운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남하준은 뜨거운 입김을 내뿜더니 말했다.“완아. 서로 일 얘기는 하지 말고 아
정안은 움찔하더니 그대로 몸이 굳었다.눈물이 그녀의 시선을 흐리게 했고 그녀의 마음은 쥐어짜는 듯 아팠다.알고 보니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그녀가 바로 남하준이 오랫동안 찾던 사람이라는걸. 그건 정통 어르신이 그에게 준 중요한 임무였다.그런데도 왜 모른 척 했을까?정안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다가 두 손을 천천히 위로 올려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어깨에 파묻고 흐느꼈다.“미안해요. 오빠.”남하준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내가 얼마나 바란 줄 알아? 네가 나한테 호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부득이한 상황 때문에 나 거절했길.”정안은 이미 그의 품에 안겨 숨이 턱턱 막히도록 무아지경으로 통곡하고 있었다.얼마나 오랫동안 그의 품에 안겼는지 몰랐다. 따스하고 편안한 그의 품은 그녀에게 안정감을 주었고 커다란 미련도 주었다.그녀는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그의 품에 평생 기대고 싶었다.지금까지 이토록 이 남자를 욕심냈던 적이 없었다.“도련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류청의 목소리가 들렸고 정안이 반응하기도 전에 남하준은 그녀를 놓아주고 결연히 돌아서서 성큼성큼 떠났다.그는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눈빛 하나 없이 이렇게 단호하게 그녀를 놓아주었다.그의 뒷모습은 여전히 늠름하고 멋있었다.그러나 그는 자기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정안은 넋을 잃고 있었다.눈이 빨갛게 붓고 약간 따끔거릴 정도로 울어 내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지윤은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도중에 방해하지 않았다.백씨 저택에 돌아오니 집사와 도우미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할아버지의 명령 때문인지 뉴스의 힘인지 모르지만 이미 전 세계가 그녀의 신분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모두 그녀가 진짜 백씨 가문 손녀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할머니만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여은수는 식음을 전폐하며 방에 하루 종일 갇혀 있었다.다음날, 음식을 먹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방을 나서거나
“그건 할머니가 너무 자주 오셔서 확실히 공부에 방해됐단 말이에요.”“그게 할머니가 널 사랑하는 방식이었어. 근데 네 행동은 확실히 할머니에게 상처를 주었지.”정안은 여태껏 모르고 살았는데 할아버지가 말씀하시자 마음속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백진이 말을 이었다.“할머니가 사준 선물을 넌 뜯지도 않고 사물함에 넣어뒀어.”정안은 말이 없었다.그녀는 할머니가 주는 선물을 싫어한 것이 아니라 정말 그런 선물에 관심이 없었다.그녀는 공부, 독서, 기구, 천문지리, 지식에 관한 모든 것을 사랑했지만 할머니는 다양한 옷과 치마, 곰인형, 장신구, 보석, 가방, 신발, 사치품, 심지어 화장품까지 선물하셨다.“할머니가 너랑 얘기하면 몇 마디 하기도 전에 넌 인내심을 잃었어.”백진은 아내의 지난 일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하지만 나랑은 밤새 지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지.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고생이 심했을 거다. 할머니는 가방끈이 짧아 집안의 자질구레한 이야기와 이웃의 가십거리만 얘기했지. 하지만 그게 할머니 세상이었어.”정안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마음이 괴로웠다. 한 번도 자신의 그런 행동들이 할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그래도 할머니는 널 사랑했어. 널 너무 사랑해서 가짜 손녀가 오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거다.”“가짜 손녀는 더 이상 공부에 몰두하지 않고, 할머니가 알아보지도 못하는 연구도 안 하고 또 할머니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도 하지 않으니까.”“말주변이 좋아 늘 할머니를 기쁘게 해줬어. 할머니가 입까지 가져다준 간식도 먹고,할머니가 사주신 선물도 잘 받고, 할머니가 말하는 가십거리도 잘 들어줬어. 할머니에게 달라붙어 뽀뽀하고 안아주고, 네가 지루하고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같이 해줬거든. 그게 바로 네 할머니가 원하는 손녀였어.”“너를 못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커서 돌아온 손녀를 받아들일 수 없는 거지.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자신을 싫어하는 손녀를 말이야.”정안은 고개를 들어 두 손으로 눈물
“그래 그럼.”남태준은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 아무리 쓸쓸하고 힘들어도 그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었다.지우가 그의 곁에 있는 한 그는 반드시 그녀의 마음, 그녀의 사랑, 그녀의 모든 것을 기다릴 수 있었다.그때, 입구의 벨이 울렸다.지우는 궁금한 얼굴로 남태준을 보았고 남태준도 입구를 보았다.“이 시간에 누구죠?”지우가 묻자 남태준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아마 신우일 거야.”“먼저 먹고 있어.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볼게.”말하면서 그는 거실로 나와 문을 열었다.순간 남태준의 안색이 일그러졌다.바로 임다희였다.방금 차에서 내린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지만 이대로 남태준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다시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찾아왔다.“태준아 난...”남태준은 바로 나가서 문을 닫고 임다희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집에 지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두 사람이 재결합했다는 것을 임다희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임다희가 알면 지우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고 불필요한 문제만 일으킬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그의 집에 있다는 것을, 임다희가 지우와 재결합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여긴 왜 왔어?”남태준은 불쾌한 듯 묻더니 그녀의 팔을 끌고 마당으로 향했다.임다희는 남태준의 언짢음과 난폭함을 느끼고 말했다.“너랑 다시 잘 얘기하려고 찾아왔어. 방금 너 쓰레기라고 욕한 거 사과할게. 너무 슬퍼서 홧김에 내뱉은 말이지 진심이 아니었어.”“나 쓰레기 맞아.”남태준은 그녀를 마당 밖으로 끌고 나가 철제 난간을 나와 철문을 걸어 잠그고 마당 바깥 입구에 서 있었다.“우리 친구는 될 수 있지만 연인으로는 얘기가 이미 끝났어.”“우리 앉아서 얘기 좀 해. 우리 다시 시작하자.”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의 덤덤한 눈을 올려다보며 울먹였다.“나 많이 변했어. 더 이상 이전의 임다희가 아니라고. 나 너를 많이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남태준은 몇 초 동안 어이없어 하더니 엄숙하게 말
지우는 예전에는 자신이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게 되었다.그녀는 남태준 같은 유형의 남자를 좋아했다.이런 성격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좋아함으로써 그의 성격도 좋아하게 된 것이다.지우는 부끄러운 듯 그의 목을 감싸고 나지막이 속삭였다.“아니요. 난 당신 같은 돌직구가 좋아요.”남태준은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맑고 큰 눈과 촉촉한 입술을 보니 저도 모르게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마음이 심란했다.그는 목젖을 위아래로 굴리며 그녀의 엉덩이를 한 손으로 감싸 안고 일어서더니 매력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가자. 밥 먹으러 가자. 다른 일에 주의력을 돌리지 않으면 내가 널 잡아 먹을 것 같아.”지우는 부끄러워하며 그의 어깨에 고개를 푹 묻었다.남태준은 그녀를 안고 식탁 앞에 놓아주었고 식탁 위의 반찬 세 가지와 국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너 정말 요리를 잘하는구나. 먹기도 전에 군침이 돌 정도로 비주얼이 훌륭해.”지우는 기분 좋게 앉아 그에게 국을 떠 주었다.남태준도 따라 앉아서 젓가락을 들어 한 입 맛보더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정말 맛있어. 지우가 한 음식이 이렇게 맛있다니.”지우는 그가 맛있게 먹는 걸 보고 뿌듯해졌다.그녀가 만든 건 그저 일상적인 가정식 음식이었고 평범한 재료를 이용해 만든 조리 방법도 단순했다.갈비찜, 토마토 달걀 볶음, 청경채, 그리고 어두 무찌개였다.그러나 남태준은 세상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듯 싱글벙글했다.“내가 한 음식이 맛있다면서 그래도 나 음식 못하게 할 거예요?”지우가 궁금해서 묻자 남태준이 피식 웃더니 입에 든 음식을 삼키고 목을 축이고 말했다.“만약 네가 음식 만드는 거 좋아하고 취미라면 그리고 힘들지 않다면 해도 돼.”“하지만 네 취미도 아니고 임무를 완성하는 것처럼 한다면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거듭하며 네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어. 그러면 너도 힘들잖아.”남태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만지며 부드럽게 중얼거렸다
남자는 손으로 지우의 허리를 꼭 껴안고 눈빛은 뜨거웠다.“내 침대에서 좀 더 오래 자지 그랬어?”“네?”지우가 의혹스러운 듯 맑은 눈망울을 깜빡이며 어리둥절했다.“내가 돌아오면 같이 잘 수 있게.”지우는 얼굴이 살짝 뜨거워졌고 그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수줍게 중얼거렸다.“누구 좋으라고요!”“앞으로 나 밥해주지 마.”남태준은 그녀의 하얀 작은 손을 만지고 입가에 끌어당겨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왜요?”지우는 자신의 요리 솜씨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집에서도 늘 그녀가 요리했으니.“내가 돌아와서 하면 돼. 내가 바쁘면 요리사 부르면 되고.”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문지르며 안타까워하며 바라보았다.“내 여자친구는 요리나 집안일 같은 거 할 필요 없어.”그 말을 들은 지우는 호기심에 물었다.“그럼 여자친구가 뭘 해줬으면 좋겠어요?”남태준이 부드럽게 말했다.“정신적 지주 같은 역할? 나에게 네 일을 공유하고 내 일을 경청하고 각자의 일을 마친 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시시한 일을 했으면 좋겠어.”“뭐가 시시한 일인데요?”“영화 보고 밥 먹고 산책하고 쇼핑하고...”남태준은 말을 잇지 못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갑작스러운 키스에 지우는 저도 모르게 수줍은 소리가 목구멍에서 새어 나왔다.그의 키스는 뜨거웠고 큰 손은 천천히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끌어안아 그녀의 엉덩이를 안으로 오므렸다.진한 키스가 뜨거워질수록 지우는 그의 몸 반응이 점점 강렬해지는 것을 느꼈다. 앉은 위치가 애매해 커다란 것이 몸에 받치는 느낌이 들었다.그녀의 온몸은 저도 모르게 나른해지고 팔다리에는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 같고 아랫배가 공허해졌다.떨림, 수줍음 그리고 왠지 모를 두려움이 그녀를 도망치게 했다.그녀가 옮기려고 할수록 남태준이 그녀를 껴안고 더 바싹 달라붙었다.진한 키스가 불러온 욕망에 두 사람의 숨결은 가빠졌다.남태준은 천천히 그녀의 입술에서 떠나 그녀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제 목소리를 잃은 듯 쉰 목소리로 가볍게 중
“그럼...”임다희는 믿기 싫은 듯 눈물이 핑 돌았다.“내가 목숨 걸고 널 구한 건 내가 경찰이기 때문이야. 사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어.”“그럴 리 없어.”임다희는 분노하여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울먹였다.“나 절대 못 믿어. 나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날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어?”남태준은 긴 한숨과 함께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임다희, 난 널 위해 목숨을 버린 적 없어.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무슨 논리?”임다희가 눈물을 쓱 닦았다.“넌 그래도 내가 사귀었던 여자친구니까 측은한 마음에 그 요트를 떠나라는 것을 상기시켰을 뿐인데 네가 내 신분을 폭로한 거야.”남태준은 그녀를 구하려던 동기를 차근차근 분석해줬다.“네가 내 스파이 신분을 폭로하면서 우리 둘 다 위험에 빠졌어. 도망가야 하는 상황에서 경찰로서 난 절대 자기 살길만 도모하고 다른 사람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어. 경찰의 책임감으로 너 데리고 도망친 거야.”임다희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이해하기 어려웠다.남태준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죽을 뻔한 건 너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야.”지금 남태준이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 것은 그의 관대함 때문이었다.“너 지우 때문에 여기 와서 일하는 거야?”임다희가 눈물이 흐릿해져서 묻자 남태준이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맞아.”“하지만 지우가 너를 차버렸어.”임다희는 눈물을 닦고 고상한 자태를 뽐내며 조롱하듯 물었다.“이번에도 흔쾌히 승낙하고 깨끗이 잊은 거야?”남태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몇 초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질투가 많은 여자는 신중하게 대처해야 했다.“맞아. 깨끗이 잊었어. 이미 끝난 인연이고 지나간 사람을 놓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겠어? 이 세상에 여자가 수도 없이 많은데 한 나무에만 매달릴 필요 없잖아?”임다희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매섭게 말했다.“쓰레기!”그리고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더니 문을
사람은 기쁜 일이 생기면 기분이 상쾌한 법이다. 하루 종일 바빠도 지우와의 관계를 회복한 생각만 하면 속으로 은근히 기뻐 났다.남태준이 막 차 옆으로 다가갔을 때 임다희가 차 뒤에서 걸어왔다.“태준아.”남태준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 무슨 일이야?”“할 얘기가 있어. 아주 중요한 얘기야.”임다희는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타.”남태준이 쿨하게 대답하자 임다희는 그의 차에 올라탔고 남태준이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 안에서 남태준이 물었다.“어디서 얘기할래?”“너희 집.”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그건 안돼.”“아주 중요한 일이야. 반드시 사람 없는 곳에서 얘기하고 싶어서 그래.”임다희는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빛을 내뿜으며 엄숙하게 말했다.“마약 거래에 관한 얘기야.”“그럼 지금 얘기해.”남태준은 차를 길가에 세웠다.“차 안에는 우리 둘만 있으니까 안전해.”임다희가 앞뒤를 돌아보니 이 길은 행인도 없고 오가는 차량도 뜸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태준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려 하자 마지못해 핸드백을 열어 그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이 시간에 거래가 있을 거야.”그의 다년간 사건 처리 경험으로 볼 때, 이렇게 명확한 거래 장소와 시간은 임다희가 절대 알 수 없었다.이 정보가 가짜이거나, 누군가가 그녀에게 준 것이 틀림 없었다.“어디서 났어?”남태준이 묻자 임다희는 조금 켕긴 듯 대답했다.“건달인 친구가 알아낸 정보인데 내가 샀어.”남태준은 입꼬리를 꼬며 그녀의 거짓말이 좀 억지스러워서 계속 물었다. “네가 마약 형사도 아니고 이 정보를 왜 사는데?”“너 주려고.”남태준은 움찔하더니 침묵했다.임다희는 애정 어린 눈으로 남태준을 지그시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태준아, 우리 다시 만나자.”남태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뭐라고?”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울먹였다.“전에는 내가 미안했어. 네
지하 카지노 사무실.육건우는 자료를 책상에 던지고는 화가 나서 일어나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임다희를 노려봤다.“너 혹시 남태준 스파이야?”임다희가 미소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그럴 리가 있나요? 우리는 같은 배에 탄 사람이잖아요. 내가 남태준을 도와서 얻을 수 있는 게 뭔데요? 난 단지 애매한 단서만 줬지 실질적인 증거를 준 적은 없어요.”“요즘 사복 경찰이 계속 우리 촬영장 밖을 배회하고 가끔 항공사진 드론이 공중을 선회하고 또...”육건우는 책상으로 가서 서류뭉치를 집어던졌다.“이건 전부 최근 경찰들에게 적발된 물건이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젠장!”임다희는 긴장해서 침을 삼키고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육건우는 분노하여 임다희를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네 신분을 잊지 마. 내가 너를 도와 남태준과 그 여자를 갈라놓겠다고 약속했고 그 동생까지 함정에 빠뜨렸어. 그런데 그 여자가 지금 나를 고소했다고. 젠장.”임다희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제가 어떻게 사장님의 큰 은혜를 잊겠어요? 다만... 저는 다시 전 남자친구와 재결합하고 싶어요. 그런데 하필 태준이가 마약 경찰이잖아요. 그래서 저... 이 일에서 손 떼고 싶은데 보스에게 사정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육건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임다희가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그해 남태준과 요트에서 탈출한 뒤 남태준은 그녀 때문에 다시 잡혀가 바다에 빠져 하마터면 숨질 뻔했지만 그녀는 사실 안전하게 귀국할 방법이 없었다.배후의 빅보스가 바로 그녀를 죽이려고 했지만 육건우가 빅보스에게 사정을 해서 그녀에게 살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그녀의 연예인 신분을 이용하여 마약을 갖고 귀국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그녀는 마지못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십여 킬로그램의 마약을 촬영장 카메라 기둥에 숨긴 후 요트를 타고 귀국했다.그 이후로 그녀는 마약밀매 조직의 일원이 되었고 매번 물건을 가져오거나 몸을 헌신해야 했다.임
꽃가게 앞을 지날 때 남태준이 걸음을 멈추었다.“지우야. 나...”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는 재빨리 그를 끌고 나가 그의 팔을 껴안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부질 없는 곳에 돈 낭비하지 말아요.”“여자들은 다 꽃을 좋아하지 않아?”지우에 의해 팔이 단단히 조여진 남태준은 아주 편안했고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 번졌다.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안 좋아해요. 굳이 사주고 싶다면 차라리 다육식물을 줘요. 기르기도 쉽고 번식도 할 수 있잖아요.”“가방의 품질, 브랜드, 가격 중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가격이죠.”남태준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소비 관념과 가치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또 물었다.“다이아몬드와 금 중에 뭐가 좋아?”“금이요.”지우가 고민도 없이 대답하자 남태준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좋아. 알겠어.”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을 때 흥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우야!”지우가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더니 그녀를 부른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바로 그녀에게 맞선 상대를 소개해 준 중매인이었다.그녀는 빠르게 남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놀라움과 설렘이 가득해 말했다.“어쩐지 내가 그렇게 좋은 남자들을 소개해줘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니. 알고 보니 눈이 이렇게 높았었네? 남편 어디 사람이야? 누가 소개해줬어?”지우는 어색하고 난처해하며 웃어 보였다.“친구가 소개해줬어요.”말하자면 백완자가 그들을 소개해 준 셈이었다.“외모도 빼어나고 큰 기에 몸매도 좋네. 어디 사람이야? 무슨 일 해?”역시 가십에 관심이 많은 중매인이었다.남태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지 않았지만 지우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안성 사람이에요. 아주머니, 제가 얼른 가서 밥해야 해서요. 다음에 얘기 나눠요.”“안성 좋지! 큰 도시 사람이네!”지우는 남태준의 손을 잡고 서둘러 떠났다.그녀는 매우 급하게 걸었지만 남태준의 얼굴에는
지우는 긴장되어 귀가 빨개졌다.“싫어?”남태준은 그녀의 진심을 떠보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와 재결합하고 싶은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의 허벅지에 몸을 기울여 앉았는데 긴장해서 등이 약간 뻣뻣했다.남태준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덥석 끌어안고 뒤로 기댔다.지우는 그의 튼실한 가슴에 완전히 엎드렸고 몸이 나른해졌다. 수줍고 난처해 감히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그의 품에 안겨있는 느낌은 아주 편안하고 심장이 왠지 모르게 떨리면서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만약 네가 불편하거나 거부감이 든다면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남태준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갖고 싶었지만 그녀가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그 말을 들은 지우는 조바심이 났다.그녀는 남태준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그의 깊고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나 불편하지 않아요. 거부감도 들지 않고요.”“그러니까 너 지금...”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가 갑자기 입을 맞추었다.그러자 남자는 움찔했다.지우는 눈을 감고 두 손을 천천히 남자의 어깨에서 뒤로 걸어 목을 감은 뒤 수줍고 서툴게 그의 따뜻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그녀는 심장이 천둥처럼 뛰었다.남태준은 몇 초 동안 멍해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마음은 더없이 흥분되었다.그는 지우의 뒤통수를 낚아채 옅은 키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의 입술과 혀는 그녀의 어금니를 비틀어 열고 곧장 달려들어 여자의 혀와 한데 엉켰다.“음!”지우는 그의 공세에 못 이겨 수줍은 소리를 냈다.그동안의 갈망과 그리움을 남태준은 한숨에 모두 보상받고 싶은 심정이었다.지우를 꽉 껴안고 격렬하고 난폭한 키스를 계속 퍼부었다.긴 키스가 이어지고 지우는 입술이 다 아프고 호흡이 가쁜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남자의 가슴을 밀면서 고개를 뒤로 뺐다.남태준은 아쉬운 듯이 그녀를 놓아주었다.두 사람은 눈을 감고 서로 이마를 맞댔고 거친 호흡을 나누며 뜨거운 기운이 감돌
지우가 부랴부랴 그를 불렀다. “아니요. 나 안 더워요.”남태준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놓았다.그녀의 영롱한 큰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맑고 깨끗했으며 매력적이었다.지우는 잔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어 물었다. “태준 씨가 임다희와 사귀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남태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지우는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남태준에게 건넸다.순간, 지우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이미 헤어진 이상 그와 다른 여자에 관해 물어볼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참지 못했다.확실히 묻지 않으면 그녀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비록 죄책감을 느끼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다만 이때 그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은 그녀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아 보일 수 있었다.모두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저지른 일이지만 그녀는 동생의 취업을 위해 목적을 갖고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지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뉴스를 본 남태준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긴장하며 설명했다.“지우야. 나와 다희 그런 사이 아니야. 나 믿어줘.”현재 임다희는 그의 정보원이기 때문에 보안 및 기밀 유지 계약으로 인해 임다희의 신분과 작업을 기밀로 유지해야 했으므로 지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지우가 자신을 믿지 못할까 봐 초조하게 이마를 짚고 죽을상이 된 얼굴로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또 불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지우를 바라봤다.지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여자가 먹여준 음식 먹었어요?”“그저 보통 친구와 밥 한 끼 먹은 거야. 나와 다희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 아니야.”“안 먹었어요?”“응. 거절했어.”“아.”지우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오므렸다.그러자 둘 다 침묵에 빠졌다.남태준이 지우를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