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은 움찔하더니 그대로 몸이 굳었다.눈물이 그녀의 시선을 흐리게 했고 그녀의 마음은 쥐어짜는 듯 아팠다.알고 보니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그녀가 바로 남하준이 오랫동안 찾던 사람이라는걸. 그건 정통 어르신이 그에게 준 중요한 임무였다.그런데도 왜 모른 척 했을까?정안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다가 두 손을 천천히 위로 올려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어깨에 파묻고 흐느꼈다.“미안해요. 오빠.”남하준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내가 얼마나 바란 줄 알아? 네가 나한테 호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부득이한 상황 때문에 나 거절했길.”정안은 이미 그의 품에 안겨 숨이 턱턱 막히도록 무아지경으로 통곡하고 있었다.얼마나 오랫동안 그의 품에 안겼는지 몰랐다. 따스하고 편안한 그의 품은 그녀에게 안정감을 주었고 커다란 미련도 주었다.그녀는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그의 품에 평생 기대고 싶었다.지금까지 이토록 이 남자를 욕심냈던 적이 없었다.“도련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류청의 목소리가 들렸고 정안이 반응하기도 전에 남하준은 그녀를 놓아주고 결연히 돌아서서 성큼성큼 떠났다.그는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눈빛 하나 없이 이렇게 단호하게 그녀를 놓아주었다.그의 뒷모습은 여전히 늠름하고 멋있었다.그러나 그는 자기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정안은 넋을 잃고 있었다.눈이 빨갛게 붓고 약간 따끔거릴 정도로 울어 내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지윤은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도중에 방해하지 않았다.백씨 저택에 돌아오니 집사와 도우미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할아버지의 명령 때문인지 뉴스의 힘인지 모르지만 이미 전 세계가 그녀의 신분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모두 그녀가 진짜 백씨 가문 손녀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할머니만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여은수는 식음을 전폐하며 방에 하루 종일 갇혀 있었다.다음날, 음식을 먹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방을 나서거나
“그건 할머니가 너무 자주 오셔서 확실히 공부에 방해됐단 말이에요.”“그게 할머니가 널 사랑하는 방식이었어. 근데 네 행동은 확실히 할머니에게 상처를 주었지.”정안은 여태껏 모르고 살았는데 할아버지가 말씀하시자 마음속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백진이 말을 이었다.“할머니가 사준 선물을 넌 뜯지도 않고 사물함에 넣어뒀어.”정안은 말이 없었다.그녀는 할머니가 주는 선물을 싫어한 것이 아니라 정말 그런 선물에 관심이 없었다.그녀는 공부, 독서, 기구, 천문지리, 지식에 관한 모든 것을 사랑했지만 할머니는 다양한 옷과 치마, 곰인형, 장신구, 보석, 가방, 신발, 사치품, 심지어 화장품까지 선물하셨다.“할머니가 너랑 얘기하면 몇 마디 하기도 전에 넌 인내심을 잃었어.”백진은 아내의 지난 일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하지만 나랑은 밤새 지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지.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고생이 심했을 거다. 할머니는 가방끈이 짧아 집안의 자질구레한 이야기와 이웃의 가십거리만 얘기했지. 하지만 그게 할머니 세상이었어.”정안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마음이 괴로웠다. 한 번도 자신의 그런 행동들이 할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그래도 할머니는 널 사랑했어. 널 너무 사랑해서 가짜 손녀가 오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거다.”“가짜 손녀는 더 이상 공부에 몰두하지 않고, 할머니가 알아보지도 못하는 연구도 안 하고 또 할머니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도 하지 않으니까.”“말주변이 좋아 늘 할머니를 기쁘게 해줬어. 할머니가 입까지 가져다준 간식도 먹고,할머니가 사주신 선물도 잘 받고, 할머니가 말하는 가십거리도 잘 들어줬어. 할머니에게 달라붙어 뽀뽀하고 안아주고, 네가 지루하고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같이 해줬거든. 그게 바로 네 할머니가 원하는 손녀였어.”“너를 못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커서 돌아온 손녀를 받아들일 수 없는 거지.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자신을 싫어하는 손녀를 말이야.”정안은 고개를 들어 두 손으로 눈물
10년 만이었다. 그녀가 기억을 되찾은 이후로 계산하면 정확히 10년이었다.그녀는 남하준을 10년 동안 잊고 있었지만 그는 보답을 바라지 않고 그녀를 10년 동안 사랑했고 기다렸다.비록 아무런 결과가 없더라도 계속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정안은 더 이상 밥이 넘어가지 않아 휴대폰을 들고 일어났다.“할아버지 천천히 드세요. 저 일이 있어 먼저 일어날게요.”“그래.”정안은 휴대전화를 들고 방으로 올라가 문을 닫고 침대 가장자리에 가서 앉았다.남하준의 번호를 눌렀지만 주저하며 보고 있었고 손가락은 다이얼 버튼에 굳어 있었다.그가 보고 싶었다.고작 이틀 보지 못했지만 너무 보고 싶고, 목소리도 듣고 싶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늘 이성적인 그녀는 여태껏 감정에 얽매인 적이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갈등을 느끼면서도 손가락은 말을 듣지 않고 다이얼을 눌렀다. 연결음이 울리자 그녀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신경이 곤두서 손바닥에 땀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연결음이 몇 번 울리더니 남하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완아, 무슨 일 있어?”정안은 그의 말에 좀 언짢아졌다.“무슨 일 없으면 전화하면 안 돼요?”남하준은 침묵했다.전화기 너머로 남하준은 멍해 있었다. 그녀는 늘 무슨 일이 있어야만 그에게 전화했는데 이번엔 그저 그와 대화하고 싶었던 걸까?그의 입가에 점점 미소가 번졌다.“당연히 되지.”정안은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몰랐다. 긴장하고 부끄러운 듯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를 들고 남자의 다음 말을 기다리지 못했고 그녀도 마땅한 화제를 찾지 못했다.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남하준이 먼저 기다리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밥은?”“먹었어요.”“할아버지와 할머니랑은 잘 지내고?”“할머니랑은 아직 그래요.”“그래. 시간이 필요할 거야.”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대답했고 이 화제는 그렇게 끝이났다.남하준은 또 침묵 속에 빠졌다. 그제야 정안은 말주변이 없는 그가 계속
지윤과 함께 온 정안은 금원에 들어서자마자 유동진 남매를 만났다.그들에게 지윤을 간단히 소개하고 네 사람은 앉아서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고 정안은 계속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남하준을 찾았다.유미가 그녀의 시선을 파악하고 느릿느릿 말했다.“하준이 주방에서 음식 준비하고 있어요.”정안은 놀라서 물었다.“오빠가 직접요?”유미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셰프들이 모두 해고됐고 마땅한 셰프를 구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하준이가 직접 해야죠.”정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제가 가서 도울게요.”유미가 즉시 일어나 그녀를 잡아당기며 시큰둥한 말투로 말했다.“그냥 앉아 있어요.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자란 부잣집 아가씨가 가면 괜히 방해만 될 거예요.”옆에서 이 말을 들은 지윤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이마를 찡그리고 유미를 보며 그녀의 질투를 느낄 수 있었다.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꾹 참고 앉았다.그때, 진중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고 정안이 고개를 돌려 보았다.큰 쟁반을 들고 걸어 나오는 남하준은 뜨겁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정안을 바라보고 있었다.심장이 빠르게 뛰고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정안은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오빠.”남하준은 그녀에게 미소로 화답하고 음식을 내려놓고 주스 한 잔을 정안 앞에 놓았다.“네가 좋아하는 생과일주스.”정안은 약간 감동되고 수줍기도 했다.“고마워요, 오빠.”유미, 유동진, 지윤 세 사람은 모두 남하준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탄산음료와 맥주를 마시지만 정안은 갓 짜낸 생과일주스를 마실 수 있었다.이건 명백한 차별대우였다.남하준은 쉬지 않고 화로를 돌려 고기를 굽기 시작했고 유동진이 말했다.“하준아, 네 부하한테 구우라고 하고 넌 이리 와서 앉아.”“내 부하들은 나라를 위해 일하지 내 머슴이 아니야.”그의 말에 유동진은 말문이 막혔다.정안은 그런 남하준의 생각과 일 처리 방식이 맘에 들었고 휴대폰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하준 곁으로 가 말했다.“내가 뭐 좀 도울까요?”남하준은
정안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애써 괜찮은 척 새콤달콤한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나 신경 안 써.”지윤이 의미심장하게 물었다.“정말요?”정안은 참지 못하고 두 사람의 모습을 한번 쳐다보더니 마음이 무거워졌다.“사실 저 두 사람 잘 어울려. 집안도 그렇고 외모도 그렇고, 또 모두 M국 지도자이니까 공동한 화제와 꿈을 갖고 있겠지.”지윤은 그녀의 말에 담긴 질투를 알아채고 이것이 그녀의 진심임을 알아챘다.“언니, 다시 고민해봐요.”지윤의 말을 들은 유동진이 물었다.“지금 누구 얘기해요? 뭘 고민해요?”정안이 엷게 웃었다.“별 것 아니에요.”지윤은 맥주를 들어 한 모금 마시고 한숨을 내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동진이 정안에게 다가가 활짝 웃으며 물었다.“이제 어떻게 불러야 하죠? 백하린? 백완자?”“그냥 완자라고 불러주세요. 백하린이란 신분은 이미 10년 전에 사라졌어요.”“왜요?”“Z국은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거든요.”“백씨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인데 왜 국적을 옮겼어요?”유동진은 궁금증이 더해져 긴장한 말투로 또 물었다.“그럼 앞으로 Z국에 정착할 생각이에요?”정안은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 대신 주스를 들고 유유히 마셨다.유동진은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화제를 바꾸었다.“하준이랑은 정말 인연이 있는 거네요. 기억을 잃은 후에도 결혼했으니 말이에요.”정안은 엷게 웃으며 여전히 침묵했다.“듣자 하니 하준이가 전에 그쪽을 엄청 좋아했다고 하던데 사실이에요?”“동진 오빠, 우리 다른 얘기 할까요?”유동진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아무렇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그러죠 그럼.”그때 남하준이 구워진 해산물과 고기를 들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고 유미도 따라와 앉았다.“나랑 하준이 솜씨 한 번 맛봐요.”지윤은 망설임 없이 집어서 먹더니 예의 바르게 칭찬했다.“맛있네요.”남하준은 새우 두 마리를 집어 들고 껍질을 벗기고는 정안의 접시에 놓았다.“방금 네가 구운 거야. 먹어봐.”
얼굴이 뜨거워진 정안은 시선을 옮겼다.“진실게임.”유동진이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이상형이 뭐야?”지윤은 미간을 찌푸렸다.‘이것도 물음이라고 물어? 뻔한 거 아닌가?’“기회 낭비했네요.”지윤은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고 유미는 기대에 차서 바라보았다.남하준은 정안을 한 번 쳐다본 뒤 덤덤하게 말했다.“백완자 같은 여자.”유미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뒤늦게 반응한 유동진은 그제야 자신이 기회를 낭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여기서 누가 남하준이 백완자를 좋아하는 걸 모를까?정안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후끈후끈해 어색하게 주스를 마셨다.유동진이 떼를 쓰기 시작했다.“아니야. 이 질문은 무효야. 네가 완자 씨 좋아하는 거 누가 몰라? 내가 다시 질문할게.”남하준은 보기 드물게 여유롭고 느슨해 보였다.“물어봐.”유동진이 막 입을 벌리려는데 유미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그녀는 다급하고 엄숙한 말투로 물었다.“일과 사랑 중에 뭐 선택할 거야?”그녀의 물음에 남하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지윤과 유동진도 멍하니 놀라서 유미를 바라보다가 안색이 안 좋은 남하준을 바라보았다.그야말로 독한 질문이었다.급해 난 지윤이 나서서 말했다.“무슨 질문이 그래요?”유미는 불쾌한 듯 지윤을 흘겨보았다.“진실게임은 뭐든 물어볼 수 있는 거 아니에요?”“당신...”지윤이 화가 나서 말을 잇지 못하고 정안을 올려다보니 그녀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남하준은 심호흡을 하고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자 가슴이 답답했다.유동진이 급히 어색함을 달래려 했다.“질문 바꿔. 바꿔.”하지만 유미가 차갑게 말했다.“안 바꿔. 하준아. 둘 중에 골라봐. 일이야, 사랑이야?”정안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더니 유미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연히 일이죠.”유미는 화가 나서 정안을 노려보았다.“난 하준이한테 물었어요!”정안이 단호하게 말했다.“이게 오빠 답이에요.”“그쪽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하준이 뇌에 들어가 보기라도 했어요?”정안은 이를 악물고 꾹 참았다.
유미는 화가 나서 몸을 부르르 떨며 주먹을 불끈 쥐고 꾹 참았다.“그 여자는 백완자가 될 수 없어.”남하준은 가볍게 말했다.“나에게 여자는 백완자밖에 없어.”정안은 고개를 숙이고 복잡한 심경으로 손가락을 문질렀다.지금의 그녀는 무척 감동했지만 마음이 아팠다.유미는 차갑게 웃더니 질투 섞인 어조로 조롱했다.“너 내가 아는 남하준 맞아?”남하준은 술잔을 들고 손을 뻗어 유미의 술잔과 부딪치며 그녀를 실망하게 했다는 의미로 사과의 뜻을 전했다.유미는 술을 한 모금 들이키고 말했다.“넌 백완자를 선택했지만 백완자는 너 선택하지 않을 거야.”“그러니까...”남하준은 그 말을 인정하며 씁쓸하게 대답했다.“이 문제는 언급할 가치도 없지.”정안은 마음이 더욱 불편해 일어나 작은 소리로 말했다.“나 화장실 다녀올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자리를 떴고 남하준은 이글거리고 애틋한 눈빛으로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유동진이 웃으며 말했다.“에이, 이게 뭔 벌칙이야? 하준이 고백 타임이지. 하준이 여자 마음 홀리는 능력이 점점 더 좋아지는데? 이런 거짓말도 하고.”남하준은 시선을 거두고 유동진을 바라보며 마음이 무거웠다.“나 어릴 때부터 꿈이 의사였어.”이 말에 현장에 있던 세 사람은 모두 멍한 눈으로 그를 놀라서 쳐다보았다.그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모두들 어리둥절했다.남하준은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심호흡을 하고 술을 한 모금씩 마시며 말을 이었다.“태준이 형 꿈은 나라를 빛내는 군인이 되는 거였어. 늘 직위가 높을수록 권력이 높고 능력이 강할수록 책임이 커진다고 했어. 그렇게 하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유용한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며 위대한 꿈을 갖고 있었지.”유미가 궁금해서 물었다.“두 사람 꿈 모두 위대해. 근데 넌 왜 의사가 아니라 태준 오빠가 원하는 군인이 된건데?”남하준은 눈을 늘어뜨리고 말했다.“완자는 어릴 때부터 태준 형을 좋아하고 숭배하고 우러러봤어. 태준 형이 아마 완자 우상이었을 거야.”지윤은 완전히 멍해졌다
지윤은 남하준이 너무 괴로워 계속 술로 마음을 달래는 걸 알았다.유미는 시무룩하게 식탁을 떠나 별장으로 향했고 마침 안에서 나오던 정안과 마주쳤다.유미는 그녀 앞을 가로막고 말했다.“얘기 좀 해요.”정안이 발걸음을 멈추고 차분하게 바라보며 그녀가 말하길 기다렸다.유미는 마음을 가다듬더니 말했다.“나 하준이 좋아해요.”정안은 비록 알고 있었지만 직접 듣고 나니 조금 괴로웠다.“알아요.”유미가 눈앞의 여자를 바라보니 그녀는 경국지색이라 할 수 없지만, 앳되고 둥근 얼굴을 하고 있어 귀엽고, 몸매도 좋은 편이고 성격도 좋고 목소리도 달콤했다.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재능도 있고 갑부의 손녀이기도 한데, 이런 여자를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게다가 남하준은 어릴 때부터 그녀를 좋아했고, 십여 년간의 정은 이미 뿌리 깊고 뼈에 사무쳤다.유미는 자신이 그녀와 겨룰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물었다.“하준이 사랑해요?”정안은 대답 없이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몇 초 기다려도 여전히 답을 듣지 못하자 유미가 또 물었다.“앞으로 Z국에 가서 살아요?”“맞아요.”정안이 답하자 유미는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내 눈에 태준 오빠는 하준이랑 비교가 안 돼요. 어느 방면으로 봐도 하준이가 한 수 위죠. 어쩌면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지도 모르겠네요.”정안은 어리둥절했다. 그녀가 왜 갑자기 남태준을 언급하고 또 남하준과 비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그쪽은 좋아하는 남자가 있고, 돌아가고 싶은 나라도 있고 자기 사업과 인생이 있으니 여기에 속하지 않고 하준에게도 속하지 않죠.”유미는 거의 애원에 가까운 말투로 말했다.“그러니까 제발 하준이에게 어떤 희망도 주지 말아요.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하지 말란 말이에요.”정안이 주먹을 천천히 쥐자 눈시울이 흠뻑 젖고 가슴 끝이 살살 아팠다.유미가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 확고하게 말했다.“하준이가 그쪽을 얼마나 사랑하든 그쪽이 떠나기만 하면 난 하준이가 그쪽을 잊게 할 자신 있어요. 1년이 걸리든, 1
“그래 그럼.”남태준은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 아무리 쓸쓸하고 힘들어도 그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었다.지우가 그의 곁에 있는 한 그는 반드시 그녀의 마음, 그녀의 사랑, 그녀의 모든 것을 기다릴 수 있었다.그때, 입구의 벨이 울렸다.지우는 궁금한 얼굴로 남태준을 보았고 남태준도 입구를 보았다.“이 시간에 누구죠?”지우가 묻자 남태준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아마 신우일 거야.”“먼저 먹고 있어.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볼게.”말하면서 그는 거실로 나와 문을 열었다.순간 남태준의 안색이 일그러졌다.바로 임다희였다.방금 차에서 내린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지만 이대로 남태준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다시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찾아왔다.“태준아 난...”남태준은 바로 나가서 문을 닫고 임다희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집에 지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두 사람이 재결합했다는 것을 임다희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임다희가 알면 지우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고 불필요한 문제만 일으킬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그의 집에 있다는 것을, 임다희가 지우와 재결합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여긴 왜 왔어?”남태준은 불쾌한 듯 묻더니 그녀의 팔을 끌고 마당으로 향했다.임다희는 남태준의 언짢음과 난폭함을 느끼고 말했다.“너랑 다시 잘 얘기하려고 찾아왔어. 방금 너 쓰레기라고 욕한 거 사과할게. 너무 슬퍼서 홧김에 내뱉은 말이지 진심이 아니었어.”“나 쓰레기 맞아.”남태준은 그녀를 마당 밖으로 끌고 나가 철제 난간을 나와 철문을 걸어 잠그고 마당 바깥 입구에 서 있었다.“우리 친구는 될 수 있지만 연인으로는 얘기가 이미 끝났어.”“우리 앉아서 얘기 좀 해. 우리 다시 시작하자.”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의 덤덤한 눈을 올려다보며 울먹였다.“나 많이 변했어. 더 이상 이전의 임다희가 아니라고. 나 너를 많이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남태준은 몇 초 동안 어이없어 하더니 엄숙하게 말
지우는 예전에는 자신이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게 되었다.그녀는 남태준 같은 유형의 남자를 좋아했다.이런 성격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좋아함으로써 그의 성격도 좋아하게 된 것이다.지우는 부끄러운 듯 그의 목을 감싸고 나지막이 속삭였다.“아니요. 난 당신 같은 돌직구가 좋아요.”남태준은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맑고 큰 눈과 촉촉한 입술을 보니 저도 모르게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마음이 심란했다.그는 목젖을 위아래로 굴리며 그녀의 엉덩이를 한 손으로 감싸 안고 일어서더니 매력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가자. 밥 먹으러 가자. 다른 일에 주의력을 돌리지 않으면 내가 널 잡아 먹을 것 같아.”지우는 부끄러워하며 그의 어깨에 고개를 푹 묻었다.남태준은 그녀를 안고 식탁 앞에 놓아주었고 식탁 위의 반찬 세 가지와 국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너 정말 요리를 잘하는구나. 먹기도 전에 군침이 돌 정도로 비주얼이 훌륭해.”지우는 기분 좋게 앉아 그에게 국을 떠 주었다.남태준도 따라 앉아서 젓가락을 들어 한 입 맛보더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정말 맛있어. 지우가 한 음식이 이렇게 맛있다니.”지우는 그가 맛있게 먹는 걸 보고 뿌듯해졌다.그녀가 만든 건 그저 일상적인 가정식 음식이었고 평범한 재료를 이용해 만든 조리 방법도 단순했다.갈비찜, 토마토 달걀 볶음, 청경채, 그리고 어두 무찌개였다.그러나 남태준은 세상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듯 싱글벙글했다.“내가 한 음식이 맛있다면서 그래도 나 음식 못하게 할 거예요?”지우가 궁금해서 묻자 남태준이 피식 웃더니 입에 든 음식을 삼키고 목을 축이고 말했다.“만약 네가 음식 만드는 거 좋아하고 취미라면 그리고 힘들지 않다면 해도 돼.”“하지만 네 취미도 아니고 임무를 완성하는 것처럼 한다면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거듭하며 네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어. 그러면 너도 힘들잖아.”남태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만지며 부드럽게 중얼거렸다
남자는 손으로 지우의 허리를 꼭 껴안고 눈빛은 뜨거웠다.“내 침대에서 좀 더 오래 자지 그랬어?”“네?”지우가 의혹스러운 듯 맑은 눈망울을 깜빡이며 어리둥절했다.“내가 돌아오면 같이 잘 수 있게.”지우는 얼굴이 살짝 뜨거워졌고 그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수줍게 중얼거렸다.“누구 좋으라고요!”“앞으로 나 밥해주지 마.”남태준은 그녀의 하얀 작은 손을 만지고 입가에 끌어당겨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왜요?”지우는 자신의 요리 솜씨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집에서도 늘 그녀가 요리했으니.“내가 돌아와서 하면 돼. 내가 바쁘면 요리사 부르면 되고.”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문지르며 안타까워하며 바라보았다.“내 여자친구는 요리나 집안일 같은 거 할 필요 없어.”그 말을 들은 지우는 호기심에 물었다.“그럼 여자친구가 뭘 해줬으면 좋겠어요?”남태준이 부드럽게 말했다.“정신적 지주 같은 역할? 나에게 네 일을 공유하고 내 일을 경청하고 각자의 일을 마친 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시시한 일을 했으면 좋겠어.”“뭐가 시시한 일인데요?”“영화 보고 밥 먹고 산책하고 쇼핑하고...”남태준은 말을 잇지 못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갑작스러운 키스에 지우는 저도 모르게 수줍은 소리가 목구멍에서 새어 나왔다.그의 키스는 뜨거웠고 큰 손은 천천히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끌어안아 그녀의 엉덩이를 안으로 오므렸다.진한 키스가 뜨거워질수록 지우는 그의 몸 반응이 점점 강렬해지는 것을 느꼈다. 앉은 위치가 애매해 커다란 것이 몸에 받치는 느낌이 들었다.그녀의 온몸은 저도 모르게 나른해지고 팔다리에는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 같고 아랫배가 공허해졌다.떨림, 수줍음 그리고 왠지 모를 두려움이 그녀를 도망치게 했다.그녀가 옮기려고 할수록 남태준이 그녀를 껴안고 더 바싹 달라붙었다.진한 키스가 불러온 욕망에 두 사람의 숨결은 가빠졌다.남태준은 천천히 그녀의 입술에서 떠나 그녀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제 목소리를 잃은 듯 쉰 목소리로 가볍게 중
“그럼...”임다희는 믿기 싫은 듯 눈물이 핑 돌았다.“내가 목숨 걸고 널 구한 건 내가 경찰이기 때문이야. 사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어.”“그럴 리 없어.”임다희는 분노하여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울먹였다.“나 절대 못 믿어. 나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날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어?”남태준은 긴 한숨과 함께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임다희, 난 널 위해 목숨을 버린 적 없어.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무슨 논리?”임다희가 눈물을 쓱 닦았다.“넌 그래도 내가 사귀었던 여자친구니까 측은한 마음에 그 요트를 떠나라는 것을 상기시켰을 뿐인데 네가 내 신분을 폭로한 거야.”남태준은 그녀를 구하려던 동기를 차근차근 분석해줬다.“네가 내 스파이 신분을 폭로하면서 우리 둘 다 위험에 빠졌어. 도망가야 하는 상황에서 경찰로서 난 절대 자기 살길만 도모하고 다른 사람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어. 경찰의 책임감으로 너 데리고 도망친 거야.”임다희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이해하기 어려웠다.남태준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죽을 뻔한 건 너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야.”지금 남태준이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 것은 그의 관대함 때문이었다.“너 지우 때문에 여기 와서 일하는 거야?”임다희가 눈물이 흐릿해져서 묻자 남태준이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맞아.”“하지만 지우가 너를 차버렸어.”임다희는 눈물을 닦고 고상한 자태를 뽐내며 조롱하듯 물었다.“이번에도 흔쾌히 승낙하고 깨끗이 잊은 거야?”남태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몇 초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질투가 많은 여자는 신중하게 대처해야 했다.“맞아. 깨끗이 잊었어. 이미 끝난 인연이고 지나간 사람을 놓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겠어? 이 세상에 여자가 수도 없이 많은데 한 나무에만 매달릴 필요 없잖아?”임다희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매섭게 말했다.“쓰레기!”그리고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더니 문을
사람은 기쁜 일이 생기면 기분이 상쾌한 법이다. 하루 종일 바빠도 지우와의 관계를 회복한 생각만 하면 속으로 은근히 기뻐 났다.남태준이 막 차 옆으로 다가갔을 때 임다희가 차 뒤에서 걸어왔다.“태준아.”남태준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 무슨 일이야?”“할 얘기가 있어. 아주 중요한 얘기야.”임다희는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타.”남태준이 쿨하게 대답하자 임다희는 그의 차에 올라탔고 남태준이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 안에서 남태준이 물었다.“어디서 얘기할래?”“너희 집.”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그건 안돼.”“아주 중요한 일이야. 반드시 사람 없는 곳에서 얘기하고 싶어서 그래.”임다희는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빛을 내뿜으며 엄숙하게 말했다.“마약 거래에 관한 얘기야.”“그럼 지금 얘기해.”남태준은 차를 길가에 세웠다.“차 안에는 우리 둘만 있으니까 안전해.”임다희가 앞뒤를 돌아보니 이 길은 행인도 없고 오가는 차량도 뜸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태준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려 하자 마지못해 핸드백을 열어 그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이 시간에 거래가 있을 거야.”그의 다년간 사건 처리 경험으로 볼 때, 이렇게 명확한 거래 장소와 시간은 임다희가 절대 알 수 없었다.이 정보가 가짜이거나, 누군가가 그녀에게 준 것이 틀림 없었다.“어디서 났어?”남태준이 묻자 임다희는 조금 켕긴 듯 대답했다.“건달인 친구가 알아낸 정보인데 내가 샀어.”남태준은 입꼬리를 꼬며 그녀의 거짓말이 좀 억지스러워서 계속 물었다. “네가 마약 형사도 아니고 이 정보를 왜 사는데?”“너 주려고.”남태준은 움찔하더니 침묵했다.임다희는 애정 어린 눈으로 남태준을 지그시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태준아, 우리 다시 만나자.”남태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뭐라고?”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울먹였다.“전에는 내가 미안했어. 네
지하 카지노 사무실.육건우는 자료를 책상에 던지고는 화가 나서 일어나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임다희를 노려봤다.“너 혹시 남태준 스파이야?”임다희가 미소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그럴 리가 있나요? 우리는 같은 배에 탄 사람이잖아요. 내가 남태준을 도와서 얻을 수 있는 게 뭔데요? 난 단지 애매한 단서만 줬지 실질적인 증거를 준 적은 없어요.”“요즘 사복 경찰이 계속 우리 촬영장 밖을 배회하고 가끔 항공사진 드론이 공중을 선회하고 또...”육건우는 책상으로 가서 서류뭉치를 집어던졌다.“이건 전부 최근 경찰들에게 적발된 물건이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젠장!”임다희는 긴장해서 침을 삼키고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육건우는 분노하여 임다희를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네 신분을 잊지 마. 내가 너를 도와 남태준과 그 여자를 갈라놓겠다고 약속했고 그 동생까지 함정에 빠뜨렸어. 그런데 그 여자가 지금 나를 고소했다고. 젠장.”임다희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제가 어떻게 사장님의 큰 은혜를 잊겠어요? 다만... 저는 다시 전 남자친구와 재결합하고 싶어요. 그런데 하필 태준이가 마약 경찰이잖아요. 그래서 저... 이 일에서 손 떼고 싶은데 보스에게 사정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육건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임다희가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그해 남태준과 요트에서 탈출한 뒤 남태준은 그녀 때문에 다시 잡혀가 바다에 빠져 하마터면 숨질 뻔했지만 그녀는 사실 안전하게 귀국할 방법이 없었다.배후의 빅보스가 바로 그녀를 죽이려고 했지만 육건우가 빅보스에게 사정을 해서 그녀에게 살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그녀의 연예인 신분을 이용하여 마약을 갖고 귀국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그녀는 마지못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십여 킬로그램의 마약을 촬영장 카메라 기둥에 숨긴 후 요트를 타고 귀국했다.그 이후로 그녀는 마약밀매 조직의 일원이 되었고 매번 물건을 가져오거나 몸을 헌신해야 했다.임
꽃가게 앞을 지날 때 남태준이 걸음을 멈추었다.“지우야. 나...”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는 재빨리 그를 끌고 나가 그의 팔을 껴안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부질 없는 곳에 돈 낭비하지 말아요.”“여자들은 다 꽃을 좋아하지 않아?”지우에 의해 팔이 단단히 조여진 남태준은 아주 편안했고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 번졌다.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안 좋아해요. 굳이 사주고 싶다면 차라리 다육식물을 줘요. 기르기도 쉽고 번식도 할 수 있잖아요.”“가방의 품질, 브랜드, 가격 중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가격이죠.”남태준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소비 관념과 가치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또 물었다.“다이아몬드와 금 중에 뭐가 좋아?”“금이요.”지우가 고민도 없이 대답하자 남태준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좋아. 알겠어.”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을 때 흥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우야!”지우가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더니 그녀를 부른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바로 그녀에게 맞선 상대를 소개해 준 중매인이었다.그녀는 빠르게 남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놀라움과 설렘이 가득해 말했다.“어쩐지 내가 그렇게 좋은 남자들을 소개해줘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니. 알고 보니 눈이 이렇게 높았었네? 남편 어디 사람이야? 누가 소개해줬어?”지우는 어색하고 난처해하며 웃어 보였다.“친구가 소개해줬어요.”말하자면 백완자가 그들을 소개해 준 셈이었다.“외모도 빼어나고 큰 기에 몸매도 좋네. 어디 사람이야? 무슨 일 해?”역시 가십에 관심이 많은 중매인이었다.남태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지 않았지만 지우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안성 사람이에요. 아주머니, 제가 얼른 가서 밥해야 해서요. 다음에 얘기 나눠요.”“안성 좋지! 큰 도시 사람이네!”지우는 남태준의 손을 잡고 서둘러 떠났다.그녀는 매우 급하게 걸었지만 남태준의 얼굴에는
지우는 긴장되어 귀가 빨개졌다.“싫어?”남태준은 그녀의 진심을 떠보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와 재결합하고 싶은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의 허벅지에 몸을 기울여 앉았는데 긴장해서 등이 약간 뻣뻣했다.남태준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덥석 끌어안고 뒤로 기댔다.지우는 그의 튼실한 가슴에 완전히 엎드렸고 몸이 나른해졌다. 수줍고 난처해 감히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그의 품에 안겨있는 느낌은 아주 편안하고 심장이 왠지 모르게 떨리면서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만약 네가 불편하거나 거부감이 든다면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남태준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갖고 싶었지만 그녀가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그 말을 들은 지우는 조바심이 났다.그녀는 남태준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그의 깊고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나 불편하지 않아요. 거부감도 들지 않고요.”“그러니까 너 지금...”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가 갑자기 입을 맞추었다.그러자 남자는 움찔했다.지우는 눈을 감고 두 손을 천천히 남자의 어깨에서 뒤로 걸어 목을 감은 뒤 수줍고 서툴게 그의 따뜻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그녀는 심장이 천둥처럼 뛰었다.남태준은 몇 초 동안 멍해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마음은 더없이 흥분되었다.그는 지우의 뒤통수를 낚아채 옅은 키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의 입술과 혀는 그녀의 어금니를 비틀어 열고 곧장 달려들어 여자의 혀와 한데 엉켰다.“음!”지우는 그의 공세에 못 이겨 수줍은 소리를 냈다.그동안의 갈망과 그리움을 남태준은 한숨에 모두 보상받고 싶은 심정이었다.지우를 꽉 껴안고 격렬하고 난폭한 키스를 계속 퍼부었다.긴 키스가 이어지고 지우는 입술이 다 아프고 호흡이 가쁜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남자의 가슴을 밀면서 고개를 뒤로 뺐다.남태준은 아쉬운 듯이 그녀를 놓아주었다.두 사람은 눈을 감고 서로 이마를 맞댔고 거친 호흡을 나누며 뜨거운 기운이 감돌
지우가 부랴부랴 그를 불렀다. “아니요. 나 안 더워요.”남태준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놓았다.그녀의 영롱한 큰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맑고 깨끗했으며 매력적이었다.지우는 잔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어 물었다. “태준 씨가 임다희와 사귀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남태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지우는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남태준에게 건넸다.순간, 지우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이미 헤어진 이상 그와 다른 여자에 관해 물어볼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참지 못했다.확실히 묻지 않으면 그녀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비록 죄책감을 느끼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다만 이때 그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은 그녀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아 보일 수 있었다.모두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저지른 일이지만 그녀는 동생의 취업을 위해 목적을 갖고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지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뉴스를 본 남태준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긴장하며 설명했다.“지우야. 나와 다희 그런 사이 아니야. 나 믿어줘.”현재 임다희는 그의 정보원이기 때문에 보안 및 기밀 유지 계약으로 인해 임다희의 신분과 작업을 기밀로 유지해야 했으므로 지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지우가 자신을 믿지 못할까 봐 초조하게 이마를 짚고 죽을상이 된 얼굴로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또 불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지우를 바라봤다.지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여자가 먹여준 음식 먹었어요?”“그저 보통 친구와 밥 한 끼 먹은 거야. 나와 다희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 아니야.”“안 먹었어요?”“응. 거절했어.”“아.”지우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오므렸다.그러자 둘 다 침묵에 빠졌다.남태준이 지우를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